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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J는 종말에 적응했다-108화 (108/222)

# 108

108화

성진은 호흡이라는 것이 별다른 게 아니라고 생각했다. 거창한 것이었다면 마부석에 편하게 앉아서 수련을 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이게 다 스승이 잘 알려줘서 그런 거야··· 그렇다고 한마디만 해줘요. 그럼 덜 억울할 텐데···」

- 휴··· 제자가 너무 대단해서 스승은 필요 없었다

- 독학했어도 천장 뚫었겠는걸

- 배나무 수도사는 솔직히 초모에게 감사해야지

인형 팔찌는 성진에게서 이시스에게로 옮겨간 후였는데 갑자기 이시스가 몸을 떨었다. 성진이 물었다.

“왜 그럽니까, 이시스.”

“···세 명이 이 앞에 있어요.”

“그럼 다행인 것 아닙니까?”

“인형이 붉어요.”

“이런···.”

이 안개 속에서 세 명이 함께 있다는 건 그만큼 안전하다는 것일 텐데 그런데도 인형이 붉다. 그렇다는 얘기는 세 명이 뭉쳐있어도 감당 못 할 위험이 이 앞에 있다는 얘기.

성진이 파견대에게 손짓했다.

대비하라는 제스처를 취하자 파견대가 일사불란하게 마차를 에워싸고 서로의 사각을 보호했다.

파견대는 은연중에 성진을 대장처럼 여기고 있었다. 실제로 그가 대삼림에 혼자 들어오는 미친 짓을 감행하지 않았다면 모두 여기서 언데드의 밥이 되었을 것이다.

쿵-

쿠웅-

땅이 들썩이는 느낌.

“배고오파아아···.”

“이, 이건···.”

“너무 끔찍해···.”

진흙을 대충 뭉쳐 만든 것처럼 추하게 생긴 골렘이었다. 그뿐이었다면 이런 반응이 아니었을 것이다. 골렘은 여러 생물의 살점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가장 충격적인 것은 골렘의 다리와 가슴, 그리고 복부에 파견대 중 세 명의 얼굴이 박혀 있는 점이었다.

“구해줘!”

“흑··· 흐윽···.”

“날 여기서 꺼내줘···.”

충격에 파견대가 신음할 때, 해골로 된 새를 어깨에 얹은 사령술사(死靈術師)가 나타났다. 그의 안구는 텅 비어 있었고, 어깨에 앉은 새에게 그의 양 눈이 박혀 있었다. 그 모습이 자연스러워 더 기괴하다고 느껴졌다.

“반갑군, 침입자 여러분. 나는 바자르님을 섬기는 그로윗이라고 한다. 내 귀여운 창조물을 보고 모두 감탄하는 것 같아서 매우 흡족하군. 상으로 내 골렘의 어디에 이식될지 스스로 정할 기회를 주지. 엉덩이는 싫을 거 아니야?”

“동료들을 돌려줘!”

“이 악마!”

요정들이 구역질하며 그로윗을 매도했다. 자연을 사랑하는 그녀들은 그로윗의 추악한 창조물에 정신까지 혼미해질 정도였다.

“후후, 악마라··· 최고의 칭찬이군. 내 살점 골렘은 특수한 처리를 해서 피부가 강철보다 단단하다. 또, 신성력에도 저항력이 있지. 그러니 네놈들이 어디에서 구해온 지 모르는 성수도 쓸모없을 것이다.”

“그··· 그런···.”

쿵!

쿵-!

“우아아! 배고파아아! 나 배고파아아!”

그로윗의 살점 골렘이 발을 굴렀다. 발을 구를 때마다 살점이 출렁거려 구토를 유발했다.

“옳지, 착하지. 곧 배부르게 먹게 해줄게. 조금만 참으렴?”

성진이 그로윗에게 건조하게 물었다.

“저들을 원래대로 돌릴 방법이 있나?”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하지.”

“그게 무슨 말이냐?”

“내 골렘을 쓰러트리고 나마저 쓰러트린다면 원래대로 돌아오겠지 하지만 그럴 일···.”

후우우웅···

성진의 손에 하얀 섬광이 맺혔다.

그 섬광은 곧 그로윗을 향해 치달았다.

파아앙-!

성진의 능력 중 신성력을 쏘아내는 징벌이었다.

그로윗은 재빠르게 골렘으로 자신의 앞을 가로막게 했다.

그는 신성력에 저항이 있는 골렘이 손쉽게 이 공격을 막고 침략자들을 처단하리라 의심치 않았다.

그런데, 자신이 잘못 본 게 아니라면 지금 골렘의 어깨에 구멍이 난 것은 대체···

그로윗은 서둘러 뼈 마법을 펼쳤다.

다그락···

뼈로 된 갑옷이 그로윗을 감싸기도 전에 그의 눈앞이 새하얗게 물들었다.

“은···.”

퍼어어엉-!

“끄아아아악!”

화르륵···

성진이 쏘아낸 빛의 구체가 골렘을 뚫고 지나간 것도 모자라 그로윗에게 정확하게 명중했다.

“으아아악! 뜨거워! 불! 불이야!”

그로윗은 한 방에 터지지는 않았지만, 바닥을 뒹굴며 신성력의 불꽃을 끄려고 안간힘을 써야 했다. 하지만, 그 노력이 무색하게도 그는 금세 재가 되었다.

사르륵···

“이, 이게 무슨···.”

“초··· 모?”

우드득···

“으악!”

“무, 무거워!”

살점 골렘이 허물어졌다.

성진이 재빠르게 다가가 버둥거리는 생존자들을 살폈다. 다행히 술법이 행해진 지는 얼마 되지 않은 것 같았다. 모두 멀쩡했다.

“내, 내가 산 거야?”

“무슨 일이···.”

성진이 구역질 나는 냄새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셋을 들쳐메고 마차로 돌아왔다.

“우욱···.”

“냄새가···.”

어느 정도 감염이 진행됐기에 눈이 충혈되어 있었다. 생존자가 성진에게 감사를 표하고자 했다.

“초, 초모··· 고마···.”

“정말···.”

“끄아아아악!”

성진이 생존자들을 정화했다.

몸에서 연기가 치솟고 생존자들의 눈은 흰자위만 보였다.

- 역시 치료(암흑 계열)가 우선이지 ^^

- 사실 더한 고통으로 고통을 이겨내는 악독한 흑마법이 아닐까?

- 모든 진리는 통한다!

생존자들은 실신했고 성진은 그들을 마차의 구석에 눕혔다. 잭이 몸을 떨었다.

“초모, 무서워.”

“가자.”

다른 일행이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대답했다.

모두 성진으로부터 거리를 벌렸다.

“아, 예··· 가, 갈까요?”

“그, 그래. 가자고.”

****

움찔···

“그로윗과의 연결이 끊겼다.”

“각하! 그는 미천한 실력에도 불구하고 교만하기 그지없었습니다. 제가 처리하겠습니다!”

“제가 그로윗 그 멍청이와는 다르다는 것을 증명하겠어요! 저를 부디···.”

으직-!

“히이익!”

“죄, 죄송합니다.”

바자르 백작은 거칠어진 숨을 몰아쉬다가 차분하게 말했다. 그의 돌출된 송곳니가 묘한 분위기를 풍겼다.

“내가 너희를 곁에 두는 것은 단순한 여흥이다.”

“예? 그게 무슨···.”

“각하?”

“이제 되었다. 쓸모없는 것들.”

바자르가 손을 휘젓자 붉은 바람이 불었다. 그 바람에 휘감긴 수하들의 몸이 우그러졌다.

“끄아아아아악!”

“바자르님! 으아악!”

“끝까지 시끄럽구나.”

우득··· 우드득···

거구들은 살점으로, 한 줌 핏물로 변했다.

모두 합치니 손바닥 위에서 찰랑거리는 정도의 양이었다.

바자르는 그 핏물을 받아 고풍스러운 석관(石棺) 위에 흩뿌렸다.

투툭··· 툭···

피가 맛있기라도 하다는 듯 석관에 붉은 금이 갔다.

“이제 곧입니다··· 곧···.”

****

「호흡이라는 건 주변의 환경에도 영향을 줄 수 있어요. 예를 들면 호흡의 공간 안에 들어온 나뭇잎들이 땅에 빠른 속도로 떨어지거나 칼날처럼 날카롭게 변하는 것처럼요.」

“네.”

- ㅖ

- 초모: 알았다고··· 얘 언제 가냐?

- (귓구멍 후비며) 정말 유익한 정보였어염

이시스가 성진에게 이야기했다.

“초모, 또 반응이 왔어요. 남은 파견대는 전부 이곳에 있어요. 그런데···.”

이시스가 말하는 도중 고개를 돌린 것과 성진이 마부석에 있는 모든 이들을 밀쳐서 떨어트린 것은 동시였다.

푸슛-

푸슛-

끈적한 실이 사방에서 날아와 마차에 달라붙었다. 그리고 몇 초 지나지 않아 마차를 하늘로 띄웠다.

“초모!”

마차를 포기한 성진이 바닥을 굴렀다.

쿨럭···

흙먼지가 피어났다. 마차의 무게는 그렇다고 쳐도 말들까지 하늘로 솟구쳤다.

히히힝···

“이게 무슨!”

“한곳으로 뭉쳐요!”

일행이 성진의 주위로 모여들었다.

지원가를 지키기 위해서가 아닌 그 주변이 가장 안전하다고 은연중에 생각했기 때문이다.

키이이이이이-!

“소, 소름 끼쳐!”

“너무 크잖아···.”

마차를 다 합친 것보다도 큰 거미였다. 눈이 8개에 더듬이 다리가 달려있었다.

- 우욱··· 아씨 밥 먹고 있는데

- 어우~ 입맛 돌아~ 밥 한 그릇 뚝딱이잖아~

- 눈이 8개나 되네. 큼지막한 것이 순정만화 주인공 스타일이야

성진이 일행에게 축복을 부여했다.

후우우웅···

축복은 신체적인 능력을 향상하는 것.

축복을 받은 파견대의 몸에서 광채가 흘러나왔다.

이것도 고결함의 효과인 것 같았다.

기세가 오르나 싶었지만, 이어진 광경에 다들 움츠러들었다.

“많아! 못해도 수십은 되겠어!”

거미는 한 마리가 아니었다.

키이이이이-!

땅을 파고 나온 거미와 나무를 무너트리고 등장한 거미까지.

‘저건···.’

거미들이 우르르 쏟아지는 가운데, 성진의 시야에 잡힌 것은 거미의 등에 얹어진 고치였다. 이시스도 눈치채고 소리쳤다.

“인형이 반응해요!”

알란과 파견대가 저 고치 안에 있을 것이다. 일행은 고개를 끄덕이고 거미와의 전투를 시작했다.

“이야아아아!”

“안개를 삼키는···.”

“죽어! 죽으라고!”

영창 소리와 거미의 다리를 잘라내는 소리가 난무했다.

키이이이이-!

챙-!

성진은 홀로 떨어져 거미의 진형 깊숙이 들어갔다. 봉을 휘둘러 거미의 머리를 날려버렸지만, 거미는 머리를 잃고도 한동안 다리를 휘둘러왔다.

‘큭···.’

다리가 성진의 뺨을 스칠 듯 말 듯 지나쳤다.

예상치 못한 반격에 간담이 서늘해졌지만, 어디까지나 예상하지 못했기 때문. 성진은 집중하기 시작했다.

‘어디냐.’

그가 구태여 따로 떨어져 나온 이유는 이 전투가 인질들이 있는 상태에서 벌어지는 전투였기 때문이다.

‘찾아야 해. 어디야!’

아마 고치 속의 파견대는 실신 상태일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숨을 쉬는 기척도 제대로 느껴지지 않을 리가 없으니까.

그때, 이시스의 말소리가 귓가에 들려왔다.

“전방에 두 마리, 사선으로 떡갈나무 위에 한 마리, 남은 한 명은 방금 죽었어요.”

한참이나 떨어진 거리임에도 성진에게만 또렷하게 들려오는 게 마법을 사용한 것 같다. 성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키이이이이-!

콰슉-!

콰지직···

거미의 체액이 사방으로 튀었다.

봉을 한 번 휘두를 때마다 거미의 파편이 나무에 처박히거나 공중으로 치솟았다. 거의 도륙하다시피 하는 처치 속도였지만, 상황은 오히려 안 좋게 흘러갔다.

푸슛-!

푸슛-!

“거미줄이야!”

“빌어먹을··· 접근을 못 해요!”

“계속 쏟아지잖아! 어떡해야 해!”

잭과 호박 등급 인원이 분전하고는 있지만, 일행의 처치 속도는 성진의 반의반도 안 됐다. 거미는 지금도 계속 쏟아져 나오고 있는데 이래선 일행이 먼저 당했다.

‘보내야 해.’

앞으로는 반드시 솔로로 활동하겠다고 다짐했다. 미리 확인한 고치 두 개를 찢고 사람을 꺼내, 정화로 병마를 태워버린 후에 일행에게 던졌다.

“도망쳐요! 뒤따라갈게!”

“초모!”

“말대로 해!”

“제길···. 뛰어!”

일행이 성진의 분전을 눈에 담았다가 뒤돌아 달렸다. 그들도 알고 있을 것이다. 기껏해야 남작의 앞마당 청소를 부탁받은 파견대다. 호박도 섞여 있었지만, 비취가 다수인 파견대. 거미들의 포위망을 뚫는 것도 지금이 아니면 불가능하다.

“초모! 꼭 돌아와야 해요!”

이시스가 끊어지는 목소리로 외쳤다. 그 비명에 가까운 외침을 마지막으로 파견대는 사라졌다. 거미 몇 마리가 따라 붙은 것 같지만, 다행히 포위망을 뚫은 것 같다.

- 야, 야야, 갔냐?

- 그럼 시작할까?

- 이런 모래주머니는 오랜만이군 ㅋㅋ 제법 뻐근했어? (쿠우웅)

- 학식 청년 이후로 간만이야. 묵직한 친구들^^

성진이 알란이 들어 있는 고치를 던졌다.

후웅-!

고치가 마차가 있는 곳에 날아가 찰싹 붙었다.

- ㅋㅋㅋ 알란 오열

- 제발 기절해있길 ㅋㅋ

성진이 공중제비를 돌아 땅에 내려섰다.

키이이이이이-!

그를 둘러싼 거미는 처음보다 많았다. 하지만, 지금도 계속해서 땅을 뚫고 나오는 거미들을 바라보는 성진과 시청자들은 대수롭지 않게 그 광경을 바라보았다.

- 다 나왔냐?

- 그게 다야?

- 우리 것도 꺼내도 돼?

키이이이-!

성진이 대봉을 바닥에 갖다 대었다.

휘오오오오오···

신성력의 파동이 퍼져나가며 성진의 몸과 대봉이 빛났다.

우직··· 우지직···

작은 소음이 전투가 시작되었음을 알렸다. 거미들은 성진에게 이를 박아넣으려 달려들었다.

키이이이-!

거미의 독니는 성진에게 가까이 가지 못했다. 어느새 자라난 나무줄기가 성진을 겹겹이 둘러쌌기 때문이다.

콰지직-!

이젠 땅에서 거미 대신 나무줄기가 솟구쳐 올랐다. 거미들은 나무에 꿰뚫린 채로 버둥거리다 죽거나 반으로 갈라졌다.

콰직-! 콰지직-!

****

“이게 무슨 소리지?”

“초모가 싸우는 소리인가 봐요. 아마 그곳에 남아 있었으면 우리도···.”

“초모는 혼자가 더 편할 거야.”

“초모 강해. 우리 사부님보다.”

고치 안에 있던 파견 대원들은 아직도 깨어나지 못했다.

“계속 들쳐메고 이동할 수는 없는 노릇인데···.”

“다들 한계에요. 좀 쉬었다···.”

“그건 안 돼요! 여기는···.”

이시스가 일행의 의견에 반대하려 했다. 이곳은 적진이고 머뭇거리다가는 초모가 없는 사이 전멸할 테니까. 그런데, 그녀의 말은 이어지지 못했다.

‘이게 뭐···.’

- 이리로 오라···.

머릿속에서 누군가 말을 걸었다.

“크윽···.”

“머, 머리가···.”

“누가 말을···.”

- 아이들아, 이리로 오라.

얼굴이 드러나지 않은 사내가 친절하게 도움을 주려 했다.

- 이리로··· 이리로···

‘아, 안돼!’

이시스는 저항하지 못했다. 정신력이 특출난 그녀가 저항하지 못했으니 다른 일행도 마찬가지.

“갈게요···.”

“가겠습니다···.”

바자르 백작은 이들의 정신을 손에 넣었다. 그리고 그가 사는 곳으로 향하게 했다.

파견대가 도망친 방향은 고성이 있는 방향이었고 그 때문에 바자르의 정신 공격의 영향권에 들어왔다. 그것으로 끝이었다.

파견대는 활짝 열린 고성의 성문을 지나쳐 내성으로 진입헀다. 대전(大殿)처럼 보이는 장소에 도착한 그들은 바자르의 앞에 부복(俯伏)했다.

바자르가 웃으며 반겼다.

“그분께서 곧 깨어나실 것이다. 너희의 공이다.”

****

‘어?’

뭘까.

뚝···

뚝···

액체가 떨어지는 소리.

‘물? 아니, 피인가?’

피다.

아무래도 자신의 피인 것 같은데 감각이 없어 피비린내도, 고통도 느껴지지 않았다.

이시스는 입을 벌리고 말을 해보려 했지만 아무 소리도 나오지 않았다.

정신이 몽롱하다.

‘어떻게 된 거지?’

어렴풋이 떠오르는 것 같다. 정체 모를 고성에 제 발로 걸어들어와 시조에게 몸을 가져다 바친 것이 기억났다.

‘멍청한 년···.’

시조의 뒷모습이 보였다.

‘이, 이··· 무슨 존재감···.’

그런데 피는 어디로 향하는 것일까?

양 손바닥에 말뚝이 박혀있다. 선발대 모두 마찬가지다. 그 피는 흘러서 하나의 석관에 모여들었다.

석관은 한눈에 봐도 위험해 보였다.

‘뭐, 뭐야···.’

위대하신 분이 경고한 위험.

그 위험이 지금 닥쳐온 것 같다.

참담하고 무력한 자신이 답답했다.

‘일을 뽑지만 않았어도··· 아니. 그렇지는 않지.’

일을 뽑을 운명이었다.

단지 그뿐.

‘이대로 끝인가?’

세상에 해악을 끼치고 떠나는 것 같아 마음이 아팠다.

시조가 대삼림을 벗어나면 도시를 잡아먹을 것이다. 잡아먹힌 도시는 시조의 힘을 불릴 것이고 그렇게 스칸다는 풍전등화의 위기에 처할 것이다.

이제 흘리는 것은 피뿐만 아니었다.

통한의 눈물이 얼굴을 타고 흘렀다.

‘제발··· 제발···.’

그때였다.

“으아아아아아! 더러운 시조 녀석! 내가 왔다!”

익숙한 목소리다.

이시스의 고개가 돌아갔다.

“나 진주의 검사 알란이 왔다고!”

마음이 다시 무거워졌다.

어쩐지 기대한 이름이 아니었던 것 같은데···

정신 공격의 여파로 기억이 흐릿했다.

시조가 알란을 비웃었다.

“입은 제법이구나. 내게 무엇을 보여줄 생각이지?”

“우선 내 검을 받아보고···.”

“불필요한 과정이다. 너 또한 그분의 제물이 될 것이다.”

“······.”

알란이 고개를 갸웃하다가 미소지었다.

“지금 나와의 전투를 생략하겠다는 건가?”

“그래, 결과는 뻔하니까.”

“좋아. 나도 사실 쫄렸거든.”

시조가 쿡쿡 웃으며 손짓했다.

그때, 알란의 입에서 내전(內殿)을 흔드는 고성이 터져 나왔다.

“초모오! 지금이야!”

“뭐?”

후우웅-!

거대한 압박감이 백작에게 쏘아졌다.

백작은 움찔했지만, 그것이 별다른 위협이 못 되는 것을 알고 발검하여 날아오는 물체를 잘라냈다.

서걱-!

촤아아···

눈앞에서 베었다면 뒤집어쓸 물이었지만, 백작은 멀찍이 떨어진 위치에서 움직이지 않은 채로 베었다. 그 때문에 백작에게 닿은 물은 고작 한 방울.

치이이···

백작의 뺨에 연기가 솟았다.

그뿐이었다.

“성수?”

“제길···.”

“재밌구나. 하지만 이제 어쩔 셈이지? 최후의 수가 별 효과를 거두지 못한 것 같은데?”

알란이 웃었다.

이시스는 그의 모습에서 여유를 느꼈다.

이제 그가 제대로 보인다. 점점 시야가 또렷해졌다.

알란은 지금 허장성세를 하는 중이었다. 그의 안색은 초췌했으며 숨은 거칠었다.

‘안돼···.’

알란이 외쳤다.

“최후의 수? ···누가 최후의 수래? 하아··· 걱정도··· 팔자군.”

“건방진···.”

“초모, 부탁해··· 나 좀 쉬어야 할 것 같아···.”

“맡겨.”

“고마워···.”

알란의 몸이 쓰러지는 걸 누군가 받았다. 그리고 그를 기둥 뒤로 기대게 했다.

‘누구··· 초모? ···초모?’

이제야 기억이 떠올랐다.

초모.

이곳에 와서는 안되는 사람.

하지만 와 주길 바랐던 사람.

‘제발! 제발 목소리야!’

제발 초모에게 도망치라고 말해야 한다.

하지만 그녀의 입은 열리지 않았다.

대신, 다른 입들이 열렸다.

“초모! 도망쳐!”

“상대가 안 돼! 너라도 도망쳐야 해!”

“으아아아아아! 제발!”

“협회에 알려! 시조는 상상 이상이야!”

“도망쳐! 너라도 도망치라고!”

말뚝에 메인 자들이 아우성쳤다.

마침내, 이시스의 목소리도 터져 나왔다.

“초모, 백작이에요! 시조는 백작이라고요!”

초모는 거침없이 다가왔다.

한 걸음, 두 걸음···

서걱-!

보이지도 않았다.

검광이 번뜩였다고 생각한 순간, 초모의 가면에 금이 갔다.

툭-!

가면이 쪼개져서 발밑으로 떨어졌다. 초모의 이마에 새겨진 용 각인. 이방인이다.

“흑··· 흐흑··· 도망치란 말이야.”

백작이 손을 휘저었다.

“끄아아아악!”

“아아아악!”

“꺄아아아아악!”

석관이 피를 빨아들이는 속도가 빨라졌다.

“시끄럽기는··· 거기까지다.”

초모가 답했다.

“그래, 여기부터로 하지.”

후우웁···

초모가 숨을 들이켰다. 그러자, 기이한 일이 일어났다.

툭··· 툭···

바닥에 흥건했던 성수들이 초모의 주변으로 이동했다. 그리고 그가 딛는 바닥에 동그랗게 원을 만들었다.

찰박- 신발이 물을 밟는 소리.

통··· 통···

“호흡···.”

그 순간, 초모의 몸에서 광채가 뿜어져 나왔다. 봉을 휘두르다 뒤로 넘기고 반대쪽 손은 앞으로 한 채 초모가 말했다.

후아아아앙···

“가볍다. 가벼운 건 나뭇잎, 가벼운 건 나비, 가벼운 건 미소.”

초모가 감았던 눈을 뜨자, 새하얀 백광(白光)이 그의 눈에서 흘러나왔다.

“가벼운 건 나.”

부우웅···

초모의 공간이 완성되자, 물방울들이 떠올랐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백작이 손뼉을 쳤다.

“하찮은 재주를··· 어디 한 번 볼까?”

다섯의 인영이 걸어 나왔다.

“스승님!”

“지, 진리의 수호자!”

말뚝에 박힌 자들도 상황을 볼 수 있었다.

진리의 수호자다.

남옥(藍玉) 파티인 그들도 백작에게 사로잡힌 것 같다. 심지어 정신 지배까지 당한 기색이다.

“죽여라.”

“······.”

“······.”

팟-!

마법사의 영창이 시작되고 시리카의 숏소드가 성진을 노렸다.

부으으···

성진의 간격에 숏소드가 파고드는 틈을 타, 다른 진리의 수호자들도 동시에 공격을 감행했다. 완벽한 합이었다.

“안돼!”

이시스가 비명을 질렀다.

하지만, 펼쳐진 상황은 눈을 의심하게 했다.

통···

숏소드를 쥔 팔이 성진의 손에 가볍게 튕겨 나가고.

팡···

찔러오는 창도 봉에 부딪혀 기이한 각도로 꺽이고.

화륵···

마법사의 마력 탄환마저 공간에 부딪히자 하얗게 타 소멸했다.

파팟-!

초모가 봉을 바닥에 붙이고 양발을 차올려 화살과 단검을 걷어냈다. 이 모든 게 거짓말처럼 한 동작으로 보였다.

그 모습이 꼭 파문에도 가라앉지 않는 나뭇잎 같았다.

그리고.

후웅···

초모의 말아쥔 주먹이 진리의 수호자의 몸을 두들겼다. 한 사람당 한번의 격타음.

파파팡-!

맑고 청명한 소리가 내전을 울리며 진리의 수호자가 벽으로 날아갔다.

콰아앙-!

콰직-!

‘뭐··· 야?’

이시스의 눈에는 방금 타격에 혼백(魂魄)이 튕겨 나간 것처럼 보였다.

그것이 잘못 본 것이 아닌지 얻어맞은 상대들은 축 늘어져서 일어나지 않았다.

파팡-!

궁수와 마법사도 곧 그렇게 되었다.

후우웁···

“빠른 건 화살, 빠른 건 빛, 빠른 건···.”

초모가 사라졌다.

“나.”

그와 동시에 백작의 모습도 사라졌다.

챙-!

채채채챙!

빛살과 피, 흰색과 붉은색이 수십 차례 부딪히자 그들의 충돌이 마치 처음부터 하나였던 듯 분홍과 자홍, 주황의 색으로 변화를 반복했다.

보고도 믿기지 않은 광경이었다.

팟-!

팟-!

격돌이 한 차례 끝나고 서로 멀찌감치 물러났다.

사락···

초모의 머리카락이 조금 잘려 나갔다.

피슛-!

뺨에서도 피가 흘렀다.

“네놈 피는 그분에게 훌륭한 양분이 될 거다.”

“해보시든지.”

“뭐?”

이상한 기분이 들어 백작이 자신의 왼팔을 확인했다.

왼팔은 분명 있어야 할 자리에 없었다.

수십차례 주고받은 공방에서 손해를 본 것은 초모가 아니라 바자르였다.

백작은 벼락처럼 움직였지만, 초모는 벼락보다 빨랐다.

당황한 기색이 역력한 백작에게 초모가 말했다.

“무거운 건 그림자, 무거운 건 마음.”

휘오오···

성수가 물결을 만들어냈다.

신비로운 광경에 다들 넋을 잃고 볼 수밖에 없었다.

“무거운 건··· 네 죄다.”

“···다시 생각해 보니 너는 내가 차지하는 게 좋겠구나.”

우지직···

백작의 팔이 순식간에 재생되었다.

붉은 석관이 잠시 들썩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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