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BJ는 종말에 적응했다-98화 (98/222)

# 98

98화

“무엇을 보시나요?”

“그냥, 밤하늘이요.”

“그렇게 보이지 않는걸요?”

마드리오 셀린이 붉은 기가 도는 머리를 매만지는 최별에게 말했다.

피식 웃는 최별은 셀린에게 답했다.

“그냥, 다신 오지 못할 곳이었는데 어째선지 돌아와 있네요.”

“···아직도 믿기 지가 않아요. 50년 전의 사람이 시간을 건너 이곳에 돌아왔다는 게··· 그것도 원탁의 구성원이 말이에요.”

“셀린, 세상은 놀랄 일들이 가득해요. 이 스칸다만 해도 저택을 나서면 온갖 미지가 펼쳐져 있죠.”

셀린이 황홀한 표정을 지었다.

“저도 밖으로 나가보고 싶어요. 어렸을 때는 모험가가 꿈이었어요. 멋들어진 경장을 입고, 제 몸만 한 크기의 활을 들쳐메고 동료와 모험하는 꿈.”

최별은 건조하게 대답했다.

“안타깝게도 모험이 그리 낭만적이지만은 않아요. 벌레에게 물릴 때도 있고, 독초에 베이기라도 하면 하루를 누워있어야 하죠. 식량이 떨어지면 몬스터의 고기를 먹거나 굶는 경우도 많아요.”

“하지만··· 별님은 어떠셨나요?”

“무슨 말이에요?”

“별님은··· 다시 예전으로 돌아가시면 모험가가 되실 건가요? 엄청 유명하신 모험가였다고 들었어요!”

셀린이 눈을 빛내왔다.

최별은 그 눈빛을 잠시 응시하다 대답했다.

“물론, 모험은 어떤 리스크도 감수할 만큼 훌륭했어요. 다시 50년 전으로 돌아간다고 해도 모험가가 됐을 거예요.”

“언젠가··· 저도 이런 귀찮은 신분과 위치에 얽매이지 않고 밖으로 나갈 수 있을까요.”

“반드시 그럴 거예요. 아마 세상이 변할 거니까.”

“그게 무슨···.”

“그런 게 있어요. 셀린, 아마 나는 당분간 힘겨운 싸움을 해야 할 거예요. 당신의 도움은 여기까지인 걸로 하죠.”

“떨어져 있어야 한다는 건가요?”

“나를 싫어하는 사람이 마드리오 가문을 짓누를 수도 있어요. 나는 그게 싫을 것 같아요. 그러니 당분간은 나와 우연히 마주친 게 전부인 사이로 해요. 알았죠?”

“······.”

셀린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녀 자신의 무력감이 싫은 듯 보였다.

최별은 그녀를 이해했다.

최별 자신 또한 그런 무력감을 자주 느꼈으니까.

“셀린, 언젠가 세상을 경험할 거예요. 둥지에서 나와 날개짓을 하는 모습을 그리세요. 분명 그렇게 될 테니까, 그때까지만 참아요. 나는 셀린이 날개를 펼 수 있게 도와줄 테니까.”

“별님이 어떻게요?”

최별이 검지로 위를 가리켰다.

“하늘을 만들어 볼게요. 하다 보면 어떻게든 되겠죠.”

“별님···.”

“그럼, 손님이 온 모양이라. 어쨌든 작별은 오늘 이 인사로 대신하기로 해요.”

똑 똑 똑···

끼익···

“손님이 최별님을 애타게 찾으셔요.”

최별은 셀린과 이야기를 나누던 테라스에서 벗어나 자신을 찾는 손님에게 향했다.

티룸에 앉은 남자는 탁자보다 거대했기에 그가 앉은 의자가 불쌍할 지경이었다.

사내가 고개를 슥 올려 최별의 얼굴을 확인했다.

“그 치렁치렁한 옷은 뭐야?”

“사정이 있어서.”

“사정이라··· 재밌는 말이군요, 선배님.”

“갤러헤드. 비꼬는 것이냐?”

“그럴리가요. 감히 원탁의 정당한 구성원인 최별님에게 어떻게 대들겠습니까?”

쏴아아아아아···

테라스에서 빗소리가 넘어왔다.

천둥치는 소리가 요란했다.

“원탁에 돌아올 생각이라···.”

“그래, 그럴 생각이다.”

최별의 말투는 갤러헤드를 마주한 순간부터 변해있었다. 그녀가 활동했을 당시에는 이런 말투를 사용했었다.

갤러헤드가 슬픈 눈을 했다.

그녀와 보냈던 시간이 떠오른 눈치였다.

“···돌아오지 마, 최별.”

“원탁에서 물러났다고 들었어. 왜 물러난 거지?”

“나이가 들었으니 물러나야지. 이제는 검을 들기도 벅찬걸. 그런데 넌··· 그대로구나. 여전히···.”

갤러헤드는 나이든 노신사였다.

얼굴의 새겨진 나이테는 그가 오래된 사람이라는 걸 보여주었다.

“돌아오지 말라는 건··· 누굴 위한 말이지?”

갤러헤드가 찻잣을 잡고 살포시 들어올려 차를 음미했다.

“모두를. 우리 모두를 위한 말이야. 너 하나 돌아온다고 원탁이 흔들릴 것 같아? 아니, 넌 뭘 하려는 거야?”

“언제부터 내가 하는 일에 의문을 품었을까? 난 그냥 갑자기 돌아온 거야. 뭘 흔들고 말고 할 게···.”

“흔들 거잖아. 너라면.”

나이든 노인과 손녀가 대화하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둘은 전우였었다.

최별이 답했다.

“응. 흔들 거야. 난 이런 원탁을 예전부터 싫어했으니까.”

“그들은 막을 거야. 원탁을 부여잡고 떨어지지 않으려 하겠지.”

“그럼 흔들어서 떨어트릴 거야. 어떻게든 말이야.”

“여전히 난폭하고 무모하고 종잡을 수 없네.”

“넌 여전히 고리타분하고 염려하고 걱정하는구나. 예전에는 애늙은이 같다고 생각했는데, 지금 늙은이가 된 걸 보니까 그런대로 잘 어울리는 것 같아.”

“칭찬 아니지?”

“응, 아니지.”

여전히 비가 오고 있다.

마주하는 눈빛은 50년 전이라면 뜨겁다 했겠지만, 지금에 와서는 다 타고 남은 재를 보는 것 같았다.

갤러헤드가 한숨을 쉬고 말했다.

“돌아와서 환영한다. 하지만 원탁은 너를 반기지 않을 거야.”

“언제는 반겼나?”

“그리고 갤러헤드란 이름은 이미 후손에게 넘겼어. 나는 이제 뒷방 늙은이야.”

“그래 보여. 네 서임식도 내가 해줬는데 말이야. 시간 참 빨라.”

“네가 내 면상을 얼마나 세게 팼으면 아직도 코가 비뚤어진 상태인 것 같아. 비만 오면 아픈 것 같기도 하고···.”

“그때는 완전 애송이였는데··· 애 티는 벗었네.”

“애 티만 벗었겠어? 토끼 같은 자식들도 낳고 잘 살고 있었지. 네가 돌아오기 전까진.”

“그래, 인생에 시련이 없으면 되겠나. 받아들여.”

“그럴 생각이야.”

갤러헤드는 최별을 아련하게 쳐다보다 다시 묵직한 기세로 돌아왔다.

“뭐부터 할 생각이야?”

“일단은··· 내것들을 되찾아 와야지.”

“힘? 권력? 사람?”

“모두. 모두 다 말이야.”

“욕심이 많네, 여전히. 조금 신중할 필요가 있겠어.”

“걱정이 많네, 여전히. 서임식 때 아예 관에 집어넣었어야 했는데.”

최별과 갤러헤드가 씨익 웃었다.

그가 물었다.

“돌아온 소감은?”

“글쎄··· 기쁘네, 아직은.”

최별이 손을 오므렸다 폈다 했다.

화르륵···

불꽃이 피어났다 빠르게 사라졌다.

그녀의 힘도 송하린과 마찬가지로 돌아오고 있었다.

스칸다를 떠나며 잃었던 힘이.

“너를 싫어하는 사람들은 울상이겠네.”

“너는?”

“나는 웃고 있잖아?”

“됐고, 얼마 전에 이상한 소문을 들었는데.”

“그 모험가? 초모라는 놈 말하는 거야?”

“그래, 그분.”

“아마 데칸 산 일을 말하는 거겠네.”

****

‘온다, 온다고요, 이꾸요잇!’님이 1,000원 후원하셨습니다!

[스노윙 치킨이 날아오고 있어요! 얼른!]

성진은 기세를 차분하게 가라앉히고 쵸코의 지시에 따랐다. 쵸코는 그런 성진에게 동작을 일러주었다.

「3번 동작! 오라이 오라이!」

성진의 양손이 앞으로 향했다가 위로 반쯤 굽혔다 펴는 걸 반복했다. 후방 주차하는 차량의 뒤를 봐주는 동작과 흡사한 동작이었다.

후우웅···

구우우··· 구우우우···

소리가 점점 가까워지고 있었다.

성진의 동작을 본 그리핀 무리의 대형이 바뀌었다. 화살촉처럼 순혈 그리핀을 앞세우고 날아오던 그리핀의 무리가 순혈 그리핀을 제외하고 양방향으로 퍼져서 날아왔다.

「본 것 같네요. 다음은 아래 부채 휘적휘적!」

양팔을 밑으로 뚝 떨어트린 다음, 어깨높이까지 좌우로 빠르게 흔드는 동작이다.

붕- 붕-

성진이 무표정한 얼굴로 휘적거리자, 쵸코가 다급하게 메시지를 보내왔다.

「뭐 하시는 거예요! 더 빨리! 그리고 웃어야죠! 이 모든 게 교감이라는 거 잊으셨나요? 일처럼 하실 거예요?」

- 본 조교 나쁜 사람 아닙니드악!

- 여러분들의 행동으로 본 조교, 천사가 될지 악마가 될지 정해집니다, 아셨습니끄악!

성진이 어설프게 웃으며 빠르게 팔을 놀렸다.

무지막지한 속도로 팔을 흔드는 모습이 기괴했다.

- 엄마! 무서워요! 저게 모야 ㅠㅠ

- ㅋㅋㅋ 웃으면 ㅋㅋ 안대 ㅋㅋ

- 여러분! 놀랍게도 진지한 장면입니다!

- 사탄의 인형이다!

후우웅··· 후웅···

순백색의 그리핀이 성진의 앞에 내려섰다.

다른 그리핀들도 하나둘 성진의 근처로 내려와 자리 잡았다. 성진이 주위를 둘러보았다. 발 디딜 틈 없다고 느낄 정도로 공간을 가득 채운 그리핀들.

‘잘못 하면 어렵겠는데···.’

죽진 않겠지만, 앞으로의 양상에 따라 큰 싸움이 일어날 수도 있었다.

- 와 순혈 그리핀 위엄 보소 ㄷㄷ

- 순백색 그리핀 처음 봤는데 ㄹㅇ 간지 넘쳐 흐른다···

- ???: 반갑다 소년! 나는 폭풍 간지라고 한다!

구우우! 구우우!

그리핀들이 하늘을 향해 목 놓아 울고 있었다. 순혈 그리핀은 가만히 서서 성진을 내려 보고 있었고.

「이제부터가 중요해요! 상대가 대화에 응했으니, 설득해야 해요! 다음은 빙글빙글 동작!」

양손을 마주 보게 하고 빙글빙글 회전시켰다.

「더 빨리!」

부우우우웅-!

마치 모터가 돌아가는 것처럼 엄청난 속도로 팔을 휘저었다.

「박수를 섞어요!」

부우웅··· 짝!

부우웅··· 짝!

- 포크 댄스냐 ㅋㅋㅋ

- 이거 쵸코가 초모 놀리는 거 맞죠?

- ㅔ 당연하져;

- 아냐 근데 둘 다 진지하잖아;

- ㅋㅋㅋㅋ 레전드 클립 나왔다!

「미소!」

성진이 어설프게 미소지었다.

- ㅋㅋㅋㅋㅋㅋ 미소오오!

- 무, 무서워···

- 야토 준지: 새 공포 만화의 주제가 떠올랐다

「자··· 이제 만세 동작!」

아까 아래 부채 동작을 반대로 한 동작이다. 성진이 만세를 한 상태로 좌우로 번갈아 팔을 구부렸다.

순혈 그리핀이 성진을 계속 보고 있었다. 기분 탓인지 아까보다 표정이 굳은 것처럼 느껴졌다.

- 그리핀의 감정: 경멸(90%) 역함(10%)

- 그리핀: 뭐지 이 색기는?

- 올빼미: 잘못하면··· 잡아먹히겠어. 죽여버리겠다 쵸코!

- 어째 상황이 더 심각해지는데요?

그때, 그리핀들이 목놓아 울기 시작했다.

구아악! 구으아악!

- 헐; 엿된 거 아니야?

- 17:1 찍어야 하나?

- 제 1차 조류 대전 발발 직전 ㄷㄷ

「됐어요! 이제 할 건 다 했어요. 상대가 교감을 원하면 접근할 거고, 아니라면··· 달리기 잘하시죠?」

쵸코의 말대로였다.

순백의 그리핀이 가까이 다가오기 시작했다.

「겁먹은 기색을 보이면 안 돼요! 당당하게!」

성진이 동작을 멈추고 가만히 쳐다보고 있자, 그리핀은 부리로 성진의 몸을 쓰다듬었다.

이질적인 물체가 몸을 쓰다듬으니 성진도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그리핀은 점점 대담해지더니 아예 목 근처로 성진의 몸을 쓰다듬었다. 성진이 적의를 품고 노린다면 치명상을 입을 게 분명한데도, 거침없이 다가왔다.

몸 안에 잠재된 라이프 펄스가 요동치는 것을 느꼈다. 신성력에 친화력이 있다더니 그리핀의 마력과 라이프 펄스가 서로 감응하는 듯했다.

턱-!

‘어?’

창졸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순백의 그리핀이 성진의 옷 뒷덜미를 부리로 낚아채 성진을 자신의 등에 태웠다.

성진은 그리핀의 행동에서 살기가 느껴지지 않았기에 대응하지 않았다.

「시작됐어요! 교감 비행이에요! 여기가 제일 중요해요! 목 언저리에 잡을만한 깃털이 보일 거예요! 자세 잘 잡으세요, 떨어지니까!」

그리핀이 절벽으로 내달렸다.

타닥··· 타다닥···

후웅··· 후우웅···

날갯짓 소리가 요란스럽다. 뒤쪽에 자리 잡고 있던 그리핀들도 하나둘 날갯짓을 시작했다.

절벽의 끝에 도달한 순백의 그리핀은 마침내 날아올랐다.

후아아앙···

「정신 차리세요! 겁먹지 마세요!」

산의 정기가 그대로 부딪혀 오는 것 같았다. 아찔한 경치가 눈을 어지럽혔다.

쒜에엑···

그리핀이 아래를 향해 비행했다. 위에서 내려다본 데칸 산은 정말 거대했다. 봉우리마다 옹기종기 모여 있는 그리핀들이 있었다.

뒤를 돌아보니, 아까 성진을 에워쌌던 그리핀들이 뒤따라 오고 있었다. 일단 한고비는 넘긴 것 같다.

“이제 어떻게 해야 합니까?”

「아무것도요. 비행을 즐기면 그뿐입니다.」

후아아아앙···

맞부딪혀 오는 바람이 거셌다.

머리칼이 뒤로 젖혀졌다.

‘비행···.’

교감 비행은 단시간에 끝나지 않았다. 순백의 그리핀은 뭐가 그리 좋은지 연신 거친 울음소리를 내며 창공을 날았다.

정신없는 교감 비행의 와중, 그리핀이 데칸 산 협곡으로 방향을 틀었다. 마주 보고 있는 절벽의 밑으로 강이 흐르고 있었다.

힘찬 생명의 약동.

저공으로 비행하는 그리핀의 발이 물살을 갈랐다. 속도는 아까와 비교했을 때 느려진 게, 여유를 부리는 것처럼 보였다.

협곡의 틈새로 노을이 존재감을 드러냈다.

강은 그 노을을 완벽하게 담아냈다.

“좋네요···.”

무심코 입 밖으로 나온 말이다.

줄곧 달려왔다.

삶은 줄곧 그에게 고난을 선사했다. 불행했던 유년기. 성인이 된 이후에도 계속해서 터진 사건 사고들.

그의 의도와는 달리 세상은 늘 그를 괴롭혀왔다. 성진은 부정적인 말을 입에 담지 않으려 했지만, 가끔 힘들 때가 있었다.

그가 무의식적으로 입을 열었을 때는 분명 좋지 않은 원망과 세상을 향한 반발이 쏟아져 나오리라고 생각했다.

그렇기에 지금 성진의 입 밖으로 튀어나온 말에 가장 놀란 것은 성진 자신이었다.

‘좋다고?’

게임은 그를 힘들게 했다.

몸이 불편한 상황에서 하는 게임이다.

부자유한 상황에서 꿈꾸는 자유만큼 허망한 게 있을까. 또 게임이 어두운 세상을 그렸으니 밝은 생각을 하는 게 어려웠다.

분명 방금까지는 그랬다.

「손을 잠시 놓아보실래요?」

쵸코의 말을 듣고 그리핀을 붙잡았던 손을 놓았다.

자신도 모르게 양팔을 벌려 바람을 만끽했다.

그리핀이 자연스럽게 속도를 늦춰주었다.

「바람을 느끼세요. 어때요?」

흐르는 별의 세계 스칸다.

성진은 어째서 이 세계를 사람들이 그토록 좋아했는지 알 것 같았다. 벅차오르는 감정을 추스르기 힘들었다.

「우리가 반드시 이 세계를 거머쥘 수 있게 해드릴게요.」

성진이 눈을 감고 협곡을 지나쳤다. 그대로 잠에 빠져도 이상하지 않았던 평온함이었다.

협곡을 빠져나오고 눈을 뜨니 데칸 산의 정상이었다.

가빠진 숨과 새어 나오는 입김이 고도가 높아졌다는 걸 상징적으로 보여주었다.

그렇게 교감 비행이 끝이 났다.

구우우···

성진을 내려놓은 그리핀이 기분 좋게 울어댔다.

이제는 울음소리에 담긴 감정을 알 것 같았다.

[교감 비행을 끝마쳤습니다.]

[그리핀이 당신에게 종속됩니다.]

[종속수와 간단한 의사소통이 가능합니다.]

[고결함이 10 상승합니다.]

[고결함 : 15]

구우우···

순백의 그리핀이 성진에게 고개를 숙여왔다.

노을빛에 물든 그 모습은 무척이나 눈부셨다.

“그런데··· 이제 어쩌죠?”

「······.」

“쵸코님?”

「그게···.」

“네, 순혈과 교감 비행까지 마쳤는데 이제 어쩌면 되는 건가요?”

「저는 여기까지밖에 모르는데요? 그리핀 이름 생각하고 있었는데···.」

“······.”

- ㅋㅋㅋㅋ 굉장히 미시적인 조련사구만!

- 초모! 기다려요! 지금 어떻게 할지 사람들끼리 토의하고 있어요!

- 좀 걸릴 것 같은데 교감 비행이나 한 번 더 하고 오실래요?

애초에 목적은 그리핀을 데칸 산에서 치우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대가 타놀드를 만나야 했고.

어차피 자신이 알지 못하는 부분이니, 시청자들이 이야기를 나누게 두고 결론이 나면 그때 행동하기로 했다.

그리핀을 쓰다듬으며 다른 생각을 했다.

‘이름··· 이름이라···.’

신아름이 키웠던 강아지가 있었다.

분명 이름이 있었는데 기억이 잘 떠오르지 않는다.

‘나중에 묻고 그 이름으로 하자.’

이름이야 급한 게 아니었으니 나중에 정하기로 했다.

잠시 후, 채팅창에 기다리던 채팅이 올라왔다.

- 결론 났습니다! 이제 심사만 봐주시면 될 것 같아요~

- 엄마들 지금 엄청 싸우다가 극적 타결 ㄷㄷ

- 쪽지 보냈으니 그거 보고 결정해주세요!

커뮤니티를 열어 내용을 확인했다.

[제목: 그리핀의 구제 방법]

방금 여러 오픈 톡방과 단체장들의 의견을 모아보았습니다. 얼토당토않은 내용은 엉덩이를 걷어차 돌려보냈으니 이 중 무엇을 택해도 최악의 선택은 아닐 겁니다.

1. 대규모 이주 계획을 잡는다. 하지만 이건 시간도 오래 걸리고 인적, 물적 자원이 한도 끝도 없이 들어갈 것으로 예상이 됩니다. 따로 이득을 얻을 부분도 많지 않고요. 지금이야 순혈을 따르고 있지만, 그게 언제까지고 그리핀들의 행동을 강제할 수 있는 건 아니라서요.

2. 날아가! 너 때문에 되는 일이 하나도 없어 방법! 일명 2% 부족한 방법입니다. 순혈과 함께 거주지를 스스로 옮기도록 하는 방법인데요, 문제점이 있습니다. 데칸 산이 멀쩡해지더라도 이주하고 난 이후에 또 임무가 생길지 모릅니다. 새로 이주한 장소에 문제가 생겼다면서. 사실상 카드 돌려막기나 다를 게 없겠죠?

3. 이건 솔직히 믿기는 좀 힘든데··· 워낙 많은 정보가 모이다 보니 별 그지 같은 놈들도 꼬이고 트랩 성 정보도 모입니다. 근데 그 그지 같은 놈이랑 트랩 성 정보 중에서 옥석을 가려내는 게 우리 초모 맘들이 해야 할 일이겠죠! 아무튼, 세 번째는 거인의 들판에 사는··· 뭐였더라? 하여튼 거인한테 돌려보내는 방법이랍니다. 이상하죠?

성진은 무엇 하나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세 번째 제안은 도통 무슨 소린지 알 수 없었기에 물었다.

“세 번째 방법은 무슨 말이죠?”

‘제방법입니다.’님이 1,000원 후원하셨습니다!

[자세히 설명해 드릴까요?]

- 뉘신가?

- 귀신이면 물러가고 고수면 정보를 토해내라!

- 유적 전문 모험가에요. 닉네임 ‘돈들어손내놔’입니다.

- 헐? 유적 살인마?

- 유적 사냥개다!

- 유적 패티쉬!

- 유적이랑 결혼한 사람! 하루라도 유적을 파헤치지 않으면 입안에 가시가 돋는 사람!

‘죄송하지만’님이 3,000원 후원하셨습니다!

[제 소문이 어떻게 나 있는 거죠?]

- 변태

- 척척박사. 근데 변태

- 모험가 중에서 손에 꼽을 정도로 박식한 사람. 근데 변태.

- 변태 새끼.

- 야 ㅅㅂ 말 안해

“손내놔님. 자세히 설명 부탁드립니다.”

- 아, 그건 말이죠··· 쪽지로 보내겠습니다!

- 바로 말하는 거 보소 ㅋㅋ

- 몸은 솔직하구나!

삐익···

쪽지가 왔다.

[제목: 이것은 실제로 일어난 사건입니다.]

아무한테도 말하지 않은 거지만, 스칸다에 사는 야수들은 고향이 있어요. 거인의 들판이라고 하는 곳인데 어디 있는지는 아무도 모르죠. 존재조차 모르던 곳인데, 어떤 유적에 갔다가 신비한 문구를 발견했었어요.

‘거인의 들판으로 가라. 가서 내가 보냈다고 하거라.’

특이한 문구라 기억에 남았는데, 그때 이후로 밝혀진 내용은 코끼리들이 죽을 때 코끼리 무덤으로 이동하듯이 스칸다의 맹수들도 그렇게 한다는 거예요.

목동 거인들이 그 맹수들을 돌본다고 했나? 아무튼, A급 이하의 몬스터들은 대부분 해당할 거예요.

또 재밌는 점은, 그 목동들이 선물을 보내온다는 겁니다. 보낸 맹수에 따라 선물 주머니를 보내와요. 신기하죠?

- 와; 실화? 구라 아님?

- 구라라기엔 디테일이 좀 첨가되어 있는데 킁킁

- 선물 주머니는 뭐 들은 거지?

- 보내온 맹수에 따라서 달라요. 그래도 쉽게 볼 수 없는 것들이 대다수였어요.

- 왜 여태 말 안 했었음?

- 말해야 할 의무가 있었나요? 나는 국방의 의무랑 납세의 의무는 알아도 그런 건 모르는데···

“모든 야수에게 통하는 겁니까?”

- 아뇨, 적대적이지 않아야 해요. 사실 이 조건만으로도 대부분 걸러져요. 또, 중형 이상의 맹수여야 할 것. 곤충은 해당 안 됨. 또 종속수는 해당 안 됨

- 에이 뭐야; 진짜 애매하네 ㅋㅋ

내친김에 시험해 보기로 했다.

성진이 순혈 그리핀과 교감해 정상으로 그리핀들을 불러 모았다. 예상한 대로 그리핀은 수십 마리가 넘었다.

구우우··· 구우우···

이 방법이 통하지 않는다면 다시 머리가 아플 것이다.

성진의 숨을 크게 들이쉬고 얘기했다.

“거인의 들판으로 가라. 가서 내가 보냈다고 하거라.”

구우우···

그리핀들의 눈이 스르륵 풀렸다.

성진의 말을 들은 그리핀들이 뒤로 돌아 둥지로 날아갔다. 그리고 발톱으로 알이나 새끼를 움켜쥐고 떠났다.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어안이 벙벙해진 성진은 고개를 돌려 순혈 그리핀을 바라보았다.

구우우···

순혈 그리핀은 당연한 일을 보는 듯 아무렇지 않은 기색이었다.

- 이게 뭐야?

- 이렇게 간단히 처리할 수 있었다고?

- 손내놔 ㅅㅂ 여태 이걸로 재산 불렸냐?

‘돈들어손내놔’님이 1,000원 후원하셨습니다!

[여러분 분노하지 마십시오. 자세히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 청문회 엽니다. 다들 모여요! 이 새끼 두들겨 팹시다!

- 질문에 답하십시오, 돈들어손내놔! 이 방법을 통해 재산을 얼마나 불렸죠?

- 껌 사 먹을 돈 정도 불렸습니다. 특수한 상황에서만 쓸 수 있었기에 잊고 지냈습니다. 저는 유적 탐험가라니까요?

- 웃기지 마십시오!

- 웃겼나요?

- 아뇨, 청문회 끝. 피고는 무죄입니다.

- 뭐가 이렇게 개판이야 ㅋㅋ 어쨌든 해결된 거네?

- 간-단!

신기한 일이었다.

그 많던 그리핀들이 순식간에 둥지와 함께 사라졌다.

만일 이 방법을 몰랐다면 몇 개월이고 늘어질 수 있던 임무였고, 난이도도 치솟았을 것이다.

그걸 방금 말 한마디로 해치운 것.

- 비적대적 중대형 야수. 진짜 하나도 안 떠오른다ㅋㅋ

- 말했잖아요. 특수한 상황에서만 작동한다고. 저도 딱 한 번만 성공했어요.

- 뭐 받았음?

- 선물 보따리 받긴 받았는데, 소재였었나? 기억이 안 남. 보낸 야수도 등급이 낮아서 별로 좋은 건 안 주던···

어찌 됐든 그리핀의 문제가 해결됐으니, 다른 문제를 해결할 차례. 성진은 이제 무슨 일을 해결하기 전에 시청자들에게 정보를 얻었다.

“대가 타놀드를 찾아야 할 텐데, 어떻게 할까요?”

성진의 물음에 신이 난 시청자들이 다시 바빠졌다.

- 여기 난쟁이 전문가 손이요!

- 나는 난쟁이와 소통하기 위해 키가 160이 넘지 않았다!

- 그건 슬프잖아

- 아무튼! 문화 인류학자 없는가?

‘백설공주와일곱드워프’님이 1,000원 후원하셨습니다!

[쪽지 보냈습니다. 받아주세요.]

‘드워프가쏘아올린작은공’님이 5,000원 후원하셨습니다!

[쟤 뭣도 모를 겁니다. 읽어 보시면 제 보고서가 더 그럴듯할 겁니다.]

‘백설공주와일곱드워프’님이 10,000원 후원하셨습니다!

[쟤 제가 알기로 키 180cm 넘습니다. 기만하는 거예요. 지가 난쟁이에 대해 뭘 안다고 ㅋㅋ]

- ㅎㄷㄷ 문화부 장관 자리를 둘러싸고 첨예한 대립

- 엄마: 제 아이에욧!

- 솔로몬: 그럼 초모를 반으로 갈라 보자꾸나

채팅창으로도 훈수가 쏟아져 머리가 아팠다. 커뮤니티를 확인하자 아까 보았던 닉네임이 눈에 띄었다.

[제목: 난쟁이 문화에 정통합니다. 믿어주세요.]

난쟁이! 아, 스칸다에 사는 아주 맹랑한 녀석들이죠. 하지만 걱정하지 마십쇼. 제가 있습니다. 이 늙은 생강들은 제 손바닥 안에 있습니다.

이번 만남에서 중요한 점들을 빠르게 정리해 보겠습니다.

1. 집들이 선물. 난쟁이들은 선물을 주고 받는 걸 싫어합니다. 은혜와 원수를 철저히 하는 그들의 특성상 괜히 머리 아프기 싫어서입니다. 따라서 빈손으로 가도 됩니다.

2. 키 얘기. 긍지 높은 난쟁이들은 아니겠지만, 대체적으로 키 얘기를 싫어합니다. 뚱땡이 보고 너 뚱땡이야 라고 하면 싸우자는 거잖아요?

3. 웃음 소리. 경박한 웃음 소리를 싫어합니다. 굳이 따지자면 호탕한 웃음을 좋아해 상대방의 호감을 끌어내기 좋습니다.

4. 술! 알파이자 오메가인 술입니다! 일단 가서 술을 잘 마시는 척 하세요. 그렇다고 삼겹살에 소주 말고 무조건 맥주! 소시지랑 맥주를 좋아한다고 하세요!

5. 난쟁이는 야성적인 남자를 좋아합니다. 그걸 어필하세요.

6. 거처는 아마도 집의 형태는 아닐 겁니다. 동굴을 개조해 그럴듯하게 만들어 뒀겠죠. 흰둥이를 타고 산을 뒤지면 곧 발견할 수 있을 겁니다.

총 15가지의 내용을 담은 장문의 편지였다.

- 와; 정성추

- 님 난쟁이? 논문감인데;

- 이 정도만 알아도 어디가서 난쟁이라고 해도 되겠다 ㅋㅋ

성진은 서둘러 밤이 되기 전에 수색을 시작했다.

어느새 어둑한 하늘이 되었지만, 아직 빛이 남아 있었기에 수색을 멈추지 않았다.

「저기! 저기에 있을 확률이 높습니다!」

일곱 드워프가 말한 곳은 확실히 의심스러웠다. 나무로 가리워진 동굴 입구. 성진은 그리핀과 교감해 그곳에 내려섰다.

‘여기다.’

직감도 그랬거니와, 동굴 안으로 조금 들어가자 나무 문이 나왔다.

「제가 시키는 대로 하세요. 일단 문을 두들기세요.」

문고리를 잡아 문에 두들겼다.

반응이 없길래 다시 한 번 두들기려는 순간, 인기척이 들렸다. 아장아장 걷는 듯한 기척. 난쟁이가 맞다.

「역시 난쟁이들은 내 손바닥에 있지!」

- 오오! 역시!

- 쥐애애앤장! 믿고 있었다고!

끼이익···

문을 열고 나온 건 험상궂은 난쟁이였다. 그는 수염이 상반신을 전부 가릴 만큼 자라있었다.

「자! 이때 대사! 크하하하! 지나가는 모험가인데 맥주 한 잔 얻어 마실 수 있습니까?」

성진은 연극 톤으로 똑같이 따라했다.

“···크하하하! 지나가는 모험가인데 맥주 한 잔 얻어 마실 수 있습니까?”

성진이 얼굴을 붉힐 만큼 쑥스러운 대사였는데, 상대의 반응이 묘했다.

고개를 갸웃한 난쟁이가 대답했다.

“나는 술을 마시지 않네. 맥주도 집에 없고.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계속 지나갔으면 좋겠군. 무례한 손님은 사절이라.”

쾅-!

문이 닫혔다.

당황스러운 상황에 다이렉트 메시지를 확인했는데, ‘백설공주와일곱드워프’와의 연결이 끊겨있었다.

- 시마타! 당했다!

- 어쩐지 수상했엌ㅋㅋㅋㅋ

- 어떡햌ㅋㅋㅋ 난쟁이 화만 돋궜는뎈ㅋㅋ

- 끌어내! 빨리 초모 맘 블랙 리스트 명단에 올려!

성진이 잠시 멍하니 어떻게 해야 할까 고민하는 와중에 커뮤니티 알림음이 울렸다.

삐익···

[제목: 어쩔 수 없네요. 제가 말하는 대로 하세요.]

산의 심장은 아직도 뛰는가? 얼른 말하세요. 쟤네 일찍 자요.

누군가 상황을 보고 나선 것 같았다. 쪽지를 보내온 사람의 모험가 등급도 높았고, 지금 상황에서는 밑져야 본전이었기에 서둘러 문을 두드렸다.

쾅! 쾅!

안에서 난쟁이가 큰 소리로 화를 냈다.

“정말이지 해보자는 건가? 밤에 찾아온 것도 모자라서···.”

“산의 심장은 아직도 뛰는가?”

성진의 말에 난쟁이는 말을 잇지 못했다.

‘이것도 아니면 그냥 내 방식대로 나가야겠어.’

상대의 반응을 기다리던 성진은 안도했다.

문이 열렸다.

끼이익···

“당신 누구야? 누가 보낸 거지?”

「산왕의 빚을 받으러 왔다.」

“산왕의 빚을 받으러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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