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5화
-지금 장난하는 거지?
-뭐야;; 차일국 왜 저렇게 된 거임?
-수위가 좀;; 게임 맞음? 이거 19금 걸어야 하는 거 아님?
-게임하는 거 맞아? 저렇게 눈물 콧물 다 짜는데?
-밀수들아, 이거 이상하잖아…… 뭔가 이상하다공.
-게임 맞아?
시청자들이 눈앞에 펼쳐진 상황에 당황해 서로에게 물으며 무슨 일인지 확인하려 했다.
그만큼 차일국의 참혹한 모습과 조병창의 오열은 시청자들에게 큰 충격으로 다가왔다.
게임이라고 하기엔 차일국의 최후와 그를 떠나보내는 조병창의 반응이 지나치게 현실적이었기 때문이다.
-ㄹㅇ 현실인 줄;
-왜 진짜 죽는 것처럼 그래…….
조병창은 빠르게 올라가는 댓글들에는 시선도 주지 않고 자신이 할 일을 했다.
친구의 죽음에 슬퍼하는 것.
“흐어어…… 일국아…… 일국…….”
“…….”
“병창 씨…….”
조병창이 저렇게 넋을 놓은 모습을 처음 본 시청자들은 문자 그대로 당황하였다.
-병창이 형?
-나까지 기분 이상해지려 그래;
-울지 마. ㅠㅠ
갑자기 조병창이 벌떡 일어나 성진의 멱살을 잡았다.
그리고 권총의 총구를 성진의 이마에 가져다 댔다.
창졸간에 벌어진 상황에 다른 일행은 대응하지 못했다.
“병창 씨!”
“그, 그만하시오!”
성진은 무표정한 얼굴로 조병창의 분노를 견뎠다.
“왜, 왜 쏜 거야!”
“……방법이 없었습니다. 그는 붕괴 직전이었습니다.”
“……내, 내 친구가 죽었어…… 당신 손에!”
탁.
이민상이 가속 능력을 사용해 조병창의 권총을 회수했다.
반응하지도 못할 정도로 빠른 움직임에 조병창의 미간이 꿈틀했다.
“그만하시죠. 형 잘못이 아닌 것 아시잖아요…….”
“하지만…… 하지만…….”
조병창은 어린아이 같았다.
현실이라는 참혹한 진상이 마음에 들지 않아 투정으로 무마하려는 어린아이.
그는 지금 떼를 쓰고 있었다.
자신이 화가 났다고.
정확히 무엇 때문에 화가 났는지는 모르겠지만, 그것을 알아달라고.
성진은 묵묵히 그의 투정을 들었다.
“다른…… 방법이 없었을까?”
“……없습니다, 현재까지는.”
“그래…… 그렇겠지. 미안.”
조병창은 성진의 멱살을 움켜쥐고 있던 손을 스르륵 풀었다.
인상을 찌푸리고 조병창을 막던 이민상도 그제야 물러났다.
조병창이 잠시 휘청거렸다.
“병창 씨! 괘, 괜찮아요?”
“괜찮소?”
그는 되었다는 듯이 양손을 앞으로 내밀었다.
신경을 꺼 달라는 것처럼.
“괜, 괜찮습니다. 그래도 잠시만…… 잠시만 시간을 주시겠습니까?”
이민상이 일행과 눈빛을 교환하고 말했다.
“알겠습니다. 오래는 못 드려요.”
“잠시면 됩니다.”
“저희는 차로 가 있을게요.”
“기다리겠소, 영종도 쪽에도 문제가 생겼을지 모르오.”
다른 일행이 떠나고, 성진과 조병창만 그 자리에 남았다.
조병창이 짓뭉개져 악취를 발하는 차일국의 끔찍한 사체 앞에 무릎을 꿇었다.
“신조 님, 죄송했습니다.”
“아닙니다.”
“그거 아십니까? 사실 일국이와 저에게는 이보다 끔찍했던 전투가 많았습니다.”
조병창은 멍하니 허공을 응시했다.
그의 눈은 별처럼 빛났다.
“산 채로 긴 꼬챙이에 꿰어져 사흘 밤낮을 살아 있다가 죽은 적도 있었고, 눈이 일만 개쯤 되는 괴물에게 정신이 불탄 적도 있었죠.”
“그랬었죠.”
성진도 기억하는 전투였다.
그곳에서 조병창은 외팔이 검사이기도 했고 대륙의 영웅이기도 했다.
늘 그는 기대 이상의 능력을 보여 주었었다.
“그때도 분명 괴로운 건 마찬가지였지만, 지금만큼 괴롭지는 않았습니다. 그 이유를 아십니까?”
“끝이 아니었으니까.”
“그렇죠. 끝이 아니었으니까. 당신의 병사가 수십, 수천만일 때를 기억하십니까?”
“기억합니다.”
종말 전쟁 초기, 그때는 로키의 군대와 백중세를 이룰 정도로 어마어마한 군대였다.
용기와 신념으로 무장했던 병사들.
지금 그들의 흔적은 세월에 먼지처럼 흩어졌다.
“드넓은 들판에 모여 로키의 마수들을 마주하면 누구라도 떨게 됩니다. 그 어떤 영광도 두려움을 사라지게 해 주진 않았죠.”
“누구라도 그럴 겁니다.”
“그 두려운 순간에, 모두는 앞이 아니라 옆을 보았습니다. 긴장에 내뿜는 숨결과 고조된 열기, 동료들이 발하는 그 기운에 감화되면 신기하게도 마음을 옥죄던 불안이 사라졌습니다.”
동료와의 유대.
신조의 병사들은 그들의 앞을 막아선 종말의 괴수들을 보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옆에 서서 버팀목이 되어 준 동료들을 보았다.
오랜 세월, 그렇게 싸워왔다.
“다음. ……분명 다음이 있으니까, 이 싸움에서 전사하고 전장을 이루는 핏물로 화할지라도 다음 세계, 그리고 또 다음 세계에서 다시 싸울 테니까…….”
“…….”
“옆에 선…… 동료들과 함께…….”
조병창이 죽은 차일국의 사체 일부분을 장갑 낀 손으로 매만졌다.
“당신에게 실망하여 많은 친구와 영웅들을 떠나보냈을 때도, 이렇게 슬프진 않았습니다. 괴롭고…… 힘이 드는군요.”
“……떠나려는 겁니까?”
“떠나요? 제가? 신조 님은 아직도 우리를 이해하지 못하고 계시군요. 일국이가 죽었다고 울면서 당신을 모욕하고 떠날 것 같습니까? 하, 그랬다면 진작에 그랬겠죠. 당신에게 침을 뱉고 떠났던 옛 동료들처럼요!”
진작 그러지 못해 아쉽다는 듯이 화를 낸 조병창이 뒤로 돌았다.
그는 울음을 멈췄다.
“각오한 일입니다. 일국이나, 저나. 이별이 조금 일찍 찾아왔지만, 어차피 이별은 언제나 제 뜻대로 되지 않았습니다.”
조병창은 성진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말했다.
“우리는 당신에게 옆을 보라는 말은 하지 않을 겁니다.”
“어째서죠?”
“누군가는 앞을 봐야 하니까. 당신이 어떤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앞을 보아야 하니까. 그런 당신을 믿었으니까.”
“…….”
“이젠 옆을 보아도 허전하기만 합니다. 최후까지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신조여. 이젠…….”
조병창이 인상을 찡그리며 고개를 저었다.
울음을 참고 있는 모습이었다.
“다 같이 앞을 볼 시간입니다. 당신은 잘못되지 않았습니다. 우리가…… 반드시 당신을 위대한 승리로 이끌 겁니다.”
“…….”
“당신의 승리가 곧 우리의 승리이니까.”
조병창은 소매로 눈물을 훔치고 웃었다.
하얀 이가 드러났다.
“가시죠, 시간을 지체해서 죄송합니다.”
***
다행히 주차라는 명목으로 방치된 대형 차량은 멀쩡했다.
아무래도 영종도로 향한 주 병력이 만들어 내는 소음이 몬스터들의 주목을 가져간 것 같았다.
탁.
“늦어서 죄송합니다.”
조병창이 차에 오르며 가장 먼저 한 말이었다.
일행은 그저 억지로 웃음을 지을 뿐이었다.
전쟁을 시작하자마자 오래된 동료를 잃었다.
분위기가 밝을 순 없었다.
가득 채워지길 기대했던 대형 차량의 적재 공간은 여전히 텅 비어 있었고, 이대로 허전한 마음을 뒤로 한 채 영종도로 향해야 했다.
쏴아아아.
설상가상으로 빗줄기가 쏟아졌다.
종말 이후의 세계는 하늘이 울기라도 하듯이 심심하면 비를 뿌렸다.
시계(視界)가 흐릿해지는 것을 보며 성진이 최별에게 물었다.
“본대와 연락은 되고 있습니까?”
“그게…… 전혀요. 최근에 통신 문제가 심각했는데 여기서도 말썽이네요.”
“작전이 제대로 진행되는지 알 수 없겠군요.”
“눈과 귀를 믿어야 할 때죠.”
끼아아아악!
두두두.
돌연, 들려온 소리에 일행의 시선이 교차했다.
“무슨, ……무슨 소리죠?”
“뭔가가 우르르 몰려가는 소리 같은데…….”
“몬스터겠지. 여기서는 보이지 않으니…… 시내로 나가거나…….”
“제가 나가서 보고 오겠습니다.”
“저도…… 형! 저도 갈게요!”
벌컥.
성진과 이민상이 차 문을 열고 달렸다.
인근에 적당한 높이의 빌딩이 있었다.
비를 맞는 기분이 좋지 않았지만, 지금은 그런 걸 따질 때가 아니었다.
푸슛.
철컹.
피윳.
성진은 거미줄을, 이민상은 로프를 이용해 건물 옥상에 올랐다.
단 몇 초 만에 올랐기 때문에 이 과정에서 시간을 지체하거나 하지는 않았다.
“후우…… 장관이네요.”
“저기, 저쪽일 거야.”
“저도 보여요. 근데, 본대가 아직 저것밖에 못 갔다고요? 대체 왜…….”
“몬스터가 발길을 붙잡는 거로 보이는데…… 왜지?”
“그야 소음 때문에…….”
“아니, 단순히 소음 때문에 모인 것치고는 수가 너무 많아. 부천의 모든 몬스터가 모인 것처럼…….”
이민상이 성진의 말에 눈을 부릅뜨고 멀리 보이는 상황을 확인했다.
성진만큼 선명하게 보이는 것은 아니었지만, 대략적인 형세는 판단할 수 있었다.
“이상하네……. 형 말대로네요. 왜 몬스터들이 이렇게 모여들고 있는 거지? 저기 보세요! 저기는 작전 구역이랑 한참이나 떨어졌는데도 몰려들고 있잖아요. 저기까지 소리가 들린다고요?”
“……이상한데.”
“숫자가 심상치 않아요. 산천어 축제도 아니고 어디 틀어박혀 있던 몬스터들이 이렇게 순식간에 본대를 덮치는 게 꼭 누군가 의도한 것처럼…….”
“그만. ……의도?”
불현듯, 차일국이 죽기 전 했던 말이 성진의 뇌리를 강타했다.
-인천으로 향하는 계획도…… 들켰을…… 거야. 도와줘야 해…….
계획이 누군가에게 들켰다.
그 누군가가 어떤 존재들인지 추정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사도…….”
“사도들이요? 지금 사도들이라고 하셨어요?”
“응, 사도들의 수작인 것 같은데……. 잠깐.”
성진과 이민상은 서로를 동시에 쳐다보았다.
각자가 확인한 것을 상대에게 묻고자.
“형…….”
“민상아.”
“보셨어요?”
“응.”
“110번 호선이…… 끊어져 있어요.”
“나도 봤어.”
“어떻게 그럴 수가 있지? 아니, 잠깐…… 그렇다는 얘기는…….”
“우리가 향하는 130번도 끊길 수 있다는 얘기겠지.”
상황이 심각했다.
이민상은 평정을 유지하지 못하고 성진에게 물었다.
“누가 한 짓일까요?”
“계획한 것은 사도일 거고 일을 벌인 건 몬스터겠지.”
설령 성진이라고 해도 다리를 끊을 수는 없었다.
하물며 완성자들이라고 해도 그것이 가능할 리가 없었다.
분명 110번 호선을 파괴한 것은 몬스터일 것이다.
이민상이 성진의 말을 듣고 잠시 생각하다 말했다.
“그 말은, 몬스터가 사도의 통제를 따라 110번 호선을 부쉈고 130번 호선도 곧 부서질 수도 있다는 얘기죠?”
“그래, 그렇게 되지 않으려면…….”
성진과 이민상이 동시에 답했다.
“사도를 찾아야죠!”
“사도를 찾아야 해.”
***
“빌어먹을! 몬스터가 꼬여도 너무 꼬입니다!”
“엄호 태세 유지해! 이대로 전진하다 차량 하나라도 전복되면 끝이야!”
앞사람이 발이 꼬여 넘어지면 뒷사람도 그에 영향을 받는다.
피해서 갈 길을 가거나 밟고 지나가거나 그도 아니면 뒷사람도 넘어지거나.
때문에, 본대는 신중에 신중을 기할 수밖에 없었다.
손성일이 까칠한 수염을 매만졌다.
“잔치라도 벌인 것처럼 모여드는군.”
김정우가 손성일에게 통신했다.
-덕분에 속도가 전혀 나지 않고 있습니다. 어찌해야 할까요?
“다른 피해 상황은?”
-평소보다 두껍게 방진을 구성했습니다. 뚫린 곳은 없고 경상자만 조금 있을 뿐, 부상자도 나오지 않고 있습니다.
“순조롭게 처리되고 있다는 거군. 시간이 지체되는 것만 빼면.”
-네, 그렇습니다.
“목적이 뭘까? 몬스터들이 미쳤다고 충성을 바쳐 우리의 발목을 붙잡는다고?”
-현재로선 확인할 수 없습니다. 심각한 문제가 아니라면 소음에 이끌린 몬스터들이 주변 몬스터들까지 끌어들인 것일 테고…….
“그게 아니라면?”
-몬스터 무리의 이상 현상, 그보다 심각한 문제라면 사도의 개입이겠죠.
“젠장…… 시작부터 이러면 싸움은 어떻게 하라는 거야. 이보게, 박사. 내가 문제를 하나 내지, 지금 우리는 좁디좁은 길을 뚫어야 하는 상황이야. 약하지만 성가신 적들이 계속해서 우리를 방해하지. 여기서 발생하는 문제가 뭘까?”
손성일은 냉철한 사람이었다.
그는 무언가 문제가 생겼을 때마다 이렇게 생각했다.
왜.
대체 왜.
“대체 우리의 시간을 목숨을 바쳐 소모하게 만드는 이유가 뭘까? 박사, 우리가 여기서 시간이 끌렸을 때 발생하는 문제가 뭔가?”
-잠재적 위협은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우리가 이곳에서 사흘 밤낮 동안 싸우면 물자가 먼저 떨어지겠지요.
“그 전에 병사들이 잠을 못 자서 제정신이 아니겠지. 그건 아닐 거야.”
-영종도에 위치한 보급 기지의 위치를 사도들이 알고 있다면…….
“그건 자네와 나밖에 모르지 않나. 그럴 리는 없어. 다른 건?”
-보급 기지가 목적이 아니라면…… 역시…….
“그래, 보급 기지로 향하는 길이겠지. 130번 호선을 노리는 거야.”
-제 생각에도 그게 가장 타당한 추측입니다.
“흐음…… 110번으로 방향을 선회하는 건 어떻게 생각하나?”
-아시겠지만, 너무 위험합니다. 무모한 작전을 강행하는 것보다 위험한 게 계획하지 않은 것을 하는 거잖습니까.
“그렇지. 알 수 없는 것들이 너무 많으니까. 자, 그렇다면 우리에겐 130호선을 돌파해야 한다는 과제가 남네. 아직 우리에게 선택할 여력이 있다는 것에 감사해야겠군.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으로는 뭐가 있을까?”
-우리에게 갑자기 초인적인 힘이 생겨서 지금 발목을 붙잡는 적들을 짓뭉개고 지나가거나…….
“지금도 초인적인 힘은 있네. 등불이 분전하고 있는데도 상황이 이 모양인 거야. 어떻게든 전진은 하고 있다는 게 그 힘이 발휘하는 최선인 거고.”
-초인으로는 어림도 없군요. 그럼, 몬스터를 조종하는 사도들을 색출하는 방법이 있습니다.
“사도들…… 불순물을 말하는 건 아닐 테고…….”
-불순물에게도 그런 힘은 있지만, 이렇게 장시간 유지할 수는 없습니다. 그리고 불순물은 폭탄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이렇게 세밀하게 몬스터를 조종할 수는 없습니다.
손성일은 김정우가 말하려는 것이 무엇인지 깨달았다.
“완성자가 왔을 수도 있겠군.”
-아마도 확실할 겁니다.
“아마와 확실은 거리가 멀어. 자, 그럼 완성자를 어떻게 찾지?”
-완성자는 몬스터를 조종하기 위해 최소한 3km 이내에는 접근해야 합니다.
“확신하나?”
-가능성 높은 추정입니다.
“믿겠네. 그럼 반경 3km 이내에서 우리를 골탕 먹이는 놈을 찾아야 한다는 건데 방법이 있나?”
-완성자들이 발하는 파장은 특이합니다. 펄스에 특출 나게 민감한 사람이라면 알아채는 것이 가능합니다.
“그 특출 나게 민감한 사람이 정확히 어느 정도인가?”
-…….
“김정우 박사?”
손성일의 물음에, 김정우 박사는 바로 대답하지 못했다.
손성일은 뭔가 일이 생긴 것 같아 걱정되어 재차 물었다.
“김정우…….”
-아, 방금 통신이 도착해서 답이 늦었습니다. 질문이…….
“특출 나게 민감한 사람이 우리에게 있냐는 말일세.”
-없습니다.
“그게 무슨 말인가?”
-지금은 없는데, 오고 있습니다.
“……특작대?”
-네. 방금 잠깐, 통신이 연결됐습니다.
“뭐라고 하던가?”
-130번 호선이 위험하다더군요. 110번 호선이 끊어졌답니다.
“하하, 농담이지?”
-그리고 수작을 부리는 완성자는 하나가 아니라 둘 이상일 거라는군요.
“희소식도 분명 있을 거야, 그렇지?”
-추격 중이랍니다.
“할렐루야!”
***
끼이이이익!
끼이익!
“시끄러운 자식들, 뭔 비명을 그리 질러 대는지…….”
광대에게 직접 명령을 받고 부천에 내려온 완성자는 혁명군 본대의 예측대로 둘이었다.
몬스터 무리를 이끌고 본대의 진격을 방해하는 완성자 홍성립과 다리를 부술 불순물들을 이끄는 완성자 정계형.
홍성립과 정계형의 맡은 일은 극과 극이었다.
정계형이 고분고분한 불순물들을 이끄는 단순한 일을 맡았다면, 홍성립 자신은 섬세하게 몬스터들을 통제해야 하는 고귀한 일을 맡았다.
적어도 홍성립 자신은 그렇게 생각했다.
남들이 보기엔 주와 객이 전도되었지만.
그래도 홍성립의 능력만큼은 진짜였다.
이만큼 많은 몬스터들을 다룰 수 있는 자는 드물었고, 심지어는 전선에 배치된 몬스터들까지 몰려들 정도로 통제력이 막강했다.
몰려드는 몬스터들이 전부 소형에 불과할지라도 그의 능력은 인정할 만했다.
이 능력의 원천은 예민한 감각에서 비롯되었다.
기본적인 오감은 물론이고 신성을 감지하는 감각마저 탁월했다.
“음? 이런……. 어떻게 알았지?”
사삭.
폐건물의 2층.
주변에서 기척이 느껴졌다.
“불청객이야, 불청객. ……죽일까?”
거짓말이었다.
홍성립에게 전투 능력은 없었다.
굳이 찾자면, 도주 능력은 훌륭했다.
예민한 감각을 이용해 적들의 포위망을 빠져나가는 능력이 일품이었다.
‘1층에 하나, 옆 건물에 하나…….’
틈은 있었다.
끼긱.
끽.
그는 밖에 발이 빠른 몬스터와 비행형 몬스터를 대기시켰다.
이제 유리창을 깨고 비행형 몬스터가 자신을 데리고 빠져나갈 것이며, 혹시나 적들이 따라붙더라도 몬스터를 타고 달아나면 되었다.
‘온다!’
1층과 옆 건물에서 움직임이 느껴졌다.
거의 동시였으니 합의된 움직임이었다.
‘늦었어……. 그럼!’
쨍그랑!
“흐하하! ……어?”
유리창을 깨고 난입한 건 비행형 몬스터가 아니었다.
이민상이었다.
“너, 뭐…… 뭐야. 어디서…….”
“앞에 맥도날드 건물 2층에서.”
“장난하지 마…… 기척을 느끼기도 전에…….”
“그건 내가 알 바 아니고.”
이민상이 가속 능력을 발휘해 조금 먼 거리에서 이곳까지 순식간에 당도했다.
이제 그의 능력은 완벽의 경지에 이르렀다고 할 정도였다.
“큭…… 빌어먹…….”
콱!
이민상이 완성자의 멱살을 움켜쥐고 바닥에 패대기쳤다.
쾅!
끼아아아악!
그 틈을 타, 비행형 몬스터가 깨진 유리창을 통해 들어와 이민상을 공격하려 했다.
“어딜!”
서걱.
콰직!
어디선가 날아든 장검이 몬스터의 머리를 베었고 옆 건물에서도 바위가 날아와 정확하게 몬스터의 몸통을 짓뭉갰다.
송하린과 최별이었다.
곧 그녀들도 폐건물의 2층에 합류했다.
“컥……. 크흐흐.”
이민상에게 붙잡힌 홍성립은 숨이 막혀 켁켁 하며 웃었다.
“왜 웃지?”
“푸히히, 나 죽일 거지?”
“당연하지.”
“날 죽여도 달라질 건…… 케헥, 없을 걸?”
“달라지지, 일단 세상이 조금 깨끗해질 거야.”
“영종도는…… 못 가!”
“……어디까지 아는데?”
“130번 호선을 사용한다는 것까지!”
“그래?”
“흐흐, 내 동료가 이제 거길 무너트릴 거야.”
“그렇구나.”
“안 놀라네.”
“짐작하고 있었어.”
“흥…… 퍽이나! 이대로…….”
치이익.
이민상이 바이저의 수신 음량을 최대로 올렸다.
“아아, 형. 여기는 제압했습니다. 꼴을 보니 곧 자결할 것 같아요.”
-그래.
“거기는요?”
홍성립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바이저를 타고 넘어온 소리가 익숙했기에.
-이럴 수는…… 이럴 수는 없어…… 어떻게.
목소리의 주인은 정계형이었다.
“……이럴 수가.”
-크으아아악! 광대의 나라여! 영세…….
찌지직!
소름끼치는 파육음이 들리자 이민상이 인상을 썼다.
“죽었어요?”
-죽였어.
“어쨌든 그쪽도 끝났다 이거죠?”
-그래. 합류한다.
“네, 저희도 합류할게요.”
홍성립은 상황이 종료되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하지만 상관없었다.
어찌됐든 로키를 충실히 섬겼으니까.
분명, 싸움이 끝나면 보상을 받을 것이다.
“광대의 나라여! 영세…….”
뚜두둑.
촤악!
이민상이 홍성립의 목을 부러트리는 것도 모자라 단검으로 그의 목을 베었다.
뜨거운 피가 이민상의 얼굴을 적셨다.
붉게 물든 얼굴로, 그가 말했다.
“좆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