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51
151화
행사를 마친 성진은 숙소로 돌아가고 있었다.
‘정말 많이 왔네.’
모험가들을 비롯하여 각계각층의 사람들이 행사를 보러 왔다.
가슴팍에 다는 장식이 한 단계 높은 보석으로 바뀌는 것뿐인 행사다.
하지만,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것 같았다.
‘이방인들이 도착했어.’
이방인들은 창밖으로 머리를 내밀어 자신과 동료들을 구경하고 있었다.
초췌해 보이는 게 여행길이 고되었나 보다.
성진이 그들을 바라보며 느낀 감정은 연민과 더불어 곤란함이었다.
‘앞으로 점점 늘어날 거야.’
아마, 이방인뿐만 아니라 스칸다의 주민들도 성진을 추종할 것이다.
그렇게 된다면 혼자서 통제하기는 어려울 것이고.
무엇보다 그들에게 힘을 주었을 때, 그들을 어떻게 다스릴지가 문제였다.
당장 다가올 싸움이 언제인지도 모르고 그들을 마냥 방치한다면 결국엔 터질 것이다.
사실, 한 가지 생각이 있었다.
‘모험가 협회.’
모험가 협회는 무지개 사원과 더불어 확실한 아군이나 다름없었다.
그들은 힘이 부족했고, 이방인들은 일과 여유가 부족했다.
어떻게 합의점을 도출해 보면 이 둘은 의외로 잘 맞을지도 몰랐다.
성진의 복잡한 생각이 끊임없이 이어지다가 어느 순간 뚝 끊겼다.
성진은 각자의 숙소로 돌아가던 중, 누군가를 마주했다.
로브를 쓴 둘.
“신성력…… 성국입니까?”
신성력의 향기가 코끝을 간질였다.
다른 사람에게서 신성력을 느껴본 적이 거의 없어 가물가물했지만, 이건 분명 자신과 같은 신성력이었다.
‘살기는 없는데.’
살기가 없다면 대화하러 온 것이 분명했다.
‘혹시?’
성진은 상대가 누구인지 알 것 같았다.
“빛과 그림자입니까?”
“맞아요, 이름은 없으니 그렇게 불러 주세요.”
“꽃이여, 반갑습니다.”
성진은 외모로 사람을 특정 짓는 편은 아니었지만, 두 여인은 특이했다.
마치 정반대의 사람이라고 보아도 될 정도로 느껴지는 인상이 달랐다.
빛은 찬란한 금발에 곧게 뻗은 머리칼을 하고 있었고 그림자는 짧은 흑발을 하고 있었다.
다루는 힘에 따라 기운도 달라지는 건지 딱 그런 느낌이었다.
성진이 물었다.
“행사 때문에 오신 겁니까?”
“정확히는 그랬죠. 물론 지금은 다르지만요.”
“꽃이여, 우리가 당신에게 다가가도 괜찮을까요?”
그림자가 성진에게 질문하자 성진은 그제야 자신이 경계심을 품고 있다는 것을 눈치챘다.
아마도 그 경계심이 저들에게도 전해져 저렇게 머뭇거리고 있는 것일 테고.
성진은 고개를 끄덕였다.
“가까운 곳에 이야기를 나눌 곳이 있습니다.”
“저희만 있는 건가요?”
“사제님들이 계시긴 합니다만, 아마 말씀을 드리면 자리를 비켜 주실 겁니다.”
셋은 합의점을 찾았고, 성진은 일전에 계몽을 시전했던 장소를 찾았다.
어둑한 공간에 작은 촛대 몇 개가 놓여 있는 곳이었다.
“호오…… 이런 장소가 있었군요.”
“마침 다들 자리를 비우셨군요.”
“그분들은 일전에도 자주 부딪혔는데, 워낙 자유로우신 분들이라…….”
그림자는 꽃의 사제들과 자주 부딪혔다고 했다.
겉으로 보기엔 온건해 보이는 여인이었는데 아무래도 의견 대립이 있었던 듯했다.
빛이 적당한 자리를 찾아 털썩 주저앉았다.
성진이 그녀를 어처구니없이 쳐다보자 빛은 싱긋 웃었다.
“어디든 앉으세요. 자리보다는 얘기가 중요하니.”
“그러죠.”
성진도 대충 자리를 깔고 앉았다.
그림자도 그 주변으로 모이니 꼭 공기놀이를 하고 있는 성인들처럼 보였다.
빛은 눈을 감고 음미하듯 말했다.
“좋은 향기…… 그대에게선 나무 향기가 나는군요. 꽃의 사제님들과 잘 어울리겠어요. 꽃이라고 부르기보단 나무라고 부르는 게 맞겠네요.”
“우리는 자매예요.”
둘이 무언가 관련이 있지 않을까 했는데, 자매일 줄은 몰랐다.
그도 그럴 것이 인상이 너무 달랐으니까.
“그러셨군요.”
“우리가 무슨 얘기를 나누기 위해 왔을까요?”
“글쎄요.”
몇 가지 짐작되는 건 있었다.
성진은 어차피 상대가 말할 테니 모르는 척했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할게요, 우리는 사제회가 싫어요.”
“하지만 좋든 싫든 그곳에 소속되어 계시죠.”
“그렇게 생각해서는 얘기가 빙빙 돌 뿐이에요.”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 근거를 말씀해 주셔야 합니다.”
“좋아요, 이쪽 패를 다 노출하라는 거군요?”
성진이 어깨를 으쓱하자 그림자가 얘기했다.
“우리는 당신을 도우려고 합니다.”
“저를 도와요?”
“바스카리에 올 생각이죠?”
-뜨끔.
-일단 살인멸구다! 다짜고짜 킥!
-어케 알았누;
성진은 상대가 적인지, 아군인지 알 수 없었다.
대답을 망설이다 빛의 눈을 보았다.
그녀는 거짓 없이 성진을 대하고 있었다.
‘쓸데없이 생각이 많아졌네.’
이방인들을 위하다 보니 필요 이상으로 과민해졌다.
성진은 수긍했다.
“어떻게 아신 거죠?”
“우리는 바보가 아니에요. 아, 여기서 우리라는 말은 나와 그림자를 말하는 거예요. 다른 추기경들은 바보가 맞을지도 몰라요.”
“바보가 맞아.”
“동생이 그렇다네요.”
빛이 말했다.
“당신은 그간 바스카리의 눈을 피해 이곳저곳에서 일을 벌였죠. 현명한 판단이에요.”
“어째서?”
“사제회는 당신이 바스카리에 오는 것을 좋아하지 않거든요. 지금도 신성력을 가진 모험가가 엘론드의 성자니, 스칸다의 기적이니 하는 말을 듣고 있는 것을 불쾌해하고 있어요.”
“그럼 직접 행동에 나서면 될 것 아닙니까?”
빛이 미소 짓자 햇빛에 반짝이는 능금처럼 보였다.
그녀는 검지를 좌우로 흔들었다.
“불가능하니까요.”
“왜죠?”
“신성력이 마모되어 불신(不信)의 몸이 되었으니까.”
“…….”
“그게 바스카리의 현실이에요. 입으로는 믿음을 설파하면서도 정작 신성력을 다루지는 못해요.”
“신성력을 가진 제가 나타나면 난처하겠네요.”
“바스카리도 엄연히 신민들로 이루어진 국가예요. 결코 사제회 독단으로 좌지우지되는 국가는 아니란 말이죠. 시민들의 믿음이 사제회가 아닌 다른 방향으로 쏠리게 되면 그건 문제가 되겠죠.”
“사제회의 힘이 극에 달했다고 들었는데요.”
“그건 과거의 성국이죠. 현재는 사제회 존립의 의미 자체를 의심하는 사람들도 있어요.”
“제 앞에 있는 두 분들처럼요?”
교묘한 말이었다.
아직 그림자와 빛은 얘기를 빙빙 돌리고만 있었는데, 그것을 무시하고 한순간에 핵심으로 파고들게 만드는 질문이었다.
이 질문에 긍정하면 아군, 부정하면 원점이다.
그림자는 긍정했다.
“사제회는 좀 먹은 사과입니다. 바뀌어야 해요.”
“네, 좀 당황스럽긴 하지만 맞아요. 저희는 사제회의 상황에 불만을 품고 있죠.”
“사제회는 총 몇이죠?”
“꽃까지 함께한다면 총 7명이죠. 각기 다른 힘이 모여 성국을 지탱하는 거예요.”
“그들 중 당신들과 같은 생각을 가진 자들은요?”
“……몰라요.”
“확실한 건 우리 둘. 불과 물, 그리고 바위는 아마도 우리의 대척점에 있을 거예요. 그리고 바람은…….”
“바람은?”
“그 사람은 알 수가 없어요. 워낙 중립적인 사람이라. 다른 하나인 꽃은…… 당신이고요.”
정보와 정보 속에 질문을 숨기는 것이다.
꽃의 추기경을 자신이 맡기로 한 것은 꽃의 사제들과 동료들, 협회의 수뇌부 말고는 모른다.
이것도 긍정하면 사실상 저쪽도 핵심적인 정보를 가져가는 것이다.
‘얼버무려?’
상대는 정보를 주었는데 자신은 감춰야 하는 건지.
성진은 그런 성격이 아니었다.
“네, 제가 꽃의 추기경을 맡게 될 것 같습니다.”
“역시……. 찾아오길 잘했어요.”
“행사 때문이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겸사겸사.”
-킹사킹사.
-애니프사.
-킹니갓사.
-미리 말씀드리지만, 애니프사라고 꼭 오타쿠는 아닙니다. 편견은 사회를 병들게 해요.
-ㅖ.
-진짜로.
-ㅖ 그래서 님 프사가?
-사치코짱이요!
-갓치코요. ㅋㅋㅋ
빛은 곧장 핵심으로 들어갔다.
“당신은 어떤가요?”
“노선을 결정하라는 거군요.”
“네, 그래야 피아가 분명해지거든요.”
“제가 적이라면 어떻게 하실 겁니까?”
“뭐, 어떻게든…… 해 봐야지요?”
서로 눈빛이 오고 갔다.
성진은 상대가 믿을 만한 자라는 것을 느꼈다.
오로지 그들의 신성력에서.
“아쉽게도 그럴 일은 없을 것 같네요.”
빛과 그림자가 환하게 웃었다.
“다행이다!”
“언니!”
“정말, 다행이야…….”
빛은 많이 지쳤었는지 한숨을 크게 내쉬고 말했다.
“이제부터 당신을 우군이라고 생각할게요, 나무여.”
“알겠습니다.”
“당신은 성채남보석이죠. 또한 당신의 동료들도요. 이건 크나큰 이점이에요.”
“어째서죠?”
“높은 등급은 협회에 어느 정도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고 본인의 무력에 대한 증명도 되어 주죠.”
“적들이 함부로 행동할 수 없다는 얘기겠네요.”
“어설픈 암살 시도나 헛소문을 퍼트리는 등의 하책을 사용하지는 않겠죠. 그럼 이제 적들은…….”
“잠깐, 근데 이 연합의 공동 목표는 무엇이죠?”
“아, 내 정신 좀 봐. 나무여, 당신이 원하는 것은 무엇인가요?”
“제 이상을 말하는 겁니까? 아니면 바스카리에서 가지고 싶은 것을 말하는 겁니까?”
“둘 다요.”
성진은 망설임 없이 답했다.
자신의 요구를 들어주지 못하면 이 연합도 의미가 없다.
“이방인들을 전부 데리고 원래 세계로 돌아가는 것이 목표고, 그걸 위해 바스카리를 원합니다.”
“……맙소사.”
“…….”
“그걸 입 밖으로 꺼내는 사람은 처음 봤어요. 아, 아무튼…… 그럼 제가 원하는 것도 말해야겠군요.”
“말씀하시죠.”
빛과 그림자는 동시에 답했다.
“종말의 극복.”
“신성력의 회복과 신민들의 행복입니다.”
-이름하야 3복이구나.
-초복 중복 말복이 아니었다니.
-얘네 착한 애들이었구나. ㄷㄷ
성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어느 정도 합의점은 있는 것 같은데요?”
성진의 말에 빛과 그림자가 고개를 끄덕이다, 더는 참기 힘들었는지 성진에게 말했다.
“잠시만…… 잠시만 확인해 볼 게 있어요.”
“확인? 무엇을?”
“소, 손 좀 내밀어 보실래요? 아까부터 가슴이 욱신거리는 게…… 확인이 필요해요.”
“알겠습니다.”
-야! 이것은!
-이렇게 아플 줄 알았다면 사랑하지 말 것을.
-이럴 수가 ㅋㅋ 드라마 전개라고! 나님 넷플릭스 다 뿌신다고!
-널 사랑하는지…… 확인해 봐야겠어!
-ㅋㅋㅋ 설레는 앉은키 차이…….
-비켜! 바로 1인칭 간다. ㅋㅋ
성진은 빛과 그림자에게 손을 내밀었다.
그녀들은 성진의 손에 살포시 손을 포갰다.
후우웅.
“헉…… 허억…….”
“이건…….”
빛, 그리고 그림자는 당황했다.
몸속의 장벽을 부수며 치고 들어오는 엄청난 신성력의 물결에.
빛은 손을 뻗어 섬광을 뿜어냈다.
후아앙!
작은 공간에 눈이 멀어 버릴 정도로 막대한 빛이 쏟아졌다.
그림자 또한 마찬가지였다.
섬광이 사라지자, 그 자리엔 어둠만이 덩그러니 남았다.
시간이 지난 후, 둘은 작게 한숨을 토했다.
“후우…….”
“이럴 수가…….”
“나무여, 당신은 신성력이 충만하군요. 저와 제 동생도 신성력의 쇠락을 피할 수 없었는데…….”
“이런 힘은 처음 느껴 봐요……. 이거라면 바스카리도…….”
“바스카리?”
“아, 바스카리는…… 아무튼, 좋은 징조네요.”
성진은 신성력의 기준점이 없었기에 별달리 신경 쓰지 않았지만, 사제회에 속한 빛과 그림자는 명확하게 알고 있었다.
“이 힘은 바스카리를 흔들 거예요.”
“그보다 꽃의 교단은 차치하더라도 나무, 당신이 인정받기는 힘들 거예요.”
“어째서죠?”
“이방인이니까요. 더군다나 꽃의 교단에 들어온 지 얼마 되지 않은.”
그 부분은 전혀 틀린 말이 아니었다.
상대가 인정하지 못하겠다고 한다면 할 말이 없다.
“아마 저희가 있어서 그렇게 극단적으로 치닫지는 않을 거고 음…… 아마 당신을 사제회의 한 축으로 인정하기 위해 시험을 치를 수도 있어요.”
“요즘 부쩍 시험을 자주 치르는 기분이네요.”
“이 부분도 조율해 보도록 할게요. 그보다…… 교단의 세력과 금력은 충분한가요? 성국은 교단을 개인적으로 지원하거나 하는 일은…….”
“아마 충분할 겁니다.”
“예?”
“충분할 거라고요.”
“그, 그렇군요.”
***
성진은 얘기를 끝마친 빛과 그림자를 떠나보내고 꽃의 사제들을 불러들였다.
“음…… 그런 이야기들을 나누셨군요.”
“결론은 이겁니다. 최대한 인정받을 수 있도록 돕고, 어떻게든 세력을 키워 과반의 의결권을 확보해서 성국을 갖는 것.”
“말로 풀어서 설명하니 엄청 간단해 보이는군요.”
“실제로는 전혀 아니겠죠.”
“물론입니다. 절대 쉽지 않을 겁니다.”
“그보다…… 다들 부른 건가요?”
“가건물 단지로도 부족해 인근의 숙소를 썼습니다. 쓸데없는 지출이 많아 걱정이군요.”
“많이 모였나 보네요.”
“전부라고 하시지 않았습니까? 현재 동원할 수 있는 인원이 딱 그렇습니다.”
물론, 아직 새 발의 피다.
해방된 이방인들은 이번 행렬이 끝이 아니었고 수차례, 수십 차례로 나뉘어 올 것이다.
고작 300명 남짓한 인원으로 버거워해선 안 된다.
“자금은…….”
“아직은 충분하다고 합니다. 아직은…….”
“다행이네요.”
“그럼, 그들을 불러 오겠습니다.”
“부탁드리겠습니다.”
잠시 후, 먼저 계몽을 마친 이방인 노예 셋이 등장했다.
“은인을 뵙습니다.”
“어떤가요?”
“힘 말이에요?”
“네.”
“아직 미숙해요. 하지만 시간이 조금만 지나면 편하게 다룰 수 있을 것 같아요…….”
“다른 이방인들이 도착한 것 보셨나요?”
“아! 봤어요! 그 가건물에 머무시는 분들?”
성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헤헿 후임 받아라.
-이거 근데 통제되려나?
“그들에게도 힘을 주실 생각인 건가요?”
“이방인 모두에게 줄 생각입니다.”
“너무 위험할 것 같은데요.”
“여러분들에게 힘을 주는 것도 위험한 일이었습니다.”
“우린 달라요, 진짜 험하게 구르신 분도 있을 텐데…….”
“그들도 안고 가야 하겠지요. 선택지가 없으니.”
“힘을 선별적으로 주면…….”
“함부로 판단할 수가 없습니다. 서로가 서로를 지탱하기를 바라는 수밖에요.”
“고민되시겠어요…….”
작약이 성진에게 다가왔다.
“오고 있습니다. 일단은 100명만 호출했는데 괜찮으실까요?”
“문제없을 겁니다.”
이방인들이 주춤거리며 문을 열고 들어왔다.
그 모습이 순수해 보이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가련해 보였다.
성진은 공간을 채운 그들에게 물었다.
“반갑습니다. 저는 초모라고 부르세요.”
“저…… 우리를 왜…….”
“시, 시키시는 건 뭐든지 다 할게요!”
“저는 불만 없어요!”
성진은 이들에게 앞으로 다가올 일들을 말해 주었다.
“그런…….”
“우리가 싸워야 한다고요? 어째서? 누구를 위해?”
“스칸다 놈들은 다 재수 없는 놈들이라고!”
“그렇게 말하지 마! 선한 사람들도 있었어!”
“있기야 하겠지! 하지만 우리를…….”
“여러분.”
“쉿, 쉬잇! 말씀하신다.”
성진이 차분하게 설득했다.
“두 가지 선택지가 있습니다. 어쩌면 가혹한 선택입니다.”
“어떤 선택인가요?”
“하나는 복수를 하고 다시 이곳에서의 삶으로 돌아가는 겁니다.”
“그게 무슨 말이에요?”
“만약 복수를 택한다면…… 돌아갈 수 없습니다.”
“그건 싫어! 그 악마 같은 지주 놈한테 돌아가긴 싫다고!”
사람들이 웅성거렸다.
돌아갈 수 없다는 말은, 반대로 행동하면 돌아갈 수 있다는 말이기도 했으니까.
“다른 하나는 스칸다의 편에 서서 재앙과 싸우는 겁니다.”
“모든 원한을 잊고요?”
“원한을 잊으라는 말은 하지 않겠습니다. 다만…… 모든 건 선택입니다.”
억울하지만, 현재 상황이 그랬다.
“여러분들은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성진은 그렇게 얘기하고 밖으로 빠져나왔다.
처음에는 힘을 통제하기 위한 인력을 세워 둬야 했다.
하지만, 나중에는 서로가 서로의 억제제가 될 것이다.
성진은 세종의 이방인들이 안타까웠다.
고통받고 핍박받았지만 결국엔 세계를 위해 나서야 했으니까.
‘내가 판단하기 어려운 문제야.’
그들이 받은 고통을 전부를 안다고, 이해한다고, 말할 수 없는 성진이었기에 강요할 수 없었다.
다만, 힘을 하나로 모으지 않고서는 다가올 재앙을 막을 수 없다고 했다.
지금은 우선 그것만 생각하기로 했다.
성진은 밖에서 시간을 보낸 후, 안으로 들어섰다.
안으로 들어가니 이방인들이 결정을 내린 듯, 모두 흔들림 없는 눈빛으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들 중, 구레나룻이 길게 난 중년이 성진에게 말했다.
“도와주세요, 당신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성진의 갈등은 갈등으로 남겨야 했다.
누군가, 도움을 원했기에.
“제가 여러분들을 돕겠습니다.”
사람들이 다면의 진실로 빠져들었다.
***
어제만 해도 100명의 능력자가 탄생했다.
-어벤져스, 어셈블!
-300명 등장!
-왤케 많어. ㅋㅋㅋ
-근데 초모 근처에 있어야 위협적이지 아니면 초보적인 수준임.
성진은 바스카리로 향하기 전까진 카멜롯에 머물러야 했다.
앞으로 이방인들이 계속 도착할 것이고, 그만큼 많은 능력자들이 탄생할 것이다.
“무슨 생각합니까, 형님?”
“아, 이방인들 생각을 좀…….”
“걱정이 많은 듯 보입니다. 아우가 보탬이 되지 못해 죄송할 따름입니다.”
“골치가 아프긴 하네요. 나중에는 천 명이 넘게 불어날 텐데.”
“종말 이후에 옮겨졌다고 하니 그렇게 많은 인원은 아닐 겁니다. 아마 최대로 잡아도 3천 명은 안 되지 않을까요?”
“그럴 수도 있긴 하네요.”
“그 차원의 소용돌이에 휘말려 낀 사람도 있을 테니까요.”
“그 사람들도 함께 돌아갈 수 있으면 좋겠네요.”
“지금은 한 걸음씩 걷는 수밖에요.”
-송하린 웬일로 옳은 말을 했지?
-누구냐? 송하린 몸에서 나가!
-잡귀가 들었구나!
“그보다, 어떻게 보십니까?”
“란슬롯이 이길 거예요.”
둘, 아니 셋은 최후의 증명이 치러지는 장소에 와 있었다.
성진과 송하린은 멀리서 그 모습을 보고 있었지만 최별은 란슬롯과 트리스탄을 코앞에서 보고 있었다.
호수의 기사와 강철의 기사의 싸움이 곧 시작될 예정이었다.
철걱, 철걱.
란슬롯은 무표정한 얼굴로 투구를 뒤집어썼다.
그 거체가 대련용 갑주로 둘러싸이자 묘한 압박감이 느껴졌다.
트리스탄이 말했다.
“검은?”
“필요 없다.”
“나는 필요하다, 방패와 메이스를 쓰겠다.”
“얼마든지.”
트리스탄은 갑주를 파괴하는 데 훌륭한 성능을 보이는 메이스를 붕붕 돌렸다.
그가 오러를 주입하자, 메이스는 더할 수 없이 단단해졌다.
하지만, 그도 알고 있었다.
이 메이스는 첫 번째 공격에서 부서지리라는 걸.
원탁의 오러는 일반 무기가 견뎌 내기 어려운 힘이었다.
분명 모든 원탁의 기사들이 이 사실을 알고 있었고, 순수한 몸으로 싸워야 한다는 것도 깨달았을 것이다.
“멀린이 무슨 생각인지는 모르지만, 내 생각은 알지.”
“네 생각?”
“란슬롯, 널 쓰러트리겠다.”
“재밌군.”
대련하는 장소는 멀린이 형성한 마법 지대.
성벽은 물론 흙바닥도 존재하는 곳이었지만, 모든 건 허상인 곳이다.
물론 손으로 만지면 부서지고 그 반발력도 전해지지만 기본적으로는 네모반듯한 결투장이었다.
후우웅.
멀린이 건조하게 말했다.
“란슬롯, 트리스탄. 패배는 스스로 인정하거나 제가 판정할 때뿐입니다. 그럼, 시작하세요.”
탓.
“하아아아앗!”
트리스탄이 괴성을 지르며 메이스를 뒤로 젖혔다.
성진은 트리스탄의 전략을 곧장 눈치챘다.
‘한 번이다.’
한 번에 모든 힘을 집중시켜 란슬롯의 방어를 깨트릴 생각인 것 같았다.
듣기로는 란슬롯은 방어가 탄탄하기로 유명했다고 했다.
콰아아아앙!
메이스가 여지없이 깨져 나갔다.
파편들이 비산하며 뺨을 할퀴었다.
트리스탄이 위험을 무릎 쓰고 눈을 감지 않았다.
그는 오러로 몸을 보호하며 방패로 몸을 가렸다.
타격 전, 란슬롯이 팔뚝으로 메이스를 막았고 전해진 충격으로 보아 쓰러지지 않은 것 같았다.
콰아앙!
방패가 흉물스럽게 찌그러졌다.
란슬롯의 주먹질 한 방에.
“제길.”
훙.
휘릭.
콰아앙.
방패가 날카롭게 횡으로 날아 란슬롯을 노렸지만 그는 한 발짝 움직여 그 공격을 피했다.
때문에 애꿎은 성벽만 부서졌다.
결국, 원점이다.
원탁의 기사들은 트리스탄과 란슬롯의 충돌을 눈에 담았다.
어쩌면 머릿속으로 자신과 란슬롯의 대치를 그리고 있는지도 몰랐다.
모두의 마음속에는 한 가지 생각이 자리 잡았다.
‘란슬롯에게 무기는 소용없어.’
순수하게 부딪혀 그를 상대해야 했다.
디고어가 히죽 웃었다.
“히야, 멀린이 머릴 썼네. 변수가 없어.”
“하하하! 동감이야. 이거 순수하게 란슬롯보다 강해야 하는 거였군.”
“흐음…….”
트리스탄은 자세를 낮추고 몸을 단단하게 했다.
그는 바로 앞의 란슬롯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에게 주먹을 뻗어 보았다.
퉁.
트리스탄의 주먹이 허공을 스치고 날아가 란슬롯의 어딘가에 부딪혔다.
아마 란슬롯이 원하는 공간일 것이다.
란슬롯의 주먹이 트리스탄의 가슴을 가격했다.
콰앙.
“크헉…….”
몸이 단단하다고 고통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란슬롯의 반격에 트리스탄은 순간 정신을 잃을 뻔했다.
그는 다시 이를 악 물고 란슬롯의 허점을 노렸다.
‘없어.’
트리스탄의 시야는 넓었다.
원탁의 기사들이 자신을 보고 있었다.
그들의 눈에서 보인 것은 절망, 혹은 연민이었다.
패배할 자신에게 보내는.
“으아아아!”
부웅.
텅.
텅.
텅.
무거운 주먹이 연달아 란슬롯에게 쇄도했다.
하지만, 번번이 막혀 갈 곳을 잃었다.
그의 갑옷에 흠 하나 낼 수 없었다.
자신의 주먹은 마치 호수에 돌을 던지고 반응을 지켜보는 것 같았다.
그렇게, 끝없이 가라앉았다.
붕.
탁.
“으, 으으…….”
트리스탄의 몸이 붕 떠올랐다.
란슬롯이 그의 어깨를 잡고 한 손으로 들어올렸다.
어마어마한 근력에 원탁의 기사들이 식은땀을 흘리는 와중, 굉음이 들렸다.
콰아아아앙!
“컥…….”
트리스탄이 란슬롯에게 복부를 공격당해 바닥에 널브러졌다.
그렇게 꿈틀거리며 트리스탄은 일어나지 못했다.
멀린이 말했다.
“란슬롯 승리. 란슬롯은 계속해서 자신을 증명할 기회를 가질 것이고, 트리스탄은 그렇지 못할 겁니다.”
란슬롯 승리, 트리스탄 패배.
원탁의 기사들이 방금 전투를 곰곰이 생각했다.
트리스탄의 문제라면 단단하되 빠르지 않았다는 것.
조금 더 빨랐다면, 조금 더 묵직했다면 어쩌면 닿을 수 있었을 텐데.
그리고 또 다른 생각도 있었다.
디고어가 중얼거렸다.
“음, 그래도 이겼을 것 같지는 않은데…….”
퍼시벌은 몸을 돌려 나갔다.
최별이 고개를 돌려 성진이 있는 곳을 바라보았다.
최후의 증명을 지켜본 사람 중, 유일하게 무언가를 확인한 사람이 있었다.
성진은 뭐에 홀린 듯이 중얼거렸다.
“오른팔…….”
송하린이 성진의 오른쪽에 앉아 있다가 화들짝 놀랐다.
“앗! 죄송합니다. 형님 손잡이를 동생이 쓰고 있었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