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BJ는 종말에 적응했다-177화 (177/222)

# 177

177화

***

“지원은 아직이에요?”

-서구 쪽이야! 빌어먹을, 파프니르가 여기에 있어!

“이쪽에도 있어요!”

-그게 무슨…….

불신의 도시 광주.

이곳에 닥쳐온 종말은 안개였다.

그냥 단순한 안개였다면 등불 입장에선 코웃음을 쳤겠지만 도시 전체를 둘러싼 안개는 평범한 안개가 아니었다.

뚜.

갑자기 연락이 끊기자, 주인혁은 인상을 썼다.

지금 고층 빌딩에 똬리를 튼 저것은 용이 아니고 무엇이란 말인가.

광주의 안개는 환영을 보게 했다.

만져지고, 당하는 사람도 믿을 수밖에 없는 환영을.

벌써 그 안개에 당한 사람도 부지기수였다.

“인혁아!”

“아, 동호구나.”

저 멀리 손동호가 손을 흔들고 있었다.

잠시 바이저를 벗고 있던 주인혁이 다시 바이저를 착용했다.

치익.

투명한 화면으로 손동호를 확인한 주인혁은 조용히 한숨을 내뱉었다.

후우.

철컥.

기이잉.

“……인혁아?”

“동호는 치평동에 있어. 여기가 아니라.”

“…….”

타아앙!

손동호의 바이저가 깔끔하게 부서졌다.

대자로 뻗은 손동호의 모습은 서서히 인간형 몬스터의 모습으로 바뀌었다.

그 징그러운 모습에 인상을 쓰던 주인혁은 지금 손동호가 있을 구역을 멀리서 바라보았다.

“음?”

지지직.

지지지지지지직.

갑자기 이상 현상이 발생했다.

예기치 못한 상황에 주인혁은 이곳이 적진 한복판이라는 것도 잊은 채로 멍하니 그곳을 쳐다보았다.

“저게…… 뭐야?”

거대한 균열이 손동호와 등불이 있는 곳에 열리고 있었다.

저곳은 현재 파프니르가 있는 것으로 추정되는 곳이었다.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거야?”

***

“병창아! 저기 봐!”

“……뭐지?”

“파프니르가 요동친다! 계속 사격해!”

투두두두두.

등불과 종말 이후의 모든 도시가 광주를 구하기 위해 뛰어들었다.

서둘러 정수열 박사와 통신한 조병창은 상대가 전한 소식에 놀랄 수밖에 없었다.

“게이트……라고요?”

-왜 지금 그곳에 게이트가 발생했는지는 모르겠지만, 게이트가 분명합니다! 측정되는 에너지가 너무 거대해요!

“어, 얼마나…….”

-파프니르보다 더…….

키아아아아아아!

파프니르가 갑자기 요동쳤다.

지금 발생한 게이트는 자신이 벌인 일이 아니라는 듯.

후우웅.

“날아가려고 한다! 막아!”

“막아아아!”

투두두두두!

기이이잉.

콰아앙!

갖가지 공격이 파프니르에게 쏟아졌다.

때문에, 파프니르의 비행은 늦춰졌고 열이 받은 파프니르는 입에 불꽃을 머금었다.

“조심해! 불…….”

그때, 게이트를 통해 뭔가가 넘어왔다.

파프니르가 고개를 돌렸는데, 게이트에서는 파프니르보다 더 거대한 용이 튀어나오고 있었다.

화들짝 놀란 파프니르는 서둘러 자리를 피하려 했지만, 상대가 더 빨랐다.

키아아아아아!

콰직!

그 자리에 있는 모두는 방금 그들이 본 것을 의심했다.

제대로 본 것이 맞는가, 파프니르가 검은 용에게 목을 물어뜯기고 지금도 계속해서 몸부림치고 있었다.

검은 용은 비늘이 군데군데 흉하게 떨어져 새빨간 살점이 다 보였다.

또한 날개는 너덜너덜 찢어져 있었고 손톱과 발톱은 제구실을 하지 못했다.

하지만, 상처 입기 전의 위상을 증명하는 것이 있었다.

바로 용의 눈과 이빨이었다.

악에 받힌 눈은 새빨갛게 물들어 있었고 피가 줄줄줄 흐르는 입은 그 안에 드러난 이빨만으로도 공포를 느끼게 했다.

휘익.

휙.

주변 안개 속에서 동료 행세를 하던 이들의 정체가 드문드문 드러났다.

입가에 피를 잔뜩 묻힌 인간형 몬스터는 펼쳐진 상황에 어리둥절해 하다 펄스 건에 격파되었다.

가만히 내버려 두었다면, 본진이 혼란에 빠져 아비규환이 됐을 터였다.

-야; 저거 니드호그자너;

-형이 왜 거기서 나와?

‘니드호그?’

조병창은 지금 이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 건지 순식간에 파악했다.

스칸다에 있어야 하는 니드호그가 게이트를 열고 종말 이후에 나타난 것이 분명했다.

‘어떻게? 아니…….’

지금 중요한 것은 그게 아니었다.

니드호그는 강적이었던 보물을 지키는 환상의 용 파프니르를 상처 입은 몸으로도 일격에 물어 죽인 괴물이었다.

아무런 대비 없이 상대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었다.

상황을 어떻게 볼지는 다음 문제였고, 지금 중요한 것은 어떤 판단을 내리느냐였다.

“물러나자, 물러나야 해!”

“병창아…… 잠깐만.”

“왜…… 지금…… 어?”

“저거 보여?”

게이트를 통해 넘어온 것이 누구인지 알아채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선두에 선 사람은 줄곧 화면 너머로 지켜보던 사람이었고 다른 이들은 등불 초창기에 자주 보던 이들이었으니까.

“초모잖아? 하린 양이랑 최별 양까지…….”

“어쩔 거야?”

주어진 정보가 조금 늘어났다.

적은 강대했지만, 분명 자신들의 조력자도 함께였다.

조병창이 채널을 통해 말했다.

“준비합시다. 지원해야 해요!”

-알겠습니다!

-방법은?

이미 니드호그에게 펄스건의 총탄이 쏟아지고 있었지만, 니드호그의 비늘에 닿기도 전에 사라졌다.

조병창이 다른 채널을 통해 누군가에게 말을 걸었다.

“석찬아, 준비됐어?”

-잠시만요, 아버지가 아직 조정할 부분이 좀 남았대요.

“준비 다 되면 알려 줘. 그리고 지금 좌표 보낼 테니까 그곳으로 보내 주고.”

-몇 대요?

“2대 전부.”

-네. 준비되면 말씀드릴게요!

조병창이 주변을 둘러보며 소리쳤다.

“가자! 사거리 쪽에 인원 더 보내고, 빌딩 안에 있는 애들 다 내보내!”

“알았어!”

“근접전은…… 포기하자.”

“모두 들었지? 원거리 지원이 가능한 사람만 나서고, 나머지는 석찬이한테 붙어!”

키아아아아아아!

니드호그가 울부짖자 작은 게이트 몇 개가 더 생성되었다.

어떤 것은 공중에 생성되어 몬스터들이 그대로 추락해 터지기도 했다.

철퍽.

“산 넘어 산이군. 화이트들한테 지원 요청해! 치평동으로 전부 와!”

투두두두두!

파프니르가 생존해 있던 상황과 현재의 상황에서 다른 점은, 게이트에서 쏟아지는 모든 몬스터가 적이라는 것이었다.

투두두!

-바이저 벗지 마! 안개가 가진 환각 작용은 그대로다!

***

파프니르가 가진 정기를 흡수했지만, 이곳에 있는 파프니르는 껍데기에 불과했다.

때문에 기대했던 것보다 훨씬 모자란 힘을 흡수한 니드호그는 폭발로 얻은 상처를 회복하는 데 급급했다.

특히 날개에 생긴 구멍은 파프니르를 흡수했음에도 전혀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검은 용이 고개를 돌렸다.

지긋지긋한 추격전.

그 추격전이 아직도 계속되고 있었다.

건물 옥상에 내려앉은 니드호그는 반대편 건물의 옥상에서 도약해 자신이 있는 옥상까지 뛰어드는 3인을 바라보았다.

지이잉.

마법을 사용하려 했지만, 잘되지 않았다.

공중에 떠오른 마법진이 허무하게 사라졌다.

불쾌한 감정을 느낀 니드호그가 꼬리를 휘둘렀다.

후아앙!

니드호그는 마력이 진탕되어 마법을 사용할 순 없었지만, 아직 굴강한 육체와 소량의 검은 불길은 남아 있었다.

성진 일행도 그것을 알기에 방심하지 않았다.

꼬리를 피한 최별이 불길을 일으켰다.

화르르륵!

최별의 힘은 계속 늘어났다.

마력 폭탄의 반경에 가까스로 들어가지 않았지만, 폭탄이 터지고 난 후에 오히려 마력이 크게 불어났다.

그와 같은 느낌을 다른 둘도 받았다.

송하린은 그걸 크게 체감하지 못했지만 성진은 달랐다.

아예 존재하지 않았던 마력이 잠시인지 혹은 영구적인지는 모르겠지만 크게 차오르자, 몸에 엄청난 활력이 생겼다.

서걱!

성진의 검이 되돌아가는 꼬리의 말단을 잘랐다.

뒤따르는 격통에 니드호그가 굉음을 내질렀다.

크아아아아아아아!

게이트에서 쏟아지는 비행 몬스터들은 등불이 꾸준히 퇴치하고 있었다.

덕분에 니드호그를 상대하는 성진 일행은 들판에서 니드호그와 싸울 때보다 훨씬 상황이 낫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니드호그가 마력을 회복하는 순간이 혹시라도 찾아온다면 지금까지의 노력이 물거품이 될 것이다.

정말이지 끈질긴 용의 육체는 이만큼이나 상처 입었어도 대응에 허술함이 없었다.

여전히 강했고, 여전히 위협적이었다.

시간이 지나면 불리해질 것을 알기에, 셋은 필사적이었다.

쾅!

“컥!”

날개에 얻어맞아 날아간 최별은 정신을 차리고 건물 옥상의 난간을 붙잡았다.

치지직.

재빨리 뛰어오른 그녀가 니드호그를 향해 돌격했다.

성진은 날아갔던 그녀의 상태를 확인하기 위해 밑을 바라보다가 누군가를 목격했다.

상대는 커다란 동작을 취했다.

김석찬이었다.

성진은 그 동작이 무슨 뜻인지 알고 있었다.

부우웅.

마침, 니드호그가 거칠게 날아올라 고층 빌딩의 중심부로 향했다.

짧은 공백.

성진이 소리쳤다.

“뛰어내려요!”

“네!”

대답을 하는 데 의문을 품지 않았다.

셋에게는 행동의 이유를 설명해야 하는 규칙 따위는 없었다.

조병창이 소리쳤다.

“지금이야! 갈겨어!”

그 순간, 건물이 진동했다.

아니, 건물뿐만 아니라 대기가 진동했다.

기이이이이잉.

콰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궁니르에 다닥다닥 달라붙은 펄스 능력자들이 눈에 들어왔다.

궁니르의 펄스가 고층 건물의 상층부를 헤집어 커다란 구멍을 만든 것도 모자라 그것을 뚫고 니드호그의 등판에 작렬했다.

키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위력은 굉장했지만, 이것으론 부족했다.

송하린과 최별이 마무리하기 위해 달려들려 했지만, 성진이 제지했다.

자신이 본 동작은 더 많은 뜻이 함축되어 있었다.

역시나, 대기의 진동이 다시 한번 느껴졌다.

기이이잉.

콰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이번엔 반대편에서 쏘아진 궁니르의 펄스가 니드호그의 정면 건물을 뚫고 나와 니드호그를 타격했다.

키아아아아아아!

궁니르에 연달아 얻어맞은 니드호그의 모습이 순식간에 변했다.

더는 거체를 유지할 수 없는 건지 니드호그는 인간으로 변해 등에 달린 날개로 날아 멀쩡한 건물의 외벽에 안착했다.

“하아…… 하아…….”

쿵!

콰직!

유리창이 방금 궁니르의 진동으로 모두 깨져 나갔는데, 건물 안의 누군가가 외벽에서 팔을 뻗었다.

푸른 눈으로 빛나는 휴머노이드였다.

휴머노이드는 1명이 아니었고 여러 명이 상처 입은 니드호그에게 달라붙어 그를 떨어트리려 했다.

크아아아!

콱!

콰직!

방금 소리는 인간의 입에서 나올 괴성이 아니건만, 니드호그는 야만인처럼 소리치고 화이트들을 전부 떼어 내며 정면을 바라봤다.

다시 3명의 검사가 날아들었다.

그런데, 니드호그의 표정이 일그러지기는커녕 오히려 아무 표정을 짓지 않았다.

성진은 불길한 상상을 떠올렸다.

“피해에!”

“이런…….”

“늦…….”

니드호그가 줄곧 아껴 오던 검은 불꽃을 이용해 주변을 폭발시켰다.

콰아아아아아앙!

범위가 넓었고, 예상하지 못한 타이밍이었으며 셋이 점한 위치가 좋지 못했다.

화이트들은 전부 재가 되어 흩어졌고 성진 일행도 외벽에 닿지 못하고 튕겨 나가 벽에 처박혔다.

콰지지직!

치이이이이이.

“떨어진다! 받아!”

최별과 송하린이 한차례 벽에 부딪혔다가 바닥으로 떨어지려 했다.

하지만, 외벽의 한 곳에서 불쑥 튀어나온 화이트의 손이 그들을 붙잡았다.

드드드드.

팍!

파악!

여러 명의 화이트와 등불이 달라붙고 나서야 그녀들은 추락을 멈췄다.

니드호그가 비웃음 가득한 입매를 하고 다른 곳을 살폈다.

없다.

니드호그의 시야에 성진이 보이지 않았다.

분명 검은 불꽃에 적중하는 것을 보았건만, 바로 추락한 것일까?

콰직.

두두두두.

이상한 소리가 니드호그의 귀를 간지럽혔다.

분명 이 소리는 누군가가 외벽을 뛰어오는 소리였다.

니드호그가 재빨리 소리가 들려온 방향으로 고개를 돌리자, 성진이 새하얀 광채에 휩싸여 건물의 외벽을 달려오고 있었다.

성진이 검은 불길에 적중하려는 순간 최후의 방법을 시도했다.

-순수? 화신요? 음…… 세 가지 힘을 동시에 끌어올리면 각각의 힘이 반발해서 폭발을 일으키는데 그 감각을 유지하면 되요.

지푸라기라도 붙잡는 심정으로 시도한 것인데, 늦지 않게 성공했다.

하지만 지금 보유한 마력이 언제 사라질지 알 수 없는 노릇이었기에 속전속결로 끝내야 했다.

지금도 마력이 급감하고 있었다.

니드호그는 날개를 펄럭여 건물을 벗어났다.

시간을 끌면 성진은 추락할 것이다.

그런데, 그가 전혀 예상하지 못한 일이 일어났다.

별안간 성진의 등에서 거대하고 새하얀 날개가 활짝 돋아났다.

치지지지직.

성진의 몸에 이상한 기운이 감돌았다.

폭풍을 닮은 그 기운은 그의 몸을 휘감은 것도 모자라 그의 검에 깃들었다.

새로 돋은 날개는 익숙했다.

오히려 팔이 어색하다고 느껴질 정도로.

니드호그가 결심한 듯 양손의 검은 손톱을 길게 뽑았다.

카앙!

카앙!

캉! 카앙!

소리가 하나로 들릴 정도로 순식간에 수많은 공격을 교환했다.

하지만, 지친 니드호그는 성진의 공격을 몇 번 받아 내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화신을 이룬 성진은 괴물이었다.

치지지지직.

카아앙!

콰직!

손톱이 뭉텅이로 잘려 나갔다.

사람들이 성진을 보고 소리쳤다.

“제발! 제바아알!”

“힘을 내!”

마침내, 니드호그의 하나 남은 눈이 감겼다.

그의 입에서 최후의 숨결이 흘러나왔다.

“내가 졌다.”

서걱.

뭔가가 깔끔하게 절단되는 소리와 함께 성진이 답했다.

“끝이다.”

철컥.

스칸다가 다시 검집으로 들어가자, 니드호그의 몸이 서서히 갈라지기 시작했다.

그와 동시에 성진도 추락을 시작했다.

쩌적.

쩌저적.

그의 몸에서 엄청난 빛이 뿜어 나왔다.

우우웅.

콰아아아아아앙!

파편으로 갈기갈기 찢어진 니드호그를 목격하자 등불은 소리쳤다.

“와아아아아아아아!”

“해냈다아아아!”

“해냈어! 우리가 해냈다고!”

조병창은 손바닥이 뜨끔했다.

울산에서 느꼈던 감각이 다시 한번 찾아왔다.

광주의 종말을 끝낼 시간이었다.

“어?”

“뭐, 뭐야?”

“그…… 다 사라지는데요?”

성진 일행이 순식간에 사라져 갔다.

성진도 정신을 잃고 추락하기 직전에 어딘가로 사라졌다.

그를 구조하기 위해 모여들었던 사람들은 헛것을 본 것처럼 머리를 흔들었다.

어안이 벙벙해진 그들은 잠시 그 자리에 우두커니 서서 상황을 살폈다.

***

어두컴컴한 공간.

성진은 홀로 그 공간을 걸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기에 망설일 법도 한데 그는 거침없이 걸었다.

누군가가 자신을 부르는 것이 느껴졌다.

잠시 후, 그가 도착한 곳에는 작은 용이 있었다.

새끼용의 모습을 한 그였지만, 그 위엄만큼은 본래의 위엄 그대로였다.

새끼용이 말을 걸었다.

“결국, 이렇게 되는군.”

“……무슨 소리지?”

“아직인가……. 이제 선과 악을 조율할 수 없다. 모든 생명이 그것을 스스로 결정할 것이다.”

니드호그는 뜻밖의 뜬구름 잡는 소리를 했지만, 성진은 신경 쓰지 않고 답했다.

“그래.”

“참으로 오랜 시간이었구나, 나는 아직도 네 방법이 옳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무슨…….”

“뭐…… 그것도 좋겠지. 그러니 이제부터는 네가 옳기를 바라마.”

“…….”

작은 용은 뭔가 결심한 듯 성진에게 말했다.

“모든 것…….”

“뭐?”

“모든 것에는 반드시 틈이 존재한다.”

“그게 무슨 뜻이야?”

“이것이 네 결론에 도움이 되길 바라마.”

그 말을 끝으로 작은 용이 바람을 후 불자, 검은 공간에 거대한 구멍이 뻥하고 뚫렸다.

성진은 누가 잡아 끌 듯이 그곳으로 빨려 들어갔다.

그리고 다시 정신을 잃었다.

“허어억!”

“깨어나셨다!”

“깨어나셨어!”

성진이 감았던 눈을 뜨자, 반가운 얼굴들이 보였다.

스칸다의 주민들이었다.

그들뿐만 아니라 이방인들 또, 최별과 송하린이 있었다.

누군가 물었다.

“어떻게…… 어떻게 된 겁니까?”

“네?”

“우리는…… 우리는 이제 어떻게 되는 겁니까!”

“그건…….”

성진은 손바닥에 자리 잡은 용 각인을 보았다.

그 안에서 이제껏 잠시라도 가졌던 힘 중에 가장 강한 힘이 느껴졌다.

분명 이것을 이용해 돌아가는 것이 맞는 것 같았다.

정확한 방법은 알지 못했지만, 그의 기묘한 감각이 긍정했다.

성진은 손바닥을 내밀어 보였다.

“니드호그는…….”

“…….”

“죽었습니다.”

간절히 두 손을 모으고 있던 사람들이 성진의 말에 양팔을 하늘로 올리고 소리쳤다.

“우와아아아아아!”

“됐어! 됐다고! 우리 이제 죽지 않아도 돼!”

“으아아아앙!”

시끄러운 소리에 최별과 송하린이 깨어났다.

상황을 파악한 그녀들은 멋쩍게 미소 짓다가 조용히 물었다.

“그런데, 우리 어떻게 돌아가요?”

“스칸다에 종말 거부 장치가…… 있었나요?”

“…….”

미간이 찌푸려졌다.

당장은 최악의 상황을 피했단 소식에 사람들이 기뻐하고 있었지만, 세종 시민들에게 돌아갈 방법이 없다는 얘기가 들어갈 경우에는 혼란이 야기될 것이다.

“그건…….”

“제가 압니다.”

바라마지 않았던 소식을 전해 온 이는 스칸다에 깃든 정유리였다.

정유리는 또박또박 그리고 천천히 얘기했다.

“내가 깃든 이곳에 스칸다가 있습니다. 파편이긴 하지만 의식의 조각을 쪼개 담은 것으로 추정됩니다.”

“스칸다가 열쇠인 건가?”

“나뿐만 아닙니다. 세 자루의 검에 그녀의 의식이 담겨 있습니다.”

송하린과 최별이 자신들의 검을 잠시 쳐다봤다가 물었다.

“검이면 충분한 거야?”

“아닙니다. 자세한 이야기는…….”

정유리의 이어진 설명에 일행이 넋을 놓고 듣다가 말했다.

“가능해?”

“충분합니다.”

그로부터 며칠 후, 스칸다 복구 계획과 동시에 이방인들의 귀환 계획이 잡혔다.

세종 시민들은 그에 환호성을 지르며 그날만을 손꼽아 기다렸다.

일을 한 번에 처리하려는 것인지는 정확히 알 수 없었지만 두 날짜가 같았다.

마침내, 약속의 그날이 왔다.

별나무 앞에 다가선 성진 일행은 조용히 검을 땅에 박아 넣었다.

파지지지직!

세 자루 검이 삼각형을 이루고 그 위로 뭔가가 나타났다.

별의 용광로에서 보았던 그 액체였다.

액체는 활발하게 움직여 별나무 안으로 들어갔다.

휘리릭.

유리온이 별나무 밖으로 튕겨 나왔다.

사람들의 부축을 받으며 퇴장한 그를 대신에 별나무에 깃든 스칸다가 얘기했다.

-이방인들이여, 너희들의 고향으로 되돌아가기 위해서는 모든 것을 원점으로 돌려놓아야 한다.

이미 대가를 알고 있던 사람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성진이 가졌던 힘도 이곳에 두고 떠나야 했다.

스칸다는 성진 일행이 남들과는 차원이 다른 힘을 잠시라도 지녔다는 게 그들의 귀환을 늦출 것이라고 했고 덕분에 모든 이들이 다 떠나고 난 후에야 그들은 세종시로 돌아갈 수 있다고 설명했다.

때문에, 지금은 그들의 송별회가 아닌 세종 시민들의 송별회였다.

옹기종기 모여 있는 사람들.

스칸다는 이곳에 없더라도 이마에 용 각인이 있는 이방인이 있다면 함께 돌아가게 될 것이라고 했다.

이것은 예외가 없었다.

모두 기대감과 불안감을 가지고 지켜보던 그때, 스칸다에서 태어난 꼬마가 작은 손으로 어떤 사내의 큰 손을 붙잡았다.

“안 가면…… 안 돼요?”

“…….”

“우리 친하잖아요. 안 가면 안 되는 거예요?”

“얘, 이리 와!”

꼬마의 어머니가 꼬마를 안고 자리로 돌아갔다.

세종 시민들은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아직 매듭지어지지 않은 문제들도 많았고 짧은 시간이라도 함께 보낸 시간이 있었으니까.

스칸다 주민들 중 누군가 소리쳤다.

“고맙습니다! 평생 은혜 잊지 않고 살겠습니다!”

“어떻게든 이 은혜 꼭 갚겠습니다!”

“약속드릴게요! 꼭! 꼭 저희가…….”

세종 시민의 반응은 각기 상반되었다.

그 말에 우는 사람이 있는 반면에, 코웃음을 치는 자들도 있었다.

각기 이 세계에서 다른 경험을 했기에 그 반응도 다를 수밖에 없었다.

성진이 스칸다에게 말했다.

“준비됐습니다.”

-좋다.

휘이이이이이이.

세 자루의 검에서 이상한 기운이 피어났다.

곧 그 기운은 삼각형이 되었고 그 안으로 무언가를 빨아들였다.

이방인들의 힘이었다.

성진 일행도 예외일 수 없었고 곧 그들의 힘도 삼각형에 사로잡혔다.

-손을.

성진이 손을 내밀자, 손바닥의 기운이 삼각형에 빨려 들어갔다.

막대한 힘을 모은 삼각형.

검에 깃든 정유리가 말했다.

“종말 거부 프로토콜 ‘집’ 시동.”

이이이이잉.

그 말소리와 함께 사방이 아비규환이 되었다.

“으아아앙! 가지 마!”

“가지 마세요! 우리를…….”

“가기 싫어! 하, 하지만…….”

성진 일행을 제외한 이방인들의 이마에 그려진 용 각인이 서서히 지워졌다.

그리고 곧 그들은 빛이 되어 사라졌다.

스칸다가 말했다.

-고맙구나, 아이들아.

그 말과 함께, 스칸다 대륙이 진동했다.

콰직.

콰지지직.

그들이 디딘 땅에서도 느껴질 정도로 막대한 진동이 시작됐다.

스칸다 대륙을 뒤덮었던 회색빛 기운이 초록빛 녹음에 밀려 서서히 자리를 내주었다.

대륙의 중심에서 시작된 그 기운은 천천히, 아주 천천히 퍼져 나가 대륙 전체를 푸르게 만들었다.

부서진 건물 잔해와, 죽어 간 생명들이 안타까웠지만, 스칸다는 새로이 생명을 잉태하기 위해 준비했다.

그리고 성진 일행의 이마엔 아직도 용 각인이 남아 있었다.

아직 그들에겐 끝맺지 못한 일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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