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BJ는 종말에 적응했다-199화 (199/222)

199화

시나리오가 떠오르거나 하지는 않았다.

헬은 이제 지켜보기만 할 생각인 것 같았다.

지금까지 그녀에게 많은 도움을 받았지만 이제 성진은 혼자 걸어야 할 때였다.

-여기가 워디여?

-아 올만에 복귀한 늒네인데 좀 헷갈리네요;;

-내 기억으로 거의 1년 전에 세종에서 마무리 짓지 않았나?

-스칸다에서 넘어온 다음 바로 한국 섭 터지지 않음?

-이렇게 보면 데자뷰 일 진짜 못하긴 해.

-해외 섭은 왜 막은 거야? 이번 룰렛은 해외 섭인 거야? 뭐 폭탄 돌리기인가?

-??? : 의도된 사항입니다. 작은 소비자들아.

성진은 일단 주변을 확인했다.

“…….”

그러나 아무리 기억을 더듬어 봐도 기억에 없었다.

이곳이 세종이 맞기는 한 건지.

세종이 맞다면, 주민들은 다 어디로 사라진 것일까?

키이이익!

우지직.

부서진 건물 잔해에서 주둥이가 길쭉한 몬스터가 모습을 드러냈다.

키익!

키이익!

그 주변에서 끊임없이 울음을 토해내는 청소부들이 등장했다.

무리로 행동하는 듯 지금도 계속해서 공간을 메웠다.

-??? : 훗…… 겨우 그 정도인가.

-근데 뭐 근 1년 잠수였는데 복귀하면서 한마디 정도는 해야 하는 거 아니여?

-바로 전투 신이 말이 돼?

기이, 잉.

철컥!

철컥!

성진이 대전에서 얻었던 TK-28의 방아쇠를 당겼지만 들려온 것은 기대하지 않은 소리였다.

틱,

틱.

“음…….”

-배터리 나갔네.

-ㅈ대땈ㅋㅋㅋㅋ

-1년 만에 복귀, 그리고 복귀한 지 5분 만에 사망하는 스트리머가 있다!? 뿌슝빠슝!

-아 여기서 클리셰 쓰지 말라고. ㅡㅡ

-데자뷰랑 합의된 거죠? 형? 형? 그 땀 뭐야? 형?

-오빠, 손이 너무 흥건해.

성진은 총을 바닥에 내려놓은 후, 시체 청소부의 수를 확인했다.

‘17마리…… 계속 늘어나네.’

성진은 몸을 뺄까 생각도 해봤지만, 이곳에서 얻은 정보가 너무 적었다.

도시에서 도망친다고 별다른 수가 있는 것도 아니었으니 청소부를 정리하는 게 낫다고 결정했다.

푸슛!

끼이익!

성진의 손목에서 뿜어 나온 거미줄에 팔이 붙잡힌 청소부는 괴성을 지르며 거미줄을 끊어내려 했다.

성진은 팔을 강하게 튕겨 청소부를 자신에게 끌어들였다.

푸욱!

끽.

끼이.

청소부의 흉부에 날이 시퍼렇게 서린 단검이 박혔다.

성진은 무표정한 얼굴로 단검을 빙글 돌려, 청소부의 숨통을 확실하게 끊었다.

끼이이이이!

끼이이익!

시체 청소부들이 그 광경을 보고 성진에게 달려들었다.

-왜 안 위압?

-위압 있는 거 까먹은 거 아님?

-어허, 님들. 지금 사이버 재활 운동하는 거잖아요. ㅡㅡ 하여튼 아만보들이란!

-아 ㅋㅋ 오래 쉬긴 했지. 우리 성님은 근데 어디 사나? 요번에 서울 완전 풍비박산 났는데;;

-쉿; 언급 ㄴㄴ.

시청자들이 떠드는 것과 별개로, 전투는 착실하게 진행되었다.

킥!

키이익!

콰직!

성진은 오랫동안 사용하지 않았던 능력을 일깨우기 위해 노력했다.

대부분은 현재의 성진에게 그다지 필요 없는 능력이었지만, 그래도 그중 몇 개는 쓸 만했다.

대표적으로 거미줄이 그러했고 일시적인 근력 상승과 재생력 상승은 크게 도움이 되었다.

탁!

성진이 발을 걸자 이족 보행을 하는 시체 청소부는 그대로 고꾸라졌다.

콰직!

성진의 워커가 그대로 청소부의 머리를 으스러트렸다.

오랜만의 호쾌한 전투에 시청자들이 환호했다!

-뿌셔! 주말 출근시키는 부장 머리 뿌셔!

-이미 부서진 두발입니다…….

-이미 투블럭의 여집합입니다…….

-내 부하 직원이 여기서 이러고 있는 거 알면 너무 슬플 거 같아.

스릉.

배터리가 방전된 총은 제쳐 두더라도 검은 멀쩡했다.

스칸다라는 걸출한 장비를 사용하다가 오랜만에 마주하는 신조 살해자를 사용하니 미묘한 감정이 스치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장검이 뽑힘과 동시에 성진의 움직임이 변했다.

서걱!

서걱!

키이이이이이이!

동시에 두 청소부가 네 조각이 되었다.

위압을 사용하지 않더라도 이쯤 되니 청소부들도 뭔가 이상하다는 걸 느꼈다.

키이이이!

키이이!

여지까지와는 현저히 다른 울음을 내지르며 외곽에 있던 청소부들부터 뒤돌아 도망쳤다.

퍽!

퍼억!

성진은 돌과 단검 등을 이용해 몇 마리는 처치했지만, 굳이 다른 청소부들까지 뒤쫓지는 않았다.

어쨌든 이것으로 당분간은 성진을 귀찮게 하지는 않을 테니.

-그가 돌아왔다.

-He is bag!

-그는 가방이다!

-밀수들 평균 지능이 요 정도입니다. 심연의 일부만 보여 드린 거예요!

-끔찍하다. ㅋㅋㅋㅋ 그러니까 a가 아니라 e인 거지ㅋㅋ? 아니야ㅋㅋ?

-함부로 채팅을 치지 마! 여기서 당당한 녀석은 몇 안 돼!

-그냥 웃자 얘들아. ㅋㅋㅋ 외국 농담이라고 생각해.ㅋㅋ

성진은 이제는 여유롭게 채팅 창을 훑고 미소 지었다.

시청자들 대부분이 그것을 보았다.

-어? 웃었다? 웃었어?

-우서?

-이 선수! 팀이 지는데 웃고 있어요!

-올빼미가 비웃을 정도의 지능이라니! 그 정도면 자랑스러워해도 돼!

시청자들은 마치 심각한 일을 앞둔 성진의 긴장을 풀어 주기라도 하려는 듯이 재잘댔다.

성진은 시체들을 걷어차고 도시의 중심으로 이동했다.

대부분의 건물들은 부서져있어서 세세한 정보 확인이 어려웠다.

성진은 일부러 대로변을 향해 걸었다.

위압을 발동하고 있었기 때문에 작은 몬스터들은 덤벼들지 않았다.

지금 성진의 수준에서 몬스터가 덤벼든다고 위험하다고 말할 수는 없었다.

성진은 얼마 지나지 않아 원하던 정보를 얻었다.

“세종…….”

표지판에는 세종시청 방향이라는 문구가 새겨져 있었다.

성진은 그 문구가 반가우면서도 난감했다.

그의 마음을 시청자들이 채팅으로 대변했다.

-헐, 세종이면 더 큰일 난 거 아니여?

-ㄹㅇ 개 큰일인 거지. ㅋㅋㅋ

-누가 설명 좀. 여기는 실례지만 스피드웨건 님이 안 계십니까?

-반가워, 친구. 나는 미트웨건이라고 해!

-뭔가 이상한 게 온 것 같은데. 시체 수레라니. ㅋㅋ

-세종인데, 도시가 멸망해 있고 사람은 1명도 없음. 그럼 올빼미가 구한 사람들은 어디로 갔을까?

-헐 ㅎㄷㄷ 진짜로, 어디로 간 거지?

-만약 스칸다에서 돌아온 게 아니라면…….

-그건 말이 안 되고. ㅋㅋㅋ

성진은 몇 가지 추론을 해 보았다.

그 중 가능성 있는 걸 추려 행동반경을 좁혀야 했다.

‘무사히 돌아왔지만, 재앙에 휩쓸렸다면…….’

이건 가정할 수 있는 최악의 상황.

스칸다에서 한 성진의 노력이 물거품이 된 것을 떠나서 아무런 희망도 없는 전개였다.

물론, 이것은 최악의 상황이었고 이것보다 더 확률이 높은 상황을 가정해 보았다.

‘도시를 버리고 어딘가로 향했다면.’

사실상 이렇게 전개됐을 확률이 가장 높았다.

그렇다고 해도 문제는 남았다.

‘왜? 그리고 어디로?’

세종이 종말이 일어난 후, 살기 좋은 도시라고는 말 못하겠지만 갑자기 도시를 버릴 정도로 가망이 없는 곳은 아니었다.

떠났다면 이유가 있을 것이다.

성진은 그럴 만한 변수를 한 가지 알고 있었다.

‘로키…….’

그가 종말 이후의 세계에 온 것은 분명했다.

도시가 파괴된 것을 보았을 때 그의 수하들이 이곳을 습격했을 수도 있고.

성진은 세종시의 주민들이 로키를 피해 달아났을 것이라 추측했다.

‘그럼…… 어디로 간 거야?’

내려갔을까, 아니면 올라갔을까.

그게 중요했다.

데자뷰의 신성을 이용해 넘어오는 과정까지는 문제가 없었지만, 중간에 무슨 문제가 생겼는지 등불과 헤어졌다.

등불도, 세종시의 시민들도, 그리고 부산부터 울산, 대구와 대전, 그리고 광주의 시민들까지.

모두 다 어디로 간 것일까.

아직 전선은 세종보다 밑에 형성되어 있을까, 아니면 진격해서 세종보다 위로 향했을까.

성진은 골치 아프게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위로 가자.’

로키, 김우열은 서울에 있을 것이다.

한시라도 빨리 그를 찾아 그의 계획을 저지하고 성진의 계획을 실행해야 했다.

상대가 하고 싶은 대로 하게 둔다면 성진의 계획도 어그러질 가능성이 높았다.

성진이 대략적인 상황을 파악하고 걸었다.

철컥, 철컥.

TK-28의 상태를 점검했다.

다행히 기능적인 결함은 없었고 배터리의 수명도 멀쩡했다.

충전량이 다했을 뿐이었다.

가지고 있는 능력 중의 하나가 이와 관련이 있었다.

파지직!

장기적으로 보았을 때는 배터리에 손상을 일으키겠지만 일단은 그의 능력으로 배터리를 보충했다.

걷는 내내 한눈을 팔아도 덤벼드는 몬스터는 없었다.

부서진 세상에서 아무렇지 않게 활보하는 그의 모습이 이질적이었다.

-이 광경…… 익숙하면서 짠하다.

-1년 전에 이거 보면서 낄낄댔는데 쩝…….

-여러분, 취업은 하셨나요?

-전 여전히 한결같습니다. 취업은 다른 이들에게 양보했죠.

-하하하, 저와 비슷한 생각이시군요. 공동체의 이익을 위해 제 한 몸 희생하는…….

성진은 걸으며 생각했다.

데자뷰가 딱히 설명하지 않았지만, 왜 상황이 이렇게 된 것인지 짐작은 가능했다.

‘적응은…….’

적응은 데자뷰가 준 능력이 아니었다.

자신이 원래부터 가지고 있던 능력이었다.

폭풍을 부르는 힘과 함께 신조를 대표하는 능력.

그것이 시체로부터 상대의 능력을 가져오는 것이었다.

흐레스벨그라는 이름 자체도 ‘시체를 삼키는 자’라는 뜻이었으니 간단한 이치였다.

다른 의문은 방송.

왜 데자뷰는 방송 매체를 통해 성진의 일거수일투족을 보여 주려 했을까.

마지막 세계를 기념하기 위해? 오랜 권태로 자극을 얻기 위해서?

‘아니.’

이건 신조의 생각이었다.

그의 계획의 일부였다.

물론, 그가 자신이었지만.

‘현실 특파원’ 님이 5,000원 후원하셨습니다!

[정부 또 병크 터졌네; 유족들한테 말 잘못했다가 지탄 받는 중. ㅋㅋㅋ]

-현실 얘기는 현실에서만~

-왱 재밌자넝. 정치 얘기도 아닌데. ㅋㅋㅋ

-근데 재해 때문에 일어난 일도 정부 탓으로 몰고 가는 건 좀…….

-그 재해가 자연재해냐? 이번에 완성자로 강국 어쩌고 난리 부르스하더니 완성자가 게이트 사고 촉발시킨 거라며?

-그거 유언비어래, 너 그러다 공안에서 잡아간다!

-헉! 그래도 맞자너, 본 사람도 한 둘 아니고 그 많던 완성자들이 코빼기도 안 보이자너.

-그건 ㅇㅈ 해명해야 하는데 못 하는 중. ㅋㅋㅋ

성진도 자신이 떠난 뒤의 일이 어떻게 되고 있는지는 몰랐다.

연락을 주고받을 상대도, 그럴 필요도 없었으니까.

‘빼미쿤’ 님이 1,000원 후원하셨습니다!

[올만이야…… 어떻게 지냈어?]

-시작됐다, 근황 토크!

-아, 솔직히 대답해 줘야지. ㅋㅋ

-스칸다에서 우리가 업어 키운 거나 다름 없자너~

-ㅁㅈ 본인도 그렇게 말했음.

-진짜?

-‘감사합니다, 여러분. 저 올빼미는 여러분이 뿌린 템과 재산을 가지고 잘 놀다 갑니다.’ 라는 뉘앙스로 말했잖아.

-기억 왜곡 지리네. ㅋㅋㅋ 야 그 정도면 기자해도 되겠다. ㅋㅋㅋ

성진은 과거였다면 그 질문들에 대답할 생각도 하지 않았을 테지만, 우여곡절을 겪은 지금은 그들에게 차근차근 대답해 주기로 마음먹었다.

“잘 지냈습니다. 생각보다는요.”

-…….

-머지? 잘못 들었나? 대답해 준 거야?

-아직 스칸다 군기 안 빠졌네! 이제 후원으로 질문 쏟아질 듯. ㅋㅋㅋ

‘대답해!’ 님이 1,000원 후원하셨습니다!

[어떻게요? 어떻게 지냈는데요? 어떻게 지냈는데요?]

이번엔 성진이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자, 시청자들끼리 온갖 추측이 난무했다.

-심심이가 분명해. 딥 러닝 기술로 정해진 질문에만 답을 하는 거야.

-나는 공산당이 싫어요! 해 봐요!

-여자 친구 있냐고 물어보면 어떨까?

- 될 법한 질문을 좀 해라. 자, 봐봐. 테디베어가 어떤 질문을 하는지.

‘테디베어’ 님이 1,000원 후원하셨습니다!

[게이트 사건 관련하여 현 정부의 대응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소신 발언 부탁드립니다.]

-질문 태도만 좋고 내용은 존나 민감하잖앜ㅋㅋㅋ

-김형태 소신 발언 떴다!!!

-김형태가 누군데.

-나. 정부가 잘못한 듯 ㅎ

-김형태는 ㅇㅈ이지.ㅋㅋ

-올빼미 대답 안 한다. ㅉㅉ 그른 질문!

‘이건 어떠냐’ 님이 1,000원 후원하셨습니다!

[등불이 이번 게이트 사태와 관련 있다는 말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이야, 이건 옳게 된 질문.

-이건 솔직히 대답해야지.

등불은 게이트 사태와 아주 밀접하게 관련이 있었다.

그들이 사실상 주연이었으니까.

하지만, 성진은 그에 대해 자신이 떠들어 댈 생각은 없었다.

“별 관심 없습니다.”

-시무룩…….

-야, 얘 운다. 우냐?

-그래도 대답은 받았자너. ㅋㅋㅋ

-울지 마! 포기하지 마! 다른 질문을 꺼내!

-밀수들아! 집단 지성으로 대답을 이끌어 내라고!

성진은 따분할 법했던 걸음이 한결 가벼워짐을 느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시청자들은 모든 사실을 알게 될 것이다.

그때까지는 조용히 말을 아끼기로 했다.

성진은 그렇게 단 몇 줄의 채팅으로 시청자들과 교감을 하며 북쪽으로 걸었다.

올라가는 도중 대부분 큰 도로를 이용했기에 도로가 꺼지거나 건물 잔해가 틀어막고 있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이동이 힘들거나 하지는 않았다.

따분함도 시청자들과 번갈아 대화하니 한결 나았고, 잊을 만하면 몬스터들도 한두 번 마주치니 시청자들도 꾸준히 성진을 지켜보았다.

그렇게 며칠이 지나, 성진이 천안을 지나쳐 평택으로 들어설 때였다.

-드디어 평택…… 길었다.

-평택 나 사는 동네인데. ㅋㅋㅋ 여기 특산품은 금철임.

-금철? 근처에 광산이라도 있음?

-바로 나 홍금철!

-속보) 지방 특산물 과대 생산 우려, 정부는 대책 마련에…….

키아아아아아아!

박쥐의 날개에 뱀의 머리를 한 몬스터가 평택에 도착한 성진에게 달려들었다.

기이잉.

퍼엉!

푸화악!

TK-28이 불을 뿜자, 달려들던 몬스터의 상반신이 터져 나갔다.

철컥.

성진이 긴장을 늦추지 않고 주변을 경계했다.

총 소리가 들렸으니 일대의 주목을 끌었을 것이다.

조용히 지나가는 것을 선호하는 성진이 총을 함부로 갈길 이유가 없었다.

‘없나?’

몬스터가 찾아오는 것은 별 문제가 되지 않았으니, 주변에 사람이 있다면 이 소리를 들었으면 하고 총을 사용했다.

“……아!”

멀리서 메아리치듯 들려온 소리.

분명 사람이 낸 소리였다.

-사람이다!

-아! 라고 했어!

-나도 알, 아!

성진은 재빨리 소리가 들려온 방향으로 달렸다.

푸슛.

거미줄을 타고 그나마 멀쩡한 건물의 옥상을 넘나들던 그가 소리가 들려온 곳의 상황을 확인했다.

“사람…….”

정확히는 사람들이었다.

바이저를 뒤로 젖힌 사람들이 차량을 몰고 이동하고 있었다.

아니, 이것도 정확히는 도주하고 있었다.

드르르륵.

쿠아아.

“총 소리! 총 소리 들렸잖아! 머저리야!”

“어쩌라고요! 지금 뒤에 따라붙은 거 안 보여요? 쟤들도 상관 안 하는데!”

“그쪽으로 몰아야 우리를 발견하지!”

“장난 쳐요? 뭐, 확실한 것도 없는데! 차라리 이대로…….”

“뒤에 있는 보급품 털리면 우린 대장한테 다 죽는다!”

“아, 몰라! 직접 운전하던가!”

“야! 운전대 잡아!”

-패트와 매트.

-덤앤 더머.

-윌리스와 그로밋.

-스폰지밥과 뚱이.

성진은 차량이 자신이 올라와 있는 건물을 끼고 돌 거라는 걸 예상할 수 있었다.

타다닷.

그는 망설임 없이 건물의 벽면을 내달렸다.

트럭 형태의 차량은 성진의 예상대로 정해진 시점에 그가 원하는 위치에 도달했다.

쿵!

성진이 트럭의 천장에 떨어지자, 운전자와 동승자가 화들짝 놀랐다.

“으아아악! 어떡해! 천장에 하나 붙었나 봐!”

“내가 아침 일찍 움직이자고 했죠!”

“저 새끼들이 부지런할지 게으를지 내가 어떻게 알아!”

“모, 몰라요! 아무튼 알아서 해 봐요!”

성진은 트럭을 바짝 쫓는 팔이 긴 고릴라 형태의 몬스터들을 겨냥했다.

후우.

숨을 한번 쉬고, 펄스를 조금 담았다.

기이잉.

콰아아아앙!

콰아아앙!

성진의 TK-28이 전보다 거센 울음을 토했고 그곳에서 뿜어 나온 파괴력은 비교조차 할 수 없었다.

고릴라를 닮은 몬스터 2마리가 먼지가 되어 트럭에서 멀어졌다.

당황한 무리는 황급히 트럭을 추격하는 것을 포기하고 이곳저곳의 건물들로 숨었다.

“야! 위에 고질라가 탄 것 같아!”

“우, 우리 죽는 거예요? 지원은 쉘터까지 가려면 좀 남았는데…….”

“운전 좀 잘해서 떨어트릴 수 없냐?”

“그보다 선배를 던지는 게 안전하게 가지 않을까요? 어떻게 좀 해 봐요!”

“시발…….”

-ㅋㅋㅋ 고질라가 아니고 맹금류입니다.

-유전자는 조금 섞였을 수도 있어.

-어휴, 일단 진정부터 시킵시닼ㅋㅋ

성진은 트럭의 천장을 톡톡 두들겼다.

톡, 톡.

“으아악!”

“왜, 왜요!”

“무슨 배변 소리가 이렇게 커!”

“두, 두들긴 거 아니에요?”

“소리 못 들었어? 그게…….”

성진은 더 큰 오해를 불러일으키기 전에 말했다.

“실례합니다. 놀라셨습니까.”

“으아아악!”

“사, 사람 목소리 아니에요?”

“차, 차 세워 봐!”

“세우면 아까 걔네는…….”

“없잖아, 인마! 아까부터 떨어졌었어!”

끼이이익.

트럭이 도로의 구석진 곳으로 눈치를 보며 멈췄다.

흙먼지가 잠시 피어오르고 성진이 천장에서 내려왔다.

“맙소사, 사람이잖아?”

“그럼 쿵 소리는 뭐였죠? 위에 떨어지는 소리였는데…….”

“당신은 누구십니까?”

성진은 지금 종말 이후의 상황을 알지 못했다.

상대가 인간이라고 하더라도 로키의 추종자들일 수 있었으니 말을 삼가기로 했다.

“저부터 물어도 되겠습니까?”

“이봐요, 난데없이 나타나서는…….”

“제가 구해 드린 것 같은데…….”

“저희를 구해 주셨으니 대답해 드리겠습니다. 뭐부터 물으실래요?”

-캐릭터 확실하네. ㅋㅋㅋ

-안 구해 줬어도 살았을 듯. ㅋㅋ

성진이 질문의 순서를 정해 차례대로 물었다.

“첫째, 당신들은 누구십니까? 어디 소속이지요?”

“소속이랄 게 있나? 지금 이 난리통에 사람은 두 부류로 나뉠 텐데.”

“네?”

“서울에 있는 그놈들하고 혁명군 둘밖에 없죠. 뭐 어디 이상한 곳에서 오셨습니까?”

“혁명군? 그놈들?”

“서울에 게이트 붕괴 사태와 관련된 쓰레기들이 있고, 우리는 그들을 몰아내려는 혁명군 소속이죠. 대답이 됐습니까?”

“선배! 그렇게 말하면…… 저 사람이…….”

“됐어, 보아하니 우리 죽이려고 했으면 진작 죽였겠지.”

그의 말은 거짓이 없어 보였다.

“혁명군이라면…… 혹시…… 김정우 박사님을 아십니까?”

“박사님을 아세요?”

“네, 자제분으로 김석찬이라는 청년이…….”

“아, 그렇게 자세하게 아시다니, 가까운 사이였나요?”

“네. 그렇다고 볼 수도 있겠네요.”

“흐하하하! 박사님이 좋아하시겠네. 우리 편이셨구먼! 어딜 갔다 이제 오셨을라나?”

“몇 가지 더 물어봐도 되겠습니까?”

“얼마든지! 근데 꼭 여기서 물어야 합니까?”

“그건 아닙니다. 차에 오를 테니 가면서 얘기하시죠.”

“좋습니다!”

-이렇게 보면 올빼미 친화력도 괜찮은 편인 것 같아.

-인싸야? 그럼 나랑은 안 맞네.

-나랑도.

“저는 지금 세종시에서 올라오는 와중인데…… 다들 어디에 간 겁니까?”

“세종시? 당연히 혁명군과 같이 있지요.”

불행 중 다행이었다.

문제가 생기긴 했지만, 잘 대처한 듯했다.

“혹시 여기에 며칠 전에 등불이라는 사람들이 오지 않았습니까?”

“등불? 아! 수원 쪽에 아군이 합류했다고 하던데 그 사람들을 말하는 건가?”

“몇 명이나 된다던가요?”

“100명이 넘는다던데? 맞습니까?”

“네!”

-네!

-올빼미 해맑은 거 봐. ㅋㅋㅋ

-녜!!!

“당신도 등불입니까?”

“그건…… 아닙니다.”

“가까운 사이인가 본데…… 이름이 어떻게 됩니까?”

“아, 이름말이군요.”

성진은 처음의 질문에 답하지 않았기에 통성명도 아직 못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 조필성이요, 옆에 후배는 장욱이고.”

“반갑습니다. 올빼미라고 합니다.”

“…….”

“……뭐?”

장욱과 조필성의 표정이 싸늘하게 굳었다.

끼이익.

잘 움직이던 차량이 다시 멈춰 섰다.

-또 왜?

-이번엔 또 뭐야?

“농담하는 거지?”

“네?”

“맞아? 정말 당신이 올빼미야?”

“네, 문제가 있습니까?”

“문제? 하하하! 그래 문제야 있지. 박사님이 당신 소식을 얼마나 기다렸는데. 갑자기 사라졌다고!”

“김정우 박사님이 말입니까?”

그렇게 크게 화 낼 일은 아니었다.

세종의 일이 있고 난 후 고작 1년 사이에 돌아왔다.

그사이에 나름 바빴고.

근데, 어쩐지 장욱의 반응이 이상했다.

“올빼미 님, 김정우 박사님이 말씀하시겠지만…… 대체 5년 동안 소식도 없이 어디 계셨던 겁니까?”

다른 세계를 넘나들 때의 시간은 일정하지 않았다.

5년.

성진이 스칸다에서 돌아온 후로 흐른 시간은 1년이 아닌 5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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