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2화 〉 같은 사람, 다른 대우
문피아 공유방에서 작업된 소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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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넌 누구냐.”
황종태가 딱딱해진 얼굴로 말했다. 조명등의 어스름한 빛을 받아, 안면의 절반만 반사광이 비치고 있었다. 자연스레 진지하고 무거운 분위기가 형성된다.
“저 말입니까? 제가 누군지 모르십니까?”
난 분위기와 달리 경쾌하게 말했다. 나는 찔리는 게 없다. 도둑이 제 발 저린다고, 모략을 꾸미던 황종태만 민망하고 뻘줌해진 입장이다.
“네가 누군데.”
짐꾼의 얼굴을 황종태가 기억하고 있을 리 없었다. 나는 그가 터트린 폭발형 골렘에 맞은 특별한 짐꾼이지만, 그는 내가 다친 것만 봤지, 내 얼굴을 보진 않았다.
처음 보는 낯선 녀석에게 계획을 들키자 황급히 관심을 갖는다.
“공략대에 짐꾼으로 참여한 한재복입니다.”
“짐꾼?”
일성 길드원이었으면 웬만하면 황종태가 머릿속에 있었을 거다. 짐꾼이니까 몰랐지.
그는 이해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한재복. 설마 우리가 하는 얘기를 들었나?”
이것부터 물어본다. 남들에게 공개하기 민망한 그들의 치부를 엿봤는지, 그것부터 확인했다.
“무슨 얘기를 말씀하시는 겁니까? 방송 분량을 확보하기 위해 일부러 부상자를 만들었다는 얘기? 아니면 앞으로 비슷한 짓을 반복하겠다는 얘기? 뭘 말씀하시는지 모르겠습니다.”
난 입가를 씰룩이며 말했다. 양손을 들며 잘 모르겠다는 시늉을 했다.
황종태의 미간이 찌그러진다. 내가 전부 들었다. 나를 보며 험악하게 눈을 부라렸다.
“전부 들었군.”
“예.”
“······.”
당당하게 대답하자 황종태가 멈칫한다. 잠깐 생각하는 듯했다. 나를 어떻게 처리할지.
입을 닫고 한참을 노려보다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래서 어쩔 거지. 다른 사람들에게 일러바치기라도 할 텐가?”
허리를 곧게 세우고 가슴을 넓게 펼친 채, 나를 내려다보았다.
“생각 잘해, 한재복. 짐꾼이 말이야. 오래 살려면 눈치라도 있어야겠지. 이런 일은 밖으로 새어나가도 좋을 게 없어. 오히려 네가 내 원한만 사겠지. 감당할 수 있겠나. 다른 사람들이 이 사실을 알면 내가 너를 가만두지 않을 건데.”
그가 선택한 건 협박이었다. 내가 함부로 입을 나불대면 가만두지 않을 거라 일러둔다. 그는 초대형 길드 일성의 B급 헌터였다. 나 같은 짐꾼 나부랭이를 쥐도 새도 모르게 처리하는 건 일도 아니었다.
“······.”
나는 으르렁거리는 황종태를 마주봤다.
이런 녀석이었다.
안 좋은 일 따위는 비밀리에 전부 묻어버리는. 일성 길드의 마인 녀석.
지난 회차. 그는 지금과 똑같이 일성에 있었고, 주변 사람들에게 피해 입히는 걸 서슴지 않았다.
마인의 목적이 애초에 유망한 인간의 견제 및 제거였으니, 그가 일성길드에서 일하며 수많은 사람들을 죽음으로 내몰았다는 건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었다.
일성 길드가 왜 헌터를 소모품으로 갈아버리는 블랙 기업처럼 변했나.
다 이 녀석들 때문이다. 마인 녀석들.
이놈들이 우리 사이에 끼어서 시스템을 이렇게 망쳐 놨다.
인간을 제거하기 위해, 인간을 제거하기 위한 가장 합리적인 시스템을 개발해냈다.
수많은 인간을 영입하고, 수많은 던전을 돌게 하며, 그 사이사이에 하나씩 사고로 위장해 제거한다.
수많은 던전을 돌아 성과를 낸다. 일성이라는 화려한 위명 속에, 자잘한 사건사고는 어쩔 수 없는 희생이었다며 묻어간다.
그렇게 헌터들을 해치고 사냥했다. 이 마인들은.
일성은 유망주의 무덤이었다.
나도, 이하연도, 말도 안 되는 임무를 따르다 몇 번이나 죽을 뻔했지.
황종태 이 녀석 때문에, 내가 일성에 들어왔을 때도 이 녀석은 여전히 팀장이었으니까.
부하나 짐꾼을 사지로 모는 건 황종태에겐 일과다. 부끄럽고 낯 뜨거운 일이 아니다. 이런 식으로 일성을 홍보하며 짐꾼과 D급 헌터들에게 폭발형 골렘을 터트리는 일 따위, 일상과 같은 거였다. 오히려 누굴 몰래 죽이는 것보다 사소한 일이었다.
그들의 비밀을 알거나 의심하는 사람이 있으면 협박하고 위협하면 된다. 더 거슬리게 하면 남모르게 던전에서 사냥하고 사고사로 위장하면 된다. 황종태에겐 자주 있는 일이다.
양심의 가책 하나 없다. 황종태는 떳떳한 눈으로 나를 내려다본다.
“아이고, 선배님. 그럴 리가요. 제가 이런 걸 남들에게 말할 리가 있겠습니까?”
나는 너스레를 떨었다.
“선배님?”
내가 부른 호칭에 황종태가 미간의 주름을 풀었다.
*
“저도 사실 마인입니다.”
나는 황종태에게 목소리를 낮춰 속삭였다. 누가 볼세라 은근한 표정을 지었다.
“······!”
놀라는 황종태. 나는 그에게 좀 더 가까이 다가갔다.
“이것 보십시오. 제 상태창입니다.”
상태창을 열어 보여준다.
<이름: 한재복>
<특성>
1. 노력(-)
2. 끈기(-)
3. 열정(-)
[*위장]
세 가지 특성 밑에 쓰여 있는 [*위장] 표시. 마인은 [위장]스킬을 알기에 이걸 볼 수 있다.
그래서 마인끼리 서로 마인임을 확인할 땐 상태창으로 [*위장] 표시를 보인다.
황종태는 [*위장]을 알아봤다.
“너 마인이었냐······.”
“네.”
“여긴 왜 왔어.”
내 목적을 물었다. 나는 그가 마인임을 알고 찾아왔다.
“황종태 님. 저도 일성 길드에 가입하고 싶습니다.”
“뭐?”
“일성 길드에 들어가고 싶어서 짐꾼으로 지원해 왔는데, 섭섭하게 왜 제 앞에서 폭발을 일으키고 그러십니까. 깜짝 놀랐잖습니까.”
나는 서운하다며 눈을 찡그렸다.
“일성 길드의 황종태 님을 직접 찾아뵙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공략대에 낀 건데, 폭발 때매 하마터면 들킬 뻔했습니다.”
옷을 걷어 오른쪽 어깨를 살짝 보여줬다.
[피부복제]
내 오른쪽 어깨엔 도준욱의 도마뱀비늘이 덮여있었다. 황종태를 속이기 위해 일찌감치 복제를 해뒀다.
“리자드 계열 마인...”
황종태는 한눈에 내가 어떤 종류의 마인인지 알아챘다.
“짐꾼 사이에 섞여 있다가 엄하게 폭발에 휘말렸습니다. 황종태 님을 찾아뵙기도 전에 큰일 날 뻔했지요. 피부가 벗겨져 비늘이 드러났었습니다. 그래도 이렇게 무사히 안 들키고 황종태 님을 뵙게 되어 다행입니다.”
나는 작은 한숨을 내쉬었다. 천만다행이라는 표정이었다.
황종태를 보며 빙그레 웃는다.
“그럼 왜 우리의 대화를 엿들었지?”
“엿듣다니요? 황종태 님을 몰래 찾아뵈러 왔다가 대화 중이셔서 밖에서 기다린 겁니다. 주변 경계도 하면서요.”
등에 메고 있는 단창을 가리켰다. 사람들이 행여나 그들의 대화를 들을까봐 여길 지켰다는 뜻이었다.
“오호.”
황종태의 굳은 표정이 풀린다. 내가 텐트 앞을 지킨 것도 말이 되었다. 저 안에서 아무리 조용하게 대화를 나눴어도 밖에서 들릴지 모를 일이다. 실제로 내가 그들의 대화내용을 전부 듣지 않았나.
마인인 내가 여길 지켰다면 도리어 잘한 일이다.
“왜 일성 길드에 들어오려 하는 거냐.”
“성소현 님 밑으로 들어가고 싶습니다.”
성소현은 일성 길드에 속한 S급 마인. 일성 길드의 마인들을 이끌고 있었다. 황종태는 그녀의 수하 중 한 명이었다.
“왜 성소현 님의 부하가 되고 싶은데.”
“요새 마인들 사이의 관계가 하 뒤숭숭하지 않습니까. 연초록색 가면 마인 때문에. 성소현 님 밑으로 들어가서 그 변절자 자식을 기필코 처단하고 싶습니다.”
연초록색 가면 마인의 이름을 팔았다.
하이드 길드의 떨거지들을 사냥하면서 들었다. 마인 몇몇을 잡았을 때 그들이 말했다. 요즘 마인들 사이에서 연초록색 가면 마인이 크게 화제가 되고 있다고. 마인들을 공격하고 그들의 최대 거래소인 블랙마켓을 터트린 변질자로 원한을 사고 있다고.
이들 사이에 널리 퍼진 내 악명을 이용한다. 연초록색 가면 마인을 잡기 위해 투지를 불태웠다. S급 마인 밑에서 배신자를 처단하고 싶다고 열의를 담아 말했다.
“음. 연초록색 가면 마인. 또 그놈얘기로군. 빨리 잡긴 잡아야 할 텐데. 왜, 너도 그놈에게 원한이 있나?”
“하이드 길드에 저도 돈을 투자했었단 말입니다.”
“큭큭큭. 지극히 개인적인 원한이군. 큭큭큭큭. 이해해.”
황종태가 껄껄 웃었다. 하이드 길드에 돈을 투자한 마인들이 많다. 그들의 자산이 모두 재가 되어 날아간 이상, 연초록색 가면 마인에게 복수심을 품는 건 당연했다.
“넌 어디서 뭐하던 놈이냐.”
“민간인 사이에 끼어 힘을 키우고 있었습니다.”
“실력은 어느 정도 되지?”
“B급 정도 될 겁니다.”
“흠······.”
간단한 질문 몇 가지가 오갔다. 황종태는 내가 썩 싫지는 않은 모양이었다. 면접관처럼 복장, 태도, 표정, 인상 등을 차례차례 살핀다.
“실력을 한 번 보고 싶군. 어차피 네가 일성에 들어올지 말지는 성소현 님이 결정하겠지만, 그 전에 얼마나 잘 싸우는지 미리 시험해봐야겠지.”
“예. 자신 있습니다.”
“2시간 뒤. 완전한 취침시간이 되면 남들 모르게 뒤편으로 나와라. 거기서 보는 거다.”
“예.”
비밀스런 약속을 맺었다.
둘이 따로 만나 더 이야기를 나누고 내 실력을 테스트해보기로 한다.
황종태를 사냥할 기회를 호시탐탐 노리고 있던 내겐 잘 된 일이다. 거짓말로 접근했는데 이렇게 철썩 같이 믿어주니. 기분 좋게 약속시간을 기다렸다.
*
사람들의 이목을 피하는 건 쉬운 일이었다.
짐꾼인 내게 관심 있는 사람은 얼마 있지 않을뿐더러, S급에 다다른 내 기감은 다른 사람들보다 예민했다.
[행동복제]로 도마뱀의 은밀한 발걸음을 따라하며, 남모르게 진지를 빠져나왔다.
진지 뒤편에 도착하니 황종태도 이미 약속장소에 나와 있었다.
“남한테 들키진 않았겠지?”
“물론입니다.”
마인 간의 비밀 회담을 인간들에게 보여줄 순 없었다. 주변 정황을 신중하게 파악했다.
주위의 시선이 없다는 걸 느낀 황종태가 뒤돌아섰다. 이미 공략한 골렘던전 2층 지역. 그곳으로 되돌아간다.
잔존 몬스터를 사냥하며 내 실력을 테스트할 거다.
“저, 그런데 김수로 님은 안 나오는 겁니까?”
“김수로? 그놈은 왜?”
“그분도 마인 아닙니까? 절 테스트하기 위해 그분도 올 줄 알았는데요.”
황종태는 마인인 게 확실했다. 김수로에 대해서 물었다.
“그놈은 마인이 아니다. 나와 같이 있어 오해를 했나보군. 평범한 인간이야. 일성 길드 홍보에 도움을 준다기에 협력하고 있었다.”
“아, 그렇군요. 그는 마인이 아니었군요. 둘이 같이 계략을 짜길래 깜빡 마인으로 오해했었습니다.”
“큭큭큭. 인간 중에 욕심 많고 양심에 털 난 놈들이 있지. 그냥 우리에게 조력해주는 착한 인간이다. 오해하진 마라. 지금처럼 이용해먹기만 하면 된다.”
황종태는 조소를 내었다. 김수로를 착한 인간이라 비꼰다. 인간 중엔 그런 놈들이 있었다. 성격이나 하는 행동이나 마인과 다를 바 없는. 마인 입장에서 착한 녀석들.
그래도 김수로는 마인은 아니었다. 그냥 사악한 인간이었다.
나는 고개를 천천히 끄덕였다.
그 기자 놈. 인간이었구나. 그런데 뻔뻔하게 그런 일을 벌이고 있었구나.
단창의 창대를 툭툭 건드렸다.
마인이 아니어도 봐줄 생각은 없다. 몬스터를 사냥하듯 무조건 죽이지는 않겠지만, 그에 상응하는 대가를 톡톡히 치러줄 참이다.
나와 황종태는 오랫동안 함께 걸었다.
공략대원들이 있는 지역을 완전히 벗어났다.
이런 데서 활동하면 아무도 모를 것이다. 내 세상이었다.
황종태와 잔존 골렘들을 찾아 몬스터 앞에 섰다.
그가 편안하게 말한다.
“네 실력을 보여 봐라.”
던전의 문이 닫혔다. 공략루트가 파악되어 깨지 않고 지나친 빈 장소였다.
골렘, 나, 황종태만 남았다.
나는 웃으며 검을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