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7화
이민상의 영혼에 새겨진 낡은 기억.
그는 나약하고 작은 존재였다.
인간이었으니까.
세계를 구성하는 요소 중 흔하디흔한, 그리고 하찮디하찮은 요소.
길바닥의 돌멩이처럼 널려 있는 사람 중 1명이었다.
그는 거기에 납득할 수 없었다.
‘인간이기에 한계가 있다고?’
피지배자.
지배받는 것이 어울리는 종족.
신과 거인, 그리고 각종 이종족의 틈바구니에 껴서 하루를 살아가는 것에 감사함을 느끼는 종족.
‘불합리해.’
세상엔 더 큰 이치가 있다.
볍씨 한 톨, 비를 피할 지붕보다 훨씬 큰 이치.
이민상의 영혼의 원형인 ‘이름 없는 자’는 단 하루를 살더라도 그런 이치를 궁구하고 싶었다.
이름 없는 현인은 혈기가 가장 왕성한 시기인 그의 나이 17세가 되던 해에 출가했다.
처음에 정한 목표는 이 세계가 어떻게 생겼는지 알아보겠다는 것이었다.
허무맹랑하게도 그 목표를 이루기 위한 계획이란 것은 무척이나 간단했다.
방향을 정하고 전진하는 것.
앞으로만 나아가다 보면 언젠가 자신이 처음 내디딘 발자국을 마주할 수 있을 거라는 미치광이나 할 법한 생각을 했다.
계획은 당장에 실행에 옮겨졌다.
꾸욱.
통통한 발바닥이 지면을 밀어냈다.
첫걸음은 힘찼다.
두 번째로 디딘 걸음은 그보다는 덜했고.
그는 걸으며 많은 사람을 마주쳤다.
생명의 근원인 어린아이부터 눈꺼풀을 들어 올리는 것조차 힘겨워 보이는 노인.
가진 게 많아 자신이 누리는 것도 모자라 남에게 나누는 부자와 하루를 견디는 것도 버거운 거지.
무희로 이름난 선이 고운 남자와 전장에서 피를 마시며 살아가는 강인한 여자.
광대와 살인자, 창부와 장의사.
처음에는 그가 마주했던 사람들을 종류별로 분류하려 했다.
그러나 곧 그것이 쓸모없는 짓임을 깨달았다.
‘모든 인간은 제각기 다르다.’
다름을 인정하는 것.
그의 나이 서른 무렵이었다.
어느새 그의 수염은 덕지덕지 자라 커다란 밤송이가 걸어 다니는 것 같았고 의복은 해져 잘못 만졌다가는 부스러질 것처럼 보였다.
그는 괴인이라고 불리었다.
세상 끝이 궁금해 무작정 걷는 남자.
지저분한 수염과 무성히 자란 머리칼이 시야를 좁게 했지만, 상관없었다.
진리는 좁은 눈으로도 날아드는 빛과 같았으니까.
그는 걸었다.
걸음이 무거워지기 시작했다.
어느새 풍경이 달라져 있었다.
“어디를 가는 겁니까?”
이마에 문신이 있는 자가 물었다.
대답은 이랬다.
“글쎄요.”
“단단히 미쳤나 보군.”
그는 어느새 광인으로 불렸다.
어떻게 불리든 크게 개의치는 않았다.
평판이란 것도 자신을 옭아매는 족쇄에 불과하다고 생각했으니까.
비가 오면 비를 맞고 떨었고, 눈이 오면 눈을 맞고 쓰러졌다.
그리고 다음 날 일어나 다시 걸었다.
기이한 일이었다.
피죽도 못 얻어먹은 몰골로 걷는데도 신기하게 활력이 솟아났다.
젖어도 춥지 않았고 눈발에 얼어붙지도 않았다.
더위 따위는 애초에 장해조차 되지 않았고.
걸음이 조금 더 무거워졌다.
꾸직.
이제는 돌바닥에도 발자국을 새길 정도였다.
그는 이제 주변을 보며 걸을 여유가 생겼다.
“우, 우우우.”
이아악!
원숭이가 그를 보며 반갑다는 듯이 다가왔다.
그는 원숭이의 울음을 내뱉으며 반겼다.
그는 어느새 자연과도 대화를 나눴다.
새가 다가오면 새소리를 냈고, 뱀이 다가오면 뱀의 소리를 내었다.
동물들은 예민한 편이었다.
생태계는 그들에게 무자비했으며 방심하면 목숨을 앗아갔으니.
그들은 위협을 감지하는 능력이 탁월했다.
그런데, 모든 동물이 이름 없는 자를 좋아했다.
그가 위험하지 않다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는 어느 날은 요정의 세계를 보았고, 또 어느 날은 난쟁이의 세계를 보았다.
어떤 날은 땅 밑에 사는 존재들을 보았고, 또 어떤 날은 하늘에 사는 존재들을 보았다.
모두 각자의 선택에 책임을 지며 살아간다.
그것을 깨달은 그의 나이.
알 수 없음.
‘얼마나…… 걸은 거지?’
그는 혼란스러웠다.
불현듯, 온몸에 소름이 끼쳤다.
‘나는 뭘 하는 거지?’
자신의 삶은 숭고하고 최선을 다해 살아가는 다른 이들의 삶은 무가치한가.
선택은 비합리적이며 부정한 것을 만들어 내는가.
과연.
‘과연 그런가?’
자신은, 그저 선택을 포기한 것은 아닌가.
“허억…….”
신기한 일이 일어났다.
평생을 걸어온 길.
걷기 위해 살아왔던 그의 길이 어느새 보이지 않았다.
겁을 먹은 것이었다.
그의 걸음은 이제 너무도 무거워져 단 한 걸음도 더 내디딜 수 없었다.
촤아악!
실의에 빠진 그를 비웃기라도 하듯, 샘에서 누군가 나타났다.
이상한 일이었지만, 세상에 이상한 일이 한둘도 아니고 평생을 그런 것들을 보고 산 그는 갑자기 나타난 이를 물끄러미 쳐다보기만 할 뿐이었다.
“어디를 가는가?”
“어디? 내가…… 어디를 가고 있었지?”
그는 혼란스러워 보였다.
그러다, 문득 답을 내렸다.
“어디든…… 어디든 가고 있습니다.”
“…….”
촤아아악!
대답을 들은 자는 거대한 몸을 일으켰다.
“반갑네. 나는 지혜의 샘을 관장하는 거인, 미미르일세.”
“거인?”
“줄곧 자네를 보고 있었지. 만난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고.”
“나는 당신을 처음 봅니다.”
“아니, 난 일전에 자네에게 분명히 물었네. 어디를 가고 있느냐고.”
기억이 나는 것 같았다.
얼굴에 문신이 있던 자.
지금 보니 자신을 미미르라고 소개한 저자에게도 같은 문신이 있었다.
“당신이었군요. 나에게 질문을 던진 것은.”
“세상 끝을 보겠다는 미치광이에게 관심을 가지는 게 흔한 일은 아니지.”
“미치광이라…… 내 삶은 덧없는 것이었을까요?”
“글쎄…… 그건 모르겠으나 잠시 들어와서 쉬었다 가지 않겠나?”
“쉬었다…… 가라는 말씀입니까?”
“그래. 지쳐 보이는데.”
부르튼 발은 앞으로 나가지 못했다.
“걷는 게 무서워졌습니다.”
“그런 일도 다 있군. 하지만, 그것도 다 마음에 달린 일 아니겠나? 어서 샘에 들어와 몸을 씻겠다고 생각해 보게. 그럼 한결 나아질 걸세.”
“그럴 리가…….”
번쩍.
그의 발이 문자 그대로 번쩍 들렸다.
가만히 서서 쩔쩔매던 그가 어처구니없어 할 정도로.
“세상일은 모두 뜻대로만 되는 것은 아닐세. 거인도, 신도, 인간도.”
“……들어가겠습니다.”
지혜의 샘을 지키는 미미르가, 오딘 이외의 인물에게 처음으로 샘을 내주었다.
그가 몸을 씻는 도중, 미미르가 그에게 물었다.
“이름이 뭔가?”
“이름? 꼭 있어야 하는 겁니까?”
“필요하지 않을까? 누군가는 당신을 어떻게든 정의해야 하니까.”
“정작 나에겐 쓸모가 없습니다.”
“하하하.”
“삶은 결국 내 연속된 선택으로 인해 만들어지는 겁니다. 그런 삶이 쌓여서 세계가 완성되는 거고요.”
“그게 자네가 깨달은 건가?”
“네, 제가 깨달은 바로는 그렇습니다.”
미미르가 팔짱을 끼고 총기 어린 눈을 빛냈다.
논쟁을 벌일 때, 설파할 때 그는 종종 이런 눈빛을 보내곤 했다.
“반만 깨달은 셈이로군.”
“어째서죠?”
“자네 말은 틀리지 않았어. 개인의 선택이 세계를 만들지. 하지만, 그렇다면 세계가 이렇게 복잡하게 굴러가지는 않겠지.”
“말씀하시고자 하시는 바가 무엇입니까?”
“선택은 교차하네. 인간 1명, 새 1마리, 말 1필, 그리고 신 1명까지도 모두 선택을 내리니 어찌 선택이 부딪히지 않겠는가?”
“…….”
“선택이 부딪혔을 경우 대립하거나 순응하거나 감화되거나…… 뭐 그런 거지. 세상은 그렇게 정반(正反)의 굴레에서 합(合)으로 나아가는 것이야.”
“그렇다면 이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무엇이지?”
“선택의 가치가 다르다는 것. 인간 1명, 새 1마리, 말 1필…… 그들의 선택을 전부 합친 것보다 신 1명의 선택이 더 큰 가치를 가진다는 것.”
“음…… 그건 생각해 볼 문제군. 내가 그대의 선택에 충실하면 그뿐이라고 대답한다고 자네가 만족할 것 같지는 않아서.”
“네, 그렇습니다.”
“그럼, 조금만 더 나와 이야기를 나누며 쉬게나.”
조금만은 수백, 수천 년의 시간을 말함이었다.
미미르는 샘에 어느 날 찾아온 인간에게 이끌렸다.
그와의 논쟁, 그의 발상, 그의 편견.
그리고 그.
미미르가 그 모든 것을 아울러 생각했을 때, 그는 완벽한 존재였다.
인간 중에서는.
어느 날, 미미르가 그에게 말했다.
“이거, 오랜만에…… 친구가 오겠어.”
“친구?”
“자네도 척 보면 알 거야.”
태양이 자취를 감추려 하는 어스름 녘, 까마귀 2마리와 함께 애꾸눈 노인이 샘에 찾아왔다.
“이봐, 인간. 자네가 세상에서 가장 완벽한 인간이라지?”
그는 노인을 보고 소스라치게 놀랐다.
노인은 오딘이었다.
“맙소사! 신이시여!”
“하하…… 거인이랑 친구인 자네가 나를 보고 놀라니 재밌군. 미미르, 재밌는 친구를 사귀었어.”
“내 자랑이지. 이곳에 온 이유는 짐작할 만하네만…….”
“어…… 그 일 때문에 왔지. 자네와 상의하려고 왔는데…… 손님이 있었군.”
“같이 들어도…….”
“상의는 됐고, 생각이 바뀌었거든.”
“뭐?”
미미르가 묻자, 오딘이 이름 없는 자에게 말했다.
“거두절미하고 말하지. 당신에게 한 가지 제안을 하려는데…… 어떤가?”
“제안이라니…… 저에게요?”
“그래. 미미르가 자네를 알았듯, 나도 자네를 알아.”
“저처럼 하찮은 존재에게…….”
“네가 했던 일들, 네가 뱉었던 말들, 전부 알지. 나는 네가 원하는 게 무엇인지 안다.”
“……거짓말.”
오딘이 입이 찢어질 듯 웃었다.
“한낱 인간이 신이 되고 싶어 하다니…… 걸작이군!”
“그러면…… 그러면 안 되는 겁니까? 인간은 영원히 인간이어야 하는 겁니까?”
“자네는 인간이라는 종족 자체를 싫어하는가 보군.”
“수명은 짧고 가진 힘은 미미하며 서로 죽이는 것을 반복하는 종족에게 희망을 품기가 더 어렵지 않겠습니까?”
“반쯤은 맞는 말이군.”
“나는 인간입니다. 인간은 내가 가장 잘 압니다.”
“나는 신이다. 너를 의도해서 만든 존재가 나야.”
오딘과 이름 없는 자의 눈에서 불이 튀었다.
미미르는 가만히 그 모습을 보았다.
“하! 자넬 상대로는 이런 논쟁도 의미 없어.”
“어째서죠?”
“자네는 빈껍데기지 않나?”
“빈……껍데기?”
“자네는 누군가?”
“나는…….”
이름 없는 자는 대답할 수 없었다.
이름이 없었기에.
“이름은 다른 이가 자신을 정의할 때에 쓰이기도 하지만 자신이 스스로를 정의할 때에도 쓰이지. 자네는 자신이 어떤 존재인지도, 역할도 모르지. 그러니 빈껍데기야.”
“…….”
틀린 말이라고 하고 싶었지만, 이름이 없는 것은 사실이었다.
오딘은 음흉하게 웃으며 말했다.
“자네를 겁박하는 것은 아닐세.”
“압니다.”
“그런 의미에서, 자네에게 선물을 주겠네.”
“선물?”
“내 신성일세.”
미미르가 오딘의 말에 소리쳤다.
“오딘! 자네 미친 건가?”
“내가? 미쳐? 그럴 수도 있겠군. 라그나로크라는 필연에 겁을 집어먹고 미쳤을 수도 있겠어…….”
“라그나로크는…….”
“알아. 반드시 일어나야 한다는 것. 내 죽음은 고정된 사실이기에 바꿀 수 없지. 오늘은 푸념이나 하려고 온 게 아니야. 어떤가, 이름 없는 남자여.”
이름 없는 자는 오딘이 미쳤다고 생각했다.
신성을 잇는다는 것은 신이 된다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것도 지고의 존재인 오딘과 같은 위치의.
“날 속이는 겁니까?”
“속여? 그럴 리가. 나 오딘일세. 신 중 신! 허튼소리는 하지 않지.”
“……당신의 신성을 받으면 무슨 일을 맡길 셈이군요.”
“물론. 하지만 그렇게 어려운 일은 아니야. 자네도 들으면 고개를 끄덕일걸?”
“무슨 일입니까?”
“그 전에, 한 가지! 힘은 바로 쥐어지지 않아.”
“……그럼?”
“자네가 약속을 지켰을 때 주어지지. 공정하지?”
이름 없는 자가 입술을 깨물며 물었다.
“내가 해야 할 일이 뭡니까?”
“나는 죽을 거야. 그것도 머지않아.”
“당신이 세계수에 거꾸로 매달려 진리를 얻었다는 것을 압니다. 전쟁을 준비하는 것 아니었습니까?”
“그건 눈속임이고, 진짜 일은 그다음이야.”
“라그나로크…… 이후?”
“그래. 내가 죽고 난 이후의 일이지.”
“당신이 죽으면 모든 게 끝인데 그것을 당신이 왜…….”
오딘이 비웃음을 흘렸다.
“나의 죽음 이후에도 세계는 영속될 걸세. 나는 죽음과 싸우는 게 아니야. 세계와 싸우는 거지.”
“……당신.”
“때로는 죽음보다 가치 있는 것도 있는 법이지. 자, 지금부터는 제안이야. 나 오딘은 자네에게 신성의 씨앗을 남길 것이고 이 씨앗은 아주 먼 미래에, 자네에게서 발아할 거야.”
“그 대가는?”
“자네는 끝없이 윤회할 거야. 아주 긴 세월 동안 지금의 기억을 가진 채로.”
“내 삶이 계속된다는 겁니까?”
“뭐, 그렇게 볼 수도 있겠지. 괜찮나?”
“바라던 바입니다.”
“나와 주신들이 죽고, 세계수가 한 차례 불탔을 때 자네에게 누군가 찾아올 걸세.”
“그것이 누구죠?”
“흐레스벨그. 인간들이 만들어 낸 기괴한 신이지.”
“흐레스벨그가…… 인간을 찾는다고요? 세계수의 꼭대기에 사는 그 고귀한 새가?”
이름 없는 자는 오딘의 말을 받아들이기가 어려웠으나 집중해서 그의 말에 귀 기울였다.
“그가 당신과 인간들을 찾아 부탁할 거야. 자신을 도와 달라고. 그때…… 그러겠다고 하면 돼.”
“어려운 일입니까?”
“어려운 일이지. 하지만 충분히 할 수 있을 거야.”
“당신이 직접 그를 찾으면…….”
“아니, 내 의지가 개입되어서는 안 돼. 창조주와 광대가 눈치챌 거야. 그들이 일말의 관심조차 가지지 않는 자네와 인간의 힘이 필요해.”
“……모르겠군요. 당신이 죽음조차 불사해 가며 그를 도울 이유를…….”
“도와? 그건 잘못된 생각이지. 나는 내 선택이 옳았음을 증명하기 위해 그를 이용하는 것이야. 우연히도 가는 길이 같았기에 함께하는 거라고 하면 이해할까?”
“……그 길에는 인간도?”
“지금은.”
이름 없는 자가 고개를 끄덕였다.
생각할 것도 없이 승낙의 의미였다.
“당신은 실수하는 겁니다. 난 당신의 신성을 얻어 신이 될 겁니다.”
“하하…… 과연 그때에도 세상에 신이 필요할지는 의문이지만, 하고 싶은 대로 하게.”
“……떠나겠습니다.”
이름 없는 자가 샘에서 빠져 나와 걸음을 내디디려 했다.
‘발자국?’
미미르가 웃었다.
“자네가 17살, 처음 걸음을 내디뎠을 때의 발자국일세. 자네는 이미 세계를 한 바퀴 돌았어.”
“그래서…….”
그래서 발이 무거웠던 거구나.
“이제 가고 싶은 데로 가게. 새로운 시작이니, 그래서 어디로 갈 생각인가?”
글쎄요. 어디든.
이름 없는 자가 고개를 저었다.
이제는 길이 보였다.
“인간의 곁으로.”
미미르가 웃었다.
“그것이 자네의 선택인 거지.”
이름 없는 자가 떠나자 미미르가 오딘에게 물었다.
“자네가 본 미래가 도대체 무엇이기에, 신성까지 포기할 만큼 가치 있는 일인가?”
“그건 생각하기 나름이지.”
“난 모르겠어.”
“그건…… 아마도 저자가 이름을 가지는 그때, 내 뜻을 알게 될 걸세.”
***
[제목 : 님들 충격적인 소식 하나 알려 줌.]
똥 쌌는데 물이 안 내려감.
-너도 같이 변기에 들어가는 게 어떨까.
-충격적인 소식 어디?
-아, 이게 아니라 진짜 충격적이었는데 뭐냐면…….
-사람을 기분 나쁘게 하는 건 크게 두 가지가 있는데 첫 번째는 말하다 도중에 끊는 거고 두 번째는…….
-남이 설계한 걸 망치는 것이다.
-그리고 세 번째는…….
-뇌절을 하는 것이다.
[제목 : 완성자랍시고 올빼미한테 당한 사람.]
저 사람 그 사람 아니야? 정계형?
그 몸 빵빵했던 사람 있잖아.
-벌써 그 떡밥 다 돌았음;
-그래서 결론이 뭐였는데?
-결론이 안 났음.
-왜?
-말이 안 되니까. 게임이 현실도 아니고 ㅋㅋ 완성자랑 올빼미랑 싸우고 있다고? ㅋㅋ 완성자는 빌런이고? ㅋㅋ
-그게 아니면 그 많던 완성자는 다 어디 갔는데?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처먹었을까?
[제목 : 님들 이거 진지하게 생각할 문제임.]
병창 오빠 오열한 거나 요즘 들어 게임 내에서 알아듣지 못할 헛소리하는 사람이 많아진 지금, 사실 종말 이후는 현실일 수 있어요!!!!!
-ㅎ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
-이분을 국회로! 당장 국회로 보내야 합니다!
-왜요?
-망신당하게요.
-ㅋㅋㅋ 게임이 현실이면 내가 너랑 결혼한다.
-그건 싫은데.
-쳇, 프러포즈 실패인가.
[제목 : 민심이 흉흉하다.]
하도 이상한 상황이 일어나니 이러다 게임이 현실이라고 해도 고개를 끄덕일 것 같아.
-저게 현실이면 그럼 우린 어케 됨?
-ㅈ되는 거겠지?
-헉…… 안 돼! ㅠㅠ 올빼미쟝…… 영원히 함께야.
-차일국 근황 아시는 분은 답글 달아 주세요~
***
보급기지에서의 3일.
언뜻 들었을 때는 짧게 느껴지지만, 체감하기로는 꿀맛 같은 휴식이었다.
실상은 전력을 가다듬고 정비를 마치는 데에 시간이 대부분 소모되었지만, 전투가 없다는 것 하나만으로도 한숨 돌릴 여유는 있었다.
서울로 향하는 최후의 전투.
그 전투를 앞두고 130호선을 선두에서 경계하는 경계병으로 주인혁이 그의 동료들과 나가 있었다.
“유리야, 한눈팔지 마.”
“나에게 명령하지 마십시오. 나는 당신의 통제를 받지 않습니다. 나는 자유의지를 가진…….”
“명, 명령이 아니라 조언 정도로 하면 안 될까?”
“조언을 거절합니다.”
“어째서?”
“나는 당신의 조언이 필요할 정도로 나약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당신의 조언은 상당히 불쾌한 어조입니다.”
“……그래?”
“이번만 봐 드리겠습니다. 정유리는 너그럽다고 정평이 나 있으니까.”
“고맙다…….”
손동호가 웃었다.
“인혁아, 너나 한눈팔지 마. 괜히 유리한테 말 거는……”
“한눈 안 팔았어. 아무튼…….”
치이익.
“잠깐, 회신 좀. 네…… 네. ……네?”
-대형 몬스터 접근 중! 현재 정찰조 후퇴 중이고 경계 병력 규모가 어떻게 되지?
“저, 저희는 몇 명 안 되는 데요…… 각성자도 없고.”
-본부! 본대는 왜 회신을…….
“아까 보급기지에서 출발하셨다고…….”
-뭐? 그럼 다리가 끊어지면 다 죽는 거 아니야?
“어…… 네, 그렇죠.”
저 멀리, 전투용 차량이 도로를 가득 메우고 있었다.
하지만 아직도 거리가 꽤 멀었다.
“대형 몬스터가 어디쯤…….”
끼아아아아아아!
-너희도 거기서 피해! 곧 그곳으로 간다!
“맙소사, 저게 뭐야?”
코뿔소를 닮은 몬스터가 건물을 짓뭉개며 다리 쪽으로 돌진해 오고 있었다.
도로와 블록은 의미가 없었다.
거리는 아직도 조금 벌어져 있었지만, 돌진해 오는 속도가 대단해 땅의 진동이 느껴졌다.
아마, 몇 분 내로 이곳에 도착할 것이다.
“어, 어떡해야…….”
“본대에는 아직도…….”
그때, 바이저를 뚫고 손성일의 음성이 전해졌다.
-A구역 경계병, 들리나?
“네, ……네!”
-충격에 대비하라, 반복한다. 충격에 대비하라.
“네? 그 정찰조가…….”
-알아. 충격에 대비하라.
주인혁과 친구들은 고개를 바짝 숙이고 슈트의 충격 완화 기능을 작동했다.
그리고, 그 순간.
기이이이이이이이잉.
차량 행렬에서 맹렬한 불빛이 토해졌다.
콰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앙!
불꽃은 직선으로 뻗어 나가 건물들을 차례로 무너트리고 마침내 대형 몬스터에게 닿았다.
퍼어어어엉!
닿은 것으로는 모자랐는지 불꽃은 가뿐하게 몬스터를 뚫고 지나가 저편으로 사라졌다.
당연히 전신이 녹아 버린 몬스터는 그 흔적만 존재했을 뿐 다리를 무너트리는 짓은 벌일 수 없었다.
“무슨…… 무슨 위력이…….”
“궁니르?”
“궁니르도 이 만큼은…….”
-묠니르라는 거다, 이 자식들아.
“네? 이게요? 누가 지었는데요?”
-……내가. 아무튼, 정찰조와 합류해라! 곧 가니까!
“그럼 이제…….”
-그래, 마지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