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화 〉 마법사와의 대결
문피아 공유방에서 작업된 소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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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최기철>
<헌터등급: D>
<특성>
1. 마법사(A)
2. 명석(S)
3. 거만(B)
최기철은 재능 있는 화염계열 마법사 헌터였다. 다만, 특성에서 볼 수 있듯 성격에 약간 문제가 있었다. ‘명석(S)’ 특성이 붙어 똘똘하고 배움이 빨랐지만, ‘거만(B)’ 특성 때문에 남의 말을 귀담아듣지 않았다.
사람을 지나치게 무시하고 깔본다. 그가 대형 길드에 들지 못하고 소형 길드에 불과한 리테일에 머무르는 까닭은 이러한 성격 때문이었다. 어딜 가나 시비를 불러일으키기 때문에, 유익현이 아니면 제어가 안 됐다.
지난 회차에서 나와 자주 맞붙었다. 내가 뒤늦게 리테일 길드에 합류했을 땐 최기철은 이미 길드의 실세로 자리 잡고 있었고, 내게 자꾸 시비를 걸어와서 몇 번이고 싸움을 벌였다. 정말 귀찮게 굴었다.
그래서 일부러 최기철에게 1:1로 싸우자고 말한 거다. 어차피 이놈과는 앞으로도 맞붙게 될 테니. 처음부터 기선을 제압한다.
“뭐? 뭐라고 했냐? 나랑 1:1로 붙자고?”
“예. 제가 최강의 헌터가 될 거란 걸 믿지 않으시니, 실력으로 보여드려야지요. 각성한지 3개월에 불과한 제가, 당신을 이긴다면 좀 증명이 되겠습니까?”
최기철이 눈을 치켜떴다. 나를 잡아먹을 듯이 노려본다.
“어린놈이······ 너 내가 만만하게 보이냐?”
이 마법사는 내가 어리다고 무시한다. 하지만 내 나이는 실질적으로 36세. 회귀한 걸 감안하면 이놈보다 한참은 형이다. 거들먹대는 최기철이 지금 26세에 불과하니, 10년은 더 살았다.
“네.”
고민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개의치 않으며 최기철을 살살 도발했다.
“싸가지가 없네. 헌터가 된지 얼마 안 돼서 그런가? 요새 F급들은 다 이렇게 간이 배 밖으로 튀어나왔어?”
“그럼 직접 한 수 지도해주시겠습니까? 선배님.”
머리를 양옆으로 꺾으면서 목을 풀었다. 지난 회차부터 질긴 악연이다. 최기철은 아포칼립스가 터지고 얼마 안 돼서 죽는다. A급 실력이라고 몬스터 앞에서 깝죽거리다가 개죽음 당한다. 거기에 휘말려 리테일 길드원도 여럿 죽었지.
내가 길드를 물려받게 된 가장 큰 이유였다. 차기 길드장으로 유력한 최기철이 주제를 모르고 나대다가 죽었다. 길드에 크나큰 손실을 입힌다. 남은 인원 중에 제일 믿음직한 내가 길드장으로 선출된다.
‘앞으로 문제를 일으키기 전에 지금 미리 교육시켜주마.’
주먹을 움켜쥐고 속으로 굳건히 다짐했다.
“어떠냐, 최기철. F급 헌터가 도발하는데, 한번 겨뤄볼래?”
유익현은 말리지 않았다. 내 실력이 궁금한지 마법사를 보챈다. 그의 입장에선 누가 이기든 상관없었다. 최기철이 이기면 길드원이 이겨서 좋고, 내가 이기면 최기철이 져서 좋았다.
‘거만(B)’ 특성을 가진 최기철은 주기적으로 자만심을 눌러줘야 했다. 이번에 F급에 불과한 내게 지게 된다면 자아성찰의 시간이 찾아올 거다. 한재복이 D급 실력을 가진 F급 헌터라는 소문을 알고도 굳이 최기철에게 알려주지 않았다.
“형님. 말리지 않는 겁니까? F급 헌터가 D급에게 덤비는 데요? 하, 나 참. 좀 심하게 다뤄도 뭐라 하지 마소.”
최기철은 유익현을 보더니 콧방귀를 뀌었다. 평소 싸움을 중재하던 그가 이번 싸움은 방치한다. 한재복이란 어린 것이 단단히도 마음에 들었나보다. 후회하지 말라고 미리 경고했다.
“대결에 동의하시는 겁니까?”
이전에 최기철이 말했듯 던전 밖에서 헌터끼리 전투는 양측의 동의가 필요하다. 난 그걸 재차 확인했다.
“그래, F급. 네가 그렇게 원하면 붙자. 세계 최강의 헌턴지 세계 최고의 길든지 그딴 헛소리를 다시는 지껄이지 못하게 제대로 발라주마.”
최기철이 사무실 구석에 치워둔 마법사 지팡이를 꺼내들었다.
*
사무실 근처. 공용 대련실. 헌터들을 위한 대전 시설을 빌렸다.
경기장엔 방어막이 쳐져 주변 시설물을 보호한다.
“재희야. 헌터가 싸우는 건 처음 보지? 잘 봐둬. 검사가 마법사를 어떻게 상대하는지 보여줄게.”
응원 나온 재희에게 말했다. 얘는 헌터들이 싸우는 걸 처음 본다. 매일 TV나 인터넷에서 던전공략방송을 시청할 수 있지만 일반인이 실제 전투장면을 목격하기란 쉽지 않았다. 이번 기회에 검을 다루는 모습을 직접 보여주도록 한다.
“오빠. 정말 이길 수 있는 거지? 저 마법사는 D급 헌턴데, 오빠는 F급 헌터고.”
재희가 걱정 어린 눈으로 나를 올려다본다. 상식적으로 내가 이기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 헌터등급은 던전공략실적과 승단테스트를 통해 매겨진다. 갓 각성에 성공한 F급이 D급의 마법사를 이기리라곤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걱정 마. 내가 질 거라면 싸움을 걸었겠어? 절대 지지 않아.”
난 여유롭게 웃었다. 그냥 싸워도 이길 텐데, 심지어 나는 지난 회차의 기억으로 최기철이 어떤 마법을 사용하는지 알고 있었다. 지고 싶어도 지기 힘든 싸움이다.
“형님. 참 짓궂수다. 이거 나 망신 주는 거 아니오? F급 상대하라고.”
최기철은 유익현 앞에서 투덜거렸다. F급 헌터와 대결이라니, 여기까지 와서 보니 웃음만 나온다.
사무실에서 겁 없는 놈이 설치길래 대련실까지 끌고 와서 보니까 어처구니없는 상황이다. C급에 가까운 마법사인 자기가 F급을 상대하고 있을 입장인가. 중학교 2학년이 초등학생을 상대하는 것과 같다. 어이가 없어 기가 차다.
“방심하지 마라. 저 헌터는 그냥 F급이 아니다.”
“나랑 장난하시우? 그냥 F급이 아니라니, 그럼 F+급이라도 된답니까, F급이 F급이지 방심하고 말고 할게 뭐가 있수.”
유익현이 주의를 줬음에도 최기철은 비아냥거리기만 했다.
“뭔가 믿는 게 있으니까 대결을 신청했겠지. 무시하다간 큰 코 다칠 거다.”
“네~ 네. 잘 알겠수다.”
최기철은 어깨를 으쓱였다. 대충 걸러듣고 지팡이를 손에 쥔 채 앞으로 나섰다.
대결장. 나와 최기철은 마주본다.
“야. 노력, 끈기, 열정. 내가 너처럼 겁 없이 기어오르는 놈은 처음 본다. 사실 원래 특성이 깐족, 오만, 허세 아니냐. 내 특성이 ‘거만’이어도 너만큼 나대고 다니진 않았다.”
최기철은 한쪽 눈을 찡그리며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로브주머니에 왼손을 집어넣고, 오른손으로 지팡이를 까닥거리며 말한다.
“내가 한 손으로 상대해줄게. 그럼 너와 나의 차이를 알겠지. D급 헌터는 F급이 아무리 발버둥 쳐도 이길 수 없어. 특히 나처럼 천재마법사는 건드리지도 못한다.”
“마음대로 하세요. 한 손을 쓰든 두 손을 쓰든, 어차피 제가 이길 겁니다.”
“하, 자식. 아프다고 울지나 마라.”
최기철이 지팡이를 들어 올려 나를 가리켰다.
[매직 미사일]
대결이 시작되고, 마법사의 가장 기초적인 스킬이 내게 쏘아졌다. 최기철의 지팡이 앞에서 마력 화살이 생겨나며 내 심장을 노렸다. 보호구를 착용하고 있기에 치명적인 공격은 아니다. 내 반응을 확인할 뿐인 가벼운 목적.
헌터소드를 부드럽게 휘둘렀다.
경로를 예상이라도 한 듯 매직 미사일을 쳐냈다.
“꽤 하는데? 여유 있네.”
최기철은 제법이라 평가하며 다음 스킬을 캐스팅했다. 지팡이에 마력을 모으고 스킬을 발동한다.
[파이어볼]
타오르는 불덩이가 생성되었다. 지팡이 끝에서 터져 나온 불타는 공. 주변 공기를 뜨겁게 태우며 내게 접근했다.
비끼듯이 공격 범위에서 벗어났다. 스탭을 밟아 피하는 동작을 최소화했다. 지체 없이 앞으로 뛰쳐나갔다.
최기철을 향해 헌터소드를 휘두른다.
[실드]
급히 펼쳐내는 마력 결계. 내 헌터소드와 부딪쳤다.
카아앙!
유리가 긁히는 소리가 나며 내 공격을 막은 최기철의 상체가 흔들렸다.
[연속 베기]
검을 들고 회전했다. 3번의 공격을 연속해서 꽂아 넣었다.
콰직, 콰직, 파앙!
최기철이 형성한 실드가 깨진다. 예상보다 강한 공격에 마법사는 눈을 부릅뜨며 주춤주춤 뒤로 물러난다.
양손을 높이 들어 실드를 다시 만들었다.
“두 손 다 쓰네요?”
나는 웃으면서 검으로 실드를 툭툭 두드렸다. 강하게 타격하지 않았다. 더 공격할 생각 없었다는 듯 느릿하게 노크했다.
“이 자식이!”
그제야 최기철은 자신의 모양새를 확인한다. 화들짝 놀라서 두 팔을 번쩍 들어 올리며 실드에 마력을 쏟아 붓고 있다. 한 손으로 이겨주겠다는 말을 벌써부터 어겼다.
웃음거리가 되었다는 걸 깨닫고 인상을 찌푸렸다.
“봐주니까 까부는구나! 이제부터 제대로 상대한다!”
다리를 벌리고 자세를 낮추며 지팡이를 치켜 올렸다. 온몸으로 마나를 모은다. 아까와는 확연히 달라진 태도.
[파이어 블레이즈]
지팡이에서 화염이 폭포수처럼 터져 나왔다. 분수쇼를 펼치듯 주위를 잠식해나간다. 불의 꼬리가 몇 가닥 줄기가 되어 사방을 덮쳤다.
휙- 휘익-
나는 가뿐하게 피해냈다. 요새 훈련을 지독하게 했더니 몸 상태가 괜찮아졌다. 마력만 충분하다면 A급 헌터시절처럼 움직임을 낼 수 있다. 이런 공격 피하는 건 식은 죽 먹기.
불길 하나 내 몸을 스치지 못했다.
“뭐야, F급 헌터 맞아?”
최기철은 이제야 이상함을 느낀다. 싸움에 능숙함은 물론이고 신체능력 또한 F급 답지 않게 뛰어나다. [파이어 블레이즈]는 싸움을 마무리 짓기 위한 공격이었는데 아무런 피해 없이 흘려냈다.
“젠장!”
침을 꼴깍 삼켰다. 쉽지 않은 싸움이 될 것임을 직감한다. 지팡이를 두 손으로 잡고 눈앞에 올리며 집중했다.
[추적화염포]
최기철이 가진 비장의 기술이다. 불꽃 폭탄이 상대를 따라다닌다. 이 스킬 때문에 최기철은 마법사가 상대적으로 불리하다는 1:1에서도 진 적이 없었다.
상대를 반드시 맞춰내니 두려울 것이 무에 있는가. 강하고 깊은 마력을 담아 피할 수 없는 공격을 쏘아내면 되는 것이다.
푸화아아.
2m의 불덩이가 빠르게 피어올랐다. 붉은 궤적을 그리는 포탄이 되어 내게 쏘아져 왔다.
몇 발자국 움직여봤다. 불꽃의 기세는 죽지 않는다. 경로를 비틀며 나를 정확히 목표삼아 덮쳐온다.
피할 수 없다.
그럼 깨부순다.
헌터소드에 마력을 모았다.
침착하게 불꽃을 쳐다봤다.
마법이 이루어진 형태를 확인한다.
과거, 스킬 없이 노력만 하던 나는 이 방법으로 A급에 올랐다. 마력의 구성을 읽는다. 약한 부위를 찔러 파훼한다.
검을 뻗었다. 마법을 흐트러트릴 충분한 마력을 담았다. 검으로 찌르고, 갈라냈다.
쿠아앙!
불꽃이 터진다.
최기철이 힘껏 마나를 모아 날렸던 화염포는 내 검에 찔려 형태를 잃었다. 폭발해서 경기장 곳곳으로 흩어졌다.
“······!”
최기철이 경악한다. 눈이 튀어나올 듯 번쩍 떠졌다. 어떻게 대응하나 했더니 검으로 공격을 파괴해버린다. 최상위급 헌터들만 가능하다는 기예(技藝). F급 헌터가 무리 없이 펼쳐낸다.
나는 다리의 흔들림을 견뎌냈다. 충격파에 의해 대기가 요동친다. 지면을 굳게 디뎌 버티고 최기철을 향해 몸을 돌렸다.
마나를 다시 모으기 전에 검을 휘둘렀다.
카앙.
최기철이 급히 형성해낸 실드. 부실하다.
화염포를 사용하고 다음 스킬을 준비하지 않아 대응이 늦었다.
[강타]
주먹을 뻗었다. 허약한 실드를 박살내버렸다.
“흐억!”
실드가 깨져나가자 몸을 뒤흔드는 마나의 충격에 최기철이 뒤로 쓰러졌다.
볼품없이 엉덩이를 바닥에 찧었다. 팔꿈치로 간신히 상체를 받친다.
스윽.
내 검이 천천히 쓰러져있는 최기철의 목으로 향했다. 나는 최기철의 어깨 위에 헌터소드를 가져다대며 말했다.
“제가 이겼습니다. 인정하시죠?”
“······.”
최기철은 바로 답하지 못했다.
지금 상황이 믿기지 않는 듯, 눈만 크게 뜨며 입을 뻐끔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