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1
141화
-뭐야! 방금 하늘에 뜬 거 뭐냐고!
-데자뷰 연출 뭐냐고! 내 마음 폭행당했으므로 고발 조치하겠습니다. 내가 평생 아낄 테니 합의는 없습니다.
-흐아아앙아 ㅠㅠ 예언 몬데에에에에.
-잠만, 이거 진짜 게임에서 한 예언이 일어난 거?
-ㄴ 생각해 보셈. 저기 초모든 누구든 가면 그냥 만들어 주는 거잖아. 굳이 예언이고 뭐시고 할 건덕지가 없자너. ㅋㅋ
-아무튼 이번 연출 레전드다. ㄷㄷ 벌써 움짤 저장해 놨지롱~
-얘두라 용인 왔더라? ㄹㅇ 거리 계산해 보면 소식 듣자마자 급발진으로 뛰쳐나온 것 같은데?
-없었으면 별의 용광로 다 불탔음. 물론 초모 빼고 나머지. ㅋ
스으으.
별의 용광로의 기운이 잦아들었다.
은하수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졌고, 난쟁이들은 용광로에서 튕겨 나가 기둥에 부딪혔다.
퍽!
“커헉!”
“크…… 크으…… 이게 무슨 일이야.”
“무슨 상황인지…… 뭐, 뭐야?”
맥동하는 순백의 검을 본 난쟁이들은 기겁하며 다가왔다.
“그, 그 검은 대체?”
“한 번만 봐도 괜찮은가?”
성진은 짤막하게 답했다.
“나중에. 지금은 할 일이 있습니다.”
크와아아아아아아아!
“으아악! 아, 알겠네.”
“비켜 주자고!”
게릭이 성진과 눈을 맞추고 고개를 끄덕였다.
스칸다는 게릭에게 어떤 미래를 보여 준 것일까 궁금했지만, 의문은 나중에 풀기로 했다.
성진은 들고 있던 카이의 대봉을 확인했다.
하얀 대봉은 기운을 잃고 오래된 흑백사진처럼 색이 변질했다.
게릭에게 대봉을 넘기고 성진이 훌쩍 뛰어 시가지로 향했다.
상황은 좋지 않았다.
대주술사가 성진이 합류한 것도 모르고 소리쳤다.
“움직여요! 우리는 수가 많아요!”
“거기! 뭉쳐 있지 마! 피할 수 없어!”
후우웅.
세게이아의 자손은 날갯짓해 공중에 떠 있었다.
어느 순간, 용의 볼이 크게 부풀었다.
후우웁…….
“온다! 숨어요!”
콰아앙!
콰앙!
용은 전략을 바꾼 건지, 불길을 토해 내는 방법을 바꾸었다.
용이 타오르는 구체 형태로 수 발을 토해 냈고 그 구체는 각기 다른 목표를 향해 날아갔다.
최별이 지붕에서 몸을 날려 약트에 탄 용인을 잡아챘다.
화르륵.
끽.
약트가 뼈째로 타올랐다.
“가, 감사합니다…….”
송하린은 자신에게 날아오는 화염구를 먼 거리에서 베어 버렸다.
서걱.
반으로 갈라진 화염 구는 송하린이 있는 건물 대신 다른 건물을 태웠다.
하지만, 모두가 송하린일 수는 없었다.
화염 구에 맞아 불타는 용인들도 있었다.
“끄어어…….”
“메젠토!”
“붙지 마! 불이 옮겨 붙는다!”
불타는 실루엣은 입을 벌려 뭔가를 말하려 했다.
아마도 ‘꼭’이라는 말이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뒷말은 하나뿐일 것이다.
용인이 고개를 끄덕이자 메젠토라는 용인은 그대로 쓰러졌다.
용인들의 눈이 분노로 타올랐다.
하지만, 용은 화염 구를 방금보다 두 배는 많은 숫자로 쏘아 냈다.
“이건…….”
닿을 수 없고, 피할 수 없다.
용이 그 존재만으로도 생물의 정점이라는 것을 증명이라도 하려는 듯, 용인과 용은 근원적으로 다르다는 것을 압도적인 힘의 차이로 보여 주고 있었다.
다행히 시가전이라 엄폐물이 많았기 때문에 용인들은 재빨리 건물들 틈으로 몸을 숨겼다.
화르륵.
불에 타는 건물과 용인들은 그 날의 악몽을 재현하는 것 같았다.
단지, 그 대상이 고대 난쟁이에서 용인들로 바뀌었고 찬란했던 탄타르빌이 이제는 희미한 빛만을 뿜어낸다는 것만이 달라졌을 뿐.
“어떻게……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그때, 최별이 있는 방향에서 소리가 들려왔다.
-탄타르빌 구속 사슬 작동.
촤르륵.
텅!
다리 한쪽을 붙잡힌 세게이아의 자손이 격하게 날갯짓했다.
포대를 뜯어 버릴 요량이었는데, 지나던 용인들이 전부 그 포대에 매달렸다.
“잡아! 끌어!”
“으으으으으!”
으직, 으지직.
결국, 포대가 뽑혀 날아가면서 용인들을 바닥에 나뒹굴게 했다.
그러나 추락한 용인들은 금세 벌떡 일어났다.
그들의 단단한 몸은 이 정도로 지치거나 쓰러지지 않았다.
그들은 웃었다.
“불의 비가 멈췄어!”
“움직여!”
게릭은 헥토가 탄 약트의 뒤에 타고 달리고 있었다.
그가 중얼거렸다.
“멍청한 놈들, 무지하게 늦었군.”
“미안하게 생각합니다.”
“미리 말하지만 내가 용서한다고 난쟁이들이 용서하는 건 아니야. 알아두라고.”
헥토는 고개를 끄덕였다.
“누군가에게 용서를 구하기 위한 행동은 아니었습니다. 다만 우리 자신이 속죄하고 싶었을 뿐.”
“궤변은…….”
“싫으십니까?”
“아니, 잘 왔어. 이렇게 마주하니 그대들과 어울리던 때가 떠오르네, 푸히히히히!”
“탄타르빌…… 너무나 아름다운 도시입니다. 우리는 왜 이 도시를 지키지 못했을까요?”
“세게이아는 강했어. 형님과 도시가 전력으로 부딪혔기에 쓰러트릴 수 있었던 거야.”
화르륵.
불길이 약트의 주변으로 떨어졌다.
헥토는 흔들리지 않고 고삐를 쥐었다.
“게릭, 묻고 싶은 게 두 가지 있습니다.”
“지금 이 난장판에?”
“꼭 물어야 하는 것들입니다.”
“뭐, 물어보든지.”
“그 남자…… 그 남자가 예언의 주인입니까?”
“몰라, 도마뱀들의 예언 따위는.”
“게릭.”
“하지만 그가 예언의 주인이든 아니든, 스칸다가 선택한 희망이라는 건 분명하지. 이건 그녀에게서 직접 들은 거니까 맞을 거야. 난 도마뱀들 말보단 그녀를 신뢰하거든.”
헥토가 웃었다.
“그거면 충분합니다.”
“그래, 그거면 충분하지. 근데 한 가지가 더 있다면서?”
“아, 그랬었죠.”
“싱겁기는, 뭔데?”
헥토는 방금 질문보다 더 어려운 질문을 하려는 듯 꾸물거렸다.
그 모습에 답답해진 게릭이 성을 내며 물었다.
“뭔데? 다 늙어서 사춘기 소년처럼 왜 그래?”
“저…… 게릭…… 당신은 이 세상에 유일하게 남은 고대 난쟁이 맞지요?”
“그럼, 나 말고 생존자가 또 있을 거라 생각하나? 우리는 서로를 느낄 수 있어. 이 세상엔…… 나 혼자야.”
헥토가 고개를 저었다.
게릭은 이 용인이 왜 그런 행동을 하는지 곧 알게 되었다.
“게릭, 당신은 혼자가 아닙니다……. 용인이 있지 않습니까?”
“뭐? 푸히히히히! 당돌하군. 묻고 싶은 건 뭔데?”
“우리는…… 여전히 난쟁이의 친구입니까?”
“글쎄…….”
게릭은 이 문제에 대해 답을 내릴 수 없다.
그의 판단을 도와줄 다른 난쟁이들은 이미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에.
하지만, 게릭은 오히려 단순하게 생각하기로 했다.
“너희들은 내 친구야. 친구끼리 싸우기도 하는 거지 뭐.”
“…….”
“이 세상에 고대 난쟁이는 나뿐이니 너희는 여전히 난쟁이의 친구겠지. 뭐, 그런 것 아닐까?”
“그런…… 거겠죠.”
“실수는 누구나 해. 저기 태양을 가린 세게이아의 자손조차도 완전하진 않아. 늘, 우리는 선택을 강요받고 옳게 판단을 해야 하지. 그러니…… 다음번에는 옳은 선택을 내리자고.”
다음번.
또 다음 기회가 있을 거라는 게릭의 말은 헥토에게 힘이 되었다.
콧김을 뿜은 헥토가 약트의 고삐를 당겨 더 빨리 움직이게 했다.
“우리의 유대에 용은 쓰러질 겁니다.”
“푸히히히, 잘도 쓰러지겠다. 용을 쓰러트리는 건 우리가 아니야. 저 친구지.”
성진이 주인 잃은 약트를 타고 움직이고 있었다.
어쩐지 그 모습이 믿음직스러웠다.
“어? 그런데…….”
강행군에 지쳐 있던 용인들이 일어났다.
그들은 처음 탄타르빌에 도착했을 때보다 훨씬 격하게 움직였다.
최후의 발악인 줄 알았는데, 그 움직임이 꽤 오랜 시간 계속됐다.
심지어는 크게 다쳐 쓰러졌던 용인들도 멀쩡히 일어나 싸우고 있었다.
헥토는 혼란스러웠다.
“……무슨 일이 일어나는 겁니까?”
대주술사의 주술 중에는 막대한 효과를 발휘하는 능력도 있었지만, 쓰러졌던 이들을 저렇게 반동 없이 활동하게 할 정도는 아니었다.
“나도 몰라. 저 청년이 벌인 짓이지.”
“…….”
“헥토, 다 왔다.”
건너편의 최별과 눈짓한 헥토는 장치를 가동했다.
-탄타르빌 구속 사슬 작동.
촤르륵.
텅!
사슬이 날아가 용의 다리를 붙잡았다.
게릭이 씁쓸하게 말했다.
“빌어먹을, 장치가 모두 멀쩡했으면 저 용 따위는 손쉽게 쓰러트렸을 텐데.”
“그래도 할 수 있는 일을 해야 합니다. 우리는 용에게 상처 입힐 수 없어요. 그렇다면 용의 신경을 우리에게 돌리는 것 정도는 해야겠죠.”
“오래간만에 옳은 소리 하네. 온다, 불.”
-탄타르빌 비상 격벽 가동.
철컥.
콰아앙!
격벽이 솟아오른 순간, 화염 구가 떨어졌다.
콰아아아앙!
“윽…….”
“세게이아의 자손도 불길을 쏟긴 어려울 겁니다. 참죠, 저 여인이 곧 뭔가 해 줄 겁니다.”
스르륵.
후우웅.
대주술사의 주술이 게릭과 헥토의 몸을 보호했다.
몸을 침습하는 열기가 줄어들었고 시야가 트였다.
그 짧은 순간에 술식을 완성한 대주술사가 숨을 헐떡였다.
그리고, 최별이 타이밍을 잡았다.
-탄타르빌 구속 사슬 작동.
촤르륵.
텅!
“됐어요!”
크와아아아아아!
용이 사슬을 끊으려 날개를 펄럭였다.
“놓치지 마라! 기회다!”
“던져!”
훙!
퍽!
퍼억!
창을 비롯하여 단검, 칼, 심지어 건물의 부서진 잔해까지.
용인들은 최대한 용의 집중을 방해했다.
그들의 노림수를 위해.
“됐다!”
“사슬에 올랐어!”
양쪽 사슬은 성인 남성 둘이 걸어도 넉넉할 정도로 굵었고, 그 때문에 쉽사리 끊어지지 않았다.
성진과 송하린이 양쪽 사슬에 나뉘어 타고 하늘로 향했다.
“안 돼! 위험해요!”
화르륵.
송하린이 탄 사슬이 연결된 포대에 화염이 작열했다.
격벽은 결손 때문에 작동하지 않았고 포대는 결국 터졌다.
콰아앙!
“하린 양!”
“피했소! 제길!”
사슬에서 뛰어내린 송하린이 재빨리 자세를 잡고 떨어지는 사슬을 피했다.
한쪽 사슬은 끊어져 버렸다.
세게이아의 자손이 반대쪽 사슬을 돌아보았다.
어느새 성진이 사슬의 끝까지 다다라 있었다.
용은 몸을 틀어 그 반동으로 포대를 뽑았다.
하지만, 성진의 검이 먼저였다.
스릉.
촤아아악!
용은 쇠고랑을 풀 필요가 없었다.
성진의 검이 쇠고랑이 붙잡은 용의 다리를 통째로 잘라 냈기 때문에.
크와아아아아아아아아아!
콰아앙!
쾅!
세게이아의 자손은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하고 건물을 이리저리 들이받았다.
성진이 사슬을 피해 건물을 디디며 내려왔다.
용인들과 성진 일행이 그의 곁으로 모여들었다.
“저, 정말 용을 벴어!”
“그것도 단칼에 베었습니다! 제가 이 눈으로 봤습니다!”
“대단해! 대단하다고, 어린 종족!”
거대한 신성력 덩어리.
성진은 지금 힘이 계속 끓어올라 터져 버리기 직전이었다.
스칸다를 쥐자 본래 있던 신성력의 몇 배에 달하는 힘들이 충돌했다.
그는 인상을 쓰고 대꾸했다.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그의 말에 대주술사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말이 맞아요. 예언의 주인이여, 세게이아의 자손은 이제 함부로 접근하지 않을 겁니다. 그대를 경계할 거예요.”
“혹시 도망은…….”
대주술사는 고개 저었다.
“용에게 도망이란 있을 수 없는 행위에요. 본능에도 그런 행위는 없을 거예요.”
쫓아낼 수도, 대응할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조금 있으면 세게이아의 자손이 몸을 회복하고 다시 날아들 것이다.
용의 재생력은 막대하다.
그 재생력이 손 쓸 수 없을 정도로 치명적인 상처를 입혀야 했다.
가령, 머리를 베는 것처럼.
“푸히히히! 그 방법을 써야겠군.”
“게릭?”
“나에게 방법이 있어. 저 용을 추락시킬.”
“말씀해 보시지요.”
딸칵.
게릭이 자신의 의안을 분리했다.
그것은 보석처럼 보였다.
계획을 설명한 게릭이 고개를 끄덕이자 그 얘기를 들은 용인들과 성진 일행도 마찬가지로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지? 단 한 번이야. 다음 기회는 없을 거라고. 우리에겐 하늘을 나는 재주 따위는 없으니까.”
***
회복을 마친 세게이아의 자손이 탄타르빌을 천천히 둘러보았다.
이 생물의 정점은 분노한 상태다.
열등한 족속들이 자신의 영역에 발을 들인 것도 모자라 자신을 상처 입히기까지 했다.
분명 머리끝까지 분노가 차올랐다.
하지만, 생물의 정점은 그것을 다스렸다.
분노로 판단을 그르치는 건 말 그대로 열등한 종족들이나 하는 실수다.
용은 용이다.
하늘은 용의 것이고, 세게이아는 그것을 자손에게 물려주었다.
태양을 가리는 용이 서서히 몸을 일으켰다.
새로운 다리가 돋아났다.
아직 통증이 가시지 않았지만, 움직이는 데 불편한 것은 없었다.
모두 불태울 것이다.
탄타르빌의 남은 흔적들을 불태우고, 세상을 향해 날아갈 것이다.
그러기 위해선 우선, 그 새하얀 날붙이를 휘두르던 존재.
상처를 입어 본 적이 처음이라 당황했지만, 다음에는 불로 태워 녹일 것이다.
세게이아의 자손이 하늘을 순회하며 성진과 용인들을 찾았다.
타닥, 탁.
도시는 온통 불바다였다.
그들은 모두 도망친 것일까.
그때, 건물이 쓰러지는 소리 대신 기척이 들려왔다.
“지금이다! 달려!”
“와아아아!”
키이이이.
약트 무리가 건물 사이사이에서 우르르 튀어나왔다.
한눈에 보기에도 모든 인원이 다 나온 것 같았다.
용은 고도를 낮춰 그들에게 다가갔다.
“온다! 와!”
“두려워하지 마! 약속한 장소에서 만나야 해!”
굽이굽이 골목을 누비는 그들은 멈출 생각이 없어 보였다.
상관없었다.
화염은 그들을 도시와 함께 초열로 녹여 버릴 테니까.
후우웁.
콰아아아아앙!
불덩이 하나가 날아가 건물에 맞았다.
자세히 보니 건물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어 맞추기가 어려웠다.
그렇다면 통째로 그어 버리면 그뿐.
후우웁.
“불길이다! 위험해!”
“믿어라! 믿어야 해!”
마침내, 불길이 토해졌다.
콰아아아아아아!
불길은 분명 약트를 탄 용인 무리를 휩쓸어야 정상이건만, 뭔가에 막혀 나아가지 못했다.
불길을 막은 건 성진의 방벽이었다.
성진이 소리쳤다.
“길이 꺾입니다! 왔어요!”
“오케이!”
다양한 높낮이의 건물들이 모여 있는 곳.
탄타르빌의 중심지로 향하는 길이었다.
그곳까지 도달하기 위해서는 길을 크게 여러 번 꺾어야 하는데 저고도로 비행하면 길에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탄타르빌 철구 사출.
펑.
콰아앙!
날개에 철구를 얻어맞은 세게이아의 자손이 불길을 끝까지 뿜어내지 못했다.
측면에서 최별이 대기하고 있다가 용을 노리고 쏘아 낸 것이다.
“달려어!”
약트를 타고 질주하는 그들은 미친 듯이 웃었다.
용을 상대로 술래잡기를 하는 상황에 미치지 않는 것이 이상한 것이겠지만.
용은 고도를 높여 중심지로 향했다.
어차피 이들이 그곳으로 가려 한다면 자신도 함께다.
굳이 좁은 길을 이용할 필요가 없었다.
용은 입에 불을 머금었다.
화염 덩어리가 하늘에서 땅으로 떨어졌다.
“크아아악!”
“틀렸어! 두고 가!”
“제, 제길!”
지붕과 땅을 달리는 약트는 화염 덩어리를 전부 피할 수는 없었다.
피해자가 속출했고, 약트와 함께 타올랐다.
기세등등해진 세게이아의 자손이 그들을 불태우기 위해 고도를 낮췄다.
하지만, 그것은 명백히 실수였다.
“보루 발동.”
-탄타르빌 최후의 보루 발동.
기이이잉.
철컥.
철컥.
타라라라.
철컥.
사방에 포대가 형성되었다.
모든 포대에서 사슬이 사출되었다.
철컹.
철컹.
철컹.
게릭이 탄타르빌 위험 대응 자동화 체계를 설계했을 당시, 반 장난으로 넣었던 기능.
왕성의 광장까지 밀어닥친 적들을 상대로 시간을 버는 기능이었다.
기능의 작동과 함께 음향 기기에서 큰 소리가 흘러나왔다.
-도망가 형! 여긴 내가 막을게! 도망가…… 가…….
음향 기기에서 흘러나온 게릭의 목소리가 흩어졌다.
탄타르빌의 왕 게야르를 위해 만들었던 기능.
게야르는 그럴 필요 없다고 손사래를 쳤지만, 한편으론 동생의 장난이 기특하다고 웃었었다.
지금, 용이 사로잡힌 이곳은 탄타르빌의 왕성 앞 광장이다.
“세게이아의 자손이여. 너는 추락할 것이다. 네게서 탄타르빌의 햇빛을 되찾아 가겠다.”
크와아아아아!
세게이아의 자손이 사방에서 연결된 쇠고랑을 풀고자 안간힘을 썼다.
하지만 몇 가닥의 쇠고랑은 끝끝내 풀지 못했다.
게릭의 의안은 동력의 집약체였다.
잠시 용의 움직임을 막는 것 정도는 가능했다.
크와아아아!
“포대가 뜯겨 나간다! 붙잡아!”
“붙잡아! 불을 두려워하지 마라!”
“우리는 용인이다! 마지막 기회야! 긍지를 지켜라!”
용인들이 용을 구속한 다섯 개의 사슬에 매달려 잡아당겼다.
“끄아아아아!”
“잡아아!”
“막으라고! 막아! 버텨!”
용인들의 근육이 터져 나가고 눈에서는 실핏줄이 터져 피눈물이 흘렀다.
하지만 그들은 끝끝내 사슬을 놓지 않았다.
세게이아의 자손이 몸부림치자 사슬이 출렁거렸다.
사슬을 여럿이 걷고 있었다.
용이 불을 뿜자 사슬 하나가 끊어지면서 용인이 추락했다.
사슬 하나가 끊기자 나머지는 쉬웠다.
툭.
철컹.
두 개의 사슬이 마저 끊어졌다.
검은 여자가 달려왔다.
이번에도 같은 수작일 것이다.
세게이아의 자손은 볼을 크게 부풀려 불덩이를 뿜었다.
화르륵.
“흐아아아압!”
검은 여자의 날붙이가 불덩이를 베었다.
검은 연기가 피어올랐다.
세게이아의 자손은 작은 존재가 자신의 불꽃을 베었다는 걸 믿을 수 없었지만, 분명 검은 여자도 그 충격에 함께 추락했다.
서둘러야 했다.
반대편에 아까 전 자신의 다리를 벤 존재가 올라왔을 것이다.
세게이아의 자손은 고개를 돌려 곧장 불을 뿜으려 했다.
“땡.”
사슬을 걷고 있던 건 붉은 검사였다.
붉은 검사는 미련 없이 자리를 이탈했다.
용은 태어나 처음으로 공포를 느꼈다.
아까 검은 여자가 타고 오르던 사슬에 누군가 있었다.
그 누군가는 벌써 사슬 끝에 도달해 있었다.
크와아아아아아!
최후의 불길.
하나, 세게이아의 자손은 그것을 뿜지 못했다.
성진의 아수라는 그 호흡을 허락하지 않았다.
새하얀 수평선이 그어졌다.
푸화아아악!
콰아아아아아아아!
하늘을 향해 불을 뿜는 용의 머리.
하지만, 그 불꽃은 허망했다.
촤아아아아아아.
하늘에서 피 비가 내렸다.
용의 피였다.
용인들에게 신성하게 여겨졌던 피가 하늘에서 쏟아졌다.
그것을 뒤집어쓴 용인들은 경탄하거나, 찬미하지 않았다.
불쾌한 표정을 지었다.
목 없는 용은 멸망한 도시의 광장으로 추락했다.
콰아아아아앙!
그 거대한 몸집이 가렸던 햇빛이 탄타르빌에 들이쳤다.
용이 앗아 간 것들.
용인은 긍지를 되찾았고 난쟁이는 도시와 햇빛을 되찾았다.
스칸다 최후의 용이 쓰러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