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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J는 종말에 적응했다-112화 (112/222)

# 112

112화

바스카리 사제회에 속한 교단이 모두 같은 생각인 건 아니었다.

새로운 신성력의 출현은 몇몇 이들의 관심을 동하게 했지만, 반대로 적개심을 키워 주기도 했다.

바위의 사제 지라코는 그런 뉘앙스의 지령을 받은 사람 중 1명이다.

-초모라는 아이가 있다. 그 아이의 수상한 행적을 보인다면 상세하게 적어 나에게 가져오거라.

지라코는 어지간하면 되묻지 않는다.

하지만 이번 임무를 받고 나서는 되물었다.

“보고만 하면 됩니까?”

-그래. 하지만 네가 판단했을 때 그자가 위험하다고 느껴지면 한 가지 문구를 더 적어라.

“어떤…….”

-필사(必死)

“알겠습니다.”

그는 바위의 술법을 이용해 초모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했다.

비록 대삼림에 따라 들어가지는 못했지만, 그가 안에서 벌인 일들의 소문을 듣는 건 가능했다.

‘남작…… 아니, 작위는 정확히 모르겠지만 이 임무에 깊게 관여했어.’

사제회도 침묵했던 임무에 초모 혼자 나서 결과를 냈다.

앞으로도 이런 일이 계속되면 사제회의 존재에 의구심을 품는 자들이 늘어만 갈 것이다.

그분들이 가장 싫어하는 상황.

지라코는 이오란부터 초모를 쫓아왔기에 알 수 있었다.

‘이자는 위험해.’

그는 잠시 고민하다 전달할 쪽지 밑에 ‘필사’라 적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다른 결론은 나오지 않았다.

“전해라.”

비둘기가 그의 품에서 벗어났다.

푸드득, 푸드득.

성국과의 거리가 꽤 되어 소식을 주고받을 방법이 비둘기의 귀소본능을 이용하는 방법밖에 없었다.

그런데, 잘 날아갈 것처럼 보이던 비둘기의 몸을 매가 낚아챘다.

끼이이!

비둘기가 얌전히 붙들려 비행을 멈췄다.

‘이런!’

지라코는 지체 없이 몸을 날려 도망치려 했다.

하지만 비둘기를 붙잡은 상대가 더 빨랐다.

퍽!

퍽!

몸에 칼날이 박히자 지라코도 비명을 토해 낼 수밖에 없었다.

“으아아악! 너, 너희 뭐야!”

“그러게 쓸데없는 말은 적지 말았어야지.”

“……초모의 하수인이냐?”

“알 거 없다. 필사? 거기에 적는 것이 네 운명인지도 모르고 잘도 끄적이더구나.”

“사제회가 가만있지…… 크아악!”

“데려가자.”

“알겠습니다!”

바위의 교단에 비둘기가 날아든 것은 그로부터 시간이 좀 지나서였다.

쪽지의 내용은 사실을 담고 있었지만 왜곡된 부분이 많았다.

***

[제목 : 긴급 대책 회의 들어갑니다.]

초모의 공백, 무엇으로 메꿔야 하나?

-상상만 해도 흥분되는 내용이구려.

-공백이란 두 글자가 우리의 마음을 이렇게 뜨겁게 만들 줄이야.

[제목 : 수도사 쪽 파생 테크 더 타면 안 되나?]

그럼 진짜 레이서건 뭐건 머갈통 깬 다음에 초모 초모 초초모 하면 부와악- 할 텐데.

-딱히 수도사 될 생각은 없어서 그렇게 안 하지 않을까?

-수도사가 귀족클이긴 하지 전투에 지원까지 가능하니까. 근데 호흡 빼면 다른 건 그닥이지 않나?

-동부 넘어가기로 했으니까 거기서 간 슬쩍 봐도 될 듯

[제목 : 수도사 테크는 무슨 ㅋㅋ 이제 마법이 대세다!]

바로 헬파이어 갈겨어어어어어-!

-정보) 초모 마력 0

-엥? 정말? 왜 말 안 했어?

-초반에 나왔다잉.

-힝 ㅠㅠ 마력 고자라니!

[제목 : 님들 양심 없네요. 한국인이면 지금 우울해야지!]

모험가들이 몸 바쳐서 대공 컷했는데 인정받기는커녕 처벌을 받녜 마녜 하자나여 ㅡㅡ 억울하지도 않으심?

-ㅖ 억울하지 않은데요?

-헐 ㅡㅡ 짐승!!

-초모가 돌려놓겠다고 했자나여? 방송 하루 이틀 보시나? ㅋㅋ

-믿음이 없네~ 그래서 대주교님이 공언하신 바를 못 믿는다고 하시는 건가~

-글쿤요; 그럼 저도 믿겠습니다.

-옳지, 믿거라~

***

성진이 대삼림을 통과해 동부 대륙으로 빠져나왔다.

대삼림은 일금이 전에 하던 작업을 이어가는 중이었고 성진이 동부의 일을 끝마칠 때쯤엔 중앙과 동부의 대로도 이어질 것이라 말했다.

떠나기 전, 그와의 대화를 떠올렸다.

“천금의 일이라고요?”

일금은 어색한 기색으로 대답했다.

“예, 어르신에게 물려받은 것을 모조리 빼앗긴 것이 오래니 이제 되찾아 올 생각입니다.”

“어떻게요?”

“그의 팔다리를 자를 생각입니다.”

-끼아아악!

-ㅎㄷㄷ 역시 사지 불구로 만들어 버리겠다는 말이군.

“조력자들과 세력을 걷어 내면 지금은 몸을 숨기고 있는 천금, 그가 드러나겠지요.”

“조력자라…….”

-헤헤;; 머쓱…….

-그러게 첨부터 말을 똑바로 하시지;; 헤헤;;

일금이 손가락을 펼쳤다.

“이성(二星), 삼황(三皇), 오제(五帝), 그리고 칠왕(七王)이란 말을 아십니까?”

“자세히는 모릅니다.”

“50년 전 어르신이 활동하던 당시, 동부에서 이름을 대면 모르는 이가 없던 존재들입니다. 그중에 대부분은 이방인이었죠.”

“그렇군요.”

“뭐, 지금에 와서는 의미 없는 말이긴 합니다만…….”

“의미가 없다고요?”

“그 이름들은 이제 더 이상 쓰이지 않습니다. 이방인들이 사라지면서 득세하는 자들이 바뀌었으니까요. 그리고…… 다른 이름도 생겨났습니다.”

-다른 이름?

-50년이나 지났으니 다른 사람이 나올 만하지.

“일마(一魔), 이룡(二龍),오흉(五凶) 그리고 사귀(四鬼)가 그것입니다.”

“그리 좋은 이름 같아 보이진 않네요.”

“스칸다가 몰락의 징조가 보이니 타락한 자들도 있기 마련이지요. 재밌는 점은…… 전대의 귀인들과 현시대의 악인 중 이름만 다르고 사람은 같은 경우가 있습니다.”

“누군지 아십니까?”

“정확히는 모릅니다만 의심 가는 사람은 있습니다. 악인들은 본인의 이름을 숨기고 활동하는 경우가 많아 확신하긴 어렵습니다.”

일금의 말을 가만히 듣다 보니, 이 얘기를 왜 꺼냈는지 알 것 같았다.

“아무래도, 그들 중 누군가와 싸워야 하는가 보군요.”

“죄송합니다. 그렇게 될 확률이 높습니다.”

“말씀하세요.”

“악인 중 몇이 천금의 뒤를 봐주는 것 같습니다. 이런 상황이 계속되면 그에게서 권리를 되찾아오기 힘듭니다. 힘이 말을 짓뭉개는 시대니까요.”

“제가 어떻게 해야 합니까?”

바스락거리며 일금이 종이와 나무패(牌)를 건넸다.

종이에는 사람의 얼굴이 그려져 있었다.

얼굴에 붉은 반점이 있는 자이니 알아보기 어렵지 않으리라.

“음? 이 나무패는 뭔가요?”

“제가 부탁한 사람이라는 표식입니다. 아무쪼록 이 자와 야로(夜勞)에서 접촉해 주시기 바랍니다. 그 외의 것들은 이자가 전부 말해 줄 겁니다.”

“알겠습니다.”

“내키지 않으시면 도중에 멈추셔도…….”

“빚을 졌습니다. 갚는 게 도리겠죠.”

“이젠 상인이라고 해도 믿겠군요.”

***

대삼림 인근의 촌락에서 말을 샀다.

관리 상태가 좋지 못한 늙은 말이었지만, 야로까지 가깝다고 하더라도 도보로 이동하기엔 적절치 않아 구매했다.

신분은 황색 모험가라는 사실 하나만으로 증명되었다.

삐이이이.

종속구를 불러도 대답이 없었다.

설은 오지 않았다.

-왜 안 오냐? 이게 주인 알기를 우습게 알고!

-오늘 차 없는 날이냐?

-이제 보니까 그 쪼꼬는 안물어욘지 뭔지가 잘못했네!

‘우리쵸코는안물어요’ 님이 1,000원 후원하셨습니다!

[흐음, 아마도 번식기라 그런가 본데요? 날씨도 화창하니 나들이 갔다가 필요할 때쯤 되면 돌아올 거예요.]

-지금 필요하다고!

-닥쳐, 더 간절해야 해.

-초모 지금 늙은 말 굴리고 있는 거 안 보이냐?

-근데 어디서 은금따리가 나한테 말 거는 거 같은데 혹시…….

-……바빴어. 바빠서 못 올린 거야.

-ㅇㅇ 조용히 가자 은동아.

-넵.

-가불기 맞고 조용해졌네, ㅋㅋ

동부는 평야보다는 산지가 많았다.

중앙 대륙과는 달리 산세가 험한 편이었고 인마(人馬)가 지나다니기 힘든 구간도 많았다.

굳이 왜 이런 길로 들어섰냐면 레이서 때문이다.

「ㅎㅎ 넹 그쪽 맞아요. 시간 아깝잖아요? 지름길로 가야죠. 야로 가신다면서요, 다른 사람 말 들으면 녹림이나 도적 만난다니까요?」

-도적의 유토피아 동부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동부의 아들 무영신투의 고향이지요.

-하지만 진정한 도둑은 이름이 남지 않는 법! 더한 녀석들도 있었지요! 그들의 이름은 저도 모릅니다!

-그게 무슨 말이야.

-나도 몰라.

다행히 조금 고생을 하니 도시 야로에 도착할 수 있었다.

아직 낮이라 그런지 문을 열지 않은 가게들이 꽤 되었다.

‘여기였나?’

똑, 똑.

“뉘슈.”

“쓰면 쓸수록 모이는 게 금이라 한다.”

“예상보다 일찍 왔군. 들어오슈.”

“그럼.”

끼익.

철컥.

한낮, 야로의 거리에서 성진이 구석진 건물로 들어갔다.

마찬가지로 장사를 하는 것처럼 보이는 건물은 아니었다.

“단기간만 임대한 거요.”

“예.”

“패를.”

“그런데…… 알고 있는 얼굴과는 다릅니다만.”

“원 사람, 의심도.”

성진이 눈을 가늘게 뜨자 상대가 움찔하고 얼굴을 찢었다.

찌이익.

「인피면구(人皮面具)네요. 솜씨가 좋네, 시체의 얼굴 가죽으로 만든 가면 같은 거예요.」

“보는 눈이 많수다. 당신도 이걸 쓰고 활동해야 할 테니 너무 고깝게 보진 마쇼.”

“저도 써야 하는군요.”

“그럼? 상대가 천금 놈의 앞잡이라면 머리통이 뎅겅 할 텐데 다른 사람인 척해야지.”

“알겠습니다. 여기 패가 있습니다.”

성진이 패를 꺼내 보여 주자 상대가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방일이라 부르쇼. 초모라고 했나?”

“예.”

“당신은 방이. 우린 이제부터 공대(空垈)에서 온 비단 장수요. 제법 큰 손이고 당신과 나는 형제. 이해했소?”

“방이, 기억했습니다.”

“오늘 밤, 야로를 거느린 놈이랑 술판 한 번 벌이기로 했수다. 드디어 꼬리를 잡은 게지.”

“그곳에서 뭘 해야 합니까?”

“아무것도. 이번엔 그냥 탐색전이외다. 공대의 비단은 질이 좋기로 유명하지. 그 비단을 좋은 값에 야로에 푼다고 하니 제 놈이 입이 헤벌쭉해져서 대접하겠다고 난리인 거요.”

“상대는 무인입니까?”

“그렇수다, 그것도 아주 강한. 당신은 그의 옷자락도 건드리지 못할 거요.”

“…….”

-네? 잘 못 들었는데요?

-옷자락을 뭐요? ㅋ

-이제는 익숙하다. 초모 복장이 너무 뭣밥같이 보이긴 하잖아.

“가면 벗어 보슈.”

성진이 가면을 벗자 방일이 턱을 쓰다듬었다.

“흐음, 얼굴은 쓸만한 데 이방인이네, 뭐, 상관없수다. 어차피 남의 가죽을 뒤집어쓸 테니까. 그보다 옷이나 갖춰 입어야겠군. 동부에서 활동하는 상인이 그렇게 문화의 다양성을 존중하는 옷을 입으면 곤란하지.”

“알겠습니다.”

“따라오슈.”

성진이 그를 따라 이동했다.

포목점에서 흰색 무복(武服)을 맞춘 그의 모습은 영락없이 동부 사람이었다.

“다음은 얼굴. 내가 아주 세련된 영웅으로 만들…… 수는 없으니 불만이 있어도 참으쇼. 일단은 나랑 형제라는 설정이니까.”

“네.”

“이제 내가 형이니 말을 놓을게. 어차피 말은 거의 내가 할 거야. 당신은 옆에서 맞장구를 치거나 묻는 말에만 답해. 쓸데없는 말은 하지 말고. 동부는 입 열면 그 안에 칼 쑤셔 넣겠다고 달려드는 동네란 말이야. 특히 밤의 야로는 더 그렇고.”

다시 은신처로 돌아온 방일은 성진의 얼굴을 매만졌다.

“옳지, 다행히 잘 들러붙게 생긴 얼굴이구만. 답답해도 좀 참아. 곧 밤이 오니까.”

약품 냄새가 코를 찔렀다.

방일이 성진의 얼굴에 꾸덕꾸덕한 액체와 약품을 바르고 거기에 가죽을 붙였다.

처음에는 어설프게 자리 잡았던 가죽이 칼집을 내고 손으로 매만지자 그럴듯한 얼굴이 되었다.

성진도 거울을 보고 놀랐다.

-헐 ㅋㅋ 방 잘못 들어왔나?

-초모 방 맞나여? 왠 보부상 형제 방송이;;

-초모 방 맞습니다. 초모(언럭키) 버전입니다.

방일이 얘기했다.

“그 상태로 굳기를 기다리자고. 약속 시간이 다가오면 그때 움직이면 돼.”

***

“방일과 방이라…… 못 들어 본 이름인데…….”

“거상(巨商)의 깜냥은 아니랍니다. 그냥 뽕밭을 크게 가지고 있는 사람이랑 친분이 있어서 비단을 조금씩 떼와 팔던 형제인데, 점점 이윤이 불어나 최근에 크게 하는 모양입니다.”

“기껏해야 누에나 치는 놈의 똥이나 핥던 놈들이군. 격 떨어지게…….”

흑색 무복을 입은 수하는 상대의 말에 공감하지 못했다.

그도 그럴 것이 상대도 일생 격이라고 할 만한 것을 쌓은 사람은 아니었으니까.

하지만 그 생각을 입 밖으로 꺼내는 실수는 하지 않았다.

상대가 격을 쌓지 않은 대신, 업은 끝을 모르고 쌓는 사람이라는 것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곧 도착한다고 하는데, 마음에 안 드시면 돌려보낼까요?”

“그럴 수야 있나. 저런 놈들 구슬려서 나중엔 스스로 토해 내게끔 하면 그것도 쏠쏠하거든.”

툭, 툭.

장한이 거도(巨刀)를 건드렸다.

“상인들은 이 칼이 자신들을 베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는 거야. 그러니까 배짱을 튕기는 거지. 하지만 과연 계속 그럴 수 있을까? 오늘 일로 잘 엮어 들어가면 우리 돈줄이 될 거다.”

“알겠습니다. 저기 오는군요.”

“이리로 안내해. 그리고 저놈들이 홀딱 넘어갈 만한 아이들로 집어넣어.”

“시작은 예기(藝妓)로 하겠습니다. 이방인 출신인데, 새로 온 아이의 재주가 기가 막힙니다.”

“그래.”

달빛을 받아 찬란한 빛을 뿜어대는 기루의 최상층에서 방일과 방이를 내려다보는 남자의 이름은 장욱이었다.

잠시 후, 안내를 받아 올라온 방일과 방이는 상다리가 부러질 만한 술판에 한 번 놀랐고, 장욱의 상판과 덩치에 두 번 놀랐다.

장욱의 덩치는 항우의 환생은 아닐까 싶었고 얼굴의 반을 가로지르는 큰 흉터는 그의 흉한 얼굴을 더 강조했다.

“앉으시지. 난 장욱이라고 하오. 대접한다고 하긴 했는데 마음에 드실지는 모르겠군.”

-실화냐 얼굴; 흉터 뭔데?

-표고버섯이냐? 얼굴 흉터 에바야.

-표고버섯 ㅋㅋㅋ

「포권부터 갈기세요. 이쪽 동네 친구들은 그런 허례허식 좋아합니다. 아마 방일이 하겠지.」

방일과 방이가 허리를 숙여 장욱에게 포권했다.

“방일과 방이 형제입니다. 저희를 이처럼 환대해 주시니 오늘 하루 잘 놀다 가겠습니다.”

“하하하, 좋군. 방 형제! 술은 좀 하나? 나는 좀 해. 밖에! 아이들을 들여라!”

“예, 들여보내겠습니다.”

휘장을 써 얼굴을 가린 예기가 비파를 들고 들어왔다.

또한 술 시중을 드는 기생들도 함께였다.

“크흠…… 예기부터 들이래도.”

“사내들끼리만 이야기하기엔 칙칙하지 않을까요? 저희도 이야기에 끼워 주세요!”

“장욱님도…… 저희가 어디 가서 떠드는 것 봤어요? 자, 한 잔 받으세요.”

기생들이 난입한 건 성진에게 행운이었다.

자신에게 쏟아질 관심을 다른 곳으로 분산시켰기 때문에. 하지만, 장욱은 평범한 무인이 아니다.

“방 동생이 가지고 온 그 봉은 뭐지?”

“호신용입니다.”

“하하, 무엇으로부터?”

장욱의 눈빛이 음험했다.

의심하고 있는 것 같았다.

방일이 서둘러 답변했다.

“제, 제 아우가 어렸을 적에 불가(佛家)에 잠시 몸을 맡긴 적이 있어서…… 그때 몇 수 배운 모양입니다.”

“호오…… 몇 수?”

“예, 미천한 실력이라 아마 파리도 쓰러트리지 못할 거입니다.”

“크크큭…… 동생 면을 살려 주는 것도 형이건만 냉혹하시구려.”

“아우도 잘 알고 있습니다. 아무튼 만나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이 술자리의 의미는 장욱이 정말로 천금과 연관이 되어 있는지, 연관되었다면 정보를 가지고 있는지 캐내는 것이다.

술잔이 몇순배 돌 동안 예기의 노래가 귀를 간지럽혔다.

-와; 노래 지린다.

-복면가왕이네 ㄷㄷ

-비파도 기똥차;

장욱이 한참 술을 잘 마시다가 소리 나게 술잔을 내려놓았다.

쾅!

“어이, 새로 들어왔다고 들었는데.”

귀를 즐겁게 하던 비파 소리가 뚝 끊겼다.

장욱의 한 마디에 좋았던 분위기가 얼어붙었다.

얼굴을 가린 예기가 답했다. 아름다운 가성이었다.

‘가성?’

“그렇습니다.”

“재수 없게 얼굴을 왜 가린 거지? 이방인 년이 여기가 어딘지도 모르는 거냐?”

“죄송합니다. 술자리의 분위기를 생각해서 다음 곡을 연주하고 휘장을 걷을 생각이었습니다.”

“오호…… 분위기가 올라야 얼굴을 보여 준다는 거군. 쓸데없는 곳에 노력하는 모양이야. 어서 다음 곡을 연주해 봐.”

“그럼…….”

-앵콜! 앵콜! 애앵콜!

-예기의 얼굴을 고옹개애애애 하아아압!

-광고 보고 오겠습니다.

-이런 씨@바!!

그런데 이상한 일이 일어났다.

예기가 벌떡 일어나더니 비파를 기타처럼 쥐고 제멋대로 연주하기 시작했다.

노래를 곁들였는데 노래 또한 상황과 맞지 않았다.

매우.

“뽀글뽀글 뽀글뽀글 맛 좋은 라면! 허이! 라면이 있기에 세상 살맛 나! 어기차!”

장욱과 성진, 방일의 표정이 한순간에 찌그러졌다.

-저 노래가 왜?;;

-띵곡이지만 여기서?

-뭔데?

예기는 점입가경이었다.

고춧가루를 연호하며 비파의 현을 물어뜯더니 나중에 가서는 비파를 바닥에 내리쳤다.

쾅!

비파의 조각이 사방으로 흩어졌다.

“꺄아아악!”

“뭐, 뭐예요!”

술 시중을 들던 기생들이 문을 열고 밖으로 도망쳤다.

장욱의 얼굴은 싸늘하게 굳었다.

“후우…… 노래가 어떠셨나요? 제 점수는요?”

“미친년…… 넌 누구냐?”

“노래가 별로였나요?”

“그래, 아주 별로여서 술자리를 망쳤다. 어떻게 책임질 생각이지?”

예기가 휘장을 걷고 얼굴을 드러냈다.

성진은 처음 보는 얼굴이었는데, 매우 아름다웠다.

채팅 창이 뒤집어졌다.

“그야…… 그럴 만도 하겠네요.”

콰앙!

예기가 벽을 부수고 한 자루의 도(刀)를 꺼냈다.

여태껏 비파를 연주한 여인은 송하린이었다.

철컥.

“이 노래는…… 네놈의 장송곡(葬送曲)이니까. 장욱? 재밌군. 도왕(刀王) 내 물건은 어디에 숨겼느냐?”

“…….”

-누나가 왜 거기서 나와?

-송하린이었다고?

-이건 리얼로 상상도 못 한 정체닼ㅋㅋㅋ

방일은 울상이었고 방이는 호신용 봉을 잡았다.

송하린이 도를 휘두르며 말했다.

파지직.

“일단 대화는 나중에.”

콰아앙!

기루의 벽면이 터져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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