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7화 〉 폭탄 파티
문피아 공유방에서 작업된 소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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압축형 보관 주머니를 통해 무기는 끊임없이 나왔다.
바닥에 깔린 보자기에 3층탑을 이루고 나서야 겨우 동이 났다.
보자기는 침대 두 개를 합친 면적. 무기들은 언뜻 봐도 수백 개다.
“······.”
자리에 있는 길드원들 모두 입을 따악 벌린다.
가장 놀란 건 역시 장문혁.
그가 납품한 무기들이 이곳에 돌아왔다.
내가 마법이라도 부린 듯하다.
“이, 이걸 어떻게······.”
바닥의 무기들을 훑는다. 그가 쓰레기라고 하이드 길드에 떠넘긴 물건들. 하지만 일반인 입장에선 강력한 흉기(凶器)였다. 범죄자의 손에 넘어간 이상 장문혁이 저질러온 죄악에 가까웠다.
“제가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우리 길드에 들어오시면 무기를 전부 회수해 주겠다고.”
“그렇긴 했네만...”
“하이드 길드가 보관하고 있던 것과 블랙마켓에 유통되던 것들. 전부 쓸어 담아 왔습니다. 거의 다 회수했다고 보시면 됩니다.”
이미 누군가가 사용하고 있는 무기들은 현실적으로 가져오기 힘들었다. 그래도 물량을 고려하면 납품한 물건의 80%는 회수해온 상황. 하이드 길드가 비싸게 팔아먹으려고 워낙 귀중히 보관해뒀기 때문에, 비밀창고에서 대부분을 발견할 수 있었다.
“하······ 참······.”
장문혁은 무기들을 손으로 쓸며 회한에 잠긴다. 이것들이 얼마나 많은 피를 부를지 고민하지 않았던가.
이렇게 돌아오니 가슴속에 쌓여있던 무거운 짐이 사라져 간다.
“동대문 사태. 자네가 벌였군.”
유익현이 나를 보며 말했다. 동대문 지하 비밀상가 폭파사건은 최근 가장 큰 이슈였다.
경찰이 본격적으로 수사를 진행함에 따라 블랙마켓의 실상은 속속들이 드러났고, 사람들은 시장의 규모와 그들이 벌여왔던 범죄내용에 경악하고 있었다.
하루가 멀다 하고 관련기사가 속보로 쏟아지는 상황.
폭파가 왜 일어났는지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가장 유력한 용의자는 연초록색 가면으로 추정된다. 하이드 길드 공장 폭파와도 깊게 연관되어 있었다.
어림짐작은 했지만 이로써 확실해졌다.
내가 연초록색 가면이다. 유익현은 대번에 알아챘다.
“예.”
나는 유익현의 말을 인정했다. 손으로 가면을 복제했다. 연초록색 무늬를 넌지시 보여준다.
“대단하군.”
스스럼없이 감탄하는 유익현. 내 일처리는 깔끔하다. 지하매장을 완전히 폭파시키지 않아 지하상가가 붕괴되는 사태를 막았다. 즉, 민간인의 피해는 최소한으로 줄였다.
연기가 빠져나오게 하여 매장의 위치를 드러냈다. 수많은 헌터와 군인, 경찰들이 투입된 이상, 범죄자를 잡고 그들이 저질러온 불법행위를 파악하는 건 순식간이었다.
과격한 사태가 발생하긴 했지만, 성과가 소소한 피해를 덮을 만큼 확실하다.
호언장담했던 것처럼 하이드 길드를 완벽하게 제압하고 무기를 회수해 왔다.
“유익현 씨. 제가 가져온 건 이것뿐만이 아닙니다.”
아직 놀라긴 이르다. 내 성과는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나는 압축형 보관 주머니 3개를 더 꺼내들었다. 길드원들 옆으로 블랙마켓의 아이템을 넓게 펼쳐놓았다. 대장간의 면적이 부족해질 지경이었다.
“이, 이게 다 뭐야.”
최기철이 발 디딜 틈 없는 물건들의 향연에 소스라치게 놀란다.
“지하매장에서 같이 회수한 물건입니다. 이걸 다 길드에 양도하겠습니다. 알아서 처리해주시죠.”
현금, 보석, 마석, 기타 귀중품을 제외한 잡템들이었다. 작고 값비싼 물건들은 보관 주머니 하나에 따로 챙겼다. 한 1,000억 원 쯤 되려나.
남은 잡템들. 내가 블랙마켓에서 6,000억 쯤 썼으니까. 경매장의 물건들, 따로 챙긴 보관 주머니를 제외하면 잡템들의 가치는 총 1,500억 쯤 된다.
이걸 전부 길드에 바친다.
아깝진 않았다. 어차피 다 기억해둔 물건이라 언제든 복제해서 쓸 수 있으며, 난 최강의 헌터가 될 거니까 리테일 길드는 어차피 내 거다. 미리 투자한다고 보면 된다.
“······.”
다들 넋을 놓고 나를 쳐다봤다.
*
“형님...!”
최기철이 깊게 고개 숙여 인사한다. 원하는 아이템을 다 골라 담고 있었다. A급 마법사 지팡이도 발견하고, 각종 악세사리도 손에 쥔다. 고르고 골라도 물건은 끝이 없다. 여긴 아이템의 세상이다. 그것도 비싼 것들.
내게 경의를 표하지 않고는 배길 수 없었다.
“허얼...”
한재희는 눈을 의심하고 있었다. 이게 다 가짜라고 생각한다.
“재희야. 네 선물이다.”
난 손가락으로 다이아몬드를 하나 튕겼다. 8캐럿 다이아몬드. 블랙마켓의 귀금속매장을 쓸어 담다가 재희가 생각나서 확실하게 챙겨왔다.
“이, 이것도 가짜지?”
내가 지난번처럼 복제 다이아몬드를 준 줄 안다.
“응.”
착각하게 놔두었다.
“그럼 그렇지. 핏.”
재희가 안도한다. 짧게 미소를 짓고는, 내가 준 다이아를 가지고 노닥거린다.
험하게 다루는데, 저건 안 없어질 거다.
“이걸 다 길드에 양도하겠다고?”
유익현은 내 말을 되짚는다.
“예. 저한텐 필요 없습니다. 길드를 위해 쓰시지요. 제 작은 성의입니다.”
나는 처리하기 번거롭다고 직접적으로 말하진 않았다. 대신 최강의 헌터가 될 재목(材木)으로서 이 정도는 가볍게 쾌척하는 배포를 보였다.
“이, 이게 다 얼만가?”
“1,500억 쯤 될 겁니다. 제가 호구처럼 비싸게 돈을 쓴 걸 감안하면, 실제론 1,200억밖에 안 될 지도 모르죠.”
“컥.”
1,500억이든 1,200억이든 아무튼 엄청난 돈이다. 소형 길드 리테일의 입장에서 쉽게 만질 수 없는 거금. 유익현은 숨이 탁 막혔다.
그는 기대와 야망이 큰 남자이지만 난 언제나 그 기대 이상이었다. 홀린 듯 나를 바라본다.
"진짜 이걸 다 길드에 양도할 텐가?"
“예. 믿고 맡기는 겁니다. 길드를 위해 잘 써주시죠.”
“······알았네.”
멍하니 고개를 끄덕였다. 황망해진 얼굴로 아이템을 쳐다본다.
장문혁은 여전히 자신의 무기를 바라보고 있었다. 재물에 욕심이 없는 남자다. 다른 물건에 한눈팔지 않고 그저 자신의 죄업이 사라졌음을 기꺼이 여긴다.
“이건 3년 전에 만들었고, 이건 4년 전에 만들었지. 오, 전부 내가 만든 게 맞아...”
검을 하나 쥐고 옆면을 쓰다듬고 있었다. 그의 눈에는 자기가 제조한 흔적들이 상세하게 비춰보였다.
“자네는 정말 약속을 지켰어.”
나를 보고 말한다. 그의 표정에는 고마움과 놀라움이 섞여 있었다.
“예. 쉬운 일이었습니다.”
“허허.”
“다음 약속도 반드시 이뤄질 겁니다.”
“허허허.”
대수롭지 않다는 내 말투에 허탈한 웃음을 짓는다.
“이걸 어떻게 보답해야될지 모르겠군.”
“······.”
“이 무기들. 이건 내 아쉬운 과거와 같다네. 그걸 자네가 모두 주워 담아 주었으니 어떻게든 사례하고 싶어.”
장문혁의 눈빛에 결연한 의지가 감돈다. 내게 은혜를 갚으려고 한다. 주먹을 불끈 쥐고 일어섰다.
나는 말없이 지켜보았다. 그에게 예쁨 받으려고 물건을 회수해온 게 맞았다. 보답은 언제나 환영이다.
장문혁은 대장간 귀퉁이로 향했다. 거기서 고이 간직해둔 무기를 꺼내온다. 수건 위에 정갈하게 올려서 내게 내밀었다.
“흑철검. 자네가 원하던 검이라네. 이걸 자네에게 주겠네.”
검고 매끄럽게 빛나는 아이템을 건네준다. 그의 손에 담긴 흑철검은 공기조차 베어버릴 듯 매서운 예기를 내뿜고 있었다.
“필요 없습니다.”
“?”
나는 사양했다. 내가 거절하자 장문혁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지난번엔 그렇게 달라고 떼를 쓰더니 막상 또 준다니까 싫단다. 황당해져서 입을 크게 벌린다.
하지만 내가 거절한 이유가 있었다. 검을 써본 결과 [복제]해서 쓰는 게 더 간편하다.
[복제]스킬에 익숙해져서 이제 물건 생성과 해제가 금방이다. 실물을 들고 다니는 것보다 상황에 맞춰 그때그때 필요한 복제품을 만드는 편이 나았다. 진짜 흑철검은 필요 없다.
“마음만은 감사히 받겠습니다.”
“왜, 왜 이러는 겐가. 지난번에는 이 검이 아니면 안 된다더니. 일반 헌터소드로는 만족하지 못하겠다더니.”
“제 맘입니다.”
“······.”
단호한 내 목소리에 장문혁의 눈이 초점을 잃는다. 큰맘 먹고 자신의 보물인 흑철검을 줬는데 거절당했다.
“하.”
헛웃음 치는 장문혁. 버림받은 기분이다. 왠지 야속하다.
나는 도도하게 장문혁을 지켜보았다.
“꼭 은혜를 갚고 싶은 겁니까?”
“그, 그렇다네.”
“그게 겨우 흑철검 정도로 될 거라 생각하십니까?”
“······!”
흑철검을 ‘겨우’라 표현했다. 장문혁의 자존심을 긁었다.
“제가 당신에게 바라는 건 고작 S급 정도가 아닙니다. 이 정도 아이템을 얻기 위해 당신을 영입한 줄 아십니까? SS급이 아니면 받지 않겠습니다. 제게 보답하고 싶거든 SS급 아이템을 만들어서 오세요.”
그를 도발했다.
“절 만족시킬 만한 아이템을 만들어 보시죠. 현재 대장간에 있는 것보다 훨씬 좋은 아이템을. SS급을. 그 정도 수준이 안 되면, 전 받지도, 쓰지도 않겠습니다.”
엄숙하게 선언했다. 쓰레기 아이템은 안 받는다고, 내겐 흑철검조차 쓰레기에 불과하다고.
“······.”
장문혁은 나를 본다.
한동안 뚫어져라 쳐다보더니, 이내 마음을 굳힌 듯 호탕하게 웃었다.
“그랬어. 그랬구만, 이제야 내 검을 쓸 만한 인물이 나타났구만. 내가 여태 소리를 듣지 못한 이유를 알겠어. 철(鐵)을 위한 진정한 주인을 만나지 못했기 때문이지. 이제야 내 무기의 격에 맞는 사람을 찾았어. 알겠네, 알았어. 내 자네가 만족할 만한 무기를 제작해보도록 하지. 기필코 만들어보겠네. SS급 아이템을.”
다른 사람을 위해 무기를 만들며 제대로 된 소리를 들어본 적 없는 장문혁이다. 나를 위해 무기를 만들면 다른 소리가 날 거라 확신한다. 그의 눈빛이 자신감으로 굳어졌다.
“기대하고 있겠습니다.”
나는 살며시 웃었다.
꿈보다 해몽이라고. 흑철검 이미 복제했으니까 더 좋은 검 만들어보라고 도발했을 뿐인데, 알아서 좋게 좋게 받아들였다.
잘 된 일이다. 그는 아이템 개발에 의욕이 생겼고, 나는 흑철검을 가지고도 더 좋은 걸 받게 되었다.
*
하이드 길드 토벌 이후, 시간은 빠르게 흘렀다.
장문혁은 길드에 완전히 적응해서 전속 대장장이가 되었고, 한재희는 아카데미에 입학해서 잘 다니고 있었다. 최기철은 C급 헌터등급을 빠르게 취득하고 이젠 B급을 노리는 중이다.
유익현은 내가 양도한 잡템들을 팔고, 그 돈으로 길드를 폭풍 성장시키고 있었다. 사무실부터 옮기고 사람들을 마구 고용한다. 덕분에 길드는 하루가 다르게 팽창하는 중이다.
나는 별 거 안하고 있었다. 하루 종일 훈련루틴을 빼먹지 않고 소화하며 골렘던전을 기다리고 있었다.
가끔씩 던전을 돌거나 하이드 길드의 잔당을 잡으러 다니는 정도. 눈에 띄는 행동은 하지 않았다.
이러는 이유가 있었다.
아직 일성과 화신 길드의 S급 마인들을 잡기에는 역부족이다.
그들은 김민환, 조범재 같은 일반 마인들과는 다르다. 대형 길드에 자리 잡고 다른 마인들을 다스리고 있었다. 한국의 마인들은 다 통제하고 있다고 보면 된다. 하이드 길드도 그들이 뒤에서 봐주었기 때문에 그만큼 성장할 수 있었다.
내가 S급 마인 한 명씩은 이길 수 있다. 내 계산에 따르면 지금 내 수준은 S급 정도 될 테니까.
하지만 그들이 힘을 합쳐 덤벼온다면 이기지 못한다. 마인의 인적 네트워크는 매우 강력해서 최상급 마인 한 명이 당한다면 한국의 마인뿐만 아니라 외국의 마인까지 합세해서 나를 공격하러 올 거다.
그 모든 공격을 이겨내려면 내가 더욱 성장해야 한다.
S급으론 부족하다. SS급은 되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 성장발판으로 선택한 골렘던전.
빨리 나와 주어야 할 텐데.
나는 참을성 있게 기다렸다. 더 많은 활동을 하기 보단 내 흔적을 감추기 위해 애썼다.
그러던 어느 날.
유익현이 나를 호출했다.
“떴네. 자네가 그토록 기다리던 골렘던전. 드디어 나왔어.”
좋은 소식을 전했다.
“그렇습니까? 제 공략예약은 잘 마치셨나요?”
“그렇다네... 하지만.”
“하지만?”
유익현은 뭔가 곤란한 표정이었다.
“좋은 자리는 아니군.”
“좋은 자리라니요?”
“하필 골렘던전이 등장한 곳은 일성길드가 독점하고 있던 지역이었네. 그들이 던전공략권을 가지고 있어서 자네의 공략권을 예약하기 쉽지 않았네.”
최상위 길드들은 한국 던전관리센터와 계약해서 균열이 많이 나오는 지역을 독점하기도 한다. 임대비를 내듯이 연간 소정의 금액을 지불하면 균열독점지역을 가질 수 있었다.
골렘던전이 나온 곳은 일성길드가 모든 던전공략권을 가진 곳. 그곳에 있는 던전을 예약하려니 유익현으로서도 쉽지 않았다.
“자네는 짐꾼으로서 일성길드와 함께 던전을 공략하게 되었네. 괜찮겠나?”
“예?”
짐꾼? 오랜만에 들어보는 단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