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8화
외곽을 돌던 차량 몇 대가 본대에 붙었다.
영종도에 들를 때도 적은 병력은 아니었지만, 행렬이 이렇게 웅장하게 느껴지진 않았었다.
전투 차량이 곱절로 늘어났다.
일전에는 한 차량에 사람들을 쑤셔 넣다시피 했는데 이제는 여유가 있게 인원을 편제해도 도리어 차량이 남을 정도였다.
“우와…… 어마어마하네요. 저게 그거예요?”
“묠니르?”
“네! 그런데 한 대밖에 없어요?”
“그런 것 같습니다. 궁니르의 개량형인 모양인데 에너지를 얼마나 잡아먹을지 상상도 안 되네요.”
“아까 듣자 하니 등불 대원이 다닥다닥 달라붙어야 크게 한 방 쏘아 낼 수 있다고 하더라고요.”
“궁니르도 그랬지만…… 효율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병기네요.”
“그래도 파괴력만큼은 일품이잖아요.”
이민상과 최별이 대화를 나누는 사이, 성진은 생각에 잠겼다.
최후의 계획이 코앞까지 다가왔다.
‘승산이 있을까?’
그도 확신할 수 없었다.
자신과 추종자들의 계획은 어느 정도 결실을 맺고 있었다.
병기와 차량, 진입로까지.
오히려 너무 잘 풀리고 있어서 불안할 정도였다.
‘……만일.’
만일, 실패한다면.
실패한다면 어떻게 될 것인가?
마침표를 찍어야 하는 계획에서 도리어 막힌다면, 다음 수가 있을까?
‘아니, 없어.’
다음 수 같은 건 없었다.
이미 영원 동안 계속된 싸움이었다.
이 시점까지 싸움을 이어 올 수 있었던 건 그만큼 많은 힘을 허비했기 때문이었다.
그래도 기대할 만한 점은 로키의 힘도 그처럼 바닥을 보일 거라는 점이었다.
지금은 성공할 거라고 믿어야 했다.
성진은 불안한 마음을 다잡으며 차량에 탄 인원을 눈에 담았다.
5명이 탄 차량은 인원 편제를 바꾸지 않고 그대로 진행되었다.
오히려 강자들이 모여 있으니 허무하게 각개격파 당하지는 않을 거라는 기대도 있었다.
“신조 님, 불안하십니까?”
뒷좌석에서 말을 꺼낸 것은 조병창이었다.
성진은 그를 물끄러미 보다가 그만 들을 수 있는 채널에 답했다.
“네, 조금.”
“신조 님이 세우신 계획이니 잘만 진행된다면 승리할 수 있을 겁니다. 여태 우리는 그렇게 승리해 왔잖습니까?”
“마지막이라 그렇네요.”
“공부를 아무리 열심히 해도 시험 날이 다가오면 떨리죠. 같은 이치 아닐까요?”
“비슷하기는 하겠네요.”
성진과 조병창이 옅게 웃었다.
조병창은 궁금하던 것을 질문했다.
“아스가르드는…… 아스가르드의 신들은 전부 죽은 겁니까?”
“아시잖습니까. 아스가르드는 제가 찾은 이후 무너졌다는 걸. 라그나로크 이후에 하위 신들만 남았었고 그들은 시간이 흐르며 신성이 흩어져 소멸했습니다.”
“그야말로 신이 없는 세상이군요. 신의 도움도 기대할 수 없다니.”
성진이 빙긋 미소 짓자 조병창은 자신이 말실수를 했다고 생각하고 사과했다.
“이런, 멀쩡히 신조 님과 광대가 살아 있는데…….”
“아닙니다. 신조든 광대든, 신성이 흩어져 일반 각성자보다 조금 특출 날 뿐, 다를 바가 없습니다.”
“신조 님…….”
“제 계획이 실패한다면, 모두에게 어떻게 이 빚을 갚을지 모르겠습니다.”
“왜 그렇게 생각하십니까? 신조 님. 당신께서 우리를 억지로 부리신 게 아닌데도…….”
“나를 돕느라 영원히 싸워야 했잖습니까?”
“그것에 죄책감을 느끼십니까?”
“느끼지 못한다면 제가 거짓말을 하는 걸 겁니다.”
조병창은 온화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의 미소에 성진은 편안함을 느꼈다.
성진은 전장에서 종종 그와 이런 대화를 나누었던 기억이 있었다.
“신조 님, 당신은 오랜 세월 인간을 보아 오셨다고 하셨죠? 정확히 얼마나 오랜 세월 관찰하신 건지 기억하십니까?”
“기억할 수 없습니다.”
“왜죠?”
“센 적도 없지만, 셀 수도 없었으니까.”
“그렇겠군요. 그래서, 인간이 어떤 존재인지는 알게 되셨습니까?”
“안다고 생각했는데. 알게 됐다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전혀 모르겠군요.”
“재밌는 대답이네요. 신조 님, 당신의 수십, 수천만 병사들이 당신을 떠난 이유를 아십니까?”
조병창은 뜬금없이 떠나간 병사들에 대한 얘기를 꺼냈다.
이 이야기는 성진도 유쾌하지 않은 주제였다.
그들이 떠난 건 신조의 부덕(不德)의 소치(所致)였으니까.
“떠난 이유는 제각기 다르겠지만, 그것을 모두 관통하는 뿌리는 같겠죠. 제가 미덥지 못했으니까.”
“정확히 알고 계시는군요.”
“저를 놀리는 겁니까?”
“하하, 농담입니다. 그래도 놀리려는 의도는 아니었습니다. 그리고 사실도 아니고요.”
“이번엔 위로군요.”
“아니요. 정말입니다. 에인헤야르는 당신을 미워하는 게 아니었습니다. 도리어 좋아했지.”
“그럼 왜 저를 떠났습니까?”
“지친 거지요.”
“지쳤다?”
“제가 매번 옆에 붙어 있다고 착각하고 있는 모양이신데, 우리는 당신처럼 신이 아닙니다.”
조병창이 무슨 말을 하는 것인지 성진은 잠시 이해하지 못하다 곧 그 뜻을 알게 되었다.
“매번 기억을 되찾을 때마다 영원토록 계속된 싸움이 아직 끝나지 않았고 종말 전쟁의 와중인 것을 알게 된다면…… 어떤 기분이겠습니까?”
“…….”
“회의감이 찾아오는 것이죠. 내가 어떤 삶을 살았건, 종말 전쟁이 계속되는 한 그것은 먼지 한 톨의 가치조차 없는 삶이니까. 이번만 그런 것이 아니라, 앞으로도 쭉 가치 없는 삶을 살아야 하니까.”
조병창의 말을 듣고 성진은 눈을 감았다.
싸움에 끼어든 이상, 평범한 삶을 살 수 없다.
영원히 신조를 졸졸 쫓아다니며 거짓된 삶을 살다 부름에 응해야 했다.
어떻게 보면 인간에겐 저주나 다름없었다.
성진도 그것을 짐작하고 있었기에 떠나는 이들을 말리지 않았다.
어떠한 사명감과 정의도 시간 앞에서는 흩어진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조병창이 그런 성진을 보며 말을 얹었다.
“에인헤야르의 일원이 떠날 때, 전통을 기억하십니까?”
“기억합니다.”
“헤이드룬 님의 젖 대신 나오는 꿀 술로 목을 축이게 한 후, 신조 님이 고생했다고 말씀해 주셨죠. 참, 그립습니다.”
“…….”
“하하하…… 헤이드룬 님이 귀찮은 일을 시킨다며 신조 님을 타박할 때는 어찌나 웃기던지…….”
“전부 기억납니다.”
“……떠났던 이들도요?”
성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어제처럼 생생합니다. 그들의 이름, 그들의 표정 하나까지도.”
“한 번도 그 전통을 거르지 않으셨죠. 지금 남아 있는 사람들도 그런 당신의 모습에 이끌린 것일 수도 있습니다.”
“지금에 와서는 소용없는 일이죠…….”
“그렇게…… 생각하십니까?”
“이제는 제 곁에 없잖습니까.”
조병창은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그건 그렇죠. 그런데 그건 기억하십니까?”
“뭘…….”
“그들이 떠날 때, 제가 그들에게 물었던 것 말입니다.”
“아, 그러고 보니…….”
성진이 과거의 조병창을 떠올렸다.
수염이 덥수룩하게 난 미남.
그가 꿀 술을 마시고 빈 잔을 든 여인에게 물었었다.
-호이라, 언젠가 이 전쟁을 끝낼 수 있는 때가 온다면…… 다시 나서 줄 수 있는가?
“……모두 싫다고 했죠.”
“잘못 기억하고 계십니다.”
“네?”
“조건을 붙였죠.”
입술이 빨갛게 물든 여인은 조병창의 질문에 답했다.
-싫어. 이젠 내 삶을 찾을 거야.
-……그렇군.
-그래도…….
여인은 신조를 눈에 담았다.
-신조 님이 부르신다면…… 또 모르지.
“그랬던가요?”
“뭐, 그런 자식들도 있고 아닌 자식들도 있고…… 다 그런 거죠.”
“다들 어딘가에서 잘 살고 있겠죠.”
“……그렇겠죠.”
삐익.
-곧 해저 터널의 입구로 진입합니다. 정찰조 확인 결과 현재까지 이상 없음.
손성일의 우렁찬 음성이 전해졌다.
-진입! 서울로 파고든다!
***
푸른 하늘.
풀을 뜯는 소와 염소.
산양의 젖을 짜며 축복을 노래하는 목동.
“와하하하! 그래, 그 말이 맞지!”
“그래, 그런데 또 무슨 일이 있었냐면…….”
빽빽이 들어찬 술집.
하루를 진한 맥주로 마감하는 사람들.
세계가 매일, 축복 속에 태동했다.
대륙의 심장이 박동하는 것이 느껴지는 하루하루.
이제는 허락된 몇몇 사람을 제외하곤 누구도 접근할 수 없는 성역(聖域)에 새가 날아들었다.
새는 온통 검은색으로 되어있었다.
까마귀였다.
까아악!
-……맙소사.
까마귀가 신비롭게 생긴 나무를 노려보았다.
-살아 있었다고?
까아악!
까마귀 울음을 들은 나무는 불쾌한 기색을 내비쳤다.
-금수 흉내는 그만하시지요.
까마귀가 곧 사람의 목소리를 내었다.
“허허허, 못 본 사이에 꼬마 아가씨가 꽤나 성숙해졌구먼.”
까마귀의 입에서 흘러나온 건 뜻밖에도 오딘의 음성이었다.
-당신은 내 모습을 내가 태동했을 무렵에 본 게 전부이니 그렇지요.
“그래도 아주 훌륭하게 자랐어. 몰라보게 말이야.”
-당신이 축복을 내렸으니까요. 일개 세계령(世界靈)인 내가 신성을 얻은 걸 보면.
“그렇지. 잘 알고 있군.”
-무슨 일로 온 거죠? 그보다 라그나로크 때 휩쓸린 것 아니었나요?
까마귀가 슬픈 어조로 대답했다.
“나의 육신은 확실히 죽었네. 하지만 정신은 조각내어 후긴과 무닌에 나누어 숨게 했지.”
-무슨 짓을…… 설마, 라그나로크 이전에 이미 신성을 잃었다는 건가요?
“뭐, 지금은 그게 중요한 게 아니지.”
-어쩐지 당신이 펜리르에게 그렇게 쉽게 목숨을 내줄 신이 아닌데…….
“칭찬인가?”
-교활하다는 거예요.
“칭찬이군.”
까아악!
까마귀가 기쁜 듯이 날갯짓했다.
그리고는 별 나무에 날아와 가지에 앉았다.
-내 몸에 앉지 마세요!
“손님을 푸대접하는 건 예의에 어긋나는 일이지. 안 그런가?”
-당신은 불청객인걸요.
“불청객도 손님은 손님인 것을.”
-……무슨 짓을 꾸미는 건가요? 이렇게까지 살아서…….
“살다니? 분명 나는 죽었다고 말하지 않았나?”
별 나무에서 곧장 대답이 들려오지 않았다.
무언가 생각을 하던 나무의 주인은 뭔가를 깨닫고 탄식했다.
-이런…… 약속!
“하하하…… 그래, 후긴과 무닌은 약속의 전령이지. 나와 약속한 둘이 약속을 지키는지 어기는지 확인하는 존재일 뿐이야.”
나무에 깃든 여인.
그녀가 탄생했을 때, 애꾸눈 노인이 찾아왔었다.
그 당시, 노인은 이렇게 말했다.
-참으로 순수한 아이구나. 종말에 불타기에는 너무도 가엾을 지경이야…….
그녀의 탄생 초기, 그녀는 이렇게 대답했다.
-오딘이여, 나는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죽음은 당연한 것입니다.
-어째서지? 어째서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거야?
-그건…… 창조주가…….
-아이야, 이렇게 하는 건 어떨까? 너에게 축복을 내려 주마. 너에게 찾아올 종말의 순서를 바꾸어 주마.
기겁할 소리였다.
-무슨 소립니까, 오딘? 실성한 겁니까?
-나는 그럴 힘이 있다. 너에게 축복을 내리면 너는 신이 될 것이다.
-신…… 제가 신이 된다고요? 종말에 불타지 않고?
-종말은 장담할 수 없다. 단지 순서만 뒤바뀌는 것이니까. 이후의 일은 내가 예정한 자가 해결하겠지.
-무슨 속셈이 있군요…… 나를 신으로 만들어서 뭘 하려는 겁니까?
-그건…….
그녀의 상념이 끝이 났다.
까마귀가 가지에 앉아 말했다.
“약속을 지킬 때다.”
-철두철미하군요. 정신을 쪼개 약속의 이행을 지켜 볼 줄이야…….
“내 축복 덕분에 신이 되었으면서 약속을 지키지 않을 생각이었나?”
까마귀의 눈빛이 불길해졌다.
붉은 눈을 한 까마귀는 아무 힘이 없음에도 위엄이 깃들어 있었다.
그녀는 까마귀에게 답했다.
-천만에요. 난 그런 욕심은 없어요. 내 땅에서 아이들이 행복하게 살아가는 것 말고는 바라는 게 없어요.
“그러니까.”
-…….
“이제 떠날 때잖나? 신성을 내려놓고.”
나무는 물기 어린 목소리로 말했다.
-이만큼 지켜보았으니, 된 거겠죠? 그렇죠, 오딘? 당신은 세상에서 가장 지혜로운 자잖아요. 가르쳐 줘요!
“가장 지혜롭다니, 오랜만에 들으니 낯간지럽군. 나는 우매한 늙은이일세.”
-내가…… 내가 없으면 아이들은…….
“물론, 그게 질문에 대답할 수 없다는 말은 아닐세. 어머니여, 아이들은 당신이 없어도 당신이었던 들판과 강에서 번영할 것이라네.”
-……아이들에게 내가 더는 필요치 않다는 거군요.
“오만한 생각이지. 언제까지 그들의 곁에 머물며 길을 일러줄 거라는 생각은.”
-오딘…… 그렇군요. 정이 들어 버린 거예요.
여인은 말했다.
-인간들에게.
“하하하! 나 또한 그것을 피하지 못했으니 그대라고 별수 있나? 그래서, 약속은 지키겠지?”
-……네. 이미 준비하고 있어요.
까마귀가 잠시 말을 멈추었다가, 어렵게 말했다.
“힘든 결정을 했군. 그들을 이끄는 게 보통 일은…….”
-아뇨.
“……힘들지 않았다고?”
-그게 아니에요. 저들은 내가 이끈 게 아니라는 말이에요.
까아악!
까마귀가 웃었다.
“역시, 인간은 재밌어.”
-나는 아이들이 원하는 것을 들어준 것뿐이에요.
“그랬군…… 그랬어.”
-당신 뜻대로 되어 좋겠군요.
“이를 말인가.”
-이렇게까지 해서…… 당신이 얻는 것이 무엇이죠? 후긴이든 무닌이든 정신의 조각에 불과하다면 종말 전쟁이 끝난다면 자연히 사라질 텐데…….
“사라진 건 나뿐만은 아니지. 모든 신들이…… 사라지지.”
-…….
“창조주에게서 자식들을 독립시켜야 하지 않겠나?”
-당신은 알다가도 모를 자군요. 마치……
나무는 적당한 단어를 생각하다 딱 맞는 단어를 떠올렸다.
-인간처럼.
“하하, 그런가? 칭찬인지 흉인지 모르겠군. 아무래도 오래 지켜보니 닮아 간 모양이야.”
까아악!
까마귀가 가지에서 날아올랐다.
한참이나 창공을 날던 까마귀가 밑을 내려다보았다.
대군.
수많은 사람이 초원에 병영을 설치하고 무언가를 기다리고 있었다.
***
“어서 오…….”
“왜 말을 하다 말아요?”
신아름은 평온한 일상을 누리고 있었다.
분명, 방금까지는.
이 여자가 찾아오지 않았었으니까.
“나가요, 엄마가 보시겠어요.”
“내가 부끄러워요?”
“부끄러운 게 아니라 엄마가 놀라서 쓰러지실까 봐 그렇죠.”
“시커먼 구멍에서 기괴한 괴물이 쏟아지는 세상인데 얼굴이 반만 늙은 여자라고 특이할까요?”
“충분히 특이해요.”
“그거, 칭찬?”
“칭찬이었으면 특별하다고 했겠죠.”
“음…… 그렇네? 나가면 같이 나가는 거죠?”
“네. 엄마! 나 잠깐만 아는 사람 와서 나가요!”
주방에서 대답이 흘러나왔다.
“그래, 나갔다 와. 엄마가 가게 보고 있을게.”
신아름을 찾아온 여인은 헬이었다.
신아름은 헬이 마치 지인이라도 되는 것처럼 대하는 데 어려움이 없었다.
종이의 양면처럼, 성진이 기억을 되찾자 신아름의 기억도 돌아온 것이었다.
“걸을까요?”
“걷고 있네요.”
“오랜만이죠. 베르드 폴니르?”
신아름이 가만히 멈춰 서서 인상 썼다.
“나를 그렇게 부르지 말아요. 나는 신아름이에요.”
“신아름? 그 이름이 마음에 드나 보네요?”
“당연하죠. 그게 내 이름이니까.”
“으흠…… 그렇구나.”
“날 왜 찾아온 거죠?”
“최성진, 찾고 있죠?”
“…….”
헬의 말대로였다.
최성진은 하루아침에 사라졌다.
그는 서울에 발생했던 게이트를 틀어막고는 자취를 감추었다.
땅으로 꺼졌는지 하늘로 날아간 건지 알 수가 없었다.
분명, 그녀에게 돌아오겠다는 말은 남겼지만 불안한 건 당연했다.
“오빠가 어디 있는지 알아요?”
“오빠라, 재밌네요.”
“헬!”
“언제부터 흐레스벨그를 그렇게 불렀나요?”
“…….”
“당신…… 기억을 찾은 게 이번이 처음이죠?”
신아름이 대답하지 못했다.
그녀의 말은 사실이었으니까.
“그야 당연하겠지! 그가 말하지 않았으니까!”
성진은 종말 전쟁을 시작하고 나서, 단 한 번도 베르드 폴니르를 찾아가지 않았다.
그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짐작할 수 있는 가장 간단한 이유가 있었다.
“그는 당신이 살아가길 원했으니까.”
“그만…….”
“당신이 아무 걱정 없이, 영원히 종말과 함께하는 운명이라는 건 알 수 없도록. 그렇게, 고통받지 않도록.”
“그만해요!”
“참으로 비겁하군요, 베르드 폴니르!”
“날 더러 어쩌라고!”
신아름은 혼란스러웠다.
자신이 베르드 폴니르라는 신성을 가진 새였고, 창조주의 벌을 받는 중이라는 사실을 깨닫자 몸서리치게 두려웠다.
차라리 이 사실을 알지 못했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들 만큼.
“나는…… 나는 그때의 그 선택을 후회해요……. 됐어요? 이게 당신이 원한 답인가요, 헬?”
“미련하기는…….”
“뭐?”
“당신은 그 선택을 후회하면 안 돼.”
“그게 무슨 말이죠?”
“흐레스벨그는 당신의 선택이 옳았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영원토록 싸우고 있으니까.”
“…….”
“그는 당신이 틀리지 않았음을 증명하려 하는 거야.”
“왜…… 왜…….”
“나야 모르지만……. 적어도 그를 외면하는 건 너무 비겁한 거 아닌가?”
신아름과 대화를 나누며 기분이 나빠진 헬은 통보하듯 말했다.
“당신을 위해 싸우는 신조가 불쌍하네! 난 이만 가…….”
“어째서…….”
“뭐?”
“그 시간 동안 한 번도 내게 오지 않았었는데…… 왜 이번에는 나를 찾았을까요?”
헬이 그 얘기를 듣고 발걸음을 돌리던 와중에 멈춰서 대답했다.
“글쎄, 분명 기억이 없었을 테니까 일부러 접근하진 않았겠지. 아마, 약해진 걸 거야. 마지막 싸움을 앞두고.”
“…….”
“무서워진 거겠지. 영혼이 그걸 느끼고 있는 거야. 그래서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니 당신을 찾은 거 아닐까?”
신아름은 입술을 깨물며 말했다.
“우리 오빠…… 어디 있어요?”
“나 참…….”
헬이 검지를 위로 세웠다.
“…….”
“시간 날 때, 하늘을 봐.”
***
[제목 : 마지막 싸움이라니, 이걸로 종말 이후도 섭종임?]
해외 섭 한 애들 상대적 박탈감 개 오지겠네. ㅋㅋ
-올빼미 잘못이네. ㅡㅡ 게임 클리어하면 전 세계적으로 욕 오지게 먹을 듯.
-솔직히 근데 이번 데자뷰의 행보는 ㅈㄴ게 마음에 안 들었음. 퍽 하면 섭종에 미로 서버는 햄스터나 마찬가지였고. 안 그랭?
-팩트) 윗댓은 데자뷰가 다음 게임 내면 바로 예구한다.
-당연한 걸. ㅋㅋㅋ
[제목 : 올빼미는 보시오.]
게임 끝내지 마라. ㅡㅡ 해외 섭 재오픈하면 거기서라도 하게!
-어림도 없죠. ㅋㅋ
-응 한국 섭처럼 반년 넘게 닫혀 있을 듯. ㅋㅋ
-나닛? 게임성은 최강인데 운영이 시궁창인 게임이었다고?
[제목 : 이래서 한국인들은 ㅉㅉ]
게임을 드럽게 잘해요.
결국, 등불이든 올빼미든 한국사람 아니냐?
우리의 겜잘 DNA는 어디 안 가지~
-그래도 올빼미 때문에 잘하고 있던 게임 섭종할까 봐 짱나네;
-염치 없는 색히 ㅋㅋ
-아, 뭐 ㅋㅋ 다들 똑같은 마음 아니야?
-응, 너만 짐승이야~
[제목 : 나 신인데, 너희들에게 할 말이 있어.]
이 게임, 사실은 현실이야.
-컨셉 특이하누.
-이딴 글 싸면 돈이 나오냐, 아니면 정부가 시켜서 하는 거냐?
-응, 그래. 게임이 현실이라고 믿고 싶겠지. ㅉㅉ 인생을 살아라, 제발!
-니가 신이면 우리는 병신이다!
-그건 맞지. ㅋㅋㅋ
-그건 ㅇㅈ이지. ㅋㅋㅋ
[제목 : 진짜 신인데, 나한테 욕하는 놈들 다 캡처해 놨다.]
다음번에는 취업률 바닥, 출산율 바닥, 고령화 사회인 세계에 윤회하게 해 줄 거다.
-그거 완전 헬조선이잖아. ㅋㅋㅋ
-뭐야! 이거 몰카인가? 이상한데요? 저…… 벌써 그런 곳에 윤회한 것 같은데…….
-울지 말고 말해 봐. ㅋㅋ
-진짜 신이면 왜 내가 여자 친구가 없는지 해명해!
-그건 니가…….
-닥쳐! 니가 해명하지 마!
피식.
타자를 두드리던 남자가 웃었다.
“뭐야 이 미친놈은…… 존나 웃기네.”
[제목 : 아, 이거 안 되겠네. 으라차차!]
후.
자, 하늘을 봐봐.
얘들아.
이제 믿지?
-이제 그만해라 노잼.
-놀아 줘서 신났누;
-아 ㅋㅋ 난 반지하라 하늘 못 본다고. ㅋㅋ
-야 시발.
-뭐야.
-뭔데.
남자가 인상을 찡그리고 혼잣말했다.
“뭐기에, 저 지랄들이야?”
남자의 자취방에 빛 한 점 들지 않게 만든 주범인 암막 커튼.
남자는 자리에서 일어나 암막 커튼을 열어젖혔다.
스으윽.
“……어?”
하늘은 평소와는 달랐다.
“뭐야?”
남자가 뒤로 돌아 게시물을 확인했다.
게시물의 말미에는 분명 이렇게 적혀 있었다.
-이제 믿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