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67
167화
몰타는 검은 창을 들고 있었다.
그가 창대를 바닥에 내려치자, 주변이 검게 물들었다.
지지직.
성진이 당황하지 않고 신성력으로 그 기운을 밀어냈다.
후아앙!
다행히 효과가 있는지 밝은 기운이 검은 기운을 밀어냈다.
이곳이 어딘지는 나중에 가서 알아봐도 될 터였다.
지금은 우선, 몰타를 제압하는 것이 우선이었다.
동료들이 유적에 남아 모래 병사를 상대하고 있었으니까.
이선익이 메이스를 몰타에게 집어 던졌다.
부우웅!
쾅!
인상을 찡그린 몰타가 창대를 들어 메이스를 후려쳤다.
그 반동으로 창대가 바닥에서 떨어졌기에, 검은 기운은 성진의 기운에 눌려 꾸준히 뒤로 밀려났다.
‘아직은 상대가 가능해.’
하지만 이 말은 앞으로 상황이 심각해질 수도 있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다른 균열이 풀려나면 메이른을 포함하여 단 7명이 다른 몰타도 상대해야 했다.
아마, 다른 균열에 속박된 존재가 이만한 힘만 갖추고 있어도 그들로서는 제압하기 힘들 것이다.
지금 추격을 하는 3명도 겨우 추려 낸 인원이었으니까.
다른 이들의 생각도 같았는지 그들은 별다른 상의 없이 곧장 몰타에게 달려들었다.
몰타의 창이 번뜩였다.
파즈즈.
검은 번개와 함께 방원형으로 엄청난 기운이 뿜어 나왔다.
막으면, 반격할 수 없을 만한 힘이었다.
“우아아!”
이선익의 고함을 듣고 성진은 재빨리 그의 뒤로 숨었다.
송하린도 마찬가지.
성진은 이선익이 몸을 떠는 것이 느껴졌다.
그가 번인이든 아니든, 고통을 느끼는 것은 분명했다.
하지만 그는 절대 물러나지 않았다.
“아!”
가!
성진과 송하린은 이선익이 홀로 힘을 버틴 것을 기회로 그의 뒤에서 공격할 기회를 잡았다.
몰타도 이 한수로 주도권을 잡을 생각이었는지 그것이 실패하자 당황한 눈치였다.
전투는 흐름이었다.
아무리 상대가 기상천외한 힘을 부리고 강력하다 할지라도 다수라는 이점을 이용해 그 흐름을 가져올 수 있었다.
송하린의 눈빛이 번뜩였다.
성진은 그녀와 손발을 오래 맞췄기 때문에, 그녀가 곧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고 있었다.
그녀는 이런 상황에서 보통, 공격 기회를 양보했다.
그만큼 성진을 믿는 것이었다.
“하아아앗!”
천마도가 강맹한 기운을 뿌려 대며 수직으로 떨어졌다.
움찔한 몰타는 서둘러 검은 창으로 그 참격을 막았다.
송하린은 상대가 막을 거라는 것을 알면서도 변수를 두지 않았다.
오로지 힘을 퍼부어 상대를 무력화시키겠다는 의지가 보였다.
카아아앙!
끼긱, 끼기긱.
검은 창대가 휘어졌다.
몰타가 입을 오므려 힘을 응축했다.
그리고 뱉어 내자, 모래와 섞인 검은 기운이 탄환처럼 변해 그녀의 얼굴을 노렸다.
이 모든 게 순식간에 일어났지만, 송하린은 늦지 않게 반응할 수 있었다.
도를 뿌리치고 고개를 젖히기만 하면 되는 일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흔들림 없이 몰타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녀는 승부에 자신이 있었고, 그녀의 패는 항상 무적이었다.
뭔가 이상하다는 것을 느낀 몰타가 서둘러 내빼려 했다.
하지만, 성진이 더 빨랐다.
송하린의 뒤에서 등장한 성진이 신성력을 응축시켜 둔 왼손으로 검은 탄환을 막고 오른손의 검을 역수로 쥐어 몰타에게 찔렀다.
“검! ……이 검은!”
푸슉!
소름 끼치는 파육음과 함께 성진이 미소 지었다.
그의 검이 몰타의 가슴을 꿰뚫었고 그 바람에 기운이 흩어진 몰타가 송하린의 도에 창과 함께 반으로 쪼개졌다.
“큭…….”
송하린과 성진의 힘 때문에 불타던 몰타는 검은 액체가 되어 바닥에 떨어졌다.
그런데, 그것이 끝이 아니었다.
“균열!”
또 하나의 균열이 만들어지더니, 그 액체가 막을 새도 없이 그곳으로 빨려 들어갔다.
셋은 지체하지 않고 당장 균열로 뛰어들었다.
그들이 들어선 곳은 아까 전, 싸움이 처음 시작된 유적이었다.
“제길!”
“어?”
파아아앙!
심대형의 회오리가 다리 위의 병사들을 휩쓸었다.
그가 소리쳤다.
“검은 액체가 다른 균열로 들어갔어요!”
메이른이 안색을 더 심각하게 굳혔다.
“오…… 안 돼!”
파지직!
유적 전체가 진동했다.
두 번째 균열이 흔들리더니 그곳에서 몰타가 등장했다.
몰타는 처음의 몰타보다 두 배는 거대했다.
그는 양손에 각기 다른 검을 쥐고 있었는데, 기이한 기운을 내뿜고 있었다.
그가 말했다.
“몰타는, 하나다.”
심대형이 메이른에게 물었다.
“이봐요, 균열을 닫을 순 없는 겁니까?”
메이른은 심각한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제가 모든 힘을 되찾았다면 모르겠지만, 지금은 그럴 수 없어요!”
“그럼 다른 방법이 없습니까? 아까보다 더 강해진 것 같은데요?”
“……새로운 균열을 만들지 못하도록 해 볼게요.”
그 말에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만 된다면 상대가 얼마나 강하던, 여섯이 함께 싸울 수 있었으니까.
메이른의 눈에서 귀기가 엄습했다.
그 모습을 본 몰타가 한쪽 검을 날렸다.
쒜엑.
콰아앙!
그 검은 당연히, 이선익의 방패에 부딪혀 그의 손으로 되돌아갔다.
몰타가 고개를 갸웃했다.
“다른 세계인가?”
“뭐?”
메이른이 갑자기 소리쳤다.
“됐어요! 당분간은 다른 곳으로 달아날 수 없어요! 몰타를 쓰러트리고 남은 균열을 봉인하면 될 거예요!”
몰타는 메이른의 외침에도 별다른 동요가 없었다.
마치, 그런 힘 따위 없어도 여기 모인 사람들을 뭉개는 것쯤이야 어렵지 않다는 것처럼 행동했다.
그리고 손에 검은 기운을 쥔 후 허공으로 떠올랐다.
“저게 무슨…….”
콰르릉.
유적이 굉음을 내며 시시각각 변모했다.
토사와 바위로 이루어졌던 건축물은 그 경계가 흐릿해지며 별들이 반짝이기 시작했다.
어느덧 사위를 장악한 그 기운은, 그들이 딛고 선 곳을 우주처럼 보이게 했다.
‘이건…….’
검은 힘은 유적을 우주처럼 보이게 할 뿐만 아니라 다른 작용도 하는 것 같았다.
그 우주를 빤히 들여다보니 스칸다의 곳곳이 보였다.
스칸다가 불타고 있었다.
유적 안에 있는 이들은 마치 하늘에서 내려다보듯이 스칸다의 주민들이 보였다.
“이, 이건!”
베어가 소스라치게 놀랐다.
성진도 그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이 유적에서의 싸움으로, 스칸다가 불타고 있었다.
다리 밑의 병사들을 포함하여 이 유적의 모래 병사들이 균열을 통해 자꾸만 어딘가로 빠져나간다 했는데, 그것이 스칸다 전역인 것 같았다.
이 싸움에서 진다면, 스칸다가 어떤 상황에 놓일지는 불 보듯 뻔했다.
베어가 입가를 비틀었다.
“이거…… 지면 안 되잖아?”
소름 끼치는 사실을 가장 먼저 발견한 것은 송하린이었다.
“허억…….”
“…….”
“눈! 눈이…… 눈이 마주쳤어!”
그녀의 말대로였다.
성진도 스칸다를 내려다보는데, 그곳에 있는 소녀와 눈이 마주쳤다.
이뿐만 아니라, 다른 장소에 있는 중년의 남자와도 눈이 마주쳤다.
그리고 곧 전염이라도 된 듯 스칸다의 사람들이 자신들을 보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어째서?’
몰타가 힘을 뻗친 건 유적뿐만이 아니었다.
유적이 신비한 공간으로 변모했듯, 스칸다의 하늘도 변했다.
그 하늘은 지금 두 자루의 검을 들고 서 있는 몰타를 비췄다.
그가 말했다.
“모든 것은…… 내 것이다.”
몰타가 움직였다.
팟!
이선익이 가장 먼저 반응했다.
몰타의 검을 방패로 한 번 흘렸다.
콰광!
쾅!
콰과광!
몰타의 무차별적인 공격에 이선익이 휘청했다.
성진과 송하린이 재빨리 나서서 이선익을 도왔다.
이선익의 황금빛 메이스가 몰타의 검을 쳐 내도, 칼날은 순식간에 되돌아왔고 그는 그것을 받아칠 수 없었다.
하지만 옆에서 불쑥 송하린의 천마도가 튀어나와 그 검을 다시 돌려보냈다.
반대쪽 검은 성진이 거들어 막았다.
셋이 안간힘을 써야 간신히 몰타의 공세를 저지할 수 있었다.
성진은 좀 전에 하늘의 호흡을 사용한 탓에 잠시 기운이 쇠한 상태였다.
몸 상태를 회복한다면 틈을 봐서 몰타에게 일격을 가할 수도 있겠지만, 지금은 피해 없이 공격을 막아 내는 게 중요했다.
뒤에서 소리가 들려왔다.
“뭐, 뭐 하는 겁니까!”
베어의 소리.
“제가 이 다리를 막겠습니다. 여러분들은 몰타를 막으십시오.”
뒤에서 어마어마한 신성력의 파동이 느껴지는 게 물의 추기경이 무언가 수를 낸 것 같았다.
하지만, 줄곧 버거워하던 사람이 이렇게 갑자기 강력한 힘을 뿜을 순 없었다.
베어가 억눌린 음성으로 말했다.
“죽겠다는 겁니까?”
“살 순 있습니까?”
“…….”
뒤돌아선 베어는 물에게 한마디 했다.
“그럼 저도 여기서 죽겠군요. 알겠습니다. 대비하겠습니다.”
“베어.”
“모험가에겐 늘 한 수 정도는 있는 법이죠. 그 수를 꺼내는 날이 오늘이 아니기를 바랄 뿐이지만.”
베어가 뭔가 결심을 한 듯, 앞으로 나섰다.
심대형도 그를 보조하기 위해 앞으로 왔다.
둘이 가세하자, 몰타가 잠시 물러났다.
하지만, 그것을 두고만 보고 있을 수 없었다.
또다시 무슨 수를 쓸 것이 분명했기에.
성진이 재빨리 그에게 따라붙자, 다른 이들도 몰타에게 돌진했다.
카아앙!
성진의 검격이 손쉽게 막혔다.
퍽!
송하린은 몰타의 공격에 얻어맞아 어딘가로 나가떨어지고, 그녀의 빈자리만큼 일행은 공세에 취약해졌다.
베어가 그녀의 자리를 재빨리 메웠다.
카앙!
캉!
“큿!”
베어는 전투를 전문으로 하는 모험가가 아니었다.
그에 반해 송하린은 모험가 중 전투의 최고봉이었고.
파아아앙!
파아앙!
심대형이 공격 지원과 더불어 베어를 위한 보조 마법을 발동하자 조금 편해지긴 했지만, 여전히 상대에게 유의미한 타격을 줄 순 없었다.
이대로 상황이 계속된다면 오히려 먼저 무너지는 건 성진 일행일 것이다.
상대는 그들이 힘을 합쳐야 겨우 상대하는 것이 가능했으니까.
거기다 무리하고 있는 물의 추기경이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지도 알 수 없었다.
‘근데…….’
전투의 작은 변화도 놓치지 않는 성진이 몰타의 공격을 분쇄하며 다른 곳에 눈길을 주었다.
이선익의 몸에 계속해서 황금빛이 더해졌다.
이게 무슨 조화인지 알 수 없었지만, 그럴수록 몰타를 상대하기 수월해졌으니 나쁘진 않았다.
하지만, 불안하긴 했다.
‘혹시…….’
번인인 좋은 친구들이 이대로 갑자기 사라지는 것은 아닌지, 금빛으로 빛나는 것이 그것의 징조는 아닌지.
하지만, 대비할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저 매 순간 최선을 다할 수밖에 없었다.
성진은 이번 기회가 어쩌면 마지막일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첫 번째 몰타는 불가사의한 힘으로 성진 일행을 상대했었다.
한데, 두 번째 몰타는 그 힘을 사용하지 않고 있었다.
틈을 보이면, 또 막강한 기운을 뿜어낼 것이고 그것이 일행을 곤란하게 할 거라는 걸 눈치챘다.
카아앙!
성진의 거친 검격이 신호였다.
그는 일부러 몰타를 한쪽으로 밀어붙였다.
그것을 눈치챈 몰타가 반격하려 했지만, 일행이 그 흐름에 올라탄 것이 먼저였다.
자연스럽게 몰타가 구석으로 밀려났다.
성진은 우선 몰타를 남은 균열에서 떨어트려 놓을 생각이었다.
아까 첫 번째 몰타가 두 번째 몰타에게 어떤 영향을 준 것과 같은 상황이 두 번 다시 일어나서는 안 됐다.
팍!
베어의 검이 애꿎은 벽면을 찍었다.
다행히, 성진이 야차의 호흡을 운용해 거친 공격으로 빈틈을 상쇄했다.
이런 식으로 성진도 원하는 타이밍에 호흡을 운용할 수 없다 보니 상대에게 결정적인 타격은 가할 수 없었다.
절망의 시계가 째깍거렸다.
물러나 시간을 벌면 어떨까, 혹은 사실 검격 말고 다른 능력은 없는 게 아닐까, 균열을 넘나드는 능력은 첫 번째 몰타에게만 있던 것은 아닐까.
성진은 오만가지 생각이 다 들었다.
어떤 선택이든 리스크를 짊어져야 했다.
물러나서 강한 공격을 준비하면, 몰타가 균열을 통해 도망칠 수도 있었고 반대로 그들보다 더 위력적인 공격을 가할 수 있었다.
카강!
카앙!
그렇다고 이대로 밀어붙이기엔 상대의 틈이 없었다.
상대는 초월적인 존재였고 다섯이서 상대하는데도 몰타가 오히려 섬뜩한 반격을 해 올 때면 심장이 저릿했다.
‘어떻게 해야…….’
몰타의 뒤편으로 그가 만들어 낸 환영이 보였다.
스칸다의 주민들이 옹기종기 모여 간절히 기도하고 있었다.
마치 유적의 혈투에서 그들이 승리하기를 염원하는 것처럼.
아마, 전투 중인 모든 일행이 보았을 것이다.
성진이 다시 여유를 찾고 호흡을 운용하려 틈을 살폈다.
이번 공격에서 어떤 결실이든 얻을 생각이었다.
하지만, 성진은 곧 목 뒤가 싸늘해졌다.
줄곧 검을 나누던 몰타가 움찔하는 모습에 뭔가 문제가 생겼다고 판단했다.
‘왜지? 왜…….’
아니나 다를까, 균열을 통해 누군가 넘어오려 했다.
아마, 세 번째 몰타일 것이다.
한 명도 감당하기 힘든데 둘이 나서면 그대로 끝이었다.
“미안…… 더는…….”
메이른의 떨리는 목소리가 들렸다.
모든 게 끝났다.
종말의 초침은 12시를 가리키려 했다.
‘아직!’
아직 상대가 균열을 넘어오기 전, 마지막 기회가 남았다고 생각한 성진은 재빨리 호흡을 끌어 올렸다.
그런데, 성진도 예상 못 한 일이 일어났다.
“으아아아아아!”
누군가 본인의 안위는 전혀 생각지 않은 움직임을 보였다.
베어가 전열에서 돌출되어 먼저 몰타에게 달려들었다.
그도 상황이 심상치 않으니 과하게 손을 쓰다 무리를 한 것 같았다.
“아애!”
안 돼!
이선익이 소리침과 동시에 몰타의 검이 베어의 복부를 관통했다.
푸슉!
어찌나 깊이 들어간 건지, 몰타의 팔이 아예 그의 품에 파묻혔다.
그런데, 성진은 이 상황이 사고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베어가 양팔로 몰타를 끌어안았다.
몰타가 귀찮은 것을 떠안은 양, 팔을 휘둘러 베어를 날려버리려 했다.
하지만, 베어가 혓바닥을 내밀자 몰타의 안색이 급변했다.
그의 혓바닥에는 기괴한 문양이 그려져 있었다.
“……히히.”
몰타가 다른 팔로 검을 휘둘러 그의 머리를 날려 버리는 것과 동시에 베어의 몸이 폭발했다.
콰아아아아아아아아앙!
파지지지지직!
불길한 검은 번개가 휘몰아쳐 몰타의 몸을 잡아먹었다.
황급히 물러난 몰타는 한쪽 팔을 잃긴 했지만, 아직 숨이 붙어 있었다.
그가 재빨리 눈을 부릅떠 이어질 공격을 방비하려 했다.
하지만, 성진 일행도 베어가 만들어 준 기회를 놓칠 수 없었다.
심대형의 보조 마법이 작용하자 잠시 움직임이 폭발적으로 빨라진 이선익은 방패를 안에서 밖으로 후려쳐 몰타의 한쪽 팔을 봉쇄했다.
물론, 이 행동은 이전까지는 위험한 행동이었지만 지금은 달랐다.
지금 몰타는, 수비를 굳건히 할 한쪽 팔이 없었으니까.
성진이 용의 호흡으로 주위를 연기로 가리고 달려들었다.
몰타는 자신의 움직임이 상대에게 지배당하는 감각을 느끼고 서둘러 새로운 팔이 돋아나게 했다.
우지직!
순식간에 돋아난 팔이 연기를 뚫고 나타난 성진의 검을 막았다.
서걱!
팔을 대신해서 내주며 몰타가 신음했다.
그의 팔이 검은 안개로 변해 잠시 막아 줄 것이다.
그런데, 검은 여인이 보이지 않았다.
몰타는 황급히 그녀를 찾았다.
그때, 기우뚱하는 감각과 함께 시야가 기울었다.
송하린이 어느새 연무를 뚫고 몰타의 다리를 벤 것이다.
“형님!”
성진이 정광이 가득한 눈으로 검은 안개 너머의 몰타를 보았다.
서걱!
몰타는 그 눈을 바라보며 다시 한 번 시야가 기울어지는 감각을 느꼈다.
그의 머리가 몸에서 떨어져 바닥을 굴렀다.
콰지익!
이선익이 그 머리를 밟아 터트린 것과 세 번째 균열에서 또 다른 몰타가 출현한 것은 거의 동시였다.
“하아…… 하아…….”
“헉…… 허억…….”
베어가 자신을 희생하여 만들어 준 기회를 성진 일행은 놓치지 않았다.
“조심해요!”
콰아아앙!
메이른의 목소리가 들리자마자 몸을 피했기에 다친 사람은 없었다.
메이른이 일행에게 다가와 말했다.
“3대 몰타예요. 가장 강대했던 자…….”
“방금 우리가 쓰러트린 자는?”
“그자는 2대예요. 강하긴 하지만, 3대 몰타에는 비할 수 없어요. 저자는 몰타의 황금기를 이끈 자이고 다른 세계의 침공을 시작한 원흉이에요!”
3대 몰타는 고개를 갸웃하다가 손에 검은 지팡이를 만들어냈다.
파지직.
한눈에 보기에도 위험해 보이는 검은 지팡이를 쥔 몰타는 1대, 그리고 2대와는 달리 대화를 하고 싶어 했다.
그는 액체가 된 2대의 시체에서 뭔가를 만지작거리고는 말했다.
“그렇군, 세계가 닫혔다니…….”
성진이 메이른에게 눈짓했다.
저 말이 무슨 소리냐고 눈으로 묻자 메이른도 고개를 저었다.
“아마도 자신이 침공했던 세계들이 닫혔다고 하는 것 같아요. 처음의 균열을 넘었을 때 몇 개의 세계를 가셨는지 기억하시나요?”
종말 이후의 세계, 그리고 어딘지는 모르겠으나 현실과 흡사했던 곳, 그리고 다시 스칸다였다.
“스칸다를 제외하고는 두 곳 정도를 들렀습니다.”
“그런…… 어떻게 그럴 수가…….”
“왜 그러시는 겁니까?”
“원래의 세계는…… 커헉!”
“메이른?”
메이른이 갑자기 발작을 일으켰다.
남자인지 여자인지 알 수 없던 메이른은 갑자기 액체로 변해 몰타에게 날아갔다.
몰타는 그것을 한입에 삼켰다.
“…….”
“이런, 메이른도 모르는 일이었군.”
이선익이 고함을 질렀다.
메이른까지 정체 모를 힘에 순식간에 당했으니, 이대로 가만히 있다간 죽도 밥도 안 되었다.
그의 판단이 옳다고 생각했는지 다른 일행도 전투를 위해 달려들었다.
‘저자만 쓰러트린다면…….’
하지만 동시에 불안했다.
상대가 어떤 힘을 사용하는지도 몰랐고, 메이른이 얘기하기를 방금 힘들게 처치한 2대보다 훨씬 강한 자라고 했으니.
콰아앙!
검은빛이 번쩍하더니 이선익이 뒤로 날아갔다.
“선익아!”
이선익의 다른 능력이 발동했는지, 그는 다시 돌아와 전열에 합류했다.
성진은 신성력을 이용해 검은 기운과 맞섰지만, 쉽지 않았다.
카앙!
검은 구체를 검으로 튕겨 냈는데도 손이 얼얼했다.
3대 몰타는 검은 구체를 총 3개씩 다룰 수 있었다.
통통 튀는 이 물체는 상대하기가 까다로워 그들의 접근을 허용하지 않았다.
콰앙!
“큭…….”
퍼엉!
“부웁…….”
구체에 정통으로 얻어맞은 송하린이 뒤로 날아갔다.
심대형이 황급히 그녀를 보조해 멈추지 않았다면 다리 밑으로 떨어져 모래 병사에게 갈가리 찢겼으리라.
성진은 기묘한 감정이 들었다.
“으아아아아!”
콰앙!
“막…….”
퍼억!
“도, 도저히…….”
쿠우웅.
몰타의 검은 공 중 하나가 변이를 일으켰다.
날카로운 창이 된 그 공은 이선익의 갑옷을 꿰뚫었다.
“푸훕…….”
성진이 재빨리 다가가 상처를 치유했다.
검은 기운은 치료하던 성진까지 노리고 달려들었지만 성진이 재빨리 검으로 베었다.
서걱!
“음!”
몰타가 신음했다.
검은 공은 몰타의 본체와도 관련이 있는 듯, 그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다행히 시간을 벌었기 때문에 이선익을 구할 수 있었지만, 그의 안색은 좋지 못했다.
고된 전투에 지쳐 쓰러지고 싶을 것이다.
몰타가 말을 걸었다.
“그 검, 그녀로군.”
“뭐?”
“상관없다.”
검은 공 3개가 나란히 그의 손으로 돌아갔다.
성진의 검을 경계한 것인지, 공 3개가 억지로 합쳐지며 공간이 비명을 질렀다.
기이이이이이잉!
저 안에 담긴 기운이면 이곳의 모두를 죽이는 데는 충분할 것이다.
다리를 등지고 선 5명은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균열 몇 개가 닫혔지만, 여전히 모래 병사들이 어딘가로 향했다.
이제, 저 기운이 일행을 산산 조각내고 상황이 끝날 것이다.
다행인 점은 발동에 시간이 걸리는 것인지 힘을 모으기만 하고 쏘아 내지를 않았다.
‘어?’
성진의 뇌리에 누군가의 소리가 닿았다.
그는 재빨리 일어서기도 버거워하는 일행에게 이 소식을 알렸다.
심대형이 소리쳤다.
“어떻게! 어떻게 하려는 겁니까!”
“모르겠습니다…….”
성진 일행이 최상의 컨디션이었다면, 3대 몰타와 싸워 볼 만했겠지만, 연이은 전투로 동료를 잃고 힘도 다해 상황이 절망적이었다.
상의는 그 찰나에 끝났고, 어떻게 할지는 정해지지 않았다.
이선익이 뭔가를 성진에게 건넸다.
활금강의 버튼이었다.
이것을 왜 자신에게 주는지, 다른 생각이 있는 건지는 알 수 없었다.
이선익은 투구를 내려쓰고 일행의 앞에 섰다.
그 순간, 검은 불길이 토해졌다.
성진과 물의 추기경이 최대한으로 방벽을 둘렀지만 방벽은 순식간에 깨졌다.
막을 수 없는 힘이었다.
초월적인 존재의 힘에 모두 사라질 것 같았다.
그런데, 그렇지 않았다.
콰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방벽은 모두 깨졌지만, 이선익의 황금 방패는 어째서인지 깨지지 않고 있었다.
살갗에 닿는 이는 금세 재로 만들 만한 불꽃이 방패 너머로 넘실거렸다.
이선익의 몸이 금빛으로 빛났다.
지직.
-가!
-힘내!
-가라고! 가!!!!
-제발!!! 제발!! 제발!!!!
-가아아아아아ㅏㅏㅏ!!
-밀어!!!
끊어졌던 연결이 무슨 이유에선지 돌아왔다.
채팅은 형체를 알아보지도 못할 만큼 새까맣게 올라왔다.
성진과 송하린은 몸을 일으켜 이선익의 뒤에 섰다.
어쨌든, 이선익이 무너지면 모든 게 끝났다.
이선익은 지금 불길을 버티고 있었지만,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지는 알 수 없었다.
금방 쓰러질 것처럼 위태위태했지만, 계속 그의 몸에서 기이한 힘이 솟아났다.
-선익아, 가!
머리에 이상한 울림이 들렸다.
마치 물속에 있는 자신에게 물 밖에 있는 사람이 말을 거는 것 같았다.
-이 새끼들아! 가라고!
-가! 가!
이선익뿐만 아니라 심대형도 그 소리를 들었다.
이선익의 고개가 살짝 오른쪽으로 기울었다.
심대형이 그 소리를 들었는지 확인하려는 눈치였다.
심대형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친구들이었다.
어떻게 들리는지는 알 수 없지만, 아니 어쩌면 그들이 잠든 캡슐을 두드리며 소리치고 있는지도 몰랐다.
지직.
지지직.
발이 질질 끌리는 소리가 들렸다.
이선익의 뒤에 있는 발이 서서히 움직였다.
검은 불꽃이 그를 막아 세우는데도 그의 발이 천천히, 앞을 향했다.
쿵.
한 발.
지지직.
휘청거리던 그의 몸이 다시 황금빛으로 빛났다.
채팅이 순식간에 치솟더니 결국에는 다시 끊겼다.
그럼에도 그는 멈추지 않았다.
쿵.
두 발짝.
이선익은 계속해서 친구들의 소리가 들렸다.
-가! 제발!
-선익아, 꼭 돌아와.
-얼른 와, 이 새끼야!
그의 찌그러진 투구의 두 눈에서 황금빛 광채가 뿜어 나왔다.
방패는 더욱 거대해졌고 망토가 계속해서 펄럭였다.
성진은 재빨리 그를 치유하기 위해 손을 뻗었으나, 다시 내렸다.
그의 이상한 행동에 송하린이 칼을 쥐면서 의문을 품었다.
성진은 그를 치유하기 위해 접근했을 때, 알 수 있었다.
그는 이미 죽었다.
이상하게도 아웃되어 사라져야 하는 육체가 계속해서 황금빛으로 전진했다.
심대형이 소리쳤다.
“선익아! 가자! 가자고!”
심대형의 갑옷에서 소리가 퍼져 나왔다.
“으아아아아아아!”
쿵.
세 발짝.
쿵, 쿵. 쿵!
이다음은 세지 않았다.
3대 몰타가 당황하며 말했다.
“무슨…….”
이선익은 황금빛으로 변해 검은 불길을 이겨 내고 마침내 몰타에게 접근할 수 있었다.
몰타는 재빨리 검은 불꽃을 포기하고 힘을 해제해 검은 공으로 성진 일행과 맞섰다.
쾅!
검은 공이 너무도 손쉽게 이선익을 후려쳤다.
이상한 일이었다.
갑옷의 각 부위가 사방으로 날아갔다.
콰광.
갑옷 안은 텅 비어 있었다.
몰타는 재빨리 다른 공으로 맞섰다.
공은 셋이었으니, 충분했다.
이선익의 뒤에 꼭 붙어 오던 누군가가 몰타에게 덤벼들었다.
움직임이 어설펐고, 노리기 쉬웠기에 재빨리 공으로 가슴을 꿰뚫었다.
“으아아아!”
가슴을 꿰뚫린 심대형의 몸이 입자가 되어 흩어지려 했다.
하지만 그는 침착하게 지팡이를 움켜쥐었다.
파직!
지팡이의 끝에 달린 수정에 금이 가더니 엄청난 마력의 폭풍이 몰아쳤다.
“하하…… 하…….”
심대형은 웃으며 그 폭풍을 함께 맞이했다.
콰아아아아아아아아!
입자가 되어 흩어지는 심대형의 시체를 뒤로하고 성진과 송하린이 달려들었다.
몰타는 비록 마력의 폭풍에 휩쓸리긴 했지만, 아직 여력이 있었다.
이번만 잘 넘기면 다음은 그의 시간이었다.
그는 초월자였고 스칸다는 다시금 그의 손에 쥐어질 것이다.
검은 공이 날아갔다.
심대형의 마력의 폭풍 때문에 하나밖에 남지 않았지만, 이것이면 충분했다.
콰아아앙!
양팔을 겨우 들어 올린 송하린이 검은 공과 함께 나가떨어졌다.
그녀도 이렇게 되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성진에게 시간을 벌어 주어야 했다.
성진의 몸에서 새하얀 광채가 뿜어 나왔다.
지금 그의 시야에는 지팡이로 검에 대응하려는 몰타의 얼굴이 비쳤고, 자신의 승리를 염원하는 스칸다 주민들의 얼굴도 비쳤다.
그리고, 메이른의 얼굴이 비쳤다.
메이른은 몰타의 몸에서 불쑥 솟아올라 그의 몸을 부여잡고 소리쳤다.
“함께 가자! 몰타여!”
“이익…… 놔라! 놔!”
메이른의 입에서 송곳니가 크게 돋아나 몰타의 목을 물었다.
“크아아악!”
성진의 검이 수직으로 떨어졌다.
그의 검을 돕는 것은 있어도 막는 것은 없었다.
콰지지지직!
몰타의 몸에 실선이 그어졌다.
콰아아아아앙!
몰타의 몸에서 이상한 폭발이 일어났다.
콰아아앙!
콰아아아아앙!
유적이 부서지기 시작했다.
별들이 가득했던 공간은 무너지고 다시 모래의 유적이 되었다.
스르륵.
모래 병사들이 차근차근 허물어졌다.
그들을 지탱하던 몰타의 마력이 없어졌기 때문인 것인지.
그리고 성진과 송하린은 결국 힘을 다해 쓰러졌다.
한 발자국도 더 떼지 못할 것 같았다.
그들의 근처로 누군가 다가왔다.
물의 추기경이었다.
그는 가쁜 숨을 몰아쉬며 말했다.
“꽃이여, 당신은 이곳에서 쓰러지면 안 됩니다.”
물의 추기경이 결연한 표정을 짓고 양손을 모았다.
콰아아아아아아아!
거대한 수룡이 해일을 일으켰다.
수룡은 모래와 바위를 부수며 성진과 송하린을 사막으로 되돌려 놓았다.
그리고 잠시나마 개방되었던 천장은 금세 부서진 잔해로 틀어 막혔다.
물의 추기경이 나직이 말했다.
“나오시지요, 몰타여.”
그의 말에 반응이라도 하는 듯 동그란 구체 형태의 검은 원혼이 유적에서 물의 추기경에게 다가왔다.
“너의 몸을 빼앗아 다시금 서리라!”
물의 추기경은 희미한 비웃음을 흘리고 오히려 그 원혼을 받아들였다.
몰타는 이것이 함정이라는 것을 깨닫고 다시 뛰쳐나가려 했지만, 소용없었다.
물의 추기경이 몇 번의 수결을 맺자, 그의 몸이 붕괴하기 시작했다.
그의 몸에 깃든 몰타의 원혼이 비명을 질렀다.
“크아아아악!”
물의 추기경은 틀어 막힌 천장을 보며 양손을 다시 모았다.
짝!
“바스카리여, 감사했습니다. 저는 이곳에서 여정을 마치겠습니다.”
콰직!
콰지직!
유적의 붕괴는 계속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