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73
173화
콰르르릉!
카아아아앙!
“크으으으윽…….”
치이이익.
성진이 이민상의 검격을 스칸다로 받아 냈다.
검에 깃든 정유리가 비명을 질렀다.
“아픕니다!”
“민상아! 진정해!”
이민상은 성진의 제지에도 불구하고 최별에게 돌진했다.
그것을 확인한 것도 움직임을 간파한 것이 아니라 그가 지나간 자리에 뇌전의 잔상이 남았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었다.
콰지지직!
“끄아아아악!”
전류에 휩싸인 최별이 비명을 질렀다.
다행히 태양의 기운은 그녀를 쉽사리 무너지지 않게 해 주었다.
화르르륵!
태양의 불길이 최별의 몸을 감쌌다.
그녀의 엑스칼리버가 파고드는 이민상을 겨누고 움직였다.
아니, 움직였다고 착각했다.
“……뭐?”
이민상의 움직임은 기괴했다.
분명 보고 있다고 생각했고 대응할 수 있다고 여겼는데 전혀 아니었다.
볼 수만 있을 뿐, 대응할 순 없었다.
그는 빨라도 너무 빨랐다.
콰르릉!
캉!
다행히 가까스로 엑스칼리버의 검첨(劍尖)이 이민상의 공격에 닿았다.
하지만 최별은 기뻐하기는커녕 오히려 두려워했다.
방금 이민상은 일부러 움직임을 늦춰 주었다.
그리고 그 덕에 그녀가 가까스로 움직일 수 있었던 것이다.
“무슨…….”
이민상이 성진 일행을 죽일 생각이 없는 것은 분명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넉넉하게 봐 줄 생각은 없는 것 같았다.
전력으로 대응해도 피해가 있을 정도.
딱 그 정도로만 상대하는 듯했다.
최별이 검격을 쳐 낸 그 순간, 이미 이민상은 자리에 없었다.
그는 어느새 송하린에게 다가가 번개를 뿌렸다.
파지지지직!
그녀는 서리가 낀 검은 기운으로 대항했지만, 소용없었다.
“으으으…….”
“얄팍해.”
이민상이 조소했다.
열이 오른 송하린은 재빨리 손을 놀려 장법을 구사했고 손바닥 모양의 기운이 이민상에게 빠르게 날아갔다.
후아앙!
팡!
이민상은 아주 수월하게 그 힘을 쳐 냈고 그녀의 하체를 노렸다.
팟!
송하린이 공중에 몸을 띄운 후 검을 휘두르기도 전에 이민상의 공격이 먼저 도달했다.
그녀와 마찬가지로 손바닥을 내미는 동작.
하지만 눈에 보이지도 않을 정도로 빨랐고 눈치챘을 땐 이미 팔이 앞으로 쭉 뻗어 있었다.
“읏…….”
송하린은 검을 휘두르려던 동작을 바꿔 천마도로 그 힘을 받아 냈다.
콰르릉!
천둥소리와 함께 송하린의 비명이 들렸다.
“끄아아아악!”
송하린이 저만치 뒤로 날아가 암벽에 부딪혔다.
콰아아아앙!
“커억…….”
울컥 피를 토한 송하린의 반응을 확인하기도 전에 이민상은 성진에게 다가와 있었다.
성진은 몸을 긴장시켜 이민상의 공격에 대응하려 했다.
캉!
캉!
연속으로 날아든 두 번의 검격을 쳐 낸 성진은 더욱 얼굴을 굳혔다.
검격은 보였지만, 이민상이 보이지 않았다.
전투에서 상대를 놓친다는 건 성진에게는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리고 그 대가는 성진이 예상하는 바였다.
슉!
뇌전을 싣지도 않은 공격에 성진은 할 말을 잃었다.
어느새 이민상의 검첨이 그의 눈앞에서 멈춰 있었다.
스륵.
성진은 검을 내리며 이민상을 쳐다봤다.
이민상의 표정은 승리했음에도 좋지 못했다.
안색은 파리했고 어느새 그의 몸은 푸른 번개가 아닌 인간의 몸으로 돌아와 있었다.
“……약해.”
“민상아.”
“이래선…… 이래서는…….”
철컥.
이민상이 검을 검집에 넣고 휙 돌아서며 말했다.
“너희는 세계를 구할 수 없어. 그리고…….”
그는 슬퍼 보였다.
“……나도.”
이민상과 성진 일행의 싸움은 졸전이나 다름없었다.
그만큼 격차가 심각했고 그들의 힘은 이민상에게 전혀 미치지 못했다.
참담한 표정으로 서로를 바라보던 성진 일행은 거처로 돌아가는 이민상의 뒷모습을 하염없이 바라보았다.
***
송하린과 최별, 그리고 성진의 분위기는 울적했다.
이민상에게서 전해 들은 것은 그의 비극이었고 다른 정보는 전혀 얻지 못했다.
이것은 갱조차도 예상하지 못한 일이었다.
이민상이 그렇게 강할 줄은.
성진이 앉아 있던 자리에서 갑자기 벌떡 일어났다.
최별과 송하린이 물었다.
“어쩌려는 거예요?”
“형님?”
“가 봐야죠. 얘기해 봐야겠어요.”
송하린이 걱정스럽게 물었다.
“이번엔 확실하게 죽이는 거 아닙니까?”
“그랬으면 진작 죽었을 겁니다.”
최별은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우리가 민상 씨의 기대에 못 미친 거예요. 민상 씨가 생각한 것처럼 우리가 강하지 않았으니까.”
“당연한 일입니다. 하지만 최선을 다했으니 얘기를 해 봐야죠.”
“같이 갈까요?”
“아뇨, 저 혼자 가 보겠습니다.”
“다녀오세요.”
이민상이 사는 곳은 동굴을 개조한 곳이었다.
성진이 그곳으로 다가가자 힘없는 음성이 들렸다.
“민상아.”
“……아직 안 갔네요.”
“얘기 좀 하자.”
“들어오세요.”
성진이 들어가자, 이민상은 가부좌를 한 상태로 뒤돌아 앉아 있었다.
성진은 코끝을 스치는 냄새에 뭔가 이상하다는 것을 느끼고 그에게 다가갔다.
‘피?’
이민상의 옷 앞섬이 피로 물들어 있었다.
“민상아?”
“……괜찮아요.”
“……어떻게 된 거야?”
“능력의 반작용이에요.”
“…….”
“가속 능력은 신체를 노화시키죠. 그걸 너무 늦게 알았어요. 지금은 능력을 사용하는 대가로 신체가 대신 타격을 받아요. 더 늙지 않는 것이 다행이죠.”
후우웅.
성진의 힘이 그를 치유했다.
한결 편안해진 얼굴의 이민상은 성진을 보고 웃었다.
“형…… 돌아가세요. 스칸다의 종말은 막을 수 없어요.”
“우리가 약해서 그런 거야?”
“……네.”
“어째서? 우리가 무엇과 싸워야 하는데?”
“용요. 거대한 용.”
“용?”
-나아가라. 용을 찾아라.
청설모가 했던 말이었다.
어쩌면 청설모가 말한 용과 지금 이민상이 얘기한 용과 다르지 않을 것 같았다.
“용이라면…….”
“가짜 용들과는 달라요. 신격이 있는 진짜 용이에요.”
“진짜 용…….”
“니드호그. 질투의 샘에 머무는 존재.”
“뭐?”
“세종시의 주민들과 우리를 이곳에 오게 한 장본인이에요.”
“그걸 어떻게 알아?”
“운명의 샘에서 들었던 얘기에요.”
“우리가 너와 스칸다를 구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 거야?”
“아직도 포기 안 한 거예요?”
“응.”
이민상이 성진을 무표정한 얼굴로 쳐다봤다.
눈두덩이에 맺힌 세월과 함께 많은 잣대가 성진에게 대어진다.
이민상은 피식 웃고 말았다.
“형, 할 생각이에요?”
“응, 포기 같은 건 안 해.”
“어쩜 이런 사람이 있을까…….”
“말해 줄래?”
“……네.”
이민상이 고민하다 말을 꺼냈다.
“형, 형이 다른 세계에서 왔다는 걸 알아요.”
“그야 당연히…….”
“아니, 제가 있던 곳이 아닌 다른 세계요.”
“…….”
“제가 멍청이예요? 몇십 년 동안 그런 것 하나 모르고 있을까 봐?”
“……알았구나.”
“이름도 몰랐던 이상한 세계에 떨어졌는데, 이제 무슨 일이 일어나도 놀랄 힘도 없어요.”
“하고 싶은 말이 뭐야?”
이민상은 표정을 굳히고 대답했다.
“형이 살던 세계, 그리고 제가 살던 세계, 그리고 이곳은 이어져 있는 세계일지 몰라요.”
“뭐?”
“지금은 가정만 하는 거긴 한데, 몇 가지 증거를 찾았어요.”
“증거?”
“몰타의 유적 관련해서인데……. 그곳에 세계는 원래 모두 연결되어 있었다는 내용이 있었어요.”
“그게 무슨 소리야?”
“너무 방대한 내용 중 일부라 대부분은 알아듣지 못했지만, 그곳에 그렇게 적혀 있었어요.”
“세계가 모두 연결되어 있다라…….”
-어째서…… 세계가 닫힌 것이지?
몰타 황제가 했던 얘기가 갑자기 떠올랐다.
성진은 그것을 이민상에게 추가적인 질문과 함께 얘기했다.
“몰타가 무엇인지 궁금하다고요?”
“응.”
“몰타는 니드호그의 파편이에요. 따로 떨어져 나온 존재라고 볼 수 있는데 니드호그의 힘을 일부 사용할 수 있고요.”
“이런 거?”
콰아아아아아!
성진의 손에서 작은 차원문이 탄생하자 이민상의 눈썹이 꿈틀했다.
“역시, 형이 방법을 찾았을 줄 알았어요.”
“이게 뭔데?”
“잠시만요.”
으득.
끼아아아아악!
귀곡성이 울려 퍼지며 이민상의 눈이 귀기로 번뜩였다.
그의 몸에서 시커먼 기운이 넘실거렸다.
“마왕의 흔적이에요. 마왕도 니드호그의 파편.”
“파편이 많네.”
“대부분의 몬스터가 그의 파편이라는 얘기도 있었어요.”
“그렇구나.”
“제가 이걸 왜 보여 드리는지 아세요?”
“아니, 모르겠어.”
“제가 지닌 마왕의 조각은 사실 니드호그가 머무는 질투의 샘의 좌표가 담겨 있어요.”
“……그럴 수가.”
그렇다는 얘기는 사태의 원흉인 니드호그에게 당도해 그를 제거할 수도 있다는 얘기였다.
“하지만, 형이 생각하는 것만큼 간단하지 않을 거예요. 차원 문을 연다는 것 자체가 막대한 힘이 필요하니까.”
“알고 있구나.”
“형이 그 문을 열어서 니드호그 앞에 선다고 해도 그를 쓰러트리는 건 불가능해요.”
“어째서?”
“잊었어요? 니드호그는 온갖 세계의 차원 문을 다루는 존재예요. 얼마나 많은 괴물이 그의 곁을 지키고 있을지 상상할 수조차 없어요.”
“설마 스칸다가 힘을 합쳐야 한다는 예언도?”
“네. 누군가 용을 상대하는 동안 그 괴물들을 맡아 줘야 하니까요.”
이제야 이해가 되었다.
굳이 모든 존재가 힘을 합해 종말에 대항해야 하는 이유를.
“니드호그는 그럼 누가 상대해야 하는데?”
“형과 밖에 계신 저분들이죠.”
“너는?”
이민상이 빙긋 미소 지었다.
“나는 갈 수 없어요.”
“왜?”
“잊었어요? 형이 스칸다의 모두를 데리고 차원 문을 넘어야 하는데, 그 대가는 형이 치를 수 없는 막대한 힘이에요.”
“설마…… 그걸 네가 치르겠다고?”
“저만 가능할 거예요. 정기신의 합일했다는 것 자체로 막대한 에너지를 가지니까.”
“너는 그래도 무사할 수 있는 거야?”
“힘이야 회복할 수 있겠죠. 하지만…… 다음 차원 문을 열 수 있을지는 알 수 없어요.”
“……수명은?”
“몰라요. 가속 능력의 반동으로 수명이 얼마나 남았는지도 모르고.”
“니드호그는 꼭 우리가 상대해야 하는 거야? 모두가 힘을 합치면…….”
성진의 말에 이민상이 고개를 저었다.
“그럴 수 없어요. 니드호그는 신이에요. 신격을 갖추지 못하면 그에게 타격을 가할 수 없어요.”
“정기신의 합일…… 그걸 말하는 거야?”
“맞아요. 하지만 저처럼 홀로 이루기에는 시간이 부족하고 종말은 코앞에 닥쳐왔죠.”
성진은 골똘히 생각했다.
이민상이 처음에 말했던 것.
“3명이어야 하는 이유가 그 때문이야?”
“네, 맞아요. 각자가 정, 기, 신의 위치에서 서로 조율하고 융화되어야 해요.”
“가능한 일이고?”
“해 봐야죠. 한다면서요?”
성진이 피식 웃었다.
이민상도 마주 웃었다.
“그리고 용 각인에 대한 내용은 뭐야?”
“그건 나름대로 연구를 해 봤는데, 니드호그가 찍은 낙인이에요. 아마도 무언가의 제물인 것 같아요.”
“제물?”
“근데 크게 신경 쓰지 않아도 될 것 같아요. 어차피 실패하면 끝일 테니까.”
“기회는 단 한 번이라는 얘기구나.”
“네.”
“그리고 아까 보니 네 몸이 번쩍이던 건…….”
“이건…… 음…….”
이민상이 잠시 고민하다 얘기했다.
“저도 아직 전력으로 전개해 본 적은 없는데, 정기신의 합일을 이루면 신과 같은 힘을 얻는다는 얘기가 있거든요. 아마 그게 아닐까 해요.”
“신이 된다고?”
“네, 제가 지은 이름은 화신(化神). 어차피 저밖에 쓸 수 있는 사람도 없으니…….”
“우리도 그렇게 되어야 하는 거야?”
“아무리 셋이 분담한다고 하더라도 그렇게까진 바라지 않아요. 그저 각자가 정기신의 위치에서 제 할 일을 하고 어우러지는 수준만 되어도 한 번 붙어 볼 수 있을 거예요.”
성진은 씁쓸하게 미소 지었다.
아마 그것으로 충분하지 않겠지만 이민상이 자신을 생각해 그렇게 말하는 것이 분명했다.
“네가…… 네가 우리 대신 싸웠으면 어땠을까?”
이민상은 히죽 웃으며 성진의 말의 의미를 간파했다.
“그건 의미 없는 말이에요. 저는 그럴 수 없으니까.”
“…….”
“제 운명은 이 순간을 위해 준비된 거예요. 형이 나아갈 수 있게…… 표류하지 않게 길을 알려 주는 사람. 맞아요, 이방인들이 나에게 했던 말 중에 꼭 그 말과 닮았네요.”
“뭐?”
“NPC. 나는 조연임과 동시에 주역들이 무대에 오르면 퇴장해야 하는 운명이에요.”
“민상아…….”
성진은 이민상이 좌절할 것을 우려해 말을 건네려 했다.
하지만, 이민상의 표정을 보고 그 말을 삼켰다.
성진이 확인한 그는 후련한 듯 보였다.
“나는 이제 알아요. 내 역할에도 의미가 있음을. 내게 주어진 운명이 꼭 필요한 것이고 누군가는 짊어져야 하는 것임을.”
“…….”
“내가 없으면…… 형도 없는걸요. 내가 있어야 형이 하는 일에 의미가 부여되고 목적이 생기는걸요.”
이민상은 성진에게 당부하며 다시 몸을 틀었다.
“내일부터 준비하세요. 협회에는 매일 이곳에 들르도록 말해 놨으니까 일이 어떻게 되고 있는지는 계속 알 수 있을 거예요.”
***
며칠이 지났다.
이민상은 한 손으로 턱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틀렸어. 아직도 위치를 제대로 못 잡으면 어떻게 합니까?”
콰르릉!
그는 일순간 번개가 되어 송하린의 앞에 도달했다.
“읏…….”
송하린이 재빨리 도를 떨쳤지만, 이민상의 연계 공격에 속수무책으로 허점을 내비쳤다.
캉!
최별의 검이 그녀의 허점을 틀어막았다.
다시 최별에게 생긴 빈틈.
캉!
카앙!
최별의 앞을 가로막은 것은 성진의 검이었다.
이민상이 다음 공격을 이어 가려다 도중에 자세를 바꿔 그에게 날아드는 검격을 쳐 냈다.
파직!
그리고 잠시 물러나 이렇게 얘기했다.
“좋네요.”
며칠 동안 이어진 훈련에서 그의 공격이 처음으로 끊겼고 수비까지 해야 했다.
일행은 희색이 만연한 얼굴로 서로를 쳐다봤다.
이민상은 다시 무표정하게 말했다.
“다음.”
다시 며칠 후.
“정신 안 차립니까? 정기신 중 하나라도 틀어지면 셋의 조화가 깨집니다. 그 이후는 말하지 않아도 알겠죠. 니드호그의 신격에 휩쓸려서 수수깡처럼 쓰러질 겁니다.”
“말, 말하지 않아도 알 거라면서 왜 굳이 말을…….”
“최별 씨! 이런 식으로 정이 무너지면 어떻게 된다고요?”
“니드호그의 신격에 휩쓸려서 수수깡처럼 쓰러집니다!”
“뭐라고요?”
“니드호그…… 수수……. 에이 씨…….”
“네?”
“좀만 살살 하면 안 될까요?”
“총은 살살 맞으면 덜 아플까요?”
“악마…….”
“준비하세요. 태양의 힘은 그렇게 다루는 게 아닙니다. 부정한 것들을 태워야 해요. 정신이 흔들리면 니드호그의 사술에서 동료들을 지킬 수 없어요.”
“알겠습니다. 다시 한번 해 주세요.”
성진 일행이 나란히 가부좌하고 심호흡을 했다.
콰르르르르릉!
곧, 그들의 정신이 새카맣게 오염되었다.
뇌우가 쏟아지며 온갖 기괴한 상상들이 머릿속에 가득 찼다.
침대 틈새로 누군가 바라보고 있다는 착각, 장롱을 손톱으로 긁는 누군가, 끔찍한 몰골로 살려 달라고 부르짖는 희생자들.
그리고 거대한 용의 얼굴.
용의 아가리가 기괴하게 벌려지면서 안에서 검은 화염이 쏟아졌다.
콰아아아아아아아아!
성진과 송하린이 고통에 인상을 썼을 때, 최별이 나타나 그 화염을 막았다.
“큭…….”
찬란한 붉은 불꽃은 검은 불꽃을 밀어내며 버텼다.
그리고 먹구름이 가득 꼈던 하늘까지 한순간에 태워 버렸다.
“하아…… 하아…….”
환상이 깨지자, 이곳이 아직 산의 정상이라는 게 자각되었다.
이민상이 고개를 끄덕였다.
“잘했습니다. 이번엔 이걸 전투 중에 해 보겠습니다.”
“……네?”
며칠이 더 흘렀다.
미로에서 줄곧 켜져 있던 초모의 방송이 종료된 후로 말들이 많았다.
심각한 버그가 발견되어서 데자뷰 측이 초모의 계정을 강제로 종료한 것이라는 소문.
심지어 소송까지 준비 중이라는 이상한 내용의 이야기가 오고 갈 무렵에도 성진 일행은 다가올 전투를 차근차근 준비해 나갔다.
“기는 근간입니다, 송하린 씨. 또한, 여러분도 알아두세요. 셋이 마주 보아야 합니다. 완전한 삼각형을 이루어야 신격이 형성되고 니드호그의 불길과 마법을 막을 수 있어요. 아니라면 그냥 여기서 저에게 죽는 게 낫습니다.”
“거, 이 양반 말씀이 지나치시네!”
“송하린 씨의 심상이 지나치게 흔들립니다. 중심을 잡아야 해요. 본인이 불안정해서는 축이 흔들리니 보조를 맡은 다른 둘도 흔들리는 겁니다. 각자가 맡은 역할을 충실히 하면 되는 거예요!”
“혼자 하는 것보다 셋이 하는 게 더 어려운 것 같습니다, 아무래도 이 송모가 축을 맡는 것보다…….”
“다시!”
“어림도 없구려!”
며칠이 흘렀다.
갱은 이제 며칠에 한 번씩 찾아왔다.
“형, 신성력을 맹신해선 안 돼요. 무한한 듯 보이지만 반드시 끝이 있습니다. 명심해야 해요. 함부로 쓰다가는 니드호그를 쓰러트리기 전에 형과 동료들이 먼저 쓰러질 거예요.”
“……알았어.”
“니드호그의 가죽은 두껍다 못해 영성을 지니고 있어요. 형의 힘을 사용하지 않으면 동료들은 벨 수도 없다는 거예요. 거기다 본인뿐만 아니라 동료들을 보호하며 싸워야 하니까 적재적소에 사용하는 게 필요해요.”
“이해했어.”
“3은 완성을 의미해요. 삼위일체가 되어야 하고 신성력이 그것을 붙여 주는 아교 역할을 하는 거예요.”
“호흡은…….”
“호흡은 니드호그에게 먹히지 않을 거예요. 형이 신격이라도 얻지 않는 이상. 거기다 동료들이 갑자기 빨라진 형의 움직임을 따라오지 못할 가능성도 있고요. 위험하니 이번 전투에서는 위험한 상황을 빼면 사용하지 않는 게 좋을 것 같아요.”
“그래.”
시간이 흘렀다.
날짜는 세지 않았지만, 바스카리에서 준비가 끝나간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
콰르릉!
쏴아아아아.
마침 맞게 하늘이 어두웠다.
소나기도 아닌 것이 산 정상을 하루 동안 적셨다.
그리고, 전투는 계속되었다.
캉!
카아앙!
이민상은 말을 아꼈다.
수다스럽던 그는 전투 동안 단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콰르릉!
푸른 번개가 된 이민상이 검을 휘두르자, 성진 일행 셋이 함께 막았다.
콰지지직.
땅이 움푹 파였지만, 막았다.
당연히 반격은 이어졌다.
송하린의 천마도가 시계 방향으로 회전하며 몰아쳤다.
캉!
캉!
카앙!
하지만 신격이 담긴 번개를 밀어낼 수는 없었다.
그 사이를 비집고 이민상은 일행을 흔들었다.
환각과 함께 하늘에서 벼락이 이어졌고 땅이 흔들리는 감각이 찾아왔다.
화르르륵!
최별의 불꽃이 그 환각을 태우고, 오염이 찾아온 심상도 천천히 원 상태로 돌아왔다.
콰르르릉!
파지지직!
파지지지지직!
서걱!
“그마안!”
이민상이 우뚝 멈춰 섰다.
그가 히죽 웃었다.
“3분…… 지났습니다.”
화신을 사용한 이민상과의 싸움에서 3분을 견뎠으니 훈련은 종료였다.
“부웨에엑…….”
이민상이 검은 핏덩이를 바닥에 토했다.
“민상아!”
“괘, 괜찮아요…….”
힘을 사용한 대가로 이민상은 정신을 잃었다.
그는 잠시 후, 침상에 누워 빗소리를 듣고 있었다.
그의 곁을 일행이 지켰다.
“나 얼마나…….”
“오래 안 됐어. 금방 깼어.”
“모두 다행이에요…….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생긴 것 같아서…….”
“…….”
“나 안 죽어요, 걱정하지 마요.”
“형이 너 꼭 데리고 돌아갈게.”
“…….”
이민상의 시선이 허공에 멈췄다.
“형…… 제가 진짜 후회하는 게 뭔지 알아요?”
“날 따라온 거?”
그는 고개를 살포시 저었다.
“날 기다린 거?”
이번에도 고개를 저었다.
그는 부끄럽다는 듯이 고백했다.
“의심한 거…… 형이 올 걸 믿지 않은 거…….”
“…….”
“날…… 날 데리고 돌아가 줄 텐데…… 그걸 의심한 거요…….”
“민상아, 형이랑 꼭 돌아가자. 다 같이.”
이민상은 갑자기 울기 시작했다.
그것도 점잖게 우는 것이 아니라 아이처럼 서럽게.
노인이 아이처럼 우는 모습은 너무 슬펐다.
“으아아아아아아아아앙.”
“…….”
“으허어어어어…… 으허어어어어어…….”
성진은 그가 꺽꺽대며 우는 것을 가만히 내버려 두었다.
어쩌면 이게 그의 본모습일지도 몰랐다.
“흐어어어…… 흐어어어어…….”
한참을 운 이민상이 말했다.
“이 세계를 조금 더 사랑할 걸…… 그랬으면 지금 상황이 조금은 달랐을까요?”
“글쎄.”
“내가 더 최선을 다했어야 했는데…….”
그에게도 후회는 있었다.
이렇게 강한 힘을 가지고도.
지키지 못한 것에 후회가 남았다.
“……다들 가까이 오세요.”
송하린과 최별이 성진의 옆으로 다닥다닥 앉았다.
침상에 누운 이민상이 손을 까딱하자 성진의 옷에 붙었던 활금강 버튼이 최별의 가슴팍으로 옮겨 갔다.
“…….”
“셋은 하나예요.”
이민상이 자신의 옷에서 버튼을 떼었다.
그리고 그것을 성진의 옷에 붙였다.
“이제…… 가짜 올빼미는 물러가고 진짜 올빼미가 무대에 올라갑니다, 여러분들…… 우레와 같은 박수로 맞이해 주세요.”
“민상아.”
“꼭…… 저 꼭 데려가 주셔야 해요?”
“응.”
“가요, 다들 기다릴 거야. 올빼미가 오기를. 나는 시간이 되면 찾아갈게요.”
활금강의 3인은 그렇게 산에서 내려갔다.
활금강의 3인이 바스카리에 도착했을 때, 수많은 사람이 앞에 나와 고개를 숙였다.
성진이 바스카리에 도착했을 때, 그는 비를 맞은 모습이었다.
그에게 갱이 다가와 말했다.
“준비가 끝났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