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2
132화
성진에게 강오가 보냈던 서찰의 내용은 별다른 게 없었다.
그녀가 월인들과 맹을 지키기 위해 나섰다는 것, 그 상대가 혈교라는 것.
그리고 백괴인 성진이 나서서 그녀를 도와주었으면 한다는 것.
강오는 백괴가 흑괴의 소중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백괴와 함께하는 송하린을 보고 있노라면 꼭, 그녀가 믿었던 그녀의 사부와 함께할 때의 모습을 떠올리게 했다.
그래서 보냈던 서찰이었다.
서찰을 본 성진이 곧장 떠나려 하자, 카이가 만류했다.
“기다려 보아라.”
“가야 합니다.”
“알고 있다. 가는 것을 만류하는 게 아니다. 당연히 가야지.”
“그럼 무슨 이유로…….”
카이는 성진을 데리고 어딘가로 향했다.
거북이가 마중을 나와 문을 열었다.
“흘흘흘…… 찾으시는 건 여기 두었지요.”
카이는 그 안으로 등을 들고 들어갔다.
성진은 그 뒤를 따라 들어가면서도 한시바삐 떠나야겠다는 생각뿐이었다.
“네게 이것들을 주마.”
“이건…….”
용 가면과 용이 각인된 봉이었다.
“네 봉은 멀쩡해 보이겠지만 한계에 다다랐다. 아마 중요한 결전이 있다면 재무장하는 것이 좋을 게야.”
봉은 성진의 손에 착 감겼다.
무기에 별다른 애정이 있는 것이 아니었기에 성진은 뜻에 따르겠다고 했다.
용 가면은 받아들긴 했지만, 가면을 보자니 흑백쌍괴가 떠오르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카이가 말했다.
“홍예를 데리고 가라.”
“네?”
“일이 마무리되면 복귀해야겠지만, 그들이 너의 일에 도움이 될 것이다.”
“……감사합니다.”
“우린 또 만나게 될 것이다. 준비하고 떠나거라.”
-chapter 6-8의 조건을 충족시켰습니다.
-chapter 6-8을 클리어합니다.
-보상으로 심상의 영향력이 증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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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6-9. 사생결단.
-당신과 흑괴의 소식을 들었습니다. 흑괴는 현재 동부의 싸움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맡은 것 같습니다. 당신은 이곳에서의 일을 모두 끝마쳤고, 흑괴에게 갈 생각입니다. 흑괴는 백괴가 없으면 불안정합니다. 흑괴를 도와야 합니다.
-이 임무는 메인 시나리오입니다.
-에어리어를 개방하기 위해서 누군가는 해내야 하는 임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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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진과 송하린이 어떻게 보면 우습고 어떻게 보면 진중한 장면을 연출했다.
이 모습을 지켜보던 악전과 조청이 소리쳤다.
“배, 백괴야!”
“뭐? 저자가 백괴라고?”
둘의 반응에 맹의 요인들이 그들을 돌아보며 물었다.
“두 분이 말씀하셨던 흑백쌍괴 중 백괴가 저자란 말입니까?”
“백괴? 난 그에 대해 제대로 듣지 못했소만…… 저자가 무엇이길래 두 분께서는 그리 놀라는지요?”
악전이 질문하는 이를 쳐다보지도 않고 답했다.
“나도 사실 그를 잘 알지 못하오. 송…… 흑괴와 절친한 사이라는 것과 경천동지의 무력을 지녔다는 것밖에는…… 이런.”
“왜, 왜 그러시오?”
“기세가 제대로 가늠이 되질 않소. 그래도 지난번에 마주했을 때는 그 힘의 일부나마 가늠할 수 있었건만…… 대체 저자는…….”
“저자가 그렇게 강하다는 말이오? 하지만 상대는…….”
“알고 있소. 상대가 전설에 내려오는 그 시조라는 것을. 하지만 나는 백괴의 끝을 모르오. 또한, 흑백쌍괴의 끝도 모르지.”
“답답하기는! 똑바로 말해 주시오!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오?”
악전은 상대에게 뭘 묻냐는 듯 대꾸했다.
“염원하던 교주의 승리가 흑백쌍괴의 승리로 바뀌었을 뿐이오. 우리는 그들의 전장에 함부로 나서서는 안 될 것이오. 오히려 방해일 테니까.”
“그런…….”
“이건 그들만의 싸움이 아니오. 그들이 패하면 동부는…… 아니, 스칸다가 어떻게 될지는 아무도 알 수 없소.”
전부를 건 싸움.
오직 악전과 강오만이 흑백쌍괴의 진가를 알았다.
우습게도 이 둘은 지금의 이 싸움이 해 볼 만하다는 생각을 했다.
이 자리에서 시조를 멈출 수 있는 건 정체불명의 괴인 형제, 흑백쌍괴뿐이었다.
송하린이 물었다.
“형님, 제 상처가 다 아물었네요. 아직 신성력은 넉넉하신지? 아우가 너무 많이 꺼내 썼나요?”
“괜찮습니다.”
“그럼 좀 더 다치겠습니다. 저 바퀴벌레가 제 검을 훔쳐 갔거든요.”
그녀가 고개를 좌우로 기울였다.
우득.
“제가 뭔가를 훔치는 건 좋아해도 누가 제 물건을 훔치는 건 아주 싫어합니다.”
송하린이 대봉에서 사라졌다.
팟.
성진은 먼저 자세를 가다듬고 봉을 뻗었다.
그가 바훔의 간격으로 들어서자마자 공격이 무차별적으로 쏟아져 들어왔다.
캉!
카카캉!
놀랍게도 성진은 모든 수를 받아쳤다.
비록, 혈정을 있는 대로 흡수한 바훔의 힘을 압도하지는 못했지만 밀리지 않고 그의 수를 파훼했다.
“호오…….”
캉!
바스락.
송하린이 오래된 나무를 끼고 돌아 사각에서 튀어 나왔다.
“나는 노상강도!”
캉!
카앙!
송하린이 천마도를 손잡이부터 쳐올려 그녀의 칼을 되찾아오려 했지만, 상대는 어렵지 않게 대응했다.
“이런, 실패! 형님! 포메이션 B로!”
성진은 포메이션 A도 알지 못했다.
그래도 대충은 포메이션 B가 무엇인지 감을 잡았다.
보통 이런 작전은 단위가 높아질수록 난폭해지기 마련.
후우우…….
파짓, 지지직.
귀신의 호흡, 야차(夜叉)
성진의 기세가 갑자기 흉포하게 변했다.
바훔의 표정도 그에 따라 굳었다.
“만만한 사내가 아니구나…….”
부우웅.
콰아앙!
쾅!
콰아아아앙!
성진이 봉을 휘두를 때마다 폭음이 들렸다.
야차의 호흡은 신진대사를 끌어 올리고 파괴력과 속도를 폭발적으로 증가시키지만, 몸에 그 부담도 함께 가중되었다.
“흐으으아!”
콰아아앙!
“윽…….”
성진의 공격을 받은 바훔이 뒤로 주르륵 밀려났다.
성진은 자신의 몸에 주어지는 부담을 적과 함께 나눌 생각이었다.
쾅!
콰아앙!
으직, 으지직!
땅거죽이 뒤집히고 나무들이 부러졌다.
새하얀 광채를 휘감고 무자비한 공격을 일삼는 성진의 모습은 정말 바훔을 벌하기 위해 하늘이 내린 신장(神將) 같았다.
“이때다!”
송하린이 외침과 함께 날다람쥐처럼 등장했다.
바훔은 성진과의 전투가 쉽사리 풀리지 않는 이 상황에서 그녀의 존재가 부담스럽게 느껴졌다.
그래서였을까.
바훔은 방향을 돌려 그녀를 노렸다.
하지만, 이것이 실수였음을 깨닫는 데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뻥이야!”
송하린이 바훔에게 달려드는 시늉만 하고 다시 숲으로 몸을 숨겼다.
“뭣…….”
이번 수로 송하린을 쓰러트리고 성진을 마무리하려던 바훔의 계획은 어그러졌고, 그 대가를 치러야 했다.
후우웁…….
성진의 봉이 가차 없이 바훔의 가슴팍을 꿰뚫었다.
바훔은 천마도의 도면을 재빠르게 당겨와 그 공격을 가까스로 막았다.
콰직.
콰지직!
“크아아아아!”
쾅!
콰아앙!
콰아아아앙!
균형을 잃은 바훔이 나무를 우수수 부수고 날아가는 소리가 살벌했다.
무인들이 손을 힘껏 움켜쥐었다.
이미 그들의 손아귀는 땀으로 흥건했고 백괴의 가공할 무력에 눈이 휘둥그레진 채 넋을 놓고 보고 있었다.
바훔은 잠시 움찔거리더니, 주변에 대기하고 있던 혈교의 무인들을 돌아보았다.
바훔의 안색은 좋지 못했다.
갈비뼈가 피부 밖으로 튀어나왔고, 숨을 헐떡였다.
눈이 마주친 혈교의 무인들은 몸을 흠칫 떨었다.
바훔이 무엇을 하려는지 그들의 본능이 먼저 눈치채고 겁을 먹었다.
“주, 주군…….”
“안 돼…….”
“으…… 으아아아악!”
혈교의 무인 중 꽤 많은 수가 바훔의 핏빛 소용돌이에 빨려 들어갔다.
살아남은 혈교의 무인 중 1명이 물었다.
“여, 영생을 주신다고 하지 않으셨습니까?”
“영생…… 영생이라…….”
몸을 전부 회복한 바훔이 고개를 작게 저었다.
“고작해야 100년도 살지 못하는 인간이 어찌 영생을 탐하느냐? 불멸이 그리 우스운가?”
“우, 우아아아아!”
혈교의 무인들이 뿔뿔이 흩어져 도망치기 시작했다.
맹의 무인과 월인들이 그들을 추격했다.
“저들을 놓쳐선 안 될 것이다! 동부에 재앙을 퍼트릴 씨앗이야!”
“추격해라!”
몸이 성한 자들은 모두 잔당을 추격했다.
바훔이 성진에게 다가오며 말했다.
“나는 불멸이다. 필멸인 너희가 헤아릴 수 없는 시간을 살아온 존재지. 너희는 결코 나를 넘어설 수 없다.”
성진이 피식 웃었다.
“왜 웃는 것이냐?”
“언젠가 들었던 말이라.”
숲속에서 호쾌한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하하하하하하! 형님, 감히 형님께 그런 건방진 말을 한 자식은 어떻게 됐습니까?”
“필멸이 되었습니다.”
“크크큭…… 들었지, 이 바퀴벌레 녀석아?”
바훔이 인상을 확 쓰고 손을 뻗었다.
그의 손에서 피가 뿜어 나와 대지 여기저기에 떨어졌다.
“그어어어…….”
“부으으으으…….”
피로 이루어진 병사였다.
그들은 성진을 둘러싸기 위해 천천히 다가왔다.
“비겁하다!”
숲속에서 기습만을 노리던 송하린이 튀어나와 성진과 등을 맞댔다.
“아무래도 순서를 바꿔야겠습니다. 선 탈취, 후 처치에서 선 처치, 후 회수로.”
“이렇게 싸우는 것도 간만입니다, 동생.”
“역시 형님은 아우를 그리워했을 줄 알았습니다! 크하하하! 형님, 저는 형님을 까먹고 있었습니다.”
“…….”
“못난 아우의 기억력을 탓하십시오. 그럼.”
송하린의 눈에 검은 번개가 휘몰아쳤다.
파직, 파지직.
그녀는 여전히 불안정했다.
날뛰는 마를 완벽히 다스리지도 못했고, 힘을 휘두를 때마다 번개가 튀었다.
하지만, 신기하게도 그런 것들은 지금 아무 상관이 없어졌다.
그녀의 등에 닿은 성진의 등은 모든 걸 안정시켰다.
그의 숨결이 닿는 공간은 꼭 우주가 정지한 것처럼 느껴졌다.
그녀의 입술이 단어를 말했다.
“나는 다람쥐.”
퍼어엉!
송하린의 칼이 피로 만들어진 병사를 파괴했다.
그녀의 재기발랄한 움직임에 성진이 맞추어 움직여 주었다.
송하린이 마음껏 날뛰자 피의 병사들은 착실하게 그 수가 줄어들었고 성진은 바훔의 견제를 맡았다.
“큭…….”
야차가 없어도 바훔의 움직임을 견제하는 것은 무리가 없었다.
성진은 용의 호흡을 운용했다.
스으으.
그의 모습이 바훔의 시야에서 사라졌다.
바훔이 일순간 당황하여 기척이 느껴지는 공간으로 천마도를 휘둘렀다.
부웅.
허공을 벤 칼.
당연히 성진이 그것을 놓칠 리가 없었다.
쿵!
“컥…….”
쿠웅!
쿵!
“이, 이이!”
성진은 구름 속에서 자유로이 떠돌았고 시종일관 바훔을 몰아붙였다.
그리고 그를 도발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네시온보다 약하군.”
“……뭐? 인간이 어떻게 그의 이름을 아는 거지?”
“네 이름도 곧 이렇게 불릴 텐데, 큰 상관이 있나?”
“……그렇군.”
성진은 시조에 관해 안 좋은 기억이 있었다.
무력감.
자신이 약하기에 모험가들의 삶이 송두리째 사라졌다.
당시에는 방법이 없었다 하더라도, 비록 세상을 위한 것이라도, 그것은 꽤 오랫동안 성진을 괴롭혔다.
그는 오늘, 이곳에서 그 기억을 털어 내려 했다.
그 방법은 시조를 누군가의 희생 없이 자신의 힘만으로 완벽하게 제압하는 것이었다.
바훔이 훌쩍 물러났다.
그는 무표정한 얼굴로 말했다.
“그래, 너희를 인정하마.”
바훔의 기운이 폭주했다.
끈적거리고 붉은 기운이 여러 갈래로 치솟아 맹의 수뇌부를 노렸다.
“이, 이런!”
“안 돼!”
성진은 그 모습을 보고도 움직이지 않았다.
그는 혼자 온 게 아니었다.
부웅.
부웅.
휙, 휘익.
홍예들이 둥글게 펼쳐 서서 봉을 돌렸다.
그러자 반구 형태의 장벽이 생겨 바훔의 힘을 튕겨 냈다.
호랑이가 성진을 쳐다봤다.
성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다른 무인의 피를 흡수해 기력을 회복하려던 바훔의 계획은 어긋났다.
하지만, 그게 그에게 남은 최후의 수는 아니었다.
바훔이 천마도로 자신을 찔렀다.
푸욱.
“킥…… 키이익…….”
송하린의 안색이 어두워졌다.
“무슨 짓을…….”
바훔은 히죽 웃었다.
“비록 이르지만…… 너희의 모든 걸 가져가겠다.”
바훔의 몸이 이상하게 변했다.
갑자기 살이 천마도의 손잡이까지 전부 뒤덮었고 피부와 뼈, 피의 위치가 제멋대로 변했다.
그의 덩치는 계속해서 커졌고, 나중에는 건장한 성인 남성 3명의 신장을 이은 것처럼 되었다.
“크으어어어어…….”
송하린이 말했다.
“이성을 마에게 넘긴 것 같습니다, 형님. 쯧쯧…….”
“그럼 어떻게 되는 겁니까?”
“세집니다. 버섯 먹은 슈퍼마리오처럼.”
“네?”
“이래서 칼부터 찾으려던 건데…….”
“그걸 왜 이제 말합니까?”
“저렇게 나올 줄 몰랐습니다. 마에 주도권을 내주면 인간은 평생을 마의 노예가 되는 것으로 알거든요. 아마 시조쯤이나 되니 나중에는 정신이 돌아오나?”
우득, 우드득.
바훔의 모습은 기괴하고 끔찍했다.
새빨간 피부 밑의 뼈가 곧바로 보였으며, 인간의 모습은 온데간데없었다.
송하린이 먼저 나섰다.
“나는 종이 연.”
콰아앙!
하지만 바훔의 공격이 그녀를 멀리 날려 버렸다.
그녀는 공중에서 재주를 넘으며 착지했다.
“이거, 문제가 좀 있습니다.”
송하린이 말했다.
“심상에 타격이 옵니다, 형님. 혈마 놈의 사술은 시조의 능력이었나 봅니다.”
성진이 고개를 끄덕이고 봉을 휘둘러 바훔의 하체를 노렸다.
콰아앙!
기둥을 부수는 소리가 들렸지만, 오히려 타격을 받은 것은 성진이었다.
“큭…….”
그의 심상이 보였다.
바훔이 성진과 송하린의 심상에 침입했다.
그는 심상에선 더욱 두려운 존재였다.
덩치는 산과 같았고 벼락과 폭풍을 동반하고 성진의 나무를 향해 천천히 걸어왔다.
“심상으로 보호하세요!”
“알겠습니다!”
성진과 송하린이 동시에 외쳤다.
“나는 성벽.”
“나는 성문.”
단단한 성벽과 성문은 바훔이 심상 깊숙이 침입하는 것을 저지했다.
성진과 송하린은 다시 합을 맞췄다.
후우웅!
성진의 봉이 앞으로 뻗자, 바훔이 그것을 손바닥으로 밀어냈다.
타닷, 탓!
송하린이 성진의 봉을 타고 도강을 뿌렸다.
까앙!
칼이 튕겨 날아갔고, 송하린은 그대로 쌍장을 후려쳤다.
파아앙!
“이런!”
그녀는 반동을 이용해 재주를 넘어 탕아를 회수했다.
성진은 그녀가 만든 틈을 이용해 파고들려 했다.
하지만, 마에 잡아먹힌 바훔은 성진의 공격보다 먼저 움직였다.
콰아앙!
“커헉…….”
“형님!”
송하린이 날아가는 성진을 받아 멈췄다.
지지직.
땅이 끌리며 밀려나자, 심상에도 변화가 찾아왔다.
콰아앙!
성벽을 무너트린 바훔이 성진의 나무로 돌격해 왔다.
둘의 심상은 연결되었기에 송하린도 그것을 눈치챘다.
송하린이 성진의 앞을 막아서며 바훔에게 칼을 휘둘렀다.
“나는 팽이.”
휘이익.
터덩, 텅!
그러나 바훔의 단단한 팔에는 상처 하나 남길 수 없었다.
“나는 도토리.”
쾅!
그녀는 튕겨 나갔고, 다시 돌진했다.
“나는 조약돌.”
쾅!
“나는 민들레 씨.”
콰앙!
송하린이 계속 바훔의 시선을 교란하자, 심상의 바훔이 그녀의 빙산으로 고개를 돌렸다.
빙산에 칼을 쥔 그녀가 서 있었다.
붉은 뱀보다 더한 존재가 그녀를 노렸다.
하지만 그녀는 물러서지 않았다.
물러서면 모두가 위험해질 수 있다는 이유 때문이 아니었다.
여기서 물러서면, 영원히 변하지 못할 것 같아서였다.
-하린아.
그녀의 심상에 그녀의 사부가 나타났다.
-언젠가 네가 믿는 사람이 나타난다면, 너도 변할 것이다. 넌 멍청해서 그렇게밖에 변할 수 없어. 혼자서는 변할 수 없다.
그녀의 사부가 심상 속 그녀의 어깨를 두들기고 사라졌다.
-그래, 혼자선 변할 수 없어.
“나는 무지개.”
콰아앙!
푸슉!
바훔의 손목에 피가 튀었다.
작은 변화가 일어났다.
그녀는 악동의 미소를 한 채로 칼을 휘둘렀다.
“나는 그림자.”
푸슉!
“나는 바람개비.”
후우웅!
바훔이 그녀의 빈틈으로 공격을 집어넣었다.
악전이 소리쳤다.
“위험하다, 하린아!”
그녀의 곁에서 성진의 목소리가 들렸다.
“나는 암석.”
콰아앙!
바훔의 공격은 성진을 뚫지 못했다.
송하린이 피식 웃고 공격을 이어 나갔다.
성진도 그에 호응했다.
“나는 뻐꾸기.”
“나는 둥지.”
푸화악!
바훔이 어깨를 크게 베였다.
그가 거칠게 팔을 휘저어 송하린을 잡으려 했다.
하지만, 그때마다 번번이 성진이 공격을 막았다.
심상에도 변화가 찾아왔다.
바훔은 산을 오르지 못했다.
송하린의 빙산이 녹기 시작했다.
그녀의 심상은 성진과 이어져 초원과 녹음을 받아들였고, 산을 녹였다.
풀들이 자라고, 꽃망울이 터졌다.
심상과 현실은 곧 경계가 사라졌다.
성진이 먼저 길을 열었다.
“나는 구름.”
“나는 달.”
콰아앙!
바훔의 손이 크게 젖혀졌다.
방어 자세가 무너졌다는 것은 곧 공격자에게 큰 기회다.
송하린과 성진은 이어진 심상을 통해 서로의 생각을 공유했다.
둘은 함께 외쳤다.
“우리는 호수.”
“우리는 호수.”
성진의 봉이 남은 바훔의 팔을 쳐 냈고, 송하린이 그것을 잘랐다.
서걱!
“우리는 회색.”
“우리는 회색.”
성진이 날아오르며 바훔의 뿔을 후려쳤다.
송하린이 바훔의 목을 노렸지만 되돌아온 그의 손을 베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서걱!
송하린의 눈에 깃들었던 검은 번개는 사라졌다.
선명한 시야를 가지게 된 그녀는, 그녀의 칼을 휘둘렀다.
절벽에 하늘을 새기듯, 그녀의 사부가 가르침을 준 그대로.
파천황(破天荒).
콰아아아아아아아아!
그녀의 탕아는 바훔을 산산조각 냈다.
“우리는 흑백쌍괴!”
“우리는 흑백쌍괴!”
성진의 봉이 회전하며 바훔이 재생하지 못하도록 엉겨 붙게 했다.
언뜻, 마에 몸을 내주기 전의 바훔의 얼굴이 보였다.
“크…… 아아…….”
성진의 봉에서 가지가 자라나 그 잔해를 흡수했다.
으직, 으지직.
“너, 너희는…….”
바훔의 몸 밖으로 튕겨 나온 천마도를 송하린이 쥐었다.
한 손에는 탕아를, 다른 한 손에는 천마도를 쥔 그녀가 말했다.
“칼은 받아 간다.”
바훔이 검은 가루가 되어 사라졌다.
성진의 시스템 창이 반응했다.
-시조(始祖) 대공(大公) 바훔의 피에 적응합니다.
-심상의 확산을 깨닫습니다.
-고결함이 30 상승합니다.
-신성력이 대폭 강화됩니다.
-계몽의 발동 조건이 변경됩니다.
-chapter 6-8의 조건을 충족시켰습니다.
-chapter 6-8을 클리어합니다.
-보상으로 이미지 : 공백을 습득합니다.
혈교 잔당의 신병을 확보한 무인들 모두가 이 광경을 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