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1화 〉 블랙마켓
문피아 공유방에서 작업된 소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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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후.
나는 준비된 차를 타고 동대문 지하상가로 향했다.
북적북적하게 거리를 메우고 있는 차량들. 무시하고 지하주차장에 들어갔다. 계속 아래로 내려갔다.
지하 8층.
여기까지 오니 차량도 없고 사람도 없다. 조명도 꺼져있고 길도 막혀있었다.
하지만 쭈욱 차를 몰았다. 구석지고 어두운 곳에서 멈춘다.
깜빡이를 세 번 켰다. 그리고 기다렸다.
한쪽 구석에 은신해있던 직원들이 다가온다. 차량 옆에 서서 나를 쳐다본다.
나는 앞좌석 유리창을 열고 그들을 마주봤다. 연초록색 가면을 쓴 채였다. 그들도 검고 특색 없는 가면을 쓰고 있었다.
가면은 블랙마켓만의 특징이다. 블랙마켓을 이용하는 사람들은 서로의 신원을 밝히지 않는다. 철저히 정체를 감추고, 비밀리에 거래한다.
“상태창.”
그들이 내게 상태창을 요구했다. 마인이면 상태창을 보이고, 범죄자면 문신을 보이고, 상인이면 카드를 보여줘야 했다. 연초록색 무늬 있는 가면은 마인의 표시이니 내가 보여야 할 건 상태창이다.
나는 그들이 볼 수 있도록 불투명한 메시지창을 띄워 올렸다.
<이름: 도준욱>
<특성>
1. 헌신(S)
2. 희생(S)
3. 전사(A)
[*위장]
이름과 특성은 중요한 게 아니다. 마인은 얼마든지 그 내용을 바꿀 수 있다. 중요한 건 마지막 표시. [*위장]
그것을 확인한 직원들은 고개를 끄덕인다.
문을 열었다.
단조롭게 콘크리트로 이어져있던 벽이 그들이 문을 열자 통로로 바뀌었다. 흐릿한 조명과 함께 안쪽으로 깊숙이 뚫려있다.
나는 유리창을 닫고 차를 몰았다. 통로를 따라 이동했다.
도착한 곳은 형광등이 여러 겹으로 겹쳐 높이 떠있는 곳. 블랙마켓이다.
검고 고급 진 차량, 꾀죄죄한 차량, 번호판 없는 차량. 다양한 차량들이 주차되어있었다. 나도 그 사이에 도준욱의 차를 주차시켰다.
트렁크를 연다. 가볍게 마석이 든 캐리어 하나, 돈가방 두 개를 들고 나왔다.
주차지역을 벗어나니 상점이 양옆으로 가지런히 도열해 있다. 대장간 거리만한 크기다. 국내 최대의 불법거래소. 블랙마켓 거리였다.
호객하는 상인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이템 가격이 싸다구. 일반 매장보다 싸다구.”
“거기 아저씨! 단검 필요하지 않나. 여기 사람이든 몬스터든 다 썰어버릴 단검이 있는데.”
“크흐흐흐... 푸히히히...”
장관이었다. 제각기 가면을 쓴 인물들이 장사진을 이루고 있었다. 진열해둔 물품들은 체계가 없었다. 재래시장처럼 아이템, 약물, 음식물들이 널려있었는데, 종류도, 용도도 제각각이었다.
파는 사람들도 가관이다. 그저 빈정거리는 놈, 술과 약에 취한 놈, 미치광이 등 다양했다. 가면이 추한 몰골을 가려줬을 뿐이다.
나는 무기를 모아놓은 놈 앞에 멈췄다.
“그아······ 물건 사러 왔어?”
고개를 삐딱하게 돌려대며 묻는다. 술에 취했는지 발음하며 혀가 꼬인다.
“하이드 길드에서 나온 물건들. 다 내놔봐.”
본론부터 꺼냈다. 장문혁의 아이템을 회수해야 했다.
“하이드 길드? 하이드 길드. 아, 거기 꺼 많지. 여기 있다.”
상인은 대충 손에 잡히는 무기를 쓸어서 앞으로 내밀었다.
하이드 길드.
밀거래 상인들의 연합 길드였다. 마인을 주축으로 각종 범죄자들을 끌어 모은 길드이며, 블랙마켓을 운영, 관리한다. 직접 물건을 유통하기도 해서 이들이 판매한 물품도 블랙마켓에서 거래되고 있었다.
상인이 내민 더미에는 무기, 장비, 포션 기타 잡템들이 섞여 나왔다.
난 눈살을 찌푸렸다.
여기서 장문혁의 아이템을 골라내야 한다.
“쓰레기는 다 빼내. 일반 아이템보다 성능 안 좋은 건 쳐내고, 중고 아이템도 치워봐. 비싼 것만 내놔라.”
“비싼 거? 요것들이 가격이 좀 되는데.”
가면 쓴 상인은 그 중 예리한 무기 몇 개를 따로 골라놓았다.
나는 그것들을 살폈다.
[날이 잘 서있는 칼]
[내구성 좋은 방패]
[마력 친화도 높은 지팡이]
[찔리면 매우 아플 듯한 단검]
······.
대장간에서 안 만드는 것도 치우고, 구린 것도 치우고, 등급이 낮은 것도 치웠다.
이제야 장문혁이 만들었을 법한 물건이 나온다.
<써보면 감탄할 만한 단검>
―랭크: C급
―설명: 특징이 없는 단검이지만 직접 사용해보면 다른 단검보다 월등히 높은 성능을 느낄 수 있다.
―효과: 공격력 +32
C급 단검 따위가 공격력이 +32였다. 일반 C급 단검의 공격력은 +25. 압도적인 위력이었다.
‘좋아. 이건 장문혁이 만들었겠군.’
비슷하게 성능 좋은 검과 창, 방패 등을 골라내었다.
“거, 알짜배기만 뽑아가는구만.”
상인이 걸걸한 목소리로 말했다.
“이것들. 전부 합해서 얼마냐.”
“크······ 걔네들은 비싼데. 하이드 길드에서 잘 안 파는 물건이라서.”
장문혁의 무기들은 블랙마켓에서 특별취급 받고 있었다. 성능이 어마어마한 물건들이라 하이드 길드가 대부분을 독점한 채 일부만 비싸게 팔아먹고 있는 중이다.
“상관없다. 가격이 얼만지나 말해라.”
“이건 1,000······ 저건 3,000······ 저건 4,000······.”
상인 대충 눈어림으로 가격을 계산한다. 정가는 없었다. 그날그날 기분에 따라 결정되는 블랙마켓 아이템의 가격이다.
“총합 1억 2,000은 되겠네. 큭큭큭.”
말도 안 되게 높여 부른 가격. 장문혁의 아이템이 아무리 좋더라도 등급의 한계가 있는 이상, B~C급 아이템으로 1억 원을 넘기긴 힘들었다. 합리적으로 가격을 책정했으면 5,000만 원 정도. 흥정이 필요한 시기였다.
그러나 난 알고도 흥정하지 않았다. 값을 깎을 필요 없었다.
“1억 2,000이라고? 알았다.”
“엥?”
오히려 상인이 놀란다. 불평 한번 않고 순순히 가격을 받아들이는 나를 보고 헛숨을 들이켰다.
“지불은 뭐로 할까? 현금? 아이템? 보석?”
“그······ 아······ 난 현금. 현금이면 돼.”
블랙마켓은 당연하게도 불법거래소라서 카드거래가 되지 않는다. 여기서 거래할 땐 주로 현금. 아니면 아이템, 보석, 금괴 같은 현물이 쓰인다. 상인은 현금을 원했다.
나는 캐리어 위에 얹어놨던 007가방을 열어 재꼈다.
가지런히 놓여있는 돈다발들. 24묶음을 착실히 빼내서 상인의 눈앞에 두었다.
“허억...”
상인은 007가방에 차곡차곡 쌓인 지폐와 아낌없이 돈을 내어주는 나를 보고 놀랐다.
눈동자는 자연스럽게 다른 돈가방과 캐리어에 굴러간다. 저기에도 똑같이 화폐가 들어있거나 그에 준하는 현물이 들어있을 거다.
비로소 내가 엄청난 갑부란 걸 깨달았다.
“혹시 네가 가진 이런 물건들이 더 있나?”
“뭐?”
“하이드 길드에서 나온 성능 좋은 무기들. 이런 비슷한 걸 더 가지고 있다면 전부 구입하고 싶은데.”
“그······.”
상인이 필사적으로 머리를 굴렸다.
이건 엄청난 기회였다.
갑부 녀석이 하이드 길드에서 나온 아이템을 원한다. 무슨 목적인지는 모르겠지만 매우 돈이 많은 녀석이고 비싼 가격에 아랑곳 않고 사들이고 있었다.
잘만 하면 떼돈을 벌 수 있다.
“내가 더 구해올게. 전부 다 사고 싶다고? 얼마 있는데.”
내 재산을 물어본다.
나는 굳이 말로 표현하지 않았다. 말 대신 캐리어를 열어 재꼈다.
동그랗게 쌓여있는 마석들. 어림잡아도 500억은 된다.
“돈은 충분히 있다. 네가 아는 모든 하이드 길드의 아이템을 모아 와라. 이것들처럼 성능 좋고, 겉보기엔 평범한 물건들로. 이 정도 설명하면 알아듣겠지.”
내가 고른 아이템의 특징들은 상인도 봤다. 장문혁의 무기들. 그는 내가 한 말의 의미를 이해했다. 그가 가진 모든 지식과 인맥을 동원하여 장문혁의 무기를 구해오라는 뜻이다. 돈은 얼마든 지불할 테니.
“왜? 아이템을 모아 어디에 쓸 건데?”
“그런 것까지 설명이 필요하나? 다른 녀석에게 부탁할까?”
“아니다. 아냐. 내가 구해오겠다. 블랙마켓에 있는 것들 다 구해오지.”
상인은 재빨리 고개를 끄덕였다. 술기운은 완전히 달아났다. 내가 올려놓은 돈다발을 얼른 챙기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는 시간이 별로 없다. 오늘 열리는 블랙마켓 대경매가 끝나면 물건을 찾으러 올 테니 그때까지 최대한 많이 구해 놔라.”
“블랙마켓 대경매? 3시간 후에 하는 거?”
“그래. 끝나면 넉넉잡아 5시간 후가 되겠지.”
“크윽. 대경매에 참여하러 왔군.”
블랙마켓 대경매는 하이드 길드가 주최하는 블랙마켓 최대의 행사. 일 년에 두 번씩 열리는 행사로, 이때 주로 갑부들이 시중에 거래되지 않는 귀한 아이템을 얻기 위해 경매장을 찾는다. 나는 내 목적을 상인에게 알렸다.
그는 급해졌다. 경매에 참여한다면 갑부인 건 물론이고 블랙마켓에서 쉽사리 만날 수 없는 권력자일 가능성이 컸다. 거긴 수십억 원짜리 아이템만 거래하니까.
평상시엔 보지 못할 최대의 구매자가 눈앞에 있다. 상인은 빠릿빠릿하게 움직였다. 장문혁의 무기들을 찾아오기 위해.
*
비슷한 방식으로 상인 3명을 더 꼬드겼다.
이들은 이제 블랙마켓 내의 장문혁 무기들을 알아서 찾아올 거다. 시장바닥을 샅샅이 뒤지면서 가져오겠지. 호구에게 물건을 비싸게 팔아먹을 기회이니까.
내가 사용하는 지폐와 현물은 어차피 다 가짜다.
복제된 것들. 이걸 아무리 많이 퍼주어 봤자 상관없었다. 나중에 전부 마나로 돌아갈 테니.
난 여기서 돈을 많이 쓰면 쓸수록 좋다. 상인들이 내게 주는 물건은 진짜고 내가 내는 돈은 가짜. 그들에게 피해만 쌓여갈 뿐이다.
내가 1,000만 원을 내면 그들의 피해는 1,000만 원.
내가 1억 원을 내면 그들의 피해는 1억 원.
내가 10억 원을 내면 그들의 피해는 10억 원이다.
상인들은 대부분 빚을 지고 물건을 구입한다. 그 물건을 더 비싼 가격에 고객에게 되팔며 차익을 챙긴다.
그런데 고객에게 물건을 팔았더니 이놈이 가짜 돈을 사용해서 손해가 발생한다? 그게 감당할 수 없을 만큼 엄청 큰돈이다?
그럼 상인은 망하는 거다. 차익을 챙기기는커녕 원가에 의한 빚을 감당하기도 힘들다. 아주 간단한 원리로 블랙마켓 상인들은 말라죽게 될 것이다.
블랙마켓 상인들이 말라죽게 된다면 그건 하이드 길드의 피해로 고스란히 이어진다. 블랙마켓은 하이드 길드가 관리하는 매장. 여기서 복제품들로 인해 상인들의 피해가 발생한다면 그건 관리자의 책임이다. 자연스레 상인들의 분노는 하이드 길드로 향할 거고, 하이드 길드의 신용은 땅에 떨어진다. 믿고 거래하는 상인이 없으면 블랙마켓은 망한다. 블랙마켓이 망하면 하이드 길드는 망한다.
쉽게 길드를 무너트릴 수 있었다.
내 기억상 하이드 길드가 망하는 시점은 5년 후. 해태 길드와 일성 길드가 대대적인 하이드 길드 토벌에 나섰을 때다. 날뛰는 마인과 범죄자들을 잡고 블랙마켓을 적발하고 나서야 망한다.
그런데 이번 하이드 길드가 망하는 시점은 지난번보다 훨씬 앞당겨질 것 같다. 나 때문에.
여긴 내게 있어 최고의 매장이었다. 복제된 돈으로 마음껏 물건을 살 수 있다. 그리고 그건 범죄자와 마인의 몰락으로 이어진다. 아낌없이 돈을 써도 된다.
경매가 시작되는 데는 3시간이 남았다. 나는 일부러 이때에 맞춰 블랙마켓에 들어왔다. 경매에 가장 비싼 아이템이 거래되기 때문에, 가장 하이드 길드에 큰 피해를 줄 수 있기 때문에.
남는 시간동안 최선을 다해 돈을 쓰기로 한다. 돈은 넘쳐난다. 주차해둔 차량에 2,300억 원이 남아있고 필요하면 또 복제로 만들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