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BJ는 종말에 적응했다-99화 (99/222)

# 99

99화

“흐응··· 흥흥흥···.”

옥잠(玉簪)이 달빛을 흘렸다.

여인은 금(琴)을 켜며 줄곧 송하린의 눈치를 살폈다.

물론, 감추려고 했겠지만 감춘다고 그녀의 눈을 벗어날 순 없다.

“기분이 좋으신가 보군요.”

“기분? 음··· 모르겠소이다.”

송하린은 팽가의 젊은 청년과 다음 만남을 기약하고 홀로 다른 도시로 이동했다.

도시 야로(夜勞).

도시의 이름이 이렇게 지어진 데는 밤에 드는 달빛이 아름답기 때문도 있지만, 야로의 사업이 밤에 치중되었기 때문이다. 좋게 말하면 밤공기가 좋은 도시, 나쁘게 말하면 유흥이 발달한 도시다.

그렇다고 천박하거나 남들의 눈총을 살 유흥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지금 송하린이 즐기고 있는 것도 엄연히 유흥의 한 종류였지만, 누구도 그녀를 손가락질하지는 않을 것이다.

밤 호수에 등을 매단 조각배를 띄워 하는 뱃놀이. 여기에 미녀가 금을 켜면 금상첨화였다.

여전히 삿갓을 쓰고 얼굴을 가린 그녀의 차림은 뱃놀이를 즐기는 사람치고는 특이했다.

“음악을 즐기시는 분인가 봐요, 여인이 배에 오르는 경우는 있어도 예기(藝妓)와 함께 오르는 경우는 드문데.”

“이곳에 자주 왔었지. 산적처럼 생긴 아저씨들이랑 비슷한 또래의 친구들과 줄곧 함께였어.”

“한데 지금은 왜 혼자이신가요?”

“그래, 언니 말 잘했소. 난 왜 혼자일까.”

- 또? 또 갔다 오라고?

- 어허! 가진 재주 뒀다 뭐에 쓰겠소! 얼른 재주를 부려 본녀에게 금을 가져오시오!

- 도둑질하란 소리잖아!

- 싫소?

- 쟤네부터 털면 되는 거야? 순진하게 생긴 게 털어먹기 좋게 생겼네. 감히 빤쓰 님이 꽉 잡고 있는 도시에 커플끼리 와? 내 저 남정네의 돈주머니를 훔쳐 오겠다!

- 커흠··· 오늘은 손님도 오실 거고, 뱃놀이하기 좋은 날 아니오?

- ···옆에 아낙네의 돈주머니도 털어오지. 그럼 됐지?

- 옳거니! 아주 옳게 된 도둑놈이다. 다음 임무에 꼭 같이 갑시다.

- 그래놓고 저번에 두고 갔잖아?

- 주술사님이 도둑놈은 싫다고 하셔서··· 내 뜻은 아니었소.

- 웃기시네. 송하린이 적극 찬성을 표명했다고 하던데?

- 어쭈? 지금 도둑놈이 내 말에 또박또박 말대답을 하는 것이오? 이번 임무가 얼마나 훌륭한 임무인지 또 설명해야 하는 건가? 아무리 동부의 의가 땅에 떨어졌다지만 정말···

- 일단 갔다 올게, 하린 양. 약속 지켜! 아저씨도 승급 좀 하자.

- 갔다 오시오, 빤쓰. 이번엔 꼭 닉값을 하길 바라겠소이다. 나는 배 위에서 친우들과 기다리겠소.

- 대도 빤쓰에게 무슨 걱정을. 금방 가지.

지금 올라와 있는 배는 못 해도 4인용은 되어 보였다. 그만큼 넉넉한 공간이 남았다는 뜻이고, 또 그만큼 빈 자리가 허전하다는 뜻이었다.

“지금도 배를 뭍에 대면 왜 먼저 출발했냐고 화를 낼 것 같소이다.”

“예? 그게 무슨···.”

“그냥··· 그냥 하는 말이니 신경 쓰지 않아도 되오.”

촤르륵···

한 손으로 물을 떠서 눈에 담은 다음, 다시 호수로 쏟아냈다.

그녀는 여전히 길을 잃은 상황이다.

돌아갈 곳이 있고 종착지가 있다면 길을 가고 있다고 할 텐데, 스칸다에 오고 나서는 아무 목표가 없다. 그러니 길을 잃었다.

‘올빼미를 찾아갈까···.’

그런 생각이 없었던 건 아니었다.

하지만 그런 만남을 원하지 않았다. 지금 그를 만나봐야 짐이 될 것이다.

‘동부에서 일이 끝나면 중앙으로 넘어가야 하나?’

동부에 남은 일이 있었다.

풀지 않은 숙제.

스칸다에 돌아왔을 때는 그저 기뻤지만, 지금은 아니다. 스칸다에 돌아오자마자 불청객이라는 딱지가 붙어 동부를 떠돌고 있는 자신의 상황. 어려움을 토로할 동료조차 없다.

송하린이 뱃전에 앉아 난간을 손가락 끝으로 두들겼다. 다듬은 손톱이 운율을 만들어 냈다.

타다닥···

“어찌 이리 변하지 않았을까. 나 빼고 그대로네.”

남들이 봤을 때 가장 변하지 않은 건 자신일 텐데, 어째선지 자신만 변한 것 같았다.

그녀가 생각을 이어가던 와중 뭔가를 느끼고 눈썹을 찡그렸다.

“왜 가련한 독백을 이어갈 시간도 주지 않는 것일까?”

그 말을 알아듣지 못하겠다는 듯 옥잠을 꽂은 여인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송하린이 그녀에게 말했다.

“언니, 내가 문제를 내겠소.”

“문제 말이에요? 이렇게 뜬금없이요?”

“언니도 현은 그만 뜯고 얘기나 합시다. 자, 도구든 사람이든 쓰임이 있는 법이오. 이건 진리요. 동의하시오?”

“예. 물론이죠.”

“무인은 힘을 팔고 기녀는 웃음을 팔지. 상인은 물건을 팔고 광대는 재주를 팔아. 만약 무인이 웃음을 팔면 어떨 것 같소?”

“이상한 일이죠. 그래선 안 되잖아요?”

“그래, 언니도 그렇게 생각한다는 얘기지?”

송하린이 그녀의 뒤에 앉은 남자에게 턱짓했다.

“어이 사공, 당신 생각은 어떠시오?”

“······.”

“이렇게 배를 외진 곳으로 몬다··· 내가 남정네였다면 이쪽에 계신 언니와 분위기를 잡기 좋았을 테니 분명 뱃삯을 더 얹어드렸을 것이외다. 하지만 나는 남정네가 아닌데?”

“···송하린.”

“잠영(潛泳)하고 있는 사람이 총 다섯인가? 들킬 정도면 어지간히 수준이 떨어지는 모양인데··· 이렇게 무시할 거면 보내지라도 말든지.”

사공이 스윽- 일어섰다. 노는 이미 한쪽에 치운 지 오래다. 앞에 앉은 여인이 겁을 집어먹고 같이 일어서려 하는데 송하린이 만류했다.

“언니는 일어나지 말고 숙이시오.”

“예? 숙이라고요?”

“내 말을 들으시오.”

여인이 금을 꼭 끌어안고 몸을 숙였다.

“이보게, 사공. 재주를 팔아야지 사람 목숨을 팔면 쓰나.”

“밤이 길다. 죽어라!”

건조한 음성이 사공에게서 흘러나왔다.

송하린은 포대기로 둘러싸고 있던 물건을 쳐다봤다.

도(刀).

송하린이 도갑에서 도를 꺼내는 것과 동시에 물 위로 사람들이 솟구쳐 올랐다. 아니, 솟구쳐 오르려 했다.

촤아아···

“송······.”

“죽···.”

파직···

콰아아아아앙!

철컥-

창졸간에 폭풍이 지나갔기에 도갑에서 도가 뽑혀 나오는 소리인지 아니면 다시 들어가는 소리인지도 구분이 되지 않았다.

“어?”

금을 끌어안고 부들부들 떨어대던 기녀가 상황을 보지도 않고 소리를 질렀다.

“꺄아아아아!”

“조용, 조용히 하시오.”

“···네?”

“다 끝났으니 조용히 뒤를 돌아보시겠소?”

여인이 뒤를 돌자, 사공이 쓰러져 있었다.

사공은 목이 없었다. 마치 용이 할퀸 것처럼 거친 흉터만 남아 있었다.

“꺄아아아아아!”

“쉿··· 쉬잇··· 조용히 끝낸 편이오. 강은 들여다보지 마시오. 아마 눈이라도 마주치면 밤마다 잠을 설칠 테니.”

여인이 호수를 들여다보진 않았지만, 배 주위로 물살이 붉게 변했다는 걸 알아챘다. 물에서 튀어나온 사람들의 흔적인 것 같았다. 피의 양을 보니, 아마 사공처럼 전부 목이 베였을 것이다.

“저기··· 그런데 왜 뒤를 돌아보라고···.”

“거기 뭐가 보이오?”

“사공, 그리고 노요.”

“잘 봤소. 저으시오.”

“예? 저으라고요?”

송하린이 끄덕이고 홀짝이던 술병을 다시 집어 들었다. 잠시 후, 기녀가 억울한지 노를 힘겹게 저으면서 말했다.

“기녀는 웃음을 팔아야 하는데··· 각자의 쓰임이 있잖아요? 진리라고 했잖아요?”

“이 세상에 진리는 없소. 내 가르침을 줬으니 분명 언젠가 크게 깨닫는 게 있을 거요.”

“예···.”

송하린이 하늘과 호수에 박힌 별을 차례로 본 다음 술병을 홀짝였다.

“아직은 나를 가만히 내버려 뒀으면 좋겠는데···. 자꾸 오지 말라 하니 가고 싶어지네.”

****

성진은 대가 타놀드의 안내를 받아 동굴로 들어갔다.

내부로 들어갈수록 공간이 넓어지는 구조였으며, 드문드문 박혀 있는 조명 시설은 이곳이 동굴인지 아니면 귀족의 저택에 와 있는 건지 헷갈리게 할 정도였다.

- 기술력 미쳤네 ㄷㄷ

- 이것이 집이다!

안으로 걸어 들어가는 성진에게 타놀드가 말을 걸었다.

“오늘 데칸의 그리핀들이 소란스럽더니··· 자네 짓인가?”

“예.”

“그것들을 어떻게 한 것이지? 설마 다 죽인 것인가?”

“아뇨, 그렇지는 않습니다. 그냥 산을 떠나게 한 것뿐입니다.”

“하하··· 뭐 일단은 그런 거로 하지. 땀 냄새가 나는군. 씻을 텐가?”

“씻는 게 가능합니까?”

“동굴 내부에 물이 들어오는 장소가 있지. 호수라고 보면 돼. 씻을 만할 거야. 씻고 나오게.”

“알겠습니다.”

급하게 도움을 받아 들어온 거라 생각을 정리할 시간이 필요했다. 도움을 준 이에게 자세한 설명을 들을 필요도 있었고. 성진이 씻으러 향하는 사이, 채팅창은 문을 열게 만든 유저에 관해 얘기했다.

- 있짜나요, 있자나요 방금 타놀드가 문 왜 열어준 거예요?

- 순식간에 지나가서 커뮤니티 닉네임 제대로 못 봤는데 초모님! 보여주세요!

성진이 커뮤니티 쪽지창을 다시 보여주었다. 사람들은 쪽지를 보내온 사람의 닉네임을 확인하고 대부분 의아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 엥? ‘떼인돈받아드립니다’?

- 사채업자야 뭐야?

- 진짜 산왕 빚 있었누 ㅋㅋㅋ 그러게 착실하게 좀 살지

- 금 등급이네; 오바네. 이제 금따리는 취급 안 하지 않나?

- 님은 뭐였는데요?

- 스칸다 안 해봤어^^

- 어··· 그래··· 고마워

사람들에게는 낯선 이름인 듯했다. 하지만 누군가는 그 이름을 아는 건지 호들갑을 떨었다.

‘미친일수좌였네’님이 1,000원 후원하셨습니다!

[와 일수좌도 방송 보고 있으세요? ㄷㄷ 일수좌님 요즘 뭐 하세요?]

- 일수좌?

- 생업 하고 있죠. 그래도 틈나는 대로 방송은 보고 있어요

- 야 왜 니들끼리 떠들어. 일수좌가 뭔데 이 ㅆ덕아

‘우매한샊기들’님이 1,000원 후원하셨습니다!

[일수좌를 모르니 니들이 금따리라고 욕하지ㅋㅋ 하여튼 스칸다 제대로 알지도 못하는 것들이]

- 님은 등급 뭔데요?

- 스칸다 안 해봤어^^

- 두 번은 오바야 시발

- 아무튼, 농담이고 일수좌가 금따리라 의아해하는 양민들이 많은 것 같다. 금따리라 똥내 난다고 생각하지 마라. 니가 더 똥내 나니까. 이제 친절하게 설명해주도록 하겠다

- 오오오오오

- 일수좌는 모험가 활동은 내가 알기로 비취인가 호박까지 올라갔다가 다시 내려온 거로 알고 있다. 활동을 멈춰서 등급이 내려간 거지.

- 실력이 떨어졌나?

- 본업이 따로 있었어. 협회 몰래 임무를 대신 받고 보상도 멋대로 책정했어. 어둠의 다크니스 같은 존재지. 스칸다의 어둠은 낮만큼 거대하단다, 아가들아?

성진이 물에 몸을 담가 끈적한 기분을 씻어냈다. 프라이빗 모드가 작동하고 있어서 사람들은 더 채팅에 열중했다.

‘한마디로’님이 1,000원 후원하셨습니다!

[사설 용병 뭐 그런 거라는 거지?]

- ㅇㅇ 님 만나면 1초 컷이니 까불면 털림

- 대단한 사람이었나 보네. 등급으로 치면 어느 정도야?

- 내가 어떻게 알아. 협회를 건너뛰고 따로 맡길 정도면 ㄷㄷ한 사람이었겠지

‘근데요그럼요’님이 3,000원 후원하셨습니다!

[아까 산왕 얘기는 뭐에요? 그 일수좌님? 알려줘요!]

- 산왕 얘기요? 음··· 이걸 알려줘도 되려나? 원래 고객의 비밀은 함부로 누설하면 안 되는 건데

- 스칸다에 지금 초모밖에 없자나요, 빨리! 현기증 나요!

- 말해드릴게요. 난쟁이들은 협회를 신용하지 않는 경향이 있고 그건 높은 지위에 있는 난쟁이들도 마찬가지예요. 제가 리즈 시절에 의뢰해온 의뢰인이 난쟁이들의 왕 소렌딜이었어요.

- 와, 님 그럼 개쩔었나 보다! 난쟁이 나라를 괴롭히는 용을 쓰러트린 거죠?

- 아뇨? 용을 어케 쓰러트려요? 저는 미아 찾았는데.

- 엥?

- 소렌딜한테는 자식들이 있었어요. 그중 막내는 재능은 있는데 철딱서니가 없기로 유명했죠. 그런데 어느 날 그 막내가 사라졌다고 의뢰가 들어왔어요. 소렌딜이 반쯤 정신이 나가 있었죠.

‘할아부지할아부지’님이 1,000원 후원하셨습니다!

[그래서 어또케 됐어요? 어디서 찾았어요?]

- 몰래, 빨리, 안전하게 찾아야 해서 골치 아프긴 했는데 그래도 찾긴 찾았어요. 단서가 하나도 없어서 거의 무에서 유를 창조하다시피 했지만.

- 어디 있었어요?

- 동부 대륙에 유명한 인신매매 집단이 있었는데, 막내가 함부로 밖으로 나돌다 거기까지 흘러 들어갔더군요.

- ㅎㄷㄷ 돈 주고 사 옴?

- 피 같은 돈을 왜 줘요? 그냥 다 잡아 슥- 했습니다

- 착하게 만들었군요!

- 와, 역시! 흑채(黑蠆)가 소리소문없이 없어졌다고 들었었는데 일수좌가 한 거였어요?

- 저 혼자서 어떻게 해요. 흑채가 얼마나 큰데. 전갈 새끼들 잡아 죽이려면 더 한 독물을 데려와야죠 ㅋㅋ

- 누구?

- 송하린. 송하린이랑 몇 명 더 같이 가서 싹 밀어버렸어요. 송하린도 평소에 흑채 놈들이랑 몇 번 부딪혀서ㅋㅋ

‘와 이렇게 보면’님이 10,000원 후원하셨습니다!

[송하린 착한가 보다. 협객이었어요?]

- 지옥의 대마두였습니다

- 송하린이 정확히 뭔지는 사람들도 잘 모르는데 아무튼 협객은 아님 ㅋㅋ

- 송하린 근데 돈 안 받았음?

- 술 한 번으로 퉁쳤음. 나는 난쟁이 왕한테 따로 받았고

- 돈? 얼마?

- ㄴㄴ 빚으로 받았지 ㅋㅋㅋ 난쟁이들은 이런 거 신경 써서 50년 동안 전전긍긍했을 것 같네요

- 타놀드가 근데 그걸 어케 앎?

- 타놀드가 그 막내니까.

- 엥?

- 대가의 피는 왕족한테 흐르잖아요. 스칸다 안 해봤음? 쟤 철구 매달고 질질 짜던 거 송하린이 뺨 몇 대 때리고 어깨에 들쳐메고 귀환했었음ㅋㅋ

성진은 시청자들의 대화를 통해 돌아가는 상황을 이해했다. 타놀드가 과거 ‘떼인돈받아드립니다’라는 자유 용병에게 구원받았고, 그 빚이 지금까지 이어지는 상황이라는 것.

‘기가 막히는군.’

기막힌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원래라면 일단 얘기를 해보고 타놀드가 대가로 무엇을 받으려 하는지를 확인해야 하는데, 돌아가는 상황을 봐서는 아무것도 주지 않아도 될 것 같았다.

- 엄마가 슈퍼에 미리 돈 냈으니까 초모 가서 먹고 싶은 거 맘껏 사 먹어!

- 초모: 외상으로 잘 놀다가이다!

몸을 씻은 성진이 떼인돈에게 물었다.

“그런데, 그 은혜를 제 맘대로 써도 되나요?”

‘떼인돈받아드립니다’가 다이렉트 메시지를 보내왔다.

「원래 안 되는데, 보다 보니까 재밌네요 ㅋㅋ 맘대로 쓰세요. 이거 말고도 안 받은 거 꽤 되는데 친구들이랑 얘기해보고 전해드릴게요.」

“감사합니다.”

- 일수좌 쿨한 거 봐 ㅋㅋ

- 원래 섹시 가이로 유명했음 본업이 모델이었었나? 모델 아직도 해요?

- 지금은 쇼핑몰 운영하고 있어요. 스칸다 하다 커리어 ㅈ망해서 ㅋㅋㅋ 스칸다 ㅅ발 존나 재밌어!

- ㅋㅋㅋㅋ 그럼 그렇지!

복장을 단정히 한 성진이 타놀드가 기다리는 곳으로 향했다. 타놀드는 초조한지 발을 구르고 있었다. 마른세수를 하는 타놀드. 성진은 비집고 나오는 웃음을 감추고 가면을 벗고 그에게 다가갔다.

“이런··· 떼인돈받아드립니다 님은 아닌데··· 이방인은 맞군. 그분과 어떻게 아는 사이지?”

「대충 빚을 넘겨받았다고 하세요.」

“적당히 아는 사이입니다. 빚은 제가 넘겨받았고요.”

“빌어먹을··· 왜 이렇게 늦게 왔나? 이러다 빚을 갚지 못하고 헬헤임에 가는 줄 알았잖아!”

「난쟁이들이 은혜와 원수에 민감한 이유는, 그들이 은혜와 원수를 갚지 못하고 헬헤임에 가면 영원히 조롱당한다고 여겨서예요. 아주 이용해 먹기 좋은 민간신앙이죠 ㅋㅋ 난쟁이 쉑들」

“이제라도 빚을 갚게 해드리겠습니다.”

성진의 당당한 말에 채팅창이 웃음으로 가득했다.

- ㅋㅋㅋㅋㅋㅋ 능청스러운 거 봐 ㅋㅋㅋ

- 이제 연기자 다 됐엌ㅋㅋㅋㅋㅋㅋㅋㅋ

- 생색내기가 Lv.6이 되었습니다.

- 어이 초사장 ㅋㅋ 이번 투자는 성공적이군

“다행이군··· 다행이야. 형님들도 이 타놀드가 빚을 갚지 못할까 봐 같이 걱정해주시던 차야. 이제라도 기회가 생겼으니 내 최선을 다해보지. 빚은 어떻게 받아 갈 생각인가?”

「바로 엘리움 들이밀지 마시고 확실하게 답을 듣고 보여주세요.」

“부탁이 있습니다.”

“그래, 그러니 찾아왔겠지. 아니, 부탁이 아니야. 정당하게 빚을 갚는 과정이지.”

“그렇죠? 그런데 혹시 제가 받아 갈 게 과하다고 생각하시면 어떡합니까?”

“내가 이룰 수 있는 일이라면 뭐든 상관없어. 씨앗이 진 빚을 꽃이 모른 척 할 수 있나?”

성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본론으로.’

성진이 가방을 탁자에 내려놓고 물건을 하나둘 꺼내놓았다. 새하얀 광채가 공간을 메우자, 타놀드가 눈을 손바닥으로 살짝 가리며 말했다.

“윽··· 이거 설마?”

“엘리움입니다.”

“······.”

- ㅋㅋㅋㅋㅋ 갚는다며?

- 표정 봐라 ㅋㅋㅋ

- 난쟁이 허세의 엔딩(절망편)

타놀드가 혼자서 중얼거리다 질문했다.

“양이 꽤 되는군. 어디서 손에 넣었나?”

“중요한 문제입니까?”

“성국의 사제들이 극성맞은 거 알잖나? 깨끗하지 못한 방법으로 손에 넣은 물건이라면 처치가 곤란해서.”

“깨끗하지 못한 물건입니다.”

“역시···.”

- 훔친 물건이니까요

- 훔친 물건 + 훔친 물건입니다.

- ㅋㅋㅋ 초모는 장물만 다루는 거시야요

타놀드가 수염을 쓰다듬다가 말했다.

“아니, 그래도 방법은 있겠군. 그래, 이걸로 뭘 만들려는 건가?”

“그건···.”

잠시 말문이 막혔다.

장비를 얻을 생각이었으니 아마도 검이 좋을 것이다.

그런데, 타놀드 쪽에서 먼저 제안해왔다.

“검, 검으로 만들어야 해.”

“왜 그렇죠?”

“그런 기분이 들어. 대가의 감이니 믿어.”

“알겠습니다. 그럼 언제쯤···.”

“좀 걸릴 거야. 나 혼자서는 못 만들거든.”

- 엥? 만들지도 못하면서 왜···

- 대가가 왜 못 만들어?

- 세상에 대가가 혼자 못 만드는 장비가 있다?

타놀드가 부연설명을 했다.

“그냥 엘리움을 주물럭거려 만드는 거라면 얼마든지 만들 수 있지. 하지만, 50년 만에 찾아온 빚을 갚을 기회야. 전력을 다할 생각이거든.”

“어쩌시려는 겁니까?”

“탄타르빌에서 만들 거야.”

“······.”

성진은 탄타르빌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지역이라면 어디 붙어 있는지도 모르니 반응을 할 수가 없었다. 반면, 채팅창은 불타올랐다.

- 탄타르빌? 거길 왜 가?

- 멸망한 곳 아니야? 원시 용이랑 싸우다가 불탄 곳이자너?

- 50년 전에도 불탄 곳일 텐데?

「탄타르빌··· 난쟁이 놈 마음 독하게 먹었는데요?」

타놀드가 말했다.

“형님들도 함께해주실 거야.”

- 형님이면 다 대가들이잖아 ㅋㅋ

- 대가들이 다 모여서 뭘 만들려고?

- 잘 만드는 놈 옆에 잘 만드는 놈

채팅창을 살펴본 성진이 질문했다.

“탄타르빌은 불타지 않았습니까?”

“아니, 그곳만큼은 불타지 않았어.”

“어디를···.”

“별의 용광로. 그곳은 남아있지.”

‘상상도못한정체’님이 1,000원 후원하셨습니다!

[별의 용광로면 ㄷㄷ 우리도 역사에서만 들었던!]

- 성검과 마검이 탄생한 곳이지. 암!

- 역스퍼거들 단체 행복사

- 별의 용광로는 남아있었구나

- 일이 갑자기 존나게 커졌다ㅋㅋ

- 초모: 예? 금따리한테 별의 용광로요?

타놀드가 신이 나서 말했다.

“당장 짐을 꾸려야겠군. 커뮤니티로 연락을 보낼 테니 때가 되면 탄타르빌로 오게.”

****

- 초모 커뮤니티 친구 목록 실화냐 ㅋㅋ

- 부떠워 부떠워 혜인이눙 툐모 팅구 목록 부더워요!

- 혀 반샷 맞음?

데칸 산에서의 일을 마친 성진이 이오란으로 돌아왔다. 길을 떠난 지 고작 하루밖에 안 됐는데 참 많은 일이 있었다.

성진은 이제는 종속수가 된 순혈 그리핀을 자유롭게 내버려 두었다. 늘 주인의 곁을 맴돌다 종속구로 호출하면 알아서 찾아온다고 하니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 이제 뭐 해야 하지?

- 마구··· 아니 흰둥이 타기 편하게 조구 만들어야 하고

- 임무 완료 보고하고

- 새 임무 받아야지?

- 내 타임스케쥴도 이렇게 열심히 짜지 않았는데 ㅋㅋ

- 지금 초모 맘들 앞으로 초모가 해야 할 일 정리 중이다. 정모 사진까지 디토에 올라왔더라 ㅋㅋ

끼이익···

다시 가면을 쓰고 모험가 협회에 돌아왔다.

이제는 이오란에서 그의 모습을 모르는 모험가가 드물었다. 문을 연 순간부터 초모의 모습을 알아본 모험가들이 수군거렸다.

“뭐야? 왜 하루 만에 왔어?”

“초입에서 도망친 거겠지. 시간상으로 한 파티가 들어가도 반년은 넘게 걸리는 일이었는데.”

“아니야. 한 달이면 충분해.”

“한달이면 충분하다고?”

“하루 한 마리씩 처치하면 금방이잖아?”

“이론상으론 그렇네? 크큭··· 아무리 봐도 그 임무는 난이도 책정이 잘못됐어. 그게 어딜 봐서 B+야?”

“A부터는 평가 방식이 다르잖아. 그럴 만하지.”

“아무튼, 저놈도 포기했으면 진짜 이제 아무도 갈 사람이 없겠네.”

하루 만에 돌아온 성진을 보고 사람들이 조롱했다. 성진의 곁으로 덩치 큰 기사가 지나가며 성진에게만 들리도록 말했다.

“왜 이리 빨리 오셨나?”

성진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임무 게시판으로 향해 새로 들어온 임무가 있는지 확인할 뿐이었다.

‘마땅한 게 없네.’

슬슬 이오란을 떠야겠다고 생각했다.

아마 다음 시나리오도 랭크를 올리라는 내용일 것 같으니 포인트를 벌기 위해선 그편이 나았다.

게시판에서 몸을 돌려 안내원에게 걸어갔다.

안내원이 빙긋이 웃으며 맞이했다.

“예, 초모님. 너무 상심하지 마세요. 원래 처음에는 감을 잡기 힘들어요. 괜찮아요. 다들 겪는 일이니, 마음 쓰지 않으셔도 돼요.”

주변에서 킥킥대는 소리가 들려왔다.

안내원의 말을 엿들은 사람들이었다.

“그래, 위로해 줘야지. 위로는 깜짝 놀라서 도망친 사람한테 가장 필요하니까.”

“그러게 나서기를 왜 나서? 내가 다 부끄럽네. 애써 파티 플레이하는 사람들 다 바보 만들 것처럼 굴더니 쌤통이다!”

“앞으로 초모는 눈총 좀 받겠군.”

“신성력이 있으니 어디든 들어가긴 할 거야. 근데 솔직히 다들 반기진 않을걸? 아마 성격도 독선적이고 더러울 거야!”

“제 잘난 줄 알았을걸? 낙하산 평가받고 하루아침에 금 등급이 됐으니 제 세상인 줄 알았을 만도 해.”

마지막 말은 꽤 크게 들려 협회에 자리한 사람들 대다수가 들었다. 안내원도 표정이 경직되어 어찌할 바를 모르고 땀을 흘렸다.

“저··· 초모님. 마침 새로 파티를···.”

성진의 굳게 닫혔던 입이 열렸다.

“초모, 데칸 산 임무 완료 보고합니다.”

시끄럽던 협회가 일순간 쥐 죽은 듯 조용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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