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BJ는 종말에 적응했다-216화 (216/222)

216화

“으아아아악!”

“형제님, 괜찮으십니까?”

“끄으으으아아악!”

이민상은 지금 격통에 시달리고 있었다.

정확히는 이민상의 오랜 기억인 무명인(無名人)이 고통에 몸부림치고 있었다.

“하아…… 하아……. 괜찮습니다. 잠시 발작성 통증이 찾아온 거니 저 말고 다른 이들을 구해 주세요.”

“하지만…….”

“부탁드립니다. 저는 혼자 대처할 수 있습니다.”

이민상이 어색하게 웃어 보였다.

그는 식은땀을 흘리고 있었지만, 이 신관을 다른 곳으로 보내기 위해 억지로 웃었다.

그 노력에 이민상을 돌보던 신관은 그의 얼굴을 빤히 쳐다보다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형제님, 그럼 보중하십시오.”

“걱정 감사합니다.”

신관이 떠나자, 이민상은 그대로 본대에서 이탈해 으슥한 골목으로 들어갔다.

키이이익!

이민상을 발견한 작은 악마들이 떼로 덤벼들었다.

“끄아아악!”

파직.

파지지직!

콰릉!

이민상의 플라즈마 펄스가 번뜩이는 장검이 골목을 휩쓸자 악마들은 자신들이 어떻게 당한지도 모르는 채로 목을 베였다.

키아아아!

콰르릉!

검광이 번뜩일 때마다 악마들의 살점이 뭉텅이로 베어졌다.

“하아…… 하아…….”

이민상이 새까맣게 그을린 벽에 한 손을 올려 몸을 지탱했다.

“……얘기 좀 하자.”

얼마 전부터 계속되었던 두통.

이민상은 단순히 몸 상태가 좋지 않아 그런 거라고 치부했었는데 이제야 정확한 원인을 알게 되었다.

“왜 아직도 사라지지 않지?”

대답은 어느 곳에서도 들려오지 않았다.

이민상의 몸을 차지한 무명인은 골치가 아팠다.

그의 몸을 차지하는 것은 그렇게 어렵지 않았었다.

당시, 이민상은 백치나 다름없었고 자아가 흐릿했다.

또한, 시의적절하게 신조가 기억을 되찾게 되면서 무명인의 자아가 강해졌다.

강자가 약자에게 먹히는 것은 모든 세계의 진리처럼 여겨지는 것이었다.

분명, 그런 줄 알고 있었는데 얼마 전부터 무명인은 그게 그의 착각이었음을 깨닫게 되었다.

이민상은 사라지지 않았다.

여전히 그의 정신과 싸우고 있었다.

무명인이 으르렁거리며 이민상에게 윽박질렀다.

“나는 너 따위보다 위대한 존재다! 저항을 멈춰라!”

역시, 이민상의 대답은 들려오지 않았다.

무명인은 문자 그대로 미칠 지경이었다.

당장 그를 괴롭히는 고통도 고통이었지만 지금의 상황을 반전시킬 만한 수단이 그에게 남아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민상의 영혼이 날뛸수록 무명인의 정신도 피폐해졌다.

“허억…… 헉…….”

오랜 세월, 자신이 가장 위대한 인간이라고 자부했다.

고통과 시간을 견뎠기에 어떤 일에도 태연할 줄 알았건만, 이런 고통은 그로서는 상상도 못 한 것이었다.

“그, 그래…… 조금만 버티면…….”

오딘이 약속을 지킬 것이다.

무명인은 지금껏 오딘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최선을 다해 왔다.

오딘은 그 대가로 그에게 신성을 넘기기로 했다.

“신성…… 그래, 신성!”

오딘이 약속했던 신성을 얻게 되면 이민상을 떼어 놓을 수 있을 것이다.

무명인은 신성을 얻게 되면 이민상부터 떼어 놓겠다고 다짐했다.

그러면 그가 진정으로 원하던 결말을 맞이할 것이다.

신이 되는 것.

오랜 세월 진정으로 열망했던 것은 그것뿐이었으니까.

그는 인간이 싫었다.

감정에 휘둘리고 생존에 급급한 그 열등한 종족이, 그리고 그도 거기에 포함되어 있다는 게 소름 끼치도록 싫었다.

“나는…… 나는 신이 될 것이다.”

갑자기, 무명인에게 더한 고통이 찾아왔다.

“커헉…… 끄아아악!”

이번엔 머리가 아닌 심장이었다.

정체 모를 압박감이 심장을 강하게 옥죄어왔다.

‘가…….’

“뭐?”

이민상이 처음으로 무언가 말을 했다.

무명인은 정신이 없는 와중에도 상대의 말에 귀 기울였다.

“어디로…… 어디로 가라는 거야?”

쿠르릉.

하늘이 어느샌가 어두워져 있었다.

‘올 거야……. 가…… 쥐어.’

무명인은 인상을 찌푸리며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그게 무슨 소리…… 뭐, 뭐야?”

하늘이 이상했다.

***

콰르릉!

실바는 하늘이 갑자기 어두워지자 무언가 심상치 않다는 것을 직감했다.

하지만, 그보다 심각한 문제가 눈앞까지 다가왔다.

그는 성진에게 다가와 말했다.

“저 악마를 상대할 방법이 있습니까?”

“……상대할 방법은 있습니다.”

“그럼…… 이런, 그게 좋은 방법은 아니군요.”

“……그렇습니다.”

“문제가 뭡니까?”

콰릉!

성진이 안색을 굳히며 답했다.

“수르트를 쓰러트릴 순 있겠지만…… 이 싸움에서 이길 수는 없을 겁니다.”

“그럼 소용없는 거군요…….”

“…….”

“초모, 나에게 계획이 한 가지 있습니다. 들어 보시겠습니까?”

“계획? 계획이라고요?”

실바는 성진을 쳐다보지 않고 수르트를 바라보며 얘기했다.

“이 세계를 포기하는 겁니다.”

“네?”

“물론, 완전히 포기한다는 건 아닙니다. 다만, 전력을 보전하고 다음 기회를 노리는 것이죠.”

성진은 실바의 말이 무슨 뜻인지 이해했다.

잠시 후퇴했다가 전력을 끌어 올린 후 다시 싸우자는 것.

하지만 성진은 싸움은 이것으로 끝이라는 것을 알았다.

“실바, 이미 늦었습니다. 후일을 도모할 만한 시간은 주어지지 않을 거예요.”

“무슨…….”

“수르트는 종말이 예정된 세계에만 나타나는 존재입니다. 말하자면 자연현상 같은 것이죠. 그 말은 이 세계가 곧 종말에 휩쓸린다는 겁니다.”

“그렇더라도…….”

“그리고 그 뒤에 로키가 있습니다. 로키는 지금 수르트를 이용하는 겁니다. 세계를 불태우며 다음 세계를 불태울 에너지를 수급하는 것이죠. 그게 종말의 수레바퀴입니다.”

“……멈추지 않는 수레바퀴.”

“그렇게 굴러가는 장치입니다. 창조주가 만든…….”

“그럼 우리는 여기서 모두 죽겠군요…….”

“죽음이 두려우십니까?”

실바가 다가오는 수르트를 보았다.

“죽음보다는 패배가 두렵군요. 제 아버지도 그렇게 목숨을 바치신 것이겠죠.”

“…….”

“그렇다면 전력을 다해야겠군요. 나머지는 남겨진 이들의 몫으로 하죠. 우리는 우리의…….”

그때, 아까 성진과 시선이 교차했던 조병창이 둘에게 다가왔다.

실바는 대화를 멈추고 조병창을 보았다.

조병창의 볼은 붉게 상기되어 있었다.

마치 흥분되는 일을 눈앞에 둔 것처럼.

그의 눈은 아직도 희망으로 빛났다.

“신조 님.”

“……예.”

“진짜 끝이 다가왔군요. 수르트라니…….”

성진은 슬프게 웃었다.

펄스로는 수르트를 이길 수 없었다.

조병창도 그것을 알 것이었다.

실망도 했을 것이고.

그래서 성진이 먼저 그 얘기를 꺼내려 하는데, 조병창이 전혀 의외의 말을 던졌다.

“우리는 패배했습니까?”

“아마도…….”

“신조 님, 우리는 아직 패배하지 않았습니다.”

“성검회가 돕더라도 수르트는 이길 수 없습니다.”

조병창이 턱을 쓰다듬으며 하늘을 보았다.

“비가 올 것 같군요.”

“…….”

“신조 님, 사실은 여태 당신에게 비밀로 한 만남이 있었습니다.”

“비밀? 언제 적…….”

“아주…… 아주 오래전 일이죠. 전…… 오딘을 만났습니다.”

“오딘! 그가 살아 있는 겁니까? 그렇다면 어째서…….”

“오딘은 힘을 잃었습니다. 다만, 예지와 지혜를 이용해 지금도 어디선가 이 전쟁을 지켜보고 있겠죠.”

성진의 표정은 시시각각으로 변해 갔다.

오딘이 아직 살아 있단 말에 혹시라도 이 상황을 타개할 수 있을까 하는 기대감이 솟구쳤지만, 이내 사그라들었다.

“그가, 오래전 제게 남긴 말이 있습니다.”

“……무슨 말을 남긴 거죠?”

조병창이 눈을 힐끗하며 성진을 보았다가 미소 지었다.

그리고 그는 여전히 하늘을 보고 있었다.

-그럼, 제가 해야 하는 일은 그것이 끝입니까?

-아니, 한 가지가 더 있다. 그건…….

오딘은 아주 오래전, 조병창에게 이렇게 얘기했다.

-최후에, 비가 오면 모든 걸 알게 될 것이다.

“최후에, 비가 오면 모든 걸 알게 될 것이다. 그리고 지금…….”

콰르릉!

조병창이 활짝 웃었다.

“공교롭게도 비가 오네요.”

성진이 조병창의 말에 하늘을 보았다.

콰르릉!

조병창의 눈에 물기가 어렸다.

“그토록 기다렸던 비가…….”

성진은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아니, 꼼짝도 할 수 없었다.

하늘에서 무언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저건…….”

***

“뭔가! 뭔가가 떨어집니다!”

“비는…… 아닌 것 같은데…….”

“교황님!”

실바가 소리쳤다.

“대규모 방진을 펼쳐라! 낙하하는 것으로부터 사람들을 보호해라!”

“대규모 방진을 펼쳐라!”

“신관들은…….”

후우웅.

하늘을 올려다보는 것은 성검회와 혁명군뿐만이 아니었다.

김우열과 수르트도 마찬가지였다.

김우열이 눈썹을 치켜 올렸다.

“저건 또 뭐야?”

수르트는 잠시 걸음을 멈추고 하늘을 보았다.

“……음?”

화르륵!

그는 몸을 보호하기 위해 불길을 가득 둘렀다.

전쟁이 잠시 중단되었다.

그리고 하늘에서 천천히 내려오던 것들을 확인한 성진은 줄곧 잊고 있던 무언가를 떠올리게 되었다.

-무지개의 비가 내릴 것이다…….

스칸다의 운명의 샘에서 듣게 됐던 그의 운명.

그는 그때 알게 된 운명이 지금, 찾아왔다는 것을 확신했다.

그야 하늘이 온통 무지개 색이었으니까.

후우우웅.

하늘에서 쏟아지는 것들은 액체가 아니었다.

돌덩이나 다름없는 것들이었다.

형형색색의 돌덩이들이 하늘에서 떨어지고 있었고, 그것이 꼭 무지갯빛의 비가 내리는 것처럼 보였다.

“무지개의 비…….”

터엉.

텅!

돌덩이로 추정되는 것들이 계속해서 낙하했다.

무언가 특수한 힘이 깃들어 있는지 돌덩이의 낙하하는 속도는 빠르지 않았고 각기 건물의 옥상, 또는 유리창을 깨고 들어간 건물의 내부.

또는 길거리로 낙하했다.

“저게 다 뭐야…….”

그때, 하늘에서 몬스터의 울음이 들렸다.

끼아아아아아아아아!

“비, 비룡이다! 빌어먹을!”

“숙여! 전부 숙여!”

검붉은 비늘의 비룡과 그리고 새하얀 비늘을 가진 비룡.

비룡은 비록 용종의 끝자락에 놓였지만, 각각의 개체가 갖는 힘은 몬스터 중 으뜸이라 할 만했다.

그런데, 비룡뿐만이 아니었다.

비룡을 비롯하여 수백 종류의 특이한 몬스터들이 하늘에서 쏟아졌다.

비행이 불가능한 몬스터들도 발버둥 치다 건물의 옥상에 추락했다.

서로가 이 모든 게 상대가 꾸민 짓이라고 짐작했기에 몬스터가 추락해 그대로 죽기를 바랐지만, 옥상이나 길거리에 떨어진 몬스터들은 고개를 부르르 털며 일어났을 뿐 크게 다친 것 같지는 않았다.

이 또한 신비한 힘이 그들을 감싸고 있었기 때문이다.

수르트는 이 모든 과정을 지켜보며 비웃었다.

신조의 군대가 무슨 수작을 부린 것은 분명한데, 그에게 해를 끼칠 수는 없었다.

괜히 조심을 기해 대비한 것에 화가 난 수르트가 고함을 질렀다.

“크아아아아아아아!”

으지지지직.

그의 발가락 사이로 유황으로 뒤덮인 존재들이 계속해서 만들어져 나왔다.

유황으로 만들어진 악마들은 게이트를 열고 나타났던 악마들보다 훨씬 위험한 기운을 풍겼다.

천천히 적들에게 향하는 것이 지루해진 수르트는 힘을 나눠 유황 인간들을 만들었다.

그리고 그들에게 명령했다.

“가라, 휩쓸어라.”

오오옴!

질퍽한 유황이 도로를 녹였다.

수르트는 비가 그치고 있다고 느꼈고 다시 전쟁을 시작했다.

그리고, 그의 불꽃 갑옷을 뚫고 박혀있는 돌덩이를 빼내어 손가락으로 집었다.

비록 조금 작아진 수르트였지만, 분명 거인이었다.

그의 손가락 사이에 붙잡혀 있는 돌덩이를 자세히 들여다보던 수르트는 눈을 크게 떴다.

“이건…….”

돌덩이가 아니었다.

그것은 갑옷이었다.

수르트는 서둘러 사방을 살폈다.

발걸음마다 채이고 건물과 도로를 소복하게 덮은 저것들이 전부, 검과 창 그리고 갑옷.

인간들의 무구였다.

***

맨 처음 나타났던 비룡 두 마리가 성검회의 방벽을 스치고 지나갔다.

키아아아아아!

“큭…… 대응하지 마라! 비룡은 방벽을 깨트릴 순 없다!”

분주하게 움직이는 사람들.

그들을 지켜보던 조병창은 성진에게 말했다.

“신조 님, 마지막으로 묻겠습니다. 당신은 지금, 인간을…… 우리를 믿습니까?”

성진은 하늘에서 떨어지던 것들이 돌이 아닌, 무구와 갑옷들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조병창에게 답했다.

“내가 믿든…… 믿지 않든, 그게 중요한 겁니까?”

“적어도 우리에게는.”

이미 대답할 필요가 없는 질문이었다.

성검회의 참전과 미치광이들의 하관만으로도 그들은 성진의 기대 이상 해낼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주었다.

성진은 고개를 끄덕이며 솔직하게 답했다.

“믿지 않습니다.”

“……그렇군요.”

“하지만…… 믿고 싶네요.”

조병창이 히죽 웃었다.

“그럼 어째서 도와 달라고 하지 않습니까?”

“……네?”

“신조 님은 늘 그러셨습니다. 혼자서 모든 걸 해결하려고 했죠. 그래선…… 그래선 안 되는 겁니다.”

“…….”

“인간이 되셨다고 했죠. 인간은…… 혼자서는 살 수 없어요. 하지만 힘을 합치면 분명, 보다 나은 결과를 만들 수 있어요.”

“하고 싶은 말이 뭡니까?”

“도움을…… 도움을 구하세요.”

“도움? 누구에게…… 설마?”

“네, 당신을 떠난 그들에게.”

“내 말이 들릴까요?”

“어디서든 듣고 있을 겁니다.”

어느덧, 비가 그치고 있었다.

수르트의 절망의 군대가 파도처럼 전선으로 몰려오고 있었고.

더는 시간이 없었다.

조병창이 떠나는 그들에게 매번 거르지 않고 했던 질문들.

-언젠가 이 전쟁을 끝낼 수 있는 때가 온다면 다시 나서 줄 수 있는가?

“신조의 병사들이여, 도와주세요. 도움이 필요합니다.”

“…….”

“제발…… 도와주세요.”

성진의 질문에는 한동안 아무도 답하지 않았다.

쓴웃음을 지은 성진은 이게 당연하다고 여겼다.

오래전 그를 떠났던 사람들이다.

모든 기억을 지우고 다시는 끝없이 계속되는 종말 전쟁에 휘말리지 않으려 한 자들.

이제 와 돌아올 리가 없었다.

“안타깝지만…….”

“아뇨, 됐습니다.”

“네?”

“저길 보세요.”

우웅.

우우웅.

성검회가 펼친 방벽 밑에서 재난을 피하고 있던 신용일과 미치광이들의 몸에서 빛이 퍼져 나왔다.

“어…… 어어?”

“이건…….”

신용일은 몸에서 퍼져 나오는 빛이 거세질수록 이 빛이 무엇 때문에 퍼져 나오는지 알게 되었다.

신호였다.

자신과 연결된 존재의 신호.

이제 되었으니, 길을 터 달라는 신호.

“그렇구나……. 우리가 여기 온 이유는…….”

그들은 길잡이이자 다리였다.

무너져가는 다리 대신에, 거대한 존재들이 지나갈 새로운 다리.

신용일과 미치광이들은 당황하지 않았다.

그저 이 순간,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는 것에 감사했다.

“으아아아아아!”

“으아아아아!”

콰아아아아아앙!

수백에 달하는 인원들이 빛이 되어 사라졌다.

수백의 인원이 원래의 세계로 튕겨 나가는 과정에서 거대한 빛기둥이 형성되었다.

일전의 빛기둥보다 훨씬 더 거대한 기둥이었다.

단 한 줄기의 빛기둥을 타고 작고 동그란 빛들이 내려왔다.

그 빛들은 전장의 곳곳으로 흘러 들어갔다.

그것들이 향한 곳은 바닥과 전장 곳곳에 널브러진 장비들이었다.

이 모든 걸 지켜보던 성진은, 스칸다의 용의 고원에서 검을 심고 있던 용인들을 만났던 날을 떠올렸다.

-병기는 주인의 마음과 힘을 담고 있다는 얘기를 아십니까?

“설마…….”

탄타르빌, 별의 용광로에서 스칸다는 말했다.

-그들을 이곳으로? 아니, 불가능해. 아직은 아니야.

키아아아아아!

짝을 지어 비행하던 비룡의 움직임이 이상해졌다.

성진의 눈이 비룡의 등판으로 향했다.

용구(龍具).

저 비룡은 야생의 존재가 아니었다.

누군가 길들인 것이었다.

비룡의 등판에 빛이 스며들었다.

스으윽.

키아아아아아아아!

가죽옷을 입고 등에 거대한 활을 맨 여인이 나타났다.

그녀는 고삐를 쥐고 이렇게 외쳤다.

-신조 님이 부르신다면…… 또 모르지.

“신조의 부르심을 받습니다!”

비룡이 원래의 주인을 찾아 기쁜 듯이 창공을 되돌아갔다.

여태까지와는 다른 방향이었다.

“밀크 쵸코, 다크 쵸코…… 무사했구나.”

키아아아아아아!

유황으로 된 병사들이 그녀의 비룡을 맞이했다.

화르륵!

“쵸코야, 물어.”

콰직!

성채남보석(星彩藍寶石) 비룡 조련사.

‘우리쵸코는안물어’.

전장의 곳곳에서 같은 일이 벌어졌다.

상대적으로 헐벗은 남자가 나뭇가지를 휘둘렀다.

콰지지직!

콰지직!

“신조의 부르심을 받습니다!”

아스팔트를 뚫고 나무로 된 병사들이 만들어졌다.

대드루이드 ‘드루와드루와’.

“그으어어어! 드루와 냄새가 난다!”

“구린내다! 구린내! 그리운 구린내!”

“도토리 내놔, 인간!”

“탄 내…… 탄 내도 나!”

비가 그치자, 방벽은 해제되었다.

순간, 상황 파악을 하지 못한 성검회는 이게 어떻게 된 일인지 지혜를 가진 자들에게 물었다.

“저, 저들은…….”

“영웅들…… 영웅들입니다. 벌써 60년도 더 된…….”

“말도 안 돼…….”

노인인 그들은 저들을 기억했다.

꽃의 사제들은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그럴 리 없겠지만, 혹시라도 나타날 누군가를 찾기 위해서.

“저, 저기!”

작약이 가리킨 위치엔, 조병창이 서 있었다.

그는 황금으로 된 투구를 손에 쥐었다가 그것을 썼다.

후우우웅.

그의 몸을 그의 갑옷이 둘러쌌다.

“‘병창이는못말려’ 님!”

조병창은 그제야 꽃의 사제들을 알아보았다.

꽃의 사제들은 너무도 늙었기에, 또 조병창이 이곳에 있을 거라 생각하지 못해서 그들은 서로를 알아보지 못하고 있었다.

“작약…… 작약이야?”

“접니다! 어흑흑…… 저예요! 어떻게 여기 계신 겁니까…….”

“그러게.”

“이, ‘일국이는너무해’ 님은…….”

조병창이 고개를 저었다.

“그런…… 이미…….”

“먼저 가 있게 됐어.”

“그렇군요…….”

작약은 슬퍼하지 않았다.

다른 꽃의 사제들도 마찬가지였다.

조병창이 그 이유가 궁금해 물었다.

“슬프지 않아?”

“하하하…… 이 나이쯤 되면 죽음이 자연스러운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래?”

조병창은 작약이 꼬마였을 때부터 보았던 사람이었다.

그런 작약이 이제 조병창의 할아버지라고 해도 믿을 정도로 나이를 먹었다.

기분이 이상해진 조병창에게 작약이 말했다.

“그리고…… 설령 이곳에서 저희가 쓰러지더라도…… 그분께서 기다리고 계시지 않겠습니까?”

“…….”

“우리는…… 당신과의 약속을 지켰습니다.”

“약속? 아…….”

“행복해지기로요. 우리는 행복했습니다. 당신은요?”

조병창이 쓰게 웃었다.

“이제 행복해지려고…….”

꽃의 사제들이 웃었다.

“저희가 돕겠습니다.”

조병창이 고개를 끄덕이고 낮게 말했다.

“신조의 부르심을 받습니다.”

***

성진은 그의 군대가 다시 합류해 준 것도 기뻤지만, 또 다른 사실에 더 희망을 품었다.

‘무기와 갑옷들…… 스칸다에서 온 거라면…….’

“하아…… 하아…… 제발!”

분명히 그것들도 건너왔을 것이다.

성진은 재빨리 전장을 이 잡듯이 뒤지며 무언가를 찾아 헤맸다.

‘……찾았다!’

수르트와 성진의 사이, 널찍한 도로에 박혀 있는 3자루의 검.

성진이 신호하자, 최별과 송하린도 성진의 곁으로 다가왔다.

“형님! 검이…… 제 검이!”

“건너온 거군요!”

성진은 고개를 끄덕였다.

병기가 주인의 마음과 힘을 담는다면, 저곳에 신성이 남아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수르트를 쓰러트리고 로키에게 다가갈 방법이 생긴다.

“저기까지 가야 해요!”

“하지만…… 수르트가…….”

검을 쥐는 순간, 수르트와 맞서야 했다.

그것은 문제가 없었지만 검을 쥐지도 못한 채로 맞닥뜨릴 수도 있었고 검을 찾는다 하더라도 힘이 돌아오지 않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해야 했다.

“에이…… 모르겠다! 갑시다, 형님!”

이 순간에도 사방에 깔린 장비의 주인이 계속해서 나타나고 있었다.

“신조의 부르심을 받습니다!”

“신조의…….”

화르륵!

발이 빠른 유황 인간들이 성진 일행을 막아섰다.

그어어어!

스릉-

치이익!

펄스를 사용해도 수가 많아 좀처럼 돌파가 힘들었다.

설상가상으로, 송하린이 성진에게 비보를 알렸다.

“혀, 형님…….”

“네?”

“수르트가 우리를 보고 있습니다…….”

성진이 송하린의 말에 눈을 돌리자, 수르트와 시선을 마주했다.

수르트가 이글거리는 눈을 거두지 않고 말했다.

“찾았다…….”

이렇게 되면 시간 싸움이었다.

3자루의 검에 도달하느냐, 아니면 수르트의 화염에 휩싸여 죽느냐의 싸움.

촌각을 다투는 그때, 성진이 멈칫했다.

최별이 소리쳤다.

“신조 님! 멈추면…….”

송하린도 최별과 같은 말을 하려다가 성진이 보고 있는 것을 확인했다.

“어? 이거…….”

“왜 그래?”

“이거 내가 아는 건데…….”

덜그럭.

덜그럭거리는 소리와 함께 송하린과 성진이 보고 있는 갑옷이 꿈틀거렸다.

찌그러진 갑옷과 구멍 뚫린 로브.

그리고 그 주변에 있는 가죽 갑옷과 경갑옷, 로브를 비롯한 병기들이 꿈틀거렸다.

수르트가 손을 뻗었다.

“신조오오오오!”

화르륵.

콰아아아아아아아!

그의 손에서 거대한 불길이 일어나 성진을 덮쳐왔다.

“형님!”

“위험해요!”

최별과 송하린이 성진의 앞을 막아섰지만, 화염을 막을 수 있을 것 같지는 않았다.

그때, 그들의 앞에 거대한 산이 일어났다.

콰아아아아아아!

황금으로 빛나는 거대한 산은 수르트의 불길에 녹아내리지 않고 그것을 거뜬히 받아내었다.

찌그러진 갑옷의 주인.

“아어.”

안녕.

전(前) 활금강(活金剛) 선의 날개.

“신조의 부르심을 받습니다!”

휘이이잉!

심대형이 부리는 칼바람이 일어나 전장의 뜨거운 열기를 물러나게 했다.

“신조의 부르심을 받습니다!”

“신조의…….”

좋은 친구들.

이번엔 정재민, 송예지, 김상혁. 그리고 최혜연까지.

전부 함께였다.

“신조! 저기까지 가면 되는 겁니까?”

“아하하! 멀다, 멀어!”

길을 뚫어야 했다.

그리고 모두 성진의 길을 뚫기 위해 나서 주었다.

이선익이 투구의 안면갑을 내렸다.

후아앙!

황금빛의 정광이 그의 안면갑 사이로 흘러나왔다.

쾅! 쾅!

단단한 방패를 몇 번 두드린 그가 목을 흔들어 몸을 풀었다.

우드득.

그가 앞에 서자, 성진 일행은 안정감을 느꼈다.

이선익이 돌아보지 않고 말했다.

“우이아 아, 이아 이.”

우리가 앞, 네가 뒤.

수르트가 불쾌해진 표정으로 이곳을 향해 걸어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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