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5
125화
===========================
chapter 6-8. 일거양득.
-모험가 협회에서 당신에게 맡긴 임무는 무지개 사원과의 연락망을 만드는 것이었습니다. 당신은 성공적으로 무지개 사원을 찾았고 그들과의 연락망을 만들려 했습니다. 하지만, 사원 측에서 조건을 걸었습니다. 당신에게 이 조건은 꼭 나쁘지만은 않은 것 같습니다. 사원의 요구대로 나무를 심으십시오. 그 나무가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아직 알지 못하지만 말입니다.
-이 임무는 메인 시나리오입니다.
-에어리어를 개방하기 위해서 누군가는 해내야 하는 임무입니다.
===========================
사슴과 거북이, 그리고 학은 성진을 가만히 쳐다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흘흘흘…… 그럼 이만 가 봐야겠군.”
“이방인, 이름이 무엇입니까?”
“초모라고 합니다.”
“초모, 호랑이가 당분간 당신이 지낼 곳을 알려 줄 것입니다. 내일부터 수련을 시작할 테니 오늘은 휴식을 취하십시오.”
“알겠습니다.”
호랑이가 다시 가면을 쓰자 몸이 원래대로 돌아왔다.
어느 쪽이 원래 모습인지 알 수 없지만, 그의 성격상 고양이가 원래 모습인 게 더 설득력 있었기에 성진은 고양이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먼저 대사부들이 떠나자, 홍예들도 자리를 뜨기 시작했다.
하지만, 성진에게 그다지 호의적이지 않은 수도사도 있었다.
크르르…….
가장 먼저 적의를 표한 건 개 가면을 쓴 수도사였는데, 그는 성진을 향해 으르렁거리다가 자리를 떴다.
그리고 돼지 가면을 쓴 수도사는 눈에 힘을 주고 성진에게 경고하듯 말했다.
“나는 네가 배나무의 후인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레이서 님은 너 따위가 넘볼 수 있는 분이 아니니까.”
“…….”
“어떻게 잔재주를 부렸는지는 모르겠지만, 지켜보겠다.”
「야…… 그만해…… 그만!」
-네? 레이서 님? 지금 이게 무슨 사태죠?
-풉ㅋ 풉ㅋ 레이서 님~ 초모가 님보다 약할 거래요. 대체 이 상황은 어떻게 된 거죠?
-ㅋㅋㅋ 나, 이거 알아. 레이서 쪽 주려고 돼지가 작정한 거야. 맞지? 레이서 형?
-돼지랑 사이 안 좋았을 거야. ㅋㅋㅋ
-수치사 예정.
-여러분 웃음 벨입니다. ㅋㅋㅋ 웃으세요~
호랑이가 성진을 안내했다.
교당을 빠져나와 숙소로 사용할 만한 장소에 도착했다.
하룻밤 숙박하는 데 비싼 비용을 내야 하는 곳에서도 종종 묵었던 성진에게 최고의 숙소까지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산봉우리에 지어진 사원이 이 정도라면 아주 훌륭한 편에 속했다.
“여기야! 어때?”
“좋습니다.”
“나도 수련생 때는 여기에서 지냈어! 지금은 비어 있지만, 관리는 잘되어 있으니 괜찮을 거야!”
“친절하시네요.”
“친절? 그런가? 이게 친절한 건가?”
숙소에는 거미줄이 쳐진 곳도 없고, 웃풍도 들지 않았다.
천장이 낮은 점이 좀 아쉬웠지만, 불평이 나올 정도는 아니었다.
“그럼, 수련은 어떤 방식이죠?”
성진은 자신의 물음에 호랑이가 얼굴을 찡그렸다는 걸 그의 억눌린 신음에서 알 수 있었다.
“으음…… 모르고 있는 게 더 좋을 텐데…… 알고 싶어?”
“네.”
“나도 확실하게는 모르지만, 배나무 수도사는 홍예들과 함께 수련하면서 실력을 키웠대.”
“홍예와 함께 수련?”
“아! 다 같이 하는 게 아니라, 1명, 1명이 자신의 장기를 전수하는 거야! 좋지, 좋지?”
「좋긴 뭐가 좋아, 개다래 색기야…….」
-엌ㅋㅋㅋㅋ 후기 등장.
-별점 몇 개 주시나요?
-한 개요. ㅅㅂ
-ㅋㅋㅋㅋㅋㅋㅋ 수련 빡센가 보네.
-보시면 압니다.
성진이 호랑이가 무안할까 봐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좋네요.”
“홍예들은 이렇게 수련하지 않아. 무식한 방법이거든! 하지만, 대사부님께서 이방인들에게는 이런 방법을 고수하셔서 말이지……. 효과는 좋은 것 같아!”
“그런데, 호랑이는 유연함의 호흡을 사용하는 겁니까?”
“응! 멋있지? 역시 호랑이는 유연함의 호흡이지!”
“……네. 맞습니다.”
“홍예들은 전부 한 가지 호흡만을 파고들었어. 그 호흡을 극성까지 익힌 거지. 물론 아직도 갈 길이 멀다고 느껴지지만.”
성진은 문득 궁금해졌다.
이방인들을 가르치는 방법이 그러하다면, 레이서는 과연 몇 개의 호흡을 익혔을까?
“배나무 수도사는 몇 개의 호흡을 익혔습니까?”
“다! 아니…… 다 익히긴 했는데, 홍예 정도로 극성으로 익힌 호흡은 3개 정도일 거야. 대단하지?”
“대단하네요.”
-세 개요? 욜.
-님 쫌 치셨네여?
-레이서 누가 핫바리랬냐? ㅡㅡ 나라고? 데헷~
-호랑이 정도 호흡 쳤으면 ㅇㅈ이긴 하네.
-세긴 셌네…….
호랑이가 성진에게 가까이 다가와 귀를 빌렸다.
그리고 소곤소곤 이야기했다.
“내가 봤을 때는 초모도 재능 있어! 그것도 엄청! 분명 전보다 훨씬 강해질 거야!”
“힘이 나네요. 감사합니다.”
“일단 자 둬! 앞으로 대사부님이 무슨 짓을 할지 모르니 살려면 자 둬야 해.”
“알겠습니다.”
호랑이가 떠나고, 성진은 숙소 주변을 거닐었다.
이곳에서 바라보는 석양은 매우 아름다웠다.
신비로운 사원에서 얼마나 성장할지는 모르겠지만, 사슴의 말이 맞았다.
‘어중간해.’
신관도, 수도사도, 무인도 아니다.
어중간한 한 수를 익혀 그럴싸하게 보일지는 몰라도 달인들과 겨룰 때는 그 차이가 확연하게 보일 것이다.
당장 전력으로 홍예와 싸운다면 지지는 않겠지만, 꼭 호흡으로 이기고 싶었다.
‘나무는 뭘까?’
거북이가 말한 나무가 무엇인지, 그리고 균형의 수호자는 또 무슨 말인지, 예언은 대체 왜 자신이 온다는 하잘것없는 것을 예언했는지.
‘모르겠다.’
당분간은 지내 봐야 알 것 같았다.
성진은 방에 들어가 잠자리에 들었다.
***
다음 날, 가장 먼저 성진의 숙소를 방문한 건 거북이였다.
거북이는 아침부터 웃으며 성진을 반겼다.
“흘흘흘…… 잠은 푹 잤는고?”
“예, 준비됐습니다.”
“따라오도록 하여라.”
거북이를 따라 이동한 곳은 특이한 장소였다.
체육관처럼 넓은 공간과 더불어 특이한 기관진식이 설치되어 있는 곳이었다.
“초모, 네가 처음으로 가르침을 구할 것은 버드나무의 수도사다.”
“그게 누구죠?”
“양.”
거북이가 앞장서서 들어갔다.
양이 반겼다.
풍성한 털이 양의 천진한 모습을 더 부각했다.
“오셨메에에.”
“흘흘흘…… 준비는 되었는지고?”
“메에에…….”
“좋아, 시작하지.”
거북이가 중얼중얼 뭔가를 외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기관진식을 발동한 것 같았다.
실내가 변화했다.
철컹.
철컹.
건물의 벽들은 사라지고 성진만 빛이 가득한 공간에 남게 되었다.
어딘가에서 거북이의 음성이 들려왔다.
방향을 특정하기 어려웠다.
“지금부터 네 감각을 일깨우기 위한 훈련을 하겠다. 첫 번째 훈련은 소리 너머의 소리를 깨닫는 능력이다.”
소리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잭이 호흡을 사용할 당시 소리라고 한 적이 있었다.
그 이후로 성진도 소리가 호흡에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소리 너머의 소리?’
솔직히 뜬구름 잡는 말 같았다.
아랑곳없이 거북이가 말했다.
“양의 호흡은 부드러움의 호흡. 시작하시게.”
“메에에…….”
양은 시력이 좋지 않다고 들었다.
그래서 양치는 개들을 목자인 줄 알고 쫓아다니기도 하고, 절벽인지 모르고 달리다 추락하기도 한다고 들었다.
그래서인지, 상대도 자신이 보이지 않는 것 같은데 별 상관없다는 듯 어렵지 않게 공격해 왔다.
푸웅.
푹신한 감각이 복부에 작렬했다.
주먹치고는 표면적이 넓었고, 공격은 부드러웠다.
하지만, 그 공격에 성진이 훌쩍 날아갔다.
쾅!
데에에에에엥!
“커헉…….”
날아간 자리에는 큰 종이 있었다.
큰 종에 부딪히자 사방 천지를 울리는 소리가 가득했다.
귀에서 피가 날 지경이었다.
“메에에…… 아프메에에?”
입에서 피가 나왔다.
방심한 것은 아니었지만, 변화한 상황에 당황하기는 했다.
으득.
“다시.”
움직임을 잡아야 했다.
소리는 곳곳에서 울렸다.
데에에에에엥!
데에에엥!
양이 일부러 종을 치는 듯했다.
청각이 무뎌져 아까보다 덜하긴 했지만, 그것이 덜 고통스럽다는 의미는 아니었고 또 양의 위치를 특정할 수 있다는 것도 아니었다.
“흘흘흘…… 감각을 포기해라. 새로운 길이 열릴 것이니.”
“조용히 좀 해 주십시오. 종소리만으로도 시끄럽습니다.”
“헙…… 이제 보니 성격이 마냥 좋지만은 않은지고.”
성진은 기척이 느껴지는 것 같아 팔을 세게 휘둘렀다.
쾅!
데에엥.
“크윽…….”
팔이 징징 떨렸다.
종을 후려친 듯했다.
‘종이 어디에 있는지를 모르니…….’
왜 거북이와 양은 전장으로 이런 장소를 선택했을까.
이유가 있을 것이다.
이건 자신을 죽이기 위한 함정이 아니다.
자신을 깨닫게 하기 위한 수련이다.
지금 거북이와 양은 일부러 시간을 내어 자신을 가르치고 있다.
의도를 찾아내야 했다.
‘부드러움의 호흡이다. 왜 부드러워야 할까?’
공격이 들이닥쳤다.
‘늦었어!’
푸웅.
충분히 방비했지만, 뒤로 날아갔다.
콰아아앙!
“컥…….”
데에에엥!
데에에에엥!
다시 찾아온 감각의 혼란.
“메에에에…… 정신 차려메에…… 여기는 깨닫는 순간 놀이터메에에…….”
욕이 튀어나올 뻔했다.
각혈하며 수련을 하는 장소가 어찌 놀이터가 된다는 것인지.
‘아니, 이유가 있을 거야.’
성진은 아까 포기했던 생각을 이어 갔다.
‘방금도 타격은 부드러웠어.’
성진의 머리에 의문이 계속해서 맴돌았다.
소리는 어느새 들리지 않게 되었다.
너무 큰 종소리를 잇달아 들었더니 드디어 청각기관이 맛이 간 것 같았다.
하지만, 오히려 편안해졌다.
데에에…….
시끄럽게 귀를 때리던 소리가 어느새 사라지니, 문득 자신이 보였다.
그런 순간이 있다.
무대의 모든 조명이 꺼졌지만, 여전히 1개의 스포트라이트가 자신을 비추는 듯한 감각.
그런 감각을 느꼈다.
그 순간, 무대에 누군가 올라왔다.
‘온다.’
푸웅.
이번엔 알았다.
그것으로 되었다.
날아가며 생각했다.
부드러워야 한다고.
구태여 입으로 읊지 않았다.
그것은 편법이었고, 실전의 모든 상황은 녹록지 않다.
호흡은 변화해야 하고 그 변화는 빨라야 한다.
‘부드럽다.’
양의 폭신한 감각을 기억했다.
자신도 꼭 저렇게 되고 싶었다.
그렇다면, 꼭 그렇다면.
‘아프지 않을 텐데.’
등에 종이 닿는 감각이 들었다.
하지만, 소리가 달랐다.
푸웅.
통.
성진이 트램펄린을 탄 것처럼 다시 튕겨 나갔다.
‘됐어!’
이제야 양이 한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 것 같았다.
-메에에에…… 정신 차려메에…… 여기는 깨닫는 순간 놀이터메에에…….
이렇게 통통 튀어 다니니 놀이터라는 표현은 과장된 게 아니었다.
배움은 고통 속에서 각인된다는 말이 있다.
인간은 단순해서 가장 선명하게 와닿는 것이 고통이다.
성진의 상황이 딱 그러했다.
맞으면서 배운다는 말이 이러할까.
아프다 느끼니 아프지 않고 싶어 깨우쳤다.
‘아직, 이 정도로는 안 돼.’
양의 위치를 특정하지 못했다.
단지 부드러움의 호흡을 깨우치기 위해서라면 이런 장소를 마련하는 건 과한 행동이다.
‘소리 너머의 소리.’
데에엥.
데에에엥.
의식을 집중하면 다시 종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의식을 흐트러트리면 종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굉음의 틈에서 소음을 지울 수 있게 되었다.
‘어?’
거북이가 웃었다.
“흘흘흘…… 과연 역시…….”
성진은 종소리를 지우고 거북이의 말소리를 지웠다.
자신의 격해진 숨소리, 옷깃이 바스락거리는 소리와 종에 몸을 부딪는 소리가 들렸다.
이것 또한 지웠다.
거북이의 숨소리를 지우고, 종이 흔들리는 소리를 지웠으며 얇게 이는 바람 소리도 지운 것 같았다.
후…….
후…….
마침내, 양의 소리가 들렸다.
성진은 몸을 튀겨 양에게 날아갔다.
종소리가 사원을 뒤흔드는 와중의 일이었다.
성진은 양을 잡았다.
“잡았다.”
“메에에에! 무서워메에에에!”
성진은 양을 집어던졌다.
그리고 말했다.
“다시.”
“메에에에에에! 살려 줘 메에에에!”
“흘흘흘…….”
“웃지 말고 멈춰라메에에!”
“흘흘흘…….”
수련은 종일 계속되었다.
버드나무의 수도사는 성진이 자신의 호흡을 깨우쳤다고 인정했다.
그리고 실신하듯 성진의 품에 쓰러졌다.
***
“소리 너머의 소리, 알겠는고?”
거북의 말에 성진이 양털을 쓰다듬으며 답했다.
“알겠습니다. 감각에 지나치게 의존하고 있었다는 것도, 감각을 이용할 수 있다는 것도.”
“흘흘흘…… 예언의 사내는 모든 걸 금방 깨우친다고 들었다. 역시나 예언은 거짓되지 않았구나.”
“대체 그 예언은 무엇입니까?”
“내가 답할 사안이 아니다. 네가 홍예들을 차례차례 쓰러트린다면 그분을 볼 것이다.”
“그?”
“그분은 예언의 당사자는 아니지만, 전해들은 이지. 나도 그분께 들었다. 아무튼, 내일 다시 보자꾸나.”
거북이가 스륵 사라졌다.
‘양커엽누ㅋㅋ’ 님이 1,000원 후원하셨습니다!
[하지만 나는 저 놀이기구를 탈 수 없지.]
-왜여?
-나 가발이라…… 날아가…….
-(귓속말) 하일, 하이모드라!
-(귓속말) 하이모 두 달 압수.
-나쁜 새끼들. ㅠㅠ
숙소로 돌아온 성진에게 호랑이가 찾아왔다.
“버드나무가 초모를 칭찬했어! 악독하대!”
“칭찬인가?”
“몰라! 양은 나쁜 말을 안 하니까 나도 잘 모르겠어.”
“내일은 누구야?”
“나야! 호랑이! 어흥! 무섭지!”
“너무 무서워.”
-무서워서 바지에 똥 쌌어, 책임져.
-아 호랑이 넘 죠아. ㅋㅋㅋ
-윗댓특) 호랭이 가면 벗으면 바지에 똥 쌈.
호랑이가 우쭐한 것처럼 어깨를 으쓱 올리고 허리에 양팔을 가져갔다.
그가 말했다.
“내일은 교당 뒤편으로 나 있는 길로 올라와! 거기 폭포가 있을 거야!”
“거기서 하는 거야?”
“응! 대사부가 거기서 보자고 했어!”
“알겠어, 내일 봐.”
“응, 헤헤헤 내일 봐!”
-저렇게 착한데…… 가면만 벗으면 야성미가…….
-그런 걸 갭모애라고 하는 거야.
-전혀; 갭이 너무 지독하잖아.
-일단 모애도 아니야. ㅋㅋㅋ
성진은 다음 날이 되어 폭포로 찾아갔다.
거북이가 기다리고 있었다.
“흘흘흘…… 어제보다 나은 내일이 기다리고 있나니, 호흡이 어제보다 안정되었구나.”
“그렇습니까?”
“아니, 기분 탓인가?”
“…….”
쏴아아아아아아.
폭포가 거친 물살을 토해 냈다.
성진이 놀란 것은 방금까지 폭포가 잔잔했기 때문이다.
“우리는 저것을 퐁당 폭포라고 부른다. 이 산은 워낙 특이해서 저런 폭포 하나쯤 있어도 이상하진 않지.”
“일정 주기마다 물을 쏟아 내는 겁니까?”
“그것도 모른다. 시간도 일정하지도 않고, 낙수량도 일정하지 않지. 참으로 재밌는 폭포 아니냐?”
“……네.”
“옷을 벗어라.”
-ㅗㅜㅑ;;
-아 머야 속옷들 다 챙겨 입었네.
-윗댓들 다 남자임.
성진이 도복을 벗고 물이 고여 있는 계곡 앞에 섰다.
깊이가 무척 깊었다.
“호랑이, 준비되었느냐?”
“응! 되었어!”
호랑이는 흉흉한 기세를 뿜으며 성진과 나란히 섰다.
성진이 물었다.
“오늘은 가르침을 주시지 않습니까?”
“아, 까먹었다.”
“…….”
거북이가 골똘히 생각하다가 넌지시 얘기했다.
“잊지 마라, 네 두려움이 어디서 기인한 것인지를.”
“수련 내용은 어떻게 됩니까?”
“간단하다, 폭포가 세 번 떨어질 동안 호랑이에게 잡히지 않으면 된다. 잡히면 물 밖으로 나와 다시 처음부터. 이해했는고?”
“이해했습니다.”
수중 술래잡기라는 얘기다.
종말 이후에서 대형 몬스터들에게 도망 다녔던 기어들이 새록새록 떠올랐다.
나름, 자신도 있었다.
“시이이이작!”
거북이가 소리치자, 두 인영이 물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성진은 물에 들어가자마자 눈을 번쩍 떴다.
‘윽…… 눈이 따가워.’
눈이 따가운 것도 잊은 채 부지런히 헤엄쳤다.
성진은 수영에도 일가견이 있었다.
후우웅.
물살의 저항이 거셌다.
‘어디지?’
호랑이가 보이지 않았다.
분명 물에 같이 뛰어든 것 같은데도.
툭.
성진의 팔뚝이 흔들렸다.
돌아보니 호랑이가 손가락으로 밖을 가리키고 있었다.
허망하게 잡혔다.
물 밖으로 빠져나오자, 거북이가 웃었다.
“흘흘흘…… 폭포가 떨어지기도 전에 잡히면 어쩌는고.”
“……다시 해 보겠습니다.”
“아무렴, 그래야지. 호랑이야, 봐주지 말아라.”
“응! 자신 있어!”
다음도.
“잡았다!”
그다음도.
“또 잡았다!”
이틀이 지났다.
“잡았다!”
폭포는 떨어지지도 않았는데, 성진은 괴로울 뿐이었다.
도저히 물에서 호랑이를 당해 낼 수가 없었다.
-무릇 고양이는 액체라 했다.
-그게 이렇게 쓰인다고? ㅋㅋㅋ
-와 고전하는 거 간만에 보네.
-근데 이해는 감, 물속에서 호랑이 빛나는 눈 봐봐. ㅋㅋ 나라도 쫀다.
-ㅇㅈ 죠스 저리 가라. ㅋㅋ
거북이가 조언했다.
“초모야, 한 가지 잊고 있는 게 있구나.”
“무엇입니까?”
“호랑이가 지금의 경지를 얻기 위해 얼마나 노력했을까?”
“…….”
아마 수십 년은 노력했을 것이다.
자신은 이제 막 수련을 시작한 것이고.
“급하게 마음먹지 말라. 무엇이 너를 조급하게 하는지는 모르겠으나, 너는 지금 요령으로 이겨 보려고 하고 있다. 그것은 호랑이의 시간에 대한 모독이다.”
“그러면…….”
“요령이 필요한 건 깨달음이다. 깨우쳐야 한다. 무엇이 호랑이를 자유롭게 하고 유연하게 하며 그를 물처럼 만드는지를.”
성진이 한숨 쉬었다.
거북이의 말이 맞았다.
단순히 알량한 수영 실력으로는 그를 이길 수 없다.
“다시 해 보겠습니다.”
“좋지, 젊음은 좋아.”
쏴아!
물보라를 튀기며 입수한 성진은 호랑이를 찾지 않았다.
그저 유유자적 헤엄쳤다.
거북이가 미소 지었다.
“……그렇지.”
-잊지 마라, 네 두려움이 어디서 기인한 것인지를.
성진은 거북의 말을 이해했다.
그가 두려워하는 것은 세 가지였다.
첫 번째는 호랑이가 자신을 쫓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것을 잊었다.
어차피 알든 모르든 이것은 단순히 호랑이를 피하기 위한 수련이 아니다.
두 번째는 숨에 대한 두려움이다.
호흡이 달리면 어떡하지? 숨이 막혀 물을 마신다면?
이것 또한 잊었다.
자신의 호흡을 믿어야 한다.
폭포가 세 번 떨어지는 시간이 얼마나 될지는 모르겠지만.
세 번째는 부자유에 대한 두려움이다.
물에서 움직이는 건 대지를 딛고 움직이는 것보다 자유롭지 않다.
몸이 움직이지 않는 것에 마음은 조급해지고 생각은 경직되었다.
이것을 잊었다.
꼬르륵.
흐름이 보였다.
호랑이가 보였다.
그는 눈에서 흉흉한 빛을 뿜으며 자신에게 접근하고 있었다.
성진은 그를 의식하지 않았다.
자신의 헤엄을 쳤다.
그때, 폭포가 쏟아졌다.
쏴아아아아아!
물에 포탄이라도 떨어진 듯 흐름이 뒤틀렸다.
몸이 빨려 들어갔다.
성진은 가르침을 기억했다.
‘흐름이다. 이건 흐름이야.’
유연함의 호흡은 진작에 운용하고 있었다.
중요한 건 사고다.
생각을 달리해야 했다.
호랑이는 변칙적인 물살에도 아랑곳없이 자신에게 오고 있었다.
‘어째서일까.’
그는 왜 아무렇지 않을까.
이제는 알 것 같다.
그는 물이다.
물에게 잡히지 않기 위해서는 자신도 물이 되어야 했다.
헤엄을 친다는 생각도 버렸다.
흐름에 몸을 맡겼다.
그러자, 거짓말처럼 호랑이와의 거리가 줄어들지 않았다.
호랑이가 화들짝 놀라 성진을 따라잡으려 했다.
성진은 부자유 속에서 자유를 느꼈다.
호랑이와의 수련은 즐거웠다.
폭포로 몸이 뒤틀릴지언정, 흐름을 놓치지 않았다.
폭포의 거친 힘을 유연하게 받아쳐 그 흐름을 비집고 들어갔다.
성진은 물이 되었다.
이제, 호랑이는 그를 잡을 수 없다.
앞에 가는 물을 뒤에 가는 물이 따라잡을 수는 없다.
밀어낼 수는 있어도 앞지를 수는 없다.
마치 자연의 이치처럼.
“푸하!”
성진과 호랑이가 물 밖으로 고개를 내밀었다.
“흘흘흘…… 깨달았느냐?”
“예.”
“초모! 대단해!”
폭포는 어느새 세 번이나 떨어진 것일까.
거북이가 웃었다.
“폭포는 총 서른 번이 떨어졌다.”
“…….”
히죽 웃는 호랑이에게 성진이 말했다.
“다시.”
“……초모? 나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