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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J는 종말에 적응했다-184화 (184/222)

184화

***

가끔, 원래의 탄생한 목적과 다른 역할을 하는 것들이 있다.

유머 사이트가 변질해 정치적인 입장을 드러내는 사이트가 될 수도 있고 게임 커뮤니티에서 다른 이야기로 잡담을 꽃피우는 경우도 있었다.

디스토피아는 후자의 경우였다.

[제목 : 현실 진짜 ㅈ됐다, 디토련들아 ㅋㅋ]

무슨 태풍도 아니고 게이트가 서울에 상륙하냐;;

점점 올라온 겨? ㅋㅋ

아니 글고 말야, 이번에 사람 좀 죽은 것 같던데 심각한 거 아니야?

-우리나라 안전 불감증이었다니까? 세계 어디를 가 봐라; 게이트 발생하면 몇 명은 꼭 죽어.

-ㅇㅇ 게이트 청정 지역 한국이 이제 드디어 지진 꼴이 나는구나.

-지진도 안전하다 어쩐다 하다가 지금 봐라. ㅋㅋㅋ 내진 설계 안한 건물들 존나게 쌈바 추다가 애먼 사람 대갈통 부수자나.

-ㅇㅈ 정부 새끼들 미개한 거 보소!

-정부 욕은 좀 아니지 친구야. 성명문 못 봤냐?

[제목 : 아 본인 문과다. 이과 새끼들아]

나와서 설명해라.

그래서 엔트로피가 뭐?

열역학?

아니 ㅅㅂ 우리나라 ㅈ대따는 거야 아니면 일시적인 거야?

-에…… 그러니까 이후 메챠쿠챠 게이트 생겼다고 합니다.

-비틱(네이버 덕후, 너 말야 너.) 거르고 게이트 공간 좌표가 흔들리기 시작했단다. 말인즉슨 자기들 탓은 아니고 전해져 오는 파동에 허수가 포함돼서 산술적인 예측이 불가능한 수준이랜다.

-헐 ㅅㅂ 글케 될 때까지 뭐 했냐고. ㅡㅡ 아, 울 나라 진짜 직장 문화부터 마음에 드는 구석이 하나도 없어!

-직장 어디 다니는데?

-나 직장 안 다녀!

[제목 : 너무 강한 말은 쓰지 마.]

약해 보이니까.

애송이들아 이번에 미리 사태 발생 전에 예측 경보 보낸 것도 기적이랜다. ㅋㅋ 다른 나라에서 우리나라 빠요엔들 기술 수준 보고 외계인이라고 하잖아. 정부는 할 만큼 했다. 매번 태풍 대비해라 ㅈ댄다 어쩐다 말해도 죽는 사람 나오듯이 게이트도 자연재해야 알간?

-죽는 사람만 불쌍하게 됐지…….

-죽은 사람이 너희 가족이라고 생각해 봐라. ㅡㅡ

-아니 감성적인 호소 거르고 인마들아, 자! 봐봐? 이제 게이트 산술 예측 불가능이라고 정부가 공표했지? 그에 맞춰서 다른 국가들도 차례차례 성명문 발표하고 한국을 예시로 들면서 우리도 사실 한참 전부터 ㅈ댔었다 얘기했잖아?

-ㅇㅇ

-그중에 실질적인 대책 마련한 국가가 있었음?

-어 미쿡?

-‘실질적인’

-어…….

-없지? 한국은 그걸 내놨는데 다른 국가는 묵묵부답이었다고. 여기서 결정 났지?

[제목 : 지금 정부 욕하는 놈들은 분탕 종자다.]

우리 착한 새 나라의 어린이 디스토피아 주민들은 그러면 따라 하면 안 돼요. 알았죠?

-여기 모이는 놈들이 다 그런 놈들인뎈ㅋㅋㅋ 엌ㅋㅋ

-대책이 근데 뭐였냐?

-너 문맹이냐? 기사마다 적혀 있을 텐데?

-어…… 응……. 어케 암?

-how did you cancer?

-문맹이었군. 정부는 국내에서 2세대 각성자들을 발견했고 그들이 게이트에 관련되어 전반적으로 1세대 각성자보다 뛰어나다고 설명했음.

-그게 다야? 2세대? 포켓몬이냐?

-2세대 각성자는 게이트가 열리기 전, 그것을 예측하는 것도 가능하다고 함.

-인간 레이더구만! 또? 또오오?

-그 외 게이트 관련 특별 기구 창설, 예산 대폭 확대를 비롯해서 블라블라 블랑카 잡다하게 많았음.

-욜 ㅋㅋ 근데 2세대 각성자가 국내에서 일하겠대?

-‘예산 대폭 확대’ 보이지? 문맹이 맞긴 맞구나.

-ㅈㅅ ㅠㅠ

-저 예산이 대부분 2세대 각성자에게 흘러 들어갈 거라고 예측 중. 어차피 인프라 자체는 우리나라가 1티어자너.

[제목 : 우리나라가 걸어 잠근다고 이탈을 막겠냐?]

돈을 그만큼 챙겨 줘야지. ㅋㅋ

쓸데없는 도둑놈들 싹 쳐내고 돈 좀 쥐어 줘라, 제발.

내 세금 받아가서 게이트 피해 좀 막아 줘.

이번에도 게이트 때문에 나 아는 분 돌아가셔서 장례식장 가는 중이다. ㅅㅂ

-세금 내는 척 오졌고요. ㅋㅋㅋ

-엣큥! 들켜 버렸네-☆

-근데 해외에는 2세대 각성자 없대? 기사 찾아보니까 그런 얘기가 안 적혀 있네?

-ㅇㅇ 아직 발견된 바 없대. ㅋㅋ

-ㄹㅇ ㅋㅋㅋ 2세대 각성자 명단 오픈하겠대?

-ㄴㄴ 절대 안 한대. 나 같아도 안 하겠다. 오픈하면 정보 다 빼가고 팬들에 안티에 존나 시달리잖아

-비밀 히어로라…… 5252 두근거리잖아!

-한국만 2세대 각성자 있는 건 좀 신기하네. 등불이냐? ㅋㅋ

-등불님들 ㅠㅠ 어디서 모하십니까! 그립읍니다ㅠㅠ

-올빼미 왜 안 오냐고 ㅠㅠ 백마 탄 초인 기다린다고!

-게이트고 나발이고 서버나 열라고 데자뷰 ㅈ가튼 새끼들아. ^^7

-아, 나도 각성 마렵다. ㅋㅋ 언제 한 번 날 잡아서 각성해야겠다.

-어이 김 씨, 개소리하지 말고 이거나 날라.

[제목 : 어쩌면 2세대 각성자는 등불일 수도 있다.]

합리적 의심 중.

-네 뇌가 게임에 절여진 것을 합리적 의심 중.

-어이 최씨! 최 씨도 개소리 말고 같이 날라!

-나 등불인데 난 각성 안 했다. 사람들끼리 연락은 하는데 머 모이고 이런 것도 음꼬 ㄷㄷ

-너 빼고 다른 단톡방 있다는데?

-호에에에에엥 ㅠㅠ 너무한 거시야요.

-말투 보니까 진짜일 것 같다.

***

성진이 신아름을 데리고 병원으로 사라진 사이.

정혜리와 대원들이 진입한 건물은 고요했다.

소탕이 이뤄진다면 이렇게 고요할 리가 없을 텐데, 지하부터 위로 올라가는 돌격대원들이나 관리실에 모여 있는 정보 관리 요원들이나 침묵하고 있긴 마찬가지였다.

치이익.

-6층 클리어.

“확인.”

말을 마치고 무전기를 내려놓은 정혜리가 정보 요원들과 눈빛을 교환했다.

“내가 눈이 침침해서 그런 건가요?”

“아닙니다. 저희도 지금 그렇게 보입니다.”

“왜…… 몬스터들이 전부…….”

“돌입한 대원들이 합류해야 알 것 같습니다.”

치이익.

-7층 클리어.

“……확인.”

층마다 확인을 완료했다는 반복적인 대화.

서로가 정보를 교환하며 작전을 진행하는 모습은 어디서도 보이지 않았다.

돌입 대원들은 말 그대로 사건 현장에 돌입만 했을 뿐, 총구가 타오르는 일은 없었다.

죽을 수도 있다고 긴장하고 들어간 것치고는 맥 빠지는 상황에 돌입 대원들은 아쉬움 반 안도가 반이었다.

“일단 그럼…… 대원들이 오면 정보를 종합해 보죠. 앞에 통제하고 있죠?”

“네, 이미 경찰 쪽에서도 출동해서 앞에 폴리스 라인까지 쫙 깔아 놨습니다.”

일반 경찰이 반, 특수부대가 반일 것이다.

그들도 밖에서 긴장한 눈으로 상황을 주시하고 있었다.

“하아…….”

잠시 후, 최상층까지 확인을 마친 대원들과 각성자가 내려왔다.

“후우…….”

그들은 땀에 젖은 보호구를 벗어 던지며 말했다.

“없습니다.”

“……네?”

“없다고요, 뭐가 없는 건진 아시지 않습니까?”

“모, 몬스터가 아예 없다고요?”

“살아 있는 몬스터요. 전부 죽어 있습니다. 족히 백은 넘어 보이는 숫자인데…… 귀신같이 전부 일격에 터져 죽었습니다.”

“어떻게 그럴 수가…….”

“혹시 건물 안에 각성자가 있었습니까?”

“각성자 혼자서 모든 상황을 해결했다고요? 그럴 수 있나요?”

“음…… 제가 아는 몇은 가능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다 다른 곳에 배정된 것으로 알고 있는데…….”

각성자가 말한 그가 아는 몇은 S급 각성자 중 유명한 자들을 말하는 것이 분명했다.

아마 정혜리에게 얘기하면 그녀도 고개를 끄덕일 정도로 유명한 인물들.

순간, 정혜리의 뇌리에 어떤 이미지가 떠올랐다.

‘어?’

피를 뒤집어쓴 남녀.

끔찍한 현장에서 나왔는데도 상처는 없었고 오히려 담담한 표정을 짓는 것까지.

‘설마 그 사람들이?’

황당하지만 그럴 확률이 가장 높았다.

“어?”

“왜요?”

“이것 좀 보십시오.”

“뭐길래…… 허억!”

정혜리는 정보 요원이 보여 주는 화면을 넋을 잃고 바라보았다.

창작은 결코 현실에서 일어나는 일을 이길 수 없다고 하던가.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영상을 쭉 확인한 그녀가 말했다.

“이거, 일단 기록은 카피하고 원본은 삭제하죠.”

“물론입니다.”

***

정혜리는 일을 마치자마자 기관으로 향했다.

게이트 안전 본부보다 상위에 있는 기관.

국민 재난 보호 기관.

각성자와 게이트 관련 업무 전반을 처리하는 기관이다.

이곳은 현재 24시간 가동되고 있었다.

“그래서, 강서 쪽에서는 피해가 어떻다고?”

“사망자 8명이고 그중에는 민간인이 절반입니다.”

“문제 될 만한 건?”

“민간인 중에서 사망자가 나왔다는 것 자체가 문제로 취급받지만, 피해의 규모나 처리 과정에 있어서 문제 될 것은 없었습니다.”

“그나마 다행이군. 강남 쪽이 피해가 커서 높으신 분들께서 하도 지랄을 해대니……. 후우…….”

기관장의 입에서 담배 연기가 뿜어 나왔다.

인상을 쓴 그녀는 계속된 회의에 지쳐 갔다.

“재밌는 게 뭔 줄 알아?”

“네?”

“결국에는 국민을 속인 것과 다름없어. 2세대 각성자든 뭐든 실마리라도 잡을 수 있어야 뭘 할 텐데……. 비밀 유지를 위해 명단 노출 안 한다고 하지만 사실상 명패만 파 두고 한두 명 들어가 있는 게 전부잖아?”

“혹시 그들을 압박하면 새로운 각성자들 정도는…….”

“아서, 다 도망가면 네가 기관장 하게?”

“…….”

“1세대 때, 그렇게 떠난 각성자들이 상당수다. 윗놈들이 그렇게 지시해서 내가 총대 메고 했더니 정작 돌아오는 건 왜 그렇게 했느냐는 말뿐이었잖아?”

“……그랬었죠.”

“지금 그 1세대들 해외에서 다 아들, 딸 낳고 잘 살아. 웃기지?”

기관장은 회전의자를 엉덩이 힘을 이용해 빙글 돌렸다.

놀이기구 타듯 빙글 도는 그녀가 말했다.

“아…… 엿 같다고, 정말. 나는 무슨 일이든 대책이 없는 상황을 제일 싫어해. 실마리를 잡고 계속 끌어당기는 타입이거든. 그런데 이렇게 모래사장에서 이름 적힌 모래알 찾는 상황은 정말 기운이 빠지잖아?”

똑, 똑.

“어, 누구야?”

“기관장님, 접니다.”

“접니다란 이름은 몰라, 들어와.”

“그럼.”

끼이익.

“오, 누군가 했더니 미스터 킴이군. 새로 얻은 직함은 마음에 들어?”

“지방만 전전하던 때랑은 다르게 몸에 기름이 끼네요.”

“한때야, 곧 몸에 뼈만 남을걸. 상조는 공동 구매로 하자고.”

“하하하, 기관장님은 장수하셔야죠. 그래야 우리나라가 무너지지 않고 버티지 않겠습니까?”

기관장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미스터 김을 보았다.

“이 사람 좀 봐. 야망 있다?”

“각성자들 상대하다 보니 입에 붙었습니다.”

“달콤한 말은 언제나 좋아. 물론 말만 그렇게 하면 실망이 크지만.”

“회의 준비됐습니다.”

“회의? 아!”

새로 창설된 조직.

대(對) 게이트 국가 존속 기관.

줄여서 국존.

기관은 촌스럽다고 기관장인 그녀가 떼자고 했다.

국존은 미스터 킴과 미스터 정 커플, 그리고 잡다한 애송이들로 채워져 있었다.

그래도 희망적인 것은 미스터 킴이 일전에 발견한 2세대 각성자를 부단히 영업하여 영입에 성공했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국민에게 아직 틀도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조직을 소개할 때 양심의 가책을 조금 덜 받을 수 있었다.

아무튼, 어떻게 굴러가나 했더니 알아서 보고할 거리를 만드는 것 같아 다행이었다.

그녀의 곁에 앉은 보좌관이 그녀의 어깨에 외투를 걸쳤다.

“춥습니다.”

“난방 좀 빵빵하게 틀어.”

“그게…… 위에서 하달한…….”

“닥치고, 지구가 뜨거워서 멸망하기 전에 너희들 다 몬스터한테 잡아먹힌다니까? 내 말 믿어, 정말이니까.”

“……그렇게 전달하겠습니다.”

“그래. 미스터 킴? 안내해. 첫 회의네. 자기소개 같은 거 준비한 거 아니지? 내가 노땅이라 그런데 아직도 아이 엠 그라운드 이런 거 하나?”

“요즘도 그런 거 하긴 합니다. 아무튼, 그래도 다행히 자기소개는 생략해야 할 것 같습니다.”

“좋아! 역시 내가 보는 눈이 있기는 해!”

잠시 후, 구획이 분리된 국존의 회의실에 도착했다.

보좌관이 문을 열었고 기관장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들어갔다.

“어우, 기합이 빡 들어가 있네. 방금까지 있던 곳은 다들 야근에 지쳐서 나사가 하나씩 빠져 있었는데.”

다들 일어나 고개를 꾸벅 숙였다.

회의 참석자는 그렇게 많지 않았다.

외부에 나가 현장에서 처리해야 하는 임무를 주로 하고 있어 그랬다.

“이것뿐인가? 이번에 판 명함이 꽤 된다고 들었는데.”

“다 외근이라서요. 그리고 기관장님이 직접 결정하실 사항이라…….”

“……좋아, 준비한 거 있나 본데? 뭐 하고 있어? 틀어.”

“네.”

삑.

큰 화면에 복원한 화질이 분명한 영상이 흘러나왔다.

다양한 각도에서 촬영된 영상은 처음에는 별반 흥미를 끌지 못했다.

“이번에 강북 쪽 희생자인가?”

“……아닙니다.”

퍽!

콰아앙!

콰직!

“음?”

“허어…….”

쾅!

콰아아앙!

콰아아아앙!

키에에에!

끔찍한 장면에 고개를 돌리고 헛구역질을 하는 미스 정을 비롯하여 회의장에는 영상을 똑바로 보는 사람이 드물었다.

하지만, 오직 기관장만큼은 그 영상을 보물이라도 되는 것처럼 눈도 깜빡이지 않고 보았다.

“호오…….”

영상 속 사람들이 1층에 도달했을 때, 기관장이 벌떡 일어났다.

짝짝짝.

“……브라보.”

“하하하…….”

“어떻게 찾은 거야?”

“강북 쪽에 미스 정 집이 있답니다. 발령받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외근 나온 그대로 퇴근하다가 국지적 게이트 발생 사태에 휘말렸었습니다.”

“그렇게 듣기는 했지. 일 하나 똑 부러지게 해서 사람들이 SNS에 난리 피우는 것까지 봤어. 덕분에 반감도 조금 줄었고. 안 그래도 선물을 뭘 해야 하나 고민하고 있었어.”

“보신 영상에 나오는 사람들은 그 건물 내부에 있던 직원과 그 남자 친구로 보이는 사람입니다.”

“남자 친구는 거기 어떻게 들어갔대?”

“외곽 CCTV도 다 돌려 봤는데, 유리를 깨고 들어갔답니다.”

“1층을?”

“……5층을요.”

잠시 말문이 막힌 기관장이 물었다.

“잠깐만, 저기 강화 유리 아니야? 아…… 하기는. 각성자였지?”

“네, 맞습니다.”

“각성자인데 나한테 보고를 직접 한다. 자기야, 나 이거 기대해도 되는 거야?”

미스터 킴이 환하게 미소 지으며 답했다.

“미등록 각성자입니다.”

“하는 일은?”

“당장에는 쉬고 있는 모양입니다. 다만, 전에 군인으로 복무한 전적이 있더군요.”

“그래? 어디서? 어디서 저런 인재가…….”

“거기 있지 않습니까?”

“아, 거기. 사냥개였네. 그런데 어쩌다 각성을 한 거지?”

“그게…… 사고가 있어서 5년인가 식물인간으로 지냈다고 합니다.”

“저런…… 그런데 저렇게 쌩쌩해?”

“얼마 전에 기적적으로 털고 일어난 거라 정보가 많이 없습니다.”

“있는 정보는 다 긁어 왔겠네. 여자 친구 신분을 타고 들어간 거야?”

“네, 조회 몇 번 하니 집에 숟가락이 몇 개 있는지까지 나오더군요.”

기관장의 표정이 심각해졌다.

몇 가지 단서들로 추론하건데, 정보가 새어 나갔을 우려가 있었다.

“미스 정, 이거…….”

“카피 본이고 원본은 불태웠어요.”

“같이 본 사람들은…….”

“기관장님 산하 대원들이에요. 정보가 새어 나가진 않을 것 같아요. 아마 따로 한 번 부르셔서 당부하시는 게 더 확실하다고 생각하기는 해요.”

“그럼 이 사람, 내 앞에 데려오는 데 얼마나 걸려?”

“…….”

“역시…….”

기관장이 갑자기 미친 듯이 웃었다.

“푸하하하하하! 재밌어! 역시, 아! 내가 진짜 사람은 잘 본다니까?”

“…….”

“외근 나간 직원들 중에, 이 사람한테 간 사람도 있지?”

“네, 몇 명은 이미 병원 앞에서 대기 중입니다.”

“병원? 다쳤어?”

“아뇨, 여자 친구가 많이 놀란 것 같아서 걱정돼서 들렀답니다.”

“그 앞이겠네?”

“네, 맞습니다.”

기관장이 미스 정에게 다가갔다.

그녀의 기운에 미스 정은 조금 떨었다.

“미스 정, 사실 우리 사이에 선물은 조금 이르지만 골라 봐.”

“네? 어떤 걸…….”

“집이 좀 멀더라고? 앞으로 부지런히 다녀야 할 텐데 다리로 다녀서야 쓰나? 바퀴가 달려야지.”

“저는 정말 괜찮은데…….”

“요번에 런칭한…….”

“독일요.”

“응?”

“차는 독일이죠.”

“……역시 보는 눈이 있는 여자야. 마음에 들어.”

“감사합니다.”

“그럼…….”

기관장이 담배를 꺼내 물며 말했다.

“저 남자, 내 앞에 데려…… 아니, 모셔와. 극진히! 알았지? 절대 거들먹거리면 안 돼. 1세대 꼴 알지?”

***

성진은 신아름이 누워 수액을 맞는 동안 멍하니 수액을 쳐다보고 있었다.

똑.

똑.

한 방울씩 떨어지는 수액은 그녀의 기운을 북돋게 했지만, 도리어 성진의 기운은 가라앉게 했다.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까.’

갑자기 각성자가 되어 나타난 남자 친구를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을까.

흉악한 모습에 겁을 먹지는 않았을까.

“하아…….”

성진은 머리를 감싸 쥐고 그녀의 침상 옆에 앉았다.

꼭, 이런 입장이 되어 보니 5년 동안 그녀가 했을 고생이 단편적으로나마 느껴져서 마음이 심란했다.

그녀를 지킬 방법이 있을까.

‘아름이를 어떻게 해야…….’

어떻게 해야 지킬 수 있을까.

그녀는 아마 직장을 관둘 것이다.

그녀의 팀 전체가 몬스터의 입속으로 들어갔는데 정작 신아름이 멀쩡할 리가 없었다.

괜찮은 척해도 성진의 눈에는 그녀가 받았을 충격이 보였다.

그녀가 일을 관두더라도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까.

언젠가 데자뷰와의 계약에 따라 종말 이후로 가야 한다면. 또 그것이 아니더라도 자신과 신아름이 떨어져 있는 사이에 무슨 일이 생긴다면.

“오빠.”

“어, 어?”

“무슨 생각해?”

“……아무것도 아니야.”

턱.

신아름은 성진의 손에 자신의 손을 얹었다.

“괜찮아.”

“…….”

“괜찮다고. 오빠 걱정 안 해도 돼.”

“아름아.”

“일은 관둘 거야. 그렇다고 놀겠다는 건 아니고…….”

“……잘 생각했어.”

성진의 변화에 대해서는 그녀도 아무 말 하지 않았다.

궁금하지 않은 것이 아니라 성진이 말을 꺼내기 전까진 그녀가 먼저 반응하지 않으려 했다.

“꼭…….”

“응?”

성진이 신아름의 손을 꽉 쥐었다.

“꼭 행복하게 해 줄게, 아름아.”

“……응.”

빈말을 하지 않는 성진이다.

신아름은 그와 마찬가지로 손을 꽉 쥐었다.

“우리 행복하자, 오빠.”

“…….”

“오늘 정말…… 무서웠어.”

“……이제 괜찮아.”

“흑…… 흐윽…… 다 죽었어. 우리 엄마도 저렇게 죽으면 어떡해? 나 키우시느라 고생하셨는데…….”

톡톡.

성진은 그녀를 가볍게 안아 두들겼다.

그의 피에 젖은 셔츠는 그대로였지만, 성진에게 안긴 그녀는 점점 편안해지는 것을 느꼈다.

그렇게 그녀는 잠이 들었다.

그녀를 가만히 내려다보던 성진이 말했다.

“나오세요.”

“…….”

“지금, 좋게 말하는 겁니다.”

문 너머에 숨어 있던 사람들이 성진의 말에 이미 열려 있는 문을 두들겼다.

똑똑.

“안녕하십니까, 최성진 님.”

“제가 지금 조금 심란한 상태라 좋은 얘기가 아니라면…….”

“휴……. 마침 다행입니다.”

두 남자 중 1명이 정장 품에서 명함을 꺼냈다.

명함에 적힌 글자, 국가 존속 기관 소속.

성진은 처음 들어 보는 조직이었다.

그가 눈으로 묻자, 남자는 해맑게 웃었다.

“좋은 말씀 전하러 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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