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0
90화
“지원? 음··· 지원 역할이라면 어디든 환영받기는 하죠. 마침 인원도 부족한 참이고.”
“부탁드리겠습니다.”
성진은 이번 평가를 놓치면 다음 평가를 기다려야 했다. 남은 활동비는 최소치였고, 모험가로서의 활동이 늦어질수록 시나리오의 클리어가 늦어질 것이다.
“흐음··· 오늘 미궁 공략에 나서는 다른 분들의 의견도 중요합니다. 평가 대상이 한 명 늘어나는 건 그만큼 신경 쓰이는 일이니까요.”
고개를 돌려 오늘 평가에 임하는 다른 일행을 보았다.
특이한 구성이었다.
이방인, 고양이 인간, 눈망울이 커다란 어린 여학생.
그들 중 이방인이 말했다.
“···상관없습니다. 어차피 평가야 자신이 중요하니까요.”
“다른 분들은?”
“사람이 많으면 좋다냥, 지원가는 더더욱 좋다냥!”
“저··· 저도··· 나쁘지··· 않아요···.”
- 지독하다! 지독한 컨셉들이야!
- 말하는 고양이? 완벽해! 근데 왤케 뚱냥이야 ㅋㅋㅋ
성진이 엔빌을 바라보자 그도 고개를 끄덕이고 얘기했다.
“좋습니다. 그럼 초모님도 평가를 진행하도록 하죠. 준비가 필요하십니까?”
“아니요. 괜찮습니다.”
엔빌은 안경을 쓰고 있었는데 눈이 심각하게 나쁜 건지 렌즈 너머로 눈이 콩알만 하게 보였다.
그는 둘러맨 가방에서 구겨진 종이 하나를 꺼내며 얘기했다.
“임무 등급 E+ 단순 조사 임무입니다. 협회 의뢰고 전투가 있을 수도 있습니다. 본인들의 장기, 역할을 무리 없이 소화해 낸다면 평가에서 좋은 점수를 받을 겁니다.”
“알겠습니다.”
“알겠다냥!”
“네···.”
엔빌을 따라 도시의 밖을 나섰다.
마차를 타고 가는 건지, 아니면 걷는 건지 궁금했던 차에 엔빌이 수풀로 들어가더니 풀을 치우기 시작했다.
“여깁니다. 다들 이리 오세요.”
바닥에 마법진이 그려져 있었다.
마법에 익숙하지 않아 경계하는 성진과 달리, 다른 일행들은 경계하는 기색 없이 다가가 마법진 위에 올랐다. 성진도 마법진 위에 올라서자, 엔빌이 중얼거렸다.
처음 듣는 단어들의 나열.
'이게 영창인가?'
감각의 말단에 수증기가 달라붙는 느낌이 찾아왔다.
팟-!
푸른 빛무리가 일더니, 풍경이 뒤바뀌었다.
무리는 어느새 어두컴컴한 동굴 앞에 서 있었다.
엔빌이 부연 설명을 했다.
“자, 이제부터 평가를 시작하겠습니다. 여러분의 행동 하나하나가 저 심사관 엔빌에 의해 평가받을 것이며 파티를 위험에 빠트리는 행동, 본인의 역할을 제대로 하지 않는 등의 감점 요인을 잡아낼 겁니다.”
모두가 끄덕였다.
엔빌이 고개를 돌려 성진을 보고 말했다.
“초모, 가볍게 생각하지 마십시오. 이건 실전입니다. 피와 살이 튀는 전장이라고요. 우습게 보다가 목숨을 잃기 딱 좋습니다!”
“···예.”
- 아 개웃겨 ㅋㅋ
- 여러분, 여기서 웃으시면 됩니다
- 올빼미한테 저런 말 하는 거 보면 이곳은 스칸다가 분명하다
- 목숨을 잃기 딱 좋습니다!(나 말고 너요)
성진이 질문했다.
“궁금한 게 있습니다.”
“뭐죠?”
"맡은 역할만 하면 되는 겁니까?"
“맡은 역할 이외의 행동은 하지 않는 게 좋습니다. 가산점 같은 건 주어지지 않고, 모험가의 기본을 평가하는 거니까요. 본인이 다른 이들의 역할을 침범하면 그만큼 그 사람들이 평가받을 요소도 사라지게 됩니다.”
쉽게 말해, 다른 이들의 평가를 떨어트릴 수도 있으니 오지랖 떨지 말라는 얘기였다.
“알겠습니다.”
“이제 저는 여러분들의 시야에서 사라집니다. 위험한 상황에서도 나서지 않을 것이고 오로지 기록할 뿐입니다. 이건 협회의 수칙이고, 제가 아카데미의 강사가 아니라는 것을 이해하셨다고 믿겠습니다.”
“알았다냥, 얼른 가라냥.”
스으윽···
엔빌이 사라지며 말을 남겼다.
“동굴에 최근 이상한 마력이 흘러나오고 있다고 합니다. 여러분은 그 마력이 무엇에서 기인한 건지 파악하고 보고하시면 됩니다, 그럼 현 시간부로 평가 시작하겠습니다.”
엔빌이 사라지자, 조악한 방패와 날이 제대로 서지 않은 한 손 검을 든 이방인이 얘기했다.
“이제부터 제가 통제하겠습니다. 다들 따라주십시오.”
“뭐냥? 갑자기 본색을 드러내는 거냥?”
이방인은 손가락으로 한 명씩 가리켰다.
가장 먼저 가리킨 것은 고양이 수인이었다.
“도적.”
다음은 여학생을 가리켰다.
“원소술사.”
“···예.”
다음은 성진이었다.
“···아무튼 지원가. 뭘 지원하는지는 모르겠지만.”
“그게 뭐 어쨌다는 거냥?”
“나는 전사입니다. 파티를 이끄는 것은 나의 역할입니다. 제 말이 틀렸습니까?”
“···딱히 틀린 건 아니지만, 그래도 함께 하는 게 낫지 않냥?”
“전혀. 이건 평가입니다. 제 역할을 하겠습니다. 여러분들은 본인 역할만 하시면 됩니다.”
이방인은 챙겨온 짐에서 횃대를 꺼냈다.
그가 불을 붙이려 도구를 찾고 있는데, 원소술사가 그에게 다가갔다.
“제가··· 붙여 드릴게요.”
그녀가 입술을 오물거렸다.
그러자 횃대에 불이 붙었다.
화륵···
“···저는 진행을 해야 하니 거기 지원가인지 뭔지 하는 분이 이걸 좀 들었으면 하는데. 보시다시피 누구랑 달리 손이 꽉 차서 말입니다.”
“알겠습니다.”
성진이 횃불을 넘겨받았다.
어두운 동굴이 조금 밝아졌다.
불길한 냄새를 풍겨오는 건 여전했지만.
- 뭐지 왜 시비지?
- 같은 이방인들끼리 돕고 삽시다!
- 저 탱커 왜 이렇게 쫓기는 기분이냐?
“따라들 오세요.”
“자기소개라도 하면서 역할을 분담하는 건 어떠냥?”
“필요 없는 행위입니다.”
“으··· 알았다냥!”
그들은 어두컴컴한 동굴 속으로 천천히 걸어 들어갔다.
****
‘나님행복에젖음’님이 1,000원 후원하셨습니다!
[스칸다 보면서 치킨 뜯고 있다니; 실화냐? 눈물 나네;]
- 키-야! 그것도 올빼미가 스칸다하는 거 ㅋㅋ
- 프로 훈수러들 이제 올빼미 하는 것마다 아닌데? 아닌데? 그렇게 하는 거 아닌데? 할 예정
- 아닌데? 그렇게 안 할 건데?
- 어휴; 하여튼 틀니들!
- 아닌데? 임플란튼데?
‘올뺴미님’님이 100,000원 후원하셨습니다!
[스칸다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런데, 옛날에 스칸다 하신 경험이 있으신지 여쭤보는 것을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 이건 뭔 간신이야 ㅋㅋ
- 공손한 걸 보니 공손찬의 후손이군
- 올빼미 종말도 처음이었는데 스칸다도 처음 아닐까?
‘아몰랑’님이 3,000원 후원하셨습니다!
[다 때려뿌수고 걍 평가 통과하면 되는 거 아님]
- 네 다음 스알못; 파티 역할까지 자기가 하면 분쟁 일어남
- 전사: 그럼 도적님이 진행하시죠. 저는 필요 없는 것 같으니
- 와 나 실제로 저 말 들었는데
- 오케이 도적 하나 걸렀고~
- ㅈㄹ 지금 법사든 도적이든 종말에서 석탄 캐는 건 똑같죠?
똑··· 똑···
동굴의 내부는 꽤 넓었다.
박쥐 떼가 동굴의 천장에 달라붙어 있는 걸 보고 원소술사가 움츠러들었다. 그녀는 두려운 눈치였다.
“처, 천천히 가는 게···.”
“그럴 이유가 있습니까?”
“그래도···.”
“아직 몬스터가 나온 것도 아니고, 굳이 그래야 할까 싶습니다. 그냥 가죠.”
“···네.”
성진은 할 말이 많았지만, 하지 않기로 했다.
이방인에게 말을 해봐야 좋은 소리를 들을 것 같지 않았다.
‘음?’
그때, 성진의 감각에 뭔가 잡혔다.
뭔가의 기척이었다.
‘둘, 소형. 기척으론 인간형인데.’
적응으로 얻은 감각들이 봉인됐지만, 원래부터 감각이 발달한 성진이다. 잠시 일행에게 위험을 경고할까 하는 생각을 했다. 성진이 판단하기로 위험한 상황은 아니었으니 지켜보기로 했다.
쫑긋!
고양이 인간의 귀가 빳빳하게 솟았다.
“잠깐 기다려라냥! 앞에 뭔가 있다냥!”
“···뭔가 있다고요?”
“음··· 둘인지 셋인지 잘 모르겠다냥, 몬스터인 것 같다냥!”
“그럼, 다들 대비하세요. 전투는 제가 나서면 지원하는 방식으로!”
다들 전사가 마음에 들지 않는 눈치였지만, 그들도 긴장했는지 앞만 뚫어지게 응시했다.
‘천장, 위다.’
한 녀석이 천장을 기어올랐다.
위에서 습격할 생각인 것처럼 보였다.
‘죽일까?’
엔빌이 한 얘기가 떠올랐다.
- 본인이 다른 이들의 역할을 침범하면 그만큼 그 사람들이 평가받을 요소도 사라지게 됩니다.
갑작스럽게 합류한 걸 흔쾌히 받아준 파티다.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이들의 역할을 빼앗을 생각은 없었다.
‘그럼···.’
성진이 횃불을 위로 추켜 올렸다.
“음? 이봐! 횃불 똑바로··· 위다!”
“위다냥! 앞에서도 온다냥!”
“앞은 내가! 위는 당신들이!”
끼이이이익-!
정체를 알 수 없는 몬스터가 밀어닥쳤다.
이방인 전사가 기합을 내뱉었다.
“흐아아아압!”
쾅-!
나체의 창백한 인간형 몬스터.
몬스터의 작은 덩치에서 뿜어져 나오는 힘이 굉장했다.
성진에게는 우스웠지만, 전사는 공격을 방패로 막았음에도 밀려나 자세가 무너졌다.
“끄윽···.”
전사가 노려질 위기였기에, 성진이 바닥에서 돌을 하나 주워 몬스터의 왼팔을 노리고 던졌다.
퍽-!
돌이 날아가 몬스터의 왼팔에 맞았다.
끼이이이이!
성진이 힘을 거의 싣지 않았는데도 돌에 맞은 몬스터의 팔이 축 늘어졌다. 기회를 엿보던 전사가 벌떡 일어나 우악스럽게 돌진했다.
“우아아아아! 죽어! 죽어어어!”
볼썽사나운 몸놀림이었다.
허점이 너무 많아 원래라면 반격에 당해 쓰러져도 이상하지 않았지만, 몬스터는 성진에게 한쪽 팔을 잃은 상태였다.
찌이익-!
기괴하게 생긴 인간형 몬스터의 목이 거칠게 뜯겨 나갔다. 절단면이 깔끔하지 못했다.
“도··· 도움! 도움이 필요하다냥!”
화르륵···
퍼어엉!
원소술사의 화염구가 몬스터를 노리고 날아갔지만, 허무하게 동굴의 벽을 때릴 뿐이었다.
“죽는다냥! 빨리 도와달라냥!”
“제길!”
전사가 숨을 몰아쉬다가 돌진했다.
대책 없이 돌진할 뿐이라 반격당하면 그대로 죽을 것이다.
성진은 누군가 죽는 게 내키지 않았기에, 다시 한 번 돌을 던졌다.
후아앙-!
전사의 돌진을 피하려던 몬스터의 머리에 돌이 적중했다.
퍽-!
전사의 돌진이 먹혀들었다.
물론, 이미 머리가 없어진 시체에 달려든 거였지만 일행은 그 사실을 뒤늦게 알았다.
“허억··· 헉··· 됐어. 됐다고.”
“주, 죽을 뻔했다냥!”
“···미, 미안해요··· 빗맞아서···.”
“괜찮다냥! 그럴 수도 있다냥!”
“괜찮긴 뭐가 괜찮아! 위험했던 거 안 보여? 제길··· 아아··· 어깨가···.”
전사는 화를 냈다.
- 쟤 뭐래냨ㅋㅋㅋ
- 헬파티다. 이것은 헬파티야
- 일단 도적부터 강퇴하고 다시 갈게요.
성진이 보기에 이 파티는 가망이 없었다.
전사가 일행을 불러모았다.
“머리는 왜 터진 겁니까?”
“글쎄요···.”
“당신의 돌진이 강력한 거 아니냥?”
“그럴리가···. 아무튼, 아아··· 어깨야. 누구 이 몬스터 아는 사람 있습니까?”
“아뇨. 처음 봤어요.”
“나도 처음 봤다냥!”
“당신은?”
전사가 성진에게 물었다. 표정이 좋지 않은 게 성진이 전투에 참여하지 않았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몬스터는 성진도 처음 보는 종류였다.
“모르겠습니다.”
“쳇, 도움이 안 되는군. 지원은 무슨···.”
- 올빼미(1/0/1)
- 전사(0/0/1)
- 죽다 살아난 게 입을ㅋㅋ 확씨!
전사가 고통스러워하며 땀을 흘리는 게 보였다.
“어깨를 다친 겁니까?”
“그래요. 몬스터를 상대하느라.”
성진이 보기에 그냥 힘이 과하게 들어가 스스로 다친 것 같았다. 큰 부상은 아니었다.
“잠시, 제가 보겠습니다.”
“보면 뭐 압니까?”
“어깨가 빠진 거네요. 혀 깨무니 이 꽉 무세요.”
“뭐? 자, 잠깐 뭐하는···.”
우드드득-!
“끄아아아악!”
“이제 괜찮을 겁니다.”
“미, 미친! 으아아악!”
- 헐;ㅋㅋㅋㅋ
- 진짜 힐(물리)였누 ㅋㅋㅋㅋ
- 힐 해드릴게요!(고통 동반)
전사는 성진에게 욕을 하며 고함을 질러대다 갑자기 눈을 동그랗게 떴다.
“어?”
“움직이는데 불편한 건 없으시죠?”
“어? 어어··· 고맙습니다.”
전사가 괜히 민망한지 머리를 긁적였다.
지원가라 내심 무시했는데, 직접적인 도움을 받자 생각이 달라진 모양이었다.
“엔빌! 보고 있습니까?”
대답은 들려오지 않았다.
성진은 그가 곁에 있다는 걸 기척으로 알았다.
나타나지 않는다는 건 그대로 진행하라는 뜻이다.
“제길··· 이대로 진행하면 위험할 것 같은데.”
“다른 임무로 변경을 요청하는 건 어떻냥?”
“그건 감점 요인이잖습니까? 나는 그럴 수 없습니다.”
“왜 그러냥?”
“그건··· 됐습니다. 진행하죠.”
이후로도 같은 상황이었다.
정체를 알 수 없는 몬스터가 줄을 이어 등장했고, 전체적으로 파티의 수준보다 격이 높았다.
성진은 그때마다 은근슬쩍 나서 도와주었다.
전사가 숨을 헐떡였다.
“허억··· 허억···.”
“왜인지는 모르겠는데 잘 진행되고 있는 것 같다냥.”
“···그러게요.”
“뭐지? 아, 아무튼.”
“쉬었다 가요··· 마력을 회복해야 해요···.”
“알겠습니다.”
일행이 자리를 잡고 앉아 휴식을 취했다.
성진은 임무의 시작부터 조급해 보이는 이방인에게 물었다.
“이름··· 아, 이명이 뭡니까?”
“알아봐야 이방인이라고 부를 거잖습니까?”
“그럴 생각은 없습니다.”
“···호프라고 지었습니다.”
“호프.”
세종시의 사람이니 희망이라는 말을 단어로 표현한 것이 분명했다. 왜 그런 이름을 지었을까.
“조급해 보이는데 왜 그런 거죠?”
“···그래 보였습니까? 아마 제대로 보신 걸 겁니다. 조급하거든요.”
“······.”
“겨우 여기까지 왔습니다. 저한테 의지하는 가족이 있어요. 모처럼 사람답게 살 기회인데··· 이번 평가에서 떨어지면 노예살이라도 해야 합니다. 비참하죠?”
“···힘드셨겠네요.”
“네, ···힘드네요. 비웃으셔도 됩니다.”
“그럴 마음은 없다냥!”
가만히 얘기를 듣고 있던 고양이 수인이 답했다.
어느새 원소술사와 함께 이야기에 끼어들었다.
“솔직히 처음에는 재수 없었지만, 나쁜 사람은 아니라는 걸 알 수 있었다냥! 묘족은 그렇다냥!”
“···이명이 뭡니까?”
“융융이라고 해라냥! 본명이다냥!”
“융융···.”
우물거리던 원소술사가 말했다.
“저한테도 이번 평가는 중요해요···. 고향이 균열 때문에 초토화됐거든요.”
“저런···.”
“저는 돌아갈 곳이 없어요. 아카데미를 자퇴하고 모험가가 되려는 것도 그것 때문이고요···.”
“잘 될 겁니다. 이명이?”
“샨도라고 하세요.”
“샨도··· 아까까진 미안했습니다.”
“아니에요. 괜찮아요.”
일행은 휴식을 마치고 다시 동굴을 탐색하기 시작했다. 아까와 같은 전투가 몇 번 일어나긴 했지만, 이제는 제법 합이 맞아 성진이 나서지 않아도 될 정도였다.
킁킁···
융융이 개박하를 꺼내 코를 파묻었다.
“스읍··· 하아···.”
융융의 눈이 어둠 속에서 빛났다.
- 저거 위험한 거 아니냐?
- ㅋㅋㅋ 약간 위험해 보이긴 하네
- 슈뢰딩거에게 전해라··· 내가 돌아왔다고!
쫑긋!
“많다냥! 앞에 5마리는 넘게 있다냥! 이건 위험하다냥!”
“제길··· 진짜 돌아가야 하나.”
“돌아가요···.”
성진이 나서려 하는 순간, 몬스터의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키이이익!
“뭐야!”
“준비해요!”
말을 하는 사이 몬스터들이 들이닥쳤다.
한 번에 상대하기 어렵게 퍼져서 달려드는 몬스터들.
천장을 타고 온 몬스터 한 마리가 성진을 노렸다.
“안돼! 초모!”
콰직-!
“어?”
성진이 한 손으로는 횃불을 들고 다른 손으로 몬스터의 머리를 움켜쥐었다.
으지지지직-!
끼······
뭉개진 사과에서 즙이 나오는 것처럼 몬스터의 뇌수가 바닥을 적셨다.
“무슨···.”
키이이이!
남은 몬스터들이 위협을 느끼고 성진에게 달려들었다.
일행이 미처 반응하기도 전이었다.
성진이 횃불을 든 채로 발을 놀렸다.
퍽-!
퍼퍼퍽-!
달려들던 몬스터들의 머리가 거의 동시라고 느껴질 정도의 시간 차이를 두고 성진의 발차기에 터져나갔다.
철퍽-!
일행이 여태까지 만났던 몬스터들의 무리 중 가장 규모가 컸는데, 오히려 가장 일찍 전투가 끝났다.
일행이 입을 다물지 못하고 있자 성진이 재촉했다.
“가죠, 오늘 내로는 돌아가야 하잖아요.”
“뭐냥! 초모 뭐냥!”
“혹시 자유 기사셨습니까?”
“지원가에요.”
- 내 이럴 줄 알았다 ㅋㅋ 주인공이 힘을 못 숨김
- 헬 파티라 밸런스 맞추려고 GM등장
동굴의 내부로 들어갈수록 몬스터의 숫자는 점점 늘어났다. 초입에서는 한두 마리에 불과했던 무리가 어느새 최소 다섯 심지어 열 마리가 넘는 몬스터들이 몰려올 때도 있었다. 전부 같은 생김새였다.
콰직-!
성진의 가죽 신에 찐득한 진액이 묻어나왔다. 또 혼자서 순식간에 몬스터들을 살해했다.
- 이게 바로 시바식 힐링법이다! 파괴하여 창조한다!
- 파괴는 힐링의 어머니!
- 신성력을 아끼기 위해 근원을 제거하는 힐링
- 근본 없는 지원가 ㅋㅋ
- 초모(20대 이방인, 암흑 사제)
- 속보) 초모, 급발진 힐링 창안. 힐링의 지평 새로이 해 업계 경악···
- 이제 더는 지원도 뭣도 아니잖앜ㅋㅋㅋ
- 이 파티 전위 1 지원가 3 맞죠?
- ㅖ 맞아여~
- 최고의 방어는 오로지 참살뿐
“음··· 아무래도 임무가 조금 이상한데요?”
판단하기로, 이 파티의 수준을 한참 벗어났다.
자신의 능력을 일행과 비슷하게 잡는다면, 이미 전멸했어도 이상하지 않았다.
“엔빌! 이상하다고!”
엔빌로서도 답답했다.
임무가 예상을 벗어났다.
하지만, 협회의 규율상 나설 수 없었다.
임무의 난이도가 항상 정확한 것도 아니기에, 모든 판단은 모험가의 몫이었다.
이대로 마을로 귀환해 자신을 찾으면 됐다. 그렇다면 사태를 고려해 감점은 최소치로 하고 다른 임무로 재평가를 할 생각이었다. 물론, 이번 임무는 협회에 보고하여 다른 인물에게 맡기고.
‘저 사람 때문이야!’
일행이 포기하지 않는 이유는 하나였다.
초모라는 이상한 지원가.
대체 뭘 지원한다는 건지 알 수가 없었다.
‘권법가? 동대륙에서 흘러온 사람인가?’
횃불을 들고, 어긋난 어깨를 맞춰줬다.
그 이후부터는 전면에 나서 몬스터를 전부 해치웠다.
‘돌아가! 돌아가라고!’
성진이 입을 열었다.
“가죠. 앞으로.”
“알았다냥.”
일행이 앞으로 나설 때, 샨도가 얘기했다.
“혹시··· 균열 아닐까요?”
“균열? 아! 그럴 수도!”
“맞다냥! 어쩐지 이상하다 했다냥!”
“균열이 뭡니까?”
“초모님은 균열을 모르시나요?”
“예.”
“그렇게 강하신데 어째서···.”
샨도가 머리를 귀 뒤로 쓸어넘기며 말했다.
“50년 동안 스칸다를 괴롭혀 온 근원이에요. 몬스터들이 균열로 넘어오고 시간이 지날수록 땅이 황폐해지죠. 나중에는 사람이 살 수 없는 환경으로 변해요.”
“이정도면 얼마나 진행된 겁니까?”
“···꽤. 균열을 닫지 못하면 조만간 이 근방도 황폐화할 거에요.”
“닫는 방법을 아십니까?”
“마력이나 신성력을 이용하면 되는 거로 알아요. 하지만 저한테 그만한 마력은 없는데···.”
그때, 어두운 공간에 엔빌이 나타났다.
“거기까지 하시죠. 돌아가야 합니다.”
“평가는요?”
“임무는 사태의 원인을 파악하는 데까지입니다. 돌아가 협회에 보고하시면 평가는 종료될 겁니다.”
“휴······ 다행이다.”
“원래는 끝까지 여러분이 알아서 하셔야 하지만, 상황이 위급하니 제가 나섰습니다.”
“감사드려요, 엔빌님.”
성진은 꺼림칙했다.
상황이 위급하다는 얘기는 균열이 그만큼 위험하다는 얘기였으니까.
성진이 엔빌을 빤히 쳐다보자 그가 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
“균열은 저도 못 닫습니다. 신전에 연락해 사제님들을 모셔오거나 마탑에 지원을 요청해야 해요. 지금이라도 빨리 돌아가서···.”
“위급하다면서요? 그만한 시간이 있나요?”
“······사실 없습니다. 균열이 그만큼 기다려 줄 리가 없으니까. 아무튼··· 어서···.”
쿵!
쫑긋!
“응? 무슨 소리 못 들었냥?”
“소리?”
쿠웅-!
엔빌의 표정이 굳기 시작했다.
“이런···.”
성진은 진작에 느끼고 있었다.
아무래도 균열을 넘어온 존재가 이곳으로 오고 있는 것 같았다.
쿠웅-!
쿵! 쿵! 쿵! 쿵!
소리가 점점 가까워지자 엔빌이 다급하게 외쳤다.
“도망치세요! 균열주입니다!”
“엔빌님은요!”
“저는 여기에 남아서 시간을 벌겠습니다!”
“그럴 수는···.”
우우우우우움!
거친 콧김을 내뿜으며 등장한 균열의 주인은 소의 머리와 하반신을 가지고 있었다. 상체의 근육은 한계까지 부풀어 호프의 방패를 초라하게 만들었다.
“저 대신 협회에 보고를!”
“엔빌님!”
사아악···
훙! 훙!
엔빌의 마법이 균열주에게 날아갔다.
바람을 응용한 절삭 마법 같았다.
우우우움!
휘잉···
바람은 균열주를 베어내지 못하고 이내 사라졌다.
“제길! 어서 가라고!”
균열주가 돌기둥을 후려쳤다.
콰아앙!
“피해!”
돌기둥의 파편들이 사방으로 퍼져나갔다.
“안돼!”
호프가 몸을 날려 샨도를 감쌌다.
퍽-!
그의 어깨에 돌파편이 깊숙이 박혔다.
“크아악!”
“호프!”
우움!
쿵! 쿵 쿵 쿵!
균열주가 돌격해오기 시작했다.
방향은 호프와 샨도가 있는 곳이었다.
“아··· 안돼!”
돌기둥을 후려친 힘으로 예상해 봤을 때, 달려오는 균열주와 충돌한다면 피떡이 될 것이다.
“피해!”
호프는 정신을 잃었고, 샨도는 겁을 집어먹어 발을 떼지 못했다. 그녀는 최후의 순간, 눈을 질끈 감았다. 고통이 한순간에 끝났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며.
그래서 그녀는 자신의 앞을 누군가가 막아서는 것도 보지 못했다.
스릉-
조잡한 한 손 검이 성진의 검집에서 뽑혀 나왔다.
서걱-!
촤아아아아악-!
피보라가 일었다.
균열주가 달려오던 그대로 반으로 갈라져 일행을 피로 적셨다.
일행에게는 보고도 믿기 힘든 광경이었다.
“무슨···.”
“규, 균열주가 한 번에··· 한 번에 반으로 쪼개졌다냥!”
휙···
철컥-!
성진이 검에 묻은 피를 털어내고 납검했다.
잠시 정적이 일었다.
“초모! 당신···.”
엔빌이 성진을 불러세우려 했다.
그리 높은 등급의 균열주는 아니었지만, 이렇게 쉽게 쓰러트리는 것은 처음 봤기 때문이다. 아니, 애초에 균열주는 아직 기본 평가도 거치지 않은 모험가가 처리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성진은 그의 부름에 답하지 않고 호프에게 다가갔다.
호프는 고통에 비 오듯 땀을 흘렸다. 이미 출혈이 심했다.
“으윽··· 으아악···.”
“깊숙이 박혔네요.”
“저를··· 저를 구하려고 하시다가···.”
샨도는 넋이 나간 것처럼 중얼거렸다. 자신 때문에 누군가 심하게 다쳤으니 그럴 만했다.
“망할··· 감각이··· 감각이 없어. 크윽··· 흑··· 흑···.”
“······.”
“우리 가족 어떡해··· 다들 나만 믿고 있는데··· 으··· 으아아···.”
고통보다 가족들을 걱정하는 모습에 다들 침묵했다. 엔빌도 입술을 짓깨물었다.
“혀··· 협회에 보고해서 호프님이 도움을 주신 임무에 대해 약간이라도 사, 사례금을 지급할 수 있도록···.”
“으아아아··· 어떡해··· 어떡하냐고···.”
호프가 힘없이 버둥거렸다.
다들 침통함에 고개를 푹 숙이고 있는데, 성진이 호프의 어깨에 박힌 돌에 손을 올렸다.
엔빌이 소리쳤다.
“안돼! 뽑으면 출혈 때문에 죽을 거예요!”
“이 꽉 무세요, 혀 깨뭅니다.”
푸슉-!
“끄으으으으으으아아아악!”
어깨에 난 구멍을 통해 바닥이 보일 정도로 심각한 상처였다. 피가 끝도 없이 쏟아졌다. 호프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모두 호프가 이대로 죽을 것 같다고 생각한 그때, 성진이 호프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후우웅···
이상한 일이었다.
상쾌한 기운이 주변을 가득 채우더니 호프의 구멍 난 어깨에 모여들었다.
구멍이 났던 어깨는 흉터 하나 없이 말끔하게 살로 메워졌다.
“어? 어어···?”
“이게 뭐냥!”
창백하던 호프의 안색이 다시 정상으로 돌아왔다.
“움직여 보실래요?”
호프가 팔을 빙글빙글 돌리며 귀신이라도 본 것처럼 중얼거렸다.
“시··· 신관이셨습니까?”
“지원 역할이라고 했잖아요. 신관은 아닙니다.”
호프가 뭐가 생각난 듯 눈을 올려 떴다가 성진에게 물었다.
“그런데 아까는 왜 직접···.”
치유 능력이 있는데 왜 어깨를 직접 맞췄냐는 얘기다.
“그게 빠르니까요.”
“그, 그렇습니까? 엄청 아팠는데··· 아닙니다, 아니에요. 감사합니다.”
초모는 이상한 모험가다.
구석에서 엔빌이 멍청한 표정을 짓고 반으로 쪼개진 균열주의 사체를 보고 있었다.
채팅창에 그런 엔빌을 이해한다는 말들이 올라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