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6
96화
성진이 엘리움을 어떻게 쓸지 골머리가 썩고 있을 때, 디스토피아에 모인 사람들이 오늘의 사태를 주제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제목: 소매넣기 개 빠겠네 ㅋㅋ 빤쓰좌 리얼]
개 도둑놈이었누. 소도둑 뺨 두 대 때리고 승룡권까지 날렸네. 사자의심장이 엘리움 박박 긁어모아서 길드 위상 하늘까지 치솟았다가 도둑맞아서 성국한테 추격당했잖아
- 개 추억이다 ㅋㅋ 거기 블랙리스트에 길마 이름까지 올라갔잖아. 막 사과문 올리는데 왜 훔쳐간 거 인정 안 하냐고 인신공격까지 하고
- 근데 거기 길마도 인성 문제 몇 번 터졌었음. 길드 등에 업고 위세 부리다가 엘리움 도둑맞고 천하의 개쌍놈으로 추락했지만ㅋㅋㅋ
- 송하린 패거리가 빤쓰 말고 누구 있었지? 오랜만이라 흐릿하다?
- 일정하지 않았을걸? 그냥 자주 같이 다니던 애들이랑 멤버 몇 번씩 바뀌었음. 근데 하나 같이 이름 대면 아 ㅆㅂ 저 새끼! 할 놈들임 ㅋㅋ
- 송하린도 솔직히 종말 와서 이미지 세탁 많이 했지. 동대륙에서 송하린 모르는 사람이 없었으니까
[제목: 할부지 할무니들! 예잇날 얘기 좀 해주뗴요]
왜 니들만 알고 나는 얘기 안 해죠요. 송하린이 뭐? 최별이 뭐? 나 그때 개 쩌렙이라 게시판도 안 들여다봤는데···
- 허허, 내 새끼. 다음 할아버지가 얘기해 줄 테니 입 닫고 잘 들으렴
- 옛날 옛적에 이성(二星), 삼황(三皇), 오제(五帝) 그 밖에 왕이라고 불리는 잡것들이 있었느니라.
- 옛날얘기 끝. 어때 잘 들었느냐?
- 아니 뭔데, 왜 프롤로그만 얘기해주는 건데 이 새끼들아?
- 결제해서 봐 으딜 ㅋㅋ 암튼 스칸다 얘기는 각색해서 웹툰으로 나온 것도 좀 있을 거임
- 근데 그것도 딱히 볼만하진 ㅋㅋ 송하린 대마두로 묘사됨 ㅋㅋ
[제목: 아 근데 골치다 골치. 엘리움 저거 어쩌냐?]
주괴 상태로 돌아다니면 성국이 노리는 거 아니냐?
글고 저거로 뭐 만들려고 해도 금 등급 모험가가 손댈만한 게 아니잖아?
- 정리 빌런이다. 내가 정리 좀 해줄까?
- 오 정리짜응! 믿고 있었다고!
- 기다려 봐. 방 정리 좀 하고 올게.
- ㅅㅂ
- 그럼 위키 볼래?
- 기다릴게. 위키는 쫌···
[제목: 정리해달라는 꼬마 있어서 정리해주도록 하겠다]
엘리움은 스칸다에 추락한 별의 파편이다. 즉, 운석이라는 얘기. 엘리움에··· 아 귀찮다. 위키 볼래?
아니다, 정리해줌. 엘리움의 특징 5가지.
1. 비주기적으로 추락하는 엘리움의 파편. 하지만 동시대에 엘리움은 일정량 이상 존재할 수 없다. 그 때문에 희소성은 극한이지.
2. 능력이 미지수다. 들성도 한동안 저거 모으려고 하다가 그대로 기둥뿌리 뽑혀서 사제회에서 방출될까 봐 포기했다. 가격이 정해지지도 않은 명품인데 간지만 나고 쓰레기면 망하잖아?
3. 성국이 노리는 물건이다. 이건 관련된 재밌는 일화가 있는데, 성국에는 원래 신성 유물이라는 게 있었음. 신물(神物)이라고도 하지.
뭐였더라? 법봉이었나? 기억은 안 나는데 그게 어느 순간 사라졌다. 그것도 엘리움으로 만든 물건이었는데 신물이 사라졌으니 당연 사제회가 난리 났었지.
국격이 엄청나게 떨어지니까. 그래서 엘리움 주괴를 다시 끌어모으려고 했는데 사자의 심장이 먼저 선수 친 거지. 아마 내가 기억하기로는 둘 사이에 딜이 오가다가 사심이 그걸 잃어버려서 사제회 극대노 ㅇㅋ?
4. 가공해야 하는데, 내가 알기로는 유저 중에 저거 가공할 수 있는 사람 없었음. 난쟁이 중에서도 극히 소수만 저거 만질 수 있었던 거로 기억. 전대의 신물도 그렇게 만들어졌다고 전해짐.
5. 방 정리가 덜 끝나서 정리하러 간다. 5는 위키 봐라 씹새들아
- 형님! 머리에 쏙쏙 들어옵니다! 절 받으십쇼!
- 2는 좀 의문이다. 진짜 간지만 나면 쓰레긴데 ㅋㅋ
- 와 님 왜케 잘 알아요? 님 혹시 엘리움?
- 3-4번 근데 거의 추정 아니냐? 오피셜 없어여?
- 그거 내가 말해줄게용 3번은 내가 앎
- 님이 어케 앎?
- 내가 빤쓰니까
- 니가 왜 여기서 나와?
[제목: 빤쓰가 알려주는 전래동화]
어린이 여러분, 방가와요. 동남아에 나와 있는 빤쓰까지다벗겨요에요~ 옛날이야기를 궁금해하는 어린이들이 있기 때문에 친절하게 설명해줄게요~ 정리빌런인지 정총무인지 저 친구가 잘 말해줬는데, 저기서 빠진 부분을 채워 넣겠어요~
1. 성국의 전대 신물 환희의 집행봉. 이게 사라져서 사제회가 난리쳤다고 했지? 이게 어딜 갔냐면··· 내가 뽀렸다. 잘 보면 엘리움 주괴의 양이 사심이 모았던 것보다 좀 많죠? 제가 법봉 훔쳐서 녹였어요 헤헤
2. 실제로 사제회와 사심 사이에 거래가 오고간 건 맞아요. 아마 내가 알기로 엘리움 넘기면 사제회가 원탁의 일축으로 밀어주기로 했었나? 였을 거임. 하지만! 어림도 없지! ㅋㅋ 바로 빤쓰까지 다 벗겼죠?
3. 한국인은 3을 좋아하니 3을 쓰긴 했는데 똥 마렵다. 나머진 똥 싸면서 질답해줄게요~
- 와아아아! 빤쓰좌 팬이에요! 모래반지 킹야킹야!
- ㄴ 어쩌라고
- 그럼 전부 님 때문에 일어난 일이에요?
- ㄴ 저는 하수인일 뿐입니다. 이거 다 송하린이 시킨 거예요
- 송하린이 법봉을 왜 뽀려?
- ㄴ 그때 송하린이랑 내기했거든요 뽀리는지 못 뽀리는지ㅋ 제가 이겼음
- 미친 ㅋㅋ 또라이들 아니야. 그럼 금화 놈은 괜히 피해본 거 아님?
- ㄴ 그건 또 아님. 금화 놈은 스칸다의 분탕충. 스칸다 우주 경찰인 우리는 그의 분탕질을 참을 수 없었기에 혼을 낸 것이다.
- 구라치지 마라
- 헤헤 사실 지나가다 훔침. 그러게 누가 자랑하고 다니래? ㅉㅉ
- ‘지나가던’의 나라 ㅋㅋ 훔칠 때 무슨 생각 했음?
- ‘싸늘하다··· 가슴에 비수가 날아와 꽂힌다···’ 같은 생각?
- 쓸데없이 비장하잖아 ㅋㅋ
- 예림이 그 그 주괴 까봐! 에, 엘리움이야?
[제목: 빤쓰좌 퇴장하시고, 저거 그래서 어떻게 써야 하는데?]
누구 난쟁이랑 친분 있던 사람 있냐? 그리고 저거 뭐 만들어 먹을라고 해도 돈도 없잖아?
- 저런 거 가공하려면 돈 안겨줘도 소용없음. 대가 급 정도만 가공할 수 있을걸? 돈이 뭔 소용이야.
- ㅎㅎ 나는 이 사태를 해결할 방법을 알지렁~
- 엥? 뭔데 말해!
- 일단 님들, 그것보다 재밌는 생각이 났음. 내 생각 들어볼래?
- 아니
- 넌 꺼져
- 장난이야 말해봥~
- 오랜만에 스칸다 하는 기분이라 재밌는데 말이야··· 어제 빤쓰좌 보면서 이런 생각이 들더라고.
- 뭐?
- 너와 나··· 아니, 넌 금 등급 미만일 테니 너 빼고 우리. 우리끼리 올빼미를 도우면 어떨까? 다들 정보 교류하면서 빌드업 짜주는 거지 ㅋㅋ 올빼미가 교황이 되게
- 미친 ㅋㅋ 그딴 미친 생각이 ㅡㅡ 당장 하자! ㅋㅋㅋ
- 야야아아아ㅏㅏㅏ 개 재밌겠다ㅋㅋ 월급 루팡 하면서 나도 해야지
- 조건은 금 등급 이상 모험가. 혹은 임무를 포함한 스칸다 극복에 단서가 있는 사람들. 또는 특출나거나 특이한 놈들. 다 모여라!
- 손
- 손손! 나 특이하게 생김
- 손X3
- ㅇㅋ 톡부터 팜
개별적으로 이루어지던 성진을 향한 도움의 손길이 규모가 커지고 있었다.
이날을 기점으로 ‘석유왕의 육아일기’, ‘올빼미의 자발적 사노비들’, ‘내 손을 잡아, 신이 되어라’를 비롯하여 몇몇 단체가 만들어졌다.
****
얼떨결에 주괴를 넘겨받았지만, 정작 사용 방법을 모르니 숙소로 돌아가 상자를 탁자에 올려두고 쳐다보고만 있었다.
‘엘리움이라··· 어디에 써야 하지?’
정보가 없으니 애물단지나 다름없었다.
아무리 명검이라도 어린아이의 손에 들어가면 제 손을 자를 위험이 되는 법.
스칸다를 모르는 성진에게 엘리움은 그저 좋아 보이는 물건이었다.
삐···
삐···
삐···
엘리움을 들고 숙소로 돌아온 이후로 커뮤니티 장치가 시끄럽게 울어댔다. 전부 쪽지가 왔다는 신호.
한숨을 쉬고 필터링 된 쪽지를 훑어보았다.
[제목: 석유왕의 육아일기입니다. 엘리움 관련 정보]
[제목: 현재 가장 먼저 해야 할 일.]
[제목: 힐러가 선택하면 좋은 임무.]
일전보다 훨씬 훌륭한 맞춤형 정보들이 쪽지로 쏟아졌다.
성진은 그 중에서 제일 관심이 가는 쪽지를 확인했다.
[제목: 석유왕의 육아일기입니다. 엘리움 관련 정보]
반갑습니다. 방송 잘 보고 있습니다.
특히 스칸다 편은 제 모험심을 부추기네요. 아무튼, 본론을 말씀드립니다. 엘리움을 사용하는 방법은 세 가지.
첫째, 성국에 좋은 값에 넘긴다. 이건 추천하지 않습니다. 차기 교황이 되실 대황상 올빼미 님이 어딜 부하직원에게 신물을 넘깁니까?
둘째, 그냥 가지고 있는다. 이 방법도 추천하지 않습니다. 썩어요. 김치도 아니고 발효되는 주괴가 아닙니다. 사용해야겠죠?
셋째. 올빼미 님의 장비를 맞춘다. 핵심이죠! 핵심입니다! 교황의 품위에 걸맞은 훌륭한 소재이지요. 하지만, 문제가 있죠? 가공이 거의 불가능하다<--- 이거 아주 거슬리잖아요? 하지만! 우리는 원효대사도 집어 던질 썩은 물들. 올둥이에게 가공할 방법을 제시해드릴 수 있습니다. 궁금하시다면 박수를 한 번 쳐주시면 다이렉트 메시지를 보내겠습니다.
‘···뭐가 뭔지.’
내용이 길어 읽는 데 좀 걸렸다.
요약하자면 도움을 주겠다는 것.
그것도 지금 성진에게 가장 필요한 도움들을.
굳이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짝-!
성진이 손뼉을 치자, 상대가 다이렉트 메시지를 보내왔다.
「모시모시. 아아, 통신 보안? 에이, 설마 받겠어?」
“말씀하세요.”
「와··· 미쳤다 미쳤어··· 진짜 올빼미 님? 진짜 올빼미 님 맞아요?」
성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다이렉트 메시지를 보내온 자는 성채남보석(星彩藍寶石) 등급의 모험가였다.
닉네임은 ‘저누나좋아해요’
- 성채남보석 ㄷㄷ 석유왕이라 칭할만 하다
- 스타사파이어 개 오져버렸네; 저누조면 네임드지
- 전우조 급은 되어야 올빼미랑 1:1 대화하지;
「죽어도 좋아··· 아! 아무튼, 제가 하려는 얘기는 별 게 아닙니다. 우리는 석유왕의 육아일기. 올빼미 님이 곤란한 상황이 생기지 않게 보필하는 충신들입니다. 어··· 저희 구성원을 말씀드리면 정치외교학을 전공하다 자퇴한 대학생, 대인 기피 있는 전직 펀드매니저, 또···」
“엘리움 관련 정보가 있다고 하셨는데··· 맞습니까?”
「예! 예! 맞습니다. 지금 팀원들 다 조퇴하고 제 자취방으로 뛰어오고 있는데, 제가 일단 간단하게 설명해드리겠습니다. 엘리움의 가공은 대가 급의 야장 손이 필요합니다. 아마 스칸다에서 대가 급은 전부 난쟁이들일 테니, 난쟁이를 찾아야겠죠.」
“난쟁이라면··· 이오란에도 있을 텐데요?”
「아마 대가급은 아닐 겁니다. 대가들은 어디 틀어박혀 사는 경향이 있어서··· 산간 오지에 간판 없는 맛집 아시죠? 그런 느낌입니다.」
- 설명 찰지누 ㅋㅋ
- 바로 이해됐네 ㅋㅋㅋ
「이오란에도 정보 길드가 있을 겁니다. 근데 써먹기가 쉽지 않을 거예요. 일단 대가들 위치는 함부로 팔지를 않아서 가격이 엄청 비싸니까. 하지만 걱정하지 마십시오! 공짜로 이용할 수 있는 곳을 압니다!」
“네?”
****
성진은 숙소에서 나가 여러 종류의 가면을 샀다.
앞으로 해야 하는 일에선 굳이 초모일 필요가 없었기 때문에 행적을 들키지 않는 편이 좋았다.
복장을 바꿔 입고, 얼굴에 귀신의 가면을 썼다.
그렇게만 했을 뿐인데도 초모라는 생각이 들지 않을 정도로 모습이 바뀌었다.
다섯 명이 지나가면 한 명쯤은 얼굴을 가린 게 스칸다였으니 당연한 일이다.
‘여기가 맞나?’
「잠시만요. 맞대요! 거기! 네!」
오래된 건물.
곰팡내가 지독하게 올라왔다.
습기 찬 나무 냄새.
단순히 세월의 냄새라고 하기엔 기분 나쁜 곳이다.
끼이익···
이곳은 주점.
주인만 쳐다볼 뿐, 손님들은 저마다 작은 소리로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주인에게 다가가자, 그쪽에서 주문을 권했다.
“주문은?”
「석양의 눈물 한 잔.」
“석양의 눈물 한 잔.”
흠칫 몸을 떠는 수염 난 남자가 싱긋 웃으며 대꾸했다.
“죄송합니다만, 그런 술은 없습니다.”
「그럼 사장 나오라 그래.」
“그럼 사장 나오라 그래.”
“하아··· 잠시만요. 뒤에 계십니다. 이쪽으로.”
「와 진짜 되네. 잠시만요, 여기 대응 멘트가 달라졌다고 하는데요? 원래 이게 아니라는데··· 뭐지. 」
성진이 남자를 따라 안으로 들어갔다.
어두컴컴한 방 안. 양초가 탁자를 비추고 있을 뿐, 전부 암흑이었다.
수정구를 어루만지는 복면을 쓴 여인이 성진에게 질문했다.
“당신은 누구시죠?”
「대답하지 마세요. 그냥 앉으세요. 글고 저거 수정구 가짜라네요. 컨셉으로 넣은 건데 아직도 쓰는 거 같다는데. 아, 그냥 이제 이분이 대신 메시지 칠게요.」
성진이 가타부타 말없이 맞은 편에 앉자, 여인의 눈썹이 꿈틀했다.
“이게 무슨···.”
「사장 왔다 이년아. 저 애한테 말하세요. 낮말은 내가 듣고 밤말도 내가 듣는다.」
“낮말은 내가 듣고 밤말도 내가 듣는다.”
“오래된 말이군요. 세상은 변했어요.”
「밤에 피는 꽃은 시들지 않는다.」
“밤에 피는 꽃은 시들지 않는다.”
“이런 미친··· 왜··· 왜···.”
여인이 성진의 말에 복면을 걷고 소리쳤다.
눈에 물기가 그렁그렁했다.
“왜 이제야 오신 거예요! 대체 왜! 어머니가 얼마나 기다리시다 돌아가셨는데···.”
「···미안하다고만 하세요. 얼굴이나 이런 건 대충 얼버무리시고.」
“미안하다.”
“그런데··· 전해지는 모습이랑 다르신데···.”
“사정이 있었다. 아무튼, 묻고 싶은 게 있다.”
“어떤?”
“엘리움을 다룰 수 있는 자를 찾고 있다.”
“정확히 말씀하셔야 합니다. 처분이라면 루트가 꽤 되고, 병장기로 가공하는 거라면 분야가 한정됩니다.”
“병장기.”
“가까이에 있습니다. 이오란의 야장 칸이 실마리를 알 겁니다. 환희의 집행봉을 만든 대가 타놀드의 후인이거든요. 아마 스승이 은거한 곳도 알 겁니다.”
“알겠다.”
「난쟁이 은혜권 내놓으라고 하세요.」
- 난쟁이 은혜권? 난쟁이의 빚은 들어봤어도 은혜권은 처음 듣는데?
- 은혜권이면 난쟁이의 빚 10장 모으면 바꿔주는 거
- 치킨 쿠폰이냐?
- 비슷함. 암튼 저거 내밀면 무조건 최선을 다해서 들어줘야 함. 저거 스칸다에 진짜 가지고 있는 사람이 있었구나 ㅋㅋ
성진은 메시지를 보내오는 자의 말을 따랐다.
“난쟁이 은혜권을 다오.”
“그건··· 야화(夜花) 님이 맞긴 맞나보네요. 잠시만요, 아이들을 불러올게요.”
잠시 후, 동전 하나가 그녀에게 전해졌다.
그녀는 성진의 손 위에 그것을 올려놓았다.
난쟁이가 엄지를 내밀고 있는 모습이 조각되어 있었다.
“여기 있습니다.”
드륵···
의자를 끌며 일어나는 성진.
성진의 옷자락을 여인이 붙잡았다.
“이대로 가시는 건가요?”
“그래. 또 오마.”
“또··· 알겠습니다. 꽃을 피울까요?”
「시든 적 없다.」
“시든 적 없다.”
성진이 마지막 말을 남기고 빠져나갔다.
잠시 후, 성진의 앞에 앉아있던 여인의 얼굴이 쭈글쭈글해졌다. 주름이 진해지고, 입술 색이 바랬다.
그녀는 아름다웠지만, 나이 들었다.
“나를 몰라 보시는군. 야화님은 아니다. 하지만··· 이상하단 말이지.”
그녀의 곁으로 그림자들이 떨어졌다.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감시할까요?”
“아니, 야화님과 관련된 분이라면 너희들 정도야 우습게 목을 벨 것이다.”
“그럼 어떻게···.”
순식간에 나이 든 그녀가 수정구를 움켜쥐고 벽으로 내던졌다.
쨍그랑-!
수정구가 산산이 부서졌다.
파편에서 검은 연기가 스멀스멀 흘러나와 그녀의 얼굴로 스며들었다.
그러자, 그녀의 얼굴이 다시 젊어졌다.
“대륙에 나가 있는 아이들이 얼마나 되지?”
“정확히 추산하긴 어렵지만, 맹과 원탁만 아니라면 우리의 눈과 귀를 속일 수 없습니다.”
“맹과 원탁도.”
“무리입니다.”
“해.”
“예.”
그녀가 치렁치렁한 로브를 벗어 던지고 시녀가 가져온 경장을 입었다.
“그동안 너무 쉬었나. 살짝 끼는데.”
“여전히 아름다우십니다.”
“알아. 준비해, 꽃을 피운다.”
“예.”
“그분께서 우리를 필요로 하실 거다. 이제부터 우린 다시 그분의 눈과 귀다.”
그녀의 한 마디가 대륙 곳곳으로 퍼져나갔다.
“이제 우리의 밤을 되찾아오겠다.”
****
‘야화가 누구야?’님이 1,000원 후원하셨습니다!
[아는 형들 있음?]
- 몰라? 동부 쪽 인물인 것 같은데?
- 더러운 동부 색히들아 알고 있는 거 없냐?
- 나 동부 출신인데 모름; 근데 애초에 정보 길드 수장 이름이 알려진 게 이상한 거 아니냐? ㅋㅋ
- 별것도 아닐 수도 있음. 건물 후진 거 봤잖아
- 별것도 아닌 사람한테 난쟁이 은혜권을 두부 사러 갈 돈 받듯이 하냐?
- 글고 원래 맛집 본점은 하나같이 후진 건물임 ㅋㅋ
「이제 은혜권 사용하시면 만들어 줄 겁니다.」
성진이 곧장 칸에게로 향했다.
일전의 만남도 있고, 빌이 주워온 초모가 이오란에서 제법 유명한 모험가가 되었으니 칸도 성진을 기억했다.
“이방인, 또 왔군.”
“부탁드릴 게 있어서 왔습니다.”
“부탁? 난 이방인 주문은 안 받는데. 그리고 내가 만지는 물품은 명품이라 자네는···.”
성진이 품에서 동전 하나를 꺼냈다.
난쟁이가 엄지를 척- 내밀고 있는 동전.
그걸 본 칸의 얼굴이 형편없이 구겨졌다.
“이런 개 같은··· 된통 걸렸군. 뭔가? 장비를 맞춰 달라는 건가?”
“타놀드님을 찾고 있습니다.”
“그럴 줄 알았어. 아무렴, 은혜권을 어떻게 손에 넣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손에 넣었다면 어떻게든 스승님을 보려고 하겠지.”
“······.”
“근데 이걸 어쩌나? 문제가 있어, 스승님은 여기서 조금만 가면 나오는 산에 계셔.”
“그게 왜 문제인 겁니까?”
“데칸 산에 계시거든.”
「어라? 여기까진 예상 못 했는데? 데칸 산에 있는 게 왜 문제인지 여쭤보실래요?」
“데칸 산에 문제가 있습니까?”
칸이 후려치던 망치를 내려놓았다.
깡-!
“있지. 나도 스승님을 뵌 지가 좀 됐어. 하필 틀어박혀도 왜 그런 곳에 틀어박히신 건지··· 어이 3호! 네가 설명해.”
여전히 칸의 일을 돕고 있던 이방인이 성진에게 다가왔다. 고된 일 때문인지 땀으로 온몸을 적시고 있었다.
“데칸 산은 지금 접근할만한 곳이 못 됩니다. 그리핀들 때문이죠.”
“그리핀?”
- ㅎㅎ 그거 올빼미한테 걸리면 이제 한큐에 그냥!
- 바로 튀겨버립니다
그리핀은 강하다.
강철과도 같은 깃털, 거대한 덩치, 바위를 부수는 발톱과 부리.
하지만, 성진도 성장했다.
이제 능력이 봉인되었어도 쉽게 제압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핀이라면 모험가들이 충분히···.”
“한 마리가 아니에요.”
“···그게 무슨?”
“데칸 산에 거의 50년 전부터 그리핀들이 모여들기 시작했어요. 지금은 부화장이라고 불릴 정도로 그리핀들이 산을 삼켰다고 하더라고요.”
“규모는?”
“수십은 넘는다고 들었어요.”
성진이 모험가 협회에 발을 들인 첫날, 모험가 한 명이 떠들어 댄 이야기가 떠올랐다.
- 또 데칸 산길 좀 뚫어 달라고 애원하러 온 거 아니야?
분명, 보수가 형편없다고 들었다.
성진이 칸에게 물었다.
“협회에 의뢰했다는 게···.”
“그래 산맥을 오갈 수 있게 청소 좀 해달라고했지. 근데 망할 보수를 후려쳤다고 다들 난리를 치니. 스승님께서 데칸 산에 있다고 말할 수도 없는 노릇이라 유통망 어쩌고 한 걸 믿고 욕만 해대는 거야.”
“임무 난이도가 어떻게 책정됐죠?”
“난 잘 몰라. B+ 였던가? 어쨌든, 미안하게 됐군. 은혜권은 돌려주겠네.”
「어··· 이럼 안 되는데··· 잠만요 우리끼리 대책 회의 좀 해보고 다른 방법을 찾아보던가 해볼게요.」
- ㅋㅋㅋ 쉽게 풀릴 리가 없지
- 헛수고했네 레전드죠~
그런데, 옆에 있던 3호가 갑자기 말을 꺼냈다.
“사실 그리핀 무리보다 위험한 게 있어요. 어쩌면 데칸 산이 그렇게 된 원인이기도 하고요.”
“그게 무슨 말이죠?”
“순백의 그리핀. 눈이라도 맞은 것처럼 새하얀 그리핀이 무리를 이끈다는 소문이 있어요. 멀리서 목격했던 사람이 협회에 보고했어요.”
“순백의 그리핀이라···.”
삑···
또 쪽지다.
[제목: 저 이거 알 것 같아요. 무능한 석유왕 애들 말 듣지 마세요.]
쪽지를 확인한 성진이 칸에게 말했다.
“돌려주실 필요 없습니다. 은혜권 쓰겠습니다.”
이상한 경쟁에 휘말렸지만, 성진은 할 일을 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