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5화 〉 마인 사냥
문피아 공유방에서 작업된 소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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끼에엑!
도준욱이 몸부림치며 괴성을 쏟아낸다. 피부에 초록비늘이 돋아나 리자드맨의 형태로 바뀌었다. 육성도 도마뱀의 소리가 나온다.
“죽여버린다! 인간······!”
긁히는 듯한 쉰 목소리를 내며 팔을 재생했다. 마나를 쏟자 육질이 순식간에 돋아나며 조각난 팔의 빈자리를 채운다.
내게 휘둘러오는 마비독 발린 단창.
블랙 리자드맨처럼 마구잡이로 휘두르는 게 아니다. 인간처럼 기술의 형태를 지니고 있다. 체계적인 창술(槍術).
마인이 일반 몬스터보다 까다로운 이유다. 인간과 비슷한 지능을 가지고, 인간 못지않은 학습능력이 있으며, 마력을 이용한 스킬과 기술을 사용한다.
육체는 인간보다 뛰어나 더 강한 물리공격이 가능하다. 리자드맨의 형태로 변한 도준욱은 C급 헌터를 넘어 B급 몬스터에 가까웠다.
휙, 휘익!
내가 몸을 비껴내자 창이 주위를 훑고 지나간다. 하나라도 스치면 위험하다. 당장 마비독에 당해낼 재간은 없으니.
그래도 안 맞을 자신 있었다. 도준욱과 거리를 벌리지 않는다. 적정 거리를 유지한 채, 창과 맞서며 때때로 헌터소드를 휘두른다.
“이익······!”
싸움이 길어지니 급해지는 건 도준욱이었다. 내가 만만치 않았다. 여유를 두며 창을 상대하는 게 보인다. 그렇다고 몸을 내빼 도망칠 수도 없다. 거리를 안 주고 있었다. 발을 돌릴 틈 없이 지척에서 다가온다.
나는 경사길의 위쪽, 도준욱은 아래쪽. 지형도 좋지 않다. 검과 창을 부딪치고 있으나 기술과 힘, 환경 면에서 모두 밀린다.
도준욱이 이상하게 여기는 점은, 내가 공격적으로 나오지 않는다는 것이다. 창을 막고, 피한다. 가끔씩 반격을 해오기도 하지만 그건 도준욱의 움직임을 방해하는 것이지, 해치려는 의도가 아니다.
“나를 가지고 노는 것이냐! 이 찢어죽일 놈이!”
도준욱이 분노하여 눈을 치떴다.
“맞아. 가지고 노는 거야. 그러니까 좀 더 힘내봐. 나를 더 즐겁게 해줘.”
나는 입꼬리를 들어 올리며 짓궂게 응답했다.
창을 깊숙이 찌르면 검으로 쳐내서 방향을 돌리고, 거칠게 휘두르면 막아냈다. 짧게 찔러온다면 가볍게 피해줬다.
도준욱이 나를 공략할 방법은 없었다. 오히려 내가 한 번씩 휘두른 헌터소드에 비늘이 여기저기 찢겨져 나간다.
끼에에에엑!
도준욱은 답답했다. 정말 답답했다.
내가 공격적이고 대담하게 나오면 기회가 생겼을 지도 모른다. 질긴 피부, 강한 근육, 재생이 가능한 생체를 이용해 난전으로 싸움을 이끌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냉철하게, 여유롭게, 도준욱의 공격을 흘리고 있었다. 덕분에 체력은 점점 빠지고, 상처는 늘어난다. 피부에서 흘러나와 바닥을 적시는 피의 양이 많아졌다. 진흙탕인 바닥의 웅덩이를, 새빨갛게 물들인다.
끼에엑!
도준욱은 꼬리까지 흔들며 요동쳤다. 이놈은 싸이코다. 무슨 의도인진 몰라도 자기를 철저하고 빈틈없이 봉쇄한 채로 괴롭히고 있었다.
화가 머리끝까지 차올라 열불이 터질 것 같지만 타개할 방법이 없다.
손속이 어지러워지고 다리의 힘이 풀린다.
이대로는 위험하다.
도마뱀의 본능이 깨어났다.
창을 휘두르는 척 하며, 몸을 굽혀 대가리로 들이박았다.
검에 의해 팔 한 쪽 정도는 날아가도 좋다. 그동안 주둥이로 한재복의 살 한 점이라도 씹는다면, 마비독을 퍼트릴 수 있다. 그럼 자신의 승리다.
살을 주고 뼈를 취한다는 작전.
파악.
“어딜.”
“······!”
도준욱은 믿을 수가 없었다.
한재복은 대비라도 했는지 왼손으로 자기가 휘두른 창대를 잡고, 오른손의 검으로 주둥이를 꿰어냈다.
헌터소드가 아래턱을 뚫고 위턱 가운데로 솟아나왔다. 강제로 입을 다물린 형태. 비명조차 내지를 수 없었다.
“내가 또 당할 것 같냐, 뱀 대가리야.”
무슨 소린지 이해가 안 됐다. 또 당할 것 같냐니, 언제 당해봤단 말인가.
왼손을 뻗어 마지막 저항을 했다.
그건 생존본능이었다. 필사적인 몸부림.
왼손으로 한재복의 오른팔을 잡고 스킬을 사용한다.
[마력흡수]
도준욱이 인간들을 먹고 성장할 때 사용했던 스킬이다. 마력을 빼내 자신의 걸로 만든다. 이걸로 한재복의 마력을 줄이고 자신의 마력을 늘린다면, 승산이 생길지도 모른다.
한재복이 왼손으로 도준욱의 오른팔을 붙잡았다. 복사해서 붙여놓은 것처럼 자세가 비슷했다.
[마력흡수]
도준욱의 마력이 빠져나간다. 한재복도 그의 마력을 흡수한다. 마력을 흡수한 만큼, 빠져나갔다. 마력흡수의 효과는 없었다.
“이제야 사용하는구나.”
주둥이가 헌터소드에 꿰인 도준욱. 눈동자만 간신히 내려 아래를 쳐다봤다.
한재복이 입가에 진한 미소를 피어올리고 있었다.
*
<스킬이름: 마력흡수>
―상대방의 마력을 일정비율 내 것으로 흡수합니다. 자신의 마력이 부족할수록 그 효과가 강해집니다.
[마력흡수].
[위장]과 함께 내가 도준욱에게서 빼내고 싶던 스킬이었다.
스스로 스킬을 사용하게 만들기까진 오래 걸렸다. 도망치지도, 이겨내지도 못하게 만들고 서서히 압박했으니. 기다림 끝에 결국 제 밑천을 바닥까지 드러내고 말았다.
“유용한 스킬 고맙고.”
볼일 다 본 나는 도준욱의 주둥이에서 헌터소드를 빼내었다.
파악, 끄에에엑!
초록색 리자드맨이 구멍 난 턱을 붙잡으며 피를 쏟는다.
나는 멈추지 않고 헌터소드를 휘둘렀다.
도준욱의 양 팔을 전부 끊어놓는다.
탁, 타악.
나뒹구는 도마뱀의 앞다리들.
헌터소드를 놓았다. 복제형태의 헌터소드가 제어가 풀리며 자연의 마나가 되어 공중으로 흩어졌다.
[아이템복제]로 다른 무기를 만든다.
<단창(복제)>
―랭크: A급
―설명: 도준욱이 흘린 마비독이 묻어있습니다. 상대방을 찌르면 마비효과가 추가로 발동됩니다.
도준욱이 사용하던 단창. 나도 만져서 복제할 수 있게 되었다.
오른손에 생성해낸 단창으로 도준욱의 가슴을 찔렀다.
“크헉······!”
놀란 도준욱이 반응할 틈도 없다. 창에 찔려 몸 구석구석 마비독이 퍼진다.
도준욱이 힘을 잃고 인형처럼 바닥에 쓰러졌다. 몸이 경직되어 딱딱하게 굳어갔다.
“어때? 네가 사용하던 마비에 직접 당하니, 네가 잡아먹던 인간들의 심정을 좀 알겠냐?”
나는 도준욱을 내려다보며 물었다.
“으······그······게······.”
“뭐라고?”
“자, 잘못했다. 사, 살려줘······.”
내가 몸을 숙여 도준욱의 신음을 자세히 듣자 애원하기 시작했다. 그동안 행해온 패악도 잊고 뻔뻔하게 청원한다. 자신의 목숨은 귀하게 여긴다.
흐를 듯 말 듯한 악어의 눈물.
애걸하는 마인은 쉽사리 참회의 눈물을 짜내지도 못한다.
“그런 건 네가 여태 죽였던 인간들 앞에서 고하시고.”
나는 도준욱의 애달픈 고해를 귓등으로 흘리고 몸을 일으켰다.
“네 장례식이나 기다려. 너를 처음 본 순간부터 예정해두고 있었으니.”
[물건복제]로 블랙 리자드 킹에게 사용했던 10리터 휘발유통을 만들었다.
뚜껑을 열고 천천히 마인 위에 쏟아 붇는다.
도준욱의 머리와 몸통, 꼬리와 다리에 빈틈없이 기름을 묻혀주었다.
“네 동족이랑 같이 가라.”
[파이어볼]을 만들었다.
도준욱의 위쪽에다 떨어트려 놓았다.
자세히 볼 수 있게, 두 눈 부릅뜨고 중력을 타고 내려오는 불덩이를 바라볼 수 있게, 가볍고 차분하게 흘렸다.
화아악.
불덩이는 도준욱의 몸에 닿았고, 또 하나의 불꽃을 만들어냈다.
이전 블랙 리자드 킹이 만들던 불꽃보다 작았지만 더욱 거세게 불타올랐다.
*
던전공략을 마쳤다.
불장난을 제법 많이 했던 느낌이다.
늪지대도, 리자드도, 마인도 전부 불태워버렸다.
사람 잡아먹던 던전을 깨끗이 불살라버리니 아주 홀가분하다.
얼마 안 있어 전후처리요원들이 들어왔다. 이들이 맡은 역할은 헌터들이 공략한 던전의 정리. 주로 은퇴한 헌터나 현역군인들이 이 역할을 맡는다.
“안녕하십니까. 던전에 남으셨다던 헌터분이시군요.”
“네. 안녕하세요.”
“남은 생존자, 도준욱 씨를 찾으셨습니까?”
그들이 사라진 도준욱의 행방을 묻는다.
“아뇨, 못 찾았습니다. 대신 도마뱀 몇 마리를 발견해서 처치했습니다.”
“예······.”
나는 태연하게 말했다. 그들은 도준욱을 절대 찾을 수 없다. 도마뱀 상태일 때 불태워서 재만 남았으니, 찾아도 도마뱀의 뼈밖에 없을 거다.
마인은 세상에서 완전히 지워졌다.
“야.”
“?”
“너 대체 정체가 뭐냐.”
나를 지켜보던 최기철이 물었다. 그는 나와 도준욱의 싸움을 전부 관전하고 있었다. 마인과의 혈투와 내 마무리에, 많은 충격을 받았는지 얼이 빠진 모습이다.
“정체? 말했잖아. F급 헌터라고.”
“거짓말. 너는 절대 그냥 F급 헌터일리 없어. 그리고 아까 그 인간은 뭐야. 아니, 도마뱀인가. 인간 의태형 특수몬스터인 것 같은데, 어떻게 알았어.”
아직 사람들은 마인을 인간 의태형 특수몬스터라고 부른다. 마인이라는 용어가 정립되지 않은 시기. 사람들은 모르고 있었다. 우리 안에 얼마나 많은 마인이 숨어있는지를. 그래서 특수몬스터라고 칭하고 극히 일부분으로 이해한다.
상관없었다.
사람들은 아직 마인의 정체를 몰라도 된다.
그래야 내가 맘 놓고 사냥하지.
괜히 섣부르게 마인의 정체를 밝혔다간, 더 으슥한 곳에 숨어버려서 찾기만 곤란해질 거다.
“다 방법이 있지.”
“방법? 그게 뭔데.”
“넌 몰라도 된다.”
“······.”
무뚝뚝하게 말했다. 최기철이 끼어들 레벨이 아니다. 지금 수준의 최기철은, 마인 앞에서 그냥 밥이다. 밥. 거만한 이 녀석이 괜히 마인에게 대들다가 죽는 꼴을 보고 싶진 않았다.
“아, 참고로 오늘 본 건 전부 비밀이다. 알겠냐?”
“뭐?”
“내 능력, 인간 의태형 특수몬스터 사냥. 전부 비밀로 해라. 유익현에겐 알려줘도 괜찮지만 다른 사람에게 발설하면 넌 내 손에 죽는다.”
“!”
나는 헌터소드를 쥐고 있었다.
최기철을 똑바로 바라보며 위협하자 그가 몸을 움츠렸다. 내 말의 무게를 이제야 깨닫는다.
나는 보통 F급 헌터가 아니었다. 최기철이 이해할 수 없는 능력을 사용했다. 강대한 몬스터를 해치우는 데 거리낌이 없었으며, 남모르게 인간 의태형 특수몬스터를 잡고 있었다.
최기철은 자기도 모르게 나에 대한 공포와 경외심을 갖게 되었다. 세계 최강의 헌터가 된단 말도 이젠 헛소리로 들리지 않는다.
“알아들어?”
“그, 그래.”
뻣뻣이 고개를 끄덕이는 최기철. 잘 알아들었다.
“아, 맞아. 너 왜 나한테 형님이라 안 부르냐.”
“뭐?”
“대결의 결과는 명백하게 나온 것 같은데, 언제까지 봐줘야 하지?”
“······.”
최기철이 할 말을 잃는다. 언제나처럼 급하게 변명거리를 찾던 모습과는 다르다. 내 기세에 입이 묵직해졌다.
나는 아이템 복제로 손에 단창을 만들었다. 도준욱을 찔렀던 병기. 그걸 들고 최기철에게 접근했다.
타박, 타박.
진흙을 짓누르는 발걸음소리가 들리자 최기철이 긴장했다. 내 표정과 내 손에 들린 단창을 바라본다.
나는 평온했다. 최기철이 볼 수 있도록 높이 단창을 들어올렸다.
“형님······!”
고개 숙인 최기철.
교육은 끝났다.
더는 내 앞에서 거만하게 굴진 못할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