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화 〉 블랙 리자드숲
문피아 공유방에서 작업된 소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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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손에서 피어올라 뻗어나간 불덩이.
2m짜리 검은 도마뱀에게 명중했다.
화르륵.
꿰에에엑!
블랙 리자드가 불타오른다. 질긴 등껍질에 불덩이를 맞고 기겁하여 몸체를 까뒤집으며 발버둥 친다. 늪지 물에 몸을 비벼 불을 꺼버리려 하지만 검은 비늘에는 불에 대한 내성이 없다. 불길이 번져 금세 새빨갛게 물든다.
푸욱.
나는 검을 내리꽂았다. 불에 당해 꿈틀거리는 도마뱀의 목덜미를 찔러 숨통을 완전히 끊었다.
······.
주위는 비로소 잠잠해진다.
그러나 더 크게 반응하는 인간이 있었다.
“뭐······ 뭐······ 뭐야, 너 뭐야 방금.”
최기철이 놀라서 숨조차 제대로 쉬지 못했다.
“파이어볼. 파이어볼 아냐? 파이어볼 쓴 거야 너?!”
내 양 어깨를 붙잡고 흔든다. 마법사치고 꽤나 적극적이고 과격했다. 그렇다고 냉철하고 이성적이지 못하다고 욕할 건 없었다. 어떤 마법사라도 이 광경을 보면 최기철처럼 놀랐을 테니.
“응. 그런데?”
난 왜 당연한 걸 물어보다는 듯 태연하게 답했다.
“네가 어떻게, 네가 어떻게 파이어볼을 써?”
“배웠으니까.”
“누구한테! 아니 그보다··· 넌 특성에 마법 관련된 것도 없잖아. 어떻게 파이어볼을 쓸 수 있어!”
최기철의 크게 치켜뜬 눈이 닫힐 생각을 않는다. 그만큼 놀라서 날 붙잡고 있었다.
일반적으로 특성에 마법 관련 호칭이 들어있어야 마법스킬을 사용할 수 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마법사]이고, 그게 아니어도 [마녀], [현자], [주술사] 등 마법과 관련된 요소가 조금은 존재해야 했다.
그런데 특성이라곤 [노력], [끈기], [열정]뿐인 놈이, 빤히 마법스킬을 사용하고 있었다. 마법사로서 자부심이 한가득인 최기철이 발작하듯 따진다. 유다를 발견한 기독교인처럼 격렬하게 반응했다.
‘너와 1:1로 싸울 때 스킬을 [복제]했으니까.’
나는 [스킬복제]로 파이어볼을 배웠다. 그러나 머릿속에 있는 말을 굳이 밖으로 꺼내진 않았다.
“노력, 끈기, 열정 무시하냐. 마법도 쓸 수 있어.”
진지하고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복제] 특성은 최대한 감춰놓을 생각이다. [복제]가 밖으로 드러나버린다면 일반 헌터들이 내게 스킬을 뺏기지 않기 위해 기술을 숨길 거다. 결코 바람직한 일이 아니다.
또한 마인을 상대하는 것도 문제가 된다. [복제]에 대해 안다면 그에 대비해 수많은 방편을 짜놓을 테니. 그런 마인들과 싸워 전투 난이도를 높일 생각은 없었다. 특성을 감춰 내 장점을 최대한 살린다.
“노력, 끈기, 열정 특성으로 마법스킬도 쓸 수 있다고?”
“그래. 노력하면 다 가능해.”
덕분에 뜻하지 않게 노력 예찬론자가 되었다. 노력하면 다 된다는 무책임한 소리는 과거 내가 제일 싫어하는 말이었지만 상황이 이렇게 되었다. 뭐 어쩌겠는가. 예전 특성도 이용할 수 있으면 이용해먹어야지.
“너... 그 특성 사기 아니냐.”
최기철은 영혼이 빠져나간 듯한 얼굴이다. 내가 마법을 사용할 줄은 꿈에도 상상 못 했다. 그것도 하필 화염마법.
“내가 잘못 본 건가.”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눈을 끔뻑거렸다. 마법이 이렇게 배우기 쉬운 건가. 마법사로서 자존심이 와장창 깨져나간다.
나는 그런 최기철에게 대놓고 스킬을 한 번 더 써줬다.
[파이어볼]
불덩이는 선명하게 어둠을 밝히고 훨훨 하늘을 날았다.
*
“이런 씨! 이런 젠장! 말도 안 돼! 이런 재능충 자식!”
최기철이 어찌나 억울한지 발로 땅을 걷어찼다. 참방, 참방. 늪지의 물이 반발하여 거칠게 튀어 올랐다.
“야. 물 튄다. 하지 마라.”
“이, 이익······!”
내가 말리자 더욱 분노하여 쳐다본다. 벌레들의 울음소리만 차오르는 밤. 저렇게 시끄럽게 굴면 몬스터들이 듣고 찾아올 거다.
“그래도, 그래도 대결은 내가 이긴다. 내가 보통 마법사인 줄 아냐? 무려 명석(S) 특성이 있는 천재마법사다. 그깟 파이어볼 좀 흉내 낸다고 나를 뛰어넘을 순 없어.”
“그러냐.”
“파이어볼은 화염 마법 중 기초 중의 기초. 대결은 내가 유리하다.”
최기철은 이를 악물었다. 속성빨로 자기가 이길 거라는 생각은 사라진 지 오래. 이렇게 된 이상, 고급 마법으로 승부를 보기로 한다. 저놈이 아무리 노력한다 하더라도 설마 [파이어 블레이즈]나 [추적화염포]처럼 복잡하고 어려운 마법도 사용할까.
그러나 그 생각도 얼마 안 가 산산이 부서졌다.
한재복과 최기철은, 늪지대 더 깊숙한 곳까지 들어가자 몬스터들을 한 무더기로 만났다. 블랙 리자드는 물론이고 인간처럼 생긴 블랙 리자드맨도 나타났다. 창과 방패를 든 지능적인 적들이었다. 강력한 화염마법이 아닌 한 상대하기 버거웠다.
최기철은 [파이어 블레이즈]를 사용했다.
한재복도 [파이어 블레이즈]를 사용했다.
최기철이 [추적화염포]를 썼다.
한재복도 [추적화염포]를 썼다.
전투가 지나간 늪지대는 불꽃으로 가득 찼다. 블랙 리자드고, 블랙 리자드맨이고 통구이가 되어 말라붙은 나무들과 함께 타올랐다. 전장은 불지옥처럼 변했다.
“너 뭐냐...”
배경이 아무리 불타고 있다 하더라도 이 남자의 심정만큼은 아닐 거다.
최기철이 한재복을 보며 이젠 놀라다 못해 체념한 듯한 신음을 냈다.
“효과 좋네.”
나는 만족했다.
이게 화염계열 마법이구나.
내가 사용한 마법이 세상을 불태웠다. 타오르는 배경이 이렇게 화려하고 짜릿할 줄은 몰랐다. 마법사들은 이런 뽕을 마시고 살고 있었구나.
지형지물이 바뀌는 전능감이다. 광역스킬은 배경 자체를 바꾼다.
콧대 높던 마법사들이 이해가 안 됐는데 직접 해보니까 알겠다. 고등 생물이 된 듯 즐겁다.
“네가 어떻게··· 어떻게 [파이어 블레이즈]도 쓸 수 있어!”
최기철이 두 손으로 머리를 감싸며 절규한다. 바로 뒤에서 갈대가 불타고 있는데 뜨겁지도 않나보다. 나는 붉은 배경으로부터 빠져나와 안전지대를 확보했다.
“[추적화염포]도······ [추적화염포]도······.”
자기가 본 장면이 잔상으로 남나보다. 내가 썼던 스킬들을 되뇌며 허공을 훑는다.
“나와라, 일단.”
나는 최기철의 팔을 붙잡고 불더미 밖으로 끌었다. 저러다 잿더미에 맞아 데일 것 같다.
“너 뭐야, 내가 뭔데 화염마법을 써.”
최기철은 다른 건 잘 안 보이나보다. 불똥이 튀든 말든 내 얼굴만 보면서 얘기했다.
“노력하면 된다니까.”
나는 소탈하게 웃으며 말했다. 대답해줄 건 따로 없었다.
“노력··· 하······.”
최기철이 땅이 꺼져라 한숨을 내쉬었다. 내 노력 만능론에 어처구니가 없나보다. 담배를 한 번에 열 개비는 핀 듯한 얼굴로 말한다.
“너 사실 특성 [마법사] 아니냐. [노력], [끈기], [열정]은 가짜고.”
그럴 듯한 추론이다. 하지만.
“너도 봤잖아. 내가 검을 쓰는 걸.”
“그, 그럼··· [검사]하고 [마법사] 둘 다 있는 거 아냐?”
“주먹도 썼는데.”
“[검사], [마법사], [전사].”
“······.”
나는 대답대신 한심하다는 표정으로 쳐다봤다. 최기철은 내 눈빛을 읽고 고개를 수그렸다. 자기가 생각해봐도 스킬에 맞춰 특성을 갖다 붙일 뿐인 억지였다.
마음이 착잡해지는지 어깨가 늘어졌다. [거만] 특성을 지닌 최기철이라기엔 많이 좌절한 모습이다.
“내가 아무리 [거만] 특성이 있어도··· [노력], [끈기], [열정]한테 지다니··· 아무리 연습에 게을렀어도··· 마법사도 아닌 헌터에게 마법으로 따라잡히다니···.”
자신의 삶을 되돌아본다. 회한이 차오르고 만감이 교차한다.
하긴, 그럴 만도 했다. 자기가 자랑하던 모든 기술을 상대가 똑같이 사용하니. 심지어 내기까지 걸린 상황이다. 1:1로 이길 수 없으니 속성마법만 믿고 싸움을 걸었는데 전부 소용없어졌다.
지난 회차까지 통틀어 이렇게 풀죽은 모습은 처음 본다. 보다 못한 내가 작은 위로를 건넸다.
“그래도 네가 아직 이길 방법은 있어.”
“?”
“넌 마법사잖아. 마력은 나보다 많을걸.”
최기철이 고개를 들었다. 내 말을 곰곰이 생각해본다. 얼굴에 한 줄기 희망의 빛이 떠올랐다.
*
블랙 리자드 숲. 깊은 곳.
D급 특수던전을 클리어하러 온 선발대는 초라한 모습으로 야영하고 있었다. 힘겨운 얼굴로 모닥불을 바라보는 그들은 말도 꺼내기 힘들만큼 지친 상태였다.
20명 중 6명밖에 안 남은 인원. 오랜만에 찾아온 휴식시간을 조용히 맞이한다.
어찌하여 이렇게 됐을까.
D급 헌터 송예진. 머리카락이 덕지덕지 눌러 붙은 얼굴로 멍하니 타오르는 불꽃을 바라보다 생각에 잠겼다. 그동안 선발대에 있었던 절망적인 일들을 떠올렸다.
처음 기세는 나쁘지 않았다.
D급 특수 던전을 깨기 위해 모인 파티였다. C급 헌터 둘에 D급 헌터 다섯, E, F급 합쳐서 13명이 붙었다. 일반적인 D급 던전을 깰 수 있는 스무 명의 적정인원이었다.
특수던전이라 나가지 못한다는 점을 제외하면 걱정할 건 없었다.
블랙 리자드에 대한 대비도 단단히 했다.
아이템에 불속성 인챈트도 했고 화염계열 마법사도 데려왔으며 힐러도 3명이나 있었다.
문제는 첫 전투부터 화염계 마법사가 당한 거다. 블랙 리자드, 블랙 리자드맨과 싸울 때 멋모를 기습에 당했다. 마비되어버린 마법사는 리자드맨의 창에 찔렸고 싸움이 끝나고 보니 회생 불가능한 상태였다.
그 다음은 힐러였다. 전투 때마다 힐러가 한 명씩 죽어나갔다. 마법사의 화력이 없어진 파티는 리자드 무리를 제압하는 데 오래 걸렸고 녀석들은 힐러를 주로 노렸는지 싸움이 끝나면 한 명씩 쓰러져 일어나지 못했다.
결국 파티는 전투를 서둘렀다. 오래 끌면 안 된다고 생각하여 블랙 리자드 킹을 찾아 늪지 깊은 곳으로 용감하게 돌진했다.
블랙 리자드 킹은 강했다. 리자드 무리와 함께 있는 4미터짜리 리자드맨은 C급 헌터의 방패를 뚫고 파티 리더의 심장을 찔러냈다.
그 다음부턴 패배의 연속이다. 리자드맨을 피해 생존에 급급하며 늪지 이곳저곳으로 도망 다니고 있었다.
불을 피우는 게 위험한 건 알지만 어쩔 수 없다. 체온도 급속히 떨어져 옷이라도 말려야 한다. 바람 앞에 촛불 같은 운명. 6명밖에 안 남은 파티원들은 생기가 없었다.
“온다.”
유일하게 남은 C급 헌터. 도준욱이 단창을 들며 말했다.
송예진은 급히 상념에서 깨어났다.
일행은 숲속을 보았다. 까맣고 음울한 숲을 배경으로 검은 그림자들이 움직이고 있었다.
“내가 시간을 끌 테니 도망쳐. 어떻게든 살아남으라고. 이제쯤 이변을 눈치채고 후발대가 지원을 올지 몰라. 조금만, 조금만 더 버티자.”
몇 번을 반복했는지 모른다. 그는 최전방에 남아 파티원들을 지키고 있었다.
아마 C급 헌터로서 파티의 붕괴를 막지 못한 책임을 지는 거겠지.
송예진은 그의 희생이 고마우면서도 안타까웠다. 이런 노력이 빛을 발해야 의미가 있건만, 후발대의 지원이 있어야 하건만.
기약 없는 기다림이었다.
“아무리 당신이라도 이젠 죽을지도 몰라요.”
“선두의 다섯 마리. 저 다섯 마리만 처치한다. 그때까지 최대한 멀리 도망쳐. 곧 따라갈 테니.”
“······.”
도준욱은 어두운 표정으로 창대를 굳게 다잡았다.
도준욱을 제외하면 D급 하나, E급 넷이 남은 파티. 이번에도 슬금슬금 후퇴했다. 오래 말 못하고 그의 뜻에 따른다. 생존만이 그들의 남은 목표니, 말다툼하느라 시간을 지체하지 않았다.
송예진은 파티원들과 처량하게 후퇴했다.
몇 시간을 또 걸었을까.
길을 막는 리자드들과 사투를 벌이고 있는데 한쪽에서 불꽃놀이가 펼쳐졌다.
불의 축제였다. 사방을 시원하게 불태운다.
꾸이이익-
몸이 불타고 있는 리자드들이 도망쳐왔다. 그 뒤를 쫓는 헌터 하나.
리자드의 목 깊숙이 헌터소드를 박아 넣는다.
꿱.
검을 뽑아든 그가 송예진을 쳐다봤다. 크게 동요가 없는 눈. 리자드를 해치우고도 아무런 감흥이 없다. 익숙하게 다음 목표를 찾는다.
“······!”
눈을 마주치고.
“생존자이십니까?”
그가 물었다.
“크하하! 너 이번엔 마력 딸리는지 마법 몇 번 못쓰더라? 역시 마법사와 일반 헌터는 보유 마나량이 상대가 안 되지. 크하하하하!”
그 뒤로 왠지 신이 난 듯한 마법사 하나가 따라왔다.
뜻밖의 구원자들을 만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