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화 〉 첫 던전
문피아 공유방에서 작업된 소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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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를 돌아봤다. 헌터소드를 들어올렸다.
3m짜리 홉고블린, 지팡이를 든 고블린 샤먼, 수십 마리의 고블린들, 갓 던전에 입장한 초보 F급 헌터가 감히 대적할 수 없는 몬스터 무리가 나를 둘러싸고 있었다.
그러나 나는 그냥 F급 헌터가 아니다. A급 헌터의 기억을 가지고 있다.
그냥 A급 헌터의 기억이 아니다. 오로지 노력만으로, 분석과 연습만으로, 스킬 하나 없이 A급에 도달한 헌터의 기억이다.
나처럼 기본기가 탄탄한 헌터는 없다. 가진 기억과 경험만으로도, 이런 몬스터들에게 지지 않는다.
고블린을 앞두고 맘이 설렌다. 난생처음으로 스킬을 사용해볼 기회다.
꾸이익- 꾸익-
문이 닫히자 화가 난 고블린 샤먼이 지팡이로 나를 가리키고 꾸짖었다.
뀌에엑- 뀌엑-
거기에 답변하듯 고블린들이 창칼을 드높인다. 보스방에 홀로 남은 어리석은 인간 하나를 돌무더기로 다져주려 전진한다.
선수필승.
내가 칼을 들고 먼저 뛰쳐나갔다. 공격하면 정면의 고블린 한 마리를 상대하지만 수비하면 몰려오는 고블린 전부를 상대한다. 선공이 필수다.
맨 앞의 고블린을 베었다.
고블린의 저항력, 내 팔의 근력, 내 몸의 탄력을 파악한다.
컨디션은 괜찮다. A급 헌터시절에 비해 단련되지 않아 허약하긴 하지만 다친 곳 없이 멀쩡하다.
이 정도면 된다. 고블린을 사냥하는 덴 문제없다.
고블린 두 마리를 썰어 넘기고 뒤이어 달려오는 고블린을 본다. 타이밍을 보니 스킬을 사용할만한 견적이 나온다.
[연속 베기]
민 헌터의 스킬. 방금 복제한 검사의 기술이다. 검을 휘돌리며 민첩하게 적을 베어버린다.
세 번 몸을 돌렸다. 처음 회전할 땐 정확하게, 두 번째 회전할 땐 강력하게, 세 번째 회전할 땐 격렬하게.
푸아악-
스킬을 한 번 쓰니 고블린 시체가 겹겹이 쌓인다. 회전에 휘말린 고블린을 모두 갈아버렸다.
시원하다.
스킬이란 게 이런 맛이구나.
일반 공격으로 느낄 수 없는 쾌감이다. 즉시 발동되는 공격, 물 흐르듯 이어지는 동작, 손길에 맞춰 타오르는 마나.
예술작품을 완성한 거장처럼 충족감이 차오른다.
[연속 베기]
기회가 될 때마다 스킬을 사용한다. 고블린은 좋은 연습상대다. 미친 듯이 회오리를 반복하며 휩쓸었다.
[강타]
주먹으로 홉고블린의 대가리를 깨버렸다. 강하게 힘을 담아 턱주가리를 타격하니 괴성을 내지르며 나자빠진다. 쓰러지기 전에 가슴에 칼 한 방 더 꽂아줬다.
퍼억.
고블린 샤먼의 머리통을 헌터소드로 날렸다. 귀찮은 주술을 걸어대기 전에 처치해야 한다.
남은 고블린들.
깔끔하게 처리했다. 던전 공략 조건은 모든 고블린의 처치. 어차피 전부 잡아야 한다. 보스방이 잠겨 나가지 못할 때 한 마리씩 마무리 지었다.
싸움이 끝나고.
피로 물든 검과 주먹을 바라본다.
[연속 베기]를 사용했던 검, [강타]를 사용했던 주먹. 내 신체가 맞나 싶다.
생경한 감각에 웃음을 터트렸다.
이번 회차는, 지난번과는 많이 다르다.
*
허억- 허억-
허겁지겁 도망치던 민 헌터와 윤 헌터. 고블린이 쫓아오지 않는 걸 알았다.
“허억, 고블린 놈들, 한 마리도 안 쫓아오고 있네.”
윤 헌터가 정신 차리고 뒤를 확인한다.
“뭐야, 이 자식들. 고블린처럼 끈질긴 몬스터가 없는데, 왜 안 따라오지.”
민 헌터가 뜀박질을 멈추고 팔을 들어 이마에 떨어지는 땀방울을 훔친다.
“잠깐, 그러고 보니 한 헌터도 보이지 않아!”
윤 헌터가 당황했다. 보스방에서 뒤쫓아 오던 F급 짐꾼 헌터가 없어졌다. 그들을 뒤따라 달리고 있어야 하는데 코빼기도 보이지 않는다.
“어엇, 이게 어떻게 된 일이야!”
민 헌터가 뭔가 잘못된 것을 눈치챈다. 급히 주변을 둘러본다. 던전 바닥에 남은 발자국은 오로지 윤 헌터와 민 헌터의 것밖에 없다.
“설마 낙오된 건가.”
삐질, 땀을 흘렸다. 한 헌터가 따라오지 못했다면 고블린에게 잡혔을 수도 있다. 불길한 예감이 떠오르자 눈가에 검은 그림자가 드리웠다.
“이런, 고블린에게 잡힌 것 같네.”
“이걸 어찌하나, 재복이가 고블린에게 잡혔다면 살아 돌아오기 힘들 텐데.”
“구하러 가야······.”
민 헌터와 윤 헌터가 눈을 마주친다. 빨리 구하지 않으면 죽음이다. 고블린은 참을성이 그리 강하지 않다.
위험을 무릅쓰고 젊고 어린 헌터를 구출할지 망설인다.
“일단 상황을 보고 안 될 것 같으면 도망치자고.”
“그래. 젊은 친구가 참 안타깝게 됐지만 이것도 본인의 운명이지. 첫 던전부터 D급 홉고블린이 나올게 뭔가.”
침울한 표정으로 구출작전을 짠다. 돌아가서 한재복이 살아있고 기회가 보인다면 구하지만, 죽거나 둘러싼 고블린이 너무 많다면 포기하기로 한다.
무거운 발걸음을 내딛었다.
보스 방 앞. 문은 굳건히 닫혀있다.
“자, 연다. 마음 단단히 먹게나.”
윤 헌터가 비장하게 각오를 다지며 돌문에 손을 대었다. 홉고블린이 뛰쳐나오면 도망치고, 한재복이 있으면 구할 거다.
“재복··· 살아있어야 할 텐데.”
민 헌터가 검의 손잡이를 강하게 움켜쥐었다. 보스방 문을 힘껏 주시한다. 서늘한 바람이 긴장된 분위기를 싸고돌았다.
끼익-
윤 헌터가 문을 열어 재낀다. 민 헌터가 동시에 칼을 뽑고 방 내부를 쳐다보았다.
“음?”
한재복이 앉아있었다.
통나무 그루터기에 앉아 한가로이 헌터소드를 헝겊으로 닦고 있었다.
너무나 당혹스러운 장면에 헌터들은 멈춰버렸다. 방에 옅게 돌고 있는 혈향. 쓰러진 홉고블린, 목이 날아간 고블린 샤먼, 곳곳에 널린 고블린의 시체들.
한재복은 익숙한 태도로 장비를 점검한다.
“이, 이게······ 도대체······.”
“어? 오셨습니까? 안 오실 줄 알았는데.”
놀란 헌터들에게 한재복이 태연하게 말했다.
“자, 자네가 이렇게 한 건가?”
“예. 뭐······ 운이 좋았습니다. 초심자의 행운? 그런 게 따라주었습니다.”
“······.”
윤 헌터는 눈을 크게 뜨고 주위를 둘러본다. 초심자의 행운, 운과 같은 아리송한 걸로 설명할 수 있는 광경이 아니다.
‘뭐 이런 괴물 같은...’
경이로워하며 한재복을 쳐다본다.
“힘겹게 싸웠더니 어깨가 너무 뻐근하네요. 마석 줍고, 짐 옮기는 것 좀 도와주시겠습니까, 선배님들.”
한재복이 웃으면서 말한다.
그는 더 이상 짐꾼이 아니었다. 던전 내 최고의 헌터. 아이템을 줍는 역할은 졸지에 같이 던전을 공략하게 된 헌터들이 대신한다.
*
헌터들과 보상을 나누었다. 던전 클리어에 대한 가장 큰 공로자로 대부분의 지분을 차지했다.
그들을 보낸 후, 던전에 남았다. 균열이 닫히기 전에 잠시 빈 공간을 활용하기로 한다.
내 특성을 테스트했다.
[행동복제]
보아왔던 헌터들의 행동을 따라했다. 그들이 주먹을 휘두르는 방식, 검을 긋는 방법, 이해한 대로 복제해서 움직였다.
취익- 취에엑-
상대했던 고블린의 말투. 역시 복제가 되었다. 인간인 내 입에서 나오는 소리라 고블린과 완전히 같진 않지만 얼추 비슷했다.
고블린 샤먼처럼 지팡이를 휘두르고, 홉고블린처럼 쇠망치를 내려찍어본다. 다 가능하다.
그 다음은.
[스킬복제]
아까 사용했던 [연속 베기]와 [강타]를 다시 사용해본다. 검으로 빠르게 베고 지나가며, 강하게 주먹을 휘둘렀다.
다 가능했다.
“하하······.”
만족스럽게 웃었다.
이거면 된다. 이거면 마인들을 상대할 수 있다.
10년 후, EX급 게이트가 열리고 세상은 뒤집힌다. 게이트에서 쏟아지는 몬스터도 문제였지만 그것만큼 인류를 괴롭힌 건 마인이었다.
인간계에 숨어있던 마족들. 인간 행세를 하며 사회를 배우고, 인간 사이에 끼어들어 분란을 야기하던 마인들이 게이트와 함께 모습을 드러냈다.
그동안 인간들 몰래 헌터들을 해치고 국가를 약화시키던 마인들이다. 내부로부터 인간을 좀먹어 몬스터에게 저항하지 못하게 만들었다. 침략자들의 첨병이 되어 도망치는 인류를 짓밟았다.
어찌나 악랄하고 악독했는지, 몬스터보다 마인에 의해 죽어나가는 사람이 더 많았다.
그것들, 싹 다 제거해야겠다.
EX급 게이트가 생기기 전에, 해야 할 일이 정해졌다. 이 특성이면 능히 가능하다.
마인을 잡기 위해선 철저한 연구와 대비가 필수. 앉아서 [복제]를 좀 더 시험해본다.
[아이템복제]
설마 이게 될까 반신반의하며 시도했다.
헌터소드를 들어올렸다. 내가 고블린들을 사냥할 때 사용했던 헌터소드. 복제가 가능한지 마나를 주입해 본다.
소드를 왼쪽 바닥에 두고, 오른쪽 바닥에 마나를 흘렸다. 주의해서 검의 모형을 만들어냈다.
오른쪽에 흘린 내 마나가 헌터소드의 외형을 이룬다.
<헌터소드(복제)>
―랭크: E급
―설명: 헌터들이 가장 많이 사용하는 기초적인 형태의 검입니다. 보급품으로 대량 제작되어 성능 대비 가격이 저렴합니다. 가성비로 사랑받는 아이템.
―효과: 공격력 +10
‘된다.’
움찔거리며 몸을 주춤했다. 마나를 사용했을 뿐인데 정말로 아이템이 만들어졌다. 복제로 만든 헌터소드를 이리저리 기울이며 살폈다.
생김새가 기존의 헌터소드와 똑같다. 이가 갈린 부분과 고블린의 피를 헝겊으로 닦은 부분, 흠집이 생긴 부분까지 완벽히 구현되었다.
무게도, 강도도, 효과도 기존 소드와 같다.
‘이게 가능해?’
정말 말도 안 되는 특성이다. SSS급이라 그런지 자유도가 엄청나다.
필요한 것은 오직 마력. 마나를 재료로 모든 것을 만들어낸다.
‘저건...’
고블린의 몽둥이도 만들어봤다. 바닥에 널려있는 나무방망이와 똑같은 아이템이 생겨난다.
<고블린몽둥이(복제)>
―랭크: F급
―설명: 고블린이 나무를 깎아서 만든 몽둥이. 조잡하다.
―효과: 공격력 +2
‘다른 것도.’
오늘 봤던 아이템을 이것저것 만들었다. 심지어 등에 달린 배낭까지, 다 복제가 가능했다.
‘안 되는 건.’
내가 만지지 않은 물건들. 접촉한 적 없는 물건들은 봐도 복제가 안 됐다.
물체는 보고 만지기까지 해야 복제가 가능했다.
‘마나도 많이 드는군.’
[행동복제]와 [스킬복제]에 비해 [아이템복제]는 마나소모가 심하다. 아직 F급에 불과한 내 마나는 급격하게 떨어졌다.
‘이렇게 되면.’
[스킬복제]도 지금처럼 쉬운 스킬이나 마나를 많이 소모하지 않을 거다. A, S급 등의 초강력 스킬을 사용하다보면 마나 소모가 막대하다.
그렇다면 내게 가장 부족한 건 마나가 된다. 복제를 위해서 소모되는 값은 오직 이거 하나뿐이니.
반대로 생각하면 마나만 있으면 모든 게 가능하단 뜻이다. [스킬]이든, [아이템]이든, 다 만들어서 쓸 수 있다.
내게 마나가 제일 중요해졌다. 어떤 식으로 성장할지 계획이 세워졌다.
주머니에서 지갑을 열어 지폐를 꺼낸다.
이것도 시험해 보자.
세종대왕님이 인자하게 웃고 계신 만 원권과. 신사임당님이 지그시 바라보고 계시는 오만 원권을 들어 바닥에 펼쳤다.
[물건복제]
마나를 주입한다.
세종대왕님과 신사임당님이 분신술을 쓴 것처럼 두 명으로 늘어났다.
노란색 배경의 지폐와 초록색 배경의 지폐가 각각 두 장이다.
‘돈도 복제가 되네.’
나는 활짝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