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화
-철수하고 있습니다!
-성진 씨는, 최성진 씨는 어떻게 됐나?
-그건…… 완성자들을 막느라……
-어떻게 되었냐고!
-확실치 않습니다. 남아서 저희가 빠져나갈 시간을 버셨습니다.
-……꼬리는 붙었나?
-다행히 무사히 철수한 것 같습니다. 꼬리로 보이는 자들도 보이지 않고요.
-중간 지점에 마중 나갈 이가 나가 있을 걸세. 거기서 보세.
-예. 알겠습니다.
삐익.
최재국이 인상을 쓰고 책상을 움켜쥐었다.
“살아 있겠지. 이런 거로 죽을 사람이 아니야.”
말을 하면서도 최재국은 불안했다.
등불 측 사도들이 전부 모이는 날이 곧 다가오는데 데자뷰와 연결고리를 가진 이에게 문제가 생긴다는 것은 곤란한 일이었다.
“성진 군…… 무사했으면 좋겠네…….”
블라인드 너머로 등불들이 초조해하는 모습이 보였다.
평범한 사람들이다.
사도들처럼 전생의 기억을 일부 지니고 살아온 것도 아니고 이 상황도 모두 갑작스럽게 찾아온 것이다.
그들을 이해하지만, 한시가 급했다.
최성진만으로는 이 재앙을 막을 수 없었다.
모두가 힘을 합쳐야 했다.
그리고 용기를 내야 했다.
두려움을 떨치고 행동에 나설 때, 그때가 돼서야 뭔가가 바뀔 것이다.
“후우…… 완성자라…….”
오늘 일을 통해 완성자들 대부분이 정부 측 사도들과 연관되어 있을 거란 사실을 짐작할 수 있었다.
그러니, 완성자는 적이었다.
등불들만으로 그들을 상대할 수 있을까.
또한, 황혼에 그들은 어떤 역할을 맡게 될 것인가.
똑, 똑.
“……들어와도 된다, 별아.”
끼이익.
“아버지, 무슨 일이세요. 아산에서는…….”
“방금 연락받았다. 연구원들은 무사히 철수한 것 같아.”
“서, 성진 씨는요?”
“……완성자들 때문에 남아서 그들을 막았다고 하는구나.”
“거짓말……. 어떻게 되는 건데요, 그럼? 혹시 주, 죽기라도 한다면…….”
“그럴 리 없다. 그렇게 쉽게 당할 사람이 아니야!”
“하지만…….”
“별아, 불안해하는 건 이해한다. 하지만 우리는 흔들려선 안 된다. 다른 이들이 더 두려워할 거야. 그것만큼은 막아야 한다. 처음부터 같은 이해관계로 모인 저들과 달리 우리는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 있다. 이럴 때일수록 서로를 단단하게 의지해야 해.”
최별이 입술을 깨물었다.
그녀는 지금 모두에게 실망했다.
“모두가 좀 더 적극적이었다면…… 하…….”
그녀의 마음은 이랬다.
게임에서만큼은 세상을 구하는 사람들이었는데, 그것이 현실로 이어지자 이도 저도 아닌 사람들이 되어 버린 것이다.
세상이 위기에 처했다니 구하기는 해야겠고 죽는 건 무서운 그런 사람들이 되었다.
턱.
최재국이 딸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그것만으로도 그녀는 진정이 되었다.
“별아, 모든 인간이 최성진 씨나 너처럼 처음부터 강할 수는 없다. 당연한 거야.”
“……시간이 지나면 달라질 거라는 말씀인가요?”
“그것 또한 알 수 없지. 하지만, 믿어 보자는 것이다. 캡슐에 들어가 너나 최성진 씨가 보았던 세계의 사람은 어땠지?”
“그건…….”
최별은 종말 이후에서 성진이 겪었던 사람들, 그리고 그녀가 겪었던 사람들을 떠올렸다.
처음에는 자신의 안위만 신경 쓰던 사람들이 어떤 일을 기점으로 변했다.
더 큰 것을 위해 싸웠다.
최재국이 말하고자 하는 바도 결국 그것일 것이다.
인간은 삶보다 더 큰 무언가가 있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 혜성으로 변하곤 한다.
맹렬히 타오르며 무언가를 갈구하고 전부를 바쳤다.
그런 순간이 찾아올지 모른다.
최재국의 생각은 그랬고 최별에게 그것을 기다리라 말했다.
“……다들 변할 수 있겠죠?”
“시간이 필요할 뿐이다. 강한 사람도 처음부터 강한 것은 아니었어. 너도 알잖니? 사람은 적응하는 동물이다. 강해져야 할 필요가 있을 땐 강해지는 게 사람이야.”
삐이이.
새로운 연락이 도착했다.
혹시 기다리는 연락은 아닐지, 최재국의 표정이 순식간에 변해 연락을 받았다.
덜컥.
“…….”
“아버지?”
“……알겠습니다. 다행이군요. 그렇게 알고 있겠습니다.”
뚝.
“누구예요? 누군데요?”
“보채지 않아도 된다. 최성진 씨다.”
“저, 정말요? 무사하대요? 정확히 어떻게 된 일이에요?”
“완성자 무리가 습격해 왔고 추가적인 증원은 없었다는구나. 그리고 완성자에 대한 정보를 몇 가지 알아낸 것 같으니 조만간 얘기하자고 했다.”
“다, 다행이네요. 무사하셨어요. 그런데 이곳으로 곧장 오시는 거 아니었어요?”
“국존에 들러서 며칠 있다 오신다는데, 뭔가 신경 쓰이는 게 있는 것처럼 들렸다.”
“아무튼, 다행이네요. 모처럼 일이 시원하게 해결됐네요.”
“글쎄…… 어떨지…….”
***
성진은 곧장 등불에게 향하지 않았다.
그는 지금 매우 복잡한 심경이었다.
완성자들은 1세대 각성자들보다는 강력했지만, 그 하나하나가 절대적인 위력을 발휘하지는 못했다.
다만, 그 특징이 기묘했다.
마치 몬스터가 된 것처럼 이상한 능력을 구사했고 뿐만 아니라 그들의 목숨을 빼앗았더니 적응이 이루어졌다.
그렇다.
사실 진짜 신경 쓰는 부분은 바로 그 부분이었다.
‘왜 시스템 창이…….’
심지어 사라지지도 않았다.
시스템 창이 나타난 이유는 짐작이 갔지만 확신할 수 없었다.
‘종말 이후가 현실과 연결되는 걸까?’
만일 그렇다면 왜 지금일까.
문제는 그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D-7…….’
시나리오는 뭔가가 일주일 남았다는 것을 알려 왔다.
대체 무엇을 가리키는 것일까.
이대로 디데이가 닥쳐오길 기다려야 하는지, 그도 아니면 뭔가를 대비해야 하는지 골치가 아팠다.
그는 아산을 벗어나 최재국에게 곧장 가지 않았다.
지금, 그의 솔직한 마음이 다른 곳으로 향하게 했다.
끼익.
거칠게 차를 세운 성진이 유리문 앞에 서려 했다.
그러나 안에서 그를 알아보고 신아름이 먼저 나왔다.
“오빠? 왜 밖에서 그러고 있어. 그보다…… 그…….”
성진은 차를 타고 곧장 왔고 옷가지를 갈아입었지만 군데군데 묻은 핏물 자국이 아직도 남아 있었다.
“……그 피는 뭐야?”
“아, 닦는다고 닦았는데…….”
“말해. 위험한 일 한 거야?”
“아름아.”
“말하라니까?”
성진은 이제 신아름의 눈을 가리기 싫었다.
그는 있는 그대로 그녀에게 말하고 싶었다.
그의 입이 달싹였다.
“……늘 위험해.”
“…….”
“뭔가가 끊임없이 내 숨통을 조여 와. 나를 병상에 누워있게 했던 악몽도 나 혼자 해결할 수 없는 무서운 미래도…….”
“오빠…….”
“무서워……. 아름아 너무 무서워……. 꿈에도 그리던 일상인데…… 아직도 불안해.”
성진은 솔직하게 말했다.
그는 무리하고 있었다.
아무리 담담한 성진이라도 이 세상이 이상하게 변해 가고, 그것을 신아름이 알게 될까 봐 노심초사하는 일련의 과정은 너무 괴로웠다.
“……우리 도망칠까?”
“…….”
“아무도 모르는 곳에서 살면…… 아무도 신경 쓰지 않으면 괜찮지 않을까? 이 넓은 세상에 우리 둘 조용히 살 곳이…….”
“최성진…….”
“세상이 어떻게 되든 난 너 하나는 지킬 수 있어. 반드시 그렇게 할…….”
“최성진!”
신아름이 성진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면서 윽박질렀다.
당돌한 그녀의 모습에 성진은 색이 희미해진 눈으로 그녀를 보았다.
“필요 없어.”
“……뭐?”
“필요 없다고. 네 보호도, 둘만 도망쳐서 어딘가에 숨어 사는 미래도.”
“…….”
“왜 이렇게 된 거야? 아, 하긴…… 나 때문이겠지. 내가 계속 신경 쓰였을 거야.”
“……아름아.”
“그럼 이제 막지 않을게. 위험한 일 해도 돼. 나서서 뭔가 바꾸려고 해도 돼. 난 막지 않을 거니까.”
“내가 어떻게 했으면 좋겠어?”
“하!”
신아름이 성진의 어깨를 붙잡았다.
그리고 물었다.
“넌 어떻게 했으면 좋겠어?”
“……모르겠어.”
“……내가 좋아하던 당당한 최성진은 어디 간 거야?”
성진은 그녀와의 처음이 기억나지 않았다.
기억은 혼란하고 세계는 변했고, 책임은 막중했다.
여기서 어떻게 해야 할까.
어떻게 하면 행복해질 수 있을까.
이것은 대체 전부 무엇을 위한 것일까.
그녀가 좋아했던 당당한 최성진은 이미 오래전에 부서진 걸지도 모른다.
실족으로 기록된 임무 중 사고 이후로.
“가.”
“…….”
“뭔가 문제가 생긴 거지? 오빠를 누군가 필요로 하는 거고?”
“응.”
“그럼 가. 나는 강해. 오빠 없이도 잘 살아왔어. 오빠 없었던 세월을 견딘 건 나야. 최성진이 아니라 신아름이야!”
성진의 눈동자 색이 진해졌다.
거짓과 회색으로 칠해졌던 세상의 색이 선명해지기 시작했다.
“……그랬지.”
신아름은 강한 여자였다.
언제부터 그녀를 보호해야 한다는 생각이 머리를 지배했을까.
아마도, 5년이란 세월 동안 병상에 누워 있기만 했던 성진에게 생긴 강박관념인지도.
얼른 일어나 그녀에게 보답해야 한다는 강박관념.
그녀는 지금 그것을 잘못되었다 꾸짖었다.
“오빠 만나면서 고생할 거라 각오했어.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야. 그러니까…….”
“…….”
“다녀와, 기다릴게.”
신아름이 성진을 가볍게 포옹했다.
성진은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다녀올게.”
“대신 꼭 와야 해. 알았지?”
“응, 약속할게.”
추상적인 내용이었다.
다녀오라는 말에 담긴 의미도 단순하지 않았다.
하지만 둘은 서로 그 의미를 헤아리고 있었다.
***
D-6.
대략적인 내용을 최재국에게 전달했다.
최재국은 시급히 성진이 방문하기를 원했다.
성진은 내일 방문하겠다고 하고 통화를 마쳤다.
D-5.
“형님!”
“송하린 씨.”
“걱정했습니다! 이렇게 무사히 오셔서 다행입니다.”
“다른 사람들은요?”
“모여서 이런저런 얘기나 하고 있습니다. 별 도움 안 되는 얘기지만요.”
“그랬군요.”
“아직 다들 각오가 부족한 것 같습니다. 지금까지는 상대보다 우월하다는 생각이 있었는지 걱정을 하지 않다가 완성자가 나타나고부터는 나서기를 꺼려하고 있습니다.”
성진은 그런 그들을 이해했다.
자신도 어쩔 땐 이틀 전처럼 겁에 질리곤 했으니까.
“대표님은?”
“기다리고 계십니다.”
성진은 최재국이 있는 날에 맞춰 등불을 방문했다.
등불의 사기는 형편없었다.
게임과 현실은 각오부터 다르다는 게 뼈저리게 느껴지는 모양이었다.
게임은 얻을 수 있는 보상에 집중했지만, 현실은 잃을 수 있는 것들에 집중하게 되었으니까.
“오셨습니까? 무사히 돌아오셔서 다행입니다.”
“몇 가지 알아낸 정보를 공유하고자 왔습니다.”
“중요한 소식인가 보군요. 말씀하시지요.”
“우선, 완성자들의 정체를 짐작하게 하는 단서들이 몇 가지 있었습니다.”
성진은 아산에서 있었던 일을 차례차례 풀었다.
완성자들이 보인 능력, 그리고 그들의 능력에서 의문스러운 점들. 그리고 자신이 얻게 된 보상까지.
“흐음…… 몬스터라. 한번 보여 주시겠습니까?”
“얼마든지.”
삭!
성진이 단검을 꺼내 자신의 손바닥을 그었다.
붉은 선이 그어지고 피가 한두 방울씩 떨어졌다.
“……이런.”
그리고 끝이었다.
상처는 금세 아물었고, 손바닥에는 피가 흘렀던 자국만 남았다.
“약코라는 몬스터라고 하셨죠? 확실히, 금방 이해가 되었습니다.”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팔이 기괴하게 커지는 것, 모습이 사라지는 것, 입에서 불을 뿜는 것. 전부 원래 있던 능력이긴 합니다. 하지만 그렇게 막대한 효과를 발휘하진 못했죠. 그 원형은 기껏해야 C에서 D등급 각성자들이나 펼칠 만한 능력입니다.”
“뭔가가 그들을 강화했다는 말씀이신데, 이에 대해서는…….”
“분명, 그들을 살…… 격퇴하고 적응을 하셨다는 말씀입니까?”
“네, 방금 보신 것처럼.”
“유전자…… 유전자라……. 합리적인 판단으로는 몬스터의 유전자가 사용되었을 것이라 짐작하는 게 옳을 것 같군요. 하지만…… 부작용이 많을 텐데.”
“부작용?”
“과거부터 있던 연구였습니다. 몬스터의 유전자를 주입해 유전자 변형을 일으키는 실험. 하지만 폐기되었죠.”
“부작용 때문입니까?”
“그렇습니다.”
부작용이 얼마나 심각하기에 연구 자체가 폐기되었을까.
최재국이 차근차근 설명했다.
“겉으로 보면 꿈의 미래 기술이기는 합니다. 하지만, 인간의 신체는 정교한 기계나 마찬가집니다. 서로 균형을 맞춰 굴러가는 기계에 이상한 태엽 장치가 끼어들면 처음에는 멀쩡하다가도 어느 순간 문제를 일으킵니다.”
“그 결과는?”
“태엽 장치가 비록 소량에 작을지라도 기계 전체를 아우르는 영향을 끼칩니다. 나비효과나 마찬가지죠. 말 그대로 신체가 잘게 부서지거나…….”
“부작용이 하나가 아니군요.”
“네. 몬스터와 인간의 경계에 있는 혐오스러운 뭔가가 탄생하기도 했습니다.”
“그걸 어떻게 아신 거죠?”
“무엇을 위해서 그간 도둑질을 했겠습니까? 그들이 행한 일들과 사례를 찾은 것이죠. 아무튼, 뭔가 방법을 찾았든지 부작용을 줄인 수준에서 실험을 강행했든지 했겠군요.”
최재국은 고개를 끄덕이고 턱을 쓰다듬었다.
“그럼 상대는 몬스터라고 생각하는 게 편하겠군요. 어차피 체내 유전자 성분으로는 거기에 더 가까울 수도 있으니까요.”
“…….”
“그것보다 제가 궁금한 것은 최성진 씨에게 일어난 일입니다.”
“제게 일어난 일? 아!”
“네, 적응과 시나리오. 이 부분에 대해선 언젠가 한 번 짚고 넘어가고 싶었습니다. 일단은 그것들이 현실에서 튀어나왔다는 것은 최성진 씨의 가상세계와 현실 세계가 연결되고 있다는 것이겠지요.”
“……네.”
“등불도 아마 그 뒤를 따를 것 같습니다. 어제부로 시스템 창이 보이는 자들이 몇 명 나왔습니다.”
“네?”
성진이 당황한 모습에도 최재국은 차분하게 대응했다.
“놀랄 일은 아닙니다. 어느 정도 예상했습니다. 자, 생각해 보십시오. 종말 이후가 가상의 세계가 아니고 그곳에서 있었던 것들이 단순히 컴퓨터로 만들어진 시스템 덩어리가 아니라면…….”
적응과 시나리오, 그리고 펄스와 능력들.
“그럼 뭘까요?”
“알 수 있는 겁니까?”
“저희가 일전에 보유했던 석판에는 이렇게 기록되어 있었습니다.”
최재국은 한마디로 사건을 정리했다.
“지고의 존재들의 싸움으로 모든 세상에 그들의 파편이 떨어졌다.”
“파편? 지고의 존재?”
“뭐겠습니까. 신들이 치고 박고 싸우다 그들의 영성이 부서져 민들레 씨처럼 흩날렸다는 내용으로 보이지요?”
“……확실히.”
“일련의 사건들을 통해 연결 고리를 찾자면 일단은 그렇게 해석됩니다. 저희는 아마도 각성자의 존재도 그렇게 탄생한 것이 아닐까 추론하고 있습니다.”
“…….”
각성자의 존재는 사실 말이 되지 않는 것이었다.
인간이 스스로 초인적인 힘을 깨우친다는 게 납득이 가지 않았으니까.
자연현상이라기에는 조금 부적절했다.
하지만 그들이 단지 영성을 지닌 존재의 파편을 품었다고 가정한 거라면, 아예 말이 되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각성과 능력이 그런 것이라고 한다면…… 대체 그 싸움은 누구의 싸움인 겁니까?”
“저희도 모릅니다. 다만, 데자뷰가 헬의 존재를 언급했으니 그녀가 이 싸움에 개입하고 있는 것은 분명합니다. 그녀가 찾아온다면 보다 확실해지겠죠.”
최재국은 그렇게 말하며 성진의 눈을 바라보았다.
곧, 그녀가 찾아올 것이다.
그들도 그것을 알았다.
“디데이…….”
“맞습니다. 시나리오에 나온 날짜는 그녀가 최성진 씨에게 찾아오는 날이 아닐까 합니다.”
“……일주일도 안 남았군요. 헬이 저를 찾아오기까지.”
“그건 그렇고…… 그런 생각을 해 보신 적은 없습니까?”
“어떤 걸 말씀하시는지…….”
“시나리오는 어떻게 만들어지는 걸까요?”
“…….”
“단순히 데자뷰가 최성진 씨에게 제공하는 것일까요? 그런 거로 보이십니까?”
“……아뇨, 처음에는 그렇게 생각했는데 데자뷰가 헬이 찾아올 날짜까지 저에게 정확히 알려 줄 리가 없습니다.”
“그렇죠.”
“수수께끼 같은 말만 남기고 떠난 자들입니다. 진작에 모든 걸 알고 저에게 말할 수 있었다면 굳이 그럴 이유가 없었습니다. 그럼…….”
“시나리오는 데자뷰의 소관이 아닐 수도 있다는 얘기군요. 확실히 그럴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그렇다는 얘기는…….”
“누군가 종말 이후의 최성진 씨를 지켜보며 똑바로 걷기를 종용한 것이겠죠. 미리 말해 두지만 이건 시나리오에 데자뷰가 개입하지 않았을 때의 경우입니다.”
“왜 그랬을까요?”
“모르죠, 그리고 이제 와서 다시 시나리오가 나온 것은 무슨 이유일지도…… 아마…….”
최재국이 천장을 쳐다보았다.
피곤한 기색이 역력했다.
“그날이 온다면…… 이 의문들이 전부 거짓말처럼 해소될지도…….”
***
D-4.
D-3.
D-2.
D-1.
성진은 그사이에 무슨 일이 일어날까 노심초사하며 조용히 시간을 보냈다.
신아름과 언성을 높이며 했던 얘기들도 지금에 와서는 잠잠해졌다.
그녀를 아꼈지만, 그녀를 보호하겠단 이유로 옭아맬 생각은 없었다.
“오늘도 무사히.”
신아름의 인사에 성진은 피식 웃었다.
“응, 오늘도 무사히.”
“무슨 전쟁터 나가는 것처럼 인사하지 말까?”
“아니, 좋은데?”
“그럼 계속하고…….”
오늘은 D-day였다.
날짜에 맞추어 휴가를 신청했기 때문에 아무 문제없었다.
무슨 일이 일어나면 곧장 대응하면 그뿐이었다.
툭.
성진은 평소 잘 보지 않던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쿠르릉.
천둥소리가 먼 곳에서 들려왔다.
“…….”
하늘이 어두워지자 성진의 마음도 어두워졌다.
차를 몰아 번화가에 들렀다.
평소처럼 행동하면 모든 게 그대로일 수도 있었다.
그렇지 않더라도 마음만큼은 다스리고 싶었기에 아무렇지 않게 일을 보았다.
카페에 들러 조각 케익과 함께 쓴 에스프레소를 마시기도 했고, 혼자 영화관에 들러 반쯤 빈 상영관에서 영화를 관람하기도 했다.
영화는 재미있는 편이었지만 단 한 순간도 성진을 웃게 하지 못했다.
성진은 영화관 건물을 나오자, 빗방울이 떨어지고 있는 것을 목격했다.
“비가…… 오네.”
돌아 들어가 장우산을 하나 샀다.
우산은 몸을 충분히 가릴 만큼 컸지만, 빗줄기도 그만큼 거세졌다.
쏴아아아아.
결국, 먹구름이 기어코 폭우가 되어 노면을 적셨다.
촤아아!
차들이 지나다니며 인도 쪽으로 물살을 보냈다.
오늘, 무슨 일이 벌어진다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로 아무렇지도 않은 일상이었다.
이런 하루쯤은 그가 살아온 날 중에 얼마든지 포함되어 있었다.
그는 유료 주차장으로 향하기 위해 횡단보도 앞에 섰다.
먹색 세상은 신호등의 붉은 빛을 더 돋보이게 했다.
이 횡단보도 건너편과 그가 선 곳은 얼마 떨어져 있지 않음에도 확연히 달라 보였다.
성진은 횡단보도 건너편을 멍하니 보고 있었다.
그리고 누군가를 응시했다.
노파의 얼굴과 소녀의 얼굴로 나뉜 이목구비.
헬이 우산을 들고 성진을 보고 있었다.
D-day.
그날, 성진에게 헬이 찾아왔다.
삑.
시스템 창이 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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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7-2. 안녕.
-지금 그쪽으로 건너갈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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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진은 시나리오를 한차례 훑고 횡단보도를 보았다.
신호등이 초록 불로 바뀌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