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BJ는 종말에 적응했다-185화 (185/222)

185화

성진이 물끄러미 명함을 건넨 국가 존속 기관의 직원을 쳐다보았다.

성진의 담담하면서도 빨려 들어갈 듯한 눈빛에 남자는 괜히 주춤거리게 되었다.

꿀꺽.

상대의 침 삼키는 소리가 괜스럽게 크게 들렸다.

‘국가에서 나를 왜?’

성진은 국가와 좋은 인연을 맺지 못했다.

군에 복무할 시절에는 아무것도 모르고 시키는 일만 했었고, 그 끝은 결국 식물인간.

그마저도 보상을 후려쳐 신아름이 5년 동안 성진 대신 고생했다.

그러니, 이들과는 할 말이 없었다.

“돌아가시죠. 저는 당신들과 할 말이 없습니다.”

“최성진 씨…… 국가가 최성진 씨에게 못 할 짓을 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잠시만 시간을 내주시면 저희가…….”

“……내 뒤를 캐신 겁니까?”

“그, 그게…….”

성진의 소름 끼치는 음성에 먼저 나섰던 직원이 어버버 말을 더듬으며 변명을 하려 했다.

그 찰나에 그의 옆에 선 남자가 한 손으로 직원을 제지했다.

“시, 실장님…….”

“물러나 있어.”

“네…….”

새롭게 나선 사내는 주머니에서 꺼낸 손수건으로 자신의 손을 닦았다.

그리고 그 손을 성진에게 척하고 내밀었다.

“반갑습니다, 최성진 씨. 한창용 실장입니다. 실은 이제 실장도 뭣도 아닌 일개 영업 공무원이지만, 실장으로 불리는 게 익숙하니 한 실장이라고 불러 주시겠습니까? 하하하.”

한 실장은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거침없이 쏟아 냈다.

구김살 없는 그의 표정이 성진의 마음을 안정시켰다.

대화에 능숙한 자였다.

“……나가서 얘기하시죠.”

성진이 신아름을 흘깃 보고 말했다.

신아름이 깰 수도 있기에 눈치를 준 것인데 한 실장은 고개를 바로 끄덕이고 옆의 남자에게 말했다.

“너는 여기 있어.”

“네? 저도…….”

“나만 가도 상관없잖아. 그리고 신아름 씨가 깨어났을 때 최성진 씨가 없으면 얼마나 놀라겠어?”

“……알겠습니다. 그럼 다녀오십시오.”

성진은 이들을 딱히 믿거나 하지는 않았지만, 이들이 일반인이라는 것은 알고 있었다.

몸에 소지한 무기도 없는 게 딱 영업하러 온 모양새였다.

“멀리는 못 가겠네요.”

“이해합니다. 저쪽에 자판기가 있으니 그 앞에서 얘기하실까요?”

큰 병원의 로비는 길고 넓었다.

많은 사람이 저마다의 사연을 떠들어 대고 있는 주변을 무시하고 둘은 종이컵을 손에 쥐었다.

후웁.

“음…… 자판기 커피는 오랜만이네요.”

“……어떤 일로 찾아온 겁니까? 그리고 제 뒷조사는 왜 하신 거죠?”

“하하하, 아마 못된 의도는 아니었을 겁니다. 일단 이야기를 나누기 전에 저희 소개부터 해야겠군요.”

“국가 존속 기관이라고 하는 데…… 저는 못 들어 봤습니다.”

“그러시겠죠. 생긴 지 얼마 안 된 새싹입니다.”

“그런 곳에서 저를 왜…….”

“바로 오늘, 최성진 씨가 신아름 씨 직장에서 벌인 일 때문이지요.”

“…….”

성진은 낭패를 봤다고 생각했다.

자신에 대한 기록이 남는 것을 누가 반길 것인가.

탐탁스럽지 않아 하는 성진의 표정에 한 실장이 빙긋 미소 지었다.

“영상을 입수하자마자 원본은 파기했고 카피 본만 저희가 가지고 있습니다. 원하신다면 이것도 파기할 수 있습니다.”

“그래도 되는 겁니까?”

“믿음이 중요한 거죠. 앞으로 관계를 쌓아 나가야 하니.”

“…….”

“저희가 못마땅하다는 것 알고 있습니다. 아닌 밤중에 홍두깨라고 뜬금없이 나타나서 최성진 씨 곁을 얼쩡거리는 게 보기 불편하시겠죠. 저희도 압니다.”

“저에게 무엇을 말씀하시고 싶은 겁니까?”

한 실장은 조용히 커피를 홀짝이다가 손가락으로 자신의 입술을 쓸었다.

“혹시, 날을 잡아서 시간 좀 내주실 수 있습니까?”

“시간?”

“지금 제 위치에서 최성진 씨에게 무언가 제안하기는 뭐해서요. 분명 왜곡되는 부분도 있을 것이고 제가 최종 결정권을 쥔 것도 아니라 정확히 답할 수 없는 부분도 있으니…….”

“그게 무슨 소립니까?”

“그러니까…… 저를 이곳에 보낸 분을 좀 만나 주셨으면 합니다.”

“제가 그분을 만난다고 뭐가 달라지죠?”

“음…… 최성진 씨, 솔직하게 말씀드리겠습니다. 저희와 일 하나 하시죠.”

“싫습니다. 국가에 소속되는 것은 지긋지긋합니다.”

안 좋은 기억은 일전의 그것만으로 충분했다.

굳이 다시 엮여 또 한 번 실망할 필요는 없었다.

그런데, 한 실장이 묘한 말을 했다.

“최성진 씨가 일전에 어떤 부대에 속해 있던 것은 알고 있습니다.”

“거기까지 아시면 얘기가 빠르겠군요.”

“‘무명(無名)’ 부대. 존속을 위한 1년 할당치 임무 몇 개를 제외하면 뭘 하는지 온통 비밀에 싸인 부대. 뭐, 저희끼리는 거기 소속된 사람들을 사냥개라고 부르죠.”

“……그래서요?”

“그런 곳에 속해 계셨으니 국가 혹은 집권층이 그렇게 깨끗하지 않은 곳이라고 생각하셔도 저희는 할 말이 없습니다.”

“잘 아시네요.”

“하지만, 저희는 다릅니다.”

우리는 다릅니다.

이번엔 다릅니다.

성진이 좋아하지 않는 말이었다.

“뭐가 다르다는 거죠?”

“일단 투명합니다. 1세대 각성자들이 생겨났던 초창기에 문제가 있던 것을 제외하면 잡음 없이 운영되고 있습니다. 각성자 이탈률도 타국에 비하면 현저히 적고요.”

“국가 존속 기관은 이번에 만들어졌다고 하셨잖습니까?”

“맨 위에 국가 재난 보호 기관이 있습니다. 여기는 그래도 역사가 좀 있는 편이죠. 그 밑에 이번에 국존이 만들어진 거고요. 최성진 씨 같은 2세대 각성자들의 보금자리죠.”

보금자리.

종이로 만든 행복이 무너진 지금, 성진이 바라는 가치였다.

성진의 표정이 조금 움찔하자 한 실장이 눈치채고 그곳을 후볐다.

“하아…… 저도 어느 정도는 오픈하겠습니다. 최성진 씨도 나름 짐작하고 계시겠지만, 이번에 발생한 국지적 게이트 발생 사태는 이번으로 끝이 아닐 겁니다.”

“앞으로도 계속될 거라는 얘기입니까?”

“맞습니다. 즉, 앞으로는 이렇게 얘기를 나누고 있는 도중에도 게이트가 발생하면 꼼짝없이 휘말린다는 얘기죠.”

성진은 상관없었다.

게이트가 발생해도 그 한 몸 무사히 빠져나오는 것은 가능했으니까.

오히려 게이트에서 빠져나온 몬스터들을 전부 제거할 수도 있었고.

‘문제는…….’

신아름이었다.

성진의 타인과의 접점은 이제 단 하나가 남았다.

신아름으로 가득 채워졌던 화폭이 신아름이 사라지면 백지가 된다.

그것만큼은 막아야 했다.

“신아름 씨…… 걱정되시죠?”

“…….”

“저희도 최성진 씨가 특별한 분이라 조사를 좀 했습니다. 상황이 급박하여 미리 양해를 구하지 못한 점 사죄드리겠습니다.”

“계속 말하세요.”

“그럼, 지금 최성진 씨는 신아름 씨에 대한 걱정으로 가득하시겠죠. 이해합니다. 세상에 신아름 씨를 제외하고는 연결 고리가 없는 사람이더군요, 최성진 씨는. 그런데 아무리 연인이라 하여도 24시간 옆에 꼭 붙어서 지켜 줄 수는 없는 노릇이잖습니까?”

구구절절 맞는 말이었다.

성진은 기분이 나쁘기는커녕, 상대의 다음 말이 궁금했다.

보통 달변가들은 이렇게 상황을 설명하고 나면 이야기를 해결책으로 귀결시키곤 했으니까.

“어쩌면 저희가 최성진 씨의 걱정을 해결해 드릴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

대화는 더 이어지지 않았다.

성진이 말했다.

“어디로 가면 되죠?”

한 실장이 그 말에 고개를 수차례 끄덕이고 성진에게 명함을 줬다.

“이 번호로 연락을 드리겠습니다. 시간과 위치는 그때 말씀드리겠습니다.”

한 실장은 같이 방문한 직원과 함께 떠났다.

성진은 병실로 돌아와 신아름의 곁에 앉았다.

그녀의 눈꺼풀이 움찔했다.

“깼어?”

“……아까부터 깨어 있었어.”

“말하지.”

“옆에 남자 친구가 아니라 못생긴 아저씨가 있는데 일어나고 싶지가 않더라고, 오빠.”

성진이 신아름의 머리를 스윽 쓸어 넘겼다.

“어디서 온 사람들이야?”

“…….”

“스읍, 말 안 할래?”

“국가.”

“……봤대? 하긴, 봤겠지…….”

신아름은 일련의 상황들로 순식간에 무슨 일인지 파악한 것 같았다.

성진은 말이 궁해 괜히 신아름의 손을 만지작거렸다.

“어떻게 하게?”

“생각 중이야.”

“또 군인 하게?”

“아직 그런 얘기는 안 했어.”

“하지 마.”

“…….”

“하지 말라고. 응? 또 군인 하면 위험하잖아.”

5년이란 시간은 성진뿐만 아니라, 신아름의 마음도 바꿔 놓았다.

남자 친구가 군인이란 사실에 자부심을 느끼던 그녀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았다.

“나 오빠 무서운 일하는 거 싫어…….”

“아름아.”

“응, 하지 말자? 하지 말자, 오빠.”

성진도 무섭다.

신아름의 곁에만 있고 싶었다.

하지만, 그래서는 오늘 같은 일이 계속 벌어질 것이다.

그게 더 무서웠다.

“제발…….”

“아름아.”

“……응?”

“오늘 너무 무서웠어…….”

“…….”

“나한테 무서운 건 그런 거야.”

신아름은 말을 삼켰다.

말을 하기엔 성진의 표정이 너무 어두웠다.

“그러니까 찾아야 해. 새로운 보금자리를.”

세상이 미쳐 돌아가는 상황에서도 성진은 낙원을 찾아야 했다.

***

“오늘이라고?”

“예, 최성진 씨도 오고 있을 겁니다.”

“미스터 한.”

“한 실장이라는 말이 더 정감 갑니다.”

“실(室)을 맡고 있지 않은데 어떻게 실장이야? 뭐, 그래도 실장으로 부르지. 한 실장은 직접 봤을 거 아니야. 어땠지?”

“최성진 씨 말입니까?”

“그럼 내가 최성진 씨 여자 친구를 말할까?”

기관장은 격무에 시달린 퀭한 눈으로 한 실장을 쳐다보았다.

당장 다음 게이트 사태가 발생하면 어떻게 대응할지 막막한 상황이었다.

“음…… 무서운 사람입니다. 눈빛으로 사람을 죽인다는 게 어떤 말인지 와닿더군요.”

“영화 너무 봤어, 한 실장은. 워딩도 감정적이고. 공무를 보는 사람이 그래서야 쓰나?”

“믿으시든 안 믿으시든 제가 느낀 바로는 그렇습니다. 괜히 사냥개 출신이 아니더군요.”

“나도 사냥개 몇을 아는데 걔들은 안 그렇던데?”

“그럼 최성진 씨가 특이 케이슨가 봅니다.”

“다른 각성자들이랑 비교하면? 능력은 알아?”

“전혀, 그저 여자 친구를 끔찍이 아낀다는 정보가 사실이라는 것만 알았습니다.”

“한 실장, 실망이야. 그래도 이것저것 캐 올 줄 알았는데.”

“저 아니었으면 이곳에 제 발로 오게 할 사람 없었을 겁니다.”

“국존에 아직 몇 명 없으니 그렇지. 빠릿빠릿한 애들로 좀 채워야겠어.”

똑, 똑.

이들의 대화가 노크 소리에 끊겼다.

“어, 왜.”

끼이익.

“기관장님, 최성진 씨란 분이 오셨습니다. 기다리던 분이 맞으신지 여쭤보려고…….”

“어, 그래. 입구에 계신가?”

“네, 들어오라…….”

“아니, 손님인데 그럴 수야 있나? 한 실장. 그리고 미스 정, 같이 가지?”

“네.”

“예.”

드르륵.

의자를 끌며 기관장이 일어서자 소식을 전한 부하 직원이 놀랐다.

평소 높은 사람이 오더라도 듣는 둥 마는 둥 접객실에 앉아서 담배만 피워 대던 사람이 웬일인지 손님이 온다고 몇 시간 째 담배도 피지 않고 이제는 마중까지 나간다고 하니 놀랄 수밖에.

잠시 후, 정문을 지나며 기관장이 보좌관을 포함한 일행 셋에게 물었다.

“저기, 나 지금 어떤가?”

“네?”

보좌관이 황당한 질문에 눈을 동그랗게 뜨고 되물었다.

“아니, 이성적으로 말고. 나도 아줌마인 건 아는데, 막 건방져 보이거나 권위적으로 보이진 않아?”

“그러면 안 되는 겁니까?”

“당연히 안 되지!”

“카리스마 있는 커리어 우먼…….”

“그러면 안 된다고. 동네에서 인심 후한 반찬 가게 아줌마처럼 보여야 해.”

“굳이 그럴 필요가 있습니까?”

“그래야 해. 사람마다 다르지만, 이 각성자들이란 족속들은 태생적으로 권위적인 걸 싫어하거든.”

정혜리가 기관장을 쳐다보자 한 실장이 설명했다.

“1세대 때 권위적인 모습을 보였다가 크게 당했었죠. 그 후로는 각성자 울렁증이 생기셔서 각성자 옆에 가면 쭈굴이가 되십니다.”

“응, 그러니까 착하게. 강아지 같은 눈빛으로 구슬려야 될 똥 말똥이라고.”

“아무튼, 푸근한 반찬 가게 아줌마는 무리인 것 같고 인자한 모습은 어떻게든 될 것 같습니다.”

“그런가? 그럼 다행이고. 담배 냄새 안 나지?”

“네. 아, 저기 계시네요.”

“흠흠, 나 좀 긴장한 것 같은데. 한 실장이 먼저 나서지?”

“웬일로 긴장을…….”

“저 모습을 좀 봐. 난 너희들에게 관심 없다잖아. 불러서 와 봤다 하는 눈치, 돈 많은 진짜 부자들이 고급 가구점에 가면 보이는 꼬락서니야. 진짜들은 저래.”

“알겠습니다. 그럼 진짜에게 제가 먼저 도전장을 내밀어 보죠.”

한 실장이 먼 곳을 응시하는 성진에게 다가갔다.

그도 기관장이랑 얘기하다가 막상 성진의 앞에 서니 바짝 긴장하게 되었다.

“오셨군요. 미리 연락을 주셨으면 앞에서 기다리고 있었을 텐데…….”

“번거로울 텐데 그러실 필요까지는 없습니다.”

“아, 그렇죠? 가시죠. 안에 자리를 마련해 두었습니다.”

성진이 별다른 반응 없이 한 실장의 뒤를 따랐다.

기관장은 평소의 당당하던 모습을 최대한 숨기고 인사도 뒤로 미뤘다.

그 모습을 보고 정혜리도 고개를 푹 숙이고 따르기만 할 뿐이었다.

“정경은 어떻습니까?”

“……좋네요.”

“아, 그렇죠? 저 건물이…….”

한 실장은 시답지 않은 내용으로 대화를 채우며 회의실을 개조한 접객실에 최성진을 안내했다.

그들을 지나치는 직원들이 전부 고개를 90도로 꺾으며 인사했다.

정확히는 성진이 아니라 기관장에게 한 인사였지만.

성진이 의자에 앉아 먼저 물었다.

“제가 뵙기로 한 분이 어느 분이시죠?”

“아, 접니다. 최성진 씨.”

“인사를 못 드렸습니다. 최성진이라고 합니다.”

“나, 강부용이라고 합니다. 여자 이름치고 특이하긴 한데 좋은 이름입니다.”

“그럼, 어떻게 부르면 될까요?”

“기관장이라고 불러 주시면 좋겠군요. 뒤에 님 자는 붙이든 떼든 나야 상관없지만 부하 직원들이 좀 싫어하긴 할 것 같군요.”

“그럼 기관장님, 절 뵙고자 하신 이유가 뭐죠?”

기관장은 뻣뻣하게 굳은 표정을 했다가 성진의 말에 한숨을 쉬고 평소의 기관장으로 돌아왔다.

“음, 불편해서 안 되겠어. 말 놓아도 됩니까?”

“편하신 대로.”

“젊은 친구가 말이 통할 것 같아. 나 반찬 가게 아줌마 안 해도 되지?”

“…….”

“어쨌든, 최성진 씨가 이곳에 와 준 건 고맙게 생각해. 아, 일전에 강북 쪽에서 여자 친구 구하느라 해결한 게이트 건도 고맙고. 뭐, 그건 여자 친구 구출 곁다리였겠지만.”

“네.”

“지금 최성진 씨가 좋아할 만한 것들 몇 가지를 가져오긴 했는데 먹힐지는 모르겠군. 내가 영감이 발달해서 촉이 좀 있는 편인데 당신, 만만치 않을 것 같거든.”

“저한테 원하는 게 있습니까?”

“최성진 씨한테? 많지. 원하는 거.”

기관장이 양손을 가지런히 입가로 모았다.

그녀의 눈빛이 변했다.

“내가 지금 골치가 아파요. 게이트 사건이 이제 통제가 불가능해졌고 기존 인력이었던 1세대 각성자들만으로는 사후처리나 가능한 수준이 됐으니까.”

“……1세대?”

“아, 모르는구나? 하긴, 그런 거에 별로 관심 없어 보이긴 했어. 우리 시대에 통념으로 각성자라고 불리던 사람들을 우리는 1세대 각성자라고 부르기 시작했어, 최성진 씨.”

“왜죠?”

“그야 당연히 다음 세대가 나타났으니까. 차세대 각성자들.”

“차세대?”

‘처음 듣는 얘긴데…….’

차세대 각성자는 들어 본 적이 없었다.

최근 사회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관심도 없었을 뿐더러 자신이 각성자라는 인식이 아직은 부족했기 때문에 외부 상황을 알려고 하지 않았다.

“그러니까, 이전 세대와는 확연히 다른 능력을 지닌 각성자들이 나타난 거지. 예를 들어 최성진 씨처럼.”

“제가 차세대 각성자입니까?”

“그냥 각성자는 아닐 거 아니야?”

“…….”

“1세대 각성자와 2세대 각성자가 다른 점이 몇 가지 있어. 우선, 게이트가 발생하기 전에 미리 감지할 수 있다는 점.”

성진이 느꼈던 기분 나쁜 징조가 그것이었다.

“그리고 능력이 두루뭉술해.”

“그건 무슨 말입니까?”

“자기들은 펄스다 어쩐다 하는데, 이게 도통 뭔지 모르겠거든.”

성진이 움찔했다.

그가 지닌 능력도 펄스였거니와 누군가 펄스를 언급했다는 건 자신 말고도 펄스를 얻은 사람이 있다는 것이니까.

그것을 캐치한 기관장이 말했다.

“최성진 씨도 맞지?”

“…….”

“1세대면 능력에 특징이 있거든. 딱 봐도 아, 얘는 이런 힘이구나. 그런데 영상에 나온 최성진 씨는 그런 게 없었어. 무지막지한 힘에 정체를 알 수 없는 파장. 그게 전부였으니까.”

“하고 싶은 말씀을 하시죠.”

“우리와 일하자 최성진 씨. 잘해 줄게.”

“싫습니다.”

“와, 바로 차였네. 나 학창 시절 생각나서 눈물 조금 났어.”

제안을 꺼냄과 동시에 거절당하자, 함께 자리한 이들의 안색이 굳어졌다.

설마 최성진이 바로 거절할 줄은 몰랐기 때문이다.

“최성진 씨, 알고 있어. 무명에 있을 때 부려 먹히다가 사고로 몇 년 누워 있었던 거. 거기에 보상금도 제대로 못 받았다지?”

“맞습니다. 그러니…….”

“우린 달라, 최성진 씨 요구는 무엇이든 들어줄 거야. 뭐, 사람 죽이는 것만 아니면 어지간한 건 다 들어준다는 얘기.”

“제가 바라는 게 있을 것 같습니까?”

기관장이 피식 웃었다.

“당연히. 신아름 씨, 지켜야 하잖아?”

콰르릉!

“꺄아아악!”

“뭐, 뭐야!”

“이게…….”

기관장이 신아름의 얘기를 꺼내자 성진의 눈에 기이한 기운이 감돌며 천둥이 울렸다.

기관장을 제외한 사람들이 혼비백산하여 의자를 넘어트리며 일어났다.

“그게 최성진 씨 펄스인가?”

“아름이에게 무슨 짓을 하려는 겁니까?”

“무슨 짓을 우리가 할 거 같아? 그럼 바꿔서 물어볼게. 최성진 씨의 힘을 노리는 다른 집단이 우리와 생각이 달라서 신아름 씨를 노리면 어떨 것 같아?”

“…….”

“사람은 선이 없어서 한계를 모르고 약해질 수 없어. 하필 우리에게 들킨 게 다행일 정도라니까? 우리는 적어도 신아름 양에게 해코지할 생각은 없으니까 말이야.”

“그럼 굳이 아름이 얘기를 꺼낸 이유는?”

“지켜 줄게, 우리가.”

“당신들이? 어떻게?”

“자, 이제 본격적인 얘기 시작이군. 국존은 무엇보다 복무하는 대원들을 신경 써. 정부가 각성자들을 얼마나 우대하는지 알고 있지?”

“돈으로…….”

“첫째, 이곳 국존 부지에 빈 건물이 하나 있어. 그 건물 내부를 거주지 형식으로 개조했어. 신혼부부들이 지내기엔 과분한 평수에, 각종 편의 시설도 들어설 거야. 각성자들의 가족을 위한 곳이지. 아, 맞은편에는 각성자가 아닌 대원들의 공간이 마련될 건데 평수는 각성자 건물이 훨씬 크지.”

“…….”

“둘째, 일단 임금은 업계 탑을 보장하지. 외국에 나가도 이만큼은 못 줄 거야. 입 밖에만 내지 않는다면 앞으로 연봉이 올라갔으면 올라갔지 내려갈 일은 없을 거야. 집이랑 차는 그냥 공짜로 줄게.”

“왜…….”

“셋째, 임무 거부권. 너무 위험하다 싶은 임무는 거부할 수 있어. 아무리 그래도 목숨보다 귀한 건 없으니까. 뭐, 대충 이 정도인데 또 원하는 게 있나?”

다른 조건들은 하나도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첫 번째 조건에 따라오는 건…….”

“당연히 국가 중요 인적 자원의 가족들이 사는 곳인데 허투루 다룰까? 그 어떤 것보다 가족들의 안전을 우선하지. 사실, 부자들이 사는 한남이나 판교 이런 데도 게이트 뚫리면 족족 죽어 나갈걸? 하지만 여기라면 달라.”

“…….”

성진이 고민하는 듯 보이자 지부장이 말했다.

“우리는 최성진 씨를 위해 뭐든 할 생각이야. 신아름 양의 안전을 최우선으로 생각할 거고 혹시라도 신아름 양에게 문제가 생기면 여기 있는 전부 칼 물고…….”

“잠깐! 기관장님? 저희는…….”

“저희는 그런…….”

“연대책임. 사회는 이래. 아무튼, 그만큼 최성진 씨가 몸담을 만한 곳으로 이만한 데가 없을 거야. 전 세계적으로 게이트가 말썽인데 대한민국만큼 게이트를 잘 알고 있는 곳도 없고 최성진 씨한테 이만큼 대우해 주는 곳은 없을 거야.”

“…….”

“미안, 마지막은 솔직히 뻥이야. 다른 곳도 비슷하게 대우해 줄걸?”

성진이 침묵하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카페에서 마주쳤던 여성, 인상이 좋았던 한 실장, 그리고 냉엄한 표정의 보좌관.

성진이 잠시 후, 입을 뗐다.

“제가 여기서 할 일은 뭡니까?”

“……팀을 하나 맡아 줬으면 해.”

“팀?”

“편제는 차세대 각성자 1명, 혹은 2명. 그 밑으로 부대원들 편성해서 움직이게 할 거야. 그중 한 팀을 맡게 될 거야.”

“…….”

“어떻게, 생각 있어? 초 국가적 위기에 국민을 구원할 다크 히어로, 그리고 남부럽지 않은 대우가 기다린다고.”

“……생각해 보겠습니다.”

“음…… 좋아. 그런데 혹시 사용할 만한 이름이 있을까?”

“이름? 아!”

국존의 차세대 각성자들은 기본적으로 정체를 감춘 채 활동한다.

그렇기에 평소처럼 이름을 부르면 곤란했다.

‘올빼미…….’

올빼미라는 이름이 이제는 꺼려졌다.

과거, 그의 아픈 기억들을 끄집어내기도 했고 이민상의 기억도 있었으니까.

그가 잠시 고민하다 입을 열었다.

“초모…….”

“응? 무슨 뜻이지?”

보좌관이 옆에서 기관장에게 설명했다.

“그 유행하는 게임에서 날아다니던 스트리머가 활동했던 이름입니다.”

“……너는 그걸 어떻게 알아?”

“팬이었습니다. 구독도 했고…… 지금은 방송 안 하지만.”

자칭 팬은 성진을 눈앞에 두고도 못 알아봤다.

성진의 커스터마이징은 현실과 몇몇 특징들이 달랐다.

그것만으로도 인상을 확 바꾸어 놓아, 그를 다른 사람으로 느껴지게 했다.

그 때문에 초모와 올빼미가 아무리 유명해져도 성진과 동일인물이라고는 아무도 생각 못 했다.

“그럼 미스터 초. 당신과 일할 수 있는 영광이 있었으면 좋겠네. 대화는 바빠서 이만!”

“…….”

기관장이 대화를 마쳤다.

성진이 돌아가자 보좌관이 그녀에게 물었다.

“최성진 씨가 함께할까요?”

“모르지. 그래도 가능성은 있어.”

“어느 부분에서 말씀입니까? 줄곧 부정적으로 보였습니다.”

“저런 부류를 좀 알지. 텅 빈 사람. 근데도 신아름 씨 얘기만 하면 눈빛이 싹 달라졌잖아.”

“……확실히.”

“저런 사람들은 자신을 돌보지 않아. 가장 소중한 것만 생각하지. 우리가 신아름 양에게 있어 최선으로 보이면 돼. 그럼 아마도?”

성진이 원한 것은 신아름의 안전이었다.

국가 존속 기관은 그것을 캐치해 성진의 마음을 움직였다.

그는 며칠 뒤, 신아름과의 대화 끝에 결정을 내렸다.

다음 날, 국가 재난 보호 기관에 한 통의 전화가 걸려 왔다.

“기관장님, 받아 보셔야겠는데요?”

“누군데 직통으로 날 찾아?”

“최성진 씨라고…….”

“여보세요? 네, 네! 강부용 찾았지 최성진 씨?”

잠시 후, 통화를 마친 기관장이 담배를 꺼내 물었다.

“후…… 초모 팀 빌딩 시작해.”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