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60
160화
왕이나는 우선 성진과의 연결을 확인하고 자신과 함께 있는 좋은 친구들에게 물었다.
“시초의 유적은 보시다시피 문을 굳게 닫고 있네요. 어떻게 된 일이죠?”
“언니, 그보다 문 자체가 안 보여요.”
“그러게?”
-사랑은 열린 문~~
-왜 문이 닫혀 있으까잉.
-사실 시초의 유적 이런 건 처음부터 없었던 것 아닐까?
김상혁이 말했다.
“이곳에 모래가 있었다.”
최혜연이 말을 이었다.
“모래는 사막이 되었다.”
마지막으로 정재민이 마무리했다.
“그리고, 사막은 제국이 되었다.”
-우웩. 단체 중2병 발병이다!
-서둘러 팔을 절단해야 해!
-흑염룡이 튀어나온다!
음탕은 싱긋 웃으며 물었다.
“이게 무슨 말이에요?”
“시초의 유적을 여는 문구예요. 초모님, 따라 해 보시겠어요?”
잠시 3~5초 정도의 지연이 있었다.
사람들은 마치 특파원을 보는 것처럼 상대가 원하는 행동을 해 주길 바랐다.
건너편의 성진이 고개를 끄덕이고 말했다.
“이곳에 모래가 있었다, 모래는 사막이 되었다. 그리고, 사막은 제국이 되었다…….”
-아무 반응 없는데?
-수고하셨습니다, 시초의 유적 편은 여기서 끝마칩니다!
-방송 사고 오졌다. ㅋㅋㅋ
음탕과 왕이나가 당황해 황급히 사람들을 돌아보는데, 다른 사람들은 태연하게 그 시선을 받았다.
-어! 저거!
-뭐야? 무슨 일이 일어나는 거야!
-으아아아아! 미안해요!
드드드드.
쿵!
쿵!
그으으으응.
모래에 파묻혀 있던 신전의 입구가 드러났다.
물론, 아래로 향하는 문은 아직 굳게 닫혀 있었지만, 구조물이 드러났다는 것만으로도 사람들은 환호했다.
-오오오오오!
-시초의 유적!
-와, 샌즈!
김상혁이 시초의 유적을 뚫어지게 쳐다보다가 성진에게 전했다.
“유적 가까이 다가가면 잠시 후에 화로에 불이 켜질 거예요.”
성진이 시초의 유적에 다가갔다.
과연, 그 앞에 서니 거대한 화로에 불이 켜졌다.
“피를 뿌려야 합니다.”
성진은 김상혁의 말에 손바닥을 살포시 긋고 화로에 피를 흩뿌렸다.
콱!
그긍.
그그그그긍.
드드드드.
문이 삐걱거리면서 열렸다.
그 뒤로는 아래로 향하는 계단이 빼곡히 드러났다.
김상혁과 다른 좋은 친구들의 표정이 기묘했다.
그들은 마치 과거의 두려움과 마주한 것처럼 식은땀을 흘렸다.
“괜찮으신가요?”
“아, 네…….”
정재민은 성진에게 황급히 말했다.
“시, 시초의 유적은 한번 들어가면 끝이에요. 잘 생각하셔야 해요. 쉴 수는 있지만, 잠들 수는 없을 거예요. 유적의 크기도 무척 커요.”
잠시 뒤, 성진은 알아들었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고 사람들을 이끌었다.
“들어가죠.”
뚜벅.
콰아아앙!
그들이 조심스럽게 발걸음을 옮긴 유적의 입구는 소란스럽게 닫힌 후, 다시 모래에 파묻혔다.
***
성진이 시초의 유적에 진입하자마자 그리울 지경이었던 시나리오가 떠올랐다.
===========================
chapter 6-11. 시초의 유적.
-스칸다의 종말이 가속화되고 있습니다. 바스카리에서의 지위를 공고히 하려면 협회 측의 부탁을 당신이 해결해야 합니다. 시초의 유적을 탐험하고 그곳에 만들어진 균열을 닫는 일. 시초의 유적은 강대했던 모험가들도 돌파하지 못한 곳입니다. 하지만, 당신이 이곳을 돌파할 것이라 믿는 사람들이 너무도 많습니다. 그들의 믿음에 보답하고 시초의 유적을 돌파해 균열을 닫아야 합니다. 또한, 바스카리의 진정한 지도자가 되어야 합니다.
-이 임무는 메인 시나리오입니다.
-에어리어를 개방하기 위해서 누군가는 해내야 하는 임무입니다.
===========================
-시나리오가 이제야 오다니. ㅠㅠ
-언제가 마지막이었지?
-유리온 때가 마지막이었던 듯.
-길다 길어~
시초의 유적에 진입하자, 음성 연결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
애초에 반응 지연율도 심각했기에 왕이나와 성진은 음성 연결을 해제하고 커뮤니티 채팅으로 넘어갔다.
삐익.
「시초의 유적에 진입하면 가장 먼저 모래가 따라붙을 거예요.」
“모래?”
사아아악.
베어가 조용히 말했다.
“저게 뭐지?”
“형님, 웬 모래 더미가 슬그머니 다가오는 것 같습니다?”
「저희 때는 신성력을 크게 떨치니까 겁을 먹고 거리를 유지하더라고요. 같은 방법을 써 보시죠.」
성진이 좋은 친구들의 말대로 신성력을 힘차게 떨쳤다.
후아앙.
“으악! 뭐, 뭐지?”
일행 중 유일하게 베어만 놀랐다.
나머지 일행은 고개를 끄덕이고 주위를 경계했다.
베어가 고개를 돌려 다가오던 모래를 쳐다보았다.
모래는 머뭇거리며 접근하지 않고 있었다.
“저, 저게 뭡니까?”
“살아 있는 모래라고 합니다. 아직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아무래도 우리를 잡아먹을 생각인가 봅니다.”
성진이 대꾸하자, 베어가 턱을 쓰다듬었다.
“아하, 발굴 조사단원들을 전부 집어삼킨 게 바로 저것이었군.”
“언제까지 쫓아온답니까?”
“이 유적을 나갈 때까지라고 하더군요.”
“네?”
물이 성진 대신 답했다.
“모래는 사람과 달리 지치지 않죠. 아마 우리가 쓰러지기를 기다릴 겁니다.”
“무섭다! 근데, 그럼 어떻게 쉬지?”
“돌아가면서 쉬어야 할 것 같습니다. 일단 움직이죠.”
탁.
탁.
화륵.
성진은 신성력으로 빛을 만들까도 싶었지만, 구태여 번거롭게 신성력을 낭비하고 싶진 않았다.
베어가 든 횃불이 사방을 밝히자, 가장 먼저 유적의 규모가 눈에 들어왔다.
“천장이 높군.”
“천장뿐만 아니라 장식품들도 엄청 거대합니다.”
“이 유적의 용도가 뭐였을까?”
「저희가 추측하기로는 뭔가의 거대한 무덤이었던 것 같아요.」
성진은 고개를 끄덕였다.
분명, 일리가 있는 말이었다.
이집트 황족의 거대한 무덤이 연상되는 곳이었다.
사아아악.
몇 걸음 움직이자, 모래도 그만큼 따라왔다.
성진이 모래를 퇴치하려 하자, 좋은 친구들이 말렸다.
「물리쳐도 그때뿐이에요. 이곳에는 온통 모래뿐이라 금방 다른 모래가 자리를 메꿔요.」
알겠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는 성진.
일행은 베어를 앞세워 천천히 걸어갔다.
그렇게 몇 시간이 지났다.
송하린이 투덜거렸다.
“길은 알고 가는 거요?”
“아니.”
“그럼 어떻게 방향을 잡는 거지?”
“균열이 안 느껴지나? 균열 쪽으로 향하면서 안전한 길을 탐색 중이야.”
“옳거니! 밥만 축내는 줄 알았는데 쓸모가 있었군.”
-놀랍게도 송하린은 밥만 축내는 2인이었다.
-솔직히 동부 검객 유틸기가 너무 적어 ㅋㅋ
-딜만 할 줄 아는 놈들 ㅋㅋ 바로 파탈시켜야죠?
송하린이 채팅 창을 보고 있었다.
그녀는 굳은 얼굴로 채팅 창을 가만히 응시했다.
-야, 야야 넌씨눈 새끼들아!
-보고 있잖아! ㄹㅇ ㅋㅋ만 치라고.
-ㄹㅇ ㅋㅋ
-닥눈삼하겠습니다
-검객 님께서 채팅 창을 베신단다, 조심해!
베어가 양팔을 좌우로 벌린 정도 크기의 문 앞에 서서 턱을 쓰다듬었다.
뭔가를 고민할 때 나타나는 그의 습관인 것 같았다.
“흠…….”
“왜 그러십니까?”
“이쪽 길이 맞는 것 같은데, 건너편에 함정이 있을지도 모릅니다.”
「저희는 여기를 지나치지 않은 것 같네요. 직접 해결하셔야 할 것 같습니다.」
송하린이 물었다.
“문은 어떻게 여는 거요?”
“그것이 문제인데, 아마도 이 문자를 읽어야 하는 것 같군.”
“엥, 어디 문자요?”
“모르오. 꽤 오랜 세월 이 생활을 해 왔는데, 감조차 못 잡겠군. 이 사막에서만 사용하던 고대 문자인가?”
“결국엔 길이 막힌 것 아니오? 부수면 안 되오?”
“부수면 우리도 부서지겠지.”
“그렇군. 그럼 다른 길로?”
그때 물의 추기경이 한 손을 추켜올렸다.
“베어, 주술적인 처리가 가해진 문이라는 건가요?”
“꼭 그렇다고 볼 수만은 없지. 이런 간단한 문에 그런 복잡한 주술을 사용할 이유는 없으니까. 하나 짤막한 영감을 주자면, 유적의 문 크기는 그 중요도와 관련이 깊지.”
“문 크기?”
“문이 작으면, 그만큼 권세가 작거나 힘이 약한 인물들이 사용하던 문이라는 거요. 결국, 공들여 만들 필요가 없다는 거지.”
“사용된 주술도 그만큼 간단한 것일 거고?”
“그렇지, 아마도 언령을 주입하면 기관 장치를 움직여 양쪽에서 문을 잡아당기게 하는 문일 거요.”
-오오오오! 역시, 베어! 일타강사답다!
-베어짱, 믿고 있었다고!
-정보) 해결된 건 아무것도 없다.
-모험가 감수성 충만. ㅋㅋㅋ
물이 앞으로 나섰다.
“이 문을 열어야 하는 거면, 제가 한번 해 보겠습니다.”
“어떻게?”
촤라락.
물의 추기경의 눈에서 서광이 뿜어 나왔다.
그는 만들어 낸 물을 굳게 닫힌 문의 틈새로 천천히 흘려보냈다.
베어가 나지막이 속삭였다.
“기관 장치는 역순으로 타고 들어가야 합니다. 먼저 이음새를 매만진 후, 문을 잡아당기는 기관을 찾아야 합니다.”
잠시 물로 더듬거리던 추기경이 답했다.
“……찾았습니다.”
“그 순서로 찾으면 됩니다. 기관 장치와 연결되어 있는 트리거가 있습니까?”
“아, 이것 같습니다.”
“당기세요.”
철컥.
그그그그그그긍.
문이 천천히 열렸다.
물의 추기경이 베어와 일행을 돌아보았다.
성진이 그를 칭찬했다.
“잘하셨습니다.”
“감사합니다.”
“가자고, 내가 앞장서지.”
베어가 앞으로 나서며 몸을 굽혔다.
「시초의 유적은 함정이 있더라도 침착하게만 대응하면 돼요. 저희는 발동하자마자 모두 죽는 즉살 함정은 마주친 적이 없었어요. 함께 뭉쳐 다니는 게 오히려 생존율을 올려 줘요.」
성진이 그 메시지를 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베어, 같이 가죠.”
“밖에서 기다리지 그러셨습니까.”
“그러다가 베어가 혼자 이곳에 갇히면…….”
“저야 이쪽으로 뼈가 굵은 인물 아닙니까, 분명 갇히더라도 저 한 몸 정도야 금세 빠져나올 수 있습니다.”
딸칵.
“어? 송하린 양, 방금 뭔가 밟지 않았습니까?”
“발판.”
“혹시 전갈 문양이 그려져 있었습니까?”
“전갈 문양은 없었고 웬 갑각류 문양이 있었는데.”
“그게 전갈입니다.”
“그럼 전갈을 밟았소.”
“……망할.”
솨아아아아아.
모래가 사방에서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그 속도가 매우 빨라 순식간에 바닥이 보이지 않았다.
일행은 침착하게 한 점으로 모여들었다.
촤아악.
물의 추기경이 물로 된 방벽을 만들었지만, 모래가 엉겨 붙자 오히려 진흙이 되었다.
그는 황급히 술법을 해제했다.
쿠웅.
베어가 입구를 보고 말했다.
“제길, 문이 파묻혔습니다.”
“어, 어떡하오?”
“섬세한 함정입니다. 해제 장치가 분명 방 안에 있을 겁니다. 그것을 찾아야 합니다!”
“알겠소!”
4명의 눈이 쉴 새 없이 방 안을 훑었다.
「당황하지 마세요. 당황하면 오히려 보이지 않습니다. 이런 함정이 앞으로도 계속해서 쏟아질 겁니다.」
좋은 친구들은 침착하라는 말을 빙빙 돌려 얘기했다.
-침착하게 행동하세요.
-그리고 죽으세요.
-침착하게 죽으세요.
그때, 다시금 메시지가 울렸다.
「천장을 크게 보세요. 아무래도 저게 관련이 있는 것 같습니다.」
성진이 천장을 올려다보았다.
당황해서 올려다봤을 때와는 달리 전체를 눈에 담자, 큰 전갈 그림이 보였다.
“천장! 천장입니다.”
“맞아! 천장이었군, 이러면…… 눈! 눈이다!”
전갈의 두 눈이 붉게 빛나고 있었다.
처음에 들어왔을 땐 없었던 조명 빛이었다.
물의 추기경이 물줄기를 쏘아 냈다.
촤아악.
딸칵.
딸칵.
2개의 눈이 다시 안으로 밀려들자, 방 안을 가득 메웠던 모래가 빠져나갔다.
일행이 크게 한숨 쉬었다.
모래에 어깨 아래를 전부 담근 송하린과 베어가 마주 보았다.
“…….”
“…….”
-베어 속마음 : ㅎㅎ 님 머함?)
-송하린 겉마음 : 살았으면 됐지 ㅎㅎ 전갈 귀엽넹.
-암튼 내 잘못 아니랑게. ㅋㅋㅋ
모래를 탁탁 턴 일행이 크게 숨을 쉬었다.
“입에 모래가 들어간 것 같은데.”
“일단 건너편으로 가 보죠.”
물의 추기경이 이어지는 문을 같은 방법으로 열었다.
철컥.
나가는 문을 열자 지나온 길과 전혀 다른 느낌의 복도가 펼쳐졌다.
복잡한 미로를 보는 느낌이라 기분이 좋지 않았다.
“얼마나 가야 할 것 같습니까?”
성진의 질문에 베어가 난감하다는 듯이 답했다.
“모릅니다. 다만, 방대한 크기로 보아 쉽게 끝날 것 같지는 않군요.”
다른 곳에서의 대답도 전해져 왔다.
「시초의 유적의 크기는 어림잡아…… 잘 모르겠네요. 유적의 끝까지 가 보질 못해서. 아마도 저희 파티도 일주일 넘게 헤매면서 시간을 허비했던 것 같아요.」
한마디로, 장기전이라는 얘기였다.
인상을 찡그린 성진이 일행을 이끌었다.
“가죠.”
“네.”
“같이 갑시다.”
베어가 송하린을 쳐다봤다.
“전갈은 밟지 마시오.”
“주의하겠소.”
특이하게도 유적의 초입인 이곳까지는 마수가 눈에 띄지 않았다.
몇 개의 함정을 더 거쳐 갈 무렵, 이제는 서로의 역할 분담에 적응한 건지 함정도 어렵지 않게 돌파했다.
그그긍.
석문이 또 한 번 열렸다.
“아무래도 길을 잘못 든 것 같군.”
“왜 그러십니까?”
베어의 말에 성진이 되물었다.
“아무래도 이쪽 길은 계속 고난이 이어질 것 같군. 선택지를 몇 개 더 거쳐 봤는데도 쭉 이 모양이니.”
“돌아갈까요?”
“그럴 필요까지는 없어 보이는군. 일단 여기까지 왔고 다행히 함정도 친절한 편이야.”
송하린이 베어에게 물었다.
“지금까지 함정은 거의 다 발동한 것 같소만? 전문가가 맞는 거요?”
“이곳의 함정은 무조건 발동하는 것이라 내가 손댈 여지가 없는 걸 어쩌나. 그리고 그냥 지나쳐도 될 함정까지 누군가 아쉬워서 밟아 주니 더할 나위 없지.”
송하린은 베어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 형님이 좀 주의력이 부족하긴 하지. 아무튼, 전문가가 맞긴 하군.”
“…….”
-너잖아.
-넌데.
-너라고, 야.
본인만 납득한 듯 보이는 송하린과 함께 일행은 문을 통과했다.
성인 둘이 손을 잡으면 딱 알맞은 폭의 다리가 문에서 문으로 이어져 있었다.
그 밑은, 천 길 낭떠러지.
바닥은 시커멓게 번져, 보이지도 않았다.
베어가 맨 앞, 그리고 송하린이 뒤.
성진이 후위를 맡았고 가운데에는 물의 추기경이 들어가 있었다.
“걷기만 하면 되는 거요?”
“저 기관이 보이오? 중앙을 넘으며 기관을 당기면 반대쪽 문이 열리는 것 같군.”
“좋네.”
다가각.
베어가 움찔했다.
“왜 그러시오?”
“……소리.”
“돌 부스러기가 떨어진 것은…… 아니군.”
다가각.
다가가각.
베어가 조심스럽게 횃불을 껐다.
푸쉬이.
사방이 어둠에 잠겼다.
다가각.
“냄새가 역하군. 마수인 것 같은데.”
“절지동물의 한 종류 같군요. 소리로 추정컨대 지네인 것 같습니다.”
“난 곤충이 싫어. 불은 위치가 노출될까 끈 것이오?”
“맞소.”
「비슷한 방을 거친 적이 있습니다. 4명으로는 막기 어려운 숫자일 거예요. 기관 장치를 당기면 그때부터는 지옥입니다. 미리 대비하고 전력으로 주파해야 합니다.」
성진이 고개를 끄덕이고 앞 사람에게 전달했다.
그때, 소름 끼치는 소리가 점차 빨라졌다.
다가각.
다가가가가각.
“……온다.”
건너편 문까지는 아직 거리가 좀 있었다.
지나온 다리로 지네 1마리가 올라왔다.
밤눈이 밝은 성진은 그 크기가 범상치 않음을 한눈에 파악했다.
베어가 다리의 중앙에 도달해 기관 장치를 손에 쥐었다.
“준비됐소? 문이 열리긴 하겠지만, 상황이 그리 아름답지는 않을 것 같아서 묻는 거요.”
일행이 고개를 끄덕이자, 베어는 기관 장치를 세게 당겼다.
철컹!
잠시의 침묵.
그그그긍.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송하린이 베어를 뒤로 물리고 일행의 앞에 섰다.
그때, 다리가 빛나기 시작했다.
다리의 외곽을 긴 선처럼 투명한 보석이 비췄는데 기관 장치를 당기자 일어난 일이었다.
밝게 빛나는 다리를 향해 지네들이 바쁘게 움직였다.
베어가 소리쳤다.
“뛰어어!”
다가가가각.
다가가각!
키이이이이이이이!
지네가 다리를 타고 올라왔다.
몇 개의 기둥으로 지탱되고 있는 다리는 곧 지네들의 놀이터가 될 것으로 보였다.
쿵!
쿠웅!
지네 몇 마리가 동료에게 치여 어둠에 파묻힌 바닥으로 추락했다.
다리에서 흘러나오는 빛으로 기둥을 올라오는 지네의 모습이 언뜻언뜻 비쳤는데 그 모습이 끔찍했다.
촤아악!
지네의 독액이 베어와 물의 추기경에게 뿜어졌다.
그들은 서둘러 방비하려 했지만, 어두컴컴한 곳에서 쏟아진 독액을 곧장 쳐 낼 수는 없었다.
“웃…….”
파아앙!
성진이 일 장을 날리자 독액의 방향이 바뀌었다.
쿠구궁.
콰직!
다리가 끝에서부터 무너지기 시작했다.
곧 그 진동은 다리 전체로 확대됐다.
“빌어먹을!”
콰슉!
서걱!
송하린이 지네로 꽉 막힌 다리를 뚫으며 전진했지만, 다리가 무너지는 속도보다 빠르진 않았다.
푹!
“크아아악!”
베어의 발을 거대한 지네의 이빨이 찔렀다.
성진이 베어를 습격한 지네의 머리를 걷어차고 재빨리 베어를 회복시켰다.
후우웅.
신성력이 휘몰아쳐 베어의 다리를 훑었다.
베어는 쓰러질 뻔했다가 가까스로 자세를 잡았다.
성진은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었는지 일행에게 소리쳤다.
“업히세요, 업혀!”
말귀를 알아들은 일행의 대처는 순식간이었다.
성진이 베어를 업고 송하린이 물의 추기경을 업었다.
후자의 경우, 송하린의 근력이 높기도 했지만, 물의 추기경이 마르고 길지 않은 체형이었기에 생각보다 수월하게 송하린에게 업힐 수 있었다.
성진이 송하린을 스쳐 앞으로 나서며 말했다.
“뒤쪽을 부탁합니다!”
“알겠습니다, 형님!”
촤아악!
송하린이 보지 못하는 사각에서의 공격을 물의 추기경의 고압의 물이 방비했다.
나름 합이 맞아 가는 가운데, 결국 일이 터졌다.
콰직.
콰지직.
출구와 연결된 다리가 무너지기 시작했다.
너무 많은 지네가 올라온 탓이었다.
이곳에서 뛰기에는 거리가 멀었고 지네가 앞을 막고 있었다.
-세상…… ㅈ망…….
-즐거웠다, 세상아!
성진의 눈이 돌연 용의 눈으로 변했다.
그가 숨을 크게 들이켜 볼을 부풀렸다.
그리고 그 숨결을 토해 냈다.
콰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하얀 불길이 방사형으로 뿜어져 지네들을 쓸었다.
키이이이이이!
졸지에 바싹 타 버린 지네들이 다리 밑으로 추락했다.
치이이익.
성진이 용의 숨결을 적재적소에 사용한 덕에 무너지는 다리의 끝에 금방 다다를 수 있었다.
“뛰세요!”
탓!
탓!
성진과 송하린이 크게 뛰어 출구로 빠져 나왔다.
바닥을 뒹굴 구른 물의 추기경이 서둘러 문을 닫았다.
철컹.
그그긍.
“하아…… 하아…….”
“헉…… 허억…… 벌레가 정말 싫소.”
“이쪽 길이 나을 거라고 한 말은 취소요.”
-장로님 점프 뛰세요. ㅋㅋㅋ
-이것이 모험이다.(절망 편)
-좋은 친구들 이거 어케 뚫었누. ㅋㅋ
성진이 고개를 돌려 무엇인가를 찾았다.
사아악.
살아 있는 모래가 다가와 거리를 두고 그들을 살폈다.
추격은 계속되었다.
***
지네가 가득한 함정을 돌파하는 건 손에 땀을 쥐는 장면이었다.
왕이나와 음탕은 서로 눈을 맞추고 고개를 끄덕였다.
고난이 흥미진진할수록 방송은 흥했다.
-오늘 방송 레전드네. ㅋㅋ
-하지만 이런 방송이 초모가 미궁 돌파할 때까지 계속 된다고?
-음탕하고 왕이나가 교대로 진행한다고 하더라.
-좋은 친구들은?
-회사 다니는 친구들 PPL 넣는 조건으로 일시 휴무 받은 듯.
-개꿀이네; 이분들도 그럼 교대로?
-ㅇㅇ 첫날이랑 마지막 엔딩만 다 같이 한다더라.
조병창이 벌떡 일어나 게스트에게 물을 나눠 주었다.
그는 김상혁과 일행의 얼굴을 살폈는데, 그들은 땀을 흘리면서도 미미한 웃음을 띠고 있었다.
즐거운 것이다.
그들도 모험가였으니까.
성진 일행이 통로에서 잠시 쉬는 사이, 시청자가 빠져나가지 않도록 음탕이 좋은 친구들에게 질문했다.
“저, 어떻게 보시나요?”
“네?”
“클리어 가능할 거라 보시나요?”
“그건…… 모릅니다. 이것만 봐서는 알 수 없어요.”
“그, 그런가요?”
변변찮은 질문이었다고 자책한 음탕이 다른 질문을 꺼냈다.
“저…… 그런데 이곳에서 안 좋은 일이 있었다고…….”
분위기가 냉랭해졌다.
왕이나가 음탕에게 고개를 저었다.
분명, 언젠가 묻고자 했으나 지금은 아니었다.
-선 씨게 넘네, 탕이;
-왕이나도 고개를 젓는 질문. ㅋㅋ
-병창이 형! 도와줘!
조병창이 좋은 친구들의 안색을 살폈다.
다행히도 크게 당황하지는 않아 보였다.
아마 미리 이런 질문을 받게 될 것을 대비하고 있었을 것이다.
실제로 게스트에게 넘기는 대본 형식의 질문 모음에도 들어 있는 말이었다.
좋은 친구들은 어쩌면, 이 질문에 답하고자 이 자리에 온 것일 수도 있었다.
조병창이 물었다.
“상혁아, 괜찮아?”
“어, 괜찮아. 어차피 얘기하려 했어.”
“그럼…….”
김상혁은 자신의 친구들을 한 차례 둘러본 후 얘기를 꺼냈다.
“많은 분이 궁금해하고 계신 그 일에 대해 말씀드리려면…… 우선 저희가 누군지를 소개해야겠네요.”
과거, 스칸다의 서버 종료 당시 큰 파문을 일으켰던 사건의 실체를 알기 위해 시청자들이 계속해서 불어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