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4화 〉 폭탄 파티
문피아 공유방에서 작업된 소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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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마켓 경매장 사무실.
김민환은 장부를 체크하고 있었다.
볼 때마다 웃음이 나온다. 오늘 있었던 경매는 대성공. 여태껏 이렇게 많은 수익을 거둬들인 적은 없었다.
경매장에서 나간 물품과 경매장에 들어온 물품을 비교한다. 값을 셈하고 오늘 얼마나 벌어들였는지 기록한다.
2,136억 원.
대부분은 그놈에게서 빼먹은 돈이다.
연초록색 무늬 있는 가면을 쓰고 있던 마인.
그가 있는 대로 퍼주어서 역대급 수익을 챙겼다.
1,500억을 그에게서 챙겼으니, 대충 셈해도 이익의 70%는 그놈 덕이었다.
‘한 잔 해야겠군.’
기분이 너무 좋아서 어쩔 수 없었다. 지금 당장 취하고 싶다. 길드원들과 나중에 파티를 벌이기로 약속했지만 먼저 자축의 시간을 갖기로 했다. 책상 서랍에서 가장 독한 술을 꺼내들었다.
뚜껑을 열어 술잔에 액체를 따랐다.
입을 벌려 안에 털어 넣고 그대로 목구멍으로 넘긴다.
‘크하.’
식도를 타고 들어가는 열기.
뜨거워지는 위장.
차오르는 전율.
취한다.
김민환은 짜릿한 기분을 만끽했다. 오늘 같은 성공을 거둔 날엔 술이 빠질 수 없었다. 그가 마신 술은 마인도 죽일만한 알코올 도수. 효과는 직통이다.
몽롱하게 풀린 눈으로 의자를 돌려 창밖을 바라봤다.
블랙마켓의 인공조명.
늘 같은 조도(照度)로 반짝이는 무심한 형광빛 아래.
익숙한 시장의 풍경이 비추었다.
유리판에 수채화 물감을 떨어트리듯 색이 번져가고.
제멋대로 경계를 침범하는 실선들이 마음껏 휘어지기 시작했다.
빙글빙글.
뱅글뱅글.
사물들은 그의 의식을 희롱하며 규칙 없이 날뛰었다.
그냥 두었다.
이성은 놓아두고 자유분방한 흥취가 번져가도록 놔두었다.
그래도 된다.
지금은 즐길 때다.
‘······.’
그러면서 흥에 차 있는데.
풍경 속에 붉은 빛이 섞여들었다.
귀를 때리는 진동음도 들린다.
우르릉, 쾅쾅.
꽈르릉, 쾅, 쾅, 쾅.
그의 의식을 강제로 일깨우는 듯하다.
블랙마켓 이곳저곳이 터져나가고 있었다.
경매장 건물조차 흔들린다.
‘하하하. 별의별 환상을 다 보는군.’
술의 도수가 제법 높았는데, 자신조차 완전히 맛이 가게 할 만큼 기운이 도나보다.
웃기는 광경을 보고 있었다.
4D 영화처럼 비현실적인 일들이 눈앞에서 펼쳐진다.
쿠르르르르르릉.
사방의 건물들이 무너졌다. 블랙마켓에 듬성듬성 빈공간이 생겨난다.
도미노 쓰러지듯 넘어지고, 연기가 자욱이 피어올랐다.
‘경치 좋군.’
김민환의 감상이었다.
쾅쾅쾅!
사무실 문을 누가 급하게 노크했다.
“뭐냐!”
김민환은 짜증스럽게 답했다. 한창 감정의 격랑에 휩쓸려 흐름을 타고 있는데, 이런 순간을 방해하니 화가 치솟아 올랐다.
“김민환 님! 김민환 님! 큰일 났습니다!”
“블랙마켓! 블랙마켓 곳곳에서 폭발이 발생했습니다!”
“아이템이 사라졌습니다! 보관해둔 아이템이 전부 없어졌습니다!”
“이걸 어떡합니까! 다들 혼비백산하여 뛰어다니고 있습니다!”
황당한 소리들이 들려왔다.
이것도 환청인가.
김민환은 흥이 싹 가셨다. 그다지 기분 좋지 않은 환상이었다.
마력을 일으켜서 혈관에 돌고 있는 알코올을 태웠다. 몸에 쌓인 독성이 가시고, 서서히 정신이 말짱해진다.
쾅쾅쾅! 쾅쾅쾅쾅!
정신을 차려도 문을 두들기는 소리는 계속해서 들려왔다.
술에서 깬 김민환이 시선을 돌려 창밖을 보니.
바깥의 풍경은 가관이다.
*
하이드 길드 비밀창고 인근.
냉랭한 바람만 휘도는 공터. 조범재는 빈손을 바라보고 있었다.
분명히 최상급 헌터소드를 주워들어 손에 쥐고 있었는데 연기처럼 빠져나갔다. 연초록색 가면 마인이 ‘땡’ 하자마자 동시에.
손가락은 흩어진 마나를 훑는다.
무슨 일이 벌어졌다.
왠지 불길한 느낌이 차올라 가면 쓴 마인을 째려봤다.
“너 무슨 짓을 한 거야.”
내가 벌인 일을 물어본다.
“너희들을 위한 폭탄 파티.”
난 손가락을 딱, 부딪치며 유쾌하게 말했다. 지금 블랙마켓에선 난리가 나고 있을 거다.
그 광경을 직접 보지 못해 아쉽지만 상상만으로도 즐거웠다.
“······?”
내 반응을 보는 조범재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뭔가를 놀리고 있는 듯한데 정확히 짚이지 않는다. 심상치 않은 분위기에 안 좋은 예감만 늘어났다.
“헌터소드가 없어졌어!”
“저 자식, 무슨 수를 쓴 거지?”
“마법사인가?”
하이드 길드원들이 소리 질렀다. 허공으로 800억 원이 날아갔다. 기쁨에 겨워하고 있었기 때문에 상실감이 더욱 크다.
위이이잉-
위이이잉-
조범재의 핸드폰이 급박하게 울려댔다.
툭.
조범재는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내 화면을 봤다. ‘김민환.’ 동료의 이름이 표시되어 있었다.
버튼을 눌러 연락을 받았다.
[그 자식······! 그 자식 만났냐······! 지금 어디에 있어!]
전화 속, 김민환은 가쁜 숨을 몰아쉬며 분노를 토해냈다. 잔뜩 힘을 주어 말한 목소리가 귓가에 울려 조범재는 잠시 핸드폰을 귀에서 떼어냈다.
“왜 그래. 무슨 일인데.”
[그 자식이 사기를 쳤다! 그 녀석이 뿌린 아이템과 돈이 전부 사라졌어! 블랙마켓이 폭파되었다! 건물이 붕괴되고 상인들이 미쳐 날뛰고 있어! 시설이 불타서 연기가 차오른다! 이런 젠장! 환풍구도 터졌군!]
김민환은 절규했다. 블랙마켓의 상황은 아비규환이었다. 지하공간에 매캐한 연기가 차올라서 다들 긴급하게 대피하는 가운데, 내가 뿌린 돈과 아이템들이 전부 없어졌다.
재물이 사라지자 상인과 범죄자들은 서로를 의심하며 싸우고, 그 와중에 살아야 하니까 블랙마켓 출구로 모인다. 유혈사태가 심심찮게 발생하고, 돈과 목숨. 자기의 것을 지키기 위해 항전하는 형태가 되고 있다.
작은 지옥도(地獄道).
김민환이 수습할 수 있는 사태가 아니다.
“진정해. 알아듣게 설명해봐.”
[그 녀석 반드시 잡아 죽여! 반드시······! 으아악, 젠장!]
한 차례 비명을 내지른 김민환이 전화를 끊어버렸다. 블랙마켓의 상황이 너무 바빴다. 유독가스가 차오르고 있었다.
“여보세요. 여보세요. 야, 야!”
조범재가 끊긴 핸드폰을 붙잡고 소리쳤다. 너무나 많은 말이 순식간에 흘러지나갔고, 내용의 절반도 이해하지 못했다.
뭔가 크게 잘못된 것 같았다.
“······.”
통화기록만 표시하는 핸드폰을 멍하니 바라봤다. 그러고 있다가, 나를 돌아본다.
“너 대체 무슨 짓을 한 거냐. 블랙마켓에서 뭔 일을 벌였어.”
죽일 듯이 노려보는 조범재. 김민환의 비통한 외침이 귓가에 계속 맴돌았다.
“파티를 벌였다.”
나는 당당하게 말했다.
*
“뭔지는 모르겠지만, 네가 죽일 놈이란 건 알겠군.”
조범재가 대검을 뽑아들었다.
“저 자식이 우리를 속인 겁니까?”
“블랙마켓이 터졌다고?”
하이드 길드원들이 핸드폰 너머로 들려온 김민환의 목소리를 되새기고 있었다.
조범재가 대검을 들어 나를 가리킨다.
“저놈 잡아라. 꽁꽁 묶어서 창고에 가둬라. 죽을 때까지 포를 떠주지. 그 안에서 네가 뭘 잘못했는지 낱낱이 밝혀야 할 거다.”
날 고문하기로 다짐했다. 하이드 길드가 적을 상대할 때 종종 사용하는 방법이다. 이들의 행각에는 자비가 없다.
“······.”
난 우선 주변부터 돌아봤다.
하이드 길드원들이 끌고 온 트럭차 한 대, 기타 중소형 차량들.
뒤에는 내가 타고 온 도준욱의 SUV 차량이 보인다.
왼쪽에는 포장도로. 드문드문 도로를 밝히는 가로등. 멀리에서부터 뻗어오는 노란색 공장조명.
이 거래장소에는 도망칠 곳이 없었다.
“뭘 보고 있냐. 도주경로라도 찾고 있냐? 그런 곳은 없다. 넌 죽었어, 이 쥐새끼야.”
조범재가 내 행동을 보더니 코웃음 쳤다.
“도망칠 데가 없다니, 잘 됐네.”
나는 웃었다. 주변에는 철조망이 쳐져 있었다. 하이드 길드가 비밀리에 거래를 할 때 사용하는 장소. 사방이 꽉 막혀있다.
안심하고 흑철검을 들어올렸다.
“······.”
하이드 길드원은 총 스물. 기세등등하게 병장기를 쥐고 접근해온다.
촘촘하게 포위망이 형성되고, 내가 이동할 수 있는 모든 방위를 둘러쌌다.
“얼마든 상처내도 좋다. 목숨만 살려 둬라.”
조범재의 진득한 명령이 떨어졌다. 하이드 길드원들이 명령에 따라 곳곳에서 날붙이를 들고 나를 찔러왔다.
파악, 서걱.
내가 흑철검을 휘두르자 맞부딪친 날붙이가 쪼개지고 길드원의 몸도 갈라진다.
팡, 푸아악.
다른 방향으로 휘두르자 그쪽도 마찬가지였다. 검이 두 쪽 나고 사람도 반쪽이 된다.
[연속 베기]
후아악.
회오리를 돌렸다. 핏방울이 사방으로 튀어 올랐다.
철도, 가죽도, 살점도, 뼈대도 모두 갈라졌다. 여기서 흑철검을 버틸만한 소재는 없었다.
“······!”
조범재의 등골이 오싹해진다. 내 주변에 접근한 모든 것이 찢어졌다.
나와 눈을 마주쳤다. 명백히 먹잇감을 바라보는 맹수의 눈. 자신의 우리에 사냥감이 들어오자 기뻐하고 있었다. 이제야 내 말의 뜻을 알아챈다. 조범재가 도망칠 곳이 없어 잘 됐다고.
불안했던 예감이 현실화되고, 확실한 사실 하나가 머릿속에 떠오른다. 자기는 여기서 도망치기도 쉽지 않다.
“씨벌. 김민환 이 새끼가...”
저런 놈을 자신의 앞에 데려다놓다니. 큰일 났다는 걸 뒤늦게 깨우쳤다.
대안은 없다. 본모습으로 변신한다. 저놈을 상대하려면, 신체능력을 대폭 강화시켜야 했다. 대검을 바닥에 떨어트리고, 변이에 신경을 집중했다.
“그아아아악······.”
조범재의 주둥이가 튀어나오며 손톱이 길게 뻗었다. 피부에서 검은 털이 솟아나오며 전신을 감쌌다.
반은 인간, 반은 족제비와 같은 형태가 되었다.
“으악! 저게 뭐야!”
“인간 의태형 특수몬스터!”
하이드 길드원들이 화들짝 놀란다. 내 공격에 의해 겁먹고 있는데 그들이 대장으로 섬기던 인간은 괴수였다. 기겁하며 주춤주춤 물러난다.
나는 조범재를 향해 달렸다. 도망치기 전에 잡는다.
“크아아악!”
조범재가 괴성을 내지르며 내게 맞서 달려왔다. 갈고리 같은 발톱을 휘저었다.
서로가 교차해서 반대편으로 지나가고, 나를 노리던 조범재의 오른팔이 땅에 떨어졌다. 흑철검에 의해 몸에서 떨어져 나왔다.
“어억!”
팔의 단면을 붙잡는 조범재. 나는 뒤돌아섰다.
흑철검을 풀고 도준욱의 단창을 만들어낸다.
마비독이 발린 단창. 마인을 사냥하는 데 제격이다.
“그으으······!”
조범재가 팔이 재생되기도 전에 다시 돌진해왔다. 족제비 마인의 특징은 지독한 공격성이다. 자기가 죽게 되더라도 그 전에 최대한 상대에게 피해 입히려 한다. 팔이라도 한 번 긁어보고 싶겠지.
나는 물러서지 않았다. 단창을 들고 다시 조범재와 부딪쳤다.
뻗어오는 왼팔. 오른쪽으로 피하며 조범재의 팔을 잡았다. 왼쪽으로 돌리며 오른손에 든 단창으로 조범재의 등을 찔러놓는다.
목덜미, 등, 허리.
팍, 팍, 파악.
연속해서 등을 찍고 뽑고 반복하자 덥수룩한 털 사이사이로 검붉은 피가 솟아나왔다. 한 바퀴 회전한 조범재의 명치에 정확히 단창을 쑤셔 넣었다.
푸욱, 그어억-
신음하는 조범재.
마비독이 몸에 침투하여 빠르게 퍼져나간다. 네 군데 구멍을 통해 혈관에 스며들어 신체조직을 장악한다.
“아아악······.”
조범재는 바닥에 곤두박질쳤다.
도준욱의 마비독은 강력하다. 아무리 그가 족제비과의 마인이어도 한동안은 움직일 수 없다.
쓰러진 조범재의 뒷덜미를 잡아 들어올렸다. 그들이 가져온 트럭에 싣는다.
“으아아악!”
뒤도 안 돌아보고 도망치기 시작하는 하이드 길드원들. 범죄자로 구성된 잡졸들이다. 놓쳐도 괜찮다. 어차피 하이드 길드가 망하면 알아서 말라죽을 떨거지들이니.
손으로 단검을 생성했다. E급짜리 일반단검. 힘 조절을 해서 적당한 빠르기로 던졌다. 그 중 한 놈의 등에 꽂힌다. 철푸덕. 단검에 맞은 놈이 고꾸라졌다.
그놈을 잡아 트럭 운전대에 앉혔다.
“보관창고로 안내해라.”
나는 조수석에 앉았다. 손에는 도준욱의 단창을 쥐고 있는 채다. 말귀를 알아먹은 범죄자가 빠르게 고개를 끄덕인다.
이건 협박하고 있는 거다. 거절하면 찌른다고.
우리는 트럭을 타고 하이드 길드의 물류보관창고로 향했다. 장문혁의 무기는 다 회수한 터다. 나머지는 터트린다. 폭탄 파티는 여기에서 이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