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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J는 종말에 적응했다-138화 (138/222)

# 138

138화

용인을 보고 당황하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최별과 송하린은 50년 전 스칸다 황금기에 본 적이 있고, 난쟁이들은 살아온 세월이 오래되었기에 몇 번 부딪힌 적이 있었다.

성진은 카이를 본 적이 있었기에 오히려 용인이 친숙했다.

성진과 일행은 두꺼운 꼬리를 밖으로 내놓고 하던 일을 계속하는 용인들에게 다가가 물었다.

“해를 입힐 생각은 없습니다. 접근해도 괜찮습니까?”

얼굴에 문신한 용인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대들은 무엇입니까? 어떻게 이곳까지 온 것입니까?”

일행은 순식간에 눈빛을 교환했다.

자신들이 용의 피를 원한다는 것을 밝힐 필요는 없었다.

“용의 고원에 목적이 있어 들렀습니다. 관련된 임무를 맡았습니다.”

“또 그 정찰인가 뭔가 하는 것이로군요. 참으로 피곤한 종족입니다.”

최별과 송하린이 움찔했다.

상대는 정찰 임무를 알고 있었다.

-정찰 임무 초모 맘들이 받아 오라고 하지 않았었나?

-혹시 몰라서 받은 거 아님?

-정찰은 정찰이긴 하잖아

-그거 근데 랭크랑 포인트 왤케 높음?

“먼저 정찰을 왔던 이가 있습니까?”

“물론이지요. 그들도 당신들처럼 우리에게 다가와 무엇을 하는지 물었었지요.”

“그들은 모두 어디 있습니까? 귀환한 겁니까?”

임무는 미달성 상태.

그렇다는 얘기는 그들이 아직 이곳 어딘가에 있을 수 있다는 얘기다.

용인은 고개를 저었다.

“모두 죽었을 거요. 저주받은 폐허, 탄타르빌로 향했으니……. 나오는 것은 보지 못했습니다.”

“……탄타르빌에 관해 얘기를 듣고 싶습니다, 괜찮으시겠습니까?”

용인은 고개를 저었다.

“작은 종족은 호기심이 왕성하군요. 혹시 아직 성장기인 겁니까?”

-꼬마 취급. ㅋㅋ

-용인은 근데 오래 산다고 하니까. ㅇㅈ

-용인 입장에선 자기가 어른이긴 함.

성진이 입을 다물고 있자, 일하던 용인들이 고개를 돌려 성진 일행을 보았다.

“그대들에게서 악의는 느껴지지 않는군요. 탄타르빌로 향할 생각입니까?”

“그렇습니다.”

“이런…… 잘못된 길을 가려 하시는군요. 그곳은 죽음으로 향하는 길목입니다.”

“자세히 듣고 싶습니다.”

용인들은 고개를 끄덕이고 따라오라는 듯 손을 휘저었다.

“오늘 일은 거의 끝났군요. 가시죠, 용의 고원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성진과 일행은 용인들을 따라 이동했다.

용인들이 이 후덥지근한 고원을 지나치는 모습에서 성진은 이상한 점을 눈치챘다.

“외곽만 이용하시는 것 같은데, 맞습니까?”

“중심부로 이동하면 탄타르빌에 가까워집니다. 그건 매우 위험한 일입니다.”

종의 정점이라 할 수 있는 용인들이 저렇게 조심할 정도면 탄타르빌에 무엇이 있기는 있는 것 같았다.

“이곳입니다. 용의 고원에 사는 이들은 모두 이곳에 모여 삽니다.”

눈으로 확인한 거주 구역은 원시적인 공간이었다.

규모도 그렇게 크지는 않았다.

도시 정도를 생각했지만, 붐비는 마을 정도의 규모였다.

용의 고원의 위치를 생각해 봤을 때 어쩌면 이것이 당연한 건지도 몰랐다.

“스칸다에 용인은 우리만 있는 게 아닙니다.”

“예, 알고 있습니다.”

“아까 놀라시는 것 같아서 말씀드렸습니다.”

용인들은 성진 일행에게 식사를 대접했다.

식사라고 표현하기도 민망한 이끼 죽 같은 정체불명의 요리였지만, 먹는 데 무리는 없었다.

성진과 일행은 용인들에게 둘러싸였다.

저들도 궁금할 것이다.

이방인들이 이곳까지 무슨 일로 온 것인지.

하지만, 궁금한 것은 성진이 더 많았다.

“궁금한 게 있습니다.”

“말씀하시지요. 식사는 마쳤습니다.”

“병기들이 고원에 가득 꽂혀 있던데 그것들은 다 무엇입니까?”

“죽은 병기들 말이군요.”

“죽은 병기들?”

“주인들은 스칸다에서 사라지고, 품었던 뜻은 희미해졌습니다. 병기가 주인을 잃는다는 건 죽은 것과 마찬가지지요.”

-아니, 우리 거 왜 거기에 꽂고 있냐고 ㅡㅡ 재떨이냐?

-누구 쟤네들한테 허락한 사람?

-아하~ 이거 이제 보니 도둑놈들 소굴이구만?

-당장 검거해!

“그 병기들을 왜 고원에 모아 두는 것입니까?”

“그것에 대해선…… 음…… 말씀드려도 될지 모르겠군요.”

이들이 죽은 병기라고 표현하는 것은 단순히 주인 잃은 병기들이 아니었다.

50년 전 스칸다를 떠난 이방인들의 병기였다.

분명 이유가 있을 것이다.

“용인은 주술이 부흥한 종족입니다.”

대주술사들 중 용인이 많다고 들었던 성진은 수긍했다.

“그렇게 들었습니다.”

“선조의 피를 이용해 다가올 위협을 알 수 있지요.”

“신탁과 비슷한 겁니까?”

“맞습니다. 하지만 약간 다릅니다. 우리는 신을 믿지 않으니까요.”

“믿어서 아는 게 아니다?”

“우리가 알려고 했기에 아는 것이다. 이 정도로 말씀드릴 수 있겠군요.”

선조의 피는 아마도 용의 피를 말하는 것 같았다.

송하린과 최별이 눈빛을 보내 왔다.

성진이 대충 알아들었다는 듯이 눈빛을 보내고 대화를 이끌었다.

“그 죽은 병기를 고원에 모으는 행위가 다가올 위협을 막을 수 있는 겁니까?”

“우리는 모릅니다. 그저 대주술사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셨지요.”

“대주술사님께선…….”

“음…… 이럴 게 아니라 대주술사님을 뵙게 해 드리겠습니다. 어떠십니까?”

대주술사라는 용인이 이 무리의 지도자인 것 같았다.

성진과 일행은 고개를 끄덕였다.

마을에서도 아주 깊숙한 곳까지 들어가야 나오는 동굴. 그곳으로 걸어 들어갔다.

뚝, 뚝.

천장에서 물방울이 떨어져 바닥과 머리카락을 적셨다.

습기가 가득한 공간이라 찝찝한 기분이 들었지만, 용인들은 전혀 거리끼지 않는 모습이 이런 곳을 좋아하는 눈치였다.

“위대하신 분이시여, 이방인들이 찾아왔습니다.”

안쪽에서 늙은 용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목소리로 성별을 구분하기 어려웠지만, 아마도 여성인 것 같았다.

“……가까이 오게 하시지요.”

“알겠습니다. 저희는 떨어져 있겠습니다. 편히 말씀 나누시지요.”

용인들이 합장하고 뒷걸음질로 물러났다.

천을 뒤집어쓴 용인은 다른 용인들보다 덩치가 작았다.

피부도 군데군데 진물이 흐르고 몸에서 고약한 냄새가 풍겼다.

일행은 당황했지만, 인상을 찡그리는 실수는 저지르지 않았다.

“어서 오세요. 이방인들이여.”

성진이 고개를 숙였다.

최별이 앞으로 나서서 말했다.

“환영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며칠 신세를 질 수도 있는데 불편을 끼쳐 드리는 건 아닐까 걱정됩니다.”

“아닙니다. 그대들의 방문이 이 늙은이는 그저 즐겁습니다.”

어두워 잘 보이지 않았지만, 말투로 판단했을 때 노령이 맞는 것 같다.

성진이 물었다.

“고원에 병기를 가져다 놓는 것은 어떻게 된 일입니까?”

“미래를 보았습니다.”

“그렇게 들었습니다.”

“가시 돋친 고원에 별이 쏟아질 것이다. 주인 잃은 병기들이 새 주인을 찾을 것이다.”

“그게 무슨 뜻입니까?”

“이 늙은이가 본 미래입니다. 아주 오래전에 본…….”

“이방인의 병기여야만 하는 이유가 있습니까?”

“이방인의 손을 거쳐 간 병기들은 다른 이가 사용할 수 없지요. 그렇기에 버려지는 것입니다. 영원히 단 1명의 주인만을 섬기는 충성스러운 병기이기에.”

-저거 귀속 시스템이잖아. ㅋㅋ

-할머니! 그거 귀속 시스템 때문에 그런 거예요!

-누가 설명 좀 해 드려라. ㅋㅋ

“참으로 가엾은 녀석들이지요…….”

“……여태 그것들을 모아 오신 겁니까?”

대주술사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방인들이 이 세계를 떠난 후 줄곧 우리는 그것들을 가져와 이 땅에 두었습니다.”

터무니없다.

무슨 미래를 본 것인지 알 수는 없지만, 미신에 가깝다고 생각했다.

그런 허상을 믿고 50년 동안 이들이 한 행동은 이해하기 힘들었다.

-개고생 아니여?

-저거 귀속이라 뭐 어떻게 착용도 못하고. ㅋㅋㅋ

-남산 자물쇠냐고 이 색기들아. ㅋㅋ 무기에다가 지 이름 써서 뿌린 것들이 제정신이냐?

-와 근데 다 귀속이면 등급 꽤 높을 텐데 저것의 현금 가치는 대체…….

-없습니다. 쓰레기죠.

-힝.

-아무튼, 용인들은 그동안 삽질했다, 이거야~

성진이 물었다.

“그것이 미래를 열 거라고 여기는 겁니까?”

“물론. 피가 보여 주었으니까요.”

마침, 적당한 단어가 나왔으니 그것을 엮어 물었다.

“피라면…….”

“용의 피, 우리는 용의 뼈와 피로 만들어진 존재들입니다.”

“용의 피에 미래를 보여 주는 능력이 있습니까?”

대주술사가 좌우로 고개를 저었다.

“아니지요. 용의 피는 분명 잠재력을 품고 있지만, 평범한 이가 다룰 만한 물건은 아닙니다. 다만 그 피는 분명 진정한 용의 피고 우리는 용의 후예라는 것을 자랑스러워합니다.”

“용의 피는 사용해도 줄지 않습니까?”

“그럴 리 없지요. 시간이 흘렀고 주술의 매개가 되었으니 당연히 줄었습니다.”

성진은 관심 없는 척 물었다.

“얼마나 남은 거죠?”

“한 방울.”

“…….”

최별이 다급하게 물었다.

“하, 한 방울밖에 남지 않았다고요? 거짓말…….”

“그런 말은 한 적이 없는걸요.”

“네?”

“한 방울도 남지 않았습니다.”

“…….”

“이곳에 용의 피는 없습니다.”

일행의 사고가 정지했다.

-초모 맘!!! 어디 갔어!!!

-사장 나오라 그래! 지금 용의 피 없대잖아! ㅋㅋㅋ

-멸망 테크 타고 있습니다.

-이렇게 된 이상 너희를 쥐어짜면 나오는 것이 용의 피가 아닐까?

-쿡쿡쿡…… 아쉬운 대로 그거라도 받아 가야겠군…….

“용인의 피와 용의 피는 다른 겁니까?”

“물론이지요. 우리의 피는 아무런 능력이 없습니다. 진정한 용의 피는 그 자체만으로도 완전하지요.”

-이렇게 된 이상 플랜 B로 간다!

-그게 뭔데?

-없어? 나도 모르는뎅.

-큭큭…… 유리온, 미안하다. 별자리 관은 아무래도 멸망할 것 같다. ㅋ

-최별도 ㅈ댐 ㅋㅋㅋ 난 몰라~~

-누가 인생은 최별처럼이라고 하지 않았냐?

-난 아님.

-나도 아님.

-나도 아닌데.

“용의 피를 구할 방법은…….”

“용에게서 얻어야겠지요. 하지만, 용은 모두 죽었습니다.”

이제, 용의 피를 구할 방법은 없다.

안타깝지만, 최별의 임무는 실패할 것이고 별자리 관도 무너질 것이다.

성진은 문득 한 가지가 궁금해졌다.

용에게서 얻어야 한다는 말은 용을 죽이라는 말과 일맥상통했다.

용이 자진해서 내놓을 리가 없으니까.

“용을 섬기시는 것 아니었습니까?”

“맞습니다.”

“혹시라도 용이 존재하고, 우리가 그것을 사냥한다면 어쩌실 생각입니까?”

“그건…….”

대주술사가 한숨 쉬었다.

그녀는 일행이 알지 못했던 비사를 이야기했다.

“‘원시의 세게이아’라는 이름을 아시나요?”

뒤에서 가만히 듣고 있던 난쟁이 맏형 타간이 소리쳤다.

“워, 원시용!”

“맞습니다. 난쟁이들의 별의 도시 탄타르빌을 멸망시킨 존재지요. 아마 스칸다에 남은 최후의 용이었을 겁니다. 그녀는 탄타르빌과 함께 추락했지요.”

“그녀의 이름은 갑자기 왜…….”

“난쟁이여, 용인들은 당신들의 최후를 안타깝게 여길뿐더러 죄책감을 가지고 있습니다.”

“죄책감?”

타간과 그의 형제들은 아리송한 표정을 지었다.

탄타르빌의 일화는 아주 고대의 이야기다.

따라서 그 형제들이 모든 일화를 아는 것은 아니었다. 그의 형제들은 당시에 태어나지도 않았으니까.

대주술사는 말했다.

“원시의 세게이아가 탄타르빌을 파괴할 당시, 우리는 그들을 돕지 못했습니다.”

“…….”

“우리에게 용이란 그런 존재입니다. 뒤늦게 후회해 봐야 소용없을뿐더러 용서를 구할 길도 없지요. 그 마음은 여전히 같습니다.”

용의 고원에는 용인과 고대 난쟁이들이 어울려 살았다는 이야기,

그리고 세게이아가 탄타르빌을 무너트릴 당시에 용인들은 그것을 외면했다는 이야기.

동화 같은 이야기였지만 난쟁이 형제들은 선조들의 이야기에 불쾌한 감정을 드러냈다.

“이이…… 겁쟁이들!”

“빌어먹을 도마뱀 때문에 친구의 손을 잡지 않았다니!”

“가세나! 이곳에는 더 머무를 것도 없겠어!”

-난쟁이 빡쳤다.

-ㅇㅈ 빡칠 만하지 솔직히.

-둘 다 이해가 되기는 한데 서로 착잡할 듯.

-조상 문제자너 ㅋㅋ 용인도 용이 조상이고 난쟁이도 탄타르빌에 살던 고대 난쟁이들이 조상이고. ㅋㅋ

-족보 문제는 언제나 골치 아퍼~

최별과 송하린이 그들을 따라나설 때, 성진은 남았다.

한 가지 물을 것이 남았다.

“묻고 싶은 게 있습니다.”

“말씀하시지요.”

“탄타르빌에는 왜 접근하지 않는 겁니까?”

“…….”

“세게이아는 죽었고 용은 없을 텐데…… 왜 그곳을 피하는 겁니까?”

“…….”

“용이 죽은 게 맞습니까?”

“세게이아는 죽었습니다. 오래전 확인했습니다.”

“만일, 다시 용이 나타난다면…… 어쩔 생각입니까?”

“……모르겠습니다.”

성진이 묻고자 했던 것은 여기까지였다.

용인들은 과거에서 한 치도 나아가지 못했다.

그렇기에 죽은 병기들을 모아 용의 고원을 거대한 검의 무덤으로 만들었고 헛된 시간들을 보내는 것이다.

“떠나겠습니다.”

대주술사가 고개를 끄덕였다.

***

난쟁이들이 마을 밖으로 나오고 말이 없다가 한참이 지나고서야 불같이 화를 냈다.

“저 새끼 도마뱀들은 굉장히 불쾌한 족속들이군!”

“음침하기가 이루 말할 데가 없어!”

“형님들, 진정합시다.”

“지금 진정하게 생겼나!”

타놀드는 시무룩한 표정을 지었다.

그의 수염이 푸들푸들 떨렸다.

“지나간 일입니다. 새로운 분쟁을 만들어 봐야 좋을 것이 없습니다.”

“난쟁이는 말이다. 친구를 소중히 한다! 분명히 탄타르빌의 주인들도 그랬을 거야! 한데, 저들은 믿음을 배신했어! 진실로 믿지 못할 자들이지!”

“그건 이해합니다. 친구를 돕지 않는 건 잘못된 것이지요.”

투둑, 툭.

비가 떨어지기 시작했다.

“제길! 얼른 일을 마치고 떠나자꾸나. 한시가 바쁘다.”

“비가! 비가 옵니다. 쉬었다 가시죠.”

“되는 일이 없군. 일단 비부터 피하자!”

일행은 용의 고원 외곽에 있는 동굴에 들어갔다.

마을에서 한참 떨어진 곳, 성진과 송하린이 비를 피할 만한 곳을 바삐 수색해 겨우 찾은 장소였다.

“제길, 제길, 제길!”

“그만하시지요.”

“저놈들은 친구를 배신하고 잘만 살고 있지 않으냐? 하늘이 부끄럽지도 않은 건가?”

“그들도 미안한 감정이 있다 하지 않습니까, 괜히 우리끼리 화내 봐야 의미 없는 일입니다.”

난쟁이들이 동굴 안에서 비를 피하는 사이, 성진과 송하린 그리고 최별은 밖으로 나와 비를 맞고 있었다.

쏴아아.

송하린이 말했다.

“아! 왜 이 고원이 이렇게 뜨끈한 건지도 물어봤어야 했는데!”

“세게이아인지 뭔지가 벌였던 일 때문 아닐까요?”

최별의 대답이 꽤 그럴듯하다고 느꼈는지 송하린도 수긍했다.

“그렇네. 그게 가장 말이 되는구려.”

“그런데…… 참, 이 무기들에 새겨진 문구들이 씁쓸하네요.”

“괜히 기분이 좀 그렇단 말이지.”

-정현 거.

-Last saber

-Black tornado

“좀…… 오글거리는 문구들도 있네요.”

“외국인 건가?”

“그렇다고 보기엔 단어의 조합 수준이 의심스럽네요.”

“하긴, 난 한국어 필터를 켜 놨으니 다 한국어로 나오네.”

성진이 앞에 박힌 검을 뽑았다.

한차례 휘두르려고 하자, 검의 무게가 갑자기 폭증했다.

쿠웅!

-타인에게 귀속된 물품입니다. 사용할 수 없습니다.

성진이 다시 검을 원래 있던 자리에 꽂았다.

-머쓱…….

-방금 휘청거리지 않았냐? ㅋㅋㅋㅋ

-근데 귀속 저것도 좀 슬픈 말이야.

-머가. 니들은 갱년기냐 뭔 사사건건 슬퍼

-아니, 생각해 봐. 주인이 50년 전에 떠났는데 계속 섬기고 있다는 거잖아.

-너 시적인 표현 잘한다. 글 좀 배웠나 봐?

-애니 많이 봤어.

-썩 꺼져.

“……히히.”

“어? 형님, 무슨 소리가…….”

“누가 옵니다.”

“위험해 보이는데…….”

거적을 뒤집어쓴 누군가가 성진 일행을 향해 달려오고 있었다.

최별이 검을 뽑아 그 앞을 막아섰다.

“멈춰라! 누구냐?”

“푸히히히히! 인간이다! 인간이야!”

어둠 속에서 상대의 한쪽 눈이 요사스럽게 빛났다.

-뭐야아아아 공포 영화냐;

-야 근데 쪼꼬만데?

-머징? 괜히 쫄았네.

상대는 달려오던 기세 때문에 맞바람에 거적이 벗겨져 그 모습이 드러났다.

“킁…… 킁킁…… 저 동굴에서 난쟁이 냄새가 나는데.”

상대는 난쟁이였다.

성진이 그의 앞을 가로막으며 물었다.

“누구십니까?”

“저! 저 여자 검 좀 치워 봐! 난 나쁘지 않다고!”

“알겠습니다.”

최별이 뽑았던 검을 휘돌려 다시 등착했다.

철컥.

“당신은 누구시죠?”

“히히…… 푸히히…… 추, 추운데 안으로 들어가서 얘기하면 안 될까?”

「초모님, 찾았습니다. 아마 그자인 것 같습니다.」

‘그자?’

초모 맘들이 정리해 준 보고서에 짧게 서술되어 있던 인물.

별의 도시 탄타르빌의 망령.

“난 게릭이라고 해! 반가워 인간들!”

「추방자 게릭이요. 찾았습니다! 진짜 있었네요!」

-야아아아! 안 죽었을 거라고 한 애들 누구야!

-나와! 칭찬해 줄 거니까!

성진은 추방자 게릭을 데리고 안으로 들어갔다.

새로운 난쟁이의 등장에 타간 형제들은 어리둥절한 상태로 그를 맞이했다.

“누, 누구십니까?”

게릭은 정신이 온전치 않아 보였다.

“흑…… 흑흑…… 후손들아…….”

“후손? 설마…….”

“나다! 나야! 게릭이라고!”

난쟁이들의 역사를 정리한 서적에 그의 이름이 등장했다.

추방자 게릭.

마도 공학을 숭상해 형제의 만류에도 엇나가 결국엔 탄타르빌에서 추방당한 자.

그는 탄타르빌이 멸망했음에도 살아남아 있었다.

그의 눈이 빛나던 이유를 알 것 같았다.

기계장치로 이루어진 의안(義眼)이었다.

“드디어! 나를 도울 이들이 찾아왔구나!”

“돕다니, 무슨 소리십니까?”

“도마뱀 놈들은 모두 믿을 수 없어! 오직! 오직 너희만이 나를 도울 수 있다!”

“무슨…… 무슨 소리십니까?”

게릭이 이도 몇 개 안 남은 입으로 웃었다.

그의 웃음은 광기 그 자체였다.

“푸히히히히히! 그야 당연히 복수지! 용에게서 탄타르빌을 되찾아올 거다!”

미치광이의 헛소리라고 치부해도 될 법한 말이었다.

성진이 그에게 말했다.

“세게이아는 탄타르빌과 함께 죽었다고 들었습니다.”

“맞아요, 그녀는 스칸다 최후의 용이라고…….”

“멍청이! 너희들은 멍청이야! 도마뱀 놈들이 지껄이는 말을 곧이곧대로 믿다니! 이렇게 속 터질 수가 없어!”

뭔가 이상했다.

“……그게 무슨 소립니까?”

콰르릉!

천둥이 동굴을 울렸다.

게릭은 대답했다.

“용은 있어! 탄타르빌에 있다고!”

타놀드가 게릭을 말렸다.

“선조님, 그만…….”

그때였다.

크와아아아아아아아아아!

천둥보다 더 큰 소리가 동굴을 울렸다.

일행 모두의 몸이 빳빳하게 굳었다.

평범한 소리가 아니었다.

무언가의 울음.

공포를 자아내는 소리였다.

-;;

-??

-뭔데? 뭐야?

게릭이 이야기를 이었다.

“말했잖아, 용이 살아 있다고!”

“세게이아는…….”

“그놈의 세게이아! 세게이아는 죽었지! 그녀의 자손이 남아서 탄타르빌을 차지하고 있다! 이 멍청한 녀석들아!”

“…….”

“…….”

충격적인 이야기에 잠시 어안이 벙벙해진 성진 일행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정신을 차리고 상황을 파악한 최별이 먼저 말했다.

“타, 탄타르빌엔 어떻게 가야 하죠?”

“오호라, 너희도 탄타르빌에 용건이 있는 게로군!”

“그건…….”

타놀드가 망설이는 그녀 대신 이야기했다.

“별의 용광로를 사용할 생각입니다.”

“푸히히히히! 그렇군! 그랬어! 하지만 어쩌나? 꼬맹아, 너는 별의 용광로를 구동할 줄 아느냐?”

“전해 내려오는 기록으로는…….”

“파괴되었다니까? 용광로를 평범한 방식으로 구동하는 건 이제 불가능해.”

“이런…….”

-내가 난쟁이 새끼들 일단 빠따부터 때리고 시작하자 했지?

-산 넘어 산! 초모 일은 되는 일이 없어. ㅋㅋ

-빠이염~ 엘리움 그냥 대충 만들자. ㅋㅋ

게릭은 뭐가 그리 좋은지 계속 웃었다.

“푸히히히히히! 푸하하하하하하!”

타간이 울컥했다.

“이익…… 왜 그렇게 웃으십니까! 저희의 일이 어그러진 게 그리 좋으십니까?”

“아니! 아니야! 너희가 나를 도울 수밖에 없으니깐 그렇지!”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내가 만들었어!”

“네?”

“탄타르빌은 내 머릿속에서 나온 작품이라고! 저 망할 뚱보 도마뱀이 내 도시를 뭉갰다고! 나는 복수할 거야!”

게릭은 탄타르빌이 자신이 만든 작품이라고 했다.

‘그렇다는 얘기는…….’

성진이 그에게 물었다.

“별의 용광로도…….”

“내가 만들었지! 이제 그걸 작동할 수 있는 건 나뿐이야!”

“……원하시는 게 뭡니까?”

게릭은 음흉하게 웃었다.

“당연히 용을 쫓아내는 거지.”

“또 있습니까?”

“심장과 날개. 내 발명품에 필요하거든.”

-야 잠만 이러다 용 잡게 생겼는데?

-비룡종이랑 아룡종은 종종 잡긴 했는데 리얼루 용이라고? 원시용?

-ㅎㅎ 장난이겠지.

최별과 송하린의 눈이 빛났다.

성진이 그녀들을 대신해 물었다.

“세게이아의 자손은 강한 겁니까?”

“별거 아니야. 덩치만 크고, 불 좀 뿜는 거지.”

“확실합니까?”

“나는 도마뱀이 아니야, 거짓말은 못 해!”

게릭이 잠깐 동굴 밖을 보는 사이, 성진 일행은 얘기를 나눴다.

그리고 잠시 후, 게릭이 돌아오자 이야기했다.

“나머지는…….”

“다 가져! 어차피 쓸모없는 것들이야!”

“당신을 돕겠습니다.”

게릭이 웃었다.

“반드시 내 장난감으로 만들어 주마, 망할 도마뱀!”

단순히 검을 벼리기 위한 여행이었다.

상황이 꼬이고 꼬이더니 결국, 계획에도 없던 용을 사냥해야 하는 처지에 놓였다.

-야, 이건 우리도 좀. ㅋㅋㅋ

-당장 부서에 전화해서 연차 넣는다. ㅋㅋ

-전멸해도 레전드고 잡아도 레전드다.

-너희들은 용을 잡아라, 나는 치킨 집에 전화해서 닭을 잡게 할 테니.

-최강 파티긴 한데 이게 뭔 일이여?

-이 모든 일의 시작은 빤쓰까지 다 벗겨가 장물인 엘리움을 넘기고부터였다.

-원흉이네. ㅋㅋ

-전설의 시작.

‘빤쓰까지다벗겨요’ 님이 1,000원 후원하셨습니다!

[흐-뭇]

비가 그쳤다.

작전을 들은 성진 일행은 그것이 꽤 그럴듯하다고 느꼈고 이견 없이 그 작전을 받아들였다.

그리고, 용을 사냥하기 위해 탄타르빌을 향해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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