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화 〉 첫 던전
문피아 공유방에서 작업된 소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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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복아. 잘 봐라, 이게 헌터들이 검을 휘두르는 방식이다.”
헌터들이 으스대기 시작했다.
20살의 유망한 헌터라면 견제하고 경계했겠지만, 나는 누구보다 못난 특성을 지닌 F급 헌터에 불과했다. 마음껏 실력을 뽐낸다.
능숙한 검술로 고블린들을 베어 넘겼다.
특성 [복제].
아직 발동되지 않고 있었다. 나는 상태창을 열어 [복제] 특성을 자세히 읽어보았다.
<복제>
─랭크: SSS
―효과: 보고 이해한 걸 복제합니다. 마나를 사용합니다.
‘마나를 사용한다고?’
효과에 대한 설명은 짧았다. 보고 이해한 걸 복제한다. 마나를 사용한다.
그렇다면 복제하기 위해선 일단 보고 이해하며, 마나를 사용해야 한다는 건가.
헌터가 고블린과 싸우는 장면을 쳐다봤다.
검을 사선으로 긋고 있었다.
고블린의 공격을 피하는 동시에 정확히 몸통을 베어버리는 동작이다.
이해했다. 마나를 사용해 보았다. 보급형 헌터소드를 꺼내들고, 마나를 주입했다. 헌터와 비슷한 동작을 취했다.
[행동복제]
파악.
내 검이 허공을 갈랐다. 그냥 긋고 지나가지 않았다. 마치 무형의 고블린을 베듯이, 중간의 방해물을 흩트리고 지나갔다.
“······.”
진짜 고블린을 벤 듯한 감각이다.
다시 마나를 주입했다. 확인차 아까 한 동작을 반복했다.
[행동복제]
파악.
검이 아까와 같은 경로로 허공을 가른다. 헌터가 고블린을 베듯, 나는 잔상을 벤다. 있지도 않은 고블린을 상대하며 헌터와 완벽히 같은 동작을 취한다.
알았다.
복제가 어떤 원리로 작용하는지 알았다.
사물을 완전히 인식한 다음 마나를 통해 발현해야 한다. 그럼 대상과 똑같은 것이 만들어진다.
[행동복제]
상대와 똑같은 행동을 만들어낸다.
“하하...”
헛웃음이 나왔다. 정말 얼토당토않은 특성이다. SSS급이라는, 믿기지 않는 등급을 가진 특성이라 그런지 발동 과정도 특이하다.
보고 이해한 다음 마나를 사용하면 어떤 것이라도 복제할 수 있다. 사물이 됐든, 행동이 됐든, 관념이 됐든.
설명이 짧고 제한이 없다는 건 그런 뜻이다.
모든 게 가능하다.
그렇다면.
[스킬복제]
다른 헌터의 스킬을 복제하는 것도 가능한 걸까.
앞서 싸우고 있는 헌터들을 바라봤다. 새로운 가능성에 검을 쥔 팔목이 긴장으로 바르르 떨렸다.
*
“음? 자네 괜찮은 건가?”
사냥을 마치고 돌아온 헌터가 묻는다.
“······.”
“이번엔 팔을 떨고 있네. 많이 긴장했나보군, 걱정하지 말게나. 여긴 겨우 E급 던전이고 우리는 베테랑 헌터들이라네. 자네가 그렇게 겁먹을 필요 없어.”
“허허, 헌터란 모름지기 누구보다 용감해야 하거늘. 왜 그렇게 떨고 있는감. 아무리 던전이 처음이라 하더라도 그렇게 두려워해선 안 돼. 용기를 가지게나. 그래야 노력, 끈기, 열정의 헌터로 살아남지.”
검을 빼어들고 긴장해있는 나를 보며 한 소리씩 한다.
나는 조용히 검을 검집에 집어넣었다.
“선배님들.”
“?”
“제게 스킬을 보여주실 수 있습니까.”
공손히 말했다.
[스킬복제]가 가능한지 확인할 시간이다.
“무슨 스킬을 말하는 겐가.”
“헌터에겐 스킬이 있지 않습니까. 전사에겐 전사스킬이, 마법사에겐 마법사스킬이, 검사에겐 검사스킬이 있죠. 선배님들의 스킬을 견학하고 싶습니다.”
직업특성에 따라 헌터들은 해당 직업의 스킬을 보유한다. 나는 그걸 보고 싶었다.
윤 헌터. 왼쪽에 있는 E급 헌터는 전사고, 민 헌터. 오른쪽에 있는 E급 헌터는 검사다. 두 가지 계통의 스킬을 볼 수 있을 거다.
“어허-”
내 또랑또랑한 눈망울을 보더니 윤 헌터가 짐짓 근엄하게 호통 쳤다.
“한 헌터. 남의 스킬을 보는 게 어디 그리 쉬울 거라 생각하는감? 헌터들에게 생명줄과 같은 게 스킬이라네. 남들에게 쉽게 못 보여주는 비장의 수단이란 말일세.”
“그럼, 그럼. 스킬이란 건 남들이 몰라야 가치가 있지. 쉽게 얻을 수 없고, 꺼낼 수 없는 거라네.”
후우.
그들의 반응에 난 작은 한숨을 내쉬었다.
맞는 말이기도 하고, 틀린 말이기도 하다.
헌터에게 스킬이란 영업비밀과도 같다. 자신만의 노하우고, 자신만의 기술이다. 스킬 하나 얻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수없이 단련하고, 반복하고, 깨우쳐야 얻어지는 것이 스킬이다.
생각을 하면 즉발로 기술이 나간다. 나만 알고, 쓸 수 있는 기술. 어디 이보다 가치 있고 유용한 수단이 있겠는가.
쉽게 보여주지 못해도 이해는 된다.
하지만 틀린 말이기도 하다.
스킬이란 건 어차피 남들이 봐도 따라할 수 없다. 마법사가 마법을 쓰는 걸 보면 나도 마법을 쓸 수 있나? 당연히 아니다. 헌터 고유의 특성을 지니고 생각과 계산을 통해 발현되는 게 스킬이다. 누가 본다고 훔칠 수 없다.
그럼 스킬은 왜 숨기는가.
비장의 수단으로 사용하기 때문이다. 누군가와 맞설 일이 생길 때 숨겨둔 스킬을 쓰면 꽤나 큰 효과를 발휘한다.
그러나 이들 같은 경우엔. 20년의 헌터경력으로 가진 스킬이 모두 밝혀져 있다. 스킬 안 숨겨도 된다.
“윤 헌터님의 [강타]와, 민 헌터님의 [연속 베기] 있잖습니까. 제가 한번 보고 싶어서 그럽니다.”
“음? 자네가 우리 스킬은 어찌 아는감?”
“유튜브에서 볼 수 있습니다.”
이들은 베테랑 헌터다. 그들의 싸움 영상은 이미 오래전에 녹화되어 인터넷에 떠돌았다. 과거 1회차의 한재복은 그걸 보고 이들의 짐꾼으로 지원했다. 강해보여서, 싸움과 스킬사용이 능숙해보여서 그랬다.
유튜브 영상과, 1회차 보스방에서 봤던 스킬은 곧바로 [복제]가 안 된다. ‘직접’ 봐야 복제가 가능한 듯하다. 그래서 이렇게 부탁하고 있었다.
“어허이, 누가 감히 우리 스킬을 영상으로 뿌리는감. 그, 그거 사생활 침해, 사생활 침해 아닌감.”
“개인정보보호, 개인정보보호 없어? 남의 스킬을 멋대로 공개하다니, 이런······!”
그들은 당황해서 말을 더듬는다. 잘 알지도 못하는 법률용어를 들먹이며 촬영자를 욕한다.
“스킬공개에 동의하셨다고 영상 설명에 나와 있습니다. 헌터스킬 공개엔 반드시 본인의 동의가 필요합니다. 아마 예전에 촬영에 동의하셨을 겁니다.”
“그, 그래? 내가 언제?”
“난 그런 적 없어!”
뒤늦게 발뺌한다. 모르쇠로 일관한다. 억울한 듯 따지고 있다.
‘왜 나한테 그러냐고. 과거의 자신에게 따지든가.’
피해보는 건 나다. 이 인터넷 시대에 뒤떨어진 아저씨들은 충격 받고 분개하여 씩씩대고 있었다. 맘 편히 스킬을 보여줄 분위기가 아니다.
“까마득한 후배가 선배님들께 청합니다. 스킬 한번 시원하게 보여주시겠습니까. 제가 던전이 처음이고 직접 눈앞에서 본적이 없어서 말입니다······.”
조심스럽게 부탁했다. [스킬복제]를 써보고 싶어서 마음이 급하다.
“안 돼!”
“재복아. 너도 앞으로 알게 되겠지만 스킬은 함부로 사용하는 게 아니다. 보고 싶다고 언제든 볼 수 있는 게 아니지.”
요지부동이다. 끝까지 내 부탁을 거절한다.
“진정한 헌터로 거듭나고 싶으면 기본기에 충실하도록 해라. 스킬 같은 수단에 연연하다보면 정작 중요한 걸 놓치게 돼. 체력을 단련하고 근성부터 우선 길러. 그래야 헌터로서 오래 활동할 수 있다.”
검을 쥐고 있는 민 헌터가 무게를 잡으며 말했다. 스킬을 보여주긴 싫고, 멋은 내고 싶으니 그럴 듯한 말로 나를 꼬드긴다.
안 통한다. 스킬 하나 없이 15년간 헌터생활을 해온 나다. 누구보다 기본기에 충실했고, 스킬에 목말라 있었다.
‘에이···.’
미간을 찌푸렸다. 머리를 기울이고 오른손의 검지와 중지로 관자놀이를 주물렀다. 골치가 아플 때 나오는 습관이다.
이 아저씨들, 안 되겠다.
험한 꼴을 봐야겠다.
예전 기억에 따르면 보스방에서 ‘괴물’을 만나고, 고블린에게 둘러싸였을 때 스킬을 사용한다. 그때 가서 확인하면 된다.
쳐맞건 말건, 도와주지 않기로 했다.
*
보스방. 진한 마력과 긴장감이 감도는 문 앞에서 윤 헌터가 말한다.
“떨리지? 나도 그랬어. 모든 헌터는 첫 보스 앞에서 떨 수밖에 없지. 하지만 그 두려움을 극복하는 것이 헌터로서 첫 걸음이야. 내가 봐줄 테니 걱정은 하덜 말어.”
건틀릿을 굳세게 장착한다.
“자넨 운이 좋은 거야. 우리처럼 산전수전 다 겪은 헌터들과 첫 던전을 함께하다니. 잘 보고 배우게. 뭐, 봐도 처음엔 잘 모르겠지만.”
민 헌터가 능숙하게 검을 쥐며 말했다.
나는 눈썹을 찡그렸다.
떨리긴 떨렸다. 첫 회차엔 긴장해서 떨렸지만, 지금은 짜증나서 떨린다.
스킬 좀 보고 싶은데 왜 이렇게 애태우냐.
윤 헌터가 힘을 주어 보스방의 문을 열었다. 끼이익- 소리가 나며 3m 크기의 돌문이 움직인다. 고블린의 드넓은 터전이 보였다.
끼익- 끼에에-
취익- 취에-
고블린들이 우릴 보고 괴성을 내질렀다. 침입자들이 기어이 보스방까지 들어왔다. 손도끼, 꼬챙이, 단창 등의 병장기를 치켜 올리며 결사항전을 다짐한다.
키익- 키에에-
가장 큰 소리로 울부짖는 고블린. 고블린 샤먼이다. 이 E급 몬스터는 고블린들을 이끄는 족장.
“저놈이 보스군.”
“보스부터 잡아야 한다. 그래야 고블린들이 통제를 잃고 흩어지지.”
윤 헌터와 민 헌터는 전문가답게 당황한 기색 없이 고블린 샤먼을 쳐다봤다.
목표를 정했다. 보스로 추정되는 고블린 샤먼을 향해 치달았다.
나는 느긋하게 구석에 짐을 내려놓았다. 이전 회차와 같은 전개다. 이러다가 괴물이 나온다.
팍, 크악-
파직, 퀘엑-
사투를 벌이는 헌터들과 고블린. 숨 돌릴 틈 없이 치열하다. 주먹과 검, 손도끼가 바삐 거친 궤적을 그려댄다.
취익- 키엑- 키에-
싸움의 양상을 보던 고블린 샤먼이 긴장된 침을 흘린다. 막강한 헌터들에 의해 고블린이 무자비하게 죽어나가고 있다.
키에······.
발을 천천히 움직여 움집 구석으로 다가간다. 검은 마석을 하나 꺼냈다.
바닥에 놓고 포대에 싸인 3m 시체 고블린 앞에서 무언가를 중얼거린다. 음산한 마력이 퍼지고, 3m 시체 고블린이 벌떡, 몸을 일으킨다.
“크와아아아앙!”
쩌렁쩌렁하게 울리는 고블린의 고함소리. 진짜 보스의 등장이다. 죽어있던 3m짜리 홉고블린. 고블린 샤먼의 마력으로 되살아났다.
무려 D급에 달하는 보스다. 고블린 샤먼은 E급. 둘이 합치면 난이도는 D급에 필적한다.
“아닛······!”
“홉고블린! 저렇게 큰 개체가 있었나!”
헌터들이 놀라 눈이 휘둥그레진다.
“크왕!”
홉고블린이 포효하며 쇠망치를 내려찍었다. 헌터들을 노리고 있었다. 거센 일격 한 방에 지면이 폭발하고 휩쓸린 고블린들의 머리가 깨졌다.
“으헉!”
“조심해!”
위기일발. 헌터들은 홉고블린의 기세에 짓눌렸다. 쉽사리 접근하지도 못한다. 달려드는 작은 고블린들.
[강타]
[연속 베기]
드디어 스킬을 사용했다. 윤 헌터의 [강타]. 글자 그대로 강하게 타격하는 기술이다. 그 속도와 위력이 보통 힘을 준 것보다 훨씬 대단하여 스킬이 되었다.
민 헌터의 [연속 베기]. 검으로 휘돌 듯 적을 베어버린다. 노련한 검술과 적의 이동을 예측하는 정확한 안목이 필수, 한 번의 스킬로 서넛의 적을 무너트린다.
나는 그들을 유심히 지켜봤다.
[스킬복제]
내 스킬창에 [강타]와 [연속 베기]가 생겨나고 있었다.
보고 이해하는 순간 새로운 스킬을 습득했다.
‘진작에.’
이럴 것이지.
소름이 오른다. 지난 생에 단 한 번도 가지지 못했던 스킬을 가지게 되었다. 그토록 노력해도, 그토록 끈기 있게 달라붙어도, 그토록 열정적으로 연습해도, 가질 수 없었던 스킬이 각인되고 있었다.
“으악!”
“크억!”
헌터들은 밀렸다. 홉고블린에게 힘으로 밀리고, 고블린 샤먼에게 마력으로 밀리고, 작은 고블린들에게 쪽수로 밀렸다.
돌도끼를 맞고, 돌멩이를 맞고, 몽둥이에 쳐맞는다.
“도, 도망쳐!”
“으악! 사람 살려!”
헌터들이 후퇴를 결심했다. 더는 안 되겠다 생각했는지 빠르게 발을 돌려 물러난다. 베테랑 헌터의 자존심 따위 걷어치우고 생존을 도모한다.
“한 헌터! 도망가!”
“뛰어! 어서 달아나라고!”
애처롭게 외친다. 삶을 갈망하는 자들에게 체면이란 없다. 급한 얼굴로, 절망한 발걸음으로 보스방 밖으로 뛰었다. 짐을 풀고 구경하는 내게 소리친다.
예전에도 이랬다.
무서웠던 나는 그들과 함께 뛰었다. 생전 처음 보는 홉고블린이란 괴물에, 도망치는 헌터들에, 무기력한 나 자신에 뒤도 안 돌아보고 도망쳤다. 던전 밖으로 꽁지 빠지게 달아났다.
지금은 아니다. [회귀]. 나는 바뀌었다.
도망치지 않는다. 그럴 필요도 없고, 그러고 싶지도 않다.
헌터들의 뒤로 쫓아가는 시늉을 하다가, 그들이 보스방을 빠져나가자 문을 닫아버렸다.
쿠웅-
보스방의 문이 닫힌다.
빠져나갈 곳은 없다. 내가 아닌, 고블린들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