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화 〉 마인 사냥
문피아 공유방에서 작업된 소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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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준욱.
지난 회차, 내가 일성 길드에 들어갔을 때 지긋지긋하게 괴롭히던 녀석이었다.
나보다 입사 3년차 선배인 이 녀석은. 뭐가 불만인지 다양한 트집을 잡으며 나를 닦달했다.
[노력], [끈기], [열정] 특성밖에 없던 나는 노력했다. 내가 뭔가 잘못하고 있으니 얘가 나를 괴롭히겠지.
그렇게 생각하고 선배에게 잘 보이려 노력했다.
몬스터 잡을 때도 하나하나 물어보고, 그의 지시에 맞게 행동하며. 안 좋은 일이 있을 땐 맞춰주고, 좋은 일이 있을 땐 같이 웃어줬다.
그러나 돌아온 건 냉담한 멸시.
억울했다.
내가 뭘 잘못해서 이 사람에게 찍힌 걸까. 내가 뭘 밉보여서 이 사람이 나를 싫어하는 걸까.
이유는 간단했다.
EX급 게이트가 터지고 나서 밝혀졌다.
그는 마인(魔人)이었다. 악마 마(魔), 사람 인(人).
인간과 악귀가 반쯤 뒤섞인 혼종이 나를 좋아할 리가 없었다.
모든 인간을 깔보고 있었으니.
인간 중에 특히 더 지독하게 노력하고 아득바득 애를 쓰던 내가 얼마나 하찮게 보였을까. 끈질긴 바퀴벌레를 보면 이런 심정이었을 거다.
사실을 알고 나서 이 마인 녀석을 기필코 잡아 족치려했다.
EX급 게이트가 터지고 나서 신나게 인간을 학살하고 다니던 도준욱을 찾았다.
반쯤 명줄을 끊어놓았으나 결국 놓치고 말았다. 도마뱀처럼 팔을 끊고 도망치더라.
그 이후엔 한국에서 본 적이 없었다. 그건 깊은 아쉬움으로 남았다.
그런 도준욱을 이런 자리에서 보게 되니 아니 기쁠 수가 없었다.
반가움에 미소가 절로 지어졌다.
“아. 안녕하십니까.”
도준욱이 내키지 않는 표정으로 내게 인사했다. 들키고 싶지 않아서 숨어있었으나 내가 그를 찾아냈다. 으슥한 나무 뒤에서 슬그머니 몸을 빼낸다.
“선발대이십니까? 생존자가 한 분 남아있다 들었는데, 살아계셨군요?”
“예······.”
경계하는 도준욱.
나는 친근하게 대했다.
이 녀석에겐 빼낼 게 많았다.
“C급 헌터 도준욱 씨 맞으시죠?”
“예.”
“F급 헌터 한재복입니다. 선발대 지원을 위해 던전에 들어왔습니다.”
“······.”
나는 그에게 손을 내밀었다. 웅덩이 진 곳을 쉽게 넘어오게 하기 위함이었다. 친절하게 호의를 베풀자 도준욱은 엉거주춤 내 손을 잡고 웅덩이를 건넌다.
“신원확인을 부탁드립니다. 헌터등록증 좀 보여주실 수 있습니까?”
“헌터등록증이요?”
“예. 제가 인원 구출을 위해 들어왔는데, 구출되는 분의 신원은 확실히 알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제가 먼저 보여드리겠습니다. 여기.”
나는 그에게 헌터등록증을 내밀어 흔들었다. F급 한재복이라고 어엿이 적혀 있었다. 부정등록자, 미등록자 등이 많아 헌터끼리 신뢰를 쌓으려면 헌터등록증을 제시하는 건 관례와 같은 절차다.
“······.”
도준욱은 나를 흘기며 품에서 헌터등록증을 꺼내들었다. 내게 내밀어서 보여준다.
<이름: 도준욱>
<헌터등급: C>
<특성>
1. 헌신(S)
2. 희생(S)
3. 전사(A)
“풉...”
도준욱의 특성을 보고 그만 웃음이 나왔다. 마인이 헌신, 희생, 전사라니. 특성만 봐선 누구보다 숭고하고 고결한 헌터처럼 보인다. 과거에 많은 이들이 속았지.
가소로웠다.
“?”
“커, 컥, 콜록콜록.”
나는 기침으로 웃음을 간신히 무마시켰다. 사례에 걸린 양, 입을 주먹으로 가리고 잠깐 가슴을 두드렸다.
“으음... 음. 저, 실례지만 상태창도 보여주실 수 있습니까?”
목소리를 가다듬고 물었다. 이게 본래 목적이었다.
헌터는 다른 헌터의 동의하에 상태창을 띄워 보여줄 수 있다. 그 전까진 마음대로 다른 헌터의 상태창을 볼 수 없었다. 도준욱의 상태창을 보려면 반드시 동의가 필요했다.
“왜요?”
도준욱이 눈썹을 일그러트리며 물었다. 뭔가를 캐내려고 하는 내가 의심스러운지 목소리에 짜증을 섞었다.
“별 거 아닙니다. 그냥 헌터등록증이랑 상태창이랑 특성이 같은지 확인해보고 싶어서 그럽니다. 이렇게 멋진 특성을 지닌 헌터분은 처음 봬서······.”
나는 최대한 안심시키며 말했다. 멋쩍은 웃음을 지으며 뒷목을 쓸었다.
“······.”
도준욱은 내키지 않지만 상태창을 보여준다. 내가 이래보여도 꽤 강하다는 걸 알고 있다. 블랙 리자드 킹과의 싸움을 지켜보았다. 맞서는 게 좋은 선택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이름: 도준욱>
<특성>
1. 헌신(S)
2. 희생(S)
3. 전사(A)
[*위장]
도준욱의 특성은 헌터등록증에 쓰여 있는 것과 같았다.
단 하나, [*위장]을 제외하면.
마인들이 [위장]스킬을 사용한다는 걸 알고 있으니 보였다. 나는 냉큼 [위장]을 [스킬복제]했다.
<스킬이름: 위장>
―상태창의 내용을 바꿉니다.
[위장]. 마인이 인간을 속일 때 사용하는 스킬이었다. 이 녀석들은 상태창 내용을 임의로 조작할 수 있었다. 그래서 마인인 걸 들키지 않았다. 헌터인 척, 자연스럽게 인간사회에 스며들었다.
아포칼립스가 터지고 나서 알게 되는 내용이다. 나는 마인을 발견하면 이것부터 뺏으려 했다. 앞으로 유용하게 써먹을 수단이었다.
“협조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도준욱 씨.”
예의바르게 말했다.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
“뭐야. 벌써 생존자를 찾은 거야?”
뒤편에서 나를 뒤쫓던 최기철이 도착했다. 엉기적엉기적 로브를 끌다 옆에 있는 나무를 손으로 짚고 몸을 지탱했다. 내리막길에 서있는 우리를 쳐다본다.
“응, 그렇지.”
“빠르기도 하네. 어때? 그분은 무사해?”
“그래. 아주 무사해. 어디 크게 다친 곳 하나 없지. 마력도 쌩쌩하실 거야.”
“······.”
최기철은 도준욱을 쳐다본다. 2주간 늪지에서 헤맨 대가로 옷이 넝마가 되고 자잘한 상처들이 생겼지만 혈색은 좋았다. 컨디션이 괜찮아보였다.
“아, 그러시군. 안녕하시오. 리테일 길드의 D급 마법사 최기철이우. 살아계셔서 다행이요.”
“다가오지 마.”
“?”
편히 접근하는 최기철을 내가 손을 들어 말렸다.
“도준욱 씨. 마지막으로 단창을 확인해도 되겠습니까?”
“······단창은 왜.”
“혹시 몰라서요.”
나는 어깨를 으쓱였다. 태연하게 도준욱을 보며 말했다. 그가 서서히 이상한 낌새를 느끼고 긴장하기 시작한다.
“헌터에게 유일한 무기를 달라는 건 결례가 아닌가.”
“아, 그렇긴 하죠. 그런데 던전공략도 마쳤고, 집으로 돌아가기만 하면 되는 상황 아닙니까. 그 전에 확인하고 싶은 게 있어서 그럽니다.”
“뭘 확인하고 싶은데.”
“마비독.”
“······!”
도준욱이 짧은 순간 움찔했다.
“선발대가 마비에 의해 당했더군요. 가장 대비가 철저할 때 말이죠. 아무래도 마법사와 힐러가 빠진다면 이 C급 던전을 깨긴 어렵지 않겠습니까. 파티를 붕괴시킨 근본 원인을 찾고 싶은데요.”
“어이가 없군. 그게 내 단창이랑 무슨 상관이지?”
“거기에 발랐을 테니까.”
내가 단호하게 말하자 도준욱의 얼굴이 굳었다. 이목구비가 사정없이 찌그러진다.
“이제 보니 미친놈이었군. 터무니없는 소리를 해대며 내게 시비 거는 이유가 뭐냐?”
“단창 줘보시라고요. 확인해 보고 아니면 사과할 테니.”
“······.”
나는 단창을 달라며 손을 내밀었다.
도준욱은 망설였다. 단창에 묻힌 마비독은 깨끗이 닦아낸 지 오래.
그러나 내가 하도 확신에 차서 말하자 위화감을 느끼며 물러선다. 제 딴에는 독을 확인할 방법이 있을지도 모른다.
“줘보라니까?”
“······.”
우리 사이에 팽팽한 긴장감이 흘렀다. 위에서 지켜보던 최기철도 상황이 예사롭지 않음을 느낀다.
“혹시 제가 무기를 뺏고 공격할까봐 그럽니까? 그럼 내가 먼저 헌터소드를 드릴까요? 자.”
나는 헌터소드를 들어올렸다.
도준욱을 향해 느릿하게 던진다.
헌터소드는 도준욱 앞의 풀더미에 툭, 떨어졌다.
“이래도?”
빤히 도준욱을 바라보며 도발했다.
“······알았다. 단창을 보여주도록 하지.”
도준욱은 입가를 비틀며 내게 다가왔다.
어금니를 꽈악 깨문다. 이 인간이 뭔가를 눈치챈듯하다.
확신을 가지고 자신을 추궁하고 있었다.
기회가 될 때, 창으로 찔러 죽이기로 한다. 감히 자신을 앞에 두고 배짱을 부리다니.
한재복에게 다가가기 전, 창을 등 뒤로 숨겼다.
고개를 돌리고 입을 벌려 혀끝으로 타액을 몇 방울 떨어트린다. 마비독을 창날에 묻혔다.
이걸로 도발하고 있는 저놈의 몸통을 찌를 거다. 그럼 제아무리 블랙 리자드 킹을 압도한 녀석이라도 버틸 수 없다.
도준욱이 창을 들고 한재복에게 다가갔다.
순순히 창을 한재복의 손 위에 올려놓는 시늉을 하다가.
몸을 숙이며 창을 돌려 앞으로 뻗었다.
타악.
결과는 예상 외였다.
창대는 한재복의 손에 잡혔다.
그는 내밀던 손을 빠르게 접어 찔러오는 창대를 낚아챘다.
“걸렸다. 이 도마뱀새끼. 마비독 쓰는 건 여전하구나?”
나는 창날에 묻어있는 도준욱의 침을 바라보며 웃었다.
*
“사람 잡아먹는 건 즐거웠냐? 겉으로는 희생하고 헌신하는 전사인 척 하며, 리자드들과 함께 생존자를 사냥하는 건 재밌었지?”
도준욱의 패턴을 밝힌다.
선발대에 섞여 C급 특수던전에 들어왔다. 나가지 못하는 던전이다. 도준욱이 활동하기엔 제격이었다.
그는 리자드 계열의 마인. 몬스터들과 뜻이 통한다.
마법사와 힐러들부터 몰래 제거했다. 파티가 리자드 무리와 싸우느라 정신없을 때 옆에서 마비독으로 찔렀다.
화염계 마법사를 1순위, 힐러들을 그 다음 순위로 제거했다.
파티를 블랙 리자드 킹 앞으로 이끌었다. 대충 싸워대며 리더가 죽는 걸 방치했다.
그 이후로는 사냥과 축제의 시간이었다. 리자드들과 내통하여 생존자들을 하나씩 잡아먹었다.
아마 내가 나타나지 않았으면, 후발대에게도 이 짓거리를 똑같이 반복했을 거다.
일성길드가 와서 블랙 리자드 킹을 잡을 때까지. 인간의 마력을 흡수했겠지.
그 다음엔 일성길드에 지원한다. 던전에서 조금씩 헌터들을 사냥하고, 길드에서 유망한 인재들을 견제한다. 마인들과 협조하여 인간사회에 해악을 끼치다가, EX급 게이트가 터지면 본색을 드러낸다. 마족들의 선두에 서서 인간을 해친다.
전형적인 마인의 행동이다. 마인 같고, 마인스럽다. 내가 아는 마인의 평균이었다. 도준욱은.
여기서 만나니 기분 좋은 일이다. 미래에 저지를 수많은 만행을 일거에 차단할 수 있으니. 크나큰 기쁨이었다.
[행동복제]
톼아악!
내 입에서 블랙 리자드 킹의 산성액이 튀어나왔다. 창을 붙잡힌 도준욱의 머리와 몸통을 뒤덮는다.
푸시시식!
“끄아아악······!”
산성액이 살갗을 태우자 도준욱이 끔찍한 비명을 내질렀다. 입에서 공격이 나오리라곤 상상조차 못했다. 아무런 대비도 없이 당했다.
옷과 겉피부가 녹고, 비늘이 드러난다.
도마뱀의 비늘. 도준욱의 피부안쪽에 꺼슬꺼슬하게 덮여있다.
“그렇지. 넌 이런 모습이 어울려. 사람도 아닌 것이 사람의 형태로 움직이는 게 얼마나 보기 역겨운데.”
얼굴과 상체부위가 타들어갔다. 인체의 외형을 이루던 부분은 사라지고, 도마뱀의 매끄러운 대가리와 비늘로 이루어진 피부만이 남는다.
“너······ 너 이 자식!”
도준욱이 고통에 의해 발작하며 파충류의 일자형 눈을 치떴다. 더 이상 본모습을 숨길 순 없었다.
눈앞의 인간을 찢어 죽이고, 지켜보는 마법사를 제거하고, 던전 밖으로 도망치기로 한다. 어디 숨어서, 인간의 피부가 재생하길 기다릴 것이다.
팔을 들어 한재복을 향해 뻗었다. 어느새 도마뱀의 앞발로 변한 팔은, 피부도 종잇장처럼 찢어발길 날카로운 발톱을 지니고 있었다.
[아이템복제]
내 손에서 헌터소드가 생겨났다.
이전에 도준욱 앞으로 던진 헌터소드와 똑같은 검이었다.
검을 상단으로 휘둘러, 뻗어오는 도준욱의 앞발을 갈라놓는다.
파악, 투둑.
검에 베인 손목이 떨어져나갔다. 땅바닥에 구르며 파충류의 피를 쏟는다. 그 모습은 묘하게 지난 회차, 도준욱이 버리고 간 팔이 바닥을 굴러다닐 때와 닮아있었다.
나는 그걸 보며 감상을 말했다.
“이번엔 못 도망친다.”
다짐했다. 절대 놓치지 않을 거란 다짐. 두 번은 실수하지 않을 거란 약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