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9
119화
혈황(血皇) 조청이 깨어났다.
분명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넜다고 확신했을 정도로 심각한 상처를 입었던 조청.
“으윽…….”
통증이 남긴 했지만 움직이지 못할 정도는 아니었다.
숨이 넘어가도 이상하지 않았던 자신인데 어떻게 침상에서 사람들을 마주하고 있는 건지.
창황(槍皇) 악전이 그런 그의 맥을 짚었다.
“깨어났군, 조청.”
“네가 날 살린 거냐?”
“그랬다면?”
“고맙군…… 정말 끔찍한 결말을 맞이할 뻔했어.”
“허허…… 네 감사 인사도 듣고 오래 살고 볼 일이구나.”
“근데 내 상처는 어떻게 된 거지? 네가 한 거냐? 아니, 백의선인(白衣仙人)께서 오신 것이냐? 시간이 얼마나 지난 거지? 내가 설마 몇 년을 누워 있던 건가?”
악전이 피식 웃고 사실을 말해 주었다.
조청을 구한 것은 자신이 아니었고 자신도 누군가에게 구해졌다고. 그리고 조청의 상처를 치유한 것도 그 누군가라고.
“그, 그럴 수가…… 독흉은 만만한 녀석이 아니야. 물론 몸이 정상이었다면 이렇게 허무하게 당하지도 않았겠지만.”
“핑계는…… 패배한 건 우리가 나이가 들었기 때문이지. 아무렴…… 자네나 나나 낡은 명성을 위안 삼아 현재를 살아가는 사람이잖나?”
“하하…… 무대를 내줘야 하는 건 슬프군. 이제는 뒷방 늙은이가 되어 버렸으니…… 추해지기 전에 도망가려다가 뒷덜미가 잡혔구먼. 은퇴하기로 한 건 잘한 결정이었어…….”
악전의 표정이 굳었다.
아무리 조청의 상태가 좋지 않아도 그 변화는 쉽게 눈치챘다.
조청이 느끼기에 악전은 무언가 할 말이 있는 것 같았다.
“자네…… 나한테 뭐 잘못했나?”
“이보게, 조청. 금분세수는 한 번 엎어진 김에 무르는 게 어떤가?”
“뭐? 그게 무슨…….”
“……그녀가 왔어.”
조청은 그 말이 나오자마자 벌떡 일어서려 했다.
하지만, 아무리 성진의 치료를 받았더라도 후유증이 남을 만한 상처였다.
거친 움직임은 그를 침상 밑으로 떨어지게 했다.
“크으윽…….”
“괜찮나? 진정하게나.”
“지금 진정하게 생겼어! 그녀라면…… 송하린을 말하는 거지?”
“그래.”
“말도 안 돼…….”
조청이 진정하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필요했다.
악전은 행사장에서 있었던 일을 차분히 설명했다.
흑백쌍괴라는 괴인들이 나타나 독흉은 물론이고 검흉까지 압도적인 힘으로 짓눌렀다고, 그리고 그 중 흑괴가 송하린이었다는 얘기.
“하린이…… 하린이를 봐야 해…….”
“왜, 철 지난 고백이라도 다시 도전하려고?”
조청이 50년 전 송하린을 짝사랑한 건 알 만한 사람들은 다 알았다.
악전 자신도 그것을 꼬집어 비웃었던 게 떠올랐다.
특히, 고백하던 날 몰래 지켜본 광경은 가관이었다.
-송하린. 비록 우리가 대립하고 네가 이방인의 신분이더라도, 나는 네가 좋다.
-하하하하…… 조청, 가래떡에 찍히기 싫으면 닥치시지. 네가 우리 영감한테 한 짓은 평생 기억하겠다.
조청은 고개를 흔들었다.
“아니, 다 늙어서 무슨…… 그냥…… 얼굴이라도 보고 싶어서 그래. 하린이는 ……어, 어떻게 늙었어?”
악전은 빙긋이 웃었다.
그리고 고개를 저었다.
“전혀, 전혀 늙지 않았어. 하린이는 그때 그대로더라고.”
“뭐? 이, 이런…… 그럼, 나만 할아버지가 된 거야?”
“청년일 때도 가망 없었는데 무슨 상관이야?”
“보고 싶다…….”
“우리가 무슨 자격이 있다고…….”
“그, 그렇겠지.”
산전수전 다 겪은 백전노장, 간악한 자들도 치를 떠는 상대가 조청이다.
하지만, 지금 악전이 바라보고 있는 조청이란 사내는 풋풋하던 청년으로 돌아간 것 같았다.
그의 입가에 떠오르는 미소가 어색했다.
조청은 송하린의 사부가 맹에 도움을 요청했을 당시, 그 뜻을 거부했던 사람 중 1명이었다.
악전이 그에게 물었다.
“나름 떳떳하게 살아왔다고, 부끄러운 짓 한 적 없이 살아왔다고 말하고 싶은데 이 나이 먹고 딱 하나 후회하는 일이 있어.”
“그녀의 사부를 말하는 거군.”
“그래, 딱 우리 나이셨었지. 그때, 맹을 찾아온 그 사람과 비교했을 때 우리는 어른이 되었을까?”
“……아니.”
“그래도, 아직 기회는 있어.”
조청이 침상에 다시 몸을 뉘었다.
“그래서 은퇴를 미루자는 거군.”
“어때?”
“네 생각이 정확히 뭔데?”
“월교(月敎)가 맹과 함께하는 것.”
“푸하하…… 아아…… 아파라…… 미친 짓이군. 월교를 보는 늙은이들의 시선이 어떤지 알잖아?”
“혈교와 비교했을 때 살짝 나은 상황이지.”
“그리고 그녀가 그걸 원할까? 교로 돌아간 것도 확실하지 않잖아? 아니, 애초에 그녀는 교에 소속되지도 않았었는데?”
“준비만 해 두자는 거야. 그쪽에서 맹과 함께할 뜻이 없다고 하면 그뿐이고, 만약 뜻이 있다고 하면…….”
“그녀의 편이 되어야겠지. 야단났군, 난 정치질은 질색인데.”
“그래도 네가 있어 다행이야. 나 혼자서는 엄두도 못 냈을 거야.”
조청과 악전이 서로를 바라보고 웃었다.
“이렇게라도 과거의 빚을 갚았으면 좋겠군…….”
“우리는 영원히 그 빚은 갚지 못할 거야.”
***
송하린이 알고 있다는 정보는 그 존재 자체가 충격적이었다.
채팅 창에서는 이미 한바탕 난리가 났다.
-구라지?
-와;; 이걸 안 풀고 참고 있었다고?
-나였으면 동네방네 떠들고 다녔을 텐데. ㄷㄷ
송하린이 이야기를 시작했다.
하지만, 성진의 기대와는 달리 그녀의 설명은 만족스럽지 않았다.
“나도 많은 것은 모릅니다. 영감이 어느 날, 누군가와 함께 마왕을 처치하기 위해 힘을 합쳤다는 것밖에는.”
그녀는 당시를 떠올렸다.
당시 그녀의 사부는 송하린을 앉혀 놓고 이렇게 이야기했다.
-하린아, 아쉽게도 동부의 힘은 하나로 모이지 않았다. 참으로 애석하게 됐어. 하지만, 마왕은 다른 누군가의 손에 쓰러지게 될 것이야. 나는 그를 돕겠다. 어쩌면 이게 지금 남은 유일한 방법일지도 모르니.
송하린은 말렸다.
맹이 자신의 사부에게 모진 말을 하는 것이 싫었다.
사부의 진심을 곡해해서 듣는 그들이 싫었다.
그리고 모든 것이 흐지부지된 상황에서 세상을 구하기 위해 홀로 싸우려 하는 사부가 가장 싫었다.
몰입은 사람을 이상하게 만든다.
슬픈 영화를 볼 때나, 아주 슬픈 소설을 보았을 때, 그녀는 ‘이건 어차피 영화고 소설이잖아, 하나도 슬프지 않아.’라며 일부러 몰입에서 벗어나고는 했다.
하지만, 스칸다에서만큼은 그러지 못했다.
그녀가 몰입에서 벗어나기 위해 스칸다 자체가 거짓이라고 여긴다면 그것이 가장 슬픈 일일 것이니까.
그녀가 울고 웃으면서 경험한 스칸다에서의 모든 일이 거짓이 될 것이고, 그것은 사부의 존재 자체도 거짓으로 만들어 버리는 것이니까.
그것만큼은 할 수 없었다.
송하린은 화를 냈다.
그러지 말라고, 무슨 죄를 지었다고 그리 혼자 힘들어하냐고.
-하린아, 내 일족은 동부에 큰 죄를 지었었다. 동부 사람들을 학살하고, 비웃으며 짓밟았었어. 적어도 내 선조들은 그러했다.
그것이 왜 당신의 잘못입니까.
왜 아무 잘못도 하지 않은 당신이 죄인이 되려 하는 겁니까.
-푸흐흐…… 어쩌겠나? 그리 쉽게 씻겨 내려가지 않는 기억인지도. 우리를 미워하는 그들의 잘못이 아니다.
그렇다면 나도 가겠다고 떼를 썼다.
자신은 강하다고, 이방인 중에서도 손꼽는다고.
하지만, 사부는 고개를 저었다.
-너는 같이 갈 수 없다. 그분께서 네가 이 일에 참여한다면 일은 실패할 것이라 하셨다.
그분?
정말 엄청나게 강한 사부조차 당신보다 더 강한 사람이라고 말한 그 사람은 누구일까?
-하린아. 그분은, 네가 언젠가 이 모든 걸 알게 될 것이라고 하셨다. 그러니 의심하지 말아라.
마지막으로 물었다.
혹시 함께하기로 한 사람이 이방인이냐고. 사부의 고개는 위아래로 끄덕여졌다.
“아무튼! 그랬다 이겁니다.”
“결국, 그 이방인이 누군지 모른다고요?”
“음…… 아우도 당시에 충격을 꽤 받았던 터라 영감과 더는 말을 섞지 않았습니다. 아마 정보는 그것이 끝일 겁니다.”
성진은 아쉬움에 혀를 찼다.
알게 된 사실은 50년 전 마왕을 쓰러트리는 일에 송하린의 사부가 개입했고 그녀의 사부는 이방인 중 누군가와 함께 나섰다는 사실이다.
“혹시 이방인에 관해 짐작 가는 거라도 없습니까?”
송하린이 그때를 떠올리고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잘 모르겠습니다. 아, 그때 막연히 생각했던 인물이 있긴 합니다.”
“누구입니까?”
“당시 모험가 협회 랭킹 1위가 정보 비공개였습니다. 그렇게 강하다면 아마 그자가 아닐까 하고 의심하긴 했었습니다.”
“협회 랭킹 1위…….”
50년 전에는 이방인들의 세상이나 다름없었다.
그런 시대에 경쟁자들을 제치고 1위를 할 정도라면, 송하린이 그를 의심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알게 된 사실) 마왕은 이방인 + 송하린의 사부 + 그 외 다수 출현이 처치했다.
-머야 생각보다 많은 건 모르네?
-아마 송하린도 설마 잡겠어. ㅋㅋ 하면서 기다리고 있었는데 잡은 거였을 듯.
-근데 송하린 사부는 뭐 땜에 나섰냐?
성진도 그 점이 궁금했다.
그녀의 설명을 듣자면 그녀의 사부와 그 일족이 죗값을 치르는 것처럼 느껴졌으니까.
무엇에 대한 속죄인 건지.
“그런데…….”
송하린은 성진의 말을 막았다.
“오늘은 이만합시다, 형님. 도착하기까지 시간이 좀 남았으니 이야기는 가면서 해도 충분하지 않겠습니까?”
-to be continued.
-다음 화에 계속…….
-팩트) 어차피 심심해서 금방 얘기한다.
***
여행은 계속되었다.
찬봉을 마지막으로 도시는 더 이상 나타나지 않았다.
지형은 점점 험해졌고, 일행의 말 수는 줄어들었다.
발이 푹푹 빠지는 늪지를 건널 때였다.
푸욱.
“으, 똥간에 빠진 것 같아.”
“흑괴, 나까지 기분이 이상해지니까 그렇게 말하지 말라고.”
“망할 똥자루야, 너는 형님 등에 업혀 가니까 그런 말이 나오는 거지.”
“종족 비하는 삼가 주시기 바랍니다.”
“어휴…….”
송하린의 숨소리가 점점 거칠어졌다.
이상한 일이었다.
늘 밝았던 그녀가 힘들어하는 게 느껴졌다.
그래서 물었다.
“무슨 일 있습니까?”
그녀가 머리를 긁적이며 답했다.
“가, 감기 기운이 있어서…….”
“그럼 쉬는 게 낫지 않습니까?”
“아닙니다, 형님. 저 때문에 형님의 일정이 지체된다면 저는 당장 한강 수온을 제 몸으로 체크하러 가겠습니다.”
그녀는 빡빡한 일정에도 아무렇지 않은 것처럼 보였지만, 오늘은 컨디션이 따라 주지 않는 듯했다.
“쉬었다 가죠, 강오.”
“형님!”
“얘기나 하면서 좀 쉽시다. 오늘은 저도 피곤하네요.”
“역시! 피를 나눈 형제답게 아픈 날도 같군요!”
피는 나누지 않았지만, 아픈 그녀를 위해 성진은 굳이 반박하지 않았다.
그녀는 얼마나 아픈 건지 식은땀을 계속 흘렸다.
현실에서의 이상이 스칸다까지 영향을 미치는 것이다.
송하린은 그것을 신기해했다.
“기, 기술력 참 좋네.”
적당히 묵을 만한 동굴을 찾은 후, 성진이 말했다.
“그렇게 아프면 접속을 끊고 쉬시는 게 어떻습니까?”
“애석하게도 캡슐이 회복하기에는 더 좋습니다.”
그건 맞는 말이었다.
육체를 회복하는 건 캡슐에 들어가 있을 때가 가장 빠르니까.
송하린이 자리에 누운 채로 말했다.
“후후…… 그래도 이제 백괴 형님의 보살핌을…….”
“죽 먹어라. 정성이 듬뿍 들어간 죽이다.”
강오가 급하게 끓인 죽을 그릇에 담아 내왔다.
무뚝뚝한 그도 내심 송하린이 걱정되는 눈치였다.
“망할 똥자루, 오붓한 우애의 시간에 왜 나타나는 것이냐.”
“누가 들으면 내가 가겠다고 매달린 건 줄 알겠다. 나 끌고 온 건, 너잖아.”
“아, 맞다. 그랬지.”
송하린이 스스로 죽을 떠먹으면서 말했다.
“아, 형님. 저번에 못다 한 얘기를 해 드리죠.”
“어떤?”
“우리 영감과 영감의 일족에 관한 얘기 말입니다.”
성진이 그 소리에 고개를 끄덕였다.
듣고 싶던 주제였다.
-아싸! 오늘 아프다길래 휴방하는 줄 알았는데. ㅋㅋ
-난 송하린 버리고 갈 줄. ㅋㅋ
-흑백쌍괴는 하나다 이뇨속들아.
그녀가 운을 뗐다.
“영감과 영감의 일족은 월인(月人)입니다.”
“월인?”
“신성한 산에 살며,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습니다. 그들은 외모도 특이한 구석이 있어 이족(異族) 사냥꾼들에게도 노려진 터라 한데 뭉쳐 집단을 형성했죠.”
월인.
처음 듣는 말이었다.
“그 집단이 월교(月敎)입니다. 사실은 현월신교(弦月神敎)라는 이름으로 불리기도 했지요.”
현월신교.
이것도 처음 듣는 말이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자신만 처음 듣는 내용이었다.
-야; 현월신교면 거기잖아;
-모야 ㄷㄷ 월인이라길래 머징했는데;
-마교잖아?
“또 다른 이름은 현월마교(弦月魔敎)였습니다. 물론, 이건 다른 사람들에게 퍼진 이름이지만.”
“마교면 안 좋은 뜻 아닙니까?”
“좋은 마교가 있다는 얘기는 못 들어봤으니 형님 말이 맞을 겁니다. 현월신교는 과거부터 동부에 악행을 저질러 온 곳입니다.”
“…….”
“물론, 그건 과거지요. 그리고 영감과 영감의 일족은 그들이 아닙니다.”
“그럼?”
“현월신교는 종교적 갈등뿐만 아니라 여러 문제로 내부에서 파벌이 나뉘어 대립했습니다. 그 결과, 반으로 쪼개지게 되지요. 월교와 혈교로.”
“혈교!”
혈교.
이번엔 성진이 아는 곳이 나왔다.
창황과 혈황의 참상도 그들이 주도한 일이라고 들었다.
“사실 나쁜 짓은 혈교 놈들이 다 했습니다. 월교 사람들은 제가 한 번 본 적이 있었는데 모두 순박하고 좋은 사람들이었습니다. 오히려 너무 순수해서 제 때가 묻을까 걱정했었습니다. 거의 전부가 붉은 사람들이었으니까요.”
“하지만 한 뿌리에서 갈라져 나와서 사람들이 같은 취급을 하는 것이군요.”
“정답! 영감은 부지런히 그 인식을 바꾸고 월인들이 세상으로 나올 수 있게 노력했지만, 아쉽게도 받아들여지지 않았죠.”
송하린의 사부가 죄인처럼 행동한 것도 이해가 되었다.
“혈교 놈들 덕분에 월인들이 덤터기를 써 세상으로 나올 수 없게 된 거지요. 썩을 놈들.”
“…….”
“형님, 사실 장보도에 적힌 곳으로 가면 제 물건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럼 또 뭐가 있습니까?”
“월인들이 있는 장소로 출입할 수 있는 신물(神物)이 있습니다. 월령환(月靈環)이라는 가락지가 그것인데, 사부가 마지막으로 떠나기 전 저에게 넘긴 것입니다.”
“그것도 함께 있다는 말입니까?”
“예, 그러면 여기서 깜짝 퀴즈!”
-가, 갑자기?
-갑분퀴? 잘 듣고 있었는데?
-(버저에 손을 올리며) 퀴즈는 내 전문이야~ 내가 왜 사는 지부터가 의문이기에~
송하린이 검지를 치켜 올렸다.
“혈교와 월교의 사이는 어떨까요?”
-구리다!
-당연히 구리겠지!
-고향 친구?
-사랑과 우정 사이?
“안 좋을 것 같네요.”
“정답입니다. 그럼, 여기서 한 가지 더! 혹시라도 제가 월교와 관련 있는 인물이라고 판단된다면 혈교가 어떻게 할 것 같습니까?”
“하는 일을 방해할 것 같은데요.”
“형님은 가끔 보면 너무 정답을 잘 맞혀서 매력 없습니다.”
-결론 : 우리 큰일 남. ㅋㅋ
-장룡? 어서 오고~ 바로 패배! ㅋㅋ
송하린의 눈빛이 변했다.
“아마 그들이 흑괴가 누구인지 눈치챘다면, 상황이 좋지 않을 겁니다.”
“다른 방법이 있습니까?”
“없습니다. 강행돌파! 감히 흑백쌍괴의 길을 막으면 어찌 되는지 가르쳐 주면 될 뿐입니다. 물론, 교사는 형님입니다.”
“…….”
“저는 교육에 재능이 없어서…….”
-이제 막 갖다 붙이네. ㅋㅋ
-그냥 백괴한테 시키고 싶은 거잖아. ㅋㅋ
성진이 다른 화제를 꺼냈다.
그도 궁금한 게 있었다.
“혈교는 어떤 집단입니까?”
“저도 많은 것은 알지 못합니다. 영감이 워낙 투박한 성격이어서 뭘 제대로 얘기해 주질 않았거든요. 하지만, 적당히는 압니다.”
송하린이 양손의 검지를 머리에 붙이고 위로 치켜세웠다.
“악마들입니다. 혈교에 몸담은 놈 중에 악인 아닌 사람이 없고 제가 보고 들은 것을 토대로 판단했을 때, 인신 공양부터 시작해서 혈신을 섬기기 위해 별 해괴한 짓거리들까지 다 하는 것 같습니다.”
“인신 공양이면 제정신은 아니군요.”
“뭐, 맹의 입장에서는 혈교나 월교나 비슷하다고 생각하겠지만요.”
“몸이 재생하던데…… 무슨 수법이죠?”
“저도 모릅니다. 원래부터 이상한 몸뚱이들이 많기는 했었는데 그런 몸은 처음 봤습니다. 아마 50년이나 지났으니까 기술적 혁신을 이룬 건 아닐까요? 50년이면 강산도 변하는데.”
“…….”
-50년이면 혈교도 변한다. ㅋㅋ
-이거이거 동부에도 기술 혁신이 ㅋㅋ
송하린이 몇 가지 이야기를 더 나눈 후, 강오에게 얘기했다.
“똥자루, 형님과 긴히 이야기할 것이 있으니 잠시 밖에서 담배 한 대 피고 오겠소?”
“그냥 나가 있으란 말을 뭘 그렇게 어렵게 할까, 알겠어. 난 내일 아침거리나 좀 찾아봐야겠어.”
그녀가 성진에게 귓속말했다.
“형님, 방송을 잠시 프라이빗 모드로 돌리시겠습니까?”
“갑자기요?”
“예. 아무래도 서로를 알아가는 시간은 충분한 것 같습니다. 저는 형님 믿으니 형님은 저 믿습니까?”
“…….”
“헐, 마상.”
“믿습니다.”
성진이 방송을 잠시 프라이빗 모드로 전환했다.
-방장!!!!
-방자아아아아아앙! 뭔데!
-둘이서 ㅁㅇㅁㅇ 머 하는 건데! 설마…….
-응ㅋㅋㅋ 안전~ 오누이자나~
-미로 문제야? 머여? 팅겼나?
스르륵.
송하린이 겉옷을 훌쩍 벗었다.
성진이 당황하여 고개를 돌렸다.
“뭐 하는 겁니까?”
“형님, 안에 챙겨 입을 건 다 입었습니다. 다 크신 분이 부끄러워하시기는.”
“옷을…….”
“그게 아니라, 이걸 보십시오.”
그녀는 가슴과 복부를 칭칭 감은 붕대보다 위쪽으로 올라가 어깨를 가리켰다.
어깨에는 검은 먹구름 문신이 있었다.
“문신…….”
“하하, 멋있지 않습니까?”
“문신도 했었습니까?”
“아뇨?”
이상한 말이었다.
문신하지 않았는데 문신이 있다니.
그녀는 답을 내놓았다.
“제가 한 번, 영감의 검을 쥔 적이 있었습니다. 그 이후에 생긴 문신입니다.”
“그렇군요.”
“그런데, 여기서 밝혀지는 충격적인 진실!”
“네?”
송하린이 장난스러운 표정에서 굳은 표정으로 바뀌었다.
“현실의 저에게도 이 문신이 생겼습니다.”
“…….”
성진은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이와 비슷한 사례를 알고 있었으니까.
바로 자신.
자신은 종말 이후가 진행될수록 몸이 회복되고 있었다.
즉, 게임이 현실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그런데, 영향을 받는 것은 자신만이 아니었던 것 같다.
“신기하죠?”
“……신기하네요.”
“평범한 게임은 아니란 말입니다…… 참…….”
지금 성진은 계약 때문에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런 성진에게 송하린은 다시 한번 불을 지폈다.
“형님, 제가 왜 세종으로 형님을 따라온 건지 아십니까?”
“모릅니다.”
시청자들은 팬심 때문이라고 했었다.
하지만, 송하린은 다른 이야기를 했다.
“형님이 대전을 회복시키고 계실 무렵, 현실의 제게 누군가 찾아왔었습니다. 그 사람은 자신을 이렇게 소개했습니다.”
“누구…….”
뭔가를 떠올린 성진의 몸이 굳었다.
혀도 빳빳하게 굳어 겨우 단어를 조합했다.
그마저도 온전한 문장은 아니었다.
“설마…….”
송하린이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데자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