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화 〉 마법사와의 대결
문피아 공유방에서 작업된 소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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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 골머리를 앓고 있는 던전이 하나 있긴 한데...”
유익현이 까슬까슬한 턱수염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책상에 있는 여러 던전 파일 중 하나를 꺼내들었다.
“자네가 정말 이걸 해결할 수 있나?”
“무엇입니까?”
확신하지 못하는 표정으로 바라보는 유익현.
나는 자신 있게 말했다. 현재 한국에 터진 A, S급짜리 대형 균열은 없었다. 상식적인 조건이면 다 내가 해결할 수 있다.
“블랙 리자드숲. 특수던전이라네. D급에 불과하지만 아직 해결되지 않고 있지. 이상하리만치 공략이 오래 걸리고 있어. 자네도 알다시피 특수던전은 한번 들어가면 공략이 끝날 때까지 나올 수 없지 않나. 그래서 선발대가 공략에 성공했는지 실패했는지 모르는 상태로 기다리고 있는 상황이라네.”
“······.”
“대형길드에서 지원 병력을 투입하겠다곤 하지만 그렇게 되면 늦지. 이미 투입된 인원의 생존을 보장할 수 없어. 거기에 우리 길드에서 보낸 용병들도 끼어있어서 골치 아픈 입장이야.”
특수던전. 일반적인 형태의 던전과 다르게 던전 안이 필드로 구성되어있다. 안에 들어가면 어떤 지형이 나올지 모른다. 드높은 설산일지, 장대한 바다일지, 황량한 사막일지. 임의의 장소가 형성되어 있었다.
이 던전이 더욱 성가신 건 한번 들어가면 공략을 마칠 때까지 못 나온다는 점이다. 들어갈 순 있어도 나올 순 없다. 그래서 보통 특수던전의 위험도는 일반던전보다 한두 단계 높게 평가된다.
D급 특수던전에 입장한 선발대가 안 돌아온다. 용병들을 중개해 던전에 보낸 리테일 길드도 곤란해졌다.
‘그럴만하지.’
블랙 리자드숲. 기억난다.
지난 회차에 짐꾼으로 열심히 일하다가 우연히 뉴스로 봤다. 이 특수던전은 선발대뿐만 아니라 B급과 C급이 투입된 후발대마저도 잡아먹는다. 일성 길드가 나서고 나서야 겨우 해결되는 던전이니 이 시점에 공략이 이루어질리 없었다.
리자드계열 던전은 인기가 없다. 도마뱀들은 잡기 어려운데 반해 잡아봤자 질 좋은 마석을 떨어트리지도 않는다. 게다가 특수던전이니 고급인력들이 거들떠보지 않았다. 더 효율 좋은 던전들이 넘쳐나는데 굳이 위험하게 이런 던전에 들어갈 이유는 없었다.
위험에 처한 헌터들을 구하고 대한민국 미공략 균열을 책임지는 초일류기업 일성이라면 모를까.
지금은 중소길드에서 선별한 수준 낮은 헌터들만 투입되어 개미지옥처럼 변해가는 실정이다.
“예. 제가 해결하겠습니다.”
이 던전의 보스로 뭐가 나온다고 했더라. 블랙 리자드 킹?
그렇다면 최대 B급에 해당하는 몬스터다. 충분히 해볼 만하다.
유익현은 물끄러미 나를 쳐다보았다.
“무리하진 말게. 자네가 아무리 대단한 헌터라 하더라도 이제 각성한지 3개월밖에 안된 초심자일 뿐이니. 위험하다 판단되면 생존자 구출만 신경 쓰게나. 후발대가 투입될 때까지.”
“염려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제가 던전을 깨버리고 오겠습니다.”
“······.”
유익현은 대답하지 않았다. 아직 내 실력을 정확히 모른다. 최기철을 가뿐히 압도했으니 C급 이상은 될 거라 짐작하지만 섣불리 나서다 개죽음 당할지도 모를 일이다.
이게 리테일 길드에서 하는 내 첫 실적 증명이 될 거다.
*
“오빠. 거기 위험한 데 아냐? 가도 괜찮은 거야?”
길드를 떠나 집으로 돌아오는 길. 재희가 걱정스레 묻는다.
“응. 대비는 철저히 해놓을 테니 괜찮을 거야.”
나는 고개를 천천히 끄덕이며 답했다.
재희가 걷다가 걸음을 멈추고 나를 쳐다본다.
“오늘 되게 이상한 날이야. 각성도 하고, 길드도 들고, 오빠가 싸우는 것도 구경하고, 처음 보는 길드장이랑 세계 최고의 길드를 만들겠다는 소리도 듣고······.”
시선을 바닥에 두고 중얼거렸다. 생각이 정리되지 않을 때 나오는 재희의 습관이었다. 막 뭐라 떠들기는 하나 혼잣말인지 내게 하는 소린지 구별이 되지 않는다.
“잘 모르겠어. 뭐가 뭔지······.”
하루 만에 너무 많은 일이 일어났고, 많은 것이 변해서 혼란스러워하고 있었다. 헌터가 되어 기쁘긴 한데, 오늘 본 오빠의 모습이 낯설어 당황스럽기도 하다. 자기도 헌터가 되면 저렇게 변하나 싶다.
“재희야.”
“응?”
“맛있는 거 먹으러가자.”
헌터가 된 걸 축하하는 김에 고기도 사먹고 비싼 아이스크림 가게에서 후식도 챙겼다. 재희의 복잡한 마음을 달래는 가장 좋은 방법이다. 그녀의 고민거리는 아이스크림과 함께 머리에서 사르르 녹아내렸다.
길드 계약과 아카데미 입학 준비나 완벽하게 시켜주었다.
이튿날.
나는 D급 던전을 클리어하기 위해 리테일 길드로 나왔다. 그런데.
“나도 같이 간다.”
“?”
최기철이 옆에 붙었다. 리테일 길드 사무실에서 나를 기다리기라도 한 듯 내가 도착하자마자 지팡이를 들고 따라왔다. 짐도 두둑이 챙겨놓은 걸 보니 준비 단단히 한 모양이다.
“D급 특수 던전을 깨러 간다고 했지? 나도 같이 갈 거다.”
“왜요.”
나는 퉁명스럽게 물었다. 혼자 던전을 깨려하는데 이상한 녀석이 붙었다.
“이 건방진 자식. 네가 나를 이긴 줄 아냐? 승부는 이번 것이 진짜다.”
“그게 무슨 소립니까.”
“1:1은 네가 이길지 몰라도 던전 공략은 내가 한참을 앞선다. 마법사와 검사의 1:1대결은 원래 마법사가 불리해. 마법사의 공격은 광범위해서 다수의 적을 상대하는 데 특화되어있지만 검사의 공격은 단일대상을 목표로 하기 때문이지. 내게 처음부터 불리한 대결이었다. 헌터면 헌터답게 사냥으로 우열을 가리자.”
“······.”
듣다 보니 자기가 진 이유를 1:1이기 때문이었다고 변명하고 있었다. 지난번 싸움을 무효로 하고 재대결을 청한다.
“그건 무슨 억지입니까. 저는 분명 1:1로 대결하자고 했었는데요.”
“야. 1:1이. 무조건 싸움만 1:1이냐? 사냥대결도 1:1이다! 난 절대 진 게 아니야!”
얼굴이 붉어져서는 씨근덕댔다. 자기가 진 걸 순순히 인정하지 않으려한다. 쓸 데 없는 자존심.
“추한데······.”
“뭐, 뭐라고? 너 뭐라고 했어! 다시 말해봐!”
내 본심이 걸러지지 않고 흘러나왔다. 최기철의 귀에 고스란히 들어갔는지 발끈하며 소리친다.
“절 따라오면 후회할 겁니다.”
“뭐라?”
“D급 특수던전이 만만해보이십니까? C~F급 헌터들 20명이 파티를 이루어 나섰는데도 공략의 조짐이 없어 추가 인원을 투입하는 상황입니다. 괜히 대결이랍시니 절 따라오셨다간 뼈도 못 추리실 겁니다.”
‘거만(B)’ 특성답게 상황파악 못하고 나대는 최기철을 보며 경고했다.
“그래서 그렇다네.”
내 말에 대답한건 지켜보던 유익현이었다.
“이번 던전은 쉽지 않아 보이네. 자네 둘이 힘을 합쳐 같이 클리어하게나. 둘 다 일단은 리테일 길드 소속. 던전에서 같이 사냥하며 화해하고 우애도 쌓고 좋지 않나.”
이게 유익현의 의도였다.
혼자 가면 위험할 테니 둘이 함께 보낸다.
유망한 리테일 길드원 둘의 친목도 도모한다.
“던전 공략권을 사들인 길드에도 그렇게 말했네. D급에다 보조로 F급을 하나 딸려 보낸다고. F급 한명만 추가병력으로 보낸다면 누가 허락하겠나. 사정상 어쩔 수 없는 일이기도 하네.”
블랙 리자드숲은 중형 길드가 던전관리센터로부터 공략권을 사들인 던전. 리테일 길드에게 용병을 지원받고 있는 중이다. 값비싼 A급인 유익현이 나서지 못하고 값싼 D급과 F급인 우리가 선별된 이유였다.
“그렇다면 알겠습니다.”
F급 신분이 문제였다면 인정해야했다. 같이 가는 수밖에.
“큭, F급. 넌 나 아니었음 던전도 못 들어갔어.”
최기철이 깐족거렸다.
“······.”
나는 입을 다물었다. 다시 대결하길 원한다면 다시 이겨주면 그만이다. 던전을 도는 김에 최기철 교육 한 번 더 해야겠군.
*
<던전 정보>
-이름: 블랙 리자드숲
-난이도: D급(특수)
-공략조건: 블랙 리자드 킹 처치.
균열에 입장하니 던전에 대한 정보가 떴다. 헌터들만 볼 수 있는 정보. 상태창에 메시지로 나온다.
“블랙 리자드 킹 처치라... 이거 잡는 사람이 이기는 거다.”
최기철이 메시지를 보고는 내게 말했다. 나와 같이 들어와서 대결에 주력한다.
나는 고개를 설레설레 가로저었다.
“방해나 하지 마라.”
“뭐? 어? 너 방금 뭐랬어. 나한테 반말했냐.”
최기철이 놀라서 나를 쏘아봤다.
“네가 계속 말 낮추는데 내가 존댓말 쓸 이유가 있나?”
“어? 어? 이 어린놈의 자식이, 지금 형 앞에서.”
“형은 무슨.”
나는 눈가를 찌푸렸다. 회귀한 걸 감안하면 내가 오히려 형이다. 이미 30대 후반에 다다른 유익현에게나 예의를 갖추었지 이런 놈에게까지 꼬박꼬박 존댓말 써줄 이유는 없다.
“버릇없네. 싹수가 노란 자식이, 어디 감히 동방예의지국에서.”
도끼눈을 뜨고 쳐다보는 최기철. 웃기는 놈이다. 동방예의지국 운운하는 녀석은 나를 처음보자마자 반말하고 깝죽거렸다. 전형적인 내로남불. 나는 목을 옆으로 꺾었다.
“존대를 받고 싶으면 너부터 존대하던가. 맘에 안 들면 한판 뜰까?”
헌터소드를 치켜 올리며 말했다.
“뭐? 뭐?!”
최기철이 화들짝 놀란다. 그러고 보니 이 자리엔 나와 자기 자신밖에 없었다. 언제든 1:1이 가능한 상황.
“이 씨, 씌박.”
“?”
“이번 한번만 참는다.”
화를 다스렸다. 싸우면 내게 또 깨질 것 같다.
“대결이니 뭐니 사람부터 구해. 선발대의 생존이 우선이다.”
“그걸 누가 모르냐. 그것과 별개로 대결의 규칙을 정하자는 거다.”
“야, 최기철. 너 정말 네가 나를 이길 거라 생각하냐.”
내가 정색하며 바라보자 최기철이 움찔했다.
“마법사는, 1:1이 전문이 아니라, 대규모 전투가 전문이며, 특히 몬스터 사냥에 일가견이 있어서······.”
딴 곳으로 시선을 돌리며 대결이 가능한 이유를 읊어댄다.
자만심이 두려움을 뛰어넘었다. 내게 기세를 압도당한 상태에서도 입은 죽지 않는다. 나는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 그렇게 대결을 원하면 받아주지. 대신 내가 이기면, 더 이상 덤비지 마라. 네가 나를 형님이라 불러. 알겠냐?”
“뭐, 뭐? 널 형님이라 부르라고?”
“싫으면 지금 싸우든가.”
“아, 그건 안 되고······ 그렇담 내가 이기면 넌 나한테 잘못했다 싹싹 빌어라. 무릎 꿇고 이마를 땅에 박아. 꼬박꼬박 존댓말 쓰는 것 잊지 말고.”
“알았다.”
나는 최기철의 대결신청을 받아줬다. 이 정도 조건이면 됐다. 이 주제파악 못하는 마법사에게 위아래를 알려주기 적절했다.
대결 보상을 정하고 이동했다.
사바박, 사박.
리자드숲. 밤 배경에 회색 수풀들이 넓게 펼쳐져 있다. 기다란 풀대가 무릎에 스치며 으슥한 소리를 낸다.
도마뱀들은 이러한 환경에서 느닷없이 기습해온다. 위험한 던전이다.
“크크크. 넌 크게 실수한 거다.”
내 뒤를 따라오고 있던 최기철이 음산하게 웃었다.
“블랙 리자드들이 가장 무서워하는 게 뭔지 아냐? 바로 불이다. 불.”
신나서 속삭인다.
“화염계열 마법공격에 특히 약하지. 내가 괜히 자존심 죽여 가며 이 던전에 따라오고 네게 승부를 건 게 아냐. 바로 이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리자드 사냥으로 대결하면 절대 질 수 없지.”
발목은 물가에 닿았다. 환경은 늪지에 가까워졌다.
“난 화염계통 마법사다. 상성상 블랙 리자드 킹도 쉽사리 사냥할 수 있어. 넌 크게 실수한 거다. 이 F급. 건방지기만 하고 지식이 부족한 애송아.”
시끄러웠다. 늪지의 벌레들보다 성가시게 지껄였다. 나는 무시하고 걸었다.
파아악-
경계하던 몬스터가 나타났다. 블랙 리자드숲의 도마뱀. 2m 길이 파충류가 꿈틀거렸다.
<몬스터 정보>
-이름: 블랙 리자드
-등급: E급
-설명: 질긴 비늘과 강한 악력이 특징. 검으로 베기 어렵다.
등껍질이 탄탄해 보였다. 검날이 잘 박히지 않는 몬스터였다. 그래서 난 검 대신 손을 뻗었다.
[파이어볼]
최기철의 스킬을 복제하여 화염계열 마법을 쏘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