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화 〉 사전 작업
문피아 공유방에서 작업된 소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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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리테일 길드가 필요하다. 중개업을 하는 작은 길드가 아닌 유익현과 유익현이 끌어 모을 인재들이 필요하다.
유익현은 길드 운영 면에서 최고의 능력을 가지고 있다. 인재를 보는 안목을 타고났으며 헌터 관리와 배치, 편성··· 등등 모든 방면에서 특출나다. 길드를 관리하는 데 이 사람보다 적합한 매니저는 따로 없었다.
그가 앞으로 데려올 운영팀, 행정팀, 관리팀 등의 인원들을 고려하면 세계 최고의 길드를 만들기 위해선 유익현부터 반드시 영입해야 한다.
과거, 이전 회차의 리테일 길드는 대단했다. S급 헌터 한 명도 없이 대한민국 3대 길드 못지않은 실적을 거뒀다. 균열관측, 규모측정, 대응체계 설립 과정이 모두 철저했다. 빈틈없이 완벽한 길드시스템을 구축해두었다.
3대 길드와 동급으로 인정받지 못한 까닭은 전력(戰力)이 부족해서였다. S급 헌터라곤 내가 합류할 때 일성 길드에서 데려온 힐러 한 명이 전부였으니, 3대 길드에겐 최상급 헌터 인재풀에서 늘 밀렸다.
이젠 아니다. 내가 리테일 길드에 합류하고, 세계 각지에서 S급, SS급 헌터들을 모아 올 테니, 이 길드는 세계 최고로 거듭난다.
자신만만한 얼굴로 유익현을 바라봤다.
“······.”
사무실에선 정적이 흐른다. 내가 한 폭탄발언이 이런 흐름을 만들었다.
잠시 후.
“하하하하! 얘 뭐야? 개그맨인가? 방금 대표를 달라고 하지 않았어?”
마법사가 낄낄 웃었다.
‘오빠 이상해······.’
재희가 걱정스런 눈으로 바라본다.
“······.”
유익현은 내 눈을 직시하고 있었다. 눈싸움을 하듯, 서로를 파악한다.
<이름: 유익현>
<헌터등급: A>
<특성>
1. 검사(A)
2. 신중(S)
3. 관리(S)
내가 아는 유익현의 특성이다. 아무리 허무맹랑한 소리를 읊어놔도, 일단 신중하게 생각한다. 내 얼굴을 보고는 마냥 농담이 아니란 걸 깨닫는다.
“야, 너 뭐야? 헌터야? 아님 재벌집 자식인가? 나이는 어려 보이는데, 길드 인수하겠다고 한 거지 방금?”
마법사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책상 옆으로 다가와서 나를 구경한다.
“길드 인수를 이런 자리에서 말해? 뭐, 계약서는 가지고 있어? 돈은 있고? 세계 최고의 길드? 어디서 영화라도 보고 왔냐.”
평범한 내 행색을 보고 비웃는다. 어린놈이 말장난 한 걸로 이해한다.
나는 마법사를 무시하고 유익현을 계속해서 보았다. 살짝 입가에 미소를 머금었다.
이 남자는 거친 포부를 좋아한다. 소심하고 옹졸한 계획보다는, 광대하고 무모한 계획을 선호한다. 첫 인상은 썩 나쁘지 않았다. 나란 인간을 완벽히 머릿속에 각인시켜놓았다. 이제 증명해줄 차례다.
“믿기 힘드시겠죠. 아무런 근거도 없이 이런 말을 늘어놓으니, 제 신상정보를 봐도 아무것도 나오지 않을 겁니다. F급 헌터니까요.”
유익현이 고개를 내려 거래신청서에 나온 내 개인정보를 읽는다. F급 헌터 한재복이라고 또렷하게 적혀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각성한지 얼마 안 된 길드조차 없는 초보헌터. 근본 없는 놈이다.
“직접 증명해드리겠습니다. 제 말이 하나씩 차근차근 실현되는 걸 보여드리겠습니다. 그럼 믿으시겠죠.”
나는 두 팔을 들어올렸다. 손바닥을 열어 앞으로 내밀며 자신 있게 웃었다.
*
“형님. 저 말을 믿는다고요? 그냥 미친놈이 아니우? 제정신 아닌 F급 헌터. 뭘 믿고 각성석을 사용하는 겁니까?”
마법사 최기철이 유익현 옆에서 길길이 날뛴다. 유익현은 내 말을 부정하지 않았다. 일단 내 말대로, 재희의 각성석 검사를 실시하도록 한다.
“뭐. 전부 헛소리여도 손해는 없지 않나. S급 특성이 없다면 2,000만 원을 지불하고 돌아가기로 약속했으니.”
계약서를 작성했다. 일반적인 각성석 거래계약서지만 재희가 S급 특성을 갖고 있다면 길드에 가입한다는 조건을 추가했다.
“건방지지 않습니까. 자기가 최고의 길드를 만들 거고 대표 자리를 원한다느니, 어린놈이 장난이 지나칩니다.”
“쯧. 건방지기론 너만 하겠냐. 그 일에 관해선 나중에 따로 얘기하기로 했으니 지금은 평범하게 각성석 검사만 신경 쓰면 된다.”
유익현은 한재복에게서 무언가를 느꼈다. 특별하다. 뭐라 설명할 순 없지만 그가 가진 직감이 알려주고 있었다. 한재복은 평범한 헌터가 아니라고.
요새 들려왔던 괴소문도 한몫했다. D급 실력을 가진 요상한 F급 헌터가 있단다. 처음 던전에 오자마자 홉고블린을 사냥했단다. 그 소문의 주인이 한재복이었다. 유익현은 단순한 우연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한재복이 했던 제안은 진심이다. 근거는 천천히 알아보기로 했다.
첫 번째는, 그가 호언장담했던 것처럼 한재희가 S급 헌터의 잠재력이 있느냐부터.
강제 각성 준비가 끝났다. 각성석에 마력주입기기를 이용해 마나를 쏟아 붇는다. 저것에 노출되면 한재희는 각성할 거다.
“오빠······.”
재희가 각성석을 앞두고 긴장한다. 얼떨결에 자신이 각성하는 것이 내가 걸은 제안의 첫 번째 증명이 되었다. 확신이 없는 얼굴로 망설인다.
“가. 얼른 각성하고 와.”
나는 아이스크림 심부름 보내듯이 편안하게 말했다. 재희를 각성석 앞에 밀어 보냈다.
“이거 아픈 건 아니지?”
“응. 잠깐 빛만 쐬면 끝나. 오래 걸리지도 않아.”
“알았어...”
재희를 달랬다. 그녀는 내 얼굴을 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내 자신 있는 표정을 보고 안정을 되찾았다.
“시작합니다.”
유익현이 각성석 작동기의 스위치에 손가락을 올려다놓으며 말했다. 마력충전은 끝났으니 버튼만 누르면 된다. 강제 각성이 진행된다.
재희가 유익현을 쳐다봤다. 준비를 마치고 시작해도 된다는 신호를 보냈다.
신호를 확인한 유익현이 작동버튼을 누른다.
우우웅······.
검은 각성석이 내부로부터 밝게 빛났다. 마석의 결에 따라 파장이 뿜어져 나오며 가까이 있는 재희의 몸을 비췄다.
······.
다들 조용히 지켜보았다. 각성이 진행되는 순간이다. 일생에 한번 있을까 말까한 순간을 보면서 자연스레 마음이 경건해진다.
후우웅······.
각성석에서 나오는 빛이 재희에게 옮겨진 듯했다. 재희의 몸에서 빛이 밝게 뻗어 나왔다. 회색빛으로 짙게 물든다.
“오.”
지켜보던 마법사 최기철이 탄성을 흘렸다. 각성에 성공할 때 나타나는 현상이다.
저 회색빛이 머리와 심장, 단전에 모이면 각성이 마무리된다.
“······!”
재희가 눈을 떴다. 각성이 끝났다.
“우와, 진짜 머릿속에 알림이 울리네.”
짧은 감상을 말한다. 신기한지 자기 몸을 두리번거리며 변화를 살폈다.
“뭐라고 하는데?”
내가 물었다. 각성자마다 첫 각성 시 머리에 울리는 알림은 다르다. [축하합니다]부터 [도와주세요], [당신을 응원합니다] 등등 처음에 받는 메시지는 특별하다.
재희가 지난번 각성할 때 받은 문장은 [든든한 방패가 되어주세요.]였다.
“[세계를 지켜주세요.]라는데?”
재희가 기쁜지 몸을 들썩이며 말했다. 춤이라도 출 기세다. 흥분을 감추지 못한다.
“우와, 나도 헌터가 됐어! 와, 완전 신기해. 와······.”
“······.”
나는 마음껏 웃지 못했다. 내용이 바뀌면 안 되는데, 강제 각성이라 그런가. 특성에도 변화가 생기면 안 되었다. 유익현을 쳐다보며 물었다.
“특성 검사결과도 나왔습니까? 무슨 등급이죠?”
유익현은 각성검사측정기를 보고 있었다. 보통 각성을 실시하는 곳엔 이 기기도 하나씩 마련되어있다. 각성자의 특성과 등급이 표시된다.
“자네 말이 맞았군.”
유익현이 검사결과를 보여주었다.
<이름: 한재희>
<특성>
1. 단순(S)
2. 무식(A)
3. 전사(S)
‘이게 무슨 일이지.’
결과가 지난번보다 오히려 좋아졌다. 단순(A)에서 단순(S)로 등급이 높아졌다. 등급은 무조건 높을수록 좋다. ‘단순’처럼 성격에 관한 특성이어도 등급이 높으면 마력성장수치가 높아지니, 기존보다 더 좋아진 결과였다.
‘강제 각성. 보다 이른 시기의 각성이라 그런가.’
지난 회차와 달라진 게 있다면 각성 시기와 미리 운동하며 체력을 길러왔던 점이다. 그게 결과에 영향을 미친 듯하다.
‘잘 됐네.’
모든 일이 지난 회차와 똑같을 순 없다. 내 사소한 행동 변화가 세상에 다른 인과관계를 만든다. 그게 어떤 형태의 나비효과를 불러올 지는 인간으로서 예측 불가능한 영역이다.
기왕 변화가 생긴다면 좋은 쪽으로 바뀌었으면 좋겠다. 결과가 좋으면 상관없다.
“축하한다. 한재희, 너도 이제 어엿한 헌터야.”
표정을 풀고 웃으며 여동생을 축하해줬다. 나중에 맛있는 거라도 사줘야겠다. 공부 일찍 때려 치더니 헌터등급은 더 좋아졌다.
“아하하, 헷헷.”
재희가 쑥스러워하기도 하고, 으쓱이기도 하며 방긋방긋 웃어댔다.
*
“허, 이럴 수가. 진짜 말처럼 되다니.”
유익현은 놀라서 흥분하며 넥타이를 흔들어 풀었다. 젊은 청년이 객기 어린 소리를 하길래 한번 들어줬더니 결과는 대성공이다. S등급 특성을 지닌 헌터가 탄생했다.
직업특성에 S가 붙은 헌터는 귀하다. 전사(A), 마법사(A) 등등 직업특성에는 최대 A까지밖에 등급이 안 붙는다. 그 이상의 등급인 S, SS가 붙은 헌터들은 타고난 천재라 불리며 국가와 길드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았다.
잘만 성장시키면 한국에 열 명도 안 되는 S급 헌터를 보유하게 된다. 믿기지 않는 상황에 넥타이를 쥔 손을 벌벌 떨었다.
“형님? 진짜 S급이우? 진짜? 참으로?”
최기철이 유익현 옆에 다가와 각성결과측정기를 직접 눈으로 확인한다. 결과는 유익현이 보여준 것과 같았다.
“저 여자애가 진짜 S급이 된다고? 와 이거 참······.”
“하하하하하하······.”
최기철은 머리를 기웃거렸고, 유익현은 실성한 듯 웃었다. 받아들이기 힘든 결과다. 그래서 몇 번이고 확인해도 같은 값이었다.
“자네 말이 맞았네. 계약에 따라 각성비는 제외해주겠네. 빨리 재희 양의 길드가입을 진행하지.”
재빨리 길드가입신청서와 관련 서류를 준비한다.
“뭐해 인마. 빨리 펜 가져와.”
마법사의 등을 밀어 서류를 작성할 필기구를 챙기라 닦달했다.
최기철은 얼빠진 얼굴로 시키는 대로 서류 펜을 챙겨온다.
“학생. 여기 계약서 빨간 줄 쳐진 위주로 작성하면 되네. 주민등록증과 도장은 가져왔나? 여기에 서명하고, 아··· 급할 필요는 없네. 차분히, 천천히 읽어보고 작성하게. 연락처는······.”
유익현은 급히 재희에게 계약에 관해 설명하기 시작했다. 인적사항과 연락처부터 꼼꼼히 체크한다.
재희가 계약해도 되냐는 얼굴로 나를 보았고,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재희는 리테일 길드에서 성장시키기로 마음먹었다.
그녀가 집중하여 계약서를 읽기 시작하자 지켜보던 유익현이 나를 돌아본다. 의심이 약간 사라진 눈빛이다. 순수한 감탄이 들어찼다.
나는 여유롭게 입을 뗐다.
“다음 거래는 말이죠. 길드 대표를 넘기라는, 이건 회장 자리를 달라는 게 아닙니다. 전투 병력들. 헌터들에 대한 통솔권을 제게 주시죠. 어때요? 세계 최고의 길드를 만드는 조건으로, 거래를 받아들이시겠습니까?”
다음 거래에 관한 제안이었다.
“하, 패기가 대단하군. 그런데 또 본 게 있으니 완전히 헛소리로 치부할 수도 없고. 방법이 뭔가, 세계 최고의 길드를 만드는 방법. 그걸 알려주면 거래에 관해 생각해보겠네.”
유익현이 관심 있는 표정으로 물었다.
“세계 최고의 길드를 만드는 방법이요? 간단합니다. 우선, 제가 세계 최강의 헌터가 됩니다. 그리고 수준 높은 헌터들을 영입해 옵니다. 당신이 운영합니다. 그럼 세계 최고의 길드가 될 수 있어요.”
나는 조금도 지체하지 않고 오만한 말을 뱉어냈다. 세계 최고의 길드가 되는 건 생각보다 쉽다. 최강의 헌터들이 모이면 되는 거다. EX급 게이트를 클리어할 세계 최강의 헌터들. 내가 원하는 최종 목표였다.
“하하하하하하······ 말을 시원하게 하는구만, 하하하하하. 배포는 정말 맘에 들어. 하하하······.”
유익현이 의자 등받이에 등을 기대며 웃어댔다. 야망이 넘치는 남자였다. 거침없이 포부를 밝히자 허리를 꺾으며 기뻐했다.
“뭐라는 거야. 이거 그냥 미친놈 아닌가? 뭐? 세계 최강의 헌터? 장난하나 진짜. 야, 노력, 끈기, 열정. 정신 안 차릴래? 형님. 자꾸 오냐오냐 받아주니까 얘가 계속 헛소리를 지껄이지 않수.”
최기철은 팍 인상을 썼다. 그는 유익현과 다르다. 세계 최강의 헌터를 그저 허풍으로 여긴다. 자꾸 허황된 소리를 하는 어린 것이 맘에 안 들었다.
“무슨 방법으로 저 여자애가 S급 특성인 걸 알아챘는지는 모르지만 더는 안 통한다. 정신 차려라 F급. 건방떨지 말고.”
내게 으름장을 놓았다. 주제 파악하라고 경고한다.
나는 짧게 웃으며 말했다.
“이것도 증명해드리겠습니다. 차근차근 최강의 헌터가 되는 모습을 보여드리지요. 뭐부터 할까요? 최기철 마법사님. 우선 저와 1:1로 한번 붙어보시겠습니까?”
F급 헌터가 D급 마법사에게 대결을 신청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