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8화
“누, 누구세요?”
“지금 그게 중요해?”
성진이 침까지 튀기며 대화하는 사람들을 둘러보고 말했다.
“국가 존립 기관에서 나왔습니다. 이곳은 피난 권고가 이뤄진 곳일 텐데…….”
“그게…….”
“다치신 분은 없습니까?”
“……네, 네!”
성진은 상부에 생존자들의 신원을 보고했다.
게이트 폐쇄 전, 우선해서 그들을 무사히 돌려보내라는 지시가 전해져 왔다.
“확인, 1층으로 내보내겠습니다.”
성진의 말을 엿들은 여직원이 물었다.
“저, 저희 살 수 있는 건가요? 3명밖에 안 오셨는데…… 창문으로 더 들어오시는 건가요? 화, 활짝 열어 둘까요? 이, 일단 커튼부터 치울…….”
“물러나 계세요. 1층에 구조대 요청했으니 인도하겠습니다.”
“네, 넷!”
너무 놀라 혀까지 깨문 여인을 뒤로한 채, 성진이 앞을 보았다.
몬스터의 눈이 부서지지 않은 문을 보다가 구멍을 통해 성진을 확인했다.
철컥.
타앙!
끄이.
눈동자에 총알을 맞았는데 도리어 튕겨 나왔다.
각성자가 게이트 폐쇄의 주가 되는 이유다.
“총알이 안 박히네. 쇼크 건 탄창으로 교환.”
“예!”
“네!”
철컥.
방장미와 박학기가 탄창을 교환했다.
성진의 펄스를 연구하던 왕 박사는 장비 개량에 성공했다.
아직은 프로토 타입이라 불안정했고 무장 대부분이 성진에게 맞춰 개량되었기에 어떤 문제가 발생할지 몰랐다.
탄창을 갈아 낀 성진이 말했다.
“……개방.”
콰아아앙!
염소의 발길질에 문짝 전체가 경첩까지 뜯겨 성진에게 날아왔다.
지켜보던 여사원이 기겁했다.
“허억!”
이에 성진이 재빠르게 반응해 날아오는 문을 향해 손을 내밀었다.
그러자 놀랍게도 성난 소처럼 날아오던 문이 성진의 손에 닿자, 마치 깃털처럼 멈추었다.
이것 또한 성진의 펄스 수련의 성과였다.
끼아아아아!
아까부터 시끄럽게 소리 지르던 작은 염소 머리가 성진에게 덤벼들었다.
성진은 문의 측면을 한 손으로 붙잡고 부채로 파리를 쫓듯 가볍게 휘둘렀다.
파아앙!
끼.
철퍽!
작은 염소 머리의 형체가 짓뭉개져 벽에 붙었다.
그 사체가 마치 진흙 같아서 저급 코미디처럼 보였다.
꿀꺽.
사원들은 덜덜 떨면서도 그 모습을 눈에 담았다.
성진은 피가 뚝뚝 떨어지는 문을 카드 던지듯 횡으로 던졌다.
휘릭.
콰아악!
빙글 돌아가던 문이 괴수의 배에 박혔다.
담겼던 힘을 생각하면 아쉬운 결과였다.
기-잉.
투두두.
투두두두.
박학기와 방장미가 쇼크 건을 발사했다.
처음 쇼크 건을 보았을 때 성진은 기시감을 느꼈다.
언젠가 한 번 보았던 모습.
종말 이후에서 목격했던 총기들은 대부분 이렇게 생겼었다.
염소 머리는 흉흉하던 기세와는 달리 쇼크 건에 머리가 터져 허무하게 뒤로 무너졌다.
쿠우웅!
“여기 계실 겁니까?”
성진이 뒤를 돌아보며 사원들에게 물었다.
“아, 아뇨! 저희도 따라가겠습니다.”
성진은 고개를 끄덕이고 두 대원에게 지시했다.
“안전을 최우선으로.”
“알겠습니다.”
“예!”
10층에 다른 몬스터는 없었다.
성진이 느끼기에 게이트는 저층에서 발생했다.
때문에, 이들이 게이트가 발생해서 건물이 몬스터로 가득 차는 동안 무사했던 것이다.
“정지.”
9층에 도착하자 부서진 파편들이 눈에 띄었다.
분명, 몬스터가 남아 있었지만 밑으로 내려가야 했다.
폐쇄가 우선이 아니었다.
지금은 구출이 우선이었다.
“잠가.”
“예.”
박학기가 손을 뻗자 9층의 방화문이 잠겼다.
그렇게 9층부터 3층까지 방화문을 차례차례 잠갔다.
물론, 방화문까지 도달하는 곳에 있던 몬스터들은 쇼크 건 세례를 받고 쓰러졌다.
끄아아아아아!
타앙!
끼, 끼이이.
여사원은 고글에 몬스터의 피가 튀겨도 별 반응을 보이지 않는 성진의 모습에 벌벌 떨었다.
그러면서도 자신의 아군이 강자라는 것에 한없이 감사했다.
“정지.”
“왜 그러시죠?”
줄곧 입 다물고 따라오던 차장이 물었다.
“좀 많은데…… 음…….”
성진이 잠시 고민하다가 말했다.
“게이트가 2층에 열려서 그랬군.”
“어, 어떡하지요?”
“이제 1층까지 뜁니다.”
“어, 어째서요?”
2층을 잠그려면 방화문까지 밀고 나가야 하는데 그 소음으로 1층의 몬스터들이 뒤를 덮치면 곤란했다.
특히나 지금처럼 민간인이 섞여 있다 사고라도 나면 꽤나 시끄러울 것이다.
‘일단은 내보내고.’
“구두 벗으세요.”
“네? 아, 네에…….”
여사원은 성진의 말에 구두를 손에 쥐었다.
“제가 앞으로 갈 테니 잘 따라오십시오.”
“네, 네!”
성진이 2층의 계단을 내려가기 시작했다.
그의 움직임을 가장 먼저 눈치챈 것은 계단 주변을 어슬렁거리던 괴조형 몬스터였다.
끼아아아아아!
기-잉.
투두.
성진의 쇼크 건이 괴조의 이마 한가운데에 벼락으로 지진 듯한 자국을 남겼다.
성진은 어깨에 총을 밀착한 후, 위협이 되겠다 싶은 괴물을 전부 쏴 갈겼다.
철컥.
투두두.
투두.
성진이 탄창을 여러 번 교체할 동안 그의 팀원들은 단 한 발의 총알도 낭비하지 않았다. 혹시나 뒤에서 덮쳐 올 위협을 막기 위해 성진이 지시한 것이다.
“꺄아아악!”
“소리 지르지 마십시오.”
“네…….”
2층의 몬스터를 꽤 학살하자 몰려들던 물결이 잠시 멈췄다.
쾅!
콰아아앙!
고층에 있던 몬스터가 소리를 듣고 내려오기 시작한 것 같았다.
“달리세요.”
성진이 담담하게 계단을 내려갔다.
그때, 성진이 잠시 멈춘 후 뒤에 신호했다.
“뒤만 신경 쓰십시오. 점으로 뭉쳐서 이동하세요.”
“왜, 왜 그러세요…….”
스릉.
성진이 두 자루의 직도를 꺼냈다.
예리한 검날에 회로가 이식된 검.
이번에 개량한 검으로 펄스를 사용할 때의 부하를 줄여 주는 검이었다.
물론, 출력을 높이면 깨져 나갈 우려는 여전했지만.
성진이 당장 사용하기에는 이만한 게 없었다.
“으아아아아아아아!”
성진이 갑자기 큰 소리로 고함치자 몬스터들이 전부 그를 돌아보았다.
뚜두둑.
성진이 고개를 살짝 꺾어 소리를 내고는 빛살처럼 움직였다.
팟.
끼아아아아아!
컹! 컹!
성진에게 1층의 몬스터들이 거침없이 달려들었다.
촤아악.
선두의 늑대를 반으로 토막 낸 성진이 자리에서 사라졌다.
파앗.
콰르릉!
성진의 검이 휘둘러질 때마다 천둥소리가 1층에 가득 퍼졌다.
소리 한 번에 몬스터 수 마리가 목을 잃었다.
물론, 몬스터들은 생명력이 엄청나 목을 잃어도 잠시 바닥을 기어 다녔지만, 곧 움직임을 멈췄다.
성진이 인이어를 통해 알 수 없는 소리로 중얼거리자, 1층의 문에 붙어 있던 사람들이 문을 열었다.
“여깁니다!”
“얼른 나오세요!”
“얼른! 빨리!”
성진이 고군분투하는 사이, 민간인들이 문밖으로 달렸다.
이제껏 보여 줬던 움직임 중에 가장 빨랐다.
“헉…… 허억…….”
“주, 죽을 뻔했어.”
“우, 우리 산 거예요?”
“어, 엄마…….”
그들은 한동안 땅을 짚고 허우적대다 조사관들이 몇 가지를 묻자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오히려 되물었다.
“어? 어어? 문 닫혔어요?”
“그, 그분들은? 어떡합니까? 문은 왜 닫은 겁니까?”
조사관은 빙긋 웃고 답했다.
“애초에 게이트 폐쇄를 위해 파견된 팀입니다. 여러분들 덕분에 시간이 지체됐으니 아마 지금 바쁘실 겁니다.”
“그, 그런가요? 감사하다고 꼭 전하고 싶었는데…….”
“그보다 본인들 걱정하시는 게 좋을 겁니다. 피난 계획을 무시하고 어떻게 이곳까지 흘러오셨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마 처벌받을 겁니다.”
“네?”
***
성진은 1층의 문이 다시 닫히자, 뒤돌아서 대원들을 따라붙는 몬스터들에게 무차별적인 사격을 가했다.
기이잉.
투두두두두.
끼에에에에.
찰칵, 찰칵.
“제 건 여기까지.”
쇼크 건이 프로토타입답게 실전에서 곧장 기능 고장을 일으켜 주었다.
성진의 쇼크 건만 맛이 갔는지 다른 대원들은 멀쩡히 사격을 했다.
투두두두.
“어디부터 시작합니까?”
“1층은 치웠고 지하부터 갑니다.”
“알겠습니다!”
“예!”
게이트의 기운이 사라진 것이 자연적으로 소멸한 것 같았다.
성진은 수신호로 대원들을 지휘하며 지하로 향했다.
지하의 초입부터 고약한 냄새가 진동했다.
악취와 독기를 차단할 수 있어도 느껴질 정도로 기분 나쁜 냄새였다.
성진은 대원들이 내려가던 도중, 뭔가를 발견했는지 순식간에 대원들의 뒷덜미를 잡아 던졌다.
파파팍!
대원들이 있던 자리에 가시가 꽂혔다.
방장미와 박학기는 당황하지 않고 낙법을 펼친 후에 허리에서 짧은 봉을 꺼냈다.
후아앙.
쇼크 건과 마찬가지로 새로 개발된 신형 방패였다.
새하얀 파장이 흘러나와 방패 모양으로 굳어졌다.
둘은 딱 붙어서 방패를 하나로 합쳤다.
파파파팍!
가시가 계속해서 쏟아졌지만 그들의 방패를 뚫지 못했다.
성진도 이미 그들의 뒤에 몸을 숨긴 상황이었다.
그러나 잠시 뒤, 방패에 충전된 에너지의 잔량이 떨어져 가는지 빛이 점차 희미해졌다.
성진이 그것을 눈치채고 짧은 봉의 귀퉁이를 움켜잡고 펄스를 쏟아 넣었다.
후아아앙!
방패가 발하는 빛이 급격하게 거세졌기에 고글을 쓰지 않았다면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을 것이다.
끼이이이.
“팀장님!”
가시를 쏘아 내던 몬스터는 방패의 빛에 시야를 잃었다.
어두운 곳을 좋아하는 몬스터일수록 강한 빛에 취약했다.
그리고 온몸에 가시가 돋친 몬스터가 다시 눈을 떴을 땐, 두 자루의 선이 눈앞에서 교차하고 있었다.
콰르릉!
천둥소리가 지하의 가장 깊은 곳까지 헤집고는 다시 가장 높은 곳으로 향했다.
***
[제목 : 2세대 각성자 뻥카라던 애들은 보아라.]
응, 아니었어. ㅋㅋ
1세대들 떼거지로 죽고 나서 혜성처럼 다시 등장!
-2세대가 세긴 센가 봐. 근데 운용되는 건 많아야 두 팀 같다는데?
-다 각성자도 아니고 2명밖에 없다며?
-심지어 한 쪽에는 무슨 3명만 온다는데?
-뭔 개소리야, 제정신이냐? 3명이서 게이트를 어떻게 닫아? 이게 초등학교 교실 문이냐?
-내가 알 바냐? 그 머시껭이더라 하여튼 두 달 전인가 수원 거기에 3명 왔댔어.
-헐, 진짠가.
[제목 : 이게 다 정치권 개 븅딱 짓 때문에 그래.]
강부용이랑 힘 싸움 오지게 하더니 결국에 2세대 각성자 세대교체 존나 미뤄졌잖아. ㅋㅋ 하여튼 헬조선 특징 아니겠어? 기득권층이 이상한 짓 하는 거?
-그러나, 철수는 오늘도 기득권이 되는 상상을 하며 잠든다…….
-머지, 내 방에 CCTV 설치했냐?
-지옥불반도에 남은 한 줄기 빛 강부용!
-우윳빛깔 강부용!
-배익수 그 배때지 부른 아저씨 당에서 갈려 나간 거 깨소금이다. ㅋㅋㅋ 응 니네 당은 그래도 앞으로 안 뽑아~
-국민 생명을 가지고 장난을 치면 쓰나?
-배익수가 한 짓을 생각하면 보리수 아래의 부처도 못 참고 일어나서 백보신권 갈김.
[제목 : 디스토피아 성명문]
우리 디스토피아 회원 일동은 강부용의 재난 대응 시스템을 지지하며 그녀의 앞길에 무궁한 영광이 있기를 기원합니다. 그리고 대가리가 있는 한 1세대 각성자를 빠는 행동을 하지 않겠습니다.
-머지??? 난 이런 성명에 동의한 적 없는데.
-아직도 잘만 빨고 다니던데? 배익수가 혼자 다 뒤집어쓰고 떠나서 1세대는 타격 없음~
-2세대 하위호환인 애들 언제까지 써야 하냐? 으휴 ㅉㅉ
-2세대가 쪽수로 밀린다잖아. ㅋㅋ 그리고 1세대가 피해자 코스프레하는데 국민 정서가 감싸 줘야지 어쩌겠어~
-그만큼 디스토피아의 영향력이 개 1도 없다는 거다. 우리끼리만 만족하자고. ㅋㅋㅋ
-아 그건 ㅇㅈ이지. ㅋㅋ
-ㄹㅇ ㅋㅋ
[제목 : 근데 좀 이상하지 않냐?]
게이트 사태도 사탠데 이상하게 빈도가 존나 많이 늘은 것 같은데? 옛날엔 밥 먹듯이 생겼으면 지금은 무슨 숨 쉬듯이 게이트 소식 듣는 것 같은데; 나만 그렇게 생각하냐?
-응, 너만 그렇게 생각해.
-응, 그건 너만 그런 듯.
-응, 나만 그렇게 생각했나 보네.
[제목 : 2세대 각성자 근데 진짜 개 쩐다.]
특히 3명으로 움직인다는 걔.
여초 사이트에 소문 파다한데 존나 잘생겼대.
키도 크고 목소리도 멋있고 족보도 좋대.
-랩도 잘하고? 편식도 안 하고?
-지랄 마라. ㅋㅋㅋ 그거 어디서 찍힌 사진 있는데 얼굴 다 가리고 있더만.
-와 근데 완전 다크 히어로네. 정체를 숨기고 세상을 구한다! 이거 완전 배트맨인데.
-나랑 하루만 인생 바꿨으면 싶다. 나도 뿌슝뿌슝 세상 구하고 싶엉.
-이런 애들 특) 몬스터 보자마자 바지에 똥부터 쌈.
-이런 일침 댓글 특) 일침하면 본인이 센 줄 앎. 똥부터 싸는 건 매한가지임.
-야, 너희랑 비교하는 건 똥 님에게 실례야.
-지는 아닌 척하는 애 특) 얘가 몬스터임.
[제목 : 2세대 각성자고 나발이고]
한국 섭 아예 오픈할 생각을 안 하네?
섭종 각 잡냐?
아; 어차피 등불이랑 올빼미만 했었구나?
나랑은 상관없네? ㅅㄱ
-찐.
-킹카.
-콩콩이 마이.
-종말 이후 오락부장.
-쇼크 건 오발탄.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점례의 봄 감자.
이렇듯, 성진이 임무를 완벽하게 완수할수록 여론은 2세대 각성자에게 기울었다.
1세대들이 주도하던 원래의 상황과는 정반대였다.
또 그에게 관심을 가지는 대중들과 그의 정체를 까발리고 싶어 하는 기자들도 있었다.
강부용이 그런 빌미를 원천 차단했기에 크게 확대되지는 않았지만, 사람들은 최소한 그의 이름이라도 알고 싶어 했다.
강부용은 공식 석상에서 성진과 1팀장의 정체를 에둘러 표현했다.
-저는 미스터 블랙과 미스터 골드라고 부릅니다. 그 이상은 말씀드릴 수 없습니다.
일단은 부를 명칭이라도 있으니 사람들은 아쉽게 돌아섰다.
졸지에 미스터 블랙이 된 성진은 계속 임무에 나갔다.
근 2개월 동안 그가 나선 임무는 아무런 잡음 없이 해결되었다.
‘잘되어 가고 있는 건가?’
성진은 황 기사의 수다를 들으며 차 뒷자리에 앉아 생각했다.
‘이러면 된 건가?’
황 기사의 차량이 신아름의 어머니의 가게 근처에서 멈추었다.
성진이 매번 부탁했기에 오늘도 자연스럽게 황 기사는 그곳에 정차했다.
“네, 지금 가요!”
행복해하는 신아름과 신아름의 어머니를, 성진은 가만히 창밖으로 응시할 뿐이었다.
황 기사는 매일 있는 이 일을 오늘도 수행하며 침묵을 지켰다.
***
성진이 공식적으로 임무에 나선 지 2달째가 되었을 때, 불길한 예감이 찾아왔다.
그가 어느 날 이른 새벽에 깨어났을 때 그는 온통 땀으로 흠뻑 젖어 있었다.
“허억…… 허억…….”
심장이 조여 오듯 아팠다.
그리고 멍하니 물을 마시며 강부용에게 전화를 걸었다.
-음? 초모? 새벽에 이게 무슨…….
성진이 하는 말을 듣고 강부용은 대답했다.
-이야, 알았어. 거기가 어디라고?
성진은 재빨리 지도에 체크 표시를 하고 강부용에게 전송했다.
강부용은 성진과의 전화를 끊고 부리나케 곳곳에 전화를 걸었다.
파란 지붕 아래에 사는 누군가에게도.
아침이 되자, 성진은 본관으로 향하는 대신 장비를 갖춘 채로 이동용 차량에 올라탔다.
검은색 일체의 거대한 승합차.
차를 운전하는 황 기사도 마음이 편치 않았다.
“그게 정말입니까?”
박학기가 성진에게 물었다.
“인천 변두리에 동시다발적으로 게이트가 열린다고요? 그것도 오늘…….”
“혹시 착각하신 건…….”
성진이 표정을 굳히자 그제야 합승한 대원들이 입을 다물었다.
이번 게이트는 위치도 문제였다.
게이트 연구소가 밀집한 지역이 그곳에 속해 있었고 범위도 넓었으며 느껴지는 기운도 심상찮았다.
거의 반나절을 사이에 두고 깨달은 것이기에 피난이 완벽하게 이루어지지는 못했다.
연구원들은 출근하지 않거나 자료들을 미처 빼내지 못하고 연구소를 비웠다.
“외부인 통제도 제대로 되지 않았다던데…… 물론 연구소에 드나드는 외부인이야 한정적이겠지만…….”
성진의 차량이 연구소가 있는 위치에 돌입했을 때쯤, 문제가 터졌다.
강부용의 전화였다.
-왔지?
“예.”
-그…… A섹터를 아무래도 1팀장이랑 둘이 맡아야 할 것 같아.
“그게 무슨 소리죠?”
-B섹터 C섹터 전부 급하게 모은 사람들이야. 편제를 나누다 보니까 예측 전투력 미달이야. 새로 합류하는 사람들도 그쪽으로 합류하기로 되어 있어.
“…….”
-그편이 나을 것 같아, 실상 전력으로 놓고 보면 A섹터가 가장 안정적이거든. 1팀장이 자신은 괜찮다고, 이참에 2팀장이랑 안면이나 트겠다고 하는데…….
“알겠습니다.”
-부탁해, 난 자기들밖에 없어!
뚝.
벌써 편제가 완료된 것 같았다.
모든 섹터가 연결되어 있지만 A섹터는 상대적으로 영역이 협소했다.
크게 위험한 상황은 발생하지도 않겠지만 발생한다 해도 목숨 바쳐 막을 생각은 없었다.
성진이 A섹터에 자리 잡은 사이, 1팀장도 자리를 잡았다.
1팀장이 누구인지도 몰랐는데 어쩌면 부딪힐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지이이잉.
공교롭게도 성진이 자리 잡은 연구실 구석진 곳에 검은 문이 열렸다.
성진은 재빨리 자세를 바로 한 후, 게이트 폐쇄에 열중했다.
1세대 각성자의 경우 S급과 A급으로 나누는 가장 큰 기준이 게이트 폐쇄 여부였다.
자연적으로 소멸하는 게이트도 있었지만, 힘을 상당량 쏟아 냈는데도 멀쩡히 열려 있는 게이트도 있었다.
그것을 자체적으로 폐쇄할 수 있는 게 S급 각성자였다.
듣기로는 성진, 그리고 1팀장은 게이트 폐쇄가 가능했다.
아마 2세대 각성자 전부가 비슷할 것 같았다.
물론, 지금 당장 소재가 파악된 각성자는 단둘밖에 안 되었지만.
콰르릉!
성진의 펄스가 게이트에 작열하자 소형 게이트가 소멸했다.
끼이익!
그 안에서 모습을 드러내던 몬스터는 몸이 반쯤 빠져 나왔다가 게이트 폐쇄의 여파로 조각나 바닥에 뿌려졌다.
이렇게 운이 좋은 경우는 몇 없을 것이다.
“팀장님, 이동할까요?”
성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직 여력은 충분했다.
하지만, 1시간 후.
상황이 나아지기는커녕 도리어 곤란한 지경이었다.
지이이잉.
‘끝이 없어.’
게이트가 동시다발적으로 계속 성진을 괴롭혔다.
임무 중, 처음으로 지친다는 생각을 했다.
마라톤을 하듯이 계속 쏟아지는 게이트에 대원들도 점점 지쳐갔다.
이제는 기계적으로 소형 게이트에 대응할 때쯤, 인이어에서 소리가 들렸다.
같은 섹터에 배치된 1팀장이었다.
-1팀장입니다. 20분 전부터 제 담당 구역에는 게이트가 발생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쪽으로 건너갈까 하는데 지원 필요합니까?
단비와 같은 말이었다.
A섹터 자체가 그렇게 넓지 않았으니 잠시 힘을 합쳤다가 문제가 생기면 돌아가는 것도 좋을 것이다.
그래도 줄곧 접촉이 없었던 1팀장이 갑작스럽게 말을 걸어와 내심 성진도 당황하기는 했다.
그래도 굳이 구원을 거절할 상황은 아니었다.
“……가능합니까?”
-지금 그쪽으로 가겠습니다.
몬스터의 강함이나 펄스 잔량이 문제 되는 것은 아니었다.
다만 지겹게 괴롭히듯 자잘한 게이트가 이곳저곳에서 계속 열려 성진 혼자서는 역부족이라고 느끼게 했다.
그러니 1팀장의 지원이 지금은 반가울 수밖에 없었다.
잠시 후, 1팀장의 부대가 성진의 구역에 합류했다.
성진이 절반, 나머지 절반을 1팀장의 부대가 처리하자 상황은 금세 호전되었다.
-클리어.
“이쪽도 방금 끝났습니다.”
-동편 A-3 연구실은 저희가 맡겠습니다.
“그럼 저는 A2-7로 가겠습니다.”
키아아아아아!
콰르릉!
지원으로 속도가 붙자 성진도 덩달아 홀가분했다.
답답하던 상황이 1팀장의 합류로 순풍을 맞았다.
1시간도 지나기 전에 A섹터의 상황이 정리되기 시작했다.
삐익.
-어, 부용인데 A섹터 끝나가? 이쪽은 거의 정리됐어. 그래도 3시간 정도는 더 남아서 상황을 지켜봐야 할 것 같아.
“저희도 그렇게 하겠습니다.”
-고생이네. 부탁 좀 할게. 이번 임무는 다른 임무보다 팀장들이 고생했으니 내가 힘 좀 써 볼게.
“괜찮습니다, 그럼.”
삑.
“푸하아!”
땀에 젖은 바이저를 벗은 박학기가 크게 숨을 들이켰다.
성진은 그를 애처로운 눈으로 바라보았다.
“고생하셨습니다. 많이 힘드십니까?”
“손가락 하나 까딱 못하겠네요. 그나마 1팀이 안 도와줬으면 오늘 여기서 과로로 쓰러질 뻔했어요.”
“정말요…… 손가락 하나 까딱 못하겠어요. 물집 잡힌 거 아니야?”
방장미까지 지친 기색을 보여 성진은 조금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희생을 줄이고자 인원을 늘리지 않았는데 이런 상황도 있으니 인원을 더 충원하는 것도 생각해 볼 만한 문제였다.
“2팀장님!”
“아, 지원 감사합니다.”
1팀장이 팀원들과 함께 성진에게 다가왔다.
“게이트가 공평하게 열리는 것도 아닌데 저희가 근무 태만이었죠. 고생하셨습니다.”
“다들 고생하셨습니다. A섹터는 이제 슬슬 마무리되어 가는 것 같으니 여기는 팀원들에게 맡기고 저희는 팀장끼리 안면이나 트는 게 어떻습니까?”
성진이 곤란한 기색을 보였지만, 그래도 호의로 접근해 온 이였다.
평소처럼 내치기가 미안했다.
“알겠습니다. 학기 씨, 장미 씨 여기서 쉬고 계세요.”
“네, 다녀오세요.”
성진은 1팀장이 가는 길을 따라 천천히 걸었다.
원래 1팀장이 맡았던 구역을 순찰이라도 하며 얘기를 나눌 셈이었다.
“힘드시지 않습니까?”
“그럴 짬도 없습니다. 그리고 아직 그 정도는 아닙니다.”
“하하하, 천생 이쪽이랑 맞으신 것 같네요. 원래부터 각성자셨나요?”
“……아뇨, 그렇지 않습니다.”
“음…… 2세대 각성자에 대한 정보가 많이 풀리지 않아서 이것저것 여쭤보고 싶네요. 혹시…….”
1팀장이 성진을 묘한 눈으로 쳐다보며 물었다.
“우리 어디서 본 적 있지 않습니까?”
“……전혀요.”
1팀장은 서글서글한 인상의 남자였다.
분명, 장난기 많아 보이는 얼굴은 특징이라고 할 만했으나 성진은 그를 본 적이 없었다.
“……그렇습니까? 하하…… 혹시 취미가 어떻게 되시죠? 저는 이 일 하기 전에는 게임을 즐겨 했는데…….”
“별다른 취미는 없습니다. 그보다 게임이라면…….”
성진은 묘한 기운을 느꼈다.
지금 그들이 있는 구역에서 그들 말고 다른 기운이 느껴졌다.
다른 사람들이라면 눈치 못 챌 정도로 희미한 기척과 기운이었는데 성진은 날카로운 감각으로 아까 전부터 느끼고 있었다.
‘이 사람, 뭔가 숨기는 게 있어.’
굳이 숨기는 게 있는 사람에게 자신의 정보를 읊어 줄 필요는 없었기에 모르는 척했다.
1팀장이 대답했다.
“네, 종말 이후를 즐겨 했죠.”
“그렇군요.”
“서버가 잠시 닫혀서 못하고 있긴 하지만…….”
“1팀장님.”
“네?”
“저한테 뭐 숨기는 거 있습니까?”
“수, 숨기는 거요?”
“없습니까?”
“……전혀요!”
“알겠습니다. 그럼 제가 알아서 처리하겠습니다.”
“네?”
팟.
성진이 아까부터 기척이 느껴지던 방향으로 향했다.
성진이 순식간에 자신의 곁을 떠날 줄 몰랐던 1팀장은 눈이 동그래져서 소리쳤다.
“티, 팀장님! 잠깐만…….”
성진은 1팀장의 말을 무시했다.
아까부터 느껴지던 기척이 잠잠해지려 했기 때문이다.
성진은 기척이 느껴지는 곳의 연구실 문에 재빨리 카드를 갖다 대었다.
-승인되었습니다.
취이익.
문이 양옆으로 열리자, 성진은 재빨리 양손에 쇼크 건을 꺼내 연구실 방향과 달려온 방향으로 내밀었다.
“뭐, 뭐야!”
“누구지?”
“승철이가 제대로 못 한 것 같은데…….”
“어떡하지?”
연구실에서 들려온 것은 괴수의 울음이 아닌 사람의 목소리였지만, 전부 강도들이나 다름없었다.
한눈에 보기에도 뭔가를 사진으로 찍거나 순식간에 카피하고 있었고, 대범하게 중앙 통제 컴퓨터에 접속까지 한 상태였다.
이상한 코드가 떠 있는 게 아무래도 합법적으로 접속한 것은 아닌 것 같았다.
“여기서 뭣들 하는 겁니까? 당신들은 누구죠?”
“저, 저기…… 승철아?”
“이 사람이 우리 쏘겠는데?”
“얘는 누구야, 또?”
1팀장의 이름이 승철인 것 같았다.
1팀장은 다급하게 뛰어와 양손을 번쩍 들어 자신은 성진에게 해를 입힐 생각이 없음을 분명히 했다.
“저, 팀장님. 오해가…….”
“도둑들이 국가 연구소에 드나들게 만드신 건 1팀장님이 맞습니까?”
“그게…….”
“대답하십시오. 지금 바로 상부에 보고할 수도…….”
성진이 말을 마치기 전, 연구실에서 꺼림칙한 일을 자행하던 복면을 쓴 5인이 성진에게 일제히 달려들었다.
“에이! 일단 제압해! 제압하고 설명하자고!”
“한승철 넌 뒈졌어!”
“아닌 것 같다니까!”
한승철이라는 이름의 1팀장도 쇼크 건을 무서워하지 않고 성진에게 달려들었다.
성진은 달려드는 선두의 복면인을 제압하기 위해 쇼크 건을 발사했다.
그런데, 믿기 힘든 일이 일어났다.
티잉!
‘펄스?’
총알이 상대의 이상한 기운에 사라졌다.
순식간에 상대가 평범한 상대가 아니라는 것을 눈치챈 성진은 쇼크 건을 버리고 펄스를 끌어 올렸다.
콰르릉!
성진의 전신에 막대한 기운이 차올랐다.
선두에 선 이가 당황했는지 태클을 걸기 위해 자세를 낮춰 덤볐다.
성진은 근접전은 이골이 난 사람이었다.
이들의 목적을 알아내기 위해 완벽하게 제압하기로 마음먹었다.
퍼억!
“……컥!”
성진이 무릎을 차올려 선두의 명치에 타격을 가했다.
그대로 나가떨어진 그를 대신해 다른 이들이 더 맹렬히 덤벼들었다.
훙!
후웅!
양쪽에서 동시에 뻗어온 주먹을 고개를 젖혀 피해 낸 성진이 이번엔 그들의 손목을 잡았다.
턱!
“어?”
“조심해! 이 사람 괴물이야!”
한승철의 외침과 동시에 손목을 잡힌 둘은 비명을 질렀다.
성진이 잡은 손목을 놓지 않고 도리어 힘을 주었기 때문이다.
“으아아아!”
“아파아아아!”
‘미숙한데.’
펄스만 두를 줄 알았지 실전은 어딘가 어설펐다.
그 상태로 성진은 한쪽 발을 차올렸다.
퍼억!
“으악!”
한승철이 동료들을 구하기 위해 덤벼들었지만, 그도 성진의 상대는 되지 못했다.
성진이 손목을 잡은 이들의 발을 걸어 땅에 쓰러지게 만들고 뒤돌아 찼다.
콰앙!
“커어억!”
“아악!”
퍼억!
“욱…….”
성진은 충격을 회복하고 일어나는 복면인과 한승철에게 다시 물었다.
“누구지? 너희들은.”
성진은 격돌의 충격으로 금이 가 시야를 방해하는 고글을 벗었다.
한승철이 해명하려 했다.
“그, 그러니까 여기에는 사소한 오해가…… 아이 씨!”
유일하게 덤벼들지 않은 복면인이 성진의 눈을 보고 기겁했다.
“서, 설마…….”
“언니, 왜 그래?”
“당신…… 오, 올빼미?”
여인의 목소리는 익숙했다.
성진은 그 목소리를 듣고 경계했다.
올빼미는 두 가지 의미가 있었으므로.
전자는 사냥개로 활동하던 당시에 쓰던 자신의 이름이었고 후자는 종말 이후에서 활동하던 때의 이름이었으니까.
어느 쪽이든 지금 이 상황에서 자신의 정체를 안다는 것 자체가 좋다고 여겨지진 않았다.
콰르릉!
“꺄아악!”
“무슨 괴물 같은…….”
성진이 펄스를 끌어 올려 말을 꺼낸 여인을 압박했다.
“나를 아나?”
성진의 대답에 이번엔 다른 이들이 더 놀랐다.
얻어맞은 것도 잊은 듯 보였다.
“마, 맞다고?”
“올빼미라고?”
“말도 안 돼! 한승철 병신아! 아닐 거라며!”
“아니…… 그게……. 잘 모른다고…….”
성진의 눈만으로 정체를 알아차린 여인이 복면을 벗었다.
붉은 기운이 도는 단발머리.
이제는 익숙한 모습이었다.
“저예요. 최별. 하! 여기 계셨군요.”
“나를 찾았습니까?”
“말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