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BJ는 종말에 적응했다-201화 (201/222)

201화

그으으응.

-잠시 정차했다 가겠습니다.

끼익.

턱.

예정되어 있던 장소에 다수의 차량이 군집을 이루고 있었다.

성진은 차에서 내려 사람들을 확인했다.

“길이 험하네요.”

“예, 도로가 멀쩡한 곳이 몇 남지 않았습니다. 그것 때문에 빙빙 돌아가느라 고생을 좀 해야 하죠.”

과거였다면 1시간이면 될 길을 무려 5시간이나 걸려서 도착해야 하는 이유였다.

“바로 수원으로 가는 건가요?”

“그건 아닙니다. 중간 지점에 소형 쉘터가 있는데 거기서 정비도 할 겸 잠시 들를 계획입니다.”

“보급도 하고요?”

“물론이지요.”

후우웅.

바람이 방수포를 거세게 휩쓸고 지나갔다.

임시로 편 천막도 그 바람에 날아갈 뻔했다.

“폭풍이 다시 오려나 보네요.”

“네, 신기하게 평택 위로 올라오기만 하면 이러네요?”

“통신 관련 문제도 폭풍 때문 아닙니까?”

“그럴 지도요.”

성진은 보슬보슬 비를 뿌리는 날씨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갑자기 폭우라도 쏟아부으면 운행에 지장을 받을 것이다.

‘혹시 김우열의 짓인가?’

사도들이 무슨 꿍꿍이를 벌이는지 전부 알 수 있는 건 아니었다.

다만 로키의 행동 방식 중 가장 첫 번째에 놓이는 것이 신조가 하는 일을 방해하는 것이었다.

성진은 이번에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다.

“수원에는 자주 가십니까?”

“그게…… 뭐라고 해야 할지 난감하네요. 전에는 자주 갔었습니다.”

“지금은요?”

“보시다시피. 아무리 우리가 한데 묶였다 하더라도 똥인지 된장인지는 서로 가리는 편이거든요.”

-똥이다.

-즉, 이것은 똥이다.

-된 똥이다.

“근 2달간 곤란한 상황이라고 들었는데…… 맞습니까?”

“그렇지 않은 게 이상한 거죠. 저…… 자세하게 말씀드려야 하나요?”

“네, 그래 주셨으면 합니다. 그래야 무슨 일이 생겨도 대응할 수 있으니까요.”

운행의 책임자인 박영준이 이마를 문지르며 답했다.

“여기저기 구멍이 뚫린 사안이라 제 개인적인 생각이 많이 섞였을 겁니다. 이해하시길.”

“네.”

“여태 보급로가 위협받은 적은 단연코 한 번도 없었습니다.”

“어째서죠?”

“길목을 막아 봐야 몬스터 무리였고 그 정도는 함께 출발한 엄호 차량만으로도 충분했기 때문이지요. 실제로 운행도 이렇게 대규모로 다니지는 않았습니다.”

“그만큼 안전하기에 자주 다녔다는 말이군요.”

“맞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그렇지 않죠.”

“어떻게 이런 상황이 된 겁니까?”

박영준은 잠시 생각을 정리하고 얘기를 시작했다.

“보통 이런 보급 차량은 정해진 운행로가 있습니다. 평상시에도 사용할 정도로 몬스터가 드물게 나타나며 도로가 그나마 멀쩡한 곳이 사용되곤 하죠. 그런데, 정해진 운행로로 통과하던 차량 행렬이 어느 날 사라진 겁니다.”

“연락은요?”

“따로 전해진 메시지는 없었습니다. 세상이 개판이 되니 옛날처럼 원활하게 통신이 이루어지진 않거든요. 이런 부분은 또 아날로그 같다니까?”

“……그래서요?”

“평택이 취한 첫 번째 대응은, 엄호 차량을 늘려 운행을 시도한 것이죠. 결과는 성공.”

성공일 리가 없었다.

그랬다면 지금까지 문제가 되고 있지는 않았을 테니까.

“문제가 생겼죠?”

“네, 이번엔 정찰 차량이 사라졌습니다.”

“같은 운행로를 사용했나요?”

“아뇨, 정찰 차량은 다른 운행로를 확인하다 변을 당했습니다.”

“수원에서 연락은…….”

“정찰 차량의 행방은 수원 쪽에서도 모른답니다.”

“다른 문제가 또 있었나요?”

“문제는 항상 있었습니다. 한쪽이 변을 피하면 다른 한쪽이 변을 당했고 심지어는 대규모 행렬이 전부 실종된 적도 있었습니다.”

정차현이 골머리를 썩는 부분이었을 것이다.

“위협이 고정되어 있지 않다면, 평택에서 수원으로 향하는 길목이 총 몇 개인지는 모르겠지만 대부분이 안전하지 않겠군요.”

“정론이십니다. 제일 무서운 부분은 우리는 그 위협이 뭔지조차 모른다는 겁니다.”

“생존자가 없어서입니까?”

“목격자가 없어서란 말이 더 맞는 말이겠네요.”

-ㅎㄷㄷ 이것은 만득이 괴담.

-자유로에 귀신이 있어!

-그 귀신은 자유로와요?

이쯤 되니 성진도 이해가 되었다.

왜 자신이 이 행렬에 딸려 보내진 것인지.

“제가 이 문제를 어떻게든 해결해 주기를 바라나 보네요.”

“후방이 튼튼해야 한다는 게 쉘터장님의 지론이시지요. 저도 동의하는 부분입니다.”

“이거야…… 운행 도중 문제가 발생하기를 바라고 계시겠군요.”

“쉘터장님이요? 물론이지요. 그래서 운전병들이 지금 표정이 굳어 있는 거 아니겠습니까?”

“그런데도 문제가 생길지 모르는 운행에 따라왔다고요?”

박영준은 웃었다.

갑자기 웃는 그가 이상해 보였다.

“큭큭큭…….”

“왜 웃으시죠?”

“아, 실례. 우리를 너무 띄엄띄엄 보시는 거 아닙니까? 올빼미님.”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이번 운행 인원은 전부 부산과 대구 출신입니다. 즉, 직접적으로 올빼미님에게 도움받았던 이들이죠.”

“…….”

“우리는 여전히 당신이 구해 줘야만 하는 존재가 아닙니다. 어…… 그래도 보급 행렬을 지원해 주신 지금 상황에서 하는 말치고는 좀 모순되기는 하네. 아무튼, 문제가 생겼다고 숨거나 하는 사람들은 전부 후방에서 지원하는 역할로 빠져 있습니다. 전선에 나선 이들은 최소한의 자격은 갖췄어요.”

“자격…….”

“싸울 자격이죠. 다른 말로 용기! 하하하.”

시작은 겁쟁이들의 싸움이었다.

어쩌다 이렇게 겁을 모르는 사람들이 된 건지는 모르겠지만.

“보급로는 그럼…….”

“네, 처음 문제가 생겼던 그 길입니다. 오면서 보니 다행히 길은 멀쩡하더군요. 그 이후로 차량이 이곳을 지나간 적이 없으니 아무 일도 없을지 모릅니다.”

“문제가 생기면 어떻게 할 생각입니까?”

“일단 대응해 보고, 안 되면 죽겠죠?”

“……다른 계획은 없습니까?”

“없습니다. 지금 최전방에 있는 사람들에게 보급품을 한시라도 빨리 나눠 줘야 한다는 계획밖에는. 아! 쉘터장님이 몰래 계획하신 한 가지가 있네요.”

“그게 뭡니까?”

“올빼미님이 따라붙었으니 허무하게 죽거나 하지는 않을 거라고. 운 좋으면 전부 살아서 수원 땅을 밟을 거라고 하시더군요. 하하하! 재수 없어. 아, 이건 말씀하시지 말아 주세요. 하급자의 추임새입니다.”

“수원에서 별다른 지원은 없었습니까?”

“수원 쪽도 상황이 좋지 않습니다. 몇 번 도우려 했지만, 번번이 그쪽도 문제가 생겼다고 들었습니다. 다행히 등불이 수원에 도착하면서 숨통은 트인 것 같긴 합니다만, 그만큼 물자가 부족해졌으니 한시라도 빨리 당도해야 합니다. 배터리와 식량을 최대한 많이 실었으니 도움이 될 겁니다.”

타앙!

총소리가 들렸다.

인이어에 손을 갖다 대자 소형 몬스터가 접근해 사살했다는 말이 들려왔다.

박영준이 엉덩이를 털고 일어났다.

“이러다 길거리에서 비라도 맞으면 슬플 것 같네요. 갈 길이 좀 남았으니 일어날까요?”

성진도 고개를 끄덕이고 일어섰다.

그으으응.

그으응.

미리부터 엔진을 데워 놓고 있던 대형 차량들이 줄지어 빠져나갔다.

성진은 주위를 경계하며 차에 올라탔다.

-출발.

***

운행이 계속되었다.

쏴아아아.

빗줄기가 점차 굵어졌다.

좋지 않은 징조.

성진의 표정도 그만큼 어두워졌다.

운행 내내 인이어로 정보의 교환이 이루어졌지만, 농담을 건네거나 실없는 소리를 하는 사람은 없었다.

-시계(視界)가 좋지 않습니다. 운행을 잠시 멈췄다가…….

-미련한 소리. 향남을 코앞에 두고 무슨 피콜로 더듬이 빠는 소리야. 저 폭풍이 얼마나 갈 줄 알고? 알잖아, 한 번 비 쏟아지기 시작하면 며칠 내내 계속된다고.

-향남 도착하고서는 어쩌시게요?

-그건 그때의 박영준이 생각하겠지. 거기서 정보도 종합하고 어떻게 할지를 정하자고. 불만 있어?

-네, 불만 있습니다.

-그래도 참아.

-네.

끼이이익.

촤아아아악!

도로가 물에 잠기기 시작했다.

군용 차량은 차체가 높게 떠 있어 침수될 우려가 적었지만, 운행에 제한을 받기는 일반 차량과 매한가지였다.

캬아아아아악!

그때 날카로운 비명과 함께 4층 건물 옥상에서 몬스터가 포착되었다.

눈치로 판단했을 때, 차량을 골라 그 위로 뛰어내릴 심산으로 보였다.

“차량 붙여 주세요.”

“어, 어디로…….”

“저 차량.”

“네!”

그으으응.

성진이 탄 소형 차량이 대형 차량 옆으로 바싹 붙었다.

“뭐, 뭐 하시는…….”

성진은 비를 맞는 것도 아랑곳하지 않고 소형 차량의 위로 올라갔다.

달리는 차 지붕에서 흔들리지 않고 선다는 게 말이 되지 않았지만, 성진은 미동조차 없었다.

“흡!”

턱!

터억!

성진이 대형 차량의 적재함 위로 모습을 드러냈다.

운전자들은 가슴을 쓸어내리며 성진이 어떻게 행동할 것인지 의문을 품었다.

키아아아악!

마음에 드는 차량이 있었는지 벌레의 날개를 가진 몬스터가 어설픈 날갯짓을 하며 차량으로 뛰어내렸다.

아니, 뛰어내리려 시도했다.

기이잉.

펑!

퍼엉!

퍼엉!

키아아아!

그들의 비에 젖은 날개는 무용했고, 공중에선 성진의 탄환을 피할 수 없었다.

적중한 총탄의 반동으로 차에 달라붙지 못하고 건물 외벽에 처박힌 몬스터들.

철컥.

퍼엉!

키익.

한 발의 탄환이 옥상에 홀로 남은 몬스터에게 날아들었다.

몬스터는 화들짝 놀라 몸을 바싹 낮추었다.

차량들은 이미 한참이나 멀어진 후였다.

-수고하셨습니다.

-곧 도착합니다. 몸이 젖어서 어쩌…….

“괜찮습니다.”

성진이 홀가분하게 소형 차량으로 뛰어내려 창문을 통해 다시 자리로 들어와 앉았다.

운전병은 귀신이라도 본 것처럼 성진을 쳐다보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왜 그러시죠?”

“직접 싸우는 건 처음 봐서요. 정말 대단하십니다.”

“…….”

“곧 쉘터에 도착합니다. 거기서 옷이라도 말리시거나 갈아입으시죠.”

“그래야겠네요.”

엄호 차량에 탑승한 경계 인원들은 따로 마련된 채널을 통해 상황을 주고받았다.

성진은 방금까지 후열을 보호했기에 전방에서 엄호하고 있는 차량들에게 상황을 전달받았다.

-뭐야? 뭐지?

-준비하세요! 뭔 시체가 이렇게 잔뜩…….

-차량 정지시킬까요?

-멈추는 게 더 위험해! 쉘터까지 곧장 쏘는 게 나을 것 같아!

성진의 차량도 상황을 전달받고 얼마 지나지 않아 사태를 목격할 수 있었다.

“으으…… 뭔 시체들이…….”

“몬스터 사체네요.”

“여기서 왜 이런 꼴로 널브러져 있을까요?”

“글쎄요. 일단 앞쪽에서 전달받은 내용이 없으니…….”

잠시 후, 기다리던 소식이 전해졌다.

소식은 낭보와는 거리가 멀었다.

-향남 쉘터가 습격받았다! 몬스터 다수!

-사체로 파악되기로는 중형급 이상도 존재하는 것 같습니다!

-어떻게 합니까? 이탈할까요?

성진이 운전병에게 말했다.

“앞으로.”

“네?”

“차량 행렬 앞으로 추월하세요.”

“알겠습니다!”

-명령 하달한다. 벗어나기엔 늦은 것 같고, 올빼미님?

“듣고 있습니다.”

-지금 있는 인원만으로는 중형급은 대응하기 어렵습니다. 이번 보급 시기를 놓치면 전방의 용사들은 모두 거지꼴을 못 면할 거고요. 이상, 상황 전달이었고 어떻게 합니까?

그아아아아앙!

성진의 차량이 맨 앞으로 치고 나왔다.

이제야 그도 상황이 보였다.

“쉘터로.”

성진의 말에 박영준과 대원들이 화답했다.

-쉘터로! 쉘터로 간다! 습격이든 뭐든 뚫고 간다!

-빌어먹을!

-어쭈? 반항?

-너무 좋아! 행복해!

촤아아악!

노면에 발이 닿으면 무릎까지 찰 것처럼 도로에는 물이 차 있었다.

키아아아아악!

투두두두!

끼아아아!

투두두두두두!

엄호 차량에서 기관총 소리가 들려왔다.

빗줄기를 뚫고 충격파가 전해졌다.

-더럽게 많네! 쉘터도 몬스터에 둘러싸여서 안 보여!

-그래도 잔 탄도 넉넉하고 작은 놈들은 충분히 대처할 수 있어!

-어디서 이렇게 쏟아지는 겁니까?

쉘터의 방벽이 제대로 작동했는지, 몬스터들이 아직 진입로를 찾지 못한 건지 성진 일행의 공격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고 우왕좌왕했다.

그때, 쉘터의 측면에서 불길한 소리가 들렸다.

콰아아앙!

-안 좋은 소리인데…….

-중형이다! 중형급이야!

-젠장! 전부 저기로 모이고 있잖아!

성진이 옆 좌석에 앉은 운전병에게 당부했다.

“죽지 마시고, 주기적으로 상황 전달 부탁드립니다.”

“오, 올빼미 님은요?”

“먼저 가 있겠습니다.”

“올빼미 님?”

푸슛!

성진이 거미줄을 사출해 몸을 공중으로 띄웠다.

마치 공중그네를 타듯 널을 뛰며 쾌속으로 전진하는 그의 모습에 운전병이 턱이 빠져라 입을 벌렸다.

-차량으로 길목 막아! 더는 못 들어가게 해!

-어디서 문제가 터진 거지? 왜? 갑자기?

성진이 누구보다 빨리 부서진 쉘터의 측벽에 도착했다.

한눈에 보기에도 측벽은 산산 조각나 있었다.

고였던 물이 쉘터 내부로 흘러들며 아비규환의 현장으로 만들었다.

“으아아악!”

“어떡해! 어떡합니까?”

“여기 좀 도와주세요!”

“일단 갈겨어!”

투두두두두!

투두두두!

“으아아!”

끼아아악!

끼이익.

달빛에 의지해서 전투를 벌이는 날에는 자신의 숨소리가 천둥처럼 느껴질 정도로 감각이 예민해진다.

성진은 지금 그런 느낌을 받았다.

‘소형은 처리가 가능해. 그럼…….’

지금 쉘터를 완전히 무너트리기 위해 전진하는 중형 몬스터가 우선이었다.

푸슛!

상황이 급박하니 은밀함은 더 이상 우선순위가 아니었다.

성진의 거미줄이 두더지를 닮은 몬스터의 귓바퀴에 달라붙었다.

끼이이이익!

후우웅.

성진은 거미줄을 타고 몬스터에게 향하며 펄스를 일깨웠다.

콰르릉!

천둥 치는 소리와 함께 신조살해자에게 한눈에 보기에도 난폭한 펄스가 깃들었다.

파지이익!

찌지직.

끼아아아아!

직도가 두더지의 목을 찢으며 거칠 것 없이 전진했다.

그 길의 끝에 걸리는 것이 없자, 두더지의 목이 분리되었다.

어찌나 큰지 머리가 땅에 떨어진 것만으로도 대로가 진동했다.

쿠우웅!

성진은 그 기세를 그대로 이어 쉘터에 떨어졌다.

TK-28이 무서울 정도로 거칠게 총탄을 뿜었다.

투두두두!

투두두두두!

키아아아악!

키아악!

부서진 측벽을 통해 들어왔던 몬스터들은 총탄의 비에 사지가 떨어져 나가거나 피죽이 되어 허물어졌다.

“평택에서 온 지원입니다! 상황은요?”

“지, 지원이요? 정말입니까?”

성진의 말을 들은 사격수가 믿을 수 없다는 듯 눈을 크게 떴다.

새벽에 기대하지도 않았던 구원이 있을 줄이야.

“상황!”

“그, 그게…… 미확인 거수자가 확인되서…….”

“미확인 거수자?”

투두두두!

“얼굴에 문신을 한 거수자가 도시를 얼쩡거리기에…… 이곳에 머물고 계시던 등불 대원 한 분이…….”

“등불? 등불이 이곳에 있습니까?”

“아뇨, 그…… 따로 떨어진 듯합니다. 그분만 계셨던 걸 보면…….”

“어디로 갔죠?”

“거수자가 최초로 목격된 곳에…… 그리고 소식이 끊겼습니다! 그 이후에 또 다른 거수자가 저렇게 두더지로 변하더니…….”

‘이런!’

등불이 중형 몬스터를 혼자 쓰러트리는 건 몇몇 대원들을 제외하고는 역부족이었다.

“대원 이름을 아십니까?”

“정새미…… 정새미 양이라고 했습니다!”

“이런…….”

“왜, 왜 그러시죠?”

성진은 정새미라는 사람을 알고 있었다.

기억이 돌아온 후에 등불과 성진은 등불 전원이 어떤 사람인지 알았다.

그녀가 이번 생에 깨우친 능력은 전투 능력이 아니었다.

정확히는 전투 특화가 아니었다.

현장이 정리되어 가자 성진은 이곳의 지휘관에게 말하고 그녀를 찾기 위해 쉘터를 벗어났다.

푸슛!

한눈에 거리를 내려다볼 수 있는 위치에 올라선 성진은 그 후로도 여러 번 건물을 옮겼다.

‘저기!’

성진은 골목에 쓰러져 있는 누군가를 발견하고 그곳을 향해 움직였다.

우우웅.

한 손으로 바닥을 짚고 한 손은 복부의 상처에 갖다 대어 치유 중인 여성이 있었다.

등불 대원 정새미였다.

쏴아아.

비를 맞으며 피를 잔뜩 흘린 그녀는, 얼굴이 하얗게 질려 있었다.

-등불이다!

-등불이라고?

-새미! 새미다! 새미 쨩!

-다쳤는데?

-헐 뭐야;;

성진이 그녀에게 다가가자, 정새미가 울음을 터트렸다.

“으으으, 아파! 아파요!”

“새미 양…….”

“나 너무 아파요…… 죽는 거 아니에요?”

성진은 그녀의 상처를 살폈다.

정새미의 펄스는 치유 능력이 있었고 분명 상처는 심각했지만, 천천히 아물고 있었다.

“후우…… 죽지는 않겠군요.”

“나 안 죽어요?”

“네, 이대로 멀쩡히만 계시면요.”

“다행이다…… 다행이야.”

-헤헷! 새미쨩, 캐삭되는 게 슬펐구나?

-걱정 말라고! 그럴 일은 없으니까!

시청자들은 아직도 이 세상이 게임인 줄 알고 있었다.

정새미가 두려워한 죽음이 그들에게는 사소한 문제라고 치부되었다.

적어도 아직까지는.

“으으으.”

“어떻게 여기에 온 겁니까?”

“으…… 쉘터요? 아니면 이 문어 대가리?”

“문어?”

“거수자가…… 문어 대가리에 문신이…… 새겨져서…… 아무래도 수상해서 쫓았어요…….”

성진이 정새미로부터 조금 떨어진 자리에 머리가 쪼개진 남자의 시체를 발견했다.

남자의 시체를 뒤집자 문어의 얼굴이 드러났다.

“…….”

-윽, 진짜 문어랑 똑같이 생겼네?

-문신 뭔데;

-난 머머리 비하한 줄 알고 새미쨩한테 쵸큼 실망할 뻔했는데 진짜 문어였네?

-우리 새미가 그럴 리가 없지. ㅋㅋ

“사도군요.”

“으, 아파…… 네. 터지려고 하길래 머리를 쪼갰어요.”

“어떻게?”

“헤헤…… 이거…….”

피 묻은 도끼가 땅바닥에 떨어져 있었다.

사도의 수하가 일을 벌이기 전에 다행히 정새미가 먼저 발견해 제압했다.

덕분에 쉘터가 중형 몬스터 2기의 동시 공격을 받는 상황을 모면할 수 있었다.

-새미야, 도끼라고? ……오빠가 그동안 널 잘못 봤구나.

-아무래도 우린 조금 멀어지는 게 좋겠어…….

그렇지 않았다면 이곳의 쉘터는 일찌감치 몬스터에게 넘어갔을 것이다.

“나 잘했죠?”

“……네. 어쩌다 나선 겁니까?”

“그냥…… 감…….”

“다른 사람들도 있을 텐데요?”

“올빼미 님은 모르시는구나. 윽…… 저 이상한 놈들은 펄스가 아니면 꿈쩍도 안 해요……. 아야야…….”

***

성진은 정새미와 함께 쉘터로 귀환했다.

끔찍한 시체들이 산을 이뤘고 쉘터는 측벽이 뚫린 채로 허전한 모습을 그대로 보이고 있었다.

“오셨습니까?”

“상황은요?”

“대충 정리된 것 같습니다. 쉘터 인원들은 이대로 저희와 함께 수원으로 가기로 했고요.”

“그러는 게 좋겠네요.”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겁니까?”

“저도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성진이 정새미가 목격한 것과 자신의 판단을 그대로 얘기해 주었다.

상황을 전해 들은 박영준이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사도라는 미친놈들의 자살 테러라는 거군요. 그 여파가 이곳까지 내려온 거고요. 그럼, 전방은 거의 초토화되었겠네요.”

“모르죠, 등불이 왔으니 상황이 반전되었을 수도.”

“이능력이 아니면 흠집도 못 낸다니. 좋지 않네요. 같이 오신 분은…… 상태가 어떻죠?”

“치유 능력이 있어서 활동은 가능합니다. 하루 정도는 요양해야겠지만.”

“다행이네요. 그래도 쉘터 쪽에서 사망자가 있기는 했습니다. 이런 말을 하기는 좀 그렇지만…… 이만한 게 천만다행입니다.”

“…….”

“우리가 조금이라도 늦었거나, 중형이 둘이었다면 쉘터 사람들은 지금쯤 곤죽이 되었겠죠.”

맞는 말이었다.

성진이 고개를 미미하게 끄덕이고 정새미를 챙겼다.

박영준이 성진에게 말했다.

“다행히 차량들은 침수되지 않았습니다. 한두 대 파손되긴 했지만, 쉘터 인원들이 수원까지 가는 데는 문제없습니다.”

“……지금 바로 출발해야겠네요. 아마도 여태 차량 행렬이 실종된 건 사도들 때문이었겠군요.”

“그럴 가능성이 크네요. 끔찍한 걸 본 것 같습니다. 사람이 저렇게 변하다니…….”

쉘터장이 연신 감사를 표했고 정새미에게는 아예 절이라도 할 기세였다.

그녀가 아니었으면 여기 있는 모두가 죽었을 것이다.

“움직입시다.”

적재를 마친 차량이 평택 보급 행렬에 합류했다.

성진은 가는 내내 정새미에게 상황을 전해 들었다.

“다른 등불은 어디에 있습니까?”

“몰라요, 다들 수원 언저리에서 뿔뿔이 흩어졌다가 모인 것 같아요. 듣기로는 더 전방으로 가 있는 인원도 있다는데…….”

“그랬군요.”

“다행이에요…… 다들 신조 님을 기다릴 거예요.”

“…….”

-신조?

-먼 소리징?

-아, 등불이랑 감격 재회 예정. ㅋㅋ

-다들 올만이네. ㄷㄷ 어떻게 변했을까?

앞서 고생을 했기 때문인지, 향남 쉘터의 붕괴 이후로 마주치는 완성자는 없었다.

덕분에 다행이라며 미소 짓는 운전병들과 함께 수원으로 입성할 수 있었다.

치이익.

통신 회선이 정상으로 돌아오기 시작했다.

-들리나?

-들립니다. 수원 쉘터입니까?

-맞다, 그쪽은?

-평택에서 출발한 보급 차량입니다. 곧 수원 쉘터에 도착합니다.

-빌어먹을 폭풍 때문에 통신이 오락가락하는데, 용케도 와 줬군.

-와야 하니까요.

-고맙네, 고생했어.

-아, 올빼미 님도 함께입니다.

-……뭐? 지금 뭐라고 했나?

-그게…… 직접 들으시는 게 나을 것 같습니다.

-……알겠네. 쉘터에서 기다리고 있겠네.

그으으응.

이제 안전하다는 생각에 운전병들도 신이 난 건지, 차량이 쉘터를 향해 거침없이 질주했다.

잠시 후, 수원 쉘터에 차량이 차례차례 들어섰다.

해가 떠오르는 와중, 그 모습이 장관을 이뤘다.

“와아아! 밥이다, 밥!”

“밥은 먹고 해야지! 다 먹고 살자고 하는 짓인데!”

“어떻게 온 거야? 이번에도 못 올 줄 알았는데!”

끼이익.

탁.

성진이 천천히 걸어 쉘터에서 반기러 나온 이들에게 다가갔다.

하얗게 센 머리.

미간에 자리 잡은 주름.

5년 사이에 아예 확 늙어 버린 김정우 박사가 성진을 쳐다보고 있었다.

“……자네구만.”

“오랜만입니다, 박사님.”

“올빼미…… 자네야…….”

“…….”

“쉘터에 온 걸 환영하네. 일단 들어가지.”

성진이 돌아서는 김정우 옆에 선 이들을 바라봤다.

등불 대원들이 미소 짓고 있었다.

“어서 와요, 기다리고 있었어요.”

“왜 이렇게 늦었습니까?”

최별과 송하린이 성진을 반겼다.

조병창도 그곳에 서 있었지만, 성진에게 잠시 눈길을 주었다가 쓸쓸히 몸을 돌렸다.

성진이 그를 보고 이상함을 느껴 최별에게 물었다.

“무슨 일이 있었던 겁니까?”

“그게…… 네.”

“어떤…….”

“죽었어요.”

“…….”

최별이 성진에게 담담히 얘기했다.

“대원 둘이 사도들에게 죽었어요.”

등불과 성진은 최후의 싸움에 앞서 대원의 첫 번째 죽음을 마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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