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8
88화
흐르는 별의 세계 스칸다.
가상현실 게임의 지평을 새로이 한 게임.
골수 팬이라는 단어가 굳이 필요 없을 정도로 한 번이라도 플레이한 유저는 전부 스칸다에 매료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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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ㅅㅂ 이게 스핀오프인지 그냥 서버 재활용인지 궁금하다]
- 결과에 따라서 데자뷰에 소송 걸릴 듯
- 소송은 지금도 꾸준히 들어감. 결말은 하나도 안 나지만
- ㅁㅇㅁㅇ 스칸다 다시 나오는 거야? 근데 왜 하필 지금??
- 갑자기 스칸다가 나오는 게 말이 됨?
- 근데 갑자기 종말 일어나는 것도 말 안 됐는데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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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섭종한 게임을 들고 왔다고? 유저들 미쳐 날뛰는 거 보고 싶음?]
- 불 불 불 불, 엔터 탁!
- 이걸 지금 내가 방송으로 보고 있다니;
- 아 스칸다 마렵습니다 ㅠㅠ 매달 월급 꼬라박아도 괜찮으니 다시 섭 열어주세요!!
- 흐르는 별의 세계 스칸다. 동대륙과 서대륙이 만나는 교점인 이오란에서 올빼미가 부화했다
- 와 ㅆ먼치킨 올빼미; 리얼루 세계관 다 뿌시는 거 아니냐?
- ㄴㄴ 그러긴 힘들고. 일단 마왕도 누가 잡은지 안 알려줬는데 ㅋㅋ 엔피씨가 잡았을 수도 있음
- 진짜 섭종하는 날 소주 3병 깠다 시발
- 근데 갑자기 이때 왜 스칸다가 나오지? 스칸다 끝난 거 아니었나?
- 마왕 해치우고 해피 엔딩이잖아? 마왕 뒤져서 다들 납득하고 동창회 엔딩이었을텐데;
성진은 눈높이가 다른 상대의 어투에서 이상함을 느꼈다. 마치 자신이 이방인이라면 대우가 달라질 것 같은 말투.
‘일단은.’
“그게 중요한 문제입니까?”
“허, 중요? 당연히 중요하지. 이마에 찍힌 낙인을 보니 이방인은 맞는 것 같은데··· 이봐, 지금 이 엄동설한에 나를 만난 걸 하늘에게 감사할 날이 올 거야.”
“그게 무슨···.”
성진은 당장에 얼굴을 확인할 방법이 없어 난쟁이가 이야기한 낙인을 볼 수 없었다.
“쉿··· 이리 오게. 이왕 이렇게 만난 거 나보다는 당신과 같은 이방인들에게 듣는 게 좋겠지.”
“이방인? 이방인들이 있는 곳을 알고 있습니까?”
“일부지만, 그래서 따라 올 텐가 말 텐가?”
“···따라가겠습니다.”
“결정이 시원시원해서 좋군. 다른 이방인들과는 달리.”
성진은 마지막 말에는 침묵했다.
난쟁이의 태도가 호의적인 편이었지만, 이곳은 성진이 모르는 세계였다. 즉, 함부로 행동하다가는 곤란한 상황을 마주할 수 있었다.
‘주의하자.’
이방인이 환영받는 존재는 아닌 걸지도 모른다. 하지만, 다행히 처음 만난 상대는 오히려 도움을 주려는 것 같다.
“그렇게 입고 안 춥나?”
“괜찮습니다.”
“클··· 특이한 친구군. 마음에 들어.”
나풀거리는 긴팔을 입고 거닐었다.
근육질의 체형이 의복의 수준을 끌어올렸지만, 그래도 겨울 날씨에 보기 좋다고는 할 수 없었다.
너무 티나지 않게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정보를 얻었다.
마치 판타지와 오리엔탈 판타지의 한복판에 떨어진 것 같았다. 대리석으로 지어진 교회 건물이라던가 주택의 건축 양식은 판타지를 떠오르게 했지만, 반대로 다루와 술집 등 동양적인 요소를 연상하게 하는 건물들도 있었다.
‘현대 건물은 왜···.’
전혀 어울리지 않는 이질적인 배경이다.
- 이오란 원래 짬뽕 도시긴 했는데 세상에 거기에 종말까지 뿌려버린다고? ㅋㅋ
- 이오란 말고도 다 이러나?
- 다들 입 닫아주세요. 방송 보는 데 방해됩니다
- 헙··· 넷···
난쟁이는 아장아장 걸으면서 성진을 힐끔거렸다.
그가 덥수룩하게 난 수염을 매만지며 걷다 물었다.
“좀 가야 돼. 난 빌이라고 부르게.”
“빌. 올빼밉니다.”
“그래, 올빼미. 재미난 이름이군. 부모님이 술 마시고 지은 이름인가?”
“······.”
“농담일세, 농담이야.”
- 휴. 1초만 늦게 말했어도 당신의 머리는 순두부처럼 으깨졌을 겁니다
- 올빼미한테 패드립이라니 ㅋㅋ 역시 스칸다야
- 윾쾌한 드워프 오랜만이야ㅠㅠ 아 다시 하고싶다 스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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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외국 포럼도 터짐 ㅋㅋ 서버 차별 대우 하냐면서 항의한다고 하던데]
- 냅두셈 걔네 맨날 하는 게 게임 끄고 항의하는 거임
- Are you kidding me? fxxx kimchi!
- 한국섭만 특별 대우 한다면서 까부는데 정작 한국 섭 튜토도 못 깰 때는 조리돌림 오지게 했었음 ㅋㅋ
- 데자뷰: 한국섭 싫다라··· 그럼 어떻게··· 접으쉴?
- 참겠습리다. 불고기 좋아오. 사이, 기묘나 너무 못져! 사랑애요, 연예가중계
난쟁이가 복잡하게 뻗은 골목을 헤매지도 않고 쭉 들어가 한손으로 건물들을 가리켰다.
“저 거야. 저 거도.”
“네?”
“나. 아니, 우리는 이오란의 미스릴 조합이야. 야장들의 공동체라고 생각하면 돼.”
“이방인들은···.”
“일단 우리 야장들의 우두머리부터 보고 얘기하자고.”
푸쉬이···
풀무질 소리.
치이이익···
담금질 소리.
깡! 깡!
단조를 하는 야장들의 소리.
처음 들어보는 소리도 있었다.
열병기. 아니, 에너지 병기에 익숙한 성진에게는 이런 냉병기를 만드는 과정이 낯설었다.
빌을 따라간 곳에는 거푸집에 쇳물을 들이붓는 난쟁이가 있었다. 얼굴과 손에는 군데군데 화상의 흉터가 남아있는 게 지금 하고 있는 일이 충분히 위험한 일이라는 걸 보여주었다.
빌도 말을 걸지 않고 기다렸기에, 성진도 가만히 서 있었다.
잠시 후, 철만큼 묵직한 음성이 그 난쟁이에게서 흘러나왔다.
“그래, 이방인? 칸이다.”
“반갑습니다, 칸. 올빼밉니다.”
“빌, 노예는 더 필요 없는데? 사온 거야?”
성진의 눈매가 일변했다.
‘노예?’
빌이 뒤통수를 긁적이며 대꾸했다.
“농땡이 부리러 시내에 나갔다가 주웠어. 새로 전이된 이방인인 것 같더라고.”
“흥, 스칸다가 제 놈들 소굴이라도 되는 듯이 드나드는군. 그러니 그 꼴로 전락했지.”
“칸, 말은 삼가자고. 우리까지 그런 취급을 하는 것처럼 보이니까.”
“내 말이 틀린가? 노예가 노예지, 그럼. 아, 등급이 있으려나?”
성진은 대장간에 이 대화를 숨죽이고 듣고 있는 남자가 있다는 게 아까부터 신경 쓰였다. 그는 칸의 일을 돕다가 한쪽 구석에 처박혀서 가만히 있었다.
“근데, 저 분은 누구시죠?”
“얘기하기도 귀찮았는데 마침 잘 됐군. 어이, 그··· 3호! 네가 밖에 나가서 설명하고 와라.”
“알겠습니다···."
빌도 어깨를 으쓱하고 얘기가 끝나면 자신을 찾아오라고 말했다.
3호라는 남자는 덩치도 크고 눈빛도 제법 사나웠지만, 대장간 안에서 엿본 그의 모습은 대장부와는 거리가 멀었다. 이마에 찍힌 작은 각인에는 용의 머리가 그려져 있었다. 아마 자신의 이마에도 똑같은 게 그려져 있을 것이다.
‘노예라···.’
인적이 드문 공간에 나와 입김을 뿜은 3호가 성진을 돌아보았다.
“어떻게 오셨습니까?”
성진은 이 사람이 사태를 파악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직감했다. 그렇기에 거짓으로 말하지 않았다.
“세종시에 나타난 정체불명의 소용돌이를 보았습니다. 그곳에 진입하니 이곳에서 깨어났습니다.”
“···저주받은 나선. 왜 그걸 멀리서 보았는데도 진입한 겁니까?”
성진은 내친김에 종말이 일어난 도시를 정상화 하기 위해 떠도는 것까지 얘기해주었다. 상대는 그제서야 성진의 상황을 이해했다.
“대단한 분이셨군요···. 종말을 끝내는 사람이라니···.”
“세종에는 어떤 일이 일어난 겁니까.”
3호는 씁쓸하게 입꼬리를 올렸다가 말을 이었다.
“종말. 당신이 말한 종말에 이런 종말이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세종시의 사람들은 그날, 전부 이곳으로 오게 되었습니다.”
“이곳이 스칸다가 맞습니까?”
“빌이 말했나 보군요. 예, 맞습니다. 저주받은 세계죠.”
- 스칸다가 맞았잖아! 역시!
- 근데 스칸다가 저주받을 세계라고 할 정도인가?
- 글게, 그냥 마왕한테 침략받고 있던 곳 아닌가? 글고 마왕도 용사가 쓰러트렸고.
3호가 말을 이었다.
“우리는 동시에 이곳에 떨어졌고, 일단은 살아야 했기에 적응하려 했습니다.”
“···그리고요?”
“적응한 사람들도 있죠. 상인으로, 군인으로, 또 무언가로. 하지만 대부분은 실패했습니다, 저처럼.”
“적응에 실패한 사람들은 어떻게 됐죠?”
왠지 짐작이 갔지만, 확실하게 알아야 했기에 물었다.
역시 예상한 대답이 들려왔다.
“노예가 됐죠. 들려오는 소식으로는 2할에서 3할은 노예가 되었다고 들었습니다. 또 상당 수가 죽고 남은 인원이 자리를 잡았죠.”
“이런···.”
“여기는 그래도 대우가 좋은 편입니다. 다른 곳에서 노예가 된 자들의 소식을 듣곤 하는데··· 이곳에 있는 게 다행이라고 느껴지더군요.”
3호는 말하는 내내 건조한 음성이었다.
희망이 없는 사람들이 대화할 때 이런 목소리를 내곤 했다.
“개선할 방법은···.”
“없습니다. 다들 돌아가려 했죠. 하지만 실패했습니다. 그야 우리는··· 무능력하니까.”
“무능력?”
“이곳에서 살던 주민들은 우리보다 뛰어납니다. 두뇌가 비상하고 전투하는 것을 보면 입이 떡 벌어져요. 마법, 혹시 마법이라는 걸 보셨습니까?”
“아뇨.”
“아마 운이 좋으면 보실 수도 있을 겁니다. 스칸다에는 마법을 사용하는 족속들도 있어요. 총도 없는 우리가 그들 사이에서 뭘 하겠습니까?”
그가 입김을 뿜었다.
“이제는 익숙해졌습니다. 그래도 돌아가고 싶지만··· 이곳에서 살아가는 주민들이 우리를 뭐라고 부르는 지 아십니까?”
“······.”
“난민. 거지 새끼들. 하···.”
“이세계에서 할 수 있는 일이 있습니까?”
“대부분은 원래의 주민들이 훨씬 뛰어납니다. 그래도 각성자 중 모험가가 되었다는 사람도 있었고··· 공학자들도 나름 대우받는 것 같더라고요."
갑자기 3호가 주변을 살피더니 조용히 속삭였다.
“아무튼, 스칸다에선 그 누구도 믿지 마세요. 모두가 적입니다. 살아남기 위해선 그래야 해요. 여기 난쟁이들도 함부로 믿지 마세요.”
“명심하겠습니다.”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들리더니 대화하는 곳으로 빌이 다가왔다.
“커흠. 얘기는 다 끝났나?”
“예··· 저는 이만 들어가보겠습니다. 자리를 너무 오래 비웠군요.”
3호가 고개를 꾸벅 숙이고 자리를 벗어났다.
성진은 3호와의 대화가 신경 쓰여 자신도 모르게 인상을 썼다.
‘난민··· 이게 무슨···.’
스칸다와 종말 이후가 무슨 관련이 있다고?
‘아니, 관련은 있네.’
둘 다 데자뷰의 게임이라는 것.
당연히 스칸다의 서버를 보유하고 있는 것도 데자뷰일 테니 스칸다와 종말을 연결짓는 것도 그들의 뜻일 수 있었다.
‘하지만 ···왜?’
단순히 게임의 재미만을 생각했다면 스칸다가 아닌 다른 환경을 구현해도 됐을 것이다. 그렇지 않았다는 것은··· 이유가 있다는 얘기다.
‘내가 스칸다에 와야만 했던 이유가 있나?’
데자뷰에게서 답을 들을 수 있는 것도 아니라 궁금증만 쌓였다.
“음?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하나?”
“아닙니다, 하실 말씀이라도?”
“어떻게 할 생각인가?”
“생각 중입니다. 아무래도 당분간은 적응 과정이 필요해 보이네요.”
“흠··· 골치 아픈 문제군. 우리 쪽도 더는 노예를 부릴 형편이 아니라서 말이야. 장거리 운송이 어려우니 거래처가 늘고 있지 않아서···.”
“제가 스칸다에서 할 수 있는 일이 있을까요?”
“힘은 좀 쓰나?”
“힘?”
“신분이 없는 이방인이 할 만한 일은 딱 하나밖에 없거든.”
“그게 무슨 일이죠?”
“모험가.”
- ㅎㅎ 왔다! 튜토랑 조금 다르긴 한데, 본투비 모험가 등장!
- 힘이요? 방금 힘이라고 하셨어요?(알통에 뽀뽀한다)
- 내가 지금 보고 있는 게 종말이여 스칸다여 ㄷㄷ
- 아 몰랑~ 둘다 좋아··· 아니 사실 스칸다가 더 좋긴 해 ㅋㅋ
- 추억 보정 있어도 스칸다 갓겜이긴 했어
성진은 이름도 묻지 못한 3호와 빌의 말을 종합해서 잠시 생각했다.
‘활동하려면 신분이 필요하긴 해.’
종말이 무엇이든 극복하기 위해선 스칸다에서 활동할 신분이 필요했다. 그 신분이 노예라면 불편한 게 이만저만이 아닐 것이다.
‘모험가라···.’
성진도 스칸다를 플레이해보진 않았지만, 모험가가 어떤 일을 하는지 대강은 알고 있었다.
빌의 말대로 잠시 가지는 신분으로는 모험가만한 게 없을 것이다.
“모험가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죠?”
“따라오게. 지부의 사람에게 소개해주겠네. 그리고 당부로 끝나면 좋겠지만, 자네에게 싹수가 보이지 않으면 이방자는 모험가가 되기도 쉽지 않을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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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으킹리적갓심’님이 3,000원 후원하셨습니다!
[사실 스칸다 시즌 2 나옴 ㅋ 그래서 지금 올빼미 테섭 보낸 거 ㅋㅋ 독자들 반응 보려고]
- 스칸다 2 나오면 다 뒤졌다 ㅋㅋ 내가 먼저 정점 찍는다
- 제발 뇌피셜은 혼자 가지고 계세요
- 왜요?
- 설레니까. 네 녀석 때문에 내 심장이 꽤나 두근대잖아?
- 흐뭇~ 스칸다 2에서 함께 모험을 떠나볼까요?
‘모험가협회···’님이 1,000원 후원하셨습니다!
[그리운 이름이군··· 벌써 몇 년 전인가. 아, 이 아저씨가 누구냐고? 아저씨는···]
- 밀수야. 그 때도 방송으로만 봤어
- 개그맨이었지. 투기장 괴물들한테 머리털 뜯겼어
- 아 동대륙 마렵다··· 난 동대륙 유저였는데ㅋㅋ
- 동대륙에도 네임드 꽤 있었지~ 그립다
- 응 ㅋㅋ 난 송하린 쪽 줄 섰지만 동대륙도 낭만이 있었지
성진은 정유리의 행방이 궁금하기도 했지만, 그녀는 어차피 본체가 아니었기에 위험하다 판단했으면 페어링을 끊고 대전에 상황을 전달했을 것이다.
난쟁이 빌과의 거리를 유지한 채 뒤따랐다. 그런 그를 보고 주민들이 수군거렸다.
“이방인? 야장들이 또 노예를 샀나?”
“거기 요즘 거래처 막혀서 더 못 굴릴 텐데?”
“노예 사냥꾼들도 요즘 워낙 비싸게 부르니 산 건 아닐 거고··· 뭐지?”
“신경 끄자고. 난쟁이들이 참견하는 거 제일 싫어하는 거 몰라?”
“지랄맞은 땅콩들 일에는 신경 끄는 게 맞지.”
거리에서 달라 붙는 시선의 온도만으로도 이방인에 대한 인식이 어떤 지를 단박에 알 수 있었다. 성진은 타인의 시선을 신경 쓰는 타입이 아니었지만, 불쾌감을 느낄 정도로 불친절한 시선이었다.
‘지금은 그것보다 다른 문제가···.’
불친절한 시선보다 더욱 큰 문제는 이곳에 온 이후로 능력이 제대로 발현되지 않는다는 점.
‘거미줄이 나오지 않아. 맹금의 시야도.’
적응으로 얻은 능력들과 시나리오를 완수하며 얻은 능력을 발동할 수 없었다. 특히 펄스를 끌어올리려고 해봤지만 몸안에 자리한 무지막지한 양의 펄스는 요지부동이었다.
‘이건 좀 심각한데.’
사이오닉, 블레이즈를 전부 사용할 수 없었다.
[환경 적응의 반동으로 일부 능력이 봉인됩니다.]
[표식을 유지하는 동안은 능력을 사용할 수 없습니다.]
[표식이 사라지면 봉인이 풀립니다.]
이런 복장 터지는 메시지가 상태창에 떠올랐다.
난민이 된 세종 사람들을 데리고 돌아가려면 힘이 필요했다. 그런데 능력을 일부 사용할 수 없다니.
‘그런데 이건 뭐지?’
후우웅···
신기한 것은 라이프 펄스는 온전히 다룰 수 있다는 것. 지금 성진이 느끼는 기분은 좀 더 복잡했다.
‘다른 종류의 펄스를 가져온다고?’
체내에 쌓인 블레이즈 펄스와 사이오닉 펄스를 라이프 펄스가 마음대로 가져다 썼다.
이건 다른 두 펄스와는 확연하게 차이를 보이는 성질이다.
졸지에 방어와 회복 능력만 막강해진 상황이라 어떻게 해야할지 머리가 아파왔다.
‘적응은 어떻지?’
이곳에 오기 전 마지막 메시지에서 환경 적응을 확인했다. 아마 그 이후 이상이 생기지 않았다면 적응은 제대로 사용할 수 있을 것이다.
‘잠깐··· 이거 설마?’
꿈에서 본 청설모.
청설모가 했던 수수께끼 같았던 말.
- 낡은 것을 잃고, 새로운 것을 얻으리라.
틀림없다.
청설모가 말한 것은 이 상황 자체다.
‘그 청설모는 대체 뭐였지?’
이해가 어려운 게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그래도 다행인 점은 봉인이라고 표시되는 것으로 보아 일시적인 현상 같았다. 세종으로 귀환한다면 다시 돌아올 것이다.
능력치는 그대로인지 움직임이 둔하게 느껴지진 않았다. 흘러넘치는 힘도 그대로였다.
그때, 빌이 건물 앞에 멈춰섰다.
“들어가지, 여기야.”
“···알겠습니다.”
모험가협회의 이오란 지부는 목조 건물이었다.
햇빛을 그대로 받는 곳이었지만 창문이 적어 내부로 들어서자 적당히 습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푸하하하하하!”
“그걸 가만히 냅뒀어? 일단 찌르고 생각해야지!”
“찔렀어. 근데 생각은 안 했는데?”
지부의 1층은 시끌벅적했다.
식당을 겸하고 있는지 테이블에는 적당한 안주가 깔려 있었고 술을 마시는 자들도 있었다.
끼이익···
노후된 문이 닫히는 소리에 모험가들이 성진과 빌을 돌아보았다.
“야장이 풀무질은 안 하고 여긴 왜 온 거야?”
“또 데칸 산 길 좀 뚫어 달라고 애원하러 온 거 아니야?”
“시발, 그 보수에 누가해? 목숨 걸고 하는 일인데 후려치는 것도 정도가 있지. 돈도 많지 않나?”
“이오란 난쟁이들은 돈 없어. 애초에 유통망도 안 뚫고 어떻게 이오란에 기어들어올 생각을 한 건지··· 뇌도 금속으로 되어있나?”
“쉿··· 알 굵은 땅콩들은 뒤끝 있다. 듣겠어.”
- 키야! 이 무뢰배들. 그리웠다 십새들아.
- 이오란 NPC들일 텐데 왜 처음 보는 얼굴들이지?
- 글게? 이오란이 아무리 개 흥 도시래도 한 명은 아는 얼굴 있을 줄 알았는데?
빌의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해졌다.
하지만 그는 이내 한숨 쉬고 접수대로 걸어갔다.
성진이 그의 뒤를 따랐다.
“어서오세요, 빌님. 일전의 건으로?”
“아니, 오늘은 달라. 그··· 이 친구가 모험가의 싹이 보일까 해서.”
접수원은 서른은 넘어 보이는 여성이었다.
나긋나긋해 보였던 그녀의 표정이 성진의 이마를 보고는 싸늘하게 굳어졌다.
“각인? 설마··· 이방인? 지금 이방인을 데려오신 건가요?”
“바쁜 건 알지만, 부탁 좀 하지.”
“하아··· 이방인들 업무는 비용 받는 거 아시잖아요. 천 명이든 만 명이든 재능이 없어요. 우리도 고역인 거 아시는 분이···.”
“그··· 이번만! 이번만 부탁하지!”
“하아··· 그럼 다 건너뛰고 적성 평가만 해도 돼요? 바쁜 시간이라 세세하게는 못 해드리는데···.”
“그거면 충분하지! 자, 올빼미! 이분이 적성 평가를 도와주신다는군.”
“···감사합니다.”
감사 인사에도 싸늘한 시선만 던져준 여인이 따라오라는 듯한 제스쳐를 취한 후, 방으로 향했다.
끼익···
여인을 따라 들어선 방에는 마법진이 그려져 있었다.
“올라서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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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인: 뭐어어어? 대검호의 재능이라고? 어맛··· 남자다워! 저··· 어때요?]
- 유입된 씨튜브 유벌놈들 자꾸 자기 본색 드러내내;
- 씹덕놈들 다 쳐내!
- 근데 왠지 저 전개, 설득력이······ 있어!
- 대검호는 맞지; 수르트 목은 폼으로 땄냐?
- 그럼 요르문간드 때는 궁수고 펜리르 때는 격투가겠네;
- 다 조용! 올라간다
성진이 마법진의 위에 올라섰다.
우우우우우웅···
찬란한 빛이 마법진으로부터 새어나왔는데, 검사를 맡은 접수원의 표정은 여전히 무덤덤했다. 이런 일을 매일 하기 때문인 것 같았다.
“됐어요, 내려오세요.”
“예.”
“밖에서 대기하고 계세요. 곧 결과 알려드릴 거예요. 기대는 하지 마시고요.”
“알겠습니다.”
끼익···
“어떻게 됐나?”
“기다리라고 하더군요.”
“쳇··· 이방인에게는 불친절할 거야. 자네가 참게.”
“괜찮습니다. 그보다 궁금한 게 있습니다.”
“뭔가?”
성진이 궁금한 건 다른 게 아니었다.
왜 자신에게 이렇게 호의를 베푸는지.
혹시 어떤 사연이 있는 건지.
‘그 3호라는 남자가 말한 것도 있고.’
아무도 믿지 말라는 말.
“저에게 왜 잘해주시는 겁니까?”
“내가? 아··· 그렇게 느낄 수도 있겠군. 음··· 사실대로 말해도 될까?”
“예. 말씀해주십시오.”
“불쌍하잖아. 자네는 내가 주웠는데 길에서 객사라도 하면 잠자리가 불편할 테니까.”
“···그렇군요.”
딱 그정도의 호의.
결과적으로 성진에게는 득이었지만, 그 안에 담긴 마음은 매우 가벼웠다.
“감사합니다.”
“감사는 무슨··· 결과가 나와봐야 알겠지만, 다른 곳에서 노예로 살아가는 건 솔직히 보고 싶지 않은 미래군.”
기본적으로 선한 사람이었다.
이방인들에게 거부감을 갖는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때, 접수원이 황급히 뛰쳐 내려왔다.
탁! 탁! 탁!
“오, 올빼미 님! 올빼미 님이··· 아! 거기 계셨네요!”
“결과가 나왔나요?”
“예! 나왔어요! 그것도 아주 좋게요!”
“다행이군! 다행이야! 어디 가서 밥은 벌어먹겠군!”
“빌님, 그런 말을 할 정도가 아닐 거예요···.”
“응? 무슨 소린가?”
접수원이 소란을 떨자 주위의 모험가들이 궁금해하며 다가왔다.
“아! 뭔데 그래? 나도 같이 좀 보지!”
“뭐 대전사의 자질을 타고 났다나? 푸흡··· 이방인이 끽해야 칼받이나 길잡이겠지.”
“이방인치고는 그 정도면 출세한 거지 않나?”
“그 말도 맞고.”
접수원이 주위의 눈치를 살피더니 빌과 성진에게 말했다.
“안으로 모실게요.”
“안으로?”
성진과 빌은 접수원의 말에 의아했지만 그녀를 따라 접객실에 발을 들였다.
“후우··· 불러드릴게요.”
“네.”
접수원이 숨을 고르고 물을 한 잔 마신 다음, 성진과 마주 앉은 상태로 검사 결과를 읊기 시작했다.
“일단··· 신체 능력이 계측 가능한 범위를 벗어났어요. 이건 대전사의 자질, 혹은 엄청난 잠재력을 지녔던가··· 아무튼, 그래요.”
“뭐, 뭐라고? 정말인가?”
“빌님은 조용히 계셔주시겠어요?”
“대전사라면···.”
“예. 모험가들 중에서도 수위에 꼽히는 재능이에요. 과거의 영웅들 중 몇이 계측 범위를 벗어나긴 했었지만 요즘에는···.”
“그래, 이런 재능은 없었지.”
성진이 과거의 영웅이라는 단어에 대해 좀 더 듣고 싶었지만, 접수원은 흥분했는지 계속 이야기를 쏟아냈다.
“더 놀라운 사실은 마력 수치에요.”
“마력? 설마 마력도 높은 건가? 마, 마검사!”
“아뇨, 마력은 없어요. 먼지 만큼도 발견되지 않았어요.”
“···이런. 그럼 고작해야 용병이나 되면 다행일까? 아니면···.”
“제 말을 끝까지 들으세요, 빌님. 마력이 없는 대신 신성력이 있어요.”
“신성력? 신성력이라고? 지금 내가 잘못 들은 게 아니지?”
접수원이 고개를 세차게 끄덕였다.
아까와는 달리 열의 넘치는 모습이었다.
빌이 물었다.
“얼마나?”
접수원이 양팔로 엑스자를 만들었다.
“없다고? 있다며? 장난하는 건가?”
“계측 불가능이라고요.”
“이런 세상에···. 이방인이?”
“예! 며칠 안으로 신전의 사람들이 방문할 거예요.”
“미치겠군···.”
- 우리도 미치겠다 ㅋㅋ 힐러라고?
- 현실 굇수인 내가 이세계에선 힐러?
- 엥? 힐링 머신이라고? 잘못 알았겠지; 딜링 아니면 킬링일 거라고
- 갑분힐 뭐냨ㅋㅋㅋ 올빼미가 힐이라니; 안 어울려;
- 괜히 라이프 펄스는 얻어 가지고 ㅋㅋ 블레이즈랑 사이오닉은 왜 안 되는 거야
갑자기 성진의 안색이 굳었다.
그런데, 그의 표정을 굳게 만든 건 검사 결과가 아니었다.
누군가의 채팅이었다.
“자네 왜 그러나? 좋아해야 하는 일 아닌가?”
“그래요! 이건 정말···.”
“별일 아닙니다. 신경 쓰이는 게 있어서.”
“신경 쓰인다고?”
성진은 한창 자신이 가질 모험가로서의 지위에 대해 떠들던 시청자들이 다른 화제로 넘어가는 것을 지켜보았다. 자신의 시선을 잡아 끈 채팅이 바로 그 화제의 시발점이었다.
- 달력 본 사람? 루키아력 1072년이라고 적혀 있는데? 내가 잘못 알고 있는 거 아니라면 섭종 1022년 아니었냐?
성진도 달력을 보았다.
1072년이라고 적혀있는 달력.
성진은 스칸다를 플레이하지 않았지만, 대다수 시청자들은 플레이했기 때문에 이를 정확히 기억하고 있었다.
- 헐; 맞네! 뭐야?
- 개씹소르으으으으음! 뭔데 미친! 진짜 스칸다 2 나오냐?
성진이 달력을 가리켰다.
“달력이 오늘 날짜인가요?”
“아, 아뇨. 잠시만요.”
- 그럼 그렇지!
- 어디서 페이크를 ㅋㅋ 좀 놀랬다? 서프라이즈~
드르륵···
안내원은 달력의 한 장을 뜯어내었다.
“며칠 전에 달이 바뀌어서··· 이제 맞을 거예요.”
- ······시발
- 미친···
성진이 온 곳은 스칸다가 맞았다.
하지만 시간대가 달랐다.
마왕이 사라진지 50년.
이곳은 50년 후의 스칸다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