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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J는 종말에 적응했다-157화 (157/222)

# 157

157화

이방인 행렬이 꽃의 사제들의 인도에 따라 거주 구역으로 물러갔다.

성진과 작약, 그리고 송하린만이 사제 회의에 참석할 수 있었다.

불의 추기경이 성진을 웃으며 맞이했다.

“하하하, 바스카리의 복되심이로다. 어서 오시게나.”

그는 입가는 웃고 있었지만, 눈은 전혀 웃고 있지 않았다.

성진은 그를 경계하며 인사했다.

“초모라고 합니다.”

“아무렴, 그 위명도 모를까 봐? 앉지. 그보다 뒤의 둘은 누군가?”

작약과 송하린을 말함이었다.

추기경급 되는 인물이 작약을 모를 리가 없었으므로 이건 축객령이었다.

감히 일개 사제가 추기경들의 자리에 함께하느냐는 물음.

작약은 고개를 끄덕이고 성진에게 뭔가를 속삭인 후에 뒷걸음으로 물러났다.

성진이 송하린에게 고갯짓했다.

“제 호위입니다.”

“그 말은 우리를 못 믿는다는 건가?”

“제가 믿는다고 호위가 필요 없는 것은 아니죠.”

“으음…….”

바람의 추기경이 손짓했다.

산들산들한 미풍이 커튼을 간질였다.

“앉지. 긴 얘기는 하지 않더라도 상호 간에 나누어야 할 말들이 있으니.”

“감사합니다.”

-말 잘한다!

-우리 초모가 이제 푸대접에 익숙해져서 그래. ㅋㅋ

-처음에는 예, 네밖에 못 했는뎈ㅋㅋ

-이제는 알아서도 척척 해내는구먼!

그런데, 좌석이 6개뿐이었다.

“이런! 의자를 준비하는 것을 깜빡했군!”

“하하하하! 실수일세. 꽃의 교단은 오랫동안 회의에 참석하지 않았었거든. 그러니 착각할 수도 있지.”

치졸한 견제.

성진에게 모멸감을 느끼게 할 생각인 게 분명했다.

빛과 그림자가 당황하여 의자를 내오겠다고 했다.

성진이 그들을 멈췄다.

“괜찮습니다.”

따악.

성진이 손가락을 튕기자 손에서부터 나무줄기가 얽혀들었다.

우드득.

순식간에 고풍스러운 나무 의자가 완성되었다.

“여기에 앉죠.”

“…….”

“하, 하하…… 그러면 되겠군! 참 편리한 능력이야!”

성진을 탐탁지 않아 하는 추기경들은 자신이 인상을 찡그린 줄도 모르고 답했다.

빛과 그림자가 의기양양하게 성진이 앉은 자리의 좌우에 앉았다.

이렇게 앉고 나니 중립인 바람의 추기경의 좌우로 각기 3명의 추기경이 대립하고 있는 형국이었다.

-눈에서 불꽃들 튀는 것 좀 보소. ㄷㄷ

-바스카리 예쁘당. 헤헤헤헤.

-도시 진짜 카멜롯보다 예쁘네. ㅋㅋ

-근데 수장들이 저런 놈들이라니. ㅉㅉ

-일단 단매에 처죽이고…….

불의 추기경이 말했다.

“크게 이야기할 것은 없고, 몇 가지 당부할 것이 있네.”

“말씀하시죠.”

“첫째, 자네가 데려온 이방인들 말이야…… 자구책은 있는 거겠지?”

“무슨 말씀이십니까?”

“성국이 그들을 지원해 줄 거라는 안일한 생각을 하고 품은 것 아니냐는 말이야.”

첫 번째 질문은 성진도 대비한 질문이었다.

답은 간단했다.

“전혀 문제없습니다.”

“앞으로도? 동부 상인회가 지지를 표명했다는 것은 들었네만…… 그게 얼마나 가겠나?”

일금과 성진의 관계를 모르는 이가 할 법한 말이었다.

하지만 대부분은 그 지속성을 의심했으므로 반드시 답해야 할 문제이기도 했다.

“5년.”

“뭐?”

“지금 보유한 물자만으로 앞으로 5년은 아무 일도 하지 않아도 될 겁니다.”

“그게 지금…… 꽃의 교단이 성국과 맞먹는 자금을 가지고 있다고?”

“그렇습니까? 생각보다 바스카리의 상황이 좋지 않나 보군요.”

“크, 크흠…… 말을 삼가게, 불.”

“이런…… 아무튼, 증명할 수 있나?”

“증명까지 필요한 문제라면 얼마든지 증명할 수 있습니다. 다만, 교단의 사정을 파헤치고 싶으시다면 저도 바스카리의 각 교단 상황을 좀 알고 싶군요.”

내 패를 보고 싶으면 네 패도 까라는 말이었다.

고위 사제들의 낭비벽과 신도들의 마음을 휘어잡기 위해 사용된 물자들.

때문에, 현재 바스카리에 비축된 물자는 그리 많지 않았다.

교단들을 다 합쳐도 꽃의 교단만 못 할 수도 있었다.

거기다 꽃의 교단은 계속해서 진행되는 펀딩 때문에 사정이 점점 나아지고 있었다.

손해를 본 불이 답했다.

“그럴 필요까지야. 그냥 물은 걸세.”

“또 물으실 게 있습니까?”

“자네 신도들에게서 힘이 느껴졌네. 능력자들인가?”

“네. 맞습니다.”

“그, 그럼 저 수백 명이 전부?”

“전부까진 아니더라도 대부분은 맞습니다.”

“구, 군대잖아! 명백히 성국에 악의적인 목적이 있어서 온 것으로 생각할 수밖에 없네!”

이것도 예상했던 질문이었다.

성진은 간단하게 답했다.

“이들은 오로지 저를 믿고 따라온 이들입니다. 능력의 오용 혹은 남용은 있을 수 없습니다.”

“그걸 어떻게 믿지?”

“교단의 규약에도 나와 있는 내용입니다. 이것도 확인해 보시겠습니까?”

이방인들의 합류에 발맞춰 꽃의 사제들과 미리 손 본 내용이었다.

실제로 지키고 말고까지 가지 않더라도 교리에 그러한 내용이 있느냐 없느냐는 분명 중요했다.

“그럴 필요까지는 없어 보이는군. 안 그런가?”

“그렇지.”

“굳이 교단의 규율까지 들춰 보고 싶지는 않군.”

-이거 역전재판 보는 기분인데? ㅋㅋ

-잠깐! 이의 있소!

당장 성진의 존재를 꺼리는 저들이 묻고 싶은 질문은 따로 있을 것이다.

왜 이곳에 왔는지.

왜 하필 이 시기에 왔는지.

저들도 그간 성국을 차지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해 왔다.

그것이 좌절된 이유는 몇 가지가 있었다.

첫째로는 사제회 과반의 동의를 얻어야 교황에 오를 수 있었다.

불, 바위, 물이 힘을 합치더라도 꽃, 바람, 빛, 그림자 중 한 교단의 힘이 더 필요했다.

둘째, 힘을 합칠 생각이 없었다.

셋은 빛과 그림자뿐만 아니라 그들 스스로도 서로를 경계했다.

교황이 가지는 힘이 워낙 크니, 누군가를 믿었다가 실패하면 돌이킬 수 없었다.

그러니 아무도 믿지 않았다.

이밖에도 바람이 끝까지 중립을 고수하는 점이나, 성국이 폐쇄적인 삶을 꾸려 나가는 점 등 이유는 많았다.

불의 추기경이 이대로는 안 되겠는지 화제를 전환했다.

“이보시게, 꽃.”

꽃은 성진을 부르는 말이었다.

“네, 말씀하시죠.”

“우리는 말이야. 이미 합의를 봤어.”

“무슨 합의를 말씀하시는 겁니까?”

“자네를 무턱대고 인정할 수 없다는 게 사제회의 중론이야.”

“…….”

“이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나?”

성진이 어떤 식으로 나올지 떠보는 것이었다.

실상, 이미 답은 내려져 있음에도 불은 마치 성진의 대답 여하에 따라 내용이 달라질 수 있는 것처럼 말했다.

“어떤 이유에서입니까?”

“좋은 질문이야! 답해 주지. 첫째, 자네는 스칸다에서 활동한 지 1년도 지나지 않은 존재야. 아주 이른 시기에 이 자리까지 올라온 것은 놀랄 만하네만, 반대로 생각했을 땐 불안하긴 해.”

“받아들이겠습니다. 또 있습니까?”

“자네가 이방인이라는 점과 이방인들의 지도자라는 점. 스칸다인과 이방인은 달라, 섞이는 건 다른 문제일지라도 서로를 증오할 수도 있는 법이지.”

“조심하더라도 나올 수 있는 문제다, 이 말씀입니까?”

“그렇지! 바로 그 말이야.”

-팩트 묵직허네.

-틀린 말은 아녀, 또? ㅋㅋㅋ

바위가 슬쩍 말을 얹었다.

“물론 자네의 신성력이 굉장한 것은 인정해. 쇠퇴기에 접어든 바스카리가 다시 찬란하게 일어날 것이라고 믿어질 정도였으니까.”

“……감사합니다.”

“하지만, 자네를 곧장 우리와 같은 교단의 대표로 인정하기엔 시간과 근거가 필요해.”

성진은 스칸다에서 그간 수많은 기적을 행했다.

시조를 퇴치하고 혈마를 퇴치했으며 용을 사냥하기까지 했으니까.

하지만 지금 필요한 것은 신관의 자격이었다.

모험가로서의 자격은 충분했지만, 당장에 바스카리에 보탬이 된 것은 없었으니까.

“그렇군요.”

“우리가 자네를 인정하기 싫어서 그런 게 아니야. 신민들이 자네를 아버지로 인정하기 위해서는 계기가 있어야 하고 사제회의 정통성도 해치지 않아야 해.”

구구절절 옳은 말이었다.

“그러니, 한 번의 시험이 있을 거야.”

“시험?”

빛과 그림자가 언급했던 시험이었다.

그녀들이 개입했을 테니 큰 고난은 아닐 것이고.

“간단한 거야, 음…… 간단한 거였는데…….”

“왜 그러십니까?”

“아무튼, 이건 오늘 얘기할 문제는 아니고 장시간 고된 여행을 했을 테니 이만 폐회하고 쉬었다가 내일 다시 얘기하자고.”

성진도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시험이 정해졌다면 굳이 계속 엉덩이를 붙이고 있을 이유가 없었다.

“그럼, 내일 이 시간에.”

“내일은 조금 바쁠 거야.”

첫 번째 대회의가 폐회했다.

***

쨍그랑!

던져진 유리잔이 산산조각 났다.

시녀가 소리에 화들짝 놀라 달려왔다.

“괜찮으십니까, 추기경님?”

“……치워.”

“예.”

“이 사람, 참…… 성질도.”

“지금 속에서 열이 끓어오르는군. 너무 안일하게 생각했던 것 같아.”

어둑한 공간에 바위, 불, 물이 자리했다.

그들은 그렇게 사악하지도, 그렇게 착하지도 않았다.

다만 권력을 탐냈을 뿐.

바스카리가 만들어 낸 기묘한 존재들이었다.

“바스카리가, 어떻게 바스카리가 떠오를 수가 있지?”

“센티널! 바스카리가 부유하기 위해 필요한 신성력 수치가 정확히 어떻게 되지?”

기이잉.

인간형 기계 장치, 센티널이 답했다.

-100만 헤일로입니다.

“인간이 가질 수 있는 헤일로 한계치를 어느 정도로 특정하고 있지?”

-10만, 10만 헤일로입니다.

“바스카리가 여태 부유하지 않았었는데, 신성력이 얼마나 모자랐던 거야?”

-부유하는 데에 필요한 수치는 67만 헤일로가 부족했습니다. 부유 상태를 유지하는 데에 필요한 수치를 계산할까요?

“아니, 됐어. 그럼 인간이 70만 헤일로에 버금가는 신성력을 가졌다는 거야?”

“그건 아니지. 신도들이 있었잖아.”

“아, 그렇지. 그래도 교단 하나가 어떻게 바스카리 절반의 신성력을 보유하고 있는 거야?”

“난들 아나, 하하하하!”

“뭐가 웃겨!”

“웃기지, 그럼. 여태 빌빌 기며 망해 가던 바스카리에 활기가 생겼잖아.”

“장난쳐? 기껏 꾸려 온 바스카리가 이방인 손에 넘어가게 생겼는데!”

“그럴 리가? 자, 생각해 봐. 꽃의 교단이 예상밖의 힘을 가졌어. 과거의 찬란했던 바스카리가 떠오를 만큼.”

“그래.”

“그 힘은 결국 누구의 것일까?”

“……바스카리.”

“그렇지! 바로 바스카리야! 우리의 힘은 이 안에서 회오리치는 거지.”

“하지만…… 만일…….”

바위가 말을 삼켰다.

그의 입에서 나올 말은 셋을 불안에 떨게 하기 충분했다.

“그자가 모든 것을 손에 넣는다면.”

“크게 생각하자고, 일단 꽃이 통과해야 하는 시험은 모두 들었지?”

“내용이 많이 바뀌었던데.”

“얼마 전부터 지혜의 고리 늙은이랑 협회 쪽 망나니가 와서 말한 내용은 그렇지. 자, 봐봐. 7명의 추기경 중 2명이 임무에 파견되어야 해.”

“1명은 꽃일 거고. 다른 1명은…….”

“우리 중에는 없지. 그 말이 뭐겠어?”

“반대쪽에서 위험을 짊어지는 거야. 그러다가 사고라도 난다면…….”

“바스카리가 우리 중, 누군가의 손에 들어오는 것이겠지.”

말을 하는 셋의 눈이 빛났다.

서로를 믿지 않으면서 믿는다는 눈빛을 최대한 보여 주려 노력하는 모습이 우스꽝스러웠다.

그들도 그걸 느꼈지만, 연극을 계속했다.

“이번이 마지막 기회야.”

셋은 침묵했다.

줄곧 말을 섞지 않던 물이 대뜸 말을 내뱉었다.

모든 것을 드러나지 않게 감춰 오던 셋의 관계에 변화가 생겨도 이상하지 않은 말이었다.

“솔직하게 말해도 될까?”

“말해.”

“초모가 이번 임무에서 죽지 않았으면 싶은데, 이상한가?”

“……이 상황에.”

“정말로. 정말…… 정말 오랜만에 느껴 보는 감각이었어.”

“자네도 느꼈나?”

“엄청나게 거대한 생명력. 신성력이 이만큼 거대할 수 있다니…… 온몸이 녹아 버리는 줄 알았어.”

“그가 바스카리를 지배하게 된다면 어떻게 될까?”

“그는 지배하려 하지 않겠지. 군림할 뿐이야.”

“사람들은 알아서 그를 떠받들 것이고.”

추기경 셋의 마음이 조각나기 시작했다.

신앙이란 신비로운 것.

당연하던 것들이 당연하지 않게 되고, 전혀 다른 자신이 되는 것.

그것이 아주 사소한 일로부터 비롯될 수도 있는 게 바로 신앙이었다.

“……뭘까.”

“기분이 더럽군.”

“그만 얘기하지. 당분간은 이런 자리는 가지지 않았으면 싶어.”

“동감이야. 이제 알아서 내키는 대로 하자고.”

불이 내뱉은 말에 물과 바위가 그를 쳐다보았다.

불의 추기경이 가장 싫어하는 것이 감정적으로 행동하는 것이었다.

지금 그는 자신의 원칙을 깨는 말을 했다.

하지만, 다른 이들은 그것을 트집 잡지 않았다.

그들 스스로도 변해 가고 있었기에.

이번 순례 행렬과 바스카리가 과거의 모습을 되찾은 것은 사소한 일이 아니었다.

그 일련의 일들은 추기경들의 마음에서 잊었던 감정을 끄집어냈다.

후회를.

“빌어먹을.”

“내일…… 보자고.”

***

“갱? 옆에 분은 누구십니까?”

“살라라고 해요. 지혜의 고리 소속이죠.”

“브로아 마탑의 탑주시지. 인사드리게.”

“안녕하십니까, 여긴 어떻게?”

바스카리의 전망대를 겸한 건물에 흑백쌍존을 비롯하여 살라와 갱, 그리고 빛과 그림자가 자리했다.

갱이 파이프를 뻐끔거리며 전망대 난간에 몸을 기댔다.

“푸하하하하하! 내가 뭐라고 했습니까! 바스카리가 뒤집어질 거라고 했지요?”

“그 말대로네요.”

“설마하니 바스카리가 다시 떠오를 줄이야. 미리 와서 대기하고 있길 잘했군.”

“언제부터 오신 겁니까?”

“자네와 헤어진 후 일 때문에 바스카리에 들렸었지. 상황이 계속 변해서 해결되기 전까진 이곳에 머무를 생각이야.”

성진의 뇌리에 순간 떠오르는 생각이 있었다.

성진이 갱의 눈을 보자, 그가 미소 지었다.

“이미 얘기 들었나 보군.”

“저를 인정하기 위해선 시험을 하나 거쳐야 한다는군요.”

“그럴 것 같았지. 아마 한참 전부터 그렇게 결론 나 있었을 거야.”

“그렇게 생각하시는 이유라도?”

“푸후우…… 상황이 변했거든.”

“상황?”

“자네가 치를 시험의 난이도가 갑자기 치솟았어. 여기 살라 님께서 말씀해 주실 거야.”

빛나는 브로치를 한 노파가 점잖게 설명했다.

“초모, 당신을 꼭 만나 보고 싶었어요. 카이덴이 이 자리에 왔다면 좋았겠지만, 그는 요즘 상태가 좋지 않아서.”

“문제가 생겼다는 말은 무슨 말씀입니까?”

“바스카리의 지척이나 다름없는 이유 없는 사막에 대규모 마력 파동이 감지되었었어요. 그리고 다시 얼마 후, 균열의 발생 또한 감지됐고요.”

“제 시험은 그 균열을 닫는 것이었겠군요.”

“아마도 그랬겠죠. 원래는 그랬을 겁니다.”

“네?”

“균열이 점차 거대해지고 있어요.”

“그게 무슨 소리입니까? 균열이 거대해지다뇨?”

살라가 손수건으로 땀을 닦았다.

고지대인데도 사태의 위중함을 전하고 있었기에 그녀는 땀을 비 오듯 흘렸다.

“성장하는 균열. 학계에 보고된 적 없는 사례예요. 지금도 계속해서 거대해지고 있죠.”

“문제가 심각한 겁니까?”

“아직은, 아직은 괜찮아요. 방출되는 마력의 양도 위험한 수준이 될 때까지는 시간이 좀 남았고요.”

“그럼 뭐가 문제죠? 닫으면 그만…….”

갱이 성진의 말을 끊고 말했다.

“그게 좀…… 균열이 좋지 않은 곳에 생성됐어.”

-좋지 않은 곳을 다치셨습니다.

-오우쒯! 내가 강자라니!

-내가 감자라니!

갱이 한숨 쉬며 말했다.

“시초의 유적.”

“시초의 유적?”

“균열이 생성된 장소는 과거의 가장 위대했던 모험가들 ‘좋은 친구들’조차 탐색에 실패했던 곳이야.”

-시초의 유적;; 미친 시발;; 시발;; 망했다. ㅋㅋ

-주님, 여기 한 파티 올라가요. ㅋㅋ

-진짜 좋지 않은 곳이었네?

-어케 진짜 초모 가는 곳마다 사고가 터지누. ㅎ 물론 난 꿀잼이지만. 자! 초모 맘들! 어떻게 할 생각입니까?

-초모 맘 : 난 이 균열을 포기하겠다, 죠죠! 엄마가 미안해!

갱이 성진의 어깨를 툭 쳤다.

“난이도 미지수의 미궁이지. 정보가 아무것도 없어. 좋은 친구들도 그 모습이 마지막이었거든. 그 강했던 파티가 말이야.”

“혹시, 활금강이…….”

“그래, 모험가의 정점이라 불리던 활금강도 그 파티였었지. 참…… 대단한 사람들이었는데.”

-밝혀지는 활금강의 비밀들.

-그 속에 숨은 수많은 사건, 사고.

-이상, 먹거리 X화일에서 파헤쳐 보도록 하겠습니다.

-그걸 왜 거기서 밝혀.

“자네의 선택은 두 가지야.”

“선택지가 있다는 게 신기하네요.”

“농담은. 자, 하나는 바스카리를 포기하고 잠재된 위험을 회피하는 것.”

“농담이죠?”

“농담이야. 그럼 하나 남네?”

송하린이 갱의 멱살을 잡았다.

“우리 형님을 놀리는 것이냐, 갱? 실족사도 요즘은 농담으로 치부하나?”

“누, 누님. 자, 잠시만요! 말하겠습니다.”

갱이 켁켁 하다 답했다.

“별수 없지. 해내는 것밖에는.”

“저와 송하린 양만 함께하는 겁니까?”

“듣기로는 추기경급 사제 1명을 더 붙여 준다는군. 바스카리도 그래야 면이 서겠지. 협회도 나름 고심을 해 봤는데, 딱 1명이야.”

“뭐가 말입니까?”

“지원해 줄만 한 인물이.”

-아, 장난하나. ㅡㅡ 한 트럭은 와야제.

-이래서 입칸다들은. ㅉㅉ

-왱.

-아만보죠? 시초의 유적은 입구 컷 있음. 인원 제한 7명이었나?

-6명 던전일걸?

-몰라 저 때 저기 갈 깜냥이라도 되던 거 좋은 친구들밖에 없었음. ㅋㅋ

-걔네한테 물어보면 되겠네.

-장난치냐, 저기서 사고가 터졌는데.

-엥?

-의식 불명 사건이 저기서 터졌다고.

-ㅈㅅ; 소인의 입을 봉하겠습니다.

“얼마 전에 정찰조로 보냈던 인원들이 인원 제한으로 튕겨 나왔었거든. 사건이 터지고 귀환을 너무 늦게 해서 뒤늦게 알았지만.”

“그가 뭐라던가요?”

“4명.”

“네?”

“4명만 들어갈 수 있다고 했어. 공간의 왜곡이 심각한가 봐.”

굳이 손가락으로 세어 보지 않아도 되었다.

성진, 송하린, 그리고 추기경 1명.

결국, 한 자리만 남는다.

“나름 고심했는데, 아무래도 미궁 쪽은 또 전문가가 있어서. 베어!”

스르륵.

은신이 해제되며 장내에 1명이 더 등장했다.

성진과 송하린은 이미 알고 있었지만, 내색하지 않았다.

“누구십니까?”

“미궁 전문 모험가, 베어라고 합니다.”

-설마? 그릴스 형님?

-베어 그릴스 형님! ㅋㅋㅋㅋ

-진짜 베어 그릴스임?

-별명임. 푸우도 있고 벡터맨 베어도 있고.

-유명했어. 그때도 성채남보석이었었음.

-개친절했는데, 아재도 늙었구나. ㅠㅠ

-베어도 가는구나! 베어는 ㅇㅈ이지!

-NPC 중, 믿을 만한 동료 BEST 10에 속한 인물!

“반갑습니다. 초모입니다.”

“명성은 익히 들었습니다.”

갱이 베어와 초모의 어깨를 툭툭 치고 말했다.

“이렇게 하린 누님까지 셋. 무려 성채남보석 셋이야. 추기경급 인물이면 적어도 짐은 되지 않겠지. 이러면 넷. 한 파티가 완성됐어. 힘내자고.”

베어와 갱은 내일 보기로 하고 헤어졌다.

살라가 성진에게 다가왔다.

“초모, 제가 이곳에 온 이유는 일 때문도 있지만, 이것을 전하기 위해서예요.”

살라가 성진에게 쪽지를 건넸다.

-젊음을 되찾고자 한다면, 그림자의 권역으로 가 추방자들을 찾아라.

“이게 무슨…….”

“당신과 함께 시조를 쓰러트렸던 모험가들. 기억하시나요?”

“……기억합니다.”

“잘 적응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아요. 당신도 죄책감을 안고 있을 것이고.”

성진의 잘못은 아니었다.

하지만, 성진은 자신의 잘못처럼 느껴졌다.

“그들을 구할 방법이 있습니까?”

“쪽지에 적힌 대로랍니다. 저 여인에게 물어보면 알 거예요.”

그림자가 움찔했다.

빛이 그녀를 째려봤다.

살라가 성진에게서 시선을 거둬 대지를 내려다보았다.

부유성 바스카리에서 내려다본 대륙은 너무도 거대해 정신이 아득해졌다.

“초모, 저 대륙에 수많은 사람이 살고 있어요. 믿겨 지나요?”

“…….”

“어떻게 이렇게 아름다운 별이 멸망해 가는 건지…….”

살라는 여운에 젖었다.

“사람은 너무도 작아 아무것도 아니라고 여겨지지만, 가끔은 꼭 그런 것만도 아니라고 생각이 돼요.”

“왜죠?”

“이 작은 생명체들이 이 별을 지키기 위해 안간힘을 쓰잖아요? 그 모습이 꼭 그렇게 느껴져요.”

***

조병창이 집무실에 앉아 고개를 푹 숙이고 있었다.

과도한 업무가 그를 피곤하게 한 것인지, 혹은 고민이 있는 것인지 아무도 알지 못했다.

아니, 1명 정도는 알았다.

“병창아, 고개 숙이고 방송 보고 있는 거 다 안다.”

“……들켰군.”

“악당 대사 하지 마. 안 어울리니까.”

“일국아, 오늘 방송을 보는데…….”

“됐고, 대전이랑 접촉하려면 얼마나 걸려?”

“울산 일이 끝난 지가 얼마나 됐다고.”

“얼마나 걸리냐고.”

“앞으로 삼 일이면 충분해.”

“그럼 됐네. 그쪽 인프라 확보해서 광주로 향하자.”

“안 그래도 그렇게 얘기가 됐어.”

조병창과 차일국은 잠시 앉아서 대화를 나눴다.

일 얘기에 지친 조병창에게 전화가 울렸다.

정확히는, 슈트에 연동된 캡슐 커뮤니티다.

캡슐로 전화가 오면 슈트를 통해 받을 수 있는 기능.

종말 이후에 새로 탑재된 기능이다.

“여보세요?”

-…….

“아, 왕이나 씨.”

-…….

“네?”

통화를 마친 조병창이 어두운 표정을 지었다.

차일국은 그가 고민이 있을 때 이런 표정을 짓는 것을 알았다.

“왜 그래? 그 여자가 또 어려운 부탁해?”

“어떻게 알았어?”

“뻔하지, 방송 나와 달래?”

“아니, 그런 얘기는 아니었어.”

“그럼 뭔데?”

“상혁이 알지?”

“알지, 가끔 어울렸잖아. 사고 터지고는 소식이 끊겼지만.”

“나랑은 연락하고 있었어.”

“엥? 그 새끼랑? 왜 너만? 나는?”

“내가 더 편한가 보지. 아무튼.”

조병창이 오늘 초모의 방송에서 있었던 일을 이야기했다.

차일국은 놀라서 눈을 동그랗게 떴다.

“시초의 유적? 장난하는 거지?”

“갱이 그렇다던데?”

“일이 꼬일 대로 꼬였네. 거기 사고 터진 지점이잖아.”

“그러니까 말이야…….”

“근데 그게 왜? 시초의 유적이랑 왕이나랑 뭔…… 설마?”

“응, 상혁이가 좋은 친구들이었잖아. 방송 진행을 같이 할 수 있냐고 물어봐 달라고 하더라고.”

“미친…… 사고 터진 애한테 그게 할 소리야? 정신과도 다녔다며?”

“그렇다고 하긴 하는데, 얘가 속마음을 잘 말하지 않아서 나도 자세히는 몰라.”

“거절해. 뭐 하러…….”

“그게 말이야, 사정이 좀 있어.”

조병창은 자신이 생각하는 바를 차일국에게 얘기했다.

차일국은 이야기를 듣다가 아까보다 더 놀랐다.

“상혁이가 그걸 원할 수도 있다고?”

“트라우마니까. 그리고 그 사건이 그렇게 종결되고 난 뒤에 어딘가 힘들어 보였거든.”

“난 모르겠다. 그럼, 전화라도 해 보던가.”

조병창이 차일국의 말에 한참을 고민하다 결국, 다이얼을 눌렀다.

뚜우우.

달칵.

-여보세요.

“상혁이냐?”

상대의 음성은 메마르지도 촉촉하지도 않은 담백한 음성이었다.

-병창이야? 네가 웬일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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