〈 33화 〉 같은 사람, 다른 대우
문피아 공유방에서 작업된 소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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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회차. 내가 일성 길드에서 일할 때, 황종태는 내 팀장이고 도준욱은 내 3년차 선배였다.
둘은 짝짜꿍이 잘 맞았다. 환장의 듀오였다. 돌아가면서 나를 갈궜다.
내가 무슨 잘못을 했나. 잘 몰랐다. 둘이 나를 싫어하는 것만은 알고 있었다.
노력, 끈기, 열정의 헌터는 요령이 없었다. 그들의 말이 옳다고 믿고 그들이 시키는 대로 일하며 최선을 다했다.
아무리 노력해도 친해질 수 없었다. 아무리 노력해도 인정받을 수 없었다.
나는 그들을 대하며 지쳐만 갔다.
EX급 게이트가 터졌을 때.
황종태나 도준욱이나 마인으로 드러났을 때.
난 오히려 기뻤다.
이 녀석들, 사람이 아니었구나?
그러니까 날 절대로 인정하지 않았구나.
내가 틀린 줄 알았는데, 이 녀석들이 처음부터 어긋나 있었구나.
사람 같지 않은 놈들을 이해하려 노력하느라 힘들었다.
그럴 필요가 없었다.
애초에 사람이 아닌 놈들이었다.
난 창 대신 검을 들었다.
창은 도준욱이 쓰던 단창.
검은 내가 쓰던 평범한 헌터소드였다.
“예. 제 실력을 보여드리겠습니다.”
실험을 했다.
내가 만약 마인이었다면 황종태의 어떤 반응이 보였을지.
별다른 기술을 쓰지 않기로 한다. 예전의 한재복처럼 스킬 하나 없이 골렘들을 상대하러 나섰다.
던전 2층의 잔존 골렘들.
여기는 폭발형 골렘이 없다.
골렘을 잡더라도 큰 소리가 나지 않는다.
“창을 쓰는 게 아니었나?”
발을 널찍이 벌리고 팔짱을 낀 채 느긋이 나를 지켜보는 황종태. 내가 만지작거리던 단창 대신 검을 뽑아들자 궁금한 듯 물었다.
“창이든 검이든 다 잘 씁니다. 검술 실력부터 보여드리겠습니다.”
난 자신 있게 웃으며 말했다.
위잉.
앞으로 몇 걸음 내딛으니 골렘들이 나를 인지했다. 찰흙골렘, 아이스골렘. 일반적인 D급 골렘들이었다. 2m 크기에 로봇 같은 움직임을 보인다.
땅을 박찼다.
골렘의 품으로 파고들었다.
후욱.
대각선으로 내리쳐오는 골렘의 오른팔.
잠시 사정거리 바깥에서 발을 멈추며 타이밍을 쟀다.
오른팔이 지나가자 다시 발을 디뎠다.
헌터소드를 골렘의 가슴에 꽂아 넣는다.
바삭.
부서지는 찰흙골렘의 마핵.
내 동작에는 군더더기가 없었다. 골렘의 움직임을 읽고 피했으며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접근해서 마핵을 뚫었다.
부스스슥.
마핵이 부서지자 찰흙골렘이 힘을 잃고 무너졌다. 흩어지는 돌 더미 속에서 나는 다음 목표를 향해 뛰었다.
아이스골렘. 이 몬스터는 찰흙골렘보다 방어가 단단하다. 마핵의 위치는 옆구리. 아이스골렘이 팔을 내려 가리고 있으면 공략하기 쉽지 않다.
아이스골렘이 왼팔을 내려 마핵의 위치를 가리고 오른팔을 잽처럼 앞으로 뻗었다. 나는 몸을 숙였다. 아이스 골렘의 오른팔과 부딪치거나 골렘이 가리고 있는 마핵을 노리지 않았다.
헌터소드를 돌려 골렘의 오른쪽 무릎을 내려쳤다. 마력을 담은 채였다.
빠각.
골렘의 무릎이 꺾인다. 관절에 해당하는 부위였다. 갑자기 날아든 거센 충격에 버티지 못하고 옆으로 뒤틀렸다.
오른쪽으로 무너지는 골렘의 자세. 나는 검을 위로 들어 휘어져서 내려온 골렘의 목을 부셨다.
뻐걱, 탕, 탕, 탕.
아이스 골렘의 대가리가 몸에서 떨어져 나와 바닥과 맞부딪쳤다. 얼음 굴러다니는 소리를 낸다.
골렘은 더 이상 옆구리를 막지 못했다. 머리가 없고, 무릎이 꺾인 채 바닥에 나뒹굴고 있었으니.
검을 옆구리에 쑤셔 마핵을 확실히 갈라놓는다.
퍼서석.
아이스골렘도 얼음조각이 되어 부스러졌다.
홀에 있는 골렘들.
남은 골렘들도 비슷한 방식으로 처치했다.
골렘에 맞게, 정확한 움직임으로 마핵을 부쉈다.
홀에는 아이스골렘과 찰흙골렘의 잔해들만 남았다. 얼음조각과 돌 더미가 되어 바닥에 굴러다닌다.
“어떠십니까?”
황종태를 보며 감상을 물었다.
*
“깔끔하군. 스킬은 안 쓰는 건가?”
그는 크게 만족한 표정이었다. 대단한 검술. 스킬 쓰는 건 본 적이 없어 묻는다.
“스킬은 못 씁니다. 쓸 줄 아는 게 없어요. 그래도 괜찮습니다. 이런 골렘을 잡는데는.”
나는 검을 검집에 집어넣었다. 스킬을 못 쓴다고 황종태를 떠보았다.
지난 회차엔 스킬도 못 쓰는 게 무슨 헌터냐며 난리를 치던 황종태였다. 이번엔 어떤 반응을 보일까.
“스킬을 못 써? 진짜?”
“예. 노력해도 안 되더군요. 저는 스킬이 없습니다.”
“그렇군. 근데 그게 뭐 중요한가. 이기기만 하면 장땡인 걸.”
그는 새삼 쿨한 남자가 되었다. 스킬 같은 건 중요치 않다며 논리를 설파한다. 지난 회차의 한재복이 들었으면 참 감동했을 만한 소리였다.
“그렇죠? 마인이 싸움만 잘 하면 됐지, 스킬이 뭐가 중요하겠습니까. 노력하면 다 극복할 수 있는 걸.”
나는 밝은 웃음을 지었다. 긍정적인 사고방식을 표현했다.
“노력? 노력이라. 그거 마인한텐 듣기 힘든 소리군. 마인이 노력한다니, 보기 좋지. 그래서 네가 특성을 노력, 끈기, 열정으로 정한 건가? 노력하려고?”
“예. 재능이 부족하면 보다 열심히 살아야지요. 노력하고 발전하는 마인이 되기 위해 이런 특성으로 위장했습니다.”
“재미있군. 큭큭. 이렇게 정신머리가 제대로 박혀있는 마인은 본 적이 없어. 노력하겠다니, 맘에 드는군.”
황종태는 나를 칭찬했다. 노력한다는 말을 좋아한다.
지난 회차에는 노력이란 소리가 나올 때마다 발작하며 화를 내던 황종태였다.
노력하지 말고 스킬을 쓰며, 발전하지 말고 당장 결과를 보이라고 했었다.
연습이나 공부할 시간도 주지 않고 날 던전에다 밀어 넣었다. 살아 돌아와도, 갖은 고생 끝에 성과를 내더라도 기뻐하지 않았다. 남들 다 하는 걸 가지고 생색 내냐며 꾸짖었다.
황종태를 웃게 만들기가 이렇게 쉬웠었나.
이번에는 노력하겠다는 말만 해도 만족해한다.
“세상에는 노력 무시하는 놈들이 참 많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못하면 노력이라도 해야지. 포기하는 것보다 백배천배 나은 일이다. 네가 스킬이 없더라도 괜찮다. 마인은 스킬 필요 없어.”
“아유. 감사합니다.”
그의 후련한 말에 나는 꾸벅 인사했다.
마치 지난 회차의 한재복으로 돌아가 칭찬받는 기분이었다. 그 때 못 받은 위로와 격려를 이제야 받는다.
“보면 볼수록 괜찮은 녀석이군. 노력하는 마인이라니. 게을러빠진 다른 마인들에게 훌륭한 귀감이 될 거다. 네가 꼭 일성 길드에 들어왔으면 좋겠군.”
황종태는 노력이란 말을 좋아했다. 노력, 노력거리며 내게 호감을 표시했다.
“······.”
나는 황종태를 물끄러미 쳐다봤다.
장난은 이제 그만 해야겠다.
그의 바뀐 태도를 보니 재밌기도 하지만 한 편으로는 안타까운 마음도 든다.
지난 시절 왜 그렇게 고생을 했는가.
저딴 녀석 비위 맞춰주겠다고 왜 눈치 보며 살았는가.
마인새끼들은 인간이 아니다.
처음부터 스킬이니, 노력이니, 성과니, 그딴 것이 중요한 게 아니었다.
내가 마인이면 되는 일이었다.
허탈한 웃음이 나왔다.
등에서 단창을 뽑아들었다. 실험은 끝. 황종태를 처치할 때가 되었다. 말없이 다음 장소로 이동한다.
“음. 이번에는 단창을 쓸 거냐? 기대되는군. 검술만 해도 이정도인데 단창은 얼마나 잘 쓸지.”
황종태가 호쾌한 발걸음으로 나를 뒤쫓았다.
20마리의 골렘을 5분 만에 처치했다.
검으로 보인 실력으로만 이미 B급이었다.
창도 잘 쓴다니까 한껏 기대를 부풀리고 따라온다.
*
기이잉. 기이잉.
이번 지역에서는 아이언골렘이 보였다.
C급 몬스터. 몸체가 강철로 이루어져 아이스골렘보다 순수한 방어력이 높았다.
“갑니다. 잘 보고 계십시오.”
나는 창을 들고 골렘을 향해 뛰었다. 골렘과 적절히 대치한다. 이리저리 스탭을 밟으며 골렘을 이끌었다. 황종태 쪽으로.
황종태는 느긋하게 서서 내 싸움을 지켜보다가, 점점 그에게로 아이언골렘이 다가서자 옆으로 슬금슬금 물러났다.
“이번엔 오래 걸리네. 창술은 아쉽잖아.”
내 싸움을 평가한다. 검술처럼 단숨에 적을 해치우지 못하니까 불편해했다.
나는 그러건 말건 골렘의 위치를 조정했다.
나와 황종태의 사이였다.
창을 던졌다.
골렘을 노리는 척 하며, 황종태를 노린다. 내가 마력을 듬뿍 담아 내던져버린 단창은 황종태를 향했다.
“······!”
깜짝 놀란 황종태가 방패를 세웠다.
단창은 그의 방패를 스쳐 왼쪽 어깨를 맞췄다.
파악.
황종태의 왼쪽 어깨에 도준욱의 단창이 꽂히고 순식간에 마비독이 퍼진다.
“크윽, 이게 뭐하는 짓이냐!”
어깨에 꽂힌 창을 빼내며 쩌렁쩌렁 고함을 치는 황종태. 내가 자신에게 창을 던진 걸 알아봤다.
“아, 이런. 실수했습니다. 괜찮으십니까?”
나는 뻔뻔한 연기를 했다. 고의가 아닌 듯이 손을 들며 황종태의 상태를 물었다.
“너 나한테 일부러 던졌지, 방금?”
“아닙니다. 실수입니다.”
화내는 황종태에게 웃으며 말했다. 저 녀석이 했던 짓이다. 내 앞에서 폭발형 골렘을 터트렸던 일.
난 같은 방식으로 되갚아줬다.
[아이템복제]
단창을 더 생성해냈다. 아이언골렘을 보는 척하며, 황종태에게 창을 계속 던졌다.
콰직, 콰직, 콰직.
그가 방패로 내 창을 힘겹게 막는다.
“으아악! 네놈, 미친 거냐!”
“실수라니까요.”
“정신이 나갔군. 마인이 마인을 공격하다니. 널 절대 가만두지 않겠다.”
내 공격을 몇 번 더 견뎌내다가 황종태가 이를 갈았다. 같은 마인이고 뭐고 죽일 듯이 노려본다.
파아악.
급변하는 황종태의 몸집. 근육이 팽창하고, 털이 수북이 생겨난다. 송곳니가 자라나며, 큼직한 발톱이 손가락에서 빠져나왔다.
검은 안광.
곰의 흉포한 눈동자다.
터질듯하게 플레이트 아머를 갖춰 입고, 방패를 세우고, 양날도끼를 꺼내든 황종태가 나를 쳐다보았다. 키는 이미 골렘을 넘어섰다. 곰이 무기를 들고 서있는 느낌이다. 마비독이 퍼졌으나 당장의 효과는 없다. 황종태는 탱커라 독내성이 강하다.
후욱, 콰직.
황종태가 주변에서 얼쩡대는 아이언골렘 한 마리를 양날도끼로 내려쳤다.
순수한 힘에 의해 아이언골렘의 강철이 찌그러지며 몸이 안쪽으로 움푹 파인다.
후욱, 쾅.
한 번 더 도끼를 돌리자 아이언골렘의 머리통이 박살났다. 아이언골렘의 마핵은 머리에 있다. 부서진 마핵과 함께 몸이 으스러진다.
“크으, 네놈... 이 도마뱀 녀석. 갑자기 날 공격한 이유가 뭐냐. 무슨 의도지? 마인이 마인을 공격하면 살아남지 못한다는 걸 알 텐데?”
황종태가 마비독으로 빳빳해진 왼쪽 얼굴 대신 오른쪽 얼굴만 흉측하게 일그러트리며 물었다. 왼쪽 팔이 마비독에 저항하느라 덜덜 떨리고 있었다.
“그건 알 필요 없고.”
나는 대답해주지 않았다. 모든 마인을 만날 때마다 나는 사실 인간이라고 구구절절하게 대답해준다면 그게 더 이상한 일이다. 질문을 가볍게 무시했다.
휙, 뻐걱.
단창을 높이 들었다. 내 근처에서 얼쩡거리는 아이언골렘의 머리통을 아래에서부터 위로 찔러 박살냈다. 내 옆의 아이언골렘도 순식간에 찌그러지며 무너진다.
“넌 뒤졌다는 것만 기억해라.”
창을 두 손으로 잡고 황종태를 향해 내밀었다. 실컷 찔러줄 생각이었다.
“하. 이놈자식이 정신이 나갔나. 누굴 향해 창을 내밀어? 나 일성 길드의 황종태다. 일성 길드의 황종태.”
“됐고, 죽기 전에 스킬이나 빨리 써라.”
창을 들고 있는 이유? 탱커 스킬을 복제해 가려고. 저놈은 괜찮은 액티브 스킬이 많다. 앞으로 패시브 스킬을 많이 배울 한재희와는 계통이 달랐다. 가져갈 만한 스킬들이 몇 개 있었다.
창으로 황종태를 찔러갔다. 도준욱의 창술을 [행동복제]했다. 기존에 알고 있던 내 창에 대한 지식을 더해, 그럴 듯한 공격기술이 완성되었다.
파악, 파악.
육중한 양손도끼를 휘두르는 황종태. 내가 맞아줄 리가 없었다. 도끼의 경로를 미리 읽고 피하며 창의 사거리를 이용해 그의 피부에 생채기를 내놓는다.
“웃기는 공격이구나. 뱀이 아닌 쥐새끼더냐. 피부를 갉아대는군.”
황종태는 비웃었다. 그는 별로 아프지 않았고 독내성이 강해 큰 피해가 없었다. 스킬 하나를 더 사용해 방어를 완성한다.
[안티 포이즌]
독 내성 50% 증가. 이걸로 마비독에 대한 방비는 끝났다.
[안티 포이즌]
황종태가 스킬로 몸에 마력을 두르는 모습을 봤다. 독에 대한 방어 스킬을 머릿속에 기억한다.
나는 만족하고 단창을 해제했다. 최상급 헌터소드를 만들어내어 오른손으로 잡았다.
“뭐야. 마법사인가? 네놈. 스킬이 없다더니. 노력이니 뭐니 떠들어대더니 새빨간 거짓말이었군.”
“그걸 믿냐.”
내 무기가 바뀐 걸 보고 황당해하는 황종태에게 짧게 이죽거렸다.
최상급 헌터소드로 황종태의 방패를 후려쳤다.
곰으로 변한 황종태는 A급 마인. 나는 S급 헌터. 최상급 헌터소드도 S급 아이템.
당연히 그가 막아내기는 버겁다.
안간힘을 써대며 내 공격을 방어한다.
[금강]
[철벽방어술]
방어스킬을 연달아 사용했다. [금강]은 이미 배운 스킬. [철벽방어술]을 찬찬히 뜯어보며 복제했다.
마력 제어를 풀어 최상급 헌터소드도 없애버리고, 이번에는 흑철검을 생성한다.
서걱.
흑철검을 막아낸 황종태의 방패에서, 여태까지와는 조금 다른 소리가 들렸다.
방패가 깎여나간다.
“크헉!”
황종태가 놀란 신음을 내었다. 내 공격이 점점 강력해지고 있었다. 이젠 도저히 버티지 못할 정도다.
파지직, 서거걱.
파지직, 파가각.
방패가 잘려나가고 있었다. 황종태는 황급히 전투전략을 바꿔 내 공격을 막아내기보단 피하고 흘려내려 한다.
어림없었다. 기술도 내가 황종태보단 우위다.
사악. 스각.
곰의 털에 피가 스미는 경우가 늘어났다. 흑철검은 자비 없이 황종태의 피부를 찢어놓았다.
[육질 강화]
황종태가 마지막 기술을 썼다. 몸의 회복력, 방어력, 특수공격내성이 한 번에 100%씩 늘어난다. 그가 가진 최고의 탱커스킬이었다.
나는 만족했다.
복제를 끝마친다.
흑철검으로 그의 방패를 완전히 두 쪽으로 갈라놓고 배를 찔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