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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J는 종말에 적응했다-133화 (133/222)

# 133

133화

“시, 시조가…….”

“흑백쌍괴가 정말…….”

지긋지긋하고 피 말리는 싸움의 불씨는 시조의 죽음으로 점차 사그라들었다.

홍예에 속한 돼지가 성진을 바라보며 말했다.

“물푸레나무여, 이로써 균형은 지켜졌습니다.”

“도움에 감사드립니다.”

돼지가 고개를 저었다.

“우리는 별로 한 게 없습니다. 그럼, 당신의 가능성을 확인했으니 우리는 돌아가겠습니다.”

성진은 이제 무지개 사원을 떠나야 했다.

잊고 있던 문제가 떠올랐다.

“연락망은…….”

양이 자신의 털을 뒤적거리더니 비둘기 모양 조각을 꺼냈다.

“비둘기에 전하고자 하는 소식을 말해메에에. 이건 협회에 건네주면 되고 음…… 물푸레는 이거 가져메에에.”

양이 성진에게 따로 건넨 것은 가벼운 나무 팔찌였다.

아무 조각도 되어 있지 않은, 단순히 고리 모양을 한 팔찌.

호랑이가 말했다.

“비둘기랑 똑같아!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말하면 돼!”

“알겠습니다.”

-동물 농장이랑 헤어지는 거 아쉽다. ㅠㅠ

-밀수들도 짐승 같은 놈들이니 인간과 짐승의 균형은 지켜졌다.

-바닥에 떨어지는 털만 보면 납득이 가지.

-근데 시조 컷했는데 협회 보상 또 쌩 까는 거 아니야?

-가능성 있긴 함; 이미 전적이 있는 놈들이라;;

-시조 컷이 임무로 올라왔으면 몰겠지만…… 아마 혈마 컷으로 되어 있지 않을까?

-포인트 장난 또 당한다는 거지?

-혈마도 근데 포인트 쩔 거고 협회 등급 올려야 한다는 시나리오는 이제 안 뜨니까 짜증나게 하면 사표 던지고 떠나면 됨.

-하긴, 우리 동상이 출세했는데 말이여. ㅎㅎ 형님 하나쯤 건사하는 건 일도 아니제.

-그래도 한 다리는 협회에 걸치고 있는 게 좋아……. 안정적인 직장 박차고 나가 봐야 현실은 냉혹해…….

-무슨 공기업 겸업하는 소리하냐. ㅋㅋ

성진에게 송하린이 다가왔다.

“형님, 끝났습니다.”

“네, 끝입니다.”

무인들이 소리를 질렀다.

“우와아아아아아아!”

“흑백쌍괴가 동부를 구했다!”

“근데 백괴는 누구지?”

“무지개 사원의 수도사인 것 같은데…….”

사람들은 이 지긋지긋한 싸움이 끝을 맺어서, 동부가 혈교에게 넘어가지 않아서 한참을 기뻐했다.

“흑백쌍존(黑白雙尊)…….”

“흑백쌍존이 혈마와 시조를 쓰러트렸다!”

“와아아아아아아!”

***

노인이 품에 쏙 들어오는 궤짝을 지고 달리고 있었다.

“헉…… 허억…….”

사방에서 비명이 들렸다.

“크아아악!”

“도망치십시오. 장주님!”

“어디 있느냐, 천금!”

이미 혈교의 끄나풀로 밝혀진 세력에게 미래 따위는 존재하지 않았다.

천금은 절대 패배할 리 없다고 생각했던 바훔이 패배하자 사고가 정지했다.

“헉…… 허억…….”

가치를 헤아리기 어려울 만큼 잔뜩 황금 칠을 한 고택이 불길에 휩싸였다.

동부의 생존자들은 똘똘 뭉쳐 혈교를 짓이겼다.

“내, 내가 이렇게 죽을 줄 알고? 이것만 있으면 다시 재기하는 건 일도 아니야!”

“그럴까?”

“누, 누구냐!”

“오랜만이구나, 천금.”

천금은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그가 아는 목소리였다.

“일금…….”

일금과 그의 형제들이 천금이 가는 길을 막고 있었다.

천금은 소리를 질렀다.

“차오야! 길을 열…….”

“이자를 말하는 건가?”

툭.

거대한 남자의 머리가 흙먼지를 뒤집어쓰며 바닥을 굴렀다.

“여전히 입에 발린 말로 수하들을 사지로 몰아넣는구나.”

“일금, 네가…… 네가 감히…….”

“천금아, 대체 무엇이 너를 괴물로 만든 것이더냐? 금이냐? 영생이라는 덧없는 가치 때문이냐? 그도 아니면…… 그저 네 욕심이었던 것이냐?”

“큭…… 큭큭…… 다 끝났나 보구려…… 무엇을 숨기겠소? 세 가지 전부인 것을. 사람이 타락하는 건 한순간이지. 당신이 경멸하는 나 또한 다르지 않아!”

“경멸? 아니다.”

“뭐?”

“나는 천금이 네가 안쓰럽고 불쌍하다. 서로를 위해 주는 형제들이 있고, 만금 어르신이 내리신 가르침이 있거늘.”

만금이라는 단어에 천금이 불같이 화를 냈다.

“그마안! 네가 만금 노인네의 무엇을 안다고! 그 노인네가 무엇이 대수라고!”

“어르신…….”

그때, 백색 옷을 입은 남자가 천금의 앞에 섰다.

남자는 슬픈 표정을 짓고 이야기했다.

“천금아.”

툭.

천금이 들고 있던 궤짝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장부를 비롯해 땅문서 등 중요한 것이 가득 담겨 있는 것들이건만 천금은 그걸 주울 생각이 없어 보였다.

목소리.

아니다, 목소리는 닮지 않았다.

어조?

어조도 닮지 않았다.

하지만, 뭔가가 닮았다.

저 남자는 자신이 알던 그 사람과 닮아 있었다.

“미안하구나…….”

“어, 어르신? 만금 어르신이 맞으십니까?”

“…….”

백색 옷을 입은 사내는 고개를 돌려 천금에게 뒷모습을 보였다.

천금이 털썩 주저앉아 그 사내에게 손짓했다.

“어르신! 저 천금입니다! 어르신이 거두셨던 미천한 놈이요!”

그는 완전히 정신을 놓았다.

“히히…… 제가…… 제가 세상에서 제일가는 부자가 될 거라고 하셨잖아요…… 히히히…… 왜 저는 행복하지 않을까요…….”

그는 바닥에 주저앉아 아이처럼 울었다.

“가르쳐 주세요……. 그때처럼 저를 꾸짖거나 해 주세요…….”

일금은 천금이 끝났다는 것을 그 모습에서 알았다.

천금.

만금검의 후예이자 형제들의 유산을 가로챈 것도 모자라 그것을 모두 제 잇속을 챙기는 데 사용한 비겁한 찬탈자.

그는 뇌옥에 갇힌 지 3일째에 목을 매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는 죽기 전, 계속해서 죄송하다는 말을 내뱉으며 철창에 머리를 부딪쳤다고 했다.

***

얼마의 시간이 지나고, 동부는 정상 궤도로 돌아왔다.

혈교의 잔당은 일소된 것으로 확인되었고, 맹은 지체하지 않고 중요한 행사를 진행했다.

곤룡포를 걸친 여인이 중천의 행사장에 들어서고 있었다.

여인은 수많은 시선을 받고, 수많은 우러름을 받았다.

그녀는 송하린이었다.

동부에 그녀가 나타났을 때, 모두가 그녀를 싫어했다.

믿지 못할 여인이며, 저주받은 현월신교의 적법한 후계자.

그녀의 수식어들 하나하나가 월인들이 박해받았던 역사였으며, 월인들이 동부를 할퀴고 갔던 흔적들이었다.

딸랑, 딸랑.

행사장에 종소리가 울렸다.

그녀는 머뭇거림 없이 걸었다.

그녀를 위해 마련된 꽃길이다.

바닥에 뿌려진 꽃들이 그녀의 신이 땅에 닿지 않도록 했다.

월인들은 그녀를 자랑스럽게 쳐다보았고, 그녀는 당당했다.

그녀가 마침내, 꽃길의 끝에 도달했다.

맹의 수뇌부가 모두 일어서서 그녀를 반겼다.

“오늘, 맹의 복된 자리에 귀인이 방문했습니다.”

“…….”

“맹은 귀인이 머물기엔 비좁고, 불편할 것입니다. 이곳은 거지와 승려, 도사들과 비구니가 머물고 자유롭지 못한 곳입니다.”

“…….”

“하지만, 귀인이 머물고자 하신다면 맹은 당신을 위해 울고 당신을 위해 웃겠습니다.”

송하린이 입을 열었다.

“저와 월인들은 이곳에 머물겠습니다.”

수뇌부는 고개를 끄덕였다.

“금일, 복된 귀인들이 맹에 그 어깨를 허락했습니다. 맹은 그들의 과거, 현재, 나아가 미래를 지키기 위해 헌신할 것을 약조합니다.”

“저 또한 약속합니다.”

“우리는 이제 하나입니다.”

동부가 하나로 묶였다.

성진은 송하린의 뒷모습을 보며 미소 지었다.

-야! 야야 ㅋㅋㅋ 저 코흘리개 우리가 키웠다고.

-저, 저 얼굴도 못 씻어서 우리가 다 씻겨주고 코도 흥! 하고 했다고!

-엉엉. ㅠㅠ 딸래미 시집가는 거 지켜보는 아빠가 된 것 같아.

-밀수들은 결혼할 수 없는데 어째서?

-야, 지금 사실관계를 꼭 따져야겠어? 이렇게 어, 좋은 날에 말이야!

-이제 동부는 우리 흑백쌍괴 님들의 것이라고. ㅋㅋㅋ 앞으로 사리사욕을 채우고 세계 정복을 위해 잘 사용하겠습니다. 77ㅓ 억~

-사실 진정한 흑막은 혈마도, 시조도 아닌 초모라는 굇수였다고 한다. ㅋㅋ

-쉿! 그건 우리 고블린 성좌들만 아는 거야, 어디 가서 말하면 안 돼!

-긍데 우리 초모는 왜 이런 세력이 없냐고…… 초모도 쩔었자너. ㅠㅠ

-스칸다의 외로운 늑대, 초모…… 흑.

성진은 눈에 띄지 않는 곳에서 강오와 함께 송하린을 지켜보고 있었다.

시청자들이 언급한 것처럼 그도 송하린이 맹에 합류하는 것을 보고 있자니 기묘한 느낌을 받았다.

“저년, 저거…… 얼마나 천방지축인지 알면 사람들이 당장 무르자고 할 텐데.”

“그럴지도 모르겠네요.”

“맹은 오늘 아주 큰 실수한 거야.”

강오가 몇 마디 더 얹더니 은근슬쩍 제일 묻고 싶던 걸 물었다.

“떠날 거지?”

“일이 어떻게 풀리느냐에 따라 다르겠지만, 아마도 그럴 것 같습니다.”

“난 안 따라가.”

“네.”

강오가 힐끗 성진을 보다가 말했다.

“매정하긴.”

“진심이잖습니까.”

“그래, 월인들이랑 이곳에서 지지고 볶다가 가끔 너희들 얼굴이나 볼 수 있으면 됐지. 그거면 됐어.”

“감사했습니다.”

“내가 뭘…… 그보다 손님이 온 것 같은데?”

성진이 뒤를 돌았다.

그가 아는 사람이었다.

“갱.”

“오랜만이야. 동부가 한동안 바빴다더니 역시 자네가 와서 그런가.”

“저보다는 혈교 때문이죠.”

“그래, 아무튼. 시조 처치에 공을 세웠으니 보상을 받아야지.”

“보상?”

보상에 관한 얘기는 금시초문이었다.

협회에서 따로 임무를 내건 것 같지는 않았는데.

“시조에 관한 문제는 협회에서도 늘 예의 주시하고 있어. 덕분에, 과한 보상이 책정되는 건 당연한 거고.”

“이번엔 성과 누락 없이 보상을 받을 수 있는 겁니까?”

“사람 참, 안 그래도 그것에 관해 이야기하려고 왔어. 상부에서도 의문이 생겼거든.”

“의문?”

“자네는 명실공히 시조를, 그것도 대공을 단둘이서 처치했어. 그건 모두가 보았고 협회도 그것을 인정하지. 상부의 의문은 이거야, 그런 가공할 만한 무력을 가진 모험가가 굳이 거짓말을 해 가면서까지 성과를 탐냈을까?”

“…….”

성진과 파견대의 말은 토씨 하나 틀린 것 없이 일치했었다.

또한, 그것을 일관되게 주장했었고.

“그래서 사실 대삼림의 시조가 백작이 아니라 정말 대공인 게 아니냐는 의문이 돌고 도는 거지.”

-이제야 인정 해주는 구나. ㅠㅠ

-썩을 것들, 협회 놈들은 다 뱀이야!

-솔직히 초모 위상이 전이랑 비교도 안 되게 올랐잖아? 백존이라고 불리는데 그게 초모라는 황옥 등급 모험가라는 거 알면. ㅋㅋㅋ

-시조 뚝배기를 깠는데 황옥이라고요? 삐슝빠슝!?

갱이 담배를 물고 연기를 뿜었다.

“그래서 대삼림의 임무는 재조사하기로 결정됐어.”

“네?”

“정당한 보상을 주기 위해 하는 일이야. 뭐, 보상을 미루려는 게 아니라고.”

-이게 뭔 개소리야.

-갱아, 똑바로 말 안 할래?

갱은 모호한 표정을 지었다.

“이봐, 둘이서 재밌는 얘기나 하지.”

“말씀하십시오.”

“딱딱하기는…… 생각해 보면 우리가 굳이 친하게 지내지 않을 이유가 없어.”

“친하게 지낼 이유는요?”

“자네와 나, 아니 협회가 지향하는 바는 다르지 않아. 서로 대립하지도 않고. 우리는 자네에게 우군일 수도 있고 자네는 실제로 우리의 우군 역할을 하고 있으니까.”

“제가 원하는 게 무엇인지 아십니까?”

“이방인들의 처우 개선, 또 그들을 원래의 세계로 데리고 귀환하는 것.”

“…….”

-데헷 들켰다.

-누가 말했냐?

-초모가 말하고 다니지 않았던가?

“우리가 도움을 주지.”

“어떻게요?”

“그거야 가까워지면 알 수 있을 거야. 우리는 쓸모가 많을 거라고.”

“저는 무엇을 하면 됩니까?”

“아무것도. 그냥 협회가 도움을 주었다면 그것을 잊지 않으면 돼.”

성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갱이 배시시 웃었다.

그러다 그는 중요한 걸 깜빡했다는 듯이 자신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아차, 이걸 깜빡할 뻔했군.”

“네?”

“모험가 승급 말이야. 자네 승급.”

“아, 포인트 책정이 끝난 겁니까?”

“그래. 뭐 자잘한 것과 대삼림 임무 재조사 건이 남아 있긴 하지만.”

그는 손바닥을 펼쳐 손가락 사이에 세 가지 빛깔의 버튼을 끼웠다.

각각 적색, 검은색, 찬란한 별색이었다.

“이 중 어떤 게 자네의 것 같은가?”

-시발 금도끼 은도끼구나!

-산신령식 질문법이다, 분명 협회의 함정입니다! 적색이라고 하세요!

-홍옥 ㅋㅋㅋ 홍옥도 뭐 많이 널뛰기하긴 했네.

동, 은, 금, 비취, 호박, 진주, 황옥, 남옥, 홍옥, 청옥, 흑단백석, 성채남보석.

붉은 보석은 홍옥일 것이고, 검은 보석은 흑단백석, 그리고 별빛이 흐르는 보석은 성채남보석일 것이다.

답을 맞힐 생각이 없는 성진이 어깨를 으쓱했다.

갱이 성진의 어깨를 툭 쳤다.

“진짜 재미없는 사람이군. 검은색이 자네 거야, 흑단백석.”

“별색 보석은 뭡니까?”

“자네가 쓰러트린 대삼림의 시조가 대공으로 판명 났을 때 갖게 될 등급이지. 대공을 둘이나 처치했는데 어째서 성채남보석에 불과하냐고 물을 수도 있는데, 협회의 포인트 산정 방식에는 특이한 점이 있어. 짧은 기간 내에 승급을 감행할 경우 포인트가 일반적인 상황보다 훨씬 많이 필요해. 이해가 되나?”

무려 대공을 둘이나 처치했지만 협회에 몸담은 기간이 짧아, 큰 임무를 연달아 완수했음에도 포인트 정산에 어려움을 겪는다는 소리다.

성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혹시, 저런 행사를 원하나? 얼마든지 가능한데.”

“괜찮습니다.”

“필요하면 말하라고, 협회는 저런 눈에 띄는 것들 끝장나게 잘하니까. 아무튼.”

갱이 성진의 가슴팍에서 노란 보석을 떼어 내고 새로운 보석을 달았다.

검은색 보석이 성진의 가슴에서 빛났다.

“자네는 이제 흑단백석의 모험가야. 50년 전 영웅 중에서도 흔하지 않던 등급이지.”

“그렇군요.”

“젠장, 좀 더 기뻐하면 안 되나?”

“이게 한계입니다.”

갱이 성진의 귓가에 다가가 소곤거렸다.

“성국이 자네의 행보를 마땅치 않아 할 거야. 여태 어떻게 숨겨 왔는지는 모르지만, 이렇게 빨리 흑단백석으로 승급하고 무지개 사원의 수도사가 되었으니 그들도 대비하겠지.”

“제가 바스카리에 갈 것이라 생각하십니까?”

“당연하지. 위험이 있긴 하지만, 얻는 것도 클 거야. 아마 성국의 노인네들도 같은 생각일걸? 그러니까 이건 혹시나 해서 하는 말인데…… 바스카리에 갈 생각이라면 세력을 쌓고 가야 할 거야. 안 그러면 거기 노인네들이 자네가 지금껏 쌓아 온 것들을 강탈하려 들 테니까.”

갱은 담배를 발로 비벼 껐다.

“후…… 그러니까, 뭐가 됐든 거대한 존재가 되라는 거지. 그래야 감히 어쭙잖은 놈들이 얕잡아 보고, 덤비지 않으니까.”

“명심하겠습니다.”

“그럼…… 나 말고도 얘기할 사람이 있는 거 같으니, 난 이만.”

-흑단백석 최단 기록 승급하긴 했는데 뭔가 찝찝하다?

-빤쓰좌랑 같은 등급이라 더 그런 느낌이 드는 것 같다. 빤쓰좌는 시조 보자마자 도망갈 사람이라.

-전형적인 출세형 인물이지. 초모랑 비교 ㄴㄴ

-듣고 있습니다. ㅡㅡ 초모 님, 님 때문에 저만 비교당하잖아요. 빨리 올라가세요!

갱이 물러나자 찾아온 것은 일금이었다.

일금은 맹의 주도하에 천금이 가로챘던 것들을 정당하게 되찾아왔다.

그는 성진에게 고개 숙였다.

“감사합니다, 덕분에 만금 어르신을 뵐 낯이 서는군요.”

“별말씀을요. 저는 크게 한 것이 없습니다.”

“저에게는 무엇보다 큰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천금에게도요.”

“들었습니다, 천금이 옥에서…….”

“동정할 필요는 없겠죠. 이미 그 아이도 알았을 겁니다. 스스로의 운명을.”

-그 리치킹은부자왕 형님도 좀 씁쓸하겠다.

-당연하지; 걍 멘붕일 수도 있음.

-ㅇㅈㅇㅈ 우리가 위로해 드리자.

-어떻게?

-만금 갈비 가서 인당 갈비 3인분 먹고 인증샷 ㄱ

-먹어서 위로하자냐?

-ㅋㅋㅋㅋㅋ 아 뭐.

일금은 머뭇거리지 않고 얘기했다.

“초모 님, 저는 지금껏 장사를 해 오면서, 금 못지않게 많은 사람들을 만났습니다.”

“네.”

“신뢰할 수 있는 이, 쓸모가 있는 이 등 저 나름의 기준대로 사람들을 평가하며 장사를 해 왔지만 늘 불안했죠. 제 판단이 혹시라도 틀렸을까 봐.”

일금은 작은 패 하나를 내밀었다.

“동부 상인회는 초모 님이 하시는 일을 돕겠습니다. 그것이 이방인들을 위하는 일이든, 스칸다를 위하는 일이든 가리지 않고.”

어쩌면 지금 동부의 전부를 가진 자는 일금이라고 할 수 있었다.

그런 그가 성진을 전면적으로 지원하겠다고 나섰다.

“부디 거절하지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분명, 갱이 세력을 모으라고 했다.

그 말은 성진도 공감하는 부분이니 이 제안을 거절하고 싶지 않았다.

“감사히 받아들이겠습니다.”

“이를 초모 님이 원하시는 시기에 공표하도록 하겠습니다.”

“네, 감사합니다.”

“제가 시간을 너무 빼앗았군요. 조만간 사람을 보내겠습니다.”

“예.”

***

행사를 마친 송하린이 술에 취한 채 다가왔다.

“혀엉니임, 제가 영감의 숙원 사업을 해치웠습니다.”

“네.”

“혈마도 칵! 그 시조인지 바퀴벌레인지 하는 놈도 칵! 잘 보고 계셨지요?”

“잘 보았습니다.”

송하린은 주변의 사람들을 물리고 조용히 말했다.

“떠나실 거죠?”

“그럴 생각입니다.”

그녀는 쓸쓸한 표정을 지으며 어쩔 줄 몰라 했다.

“저, 너무 급하게 서두르시면 바나나를 밟을 수도 있고…….”

“가야 합니다.”

“그, 그렇죠.”

-송하린 혼자 남을까 봐 안절부절. ㅋㅋㅋ

-하린아~ 같이 가자고 해~

송하린이 채팅 창을 힐끔 쳐다보고 말했다.

“즈융히 흐라…….”

-아코 무서워~ 천마가 사람 잡네~

-사람이 출세하더니 변했네, 변했어~

성진은 송하린에게 말했다.

“혹시 도와주실 수 있습니까?”

“제 도움이 필요하신 겁니까? 형님 정도면…….”

“누군가 믿을 만한 사람들이 필요할 것 같다고 하더군요.”

“누, 누가요?”

“타놀드가요.”

“엥? 그게 누구지?”

-타놀드가 누구더라?

-기억이…….

-이 색기들아. ㅋㅋ 엘리움 준 난쟁이 있잖아, 거장.

-앜ㅋㅋㅋㅋㅋㅋㅋ 기억났다.

-그 친구가 갑자기 왜?

-어제 연락왔던데.

성진에게 타놀드의 서찰이 도착했다.

그는 형제들을 설득하는 데 성공했고, 이제 함께 탄타르빌로 향하면 될 것이라 했다.

-아; 슬슬 장비 빨 받을 때 됐지.

-송하린 천마도로 우쭐거리는 거 봐. ㅋㅋ

송하린은 성진과의 약속을 떠올렸다.

-내 일을 좀 도와주시오. 그럼 내가 당신 일을 도와주지.

“이런, 약속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돕는 겁니다.”

“네, 감사합니다.”

“하…… 나 바쁜데, 참…… 하하…….”

그녀는 씰룩대는 표정을 감추기 어려워 보였다.

삐익.

“누구야! 눈치 없게!”

“다이렉트 메시지입니다.”

“왜 지금?”

송하린이 성진에게 다이렉트 메시지를 보내온 사람이 누구인지를 추궁했다.

“어라? 이 여자…… 맞다, 같이 왔지?”

“누구 말입니까?”

“최별 말입니다. 이 여자가 갑자기 왜?”

송하린과 별의 용광로로 향하기 전, 최별이 메시지를 보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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