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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J는 종말에 적응했다-111화 (111/222)

# 111

111화

스칸다의 이야기를 종말 이후 커뮤니티인 디스토피아에서 하는 것은 이상한 일이었지만, 이곳에서 활동하는 사람들은 아무도 이상하다고 여기지 않았다.

[제목 : 배나무인지 감나무인지 나와라.]

본인 어제 초모의 호흡을 보고 광광 우럭따.

수도사가 애초에 수가 적어서 물어볼 사람이 너밖에 없다. 초모 호흡이면 어느 정도 수준이냐?

-초모 호흡 개색기야 보다는 귀엽게 초모 호흡이면 어느 정도 수준이냐? 라고 수정하는 게 어떨까?

-잡상인 끄지라.

-후후후 레이서를 원하나? 레이서를 원하면 모두 외쳐라. 윽, 윽…… 배가…… 배가…… 배가 레이서~

-윽…… 배가…… 배가…… 배가 레이서~

-윽…… 배가…… 배가…… 배가 레이서~

-ctrl + c, ctrl + v 에반데

-튀어나와 과수원 불지르기 전에.

[제목 : 뿅이다 쉬볼롬들아. 튀어나왔으니 질문하세요.]

제가 초모를 가르친 레이서예요. ^^

학원 문의는 안 받으니 괜히 귀찮게 하지 마세요~

-ㅈㄹ ㄴ 초모 혼자 깨우쳤고만. ㅋㅋ

-초모가 님한테 배웠다고요?ㅋㅋㅋ 어제 보니까 님이 초모한테 배운 것 같던데?

-배나무 초모한테 뽑혔다던데?

-질문이나 해.

-ㅇㅋ 초모 셈?

-ㅇㅇ 걍 수도사 중에서는 초모한테 개길 수 있는 애들이 몇 안 된다고 보면 댐. 다른 직업 다 합치면…… 모르지? 스칸다는 넓디넓도다.

-에이씨 그럼 수도사 중에서잖아.

-지금 대황상 귀족 클래스인 수도사를 무시하네? 얼 척 없네. ㅋㅋ

[제목 : 레이서님 여기입니다. 제 질문에도 대답해 주세요]

이리 오세요.

차린 건 많지만 조금만 드세요.

호흡법 중에서 네시온 호흡기 터트린 그 호흡!

레이서님이 가르치신 겁니까?

-후후 제가 씨를 뿌렸으나 꽃을 피운 건 초모입니다.

-쥐뿔 아무 상관 없다는 얘기죠?

-후후 그렇습니다.

-레이서님은 그거 할 수 있어요? 컥, 커헉! 하는 거.

-잘 때 코는 잘 곱니다. 역천의 호흡일 텐데 제 기억으로 명칭이 아수라였던 걸로 기억나네요.

-이름 줫간지네 수도사 비기 중에 하나라는 얘기죠?

-ㅇㅇ 전해 내려오기는 그런데 사실 스칸다에서 전승은 큰 의미가 없어요. 진짜로다가 굵직한 단체 아닌 이상 본인이 직접 파생시킨 능력이 강한 경우가 대다수니까. 이방인이 원래 재능충들이었자나여.

[제목 : 진지하게 질문한다, 레이서. 나도 호흡 배우면 파티 끼워 주냐?]

투사와 신관이 결합하니 수도사가 됐구나. 파견대가 초모 애지중지 끼고 돈 것 보면 과거에 수도사가 얼마나 귀족이었는지 절절히 전해져 왔다. 과거의 내 캐릭도 신성력을 깨우쳤다면 파티가 수월했을까?

-님 전 캐릭이 뭐였는데요?

-도적이었다.

-신성력과 합치면 정의로운 도둑 천사 소녀 네티네요.

-파티원들이 따라다니는 건 모르겠고 포쾌가 따라다녀서 구속은 되시겠군요.

-도적은 천지가 개벽하지 않는 이상 도시에서 쓸이나 하셈. ㅋㅋ

-ㅈㄹ 본인 함정 해제 잘한다.

-본인이 함정이라는 생각은 안 해 보셨나요? 제가 해제해 드릴까요?

-윗댓들 개 너무하닼ㅋㅋㅋ 저러다 흑화한다

[제목 : 어제 백작 마주친 순간부터 숨 참았습니다]

삐이이…….

-삐이이…….

-다들 돌아가셨습니다. 공작까지 튀어나올 줄은 몰랐으니까요~

-근데 웃지는 못하겠더라. ㄹㅇ 저세상 전투였다.

-ㅇㅇ 모험가들 너무 안쓰럽더라. ㅠㅠ

-모험에 낭만이라도 품고 계셨나 봐요? 모험은 현실입니다~

-팩트) 어제 전투 보면서 채팅 창에서 ㅋ은 올라오지 않았다.

-한마음으로 야광봉 들고 응원하는 줄 알았다. ㄹㅇ

-내가 좋아하는 야구팀도 이 정도로 응원하지는 않았다.

[제목 : 초모 맨날 원툴이네, 심하지 않냐?]

승리 원툴 ㅋㅋㅋ

맨날 이겨버리자너~

초보 모험가라고? 어림도 없지 바로 베테랑 레이드 모험가! ㅋㅋ

-베레모! 짐승 새끼! 슴새끼짐!

-지금 초모한테 새끼라고 했습니까?

-공안에 잡혀가고 싶습니까?

-죄, 죄송합니다.

[제목 : 아 어제 영화 값 굳었다 크크루킄쿸]

초모의 모험이 영화잖아~ ㅋㅋ

자기 전에 초모 힐링 매드무비나 보다 자야겠다 ㅋㅋ

-핫생녹.

-조커 여기서 하는 거 아니었네?

-아 핸드폰 불빛 좀 낮춰요~

-앞에서 하쓰스톤 하는 색기 누구야!

***

“부상자들을 옮겨라!”

“죄다 늙은이들이잖아?”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우리도 저 안개를 들이마시면 늙는 건 아닐까?”

“기분 나쁜 소리 좀 그만해!”

대삼림에 진입한 후발대가 쓰러진 파견대를 마차에 태우고 엘론드로 향했다.

후발대의 대장 사이먼이 엘론드에 미리 연락을 취했기 때문에 협회 사람도 미리 그곳에 나와 있을 것이다.

쓰러진 이들은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사이먼은 어쩐지 유쾌하지 않은 감정이 들어 입술을 쓸었다.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유일하게 깨어 있는 사람은 그리핀을 타고 나타났던 초모라는 사람뿐이었다.

사이먼은 그와 대화하는 게 내키지 않았다.

후우웅.

초모는 파견대가 누워 있는 마차에서 그들을 치유하고 있었다. 뭔가 생각대로 안 되는지 인상을 찡그린 채였다.

‘몸에서 빛이 난다니…… 내가 뭘 보고 있는 거지?’

치유하는 초모의 몸에서 후광이 비쳤다.

눈이 부실만도 한데 전혀 그런 것 없이 오히려 편안하게 심신을 달래는 빛이었다.

그는 사이먼의 질문에 필요한 것만 대답하고 입을 꾹 다물었다.

사이먼도 더는 캐묻지 않았다.

어차피 자신들의 임무는 도중에 끝이 났고 이제는 이들을 엘론드로 이송하기만 하면 될 것이다.

대삼림에 그리 깊게 들어오지는 않았기에 엘론드에 며칠 안 걸려 도착했다.

부상자들은 어느새 깨어나 있었다.

“크아아아아악!”

“아파아아…… 아파…….”

비취 등급의 모험가들이 잠에서 깨어나자마자 한 소리였다.

그들은 눈에 보이는 상처가 없는데도 연신 눈물을 흘리며 괴성을 질렀다.

“아파…… 죽을 것같이 아파…….”

“그렇구나…… 나는 노인이 되었구나…….”

마차가 협회에 들어가기도 전, 엘론드의 도시 정문을 지나치자마자 협회 사람과 마주쳤다.

“개, 갱님? 그리고…… 그…… 저기…….”

“사무관 이름도 모르나? 됐네, 자네한테는 나중에 들어도 될 것 같고, 일단 따로 부를 테니 떠나지 말고 대기하라고 전하게.”

사무관이라는 작자는 도통 외부에 얼굴을 내비치지 않았으므로 사이먼은 그의 이름을 잊었다.

손짓으로 자신을 물리치는 사무관의 태도에 불쾌해진 사이먼은 공격대를 이끌고 숙소로 향했다.

문득, 그가 고개를 들어 주변을 둘러봤다.

‘뭐야…… 다 어디서 온 사람들이야?’

구경이라도 났는지 건물의 창문이 전부 열려 있었고 그곳으로 사람들이 고개를 내밀었다.

“진리의 수호자가 죽었다며?”

“시조랑 같이 폭사했다던데?”

“시리카는 나도 알지. 그녀라면 그럴 수도 있어.”

절반 정도는 엘론드의 주민들이었고 나머지 절반은 어딘가에 소속된 사람들이나 모험가들이었다.

“대삼림에서 무슨 일이 있었던 거지?”

“저 노인들은 또 뭐야?”

사무관 셰일은 갱과 시선을 교차하고 말했다.

“파견대의 대장은 누구냐? 나는 알란으로 알고 있다만, 그는 죽었는가?”

그때, 노인들의 무리에서 4, 50대 정도의 남자가 앞으로 나왔다.

갱은 기세는 좀 변했지만, 그가 진주의 검사 알란이라는 걸 알아챘다.

“알란…….”

“죄송합니다. 여전히 제가 파견대의 대장입니다.”

“보고해.”

알란이 갱에게 보고했다.

“안개가 걷히기 전 엘론드에서 출발한 파견대는 총원 십칠, 후에 합류한 초모까지 십팔. 전투 중 안타깝게 사망한 인원 셋을 제외하고 임무에 착수. 임무는 완료했습니다.”

“수고했어. 자세한 건 조용한 장소에서 듣겠지만, 지금 당장 들어야 하는 말도 있다. 이건 자네들의 임무 외의 일이지만…… 진리의 수호자는?”

“모두 죽었습니다.”

“……알았다, 숙소로 찾아가지.”

***

정보가 새어 나갈 것을 염려해 개방된 장소에서 이야기하지 않은 것은 다행이었다.

숙소의 별채 하나를 통째로 빌려 모험가들의 개별적인 증언을 들은 갱과 셰일, 그리고 로브를 쓴 남자가 성진을 앞에 두고 침묵했다.

침묵을 먼저 깬 건 셰일이었다.

“증언이 전부 일치하는군. 그 노인네가 된 모험가들이 횡설수설하는 건 빼고 말이야.”

갱도 셰일의 이야기에 고개를 끄덕였다.

“어제 똥을 쌌는데 똥 대신 복숭아가 나왔어.”

“무슨 말이야, 그게?”

“그만큼 황당한 이야기라는 거야, 이게.”

“진작 그렇게 말을 하지…….”

“상황을 정리해 보자고. 대삼림에서 수작을 부리던 건 남작도, 그 위 단계의 자작도 아닌 백작이었고 그 백작이 하려던 짓은 공작을 부활시키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계획은 성공했지만, 진리의 수호자도 아닌 파견대가 공작을 쓰러트렸다. 맞나?”

“…….”

“초모, 묻는다. 맞나?”

“맞습니다.”

“허어…….”

초모를 제외한 이들이 허탈한 한숨을 내쉬었다.

-아재들 마이 놀랐긌네.

-솔직히 믿을 수가 있어야지. ㅋㅋ

-나 같아도 저런 말 하면 뻔뻔하다고 침부터 뱉는다.

-킹받네;

셰일이 고개를 휘저었다.

“말을 맞췄군. 말도 안 되는 이야기야.”

“셰일. 함부로 단정 짓지 말자고.”

“그럼 이게 말이 되는 이야기야? 공작이라고? 대삼림 변두리에 나타난 것만 해도 스칸다가 떠들썩해질 대사건인데 그걸 일개 파견대가 쓰러트렸다고? 믿으라고 하는 말이 아니잖아!”

“그렇다고 그렇게 근거 없이 부정할 만한 말도 아니지. 우린 사실관계만 파악하면 돼.”

갱이 고개를 슬쩍 돌려 후드를 쓴 사람을 쳐다봤다.

슬슬 이야기해 줘야 하지 않냐는 눈치였다.

스윽.

후드를 벗자 노인의 얼굴이 드러났다.

리베스 마탑의 탑주 카이덴이었다.

좀처럼 얼굴을 내비치지 않는 카이덴이였기에, 보통은 그가 정체를 드러내면 주변 사람들이 놀라는 반응을 보였지만 오늘 모인 이들은 그 누구도 놀라지 않았다.

카이덴이 초모에게 물었다.

“시체가 불탔다고?”

“그렇습니다.”

“시조의 시체는 그 자체로 저주의 매개가 되지. 아마 신성력에 당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군. 다행이야. 하지만 시체가 불타 일의 사실 여부를 확인할 방법도 없어졌군그래.”

“…….”

“마력 파장 분석은 전부 실패했고, 시조를 목격한 후발대는 시조의 마력 수준이 남작에 불과했다고 말했다. 선발대의 증언과는 다른 부분이야. 상식적으로 생각한다면 자네들이 공을 부풀리기 위해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겠지.”

“그럴 수도 있겠군요.”

“그런데,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

셰일은 이게 무슨 말인가 하고 고개를 갸웃했지만, 갱은 고개를 끄덕였다.

“대삼림에 안개를 드리운 마법은 남작 따위가 펼칠 수 있는 게 아니었어. 최소 자작. 전투까지 할 정도였다면 백작은 되어야 했겠지.”

카이덴은 자기가 생각한 바를 가감 없이 얘기했다.

“물론 백작 이상이라고 했지, 공작이라는 말은 아니야. 정황상 시조가 백작이었다. 그를 진리의 수호자와 파견대가 몸 바쳐 저지했다. 이게 내가 생각하는 그림이야.”

“…….”

성진은 말을 아꼈다.

카이덴은 반대로 다른 이야기까지 꺼냈다.

“그건 어차피 협회에서 알아서 할 문제고, 나는 다른 부분이 미심쩍군. 노화된 파견 대원들…… 금지된 마법을 사용한 거지?”

“저는 모릅니다.”

“몰라야겠지. 금지된 마법은 과거, 서부 대륙 인구의 삼 분의 일을 몰살시킨 전적이 있어. 지혜의 고리와 원탁, 별무리 관은 그 일 이후에 그 마법을 부리는 자들을 주살하거나 처벌하지. 파견대가 처벌을 받을 수도 있다는 얘기야.”

갱이 손을 살짝 들어 얘기를 멈췄다.

카이덴의 발언은 듣기에 따라서 기분 나쁠 수 있었다.

“그만, 카이덴님. 겁을 주시러 오신 겁니까?”

“미안하군. 다만 나는 사실을 말했을 뿐이야. 늙은이는 이만 가지. 아무튼, 잘 해결되었으니 다행이군.”

스르륵.

카이덴이 입자가 되어 흩어졌다.

신비한 광경이었지만 역시나 아무도 놀라지 않았다.

“노인네…… 갔지?”

“갔어. 마력 반응이 없어.”

“휴…… 초모, 이해하지. 저 꼰대 시리카를 아꼈었거든. 그런데 임무에서 살아 돌아온 게 자네들뿐이니까 저러는 거야. 손녀 잃은 할아버지라고 생각하고 이해해 줄 수 있나?”

“신경 안 썼습니다.”

“하하하! 그래, 그래야지! 어디서 협회 소속 모험가를 겁주려고 하나? 어이, 이거 하나?”

“담배는 안 피웁니다.”

“아쉽군.”

화륵.

푸후우.

갱이 입에 시가를 물었다.

불을 일으킨 건 갱이었는데 그는 자신이 불을 붙일 수 있음에도 엔빌을 괴롭혀 왔었다.

엔빌은 모르는 사실이다.

살짝 새는 발음으로 갱이 얘기했다.

“노인네가 꼬장꼬장하기는 해도 구라를 친 건 없어. 아마 백작 처치의 공로는 인정받을 거야. 협회에도 꼰대들이 있기는 한데 내가 밀어붙이면 그 정도는 어렵지 않아.”

“감사합니다.”

“단, 진리의 수호자와 함께 공을 나누겠지. 또한 시조 처치에 대한 부분은 포인트를 모든 인원과 나눌 거야. 재밌는 얘기하나 해 줄까?”

“괜찮습니다.”

“…….”

-ㅋㅋㅋㅋㅋㅋㅋ 재밌는 얘기요? 괜찮은데요?

-how are you, 초모?

-no thanks.

-갱 얼굴 찌그러졌자너 ㅋㅋ 얼른 듣고 싶다고 해 줘요.

“그래도 할래. 파견대는 모든 공이 자네에게 있다고 했어. 백작을 몰아붙인 것도 자네 혼자였고, 있었는지는 모르겠다만 상상 속의 공작을 쓰러트리는 것도 초모가 아니었다면 불가능했을 거라고.”

“그래서요?”

“자네에게 포인트를 전부 몰아주라더군. 자네는 어떻게 생각하나?”

갱의 눈이 번뜩였지만 성진의 대답은 간결했다.

“싫습니다. 공정하게 처리해 주십시오.”

“크하하! 걸작이군. 자네들을 보면 낭만이 살아 있던 스칸다 황금기가 생각나. 50년 전 말이야.”

“하시고 싶은 말씀이 있군요.”

“눈치가 빨라. 이쪽 셰일이 나 대신 말해 줄 거야.”

셰일이 고개를 끄덕이고 대화의 주도권을 넘겨받았다.

“참으로 기이한 일이다, 이번 일은. 사무관 진급하고 어지간한 경험은 다 해 봤다고 생각했는데 아니었군. 초모, 선택의 의미를 아나?”

“대충은요. 왜 그러십니까?”

“자네는 이제 선택을 해야 해. 지혜의 고리가 금지된 마법을 문제 삼으면 공을 누리지도 못하고 뇌옥에 처박히거나 하겠지.”

“제가 선택해야 하는 문제입니까?”

셰일은 계약서를 꺼내 들었다.

“자, 세 가지의 선택지가 있다. 둘 다 다른 미래로 이어지니 신중해야 해. 첫 번째 선택지는 마탑이 하고픈 대로 하게 내버려 두고 가만히 있는 거야. 별로 추천하지 않는 방법이지. 끔찍한 미래가 아닐까 싶군. 억울하잖아?”

“두 번째는?”

“협회에 소속되는 선택지. 물론 지금도 모험가로 소속되어 있지만, 우리처럼 공무를 보라는 얘기지. 뭐 적당히 예쁜 직함 하나 파서 거들먹거리기만 하면 되는 자리.”

-위험한데. 거절하지?

-ㅇㅇ 이건 얼굴마담이나 하라는 거잖아.

-그래도 공은 부풀려서 전해 주겠네.

-ㄴ 위험함. 세종시 이방인들의 유일한 희망이 초모인데 큰일 할 사람이 협회 일이나 하고 있으면 어떡함.

“별로 마음에 안 드나 보군. 좋아 세 번째. 임무를 하나 맡아 줬으면 좋겠어.”

“임무?”

“그냥 어떤 집단과 연락망만 구성하면 되는 문제야. 50년 전에 대화가 단절됐거든. 어때, 간단하지?”

“임무를 맡으면 보상은?”

“백작의 처치를 인정하지. 물적 증거가 없더라도 말이야. 공작은 어불성설이고. 자네 말대로 인원별로 보상을 나누더라도 꽤 크게 다가올 거야.”

“또?”

“금지된 마법사용에 대한 일을 불문에 부치지. 이건 협회로서도 꽤 큰일이야. 서부 쪽 망할 자식들과 대립각을 세워야 하니까.”

성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기껏 임무 이상의 일을 해냈지만 정당한 보상을 받기는 어려웠다.

하지만 그런 부분도 스칸다가 굴러가는 이치의 하나였다.

-이것도 위험하긴 하다

-왜? 듣기에는 달콤하게 들리는뎅?

-협회가 서부 쪽이랑 대립각을 세우는 일을 그렇게 쉽게 받아들인다고? 당연히 이번에 맡은 임무가 그렇게 쉬운 임무가 아니라는 거지. 그만한 가치가 있어서 서부에게서 지켜준다는 거니까.

-동감. 봐봐라, 얼마나 어려운 임무를 주는지. 아마 상상도 못 할 임무를 얘기할 거다. 자, 딱 봐!

“아 참, 연락망을 구성할 집단을 얘기해 주지 않았군. 무지개 사원이다. 자네가 수도사라는 소문이 자자해. 그러니 맡기는 일이야.”

-어라?

-상상도 못 한 임무 ㄴ(‘ㅍ’)ㄱ- 레이서! 레이서어어어어! 네 이노오오오옴! 게 있느냐?

-넹. 보고 있어여.

-무지개 사원이면 수도사 중에서 님밖에 못 간 곳이자나여 어딘지 앎?

-개도 제집은 기억하는데 그걸 기억 못 하면 인간입니까? 이사만 안 갔으면 어디 있는지 압니다.

-좋소! 계약 성립!

성진은 어떻게든 모험가들이 정당한 보상을 받길 원했다.

금지된 마법이건 뭐건 알 바가 아니다.

“세 번째로 하죠.”

씨익.

갱과 셰인이 웃었다.

“우리도 그걸 원했어. 준비되는 대로 동부로 출발하게.”

셰인이 말을 하는 사이 갱이 품에서 뭔가를 주섬주섬 꺼냈다.

“이걸 까먹고 있었군. 아, 그리고 이것도.”

하나는 버튼이었다.

“엘론드의 병자들을 구원하는 임무의 보상이야. 또다시 이단 승급이군. 축하해. 황옥(黃玉)이야.”

“……감사합니다.”

“신성력이 귀해지니 이런 임무는 자네가 독식하는군. 이러다 나까지 앞지르겠어.”

“다른 하나는 뭐죠?”

“엘론드의 사람들이 다타온과 궁리하여 보내온 거야. 뭐, 명예 훈장 비슷한 거지. 자네는 누가 뭐라 해도 엘론드의 은인이야.”

“……감사합니다.”

“자네가 한 일인데 뭐, 나가 봐.”

-찡~

-킹째서…… 눈물이…….

-초모의 모험 1기 끝났습니다.

-2기 언제 시작하나요?

-내일염. ㅋ

-개꿀. ㅋㅋㅋ

끼익.

탁.

성진이 계약서에 지장을 찍고 나갔다.

자리에 갱과 셰일이 남아 이야기를 나눴다.

“갱, 파견대가 초모 빼고 전부 은퇴한다는 건 어떻게 생각해?”

“늙었으니까. 누가 보면 금분세수(金盆洗手)라도 한 사람들처럼 보일 거야.”

“그들이 처치한 게 남작이든 자작이든 백작이든, 협회의 새로운 동량이 될 것이 분명한데 아쉽게 됐어.”

“세상에 뜻대로 되는 일이 있나? 어쩔 수 없는 일이지.”

“파견대 일 처리는 어떻게 할 거고?”

“파견대는 은퇴한다며? 포인트가 무슨 필요가 있겠어? 퇴직금이나 넉넉히 챙겨 넣어.”

“그럼 포인트는?”

“초모한테 몰아줘.”

“……백작 처치 포인트를 합산하면 사이먼인지 그 자식보다 높아질 텐데?”

“그러니까 재밌는 거지. 셰일, 모르겠어?”

“뭐가?”

갱이 미친 듯이 웃었다.

“스칸다가 변하고 있잖아. 저 초모라는 놈 말이야. 이상하게 저놈 주위에서 특이한 일들이 계속 일어나잖아?”

“요는 협회도 그 물살에 올라타야 한다는 거군.”

“넌 엔빌처럼 설명이 필요 없어서 좋아. 약아 빠졌어.”

“협회는 자선 단체가 아니야. 굳이 스칸다만을 위할 필요도 없어.”

“물론, 정당한 이득을 취하고 힘이 모이는 장소지. 하지만, 그깟 명예 조금 더 얹어 준다고 협회가 손해 보겠어?”

“뭐, 이방인이라 말은 나오겠지만 무시해 버리면 그만이긴 해.”

“난 그 이방인이란 점도 매력적이야. 이방인을 전부 합하면 웬만한 세력은 찜 쪄 먹지.”

“……그들이 언젠가 큰 세력이 된다고 생각하는구나?”

“푸흐흐…… 저놈 목적이 딱 봐도 그거잖아. 내가 바라는 건 다른 게 아니야. 우리 위에 있다고 착각하고 거들먹거리는 놈들의 코를 납작하게 해 주고 싶다고.”

“맹, 원탁, 성국, 별무리 관을 비롯해서 너무 많은데?”

“우리가 최고가 되면 한 방에 정리할 수 있다는 얘기지. 간단하잖아?”

“초모한테 너무 많은 기대를 거는군.”

“과연 그럴까?”

담배 연기가 천장을 툭 하고 건드렸다.

갱이 히죽 웃었다.

“찬미하라, 새로운 모험가를.”

“그래, 언젠간 네 생각도 맞겠지.”

“지켜보라고.”

***

성진은 새로운 임무를 받고 길을 떠났다.

일금이 부탁했던 대삼림의 개척은 단기간에 이룰 수 있는 일이 아니었고 당장 더 급한 일이 생겼기 때문이다.

일금의 반응은 예상외였다.

오히려 크게 반겼다.

“어차피 인력을 투입할 문제였습니다. 뭐, 그것도 조만간이겠지만. 초모 님이 대삼림의 악을 밀어내 주신 덕분이지요.”

“제게 부탁하실 게 있다고…….”

“아…… 그건…… 천금에 관한 일입니다.”

그의 이야기를 묵묵히 듣던 성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일금은 크게 기꺼워했고, 파견대와 성진의 마지막 모임의 비용을 전부 다 치렀다.

성진과 파견대는 마지막 자리에서도 많은 말을 하진 않았다.

“그래…… 협회가 그런 결정을 했다고.”

“초모가 나서준 덕분에 우리도 손해를 보진 않았네.”

“고마워, 초모.”

“덕분이야.”

자신보다 훌쩍 나이가 많아진 이들의 인사를 성진은 쉬이 받을 수 없었다.

그들이 시조를 처치하기 위해 바친 것이 그를 침묵하게 했다.

그렇다고 그들을 동정하는 것은 아니었다.

그들의 선택이었으니까.

“이 생활도 나쁘지 않았었네, 이제 손주 볼 나이가 됐나?”

“뭔 소리야, 그럼 결혼부터 해야 하잖아.”

“건너뛸 순 없나?”

-알란 자웅동체설. ㅋㅋ

-손주가 급하다고 자식까지 생략하면 어떡합니까.

다시 이어지는 정적.

말이 궁했다.

그게 슬펐다.

“초모, 우리가 준비한 게 있어요.”

“크하하! 맞다, 맞아. 그걸 줘야지.”

파견대 중 요정과 난쟁이를 제외한 인간들이 겉옷에서 자신들의 버튼을 떼어 냈다.

비취(翡翠), 호박(琥珀), 그리고 진주(珍珠).

모두 그것을 성진의 손에 올려놓았다.

다들 후련한 눈빛이었다.

“우리 모험은 여기서 끝이야, 초모. 이어 가 줄 거지?”

“이제는 기력이 달려서 말이야…… 손주들 재롱이나 보면서 살아야지.”

“결혼부터 하라니까.”

성진은 다짐했다.

“반드시…… 언젠가 반드시 제가 여러분들을 원래대로 돌려놓겠습니다.”

이시스가 고개를 저었다.

“금지된 마법은 반드시 대가가 따라요. 기적이 아닌 이상 우리의 수명은 돌아올 수 없어요.”

“……그렇다면 기적을 일으켜서라도 해내겠습니다.”

“……초모는 참 좋은 사람이에요. 당신의 모험에 보살핌이 있기를.”

성진이 떠난 자리.

시끌벅적한 모험가들의 소음과 하루 장사를 위해 나온 창부(娼婦)들이 교태를 떨고 있었다.

남은 노인 중 1명이 얘기했다.

“하하…… 내 모험은 정말 이대로 끝나는 걸까.”

“…….”

“……빌어먹을.”

열이 넘는 인원이 조용히 술만 홀짝이자 이야기를 파는 매화자가 다가왔다.

옆에는 리라(lyra)를 켜는 음유시인도 함께였다.

“오늘 뭐 슬픈 일이라도 있었소?”

“이야기를 팔러 왔나 보군.”

알란의 대꾸에 매화자가 고개를 끄덕였다.

“아, 물론! 옆에 노래도 판다오. 같이 사면 싸게 해 주지.”

“반가운 소리네, 우리가 조용히 있는 게 보기 싫었나 봐?”

“나만큼 나이깨나 먹은 분들이 술자리에서 청승을 떠니, 가진 재주라고는 남 즐겁게 해 주는 것밖에 없는 나와 저놈이 가만 볼 수야 있나?”

“그래, 무슨 이야기를 팔지?”

“엘론드에 드리웠던 암운에 대한 이야기와 노래지.”

일행이 마시던 술을 일제히 내려놓았다.

침묵이 더 무거워졌다.

“왜, 왜들 그러지? 내가 무슨 말실수라도 했나?”

“아니, 사지. 얼마야?”

“은화 5개! 인원이 많잖아?”

“좋아.”

은화 5개를 매화자에게 건네자 그가 이야기를 쏟아 냈다.

“엘론드의 대삼림에 시조가 나타났다는 얘기가 파다했지. 금에 대한 욕심이 시조를 깨운 거야. 협회는 중앙의 영웅들을 그러모아 파견대를 구성했고, 그들을 대삼림에 집어넣었지.”

“영웅들…….”

“아아, 사소한 건 넘어가자고. 각색이야, 각색. 아무튼 그 파견대에 초모라는 모험가가 있었던 모양인데, 엘론드의 병자들은 그에게 구원받았어. 정말 신비로운 자였지!”

“그리고?”

“파견대와 합류한 초모는 미지의 적들과 악을 물리치고 시조와 마주했지. 시조는 무려 남작! 아…… 그런데 이 부분에서 사람들의 이야기가 저마다 다른데 아무튼, 남작이라는 이야기가 지배적이야.”

“그래…… 어떻게 됐어?”

“모험가들은 필사적으로 시조에게 맞서 싸웠고 마침내 시조는 그들에게 쓰러졌어! 엘론드에 드리웠던 절망이 사라진 거야!”

“그게 뭐야…… 당신 이야기 정말 못 한다.”

“헹! 돈은 이미 줬으니 환불은 안 돼. 그래도 노래까지 들려줄 테니 참아 달라고. 어이, 불러 봐.”

음유시인이 리라를 켰다.

매화자와 달리 실력이 훌륭했다.

“우리는 무섭지 않아요. 우리는 물러서지 않아요. 당신이 사나운 송곳니로 우리를 위협하고 붉은 달을 닮은 눈으로 우리를 노려봐도 우리는 지지 않아요. 우리는 모험가, 우리는 영웅들.”

“이 친구도 작사에는 재능이 없나 본데…….”

“이익…….”

알란이 품에서 금화 하나를 꺼냈다.

꿀꺽.

매화자와 음유시인이 침을 삼켰다.

“하, 하하…… 노래가 마음에 들었나?”

“아니, 매화자. 내가 문제 하나를 내지.”

“문제? 맞추면 주는 거야?”

“그래. 해 볼 텐가?”

“물론이지!”

“그 모험가들의 모험이 거기서 끝났다고 한다면…… 그들은 만족할까?”

“음…… 어려운 문제군. 제법이야. 기다려 봐, 저 친구랑 상의 좀 하고.”

알란의 질문에 노인과 중년이 된 이들의 시선이 그에게 집중되었다.

알란은 어깨를 으쓱 올렸다.

매화자가 답했다.

“만족했어! 그야 세상을 구했으니까!”

팅!

금화가 매화자의 손으로 떨어졌다.

“내 생각도 그래. 다른 사람들은 어떨지 모르지만.”

“하하하! 돈을 주는 당신 생각이 중요하지 다른 사람 생각이 뭐가 중요하겠어?”

“그래…… 내 생각이 중요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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