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75
175화
“가요!”
최별이 소리치자, 성진과 송하린이 균형을 이루며 돌격했다.
죽음의 늪에 서 있는 상황에서 이렇게 당당한 존재들은 처음 봤다는 듯이 니드호그가 콧김을 뿜었다.
파아앙!
하지만 이내 정기신의 합일도 이루지 못한 존재들이 자신을 가로막는 게 기분이 나빠진 니드호그는 늪을 날개로 밀어냈다.
촤아아아아아아악!
찐득한 검은 해일이 성진 일행을 덮쳐 왔다.
“흡!”
“으아앗!”
최별이 검을 횡으로 베었고 송하린이 종으로 베었다.
그러자 해일에 십자 형태의 구멍이 났다.
그 틈으로 셋이 뛰어들었지만, 니드호그는 예상했다는 듯이 검은 불덩이 하나를 날렸다.
화르륵!
서걱.
미리 대비하고 있던 성진이 불길을 베어 무효화 하고 동료들에게 길을 내주었다.
아직, 니드호그까지는 가깝지만 멀었다.
오히려 니드호그가 일으킨 해일 때문에 처음 마주한 자리보다 멀어진 기분이었다.
“조심해!”
촤아아!
늪을 뚫고 수십 마리의 뱀들이 일제히 공격해 왔다.
각양각색의 뱀들이 그들의 발을 물어뜯으려 했다.
“나!”
송하린이 서리가 낀 검은 힘으로 뱀들의 머리를 깔끔하게 잘랐다.
키아아아!
쩌정!
살아남은 뱀도 있었지만, 큰 위협은 되지 않았다.
그들은 굳은 뱀을 발판 삼아 내달렸다.
한 걸음.
한 걸음만큼 가까워졌다.
“윽…….”
갑자기 송하린이 신음했다.
별다른 위협이 없었는데도 이렇게 신음하는 경우엔, 심상에 문제가 있을 경우였다.
아마 급하게 힘을 운용해서 그녀를 축으로 한 심상이 흔들린 것 같았다.
그곳을 통해 니드호그의 사기(邪氣)가 침범했다.
“미안! 집중!”
송하린이 머리를 흔들며 뛰었다.
다행히 균형을 잡은 것 같았다.
후우웅.
니드호그의 곁에 2개의 마법 진이 생성되었다.
같이 온 스칸다인들의 도움을 받는다면 수월하게 막아 낼 수 있겠지만, 지금은 그조차 기대할 수 없으니 한순간, 한순간에 최선을 다해야 했다.
콰아아아아아아아!
키이이잉.
하나의 마법 진에선 광풍이 몰아쳤고 다른 하나에선 날카로운 얼음 창들이 형성되었다.
2개의 마법은 뒤섞여 더 막강한 파괴력을 보였다.
서리 바람을 타고 얼음 창들이 날아들었다.
화르륵!
마법을 직접 막을 수 없는 그들은 모두 베어 넘기는 방법을 택할 수밖에 없었다.
키이이이이.
날아드는 얼음 창을 베면 파편에 온몸이 구멍 날 것이다.
지금은 궤도를 트는 수밖에 없었다.
물론 그것이 베는 것보다 몇 배는 어려웠다.
탕!
타앙!
팅!
한 명이 창을 쳐 내면 다음 창을 뒤에 있는 이가 쳐 냈다.
마법을 이렇게 무식하게 파훼할 줄은 몰랐는지 니드호그도 곧바로 다음 마법을 준비하지는 못했다.
다시 한 걸음.
또 가까워졌다.
성진이 소리쳤다.
“위험!”
부우우웅.
적재적소에 니드호그의 반격이 들어왔다.
돌기가 돋아 난 거대한 꼬리가 수평으로 휘둘러졌다.
‘받아쳐야 하나?’
아니, 받아칠 수 있을까.
판단은 자신이 하는 것이 아니라 선두에 선 이가 하는 것이다.
선두는 송하린이었다.
송하린이 밑으로 푹 꺼졌다.
일행은 한 몸이라도 된 듯 바로 따라붙어 그녀의 판단에 합류했다.
다행히 꼬리는 스치지도 않았다.
“뒤!”
분명 꼬리에 담긴 힘이 어마어마했기에 날아간 꼬리가 곧장 되돌아올 줄은 몰랐다.
꼬리와 먼저 부딪히는 사람이 선두다.
성진이 선두였기에 판단했다.
팟!
성진은 늪을 밟고 그대로 떠올랐다.
촤아아아아!
꼬리가 애꿎은 늪을 후려쳐 거대한 물보라가 일었다.
‘실수일까?’
그럴 리 없을 것이다.
물보라로 가려진 시야.
그 너머에서 거대한 뱀들이 날아들었다.
“흡!”
성진은 재빨리 나무로 이루어진 구체를 만들어 그 안에 들어가 일행과 자신을 보호했다.
콰직!
콰지직!
콰직!
나무 공은 산산이 조각나서 늪에 뿌려졌다.
성진 일행은 나무 공이 있던 자리에 없었다.
그 짧은 사이, 전방에 자리한 뱀을 반으로 가르며 나아갔다.
다시 한 걸음.
일행은 천천히 니드호그와 가까워지고 있었다.
니드호그가 가소롭다는 듯이 지켜보던 처음과 달리 대응이 점차 빨라졌다.
화르르륵.
니드호그의 입에 검은 불길이 모였다.
숨결을 사용해 시간을 벌 속셈이었다.
성진은 재빨리 신성력을 운용해 검은 불길을 벨 준비를 했다.
“……허억!”
송하린의 다급한 숨소리.
심상은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렇다면 니드호그가 정신을 오염시키려 한 것이 분명했다.
숨결과 함께 정신 공격을 시도했으니, 혼자였으면 분명 당했을 것이다.
“흐아아아!”
화르르륵!
최별이 모두의 정신에 침범한 부정적인 생각을 태웠다.
니드호그가 만들어 낸, 그들이 실패할 가능성과 불길에 쓰러질 가능성은 그 순간 사라졌다.
그 순간, 불길이 쏟아졌다.
콰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원시적인 방법이지만 가장 효과적으로 성진 일행에게 타격을 가하는 방법.
하지만, 이 일격을 막아 내면 성진 일행에게도 더 큰 보상이 주어진다.
숨결을 쏟아 낸 직후가 용의 마력이 가장 약해질 시기다.
“으아아아아아!”
“이이이익!”
“으윽…….”
3자루의 검이 교차했다.
그것은 각기 다른 색으로 빛났다.
찬란한 그 색은 마침내 뒤섞여 검은 선을 만들었고 그 선은 착실하게 같은 색의 불길을 베었다.
몇 초간의 집중이 이어진 후, 불길이 사그라졌다.
성진 일행은 재가 되지 않았다.
그리고 기회가 찾아 왔다.
세 걸음.
이로써 니드호그에 도달한 성진 일행은 차분하게 이민상의 가르침을 머릿속에 떠올렸다.
-니드호그는 오만해요. 아마 순수에 오르지도 못한 존재들이 자신을 상대한다는 사실에 처음부터 전력을 다하지 않을 거예요.
-그럼…… 그럼 어떻게…….
-이때뿐이에요. 그가 방심했을 때 제일 큰 상처를 입혀야 해요. 요행을 바랄 수 있는 시간은 처음 마주하고 전력을 내보이기 전인 딱 이 순간뿐이에요.
숨결을 쏟아 낸 니드호그의 몸에서 마력 파동이 줄어들었다.
송하린이 니드호그에게 선제공격을 가했다.
“하아아압!”
쩌어어엉!
천마도의 목표는 니드호그의 목이었지만, 후려친 것은 니드호그의 날개였다.
“으그그극!”
지지직.
니드호그의 날개가 일정 부분 찢어졌다.
크아아아아아아!
송하린이 히죽 웃었고 찢어진 틈으로 성진과 최별이 뛰어들었다.
화르륵!
찬란하게 불타오르는 엑스칼리버가 니드호그의 아가리를 노렸다.
후우우!
니드호그의 입에서 시커먼 독기가 쏟아졌다.
최별이 독기를 태우는 사이, 니드호그의 이빨에 기생하는 뱀들이 그녀를 구속하려 했다.
쉬이이이익!
화르륵!
최별은 불길을 일으켜 그 뱀들을 상대했지만, 그 때문에 공격 기회를 잃었다.
성진은 그녀를 지나쳐 용의 콧잔등에 올라탔다.
니드호그의 다급한 손이 그를 떨어트리기 위해 날아오고 있었다.
“흐읍!”
한참 뒤로 젖혀졌던 스칸다가 위에서 아래로 그어졌다.
서걱!
키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눈, 눈을 노리세요.
-왜?
-용이 마력이 생성되는 곳은 심장이지만, 그걸 통제하는 건 양쪽 눈이에요. 하나라도 상처 입힌다면, 이후의 승부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할 수 있어요.
“됐어!”
“위험해요!”
팍!
최별의 다급한 외침에 호응하듯, 성진이 자리에서 사라졌다.
그 위를 니드호그의 손이 지나쳤다.
니드호그는 왼쪽 눈에서 피를 쏟고 있었다.
눈알 자체에 문제가 생긴 듯 아예 뜨지도 못하고 다른 한쪽 눈으로 그들을 노려보았다.
성진 일행은 날아오는 뱀들을 쳐 내며 다음 공격에 대비했다.
하지만, 니드호그는 그들을 공격하는 대신 다른 행동을 취했다.
지직.
지지지지직.
차원이 찢어지며 거대한 차원 문이 생성되었다.
성진 일행은 날개를 펄럭이며 그 문으로 빠져나가는 니드호그를 확인하고 곧장 추격했다.
잠깐의 승리에 취할 수 없었다.
전쟁은 이제 막 시작됐으니까.
***
“용! 용이다!”
“저기야!”
성진 일행처럼 모든 일행은 뿔뿔이 흩어졌다.
니드호그가 새로이 나타난 곳은 얼음의 세계.
원시 서리 거인과 분노한 얼음 정령, 그리고 냉기를 뿜어내는 마수들이 가득한 곳이었다.
이들은 모두 니드호그의 명령을 따랐으며 자신들의 땅을 침입한 존재들을 퇴치하기 위해 열을 올리고 있었다.
바스카리 수도회와 용인들, 그리고 묵 빛으로 빛나는 전쟁 병기 하나.
“발사해!”
“발사!”
누군가의 다급한 외침과 함께, 니드호그가 예상하지 못한 공격이 가해졌다.
콰아아앙!
피슈우우우우우우.
콰직!
“맞았다!”
“좋았어!”
니드호그의 날개에 커다란 창이 박혔다.
흑색 창은 뭔가 기이한 작용을 일으키는 효과가 있었는지 창에 맞은 니드호그가 극심한 고통에 몸부림치며 콧잔등을 찡그렸다.
결국 나는 것이 힘들어진 니드호그는 땅으로 내려왔다.
쿠우우우웅!
니드호그가 거대한 발을 구르자, 설산이 흔들렸다.
그러자 솟아오른 얼어붙은 바위들이 용인들과 수도회를 덮쳤다.
콰직!
“으아아악!”
“피해! 피하라고!”
콰지직!
“막아야 해! 뭉쳐! 뭉쳐라!”
흑색 창을 토해 낸 전쟁 병기는 제 소임을 다했다는 듯이 얼음 바위에 격추당해 보기 좋게 부서졌다.
“흐으으읍!”
바위의 추기경이 거대한 석벽을 일으켰다.
콰아아아아아악!
콰아앙!
하지만 얼어붙은 바위는 그대로 석벽을 부수고 용인과 신관 몇을 짓이겼다.
“부족해!”
“도울게!”
바람의 장벽과 불의 장벽이 더해지자 어느 정도 날아드는 바위들을 저지할 순 있었지만, 신관들과 원시적인 용인들만 모여 있는 이곳에서 무한한 마력의 니드호그를 감당할 순 없었다.
그 순간, 용인족 대주술사가 중얼거리더니 피로 거대한 주술을 불러 일으켰다.
지이이잉.
그제야 돌들이 석벽을 넘지 못하고 도로 튕겨 나왔다.
안색이 파리해진 대주술사가 전선을 지켜봤다.
추기경들이 니드호그의 공격을 막는 데 집중하자 전선에 틈이 생겼다.
서리 거인들이 용인들을 깔아뭉개며 진격해 왔다.
“못 버텨…….”
절망적인 소식은 한 가지가 아니었다.
니드호그가 검은 화염구를 끼얹자 석벽이 흉물스럽게 부서졌다.
“더, 더 이상은…….”
그때, 실바가 석벽 위로 한 겹의 물의 장막을 일으켰다.
“으아아아아!”
“실바! 위험해!”
치이이이익!
물의 장벽은 진영의 정중앙을 노리고 떨어지는 검은 화염과 대항했다.
실바가 그것을 버틸 수 있을 리가 없었다.
하지만, 금세 무너질 것 같던 물의 장벽은 검은 화염구의 공세를 찰나지만 막고 있었다.
실바가 몸을 경련하며 소리쳤다.
“아버지! 이들을 지켜 주세요!”
치이이이이익!
실바가 버틸 수 있던 것은 고작 몇 초.
마침내, 물의 장벽이 무너졌다.
“안 돼에에에!”
그때, 차원 문에서 일단의 무리가 튀어나왔다.
그들은 차원 문에서 빠져나오자마자 물의 장벽을 무너트린 화염구에 돌진했다.
서걱!
서걱!
검은 화염이 거짓말처럼 4조각이 나서 흩어졌다.
실바는 기적처럼 나타난 이들을 보며 소리쳤다.
“초모 님!”
“전진하세요!”
“네!”
“전진! 전진하라!”
니드호그는 차원 문을 넘어 등장한 성진 일행을 쳐다보다가 자신을 향해 돌진해 오는 그들을 향해 눈덩이 마법을 구사했다.
지이이잉.
쩌정!
수천 개의 눈덩이가 하늘을 가르고 날아올랐다.
퍽!
쩌정.
성진 일행은 방벽으로 무사할 수 있었지만, 전선의 돌출된 부분에 있던 용인 중 몇몇이 눈덩이에 얻어맞고 얼음으로 화했다.
우우움!
얼음이 된 용인의 머리에 서리 거인의 몽둥이가 떨어졌다.
콰아아아아앙!
과자처럼 부서진 용인은 이제 조각나서 형체를 찾아볼 수 없었다.
-셋이 잠시라도 니드호그를 막지 못하면 같이 간 사람들은 모두 죽을 거예요.
송하린이 이를 악물었다.
“제길…….”
“집중해요!”
이미 전투는 시작됐고 뒤돌아볼 겨를 따위는 없었다.
다행인 점은 날개에 박힌 검은 창이 니드호그의 비행을 막고 있다는 점이었다.
난쟁이들이 벼려 내고 마녀들이 숨결을 불어넣은 그 창은 저주로 얼룩져 니드호그가 잠시 날지 못하도록 만들었다.
여러모로 성진 일행에겐 호기였다.
카아아앙!
후두둑.
캉!
카앙!
그들은 니드호그를 추격하며 스쳐 지나가는 서리 거인을 전부 베었다.
덕분에 숨통이 트인 전선은 계속해서 마수들을 밀어붙였다.
한쪽 눈에 상처를 입은 니드호그는 아까처럼 마구잡이로 마법을 사용하지 못했다.
그렇지 않았다면 성진 일행은 니드호그의 막기만 하다가 무너졌을 것이다.
결국 마법을 구사하는 데 신중해진 니드호그는 그마저도 큰 마법을 사용할 순 없었다.
성진 일행이 끈질기게 달라붙어 마법을 사용할 틈을 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다만 신중해진 니드호그는 틈을 보이지 않았다.
니드호그가 몸을 사리자 성진 일행도 착잡해졌다.
이대로는 결판이 나지 않을 것이고 지친 사람들이 먼저 나가떨어질 것이다.
그런데 돌연 니드호그가 여태까지와는 달리 큰 마법을 사용했다.
“막아야 해!”
오오옴!
서리 거인이 니드호그를 호위하며 몽둥이를 휘둘렀다.
“망할!”
서걱!
서리 거인을 순식간에 쓰러트린 그들은 니드호그의 곁에 도달했지만, 마법은 이미 완성되었다.
쿠우우웅!
“윽…….”
“무, 무너진다!”
협곡 지형이 양쪽에서 무너지기 시작했다.
서리 거인을 포함하여 병사들까지 그 여파로 매몰되고 있었다.
니드호그는 차갑게 조소하며 다음 마법을 사용하려 했다.
콱-!
니드호그의 시선이 돌아갔다.
작은 창이 날아와 자신의 피부를 꿰뚫었기 때문에.
창의 주인은 용인이었다.
창에서 미미한 신성력이 느껴지는 것이 신관의 축복을 받은 창인 것 같았다.
“우아아아아!”
용인 몇이 전선을 이탈하여 니드호그를 향해 돌격했다.
하지만, 그 앞에 선 서리 거인을 넘지 못하고 지리멸렬했다.
어느새 피해를 수습하고 자신에게 돌격해 오는 인간들을 보며 니드호그는 다시 차원 문을 열었다.
지직.
지지직.
니드호그가 차원 문으로 빠져나가는 동시에 성진 일행이 따라붙어 그를 추격했다.
더는 허무한 희생이 나와서는 안 되었다.
“우리도 추격해요!”
“밀어붙여라! 따라잡아!”
신관들과 용인들이 차원 문을 넘은 것은 성진 일행이 떠나고 몇 분이 지나서였다.
***
차원 문 너머는 서리의 땅에 이어 유황의 땅이었다.
후끈한 열기가 차원 문을 넘자마자 느껴졌다.
“무슨 체력이…….”
“우리가 먼저 지치겠어요!”
“…….”
불의 마수와 유황을 뿜는 늑대 등.
앞서 거친 세계와 상황은 별반 다르지 않았다.
“초모!”
“카이덴 님!”
“상황은?”
“계속 추격 중입니다!”
“우리도 전선을 밀면 합류하겠네!”
성진은 눈대중으로 전황을 살폈다.
뒤섞인 무리는 마법사들과 무인들.
지혜의 고리와 맹 소속인 자들이 대부분이었다.
“마력 폭탄은…….”
“현재는 운용할 수 없네! 전쟁 병기가 다른 곳에 있어!”
“알겠습니다!”
마력 폭탄은 점화 후에 전쟁 병기로 쏘아 내야 했다.
전쟁 병기가 다른 곳에 전송되었다면 그것이 무사하기만 바랄 뿐이었다.
-적대적 생명체. 소거하겠습니다.
센티널들도 이곳에 많은 수가 넘어온 것 같았다.
그들과 마법사들이 한기를 일으켜 열기로부터 사람들을 보호했다.
마법사들은 불에 치명적인 얼음 마법을 사용하여 적들을 물리쳤다.
서리 거인을 상대할 때보다 수월하게 느껴지는 것이 전선을 밀어 붙이는 데에 속도를 붙게 했다.
하지만, 그만큼 방어는 허술했다.
콰아아아아아아!
니드호그가 발작하듯 일으킨 마법에 전선이 선을 긋듯이 주르륵 쓸려 나갔다.
“마법을 쓰게 두지 마라! 방어 마법으로는 막지 못해! 마력을 교란해!”
“하급 마법사들은 전선에 집중해라!”
“조금만 힘을 내!”
무인 1명이 불의 마수가 휘두르는 채찍에 얻어맞고 불탔다.
“흐앗!”
훙!
끼아아아악!
쩌정!
맹 소속 무인이 빙공을 구사하자 채찍을 휘두른 불의 마수가 얼음으로 변했다.
“제길, 이래서야…….”
성진은 기묘한 느낌을 받았다.
니드호그가 수비에 치중하자 성진 일행은 그의 털끝도 건드리기 어려워졌다.
하지만 동시에 바스카리와 용인들이 합류하며 진영이 전선을 밀어붙이는 속도가 더 빨라졌다.
이대로라면 니드호그를 지키는 몬스터보다 성검회가 제 모습을 찾는 시점이 더 빠를 것이다.
그런데도 니드호그는 성진 일행을 상대하는 것에 별 관심이 없어 보였다.
마치…….
‘힘을 비축하고 있어!’
왜.
왜 힘을 모아야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마 그 이유를 알게 되는 순간, 큰 위기에 처할 것이 분명했다.
이럴 때 이방인들이라도 전선에 존재했다면 더 적극적인 공세를 취할 수 있었겠지만, 그들은 또 다른 곳에서 분투하고 있는 것 같았다.
“제길! 저 자식이 또!”
“또 차원 문을 넘어가요!”
“차원 문을 여는 데도 힘을 쓸 겁니다. 일단 추격하죠! 그보다…… 니드호그가 뭔가 수를 쓰고 있어요.”
“역시…….”
지혜의 샘에서 보았던 광경.
성진 일행은 들판에서 수많은 마수를 상대로 모든 이들이 힘을 합쳐 싸운 모습이 잊히지 않았다.
분명, 그곳까지는 가야 할 것이다.
그런 생각을 하며 니드호그가 넘은 차원 문을 따라 넘어갔다.
***
성진 일행은 차원 문을 넘어서자 기겁했다.
이곳은 다른 곳들과는 다르게 성진 일행도 명확하게 표현할 수 없었다.
음습하고 기분 나쁜 공간.
그곳에서 태양성의 기사들과 별자리 관의 요정들이 힘을 합쳐 용에게 맞서고 있었다.
누군가 최별을 알아보고 소리쳤다.
“아서 님!”
“상황은?”
“용이 나타난 것을 빼면 아무 일도 없었습니다. 계속 걷기만 하고 있습니다.”
“뭐?”
최별이 성진을 쳐다봤지만 성진도 이유는 알지 못했다.
‘이곳은 니드호그의 영역이 아닌가?’
하다못해 하급 마수라도 나타나 그들을 저지할 줄 알았건만, 정말 황량한 공간만 계속 나타났고 거대한 동굴이나 사막이 전부였다.
어찌 됐든, 기회는 맞았으니 성진 일행은 곧장 추격을 개시했다.
차원 문을 넘어 병력이 계속해서 합류하고 있었지만, 그만큼 쓰러지는 병사도 많았다.
전쟁 병기의 위험성을 느꼈는지, 니드호그는 재빨리 마주치는 병기마다 화염을 뿜어 망가트렸다.
덕분에 니드호그는 날개에 박힌 창과 성진에게 베인 눈을 제외하고는 별다른 상처가 없었다.
지금 있는 공간에서 썩은 냄새가 풍겼다.
죽음의 늪에서 맡았던 냄새와 비슷하지만 조금 더 건조한 악취였다.
니드호그의 날개에서 갑자기 검은 창이 뽑혀 나왔다.
“이런!”
“막아라! 용이 날아오를 거야!”
“전쟁 병기는?”
“전부 부서졌습니다!”
“용이 날아오르면 타격할 방법이 전혀 없어!”
그나마 천장이 낮은 점이 위안이라면 위안이었다.
하지만, 공중에서 움직임이 자유롭지 않은 성진 일행이 날개가 있는 니드호그를 상대로 얼마나 분투할 수 있을지 알 수 없었다.
후웅.
후우웅.
기이이이잉.
니드호그가 공중에 떠올랐다.
가장 일어나선 안 되는 상황이 펼쳐졌다.
콰아아아아아아!
“끄아아아악!”
“피, 피해!”
니드호그의 다중 마법에 전선의 일부분이 뚝 끊겼다.
어쩌면 니드호그는 이곳으로 모두를 불러 일거에 퇴치하려 했는지도 몰랐다.
“막아야 해요!”
성진 일행은 신관들과 함께 마법에 대응했지만, 피해는 계속 누적되고 있었다.
그런데 그때.
성진과 니드호그 양쪽 다 예상하지 못한 일이 일어났다.
크와아아아아아아!
니드호그의 날개가 기우뚱하더니 바닥으로 추락했다.
콰아아아아아앙!
엄청난 흙먼지가 피어오르고 상황을 이해하지 못한 성진은 잠시 당황했지만, 일행과 함께 니드호그에게 향했다.
니드호그가 돌연 고함을 쳤다.
“헬! 감히!”
처음으로 입을 연 니드호그는 누군가를 향해 분노를 쏟아 냈다.
상대는 저 먼 곳에 안개처럼 일렁이며 나타났다.
얼굴의 반은 소녀였지만, 나머지 반은 노파인 여인이었다.
그녀는 낮게 조소했다.
“내 영역에 허락도 구하지 않고 오다니……. 당연한 결과지요.”
성진은 그 대화를 통해 내막을 알아챘다.
손상된 니드호그의 눈이 그를 잘못된 차원으로 이끈 것 같았다.
절호의 기회였으나, 니드호그는 소리를 지르며 곧장 차원 문을 열고 빠져나갔다.
성진은 아쉬워하며 니드호그를 따라 차원 문으로 향했다.
그리고 니드호그와 대화한 여인을 쳐다보는데 온몸에 소름이 끼쳤다.
‘넌…….’
여인은 성진을 싱긋 웃으며 바라보다가 연기로 흩어져 사라졌다.
성진은 처음 본 그녀가 낯익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