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화
‘김우열…….’
등불이 모인 자리에서 김우열의 소식을 듣게 될 줄이야.
성진은 아직도 그의 이름을 들으면 평정을 잃었다.
“정말입니까?”
“……이걸 보시죠.”
삑.
조병창은 홀로그램으로 자료를 띄웠다.
그가 성진에게 명확하게 보여 주려 한 의도에 부합하듯, 사도 확정 명단에는 김우열의 이름이 자리하고 있었다.
“현재 소재가 파악된 것은 아니지만, 확실히 사도 소속이긴 할 겁니다. 사도와 부딪힌 우리 측 연구원 중에 그의 얼굴을 봤다는 사람이 다수 있었습니다.”
“왜 그러세요, 성진 씨?”
“형님?”
성진의 안색이 굳자, 다들 걱정스러운 눈길을 보내 왔다.
후우.
“괜찮습니다. 그냥, 아는 이름이라 당황했나 봅니다.”
“의외로 고등급 각성자가 꽤 많습니다. 그들이 돈을 보고 묶여 있지는 않을 거고…… 아마 뭔가 그들이 원할 법한 무언가를 사도 측에서 제공하지 않았을까 하는…….”
“그들이 원할 만한 무언가가 대체 뭐기에…….”
조병창이 골몰하다 간단한 결론을 냈다.
“결국, 힘 아닐까요?”
“힘?”
“처음부터 각성자로 태어난 이들이 주로 하는 얘기 중에 낙인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낙인? 그게 뭐죠?”
“자신의 능력. 그게 낙인입니다. 정확히는 등급으로 평가받는 능력. 아무리 개발하더라도 처음 정해진 등급을 벗어날 수 없으니 낙인이라고 말을 하곤 합니다.”
“그랬군요.”
“일반인은 그들을 이해하지 못하죠. 하지만 각성자들끼리는 그런 게 있었나 봐요. 등급 차이에 따른 서열이라던가…… 아무튼 그런 게 있으니 약물까지 복용하면서 능력을 향상하려고 하죠.”
각성자들의 세계는 그렇게 아름답지 않았고 어쩌면 사람 사는 세상과 비슷했다.
성진이 규격 외 존재였기에 등급이 의미가 없을 뿐이지 그들 사이에서는 그것이 전부였다.
“높은 등급의 각성자일수록 능력에 의존하는 성향도 심하고 힘에 중독된다고들 하죠. S급 각성자들이 사고를 치는 경우가 빈번하고 평균 활동 기간도 짧은 걸 고려했을 땐 정설일 가능성이 큽니다. 그러니 아마 사도도 이걸 이용하진 않았을까 하는 거죠.”
꽤 그럴듯한 추론이었기에 성진은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하나도 들리지 않았다.
김우열의 이름 석 자가 나오고 나서는 온통 정신이 그 이름에 가 있었다.
“김우열…… 국외에 있다고 들었었는데…….”
“그거야 알 수 없는 노릇입니다. 각성자들 소재는 제대로 알려진 게 드문 수준이라서요. 벌써 귀국했는지도 모르죠.”
김우열이 한국에 있을 수도 있다.
흥분과 긴장감에 성진은 안색을 찌푸렸다.
그때, 차일국이 다가왔다.
“최성진 님, 대표님께서 지금 뵙고자 하십니다.”
최재국의 호칭은 등불 사이에서 대표님으로 굳어졌다.
다른 호칭도 염두에 뒀었지만, 사이비 교단의 교주 같은 느낌이라 대표님으로 부르는 듯했다.
“아, 알겠습니다.”
성진은 일행에게 양해를 구하고 최재국의 집무실로 향했다.
그는 집무실의 문을 두드려 들어가겠다는 의사를 표시했다.
“아, 오셨군요.”
끼익.
최재국은 몇 가지 서류를 검토하고 있다가 안경을 벗고 성진을 맞이했다.
“할 말이 있으신 겁니까?”
“일단 앉으시지요. 저도, 성진 씨도 이렇게 느긋하게 와 있는 날이 많지 않으니까요.”
“알겠습니다.”
성진이 소파에 앉자, 최재국은 차를 따라 대접했다.
최재국의 일을 돕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어지간한 일은 그가 혼자서 했다.
그는 대기업을 이끄는 총수이면서도 소탈한 모습을 보였다.
“저번에 말씀드렸던 내용은 기억하십니까?”
“정부 측 사도는 무언가 꾸미고 있고…… 우리 쪽 사도는 현재 표류하고 있다. 맞습니까?”
“네, 기억하시는군요. 표류하게 된 이유는…….”
“기억을 가장 많이 전승받은 이가 불의의 사고로 떠나…….”
“네, 기억의 소실이 이루어졌지요. 정확히는 상대와 정보의 격차가 발생한 형국입니다. 한심한 꼴이죠?”
후릅.
최재국은 차향을 맡다 조용히 음미하고는 성진에게 말했다.
“그와 접촉하려고 예비하고 있던 때였는데, 안타까운 일이었죠. 아무튼, 그는 급작스러운 죽음에 앞서 한마디 말을 남겼습니다.”
“그게 무엇입니까?”
“예비하라. 그들의 싸움은 계속되고 있다. 세계수의 아이들아, 예비하라.”
“그게 무슨 뜻입니까?”
“저희도 모르죠. 다만 석판과 전승을 통해 살펴본 결과, 저희끼리 몇 가지 공통된 의견이 오갔습니다. 세계수가 등장하는 신화를 아십니까?”
세계수 위그드라실.
아홉 세계와 연결된 장소.
“북유럽 신화?”
“네, 노르드 신화나 스칸디나비아 신화라고도 하죠. 대략적인 내용은 알고 계십니까?”
“신이 탄생하고 번영하다 몰락한 그런 내용 아니었습니까?”
“핵심만 딱딱 집어 말씀하시는군요. 맞습니다. 그러면 신들의 몰락은…….”
“라그나뢰크.”
“네. 다른 말로 신들의 황혼이라고 하죠.”
“……황혼?”
‘두 개의 세계만 남게 되었을 때, 황혼을 건 싸움이 시작될 것이다…….’
석판에 적혀 있던 문구.
분명 그 문구에도 황혼이 언급되어 있었다.
“혹시, 석판…….”
“저희도 그렇게 추론하고 있습니다. 세계수, 그리고 황혼. 뭐, 다른 석판에서도 비슷한 의미의 내용이 언급됐었다고 하니 의심할 만하겠죠.”
“그럼 예비하라는 말은 뭐고 싸움이 계속된다는 말은 뭡니까?”
“예비하라는 말 그대로 예비하라는 것이겠죠. 그보다는 뒤에 오는 말이 중요하다고 판단하고 있습니다.”
“싸움은 계속되고 있다.”
“대체 무슨 싸움일까요? 그리고 계속된다니? 의문이 일지 않습니까?”
북유럽 신화에서 신들의 황혼은 아스가르드가 몰락하면서 막을 내렸다.
광대 로키와 그의 자식들, 그리고 수르트가 그곳을 불태웠으니.
‘잠깐……. 수르트?’
종말 이후에서 등장했던 괴물들은 신화에 등장했던 라그나뢰크의 주역들과 흡사했다.
종말 이후가 단순한 게임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 성진은 이도 우연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분명, 종말 이후에서 비슷한 게 나왔었습니다.”
“네, 저희도 확인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이지를 상실한 인형이나 마찬가지였죠. 안 그렇습니까?”
“……확실히.”
그렇지 않았다면 성진이 그들을 사냥할 수도 없었을 것이다.
의문은 두 가지다.
그들이 왜 등장했고.
혹시 이유가 있어 등장했다면, 왜 나약한 상태였던 것일까.
‘하지만 니드호그는 아니었어.’
니드호그는 다른 괴물들과는 달리 이성을 갖춘 존재였다.
세계가 전력을 다해 막아서도 쉽지 않은 상대였다.
결국, 이들 사이에 도무지 완벽한 공통점이 없었으니 이 이상을 궁리하려 해도 답이 없었다.
최재국도 같은 생각인지 아예 논점을 달리했다.
“혹시…… 라그나뢰크 이후에 세상이 어떻게 됐는지 알고 계십니까?”
“몇몇 신들이 살아남아 새로운 시작을…….”
“그 이후는요?”
“……네?”
“전해진 것이 아무것도 없지요. 세계수에 불이 붙었고, 그곳에 살던 새, 용, 사슴과 양 등. 전부 어떻게 되었는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어째서일까요? 왜 그들이 어떻게 되었는지는 자세하게 나오지 않았을까요? 왜 신화는 완벽하게 끝맺지 않고 거기서 나아가지 않았을까요?”
“……모르니까.”
“맞습니다. 어떻게 됐는지 아무도 모르니까. 하지만, 이 땅에 사는 누군가를 내가 모른다고 해서 그 누군가가 없는 존재이거나 죽은 것은 아니지 않겠습니까?”
최재국은 평소에도 강하게 품고 있던 의문을 계속해서 쏟아냈다.
그는 뭔가를 의심하고 있었다.
“혹시…… 아직 살아 있는 것은 아닐까요?”
“누가 말입니까?”
“세계수에 살던 신들, 아스가르드에 살아남은 신, 그리고 라그나뢰크를 일으켰던 로키의 자식들이.”
“……그렇게도 생각할 수 있겠군요.”
“이 모든 것은 추론입니다. 하지만, 영 가능성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실제로 캡슐의 역할이 다른 세계로 이어지는 매개인 것으로 보아 신화 속 무지개 다리, 비프로스트와 유사하기도 하잖습니까?”
성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분명, 비약이긴 했지만 확실하게 그럴 리 없다며 부정하기도 힘들었다.
데자뷰가 보인 기행 자체가 상식적으로 설명할 수 없었으니까.
“더 나아가 보도록 하죠. 만일…… 만일 끝나지 않았다면…… 신들의 황혼은 끝이 났다고 하지만, 새로운 싸움이 벌어졌고 아직 그 싸움이 끝나지 않았다면 말이 되지 않을까요?”
“너무 나간 것 같습니다. 아무도 모르는 일을…….”
“알고 있는 자들이 있죠. 짐작하고 있는 자들도 있고요.”
알고 있는 자들은 데자뷰일 것이고 짐작하고 있는 자들은 정부 측 사도들일 것이다.
‘아니. 1명 더 있어.’
성진이 이 사건에 대해 알고 있는 이를 1명 더 알고 있었다.
데자뷰가 언급하기도 했으니 아마 그녀도 이 일에 핵심적으로 관여했을 것이다.
“헬…….”
“그녀 말입니까?”
“그 사람이 저를 찾을 거라고 했습니다.”
“데자뷰가요? 전에 듣기는 했지만 그런 말을 했다고요?”
“네, 그녀가 무슨 말을 해 줄 거라고…….”
성진은 다시 한번 데자뷰가 그에게 전했던 이야기를 최재국에게 설명했다.
어느 정도 신뢰를 쌓았기에 가능한 얘기였다.
“과연…… 결국 실마리는 그녀가 쥐고 있다는 얘기군요. 그녀가 성진 님에게 나타난다면 무언가 바뀌긴 할 겁니다. 그것이 부정적이든 긍정적이든 간에.”
“혼란스럽습니다. 너무 꿈같은 얘기들만…….”
“이해합니다. 저도 작은 기억이 없었다면 헛소리로 치부했을 일이죠. 그래도 그녀가 직접 성진 님을 찾는다니 다행이군요. 적어도 우리 쪽에서 그녀를 찾을 일은 없으니까요.”
“다행인 겁니까?”
“일단은. 저희는 그동안 전력을 최대한 노출하지 않도록 하고, 정부 쪽 사도들이 무슨 일을 꾸미는지 알아내도록 하죠.”
***
후우우우웅.
홀로그램이 잔뜩 떠오른 실험실에는 찐득한 액체가 가득 차 있는 물탱크만 한 크기의 실험관이 수십 개가 놓여 있었다.
백발이 성성한 노년의 연구자가 눈을 깜빡이지도 않고 뚫어지게 실험관을 보았다.
삑.
-목표치 도달. 배수 후, 실험관 개방합니다.
“성공이다! 곧 깨어날 거다! 준비들 해!”
실험관 안에 잠들어 있는 것은 분명 사람이었다.
찐득한 물이 실험관의 바닥으로 점차 빨려 들어갔다.
실험관 안에 든 사람의 얼굴 밑까지 수위가 내려가자 안에 잠들어 있던 사람이 눈을 떴다.
나른해 보이는 눈동자, 덥수룩하게 자란 수염, 긴 머리칼.
얼마나 오랜 시간 실험관에 잠들어 있던 것인지를 짐작하게 만드는 외모였다.
잠시 후, 실험관이 양쪽으로 열리며 안에서 나체의 남자가 나왔다.
연구원 1명이 서둘러 그의 곁으로 다가와 공손한 태도로 뭔가를 내밀었다.
“여기 수건이 있습니다. 몸을 닦으시는 게…….”
“됐고, 옷 가져와. 그리고 정 소장은 어디 갔지?”
“소장님은 지금 다른 실험자들을 확인하고 계십니다.”
“호출해.”
“네?”
“못 들었어? 내 앞에 데려오라고.”
“그게…….”
“말이 말 같지가 않나, 야…….”
방금 실험관에서 나온 남자는 나체인 게 부끄럽지도 않은지 연구원에게 얼굴을 내밀며 이를 갈았다.
“죽을래? 기념으로 너부터 죽일까?”
“지, 지금 호출하겠습니다!”
“진작 그랬어야지.”
꾸드득.
“끄아아악!”
그 순간, 황급히 밖으로 나서던 연구원이 소리를 질렀다.
나체의 남자와 딱히 접촉하지도 않았는데, 연구원의 새끼손가락이 손등 쪽으로 완전히 꺾였다.
누가 보아도 완벽하게 부러진 모습이었다.
“그럼 부러트리지 않았을 텐데.”
“끄으윽…… 끄윽.”
“더럽게 침을 흘리고 그래, 얼른 다녀와. 또 늦으면 모가지를 부러트릴 거니까.”
“으으윽…… 네…… 네에…….”
억울한 눈빛으로 자리를 뜬 연구원이 조금 뒤에 연구소장으로 보이는 자를 데리고 왔다.
“이런, 제 조수에게 과하게 힘을 쓰셨더군요. 하하하!”
“그러게 말을 들어 처먹어야지. 안 그래? 안 그래도 옆에서 알짱대는 게 짜증 나서 좀 혼냈어. 괜찮지?”
“……물론이지요. 제가 교육을 잘못시켰기 때문 아니겠습니까?”
“알아듣는군. 난 소장이 이래서 좋아. 주제 파악을 확실하게 하잖아? 그러니까 믿고 일을 맡겼지.”
“믿음에 감사할 따름이지요. 어떻게, 감각은 돌아오셨습니까?”
“손발이 좀 저린 것 빼고는. 그보다 나만 깨어난 거야?”
“다들 곧 깨어나실 겁니다.”
“뭐, 안 깨어나도 상관은 없고. 내가 알 바는 아니지. 아무튼, 바깥은 좀 어떻지?”
연구소장이 오랫동안 잠들어 있던 남자를 배려해 몇 가지 이슈를 정리했다.
“장비를 이용한 게이트 예측이 이제는 불가능에 가까워졌습니다.”
“그래? 야단법석이겠군. 하기야, 최악의 재난을 예비한다는 게 말이나 돼? 아무튼, 각성자 대우가 좀 괜찮아졌겠는데? 이제는 살인 면허 같은 거라도 내주려나?”
“그렇지 않습니다. 그와 관련해 이것을 좀 보시겠습니까?”
“음? 뭔데?”
사내는 연구소장이 건넨 소식지를 받아 들고 천천히 글씨를 읽었다.
한 글자도 허투루 보지 않는 것처럼 꼼꼼히 읽은 그는 그것을 다 읽자마자 아무 곳에나 던져 버렸다.
휙.
“2세대라. 잠자고 있던 사이에 세대 차이가 나 버렸네?”
“실험에 참여해 주신 것은 옳은 선택이었습니다. 현재는 1세대 각성자의 여론이 좋지 않습니다.”
“하, 같은 분류로 묶지 말아 줘. 1세대든 2세대든 내가 알 바 아니니까.”
“능력은…….”
“최고야. 지금 누구라도 죽이고 싶을 정도로. 저 조수는 굳이 여기에 필요해?”
손가락이 부러진 조수가 핏기 없는 얼굴로 두려움에 떨었다.
연구소장은 빙긋 웃었다.
“제가 아끼는 친구입니다. 저 친구 없으면 제가 먼저 쓰러지지요.”
“흥, 소장이 쓰러지면 나도 곤란하긴 하지. 아무튼, 당장 나설 일이 있나?”
“당분간은 없습니다.”
“심심한데…….”
사내는 아까 보았던 소식지를 잠시 생각하다가 소장에게 물었다.
“어쨌든 나는 당신이 약속을 지켰으니 계약 이행을 할 생각이야. 일만 몇 가지 처리해 주면 된다고 했지?”
“맞습니다. 저의 부림을 받는 것도, 어디에 소속되는 것도 아니죠. 그럼 그 힘은 온전히 당신의 것입니다.”
“마음에 들어. 어디, 밖이 얼마나 변했는지 좀 보고 싶은데 괜찮지?”
“이를 말입니까. 누군들 당신을 반기지 않겠습니까?”
“좋아, 난 이제 갈게. 필요하면 연락해.”
오만한 사내는 떠났다.
연구소장이 뒤를 돌아보며 조수에게 말했다.
그런데, 아까와는 달리 그를 하대하지 않았다.
“괜찮습니까?”
“이 정도야 뭐…… 성질이 더럽긴 더럽군.”
“저런 놈이 적합성이 가장 우수하니 참…… 아무튼 함부로 쓰고 버릴 패는 아닙니다. 희귀한 몸이니 요긴하게 쓸 날이 오겠죠.”
“다른 놈들은?”
“곧 깨어나긴 할 겁니다. 물론, 방금 나간 저놈만큼은 아니겠지만 그들도 우리의 소중한 자원이죠.”
“빈틈없이 행해야 한다. 곧 전이를 시작할 것이고, 그분을 찾을 거야.”
“한데 그분은…… 어디에 계신 겁니까? 아직도 기억을 찾지 못하신 것을 보면…….”
“의심하지 말아라. 그분께서는 강운을 타고나시기에 기억을 되찾기 전에 절대 죽지 않는다. 그건 무한에 가까운 시간 동안 바뀌지 않는 진리였다.”
“예, 제가 감히 의심을…….”
“마지막이 임박했다. 그분께서 우리 앞에 나타나시는 그때가 바로 이 싸움의 종지부일 것이다.”
***
성진은 등불의 도움을 받아 한승철과 임무를 완벽하게 수행했다.
성진의 게이트 예측은 이미 쓰임새를 잃었다.
예측이 실패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 시점이 너무 늦었다.
다행히 등불 중 공간 균열 예측에 특화된 대원이 예상 지점을 알려 주었기에 업무상 문제는 없었다.
국민의 2세대 각성자 검증은 끝났다.
1세대의 완벽한 상위 호환이라고 연일 떠들어 댔고 그 관심이 가끔은 부담스러울 정도였다.
특히나 임무 중, 대원 사망이 전무했기에 그들을 추종하는 자들까지 생겼다.
1세대 무용론까지 등장한 판국이었다.
이런 극성맞은 생각들이 답변할 가치도 없었던 이유는 2세대가 성진과 한승철 단 둘뿐이었기 때문이다.
소수는, 힘을 얻지 못했다.
국민 여론을 등에 업는다고 특별히 좋을 일도 없었기에 오히려 관심의 테두리 밖에 존재하기 위해 성진과 한승철은 말을 아꼈다.
그런 나날들이 계속되고 있었다.
“2팀장님, 제 사촌 중에 굿즈 판촉 사업 하시는 분이 있는데 한 번 얘기나 나눠 보시는 게…….”
“괜찮습니다.”
“아, 진짜 이건 돈방석인데 2팀장님 금전 감각이 너무 없다. 이 한승철이가 돈 벌게 해 드리겠다는데.”
한승철은 며칠 전부터 사촌에게 무슨 소리를 들었는지 자꾸 올빼미와 초모의 굿즈 제작에 열성을 보였다.
성진이 물었다.
“혹시 투자한 겁니까?”
“투, 투자는요…….”
“…….”
“지분은 조금 있긴 하지만…….”
“안 합니다.”
“2팀장님!”
“로타리 다 와 갑니다. 대비하세요.”
“그보다 얼굴을 맨날 그렇게 가리고 다니셔야겠습니까? 오페라의 유령도 아니고 무슨 범죄 조직 같잖아요.”
“당당할 입장은 아닙니다.”
“우리가 왜…….”
“국존이야 상관없지만, 그 뒤에는…….”
“……고글이 어디 갔더라.”
현재 팀장들이 같은 차를 타고 로터리로 이동하고 있었다.
오늘 임무는 예정되어 있었고, 1팀과 2팀이 최근 임무에 나서지 않았기에 몸도 풀 겸 합동작전으로 시행될 예정이었다.
분명 출입이 통제되어 아무도 없어야 할 거리.
“어? 사람?”
“네?”
“사람들이 돌아다니는데…… 저거 뭐야? 카메라 아니야? 기자들인가?”
“기자들이 어떻게 출입한 겁니까?”
“저, 저야 모르죠. 부용 누나는 뭐 하는 거지?”
한승철이 강부용에게 전화를 걸었다.
“네, 네? 기관장님도 방금 전달받았다고요? 아니, 대체 누가…… 네? 임무도 불확실하다니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성진도 미간을 찌푸리기 시작했다.
뭔가 예상 밖의 일이 터진 듯했다.
“네, 네…… 알겠습니다. 그럼 언론은…… 나 참…… 들러리 서야 한다는 거네요? 우리가 왜……. 네? 그 사람이 왔다고요?”
로터리에 도착해 차량이 멈춰 서자, 성진이 먼저 내렸다.
뒤늦게 그를 발견한 기자들이 가까이 왔다.
“국존이다! 블랙이야!”
“오늘 합동작전이라고 들었는데, 상황이 이렇게 된 것은 예정된 일이었습니까?”
“2세대 각성자 부족으로 정부가 마련한 타개책이라는 게 정말…….”
기자들을 무시하고 걷던 성진이 우뚝 멈춰 섰다.
게이트가 발생한 구역에 누군가 들어간 것 같았다.
따라 내린 방장미와 박학기가 물었다.
“티, 팀장님? 이게 무슨 일이죠?”
“누가 들어간 것 같은데…… 1세대일까요?”
드드드드.
건물 안에서 시작된 진동이 성진이 디딘 땅까지 전해졌다.
“뭐, 뭐야?”
“웬 진동이……. 안에서 무슨 문제 생긴 거 아니야?”
“에이…… 안에 들어간 게 누군데 그런 생각을…….”
성진은 건물 안으로 진입하지 않고 잠시 기다렸다.
얼마 지나지 않아, 몸에 피 칠갑을 한 사내가 등장했다.
하얀 이를 드러내며 웃는 남자.
기자들이 전부 그에게 몰려들었다.
“호, 혼자서 해결하신 겁니까?”
“국존과 미리 얘기가 됐다는 게 정말입니까? 그렇지 않은 것으로 보이는데 이에 대해…….”
“오랜만에 돌아오신 소감은 어떠신지…….”
시끄럽게 마이크를 들이미는 기자들, 곁에 있는 팀원, 그리고 빌딩들이 사라져 갔다.
마치, 지우개로 세상을 지우는 것 같았다.
하나씩 사라지고 결국 둘이 남았다.
성진과 건물 안에서 나온 그 남자.
곁에 다가온 한승철이 멈칫했다.
“이런…….”
남자는 기자들에게 오만하게 대답하다 성진을 보고 가까이 왔다.
기자들은 일부러 길을 터 그들의 역사적인 만남을 방해하지 않으려 했다.
“소문이 자자하신 2세대 각성자님이 행차하셨네. 반가워요. 처음 보는 것 같네?”
“…….”
성진은 ‘오랜만입니다’라는 말이 자연스럽게 튀어나올 뻔했다.
“고글도 안 벗으시고…… 인사나 하고 싶은데 말이지. 아무튼, 제가 여기 일은 처리했으니 그냥 돌아가시면 됩니다.”
“그런…….”
한승철이 반발하려다 성진이 손짓하자 말을 멈췄다.
상대가 피식 웃고 악수를 권했다.
“반갑습니다. 앞으로 자주 부딪힐 텐데 서로 통성명이나 합시다. 나 완성자 김우열입니다. 들어 봤죠?”
완성자라는 생소한 단어는 뇌리에서 곧장 지워졌다.
김우열이란 이름만 선명하게 새겨졌다.
“……국가 존립 기관 2팀을 맡고 있습니다. 제 이름은…….”
찾고 싶었던, 그리고 다시는 만나기 싫었던 상대가 성진의 눈앞에 있었다.
완성자 김우열이라는 이름으로.
“알 필요 없습니다.”
“……재밌네.”
성진은 악수한 손에 최대한 힘을 주지 않기 위해 노력했다.
이곳에 단 둘만 있었다면, 그랬으면 저 손을 부숴 버렸을 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