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5
115화
성진은 송하린의 예측 불가능한 행동에 그릇을 내려놓고 잠시 생각했다.
‘왜…… 혹시 정보를?’
아니, 아닐 것이다.
저 여자는 분명 그냥 전낭을 훔치려고 했을 뿐일 것이다.
그렇다면 왜 자신에게 도움을 청한 것일까?
혼자서 해결해도 될 것을.
‘그것 때문인가?’
아고에 오면서 했던 대화들.
그녀는 자신의 힘이 아직 정상이 아니고 그 힘을 통제하기 어렵다고 했다.
그녀가 지금도 성진에게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믿고 맡긴다는 제스처.
저게 더 열받았다.
-형! 맡길게!
-내가 사고 쳤지만, 네가 보호자잖아!
-휴…… 나까지 나설 필요 없겠지?
“오호…… 간 크게도 이 아고삼랑의 심기를 건드릴 생각을 하다니, 내가 꿈을 꾸는 것은 아닌가 싶군.”
진호가 턱을 매만지며 읊조리자 송하린이 버럭 소리 질렀다.
“하하핫! 우리 백 형님께서는 네놈들을 꿈나라로 보낼 것이니 틀린 말은 아닐 것이외다!”
“동생…….”
틀렸다.
아고삼랑은 볼에 붉은 기운이 도는 것도 모자라서 장포가 심하게 부풀어 올랐다.
진기를 운용할 때의 특징이었다.
진호가 물었다.
“너희는 누구냐? 아고에서 본 적 없는 녀석들인데?”
“크크큭…… 우리를 모르다니, 그 눈은 옹이구멍이 틀림없을 터이니 당장 우리에게 무릎을 꿇고 사죄하라!”
“내 전낭을 훔친 것은 네년인데 왜 내가 사과를 하느냐!”
“닥쳐라! 지금 중요한 것은 그런 게 아니다!”
송하린이 성진에게 다가와 속삭였다.
“형님, 부탁드립니다. 저 녀석들 푸른색이긴 하지만 죽을 정도로 죄를 지은 놈들은 아닙니다.”
“송하린 씨 본인이 나서면 과하게 손을 쓸 수도 있어서 그런 겁니까?”
“네! 바로 그겁니다!”
“근데 전낭은 왜 훔쳤죠?”
“파락호의 전낭을 훔치는 건 지역 치안 유지에 도움이 된다는 연구 결과가 있었습니다.”
성진이 벌떡 일어나 포권했다.
동부에선 사과의 시작을 대부분 이렇게 한다고 들었다.
“제 아우가 함부로 기분을 나쁘게 한 점 사과드립니다. 전낭을 돌려드릴 테니 용서해 주시겠습니까?”
“그럴 수야 없지. 아니, 뭐 정 그렇다면 전낭에 든 액수의 2배를 가져와라. 그럼 용서해 주지.”
성진은 한숨을 쉬었다.
저들이 생떼를 쓰기도 했고 자신에게는 지금 전낭도 없었다.
성진이 머리를 벅벅 긁고 말했다.
“그건 힘들 것 같은데, 다른 방법은 없습니까?”
“너는 팔 한 짝을 내놓으면 될 것이고, 네 동생 년은 목을 내놓아라.”
“과한 처사입니다.”
“시끄럽다! 감히 흑도 알기를 우습게 알고 덤빈 것은 너희들이다! 오늘 너희를 벌해 본보기로 삼을 것이다!”
후우…….
국수가 얹힐 것 같았다.
못난이 가면을 쓴 성진이 마찬가지로 가면을 쓴 송하린을 바라보았다.
그녀는 강오라는 난쟁이 숙수에게 다가가 주문을 하고 있었다.
“두부 튀김이랑 돼지고기볶음, 죽순은 빼. 나는 죽순 못 먹어.”
“죽순이 얼마나 좋은 재료인데 빼나? 이유가 있나?”
“맛없어, 딱딱해.”
“…….”
강오가 돈을 받고 주방 안으로 들어갔다.
송하린이 성진에게 다가와 속삭였다.
“강오를 데려가려면 빚을 지워 둘 필요가 있어서 그랬습니다, 형님. 아마 강오는 지금 우리에게 고마워하고 있을 것입니다!”
“…….”
“그리고 흑백쌍괴의 협행은 이제부터 시작입니다. 마침 적당한 악인이 있으니 형님께서 손을 쓰시면 우리의 행보가 편해질 것입니다.”
“보통 협행은 전낭을 훔치면서 시작합니까?”
“어차피 그런 세세한 부분까지 알려지진 않을 겁니다. 동부 사람들은 대범해서 그런 부분은 사사롭게 여기죠!”
점점 말려드는 기분이라 성진은 말이 궁해졌다.
-설득력이…… 있어!
-뭐, 뭔가 그럴 듯해!
-정보) 50년 전 송하린은 대마두라고 정평이 나 있었다.
그런 성진을 보던 송하린이 입에 배시시 미소를 머금었다.
여전히 개구쟁이 같았다.
“형님, 그것을 하죠!”
“오면서 얘기했던 그거 말입니까?”
그녀가 끄덕거리고 말했다.
“우리가 알려지지 않은 이때엔 조금 과장되게 행동할 필요가 있습니다. 나중에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기 위해서라도. 형님의 위압이 사라졌으니 길 가는 곳마다 시비에 휘말리기 십상입니다. 어서 명성을 떨쳐야 저런 놈들이 기어오르는 것을 방지하지 않겠습니까?”
“그럼 전낭을 훔치지 않으면 되지 않습니까?”
“어허! 아직도 중앙 대륙 물이 안 빠지셨군요! 눈뜨고 코 베어 가는 곳이 이곳입니다! 형님! 저들이 훔치기 전에 제가 먼저 훔친 것입니다! 믿어 주십시오! 제 말대로 하면 다 잘될 겁니다.”
성진은 동부에 관해 하나도 몰랐으니 어쩔 수 없이 그녀의 말대로 하기로 했다.
아고삼랑이 병장기를 빼 들었다.
“다 떠들었나?”
“빨리 끝내죠, 진호 형님.”
스릉.
스릉.
시퍼런 날을 번뜩이는 곡도가 뽑혀 나오자 남아서 음식을 먹던 이들도 피신하기 시작했다.
이제 남아 있는 손님도 몇 명 안 되었다.
어떻게 이 상황에서도 음식이 넘어가는지 신기했다.
정말 동부 사람들이 대범한 것인지도.
송하린이 한쪽 발을 들고 양팔을 바깥쪽으로 향했다.
중심이 흐트러질 만도 했지만, 반대편에는 성진이 있었기에 무리가 없었다.
성진도 그녀가 하는 동작을 정확히 따라 했다.
물론, 아직은 어색했지만.
송하린이 미리 정해 둔 대사를 내뱉었다.
“정의와 신념을 굽히지 않는 우리는 흑백쌍괴! 악의 무리든 위선자든 우리의 눈을 피해 갈 순 없다! 지금이라도 우리에게 용서를 빌면 눈감아 줄 용의가 있다!”
-미친 ㅋㅋㅋ 내가 지금 뭘 보고 있는 거야!
-초모는 왜 저렇게 됐어! 내 초모 돌려줘!
-근묵자흑(近墨者黑)이라 했다. 이미 틀렸어.
흑백쌍괴의 이름을 듣자 아고삼랑의 표정이 굳었다.
그들도 소문을 들은 것이다.
하지만, 물러서지는 않았다.
흑도가 꼬리를 말면 두고두고 놀림감이 될 것이다.
“전낭은 네가 훔쳐가지 않았느냐!”
“하! 남의 가게에 와서 소란을 떨며 손님들을 쫓아낸 것이 너희들 아니냐? 우리는 네놈에게서 합의금을 받아 주인에게 준 것이다!”
“음식은 왜 시켰지?”
“맛있으니까! 아, 아니…… 어차피 오늘 장사를 망쳤으니 다 버릴 것들이었다. 아무튼, 시시한 말다툼은 그만하자꾸나. 어이, 강오!”
송하린이 강오를 부르자 강오가 크게 대답했다.
“또 뭐냐?”
“이자들이 악인이 맞느냐?”
“그래, 드러나지 않은 것까지 포함하면 악인인 것은 분명하지.”
“목격자 증언까지 확보. 자, 형님. 손을 쓰시죠!”
-초모 : 내가 어쩌다 여기까지 추락했나…… 자괴감 들고 괴로워…….
-가짜 광기(아고삼랑) VS 진짜 광기(흑백쌍괴)
-가짜 광기 화들짝. ㅋㅋㅋ
-송하린이 끼어들면 상황이 개판이 돼서 뭐가 뭔지 모르겠네. ㅋㅋ
말다툼이 싫증 난 건지 아고삼랑 중 막내로 보이는 자가 먼저 달려들었다.
팟!
“그 입을 찢어 주마!”
성진이 가볍게 우수(右手)를 내밀어 상대의 도를 쥔 손을 툭 하고 건드리자, 거짓말처럼 상대가 도를 놓쳤다.
“뭐, 뭣!”
그리고.
퉁-!
성진은 일부러 힘을 쭉 빼고 신성력으로 상대를 흔들었다.
상대의 몸에 그의 손바닥이 닿자, 신기한 소리가 나며 상대가 스르륵 무너졌다.
성진이 무너지는 상대의 몸을 받아서 들어 조용히 눕혔다.
아까 말한 것처럼 정말 꿈에 빠지게 한 것처럼 보였다.
송하린…… 아니, 흑괴가 소리쳤다.
“역시 백괴 형님! 엄청난 장법!”
그냥 손바닥 치기였다.
아고삼랑의 남은 둘이 동시에 달려들었다.
꽁무니를 빼도 이상하지 않은 상황이었지만, 여기서 물러서면 여태 쌓은 악명이 조롱거리로 변해 도시를 떠나야 할지도 몰랐다.
“죽어라!”
“이 새끼가!”
쒜에에엑!
도가 날아들었다.
동시에 양쪽에서 파고드는 모습이 꽤 흉흉했지만, 합격술에 익숙한 자들이 아니었다.
성진은 아까보다 빠르게 움직였다.
투두두둑!
병장기 떨어지는 소리와 동시에 두 인영이 허물어졌다.
양손은 아까와 마찬가지로 병장기를 떨쳐 버리고 상대의 몸을 한 번의 손짓으로 뒤흔들었다.
이번에도 그들을 받아 자리에 눕혔다.
“역시! 형님의 엄청난 주먹! 주먹 권! 주먹 권!”
그냥 손바닥 치기였다.
송하린이 바람을 잡자 2층에 있던 자들이 시선이 흑백쌍괴에게 향했다.
성진은 시선을 무시한 채, 이들을 한 데 포개 밖에서 대기 중인 아고삼랑의 수하들에게 넘겼다.
“혀, 형님들!”
“어떻게…….”
수하들은 늘 있던 소란이라 안의 상황을 보지도 않고 있었는데, 그 결과가 이렇게 돌아올 줄은 몰랐었던 모양이다.
성진이 고개를 끄덕이고 안으로 들어가자 음식이 나와 있었다.
송하린은 이미 고개를 처박고 음식을 먹는 중이었다.
쩝쩝.
“형님, 잘 봤습니다. 역시나 대단하신 실력입니다.”
“입에 양념이 묻었습니다.”
“앗! 실례!”
강오가 나와 흑백쌍괴의 자리에 같이 앉았다.
그가 물었다.
“음식이 입에 맞나?”
“아, 물론이지! 맛있어! 맛있어!”
“오랜만이야, 송하린.”
탁!
그릇을 소리 나게 내려놓은 송하린이 강오에게 조용히 으르렁댔다.
“내 이름을 떠들고 다니면 큰일 날 줄 아시오, 강오. 본녀는 여전히 쫓기고 있소.”
“언제는 쫓기지 않은 적이 있던가?”
“아, 그랬나?”
다시 음식을 게걸스럽게 먹어 대는 그녀를 바라보던 강오가 물었다.
“음식만 먹으러 온 건 아니지?”
“아무렴. 여전히 맛있구려.”
“네 밥해 주던 솜씨가 어디 가나? 식돌이 짓도 꽤 했었는데.”
“내 밥만 챙긴 건 아니었잖소?”
“어르신 식사도 챙겼었지.”
그 말에 송하린의 젓가락질이 멈추었다.
가면 아래를 보지 않아도 그녀의 표정이 굳었다는 게 단번에 느껴질 정도였다.
“영감은…….”
“나도 소식은 몰라.”
“그렇군…….”
“알 줄 알았는데.”
“너 사라지고 어르신도 거의 비슷한 시기에 소식이 끊겼어. 내가 알 방법은 없지.”
송하린이 웃었다.
“그런데, 이 객잔은 뭐야?”
“어르신한테 은퇴 자금으로 받았던 돈을 꼴아 박았지.”
“장사는?”
“요리는 몰라도 그쪽엔 소질이 없더라. 파산 직전이야.”
“저 강아지 3마리도 그것 때문에 찾아온 거야?”
“아, 쟤들은 원금을 다 갚았는데도 나타나서 강짜를 부리는 거야. 아는 고수 없는 난쟁이 서러워서 살겠나.”
“아는 고수가 왜 없어? 이제 흑백쌍괴를 알았는데!”
“새로운 별호냐? 그럴듯하네. 일도무적보다는 들을 만하다. 덜 역겨워.”
“이게…….”
강오가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송하린이 아쉬움에 그를 붙잡으려 했다.
“저, 저기…….”
“알아, 같이 가자고 하는 거잖아.”
그녀가 소극적으로 고개를 끄덕이자 강오가 한숨 쉬었다.
“짐 챙기러 간다. 이 객잔은 오늘부터 장사 접는다.”
“역시! 내 밥돌이!”
“밥돌이 아니야! 그리고, 은퇴 자금은 챙겨 줄 거지?”
이번엔 맹렬하게 고개를 끄덕이는 송하린.
강오가 피식 웃고 짐을 챙긴 후 밖으로 나와 소리쳤다.
“식사 중이신 분들에게 아룁니다! 더는 주문이 불가합니다! 맛있게 드시고 계산은 필요 없으니 알아서들 퇴장하시면 되겠습니다. 난쟁이의 쉼터는 오늘부로 문 닫습니다. 그럼.”
흑백쌍괴와 난쟁이는 객잔을 나섰다.
그들이 나선 객잔의 2층.
“흐음…….”
“공자님, 어떻게 보셨어요?”
“뭐, 그냥. 무슨 무공인지는 모르겠네. 근데 두 번째 손을 쓸 때는 나도 제대로 못 보았어. 쾌(快)?”
“아니, 쾌(快)도 중(重)도 아니다. 저건 아무것도 아니야.”
“선배님…….”
“흑백쌍괴라…… 야로를 뒤집어 놓았다더니 특이한 인물들이구나.”
“흑괴가 참 맹랑하더군요.”
“백괴다. 흑괴는 모르겠지만, 백괴는 뭐랄까…… 신비한 느낌이 들더군.”
물망초 같은 느낌의 여성이 수염이 하얗게 늘어진 노인에게 물었다.
“할아버지! 그럼…….”
“그래, 맹에 한 번 초대해야겠구나. 악인은 아닌 것 같으니…….”
“전낭을 훔쳤잖아요?”
“아! 그렇군. 나도 저 흑괴 놈의 말에 넘어갈 뻔했구나. ……참으로 간교한 혀다.”
“…….”
***
‘여럽훈여럽훈’ 님이 1,000원 후원하셨습니다!
[오늘 아주 특별한 날입니다.]
-입대하냐?
-오늘이 무슨 날인 줄 알아, 자기야?
-그만! 그마안!
-뭔 날인데영?
-최근 초모 맘 카페 회원들이 동부의 조력자들을 찾아 이리저리 활동하는 거 아시죠?
-ㅇㅇ 말 많더라. 겜 접은 사람들 귀찮게 한다고. ㅋㅋ
-난 다르게 들었는데? 엥간한 고수 아닌 이상 섭외 명단에 오르지도 않는다던데.
-언플임.
-뭐래.
‘후후후후후훟훟’ 님이 1,000원 후원하셨습니다!
[잠시 후를 기대해 주세요! 저희가 특별한 ‘분들’을 모셨으니까요!]
-‘그 화법’ 에반데.
-아니 씨 ㅋㅋ 누가 왔는데? 예고편에 광고만 쑤셔 넣는 게 어딨어.
-기대해 주세요!
-2,000원으로 사람을 분노하게 하는 네놈은 타고난 어그로꾼이 틀림 없으렸다!
-헿헿헤 그래서 안 보쉴?
-어림도 없지! ㅋㅋ 나님 본방 사수!
굳이 아고에 오래 머무를 필요가 없었다.
일행은 가면을 하나 더 산 후에 아고를 벗어나 산을 탔다.
“뭐야? 굳이 나까지 가면을 써야 해? 흑백쌍괴는 너희들인데 왜 나까지…….”
“멍청한 난쟁이! 당신 때문에 신비감이 떨어지니까 그런 것 아니오!”
성진은 도대체 신비감이 왜 필요한지, 아이돌로 데뷔하려고 저러는 건지 이해가 가지 않았지만 묻지 않기로 했다.
물어봐야 또 궤변을 늘어놓아 본질을 흐릴 것이기에 그냥 그러려니 하기로 했다.
송하린은 그 가면을 쓴 흑백쌍괴보다 신비한 여성이었다.
실제로 그의 말대로 강오를 포섭했고, 자신이 손을 썼기에 다친 사람도 나오지 않았다.
물론, 그녀가 전낭을 훔친 것이 잘한 짓이라는 얘기는 아니지만.
아무튼, 계획대로 된 것은 맞았다.
“이봐, 송하린.”
“그렇게 부르지 말라니까 왜 자꾸 그러시오. 누가 듣기라도 하면 우린 또 쫓길 거라오!”
“흑괴, 궁금한 게 있다.”
“본녀에게? 말해 보시오.”
“저 백괴라는 놈은 어디서 떨어진 것이냐? 너처럼 이방인이냐?”
“말을 삼가시게. 우리 형님께서는 자비가 없는 분이시지. 별명은 트윈 헤드 생성기.”
“머리를 하나 더 만든다고? 오우거처럼?”
“머리를 반으로 쪼갠다는 뜻이지.”
“이거 실례했군.”
성진은 두려운 눈으로 자신을 보는 강오에게 어떠한 항변도 하지 않았다.
그랬다간 어차피 송하린이 다른 별명을 만들어 낼 테니까.
강오가 이번엔 성진에게 직접 물었다.
“저…… 백괴. 어차피 내가 나이는 더 많을 테니 편하게 묻겠네. 자네가 펼친 것은 무공인가?”
“무공?”
“뭐라고 해야 하나…… 내가 비록 미천한 실력임에도 인정받는 이유는 이 눈 때문이거든. 직접 펼치진 못해도 무공을 보는 안목 하나는 인정받을 만하다 이거야.”
“그렇습니까?”
“그런데 당신이 펼친 건 무공이 아니야. 그냥 뭐라고…… 음…… 힘의 충돌? 여하튼 정돈되지 않은 느낌이라고 말해야겠군.”
강오의 안목은 정확했다.
성진이 육탄전을 펼칠 때 사용하는 힘은 그냥 신성력이다.
신성력을 소모하여 상대의 정신을 뒤흔드는 수법.
이게 언제까지 통할지도 모르고 상당히 비효율적이었다.
송하린이 헛기침을 하며 분위기를 바꿨다.
“커흠…… 흠…… 잠시 쉬었다 가는 게 어떻소, 똥자루?”
“똥자루라니. 여전히 남을 이상하게 부르는구나, 흑괴.”
“농이요. 이 산자락을 타고 오르면 하루 묵어갈 만한 자리가 나오지. 계곡도 근처에 흐르고 폭포도 있소.”
“그건 좋네. 고기라도 좀 잡아 와.”
“명령은, 똥자루가.”
“밥 먹기 싫어?”
“몇 마리나 필요하십니까요?”
“3마리면 충분하지. 빵이 굵은 놈이면 3명이니 딱 맞잖아?”
송하린이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뭔가 마음에 들지 않는 눈치였다.
“왜? 싫어?”
“계산법이 틀렸소. 7마리는 필요하오.”
“왜?”
“당신 하나, 형님 하나, 나 다섯.”
“왜 너만 다섯이냐?”
“이것도 나름 양보한 거지. 본녀는 지금 간헐적 단식 중이니 특별히 5마리만 먹겠소.”
“5마리나 처먹는 게 어떻게 간헐적 단식이야?”
“이승에서 먹고 저승에서 굶겠소. 그럼 됐지?”
“……잡아 오기나 해라.”
-ㅋㅋㅋㅋㅋㅋㅋㅋ 결국 똥자루 성님도 대화 포기.
-난쟁이와 인간을 모두 아우르는 근본 화법.
-간헐적 단식 저거 가불기네. ㅋㅋㅋ 다 처먹겠다는 거잖아.
송하린이 하루 머물 자리를 잡아주고 계곡으로 떠났다.
잠시 후, 그녀가 풀을 엮어 만든 간이 광주리에 고기를 담아 왔다.
8마리였다.
“7마리라며?”
“쉿. 내 뇌는 지금 7마리로 생각하고 있소.”
“미쳤군.”
타닥, 탁.
고기에 간을 하고 나뭇가지에 꿰어 불가에 얹었다.
강오가 질병의 우려가 있어 오래 익혀야 한다고 당부했다.
손이 놀고 있으니 강오가 입을 열었다.
“흑괴, 날 데리고 어딜 가려는 게냐?”
“여기.”
장보도를 손에 쥔 채로 아무 말 없이 한참을 쳐다보던 강오가 신음을 흘렸다.
“이거 꽤 골치 아픈 길목에 있네.”
“왜 그러시오?”
“흑괴. 네가 떠나고 동부에는 악인들이 득세했다. 알고 있나?”
“모르지, 내가 어찌 아나.”
“일마(一魔), 이룡(二龍), 오흉(五凶) 그리고 사귀(四鬼). 얼마 전에 네가 야로에서 해치운 도왕이 사귀 중의 1명인 도귀(刀鬼)다.”
“왕에서 귀신이라, 그놈도 참 자기 자리 잘 찾아가는 군.”
“들어봐라. 이들은 악인으로 이름을 떨친 지 오래임에도 수가 줄지 않았어. 그 이유가 무엇이겠어?”
“악인이 강하고, 약삭빠른 데 반해 맹이 약해져서겠지. 아니오?”
“뭐, 얼추 맞다.”
-맹은 약하다(송하린 기준)
-송하린은 기준이 엄청 높잖아. ㅋㅋ
강오가 장보도를 툭툭 쳤다.
“월광지대(月光地帶)에 들어가려는 거잖아. 맞지?”
“맞소.”
“겹쳐, 겹친다고.”
“뭐가 말이오?”
“우리가 가려는 곳은 내가 말했던 악인 중 3명의 영역과 겹친다.”
“엥? 그럴 리가? 거기 뭐가 있다고 구태여 거기 자리를 잡나?”
“네가 뭔가를 찾는 것처럼 그들도 찾고 있는 거겠지. 도귀 놈이 특이한 거야. 이들은 돈이나 허명에는 관심이 없어. 이들의 관심사는 오로지 살육과 무공뿐이지.”
“귀찮은 느낌이군, 설마 내 물건들을 노리는 것은 아니겠지?”
“걸리는 거라도 있어?”
“딱 하나. 여러 가지 넣어 두긴 했는데, 딱 하나가 다른 사람 손에 들어가면 좀 문제가 생길 만한 것이라 그게 걸리오.”
“뭔지는…….”
“똥자루는 몰라도 될 것 같소.”
“나 말고 누구든이지. 아무도 몰라야 하는 것 아니야?”
송하린이 끄덕였다.
딱히 말하고 싶은 눈치가 아니었다.
단지 중요한 물건이 그곳에 있다는 걸 알았으니 되었다.
그녀가 강오에게 물었다.
“똥자루, 그런데 그 악인 중 누구와 겹치는 것이오?”
“권흉(拳凶)과 창흉(槍凶), 그리고 장룡(掌龍)이랑. 뭐 전성기의 송하린이면 별로 무서울 게 없겠지.”
“무섭다……. 큰일이다…….”
“뭐?”
“본녀의 힘은 아직 완벽히 돌아오지 않았소. 그럼 뭣 하러 도망 다닌다고 생각했소? 망할 똥자루!”
“진작 말했어야지! 그럼 얼마나 돌아왔는데?”
“모르오……. 그 흉인지 뭔지 그놈들은 몰라도 장룡은 힘들 것 같은데. 내가 생각하는 기준이 맞는다면 말이오.”
“허어…….”
송하린과 강오가 머리를 감싸 쥐고 울상이었다.
타닥, 탁.
생선 굽는 냄새가 코끝에 감돌 때, 그녀가 생선 하나를 입에 물고 말했다.
“아, 맞네. 똥자루, 문제없소!”
“왜? 문제가 왜 없어?”
“우리 형님이 있잖소! 우리 형님은 말이야…… 음…….”
“절세 무공이라도 익혔나 보군. 맞지?”
강오의 질문에 성진이 답했다.
“무공은 모릅니다.”
“…….”
“하하하! 맞지! 맞아! 형님은 무공을 몰랐었지!”
-저세상 파티. ㅋㅋㅋ
-장룡? 3초식 내에 떡발릴 자신 있다. ㅋㅋ
-강오가 불쌍해…….
***
밤이 깊었다.
별들이 제자리를 찾아가고, 산짐승 소리와 폭포수 떨어지는 소리가 밤공기를 타고 전해 오는 이 시간.
강오는 이미 코를 드르렁 골며 자고 있었고, 성진과 송하린은 깨어 있었다.
송하린의 물건들이 잠들어 있는 곳은 위험천만한 사지(死地)였고 대책이 필요한 상황이다.
이곳 스칸다의 미지는 성진 혼자 감당하기 어려울 때도 있었다.
시조를 만났을 때 모험가들이 몸 바쳐 돕지 않았다면 어떻게 됐을까?
그런 생각들이 걱정을 만들었다.
송하린이 별을 바라보며 얘기했다.
“형님, 잘될 겁니다. 뭐 큰일이야 있겠습니까?”
“있을 것 같은데요.”
“저도 그렇습니다.”
“…….”
“…….”
“하아…….”
“후우…….”
자연스럽게 한 쌍의 한숨 소리가 흘러나왔다.
더 강해져야 했다.
‘어떻게?’
시나리오는 시조 처치 이후로 감감무소식이었다.
아마 무지개 사원의 행방을 발견하면 반응하지 않을까 싶었다.
그 말은, 송하린의 일을 돕는 동안은 새로운 이미지를 얻을 방법이 없다는 얘기였고 결국 스스로 강해져야 한다는 얘기와도 일맥상통했다.
‘스스로 강해진다…….’
마땅한 수단이 떠오르지 않다가 문득, 송하린이 야로의 호수에서 선보였던 재주가 떠올랐다.
‘심상.’
내친김에 물었다.
“동생. 전에 보여 줬던 심상 말인데…….”
“아! 맞다! 무공을 배우면 되는구나!”
“무공?”
“호흡을 아시니 무공도 뭐 금방 배우시지 않겠소? 이걸 생각 못 하고 있었다니! 그럼, 장룡을 부탁드립니다!”
“아니…… 무공을 배우려면 스승이 있어야 하지 않습니까?”
“그 말은…… 설마 저에게?”
“그럼 달리 누가 있습니까?”
“……저 처자고 있는 똥자루 놈은 턱도 없을 테니, 저밖에 없군요.”
“네.”
“…….”
“…….”
송하린이 잠시 고민하다 굳은 결심을 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좋습니다! 제가 무공을 알려 드리지요!”
“네.”
“일단 구배지례를…… 아니, 과한가?”
송하린은 성진에게 심상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그러니까 슈파팟! 해서 정신을 초 집중하면 뭔가 잡힐 듯 말 듯 나비처럼 팔랑팔랑…… 내가 검이 되고 검이 내가 되는 그런 느낌. 마치 내 검은 몸으로 되어 있다는 이런 느낌으로 상상하면 꿈처럼…….”
“그게 무슨 말입니까?”
“네? 이 쉬운 게 이해가 안 되세요?”
“…….”
-정보) 송하린은 천재다.
-공부를 잘하는 것과 가르치는 것을 잘하는 것은 다르다.
-이걸 왜 못하지?
-이게 왜 안 돼?
성진이 한숨을 쉴 때, 낮부터 사람들의 시선을 끌던 시청자가 등장했다.
‘드디어 내 차례군’ 님이 1,000원 후원하셨습니다!
[후후후…… 초모 맘 카페는 이런 상황을 예견했지요. TV는 귀인을 싣고 시작합니다!]
-오오! 믿고 있었다고!
-스승님을 모셔 온 거구나?
-이 시간에? 더럽게 실례다!
‘어렵게 모신 분들입니다’ 님이 1,000원 후원하셨습니다!
[이분들은 저희 ‘우리 초모는 남달라요’ 뿐만 아니라 ‘초모의 영재교육’, ‘(건)강하게만 자라다오’ 등 많은 단체의 협력으로 모실 수 있었습니다]
-어쩌라고?
-킹쩌라고?
-늬예 늬예 잘했어요. 또 어디 송하린보다 약한 스승 데려와서 눈높이 교육하려고. ㅋㅋ
-어차피 ‘들’이라고 한 것 보면 딱 모름? 그냥 어디 맹 소속이었던 사람들 데려온 거지.
‘^^보던가’ 님이 1,000원 후원하셨습니다!
[폭풍전야. 비웃는 이들에게 반박하지 않았다. 니들이 허접한지 우리가 허접한지는 결과가 말해 줄 것이다.]
-띠이용?
-그 엔딩 ㅋㅋ 띵언 ㅇㅈ~
삐익.
삐익.
성진의 커뮤니티 알림이 울렸다.
최근 쓸데없는 쪽지만 가득하던 쪽지 창에 새로운 쪽지 2개가 날아왔다.
[제목 : 심상의 가르침을 구하느냐?]
[제목 : 내가 가르칠 테니 저놈에겐 배우지 마라.]
“어?”
“왜 그러시오, 형님?”
“쪽지가 왔는데 어떤 분들이 제게 심상을 가르쳐 주신다고 하시네요.”
“헹…… 본녀가 최강인데 어찌…… 잠깐, 닉네임이 뭡니까?”
“‘아들 집에 좀 자주 와’ 님이랑 ‘성북산악회 파이팅’ 님입니다.”
송하린이 눈을 휘둥그렇게 떴다.
“그 영감탱이들이?”
“이분들이 누굽니까?”
“에…… 그 이성(二星)이라고 말하면 아시려나?”
“네?”
“권성(拳星)이랑 검성(劍星)입니다, 형님. 그런데 인터넷 방송 보실 세대가 아니신데……. 홍삼 캔디라도 압수했나? 어떻게 데려온 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