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1
81화
‘ㅋㅋㅋㅋㅋ’님이 3,000원 후원하셨습니다!
[에반데; 진짜 저렇게 한다고? 터질 텐데;]
- 10에바다 진짜루;
- 계획대로만 되면 좋긴 한데··· 찝찝하네
- 끄음-찍
성진은 재성의 얘기를 한 차례 들었었다.
그의 계획은 허술했고 다소 과격한 구석이 있긴 했지만, 현재로서는 다른 방법이 없었다.
‘그래도 좀···.’
찝찝한 계획이다.
정수열이 재성에게 말했다.
“그러니까, 그 휴머노이드들의 연산 장치에서 긍정적인 감정을 증폭시켜 강제로 화이트로 만든다는 계획 맞습니까?”
“그래, 허무맹랑하지? 그리고 화이트는 힘들 거고, 그레이라도 되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있어. 어떻게 생각해?”
정수열과 손성일은 눈을 감고 침묵했다.
침묵하는 시간이 좀 길다 싶었을 때 정수열이 입을 뗐다.
“우선, 가능합니다. 안티가 접속한 네트워크의 신호를 해석해서 역으로 파장을 맞추면 가능할 것으로 생각됩니다.”
“일단은 희망적이네.”
“저는 대안 없이 비판하는 것을 싫어합니다만··· 이 계획은 기각했으면 좋겠습니다.”
“뭐? 왜?”
손성일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가 말했다.
“펜리르가 한 행동을 우리가 똑같이 해서는 안 돼.”
“무슨 멍청한 소리를? 그럼 이대로 다 같이 죽자는 거야? 아니, 나는 블랙이 될 테니 영감님이 내 손에 죽겠네.”
“잊었나? 안티는 결국 휴머노이드와 인간의 대립으로 탄생한 존재야. 다시 우리들의 이익을 위해 휴머노이드를 이용하기만 하면 과거의 잘못을 답습하기만 할 뿐이야.”
“속 편한 소리를 하네. 무슨, 소년 만화야? 펜리르부터 치우고 생각해야지. 그리고 휴머노이드는 인간의 편의를 위해 만들어진 존재 아니야?”
“그렇다 할지라도 이 계획은 꺼려지네. 같이 다른 방법을 생각해 보면 안 되겠나?”
“빌어먹을···.”
재성이 마음에 안 든다는 듯이 물러났다.
한쪽에서 반대하면 이뤄질 수 없는 계획이다.
그 모습을 구석에 있던 여성형 그레이가 보고 있었다.
성진에게 제압당했던 전투형 휴머노이드다.
“재밌네. 인간도 좀 깨닫긴 했나 봐?”
“뭘 말이지?”
“휴머노이드를 도구로만 사용한 후의 미래를. 지금이 딱 그런 상황이니까.”
“시비를 걸 생각이라면···.”
“아니, 반대야. 흥미가 생겼어. 그대로 진행하려 했으면 무리를 이끌고 빠질 생각이었는데, 영감탱이가 한 말 때문에 남을래.”
“올빼미가 무서워서가 아니고?”
“넌 닥쳐. 죽인다?”
- 재성이는 저 여성체 괴롭히는 맛에 사나? ㅋㅋ
- 깐족거리는 거 개 잘해 ㅋㅋㅋ
정수열과 재성이 동시에 한숨 쉬었다.
“하아··· 그럼 이제 다시 원점이네요. 안티가 될 운명인 휴머노이드를 어떻게 우리 편으로 만들 수 있을지.”
“하다못해 그레이만 되어도 문제가 없는데 말이야.”
회의에 참여하지 않고 구석진 곳에서 듣고만 있던 정유리가 벌떡 일어났다.
“아버지, 내가 하겠습니다.”
“···유리야? 그게 무슨 소리야?”
“내 채널을 사용하십시오. 나는 노력해보겠습니다.”
“채널? 채널이라··· 이런···.”
“왜? 무슨 소리야? 채널?”
정수열이 다른 그레이의 물음에 답했다.
“유리는 채널의 관리자야. 그 얘기였군··· 유리의 채널에 그 휴머노이드들을 접속시키면··· 아니, 너무 위험해!”
“아까부터 혼자 무슨 말이야? 알아듣게 설명해.”
“관리자가 접속자의 오염된 부분을 잘라낼 수 있어. 하지만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릴 텐데···.”
“다릅니다, 아버지. 나는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달라? 어떤 생각이길래···.”
정유리가 계획을 설명했다.
“경험하게 할 겁니다. 나의 경험을 그들이 똑같이 할 수 있도록 할 생각입니다.”
“···접속자에게 관리자의 기억을 가속해 보여준다는 얘기, 맞니?”
“그럴 생각입니다. 이상합니까?”
“아니, 오히려 가장 나은 계획이야. 재성의 계획보다 확률도 훨씬 높아. 하지만··· 동일한 경험이 동일한 감정을 끌어내는 것도 아니고, 관리자가 오염에 노출될 위험도 있어. 알고 있니?”
“이건 나의 의지입니다. 나는 오염에 지지 않습니다. 나는 정유리입니다.”
그녀가 결연히 답하자, 그레이들과 성진, 그리고 회의장에 있는 사람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 수밖에 없네. 그럼 그렇게 하자고.”
****
‘유리죽이면’님이 1,000원 후원하셨습니다!
[가만 안 둔다! 나 주머니에 벽돌 넣고 다녀!]
- 그걸 왜 넣고 다녀 ㅋㅋ
- 근데 계속 상황이 좀 그렇게 될 것 같긴 함
- 플래그 오지게 세웠자너~ 염병~
‘이세계를창조하신’님이 10,000원 후원하셨습니다!
[데자뷰님! 방금 당신의 카고 바지에 만원 넣었습니다. 유리 죽이지 마세요!]
- 데자뷰가 아니라 올빼미한테 줬는데?
- 아; 헷갈렸다;
- 다신교였구나 데자뷰랑 올빼미 ㅋㅋ
성진과 정유리, 그리고 양준호는 바쁘게 돌아가는 벙커의 상황에도 주인혁의 병실에 들렀다.
양준호가 병실을 훑어보고 말했다.
“애송이 어디 갔지?”
“주인혁이 없습니다, 올빼미. 당신에게 말을 하였습니까?”
“아니, 물어보자.”
병실을 관리하는 분께 여쭤보니 기가 막힌 답을 들을 수 있었다.
“그만 누워 있겠다고 하고 나갔는데··· 얘기한 거 아니었어요?”
그때, 주인혁이 철그럭 소리를 내며 문을 열고 들어왔다.
“어? 왔어? 뭐 하고 있어, 거기서?”
그는 슈트를 입고 있었다.
- ㅎㅎ 만화책 빌리러 간 줄 알았는데
- 나는 잡지 들고 화장실 간 줄···
- 잡지 들고 화장실 가서 뭐 하는데? 수상한데?
- 사, 사람 수 세기
- 경제 동향 분석이지 당연히···
성진이 주인혁을 보고 얘기했다.
“슈트는 왜 입었어?”
“곧 출발한다잖아요. 차에 실려 가기는 싫어요. 차라리 죽고 말지.”
“애송이, 겁이 없어졌다? 얼마 전까지 올빼미 형 뒤에 숨어있던 자식이···.”
“그게 내 매력이야. 사실 힘을 숨기고 있었어.”
“그럼 계속 숨기겠네.”
“이 자식이···.”
피식대며 웃는 둘을 쳐다보고 있는 성진에게 주인혁이 바이저를 내밀었다.
“형, 이것 좀 부탁해도 돼요? 팔이 불편해서···.”
“···그래. 이리 줘.”
성진이 팔이 불편한 주인혁 대신 바이저를 그의 머리에 씌워주었다. 가볍게 쏙 들어간 바이저는 슈트와 연결되어 빈틈을 틀어막았다.
“하아··· 전장이 나의 고향이오, 피는 곧···.”
“개소리하지 말고. 진짜 몸 괜찮아?”
“조금 어질어질하긴 해, 근데 누워있다고 나아질 것도 없어. 의사 선생님도 본인 솜씨가 좋아서 걷는 정도는 상관 없을 거랬어.”
“걷기만 할 거지?”
“봐서.”
곧 펜리르와 대전의 전부를 건 싸움이 기다리고 있다. 그런데도 주인혁과 양준호은 믿기지 않을 정도로 쾌활하게 대화를 나눴다.
“그런데 너 팔에 막 레이저 빔 같은 거 장착할 수 있는 거 아니냐?”
“내가 가제트냐?”
“아니, 보통 의수 낀 사람들이 그러잖아.”
“네 로망이고 그건. 핸드 믹서 같은 거는 생각해볼 만하겠네.”
“오우, 좀 로망을 아는 녀석인가?”
정유리가 그 모습을 보고 옅게 웃었다.
“응? 너 무슨 고민 있냐?”
“주인혁, 여자의 마음을 훔쳐본 겁니까?”
“이게 뭔 헛소리야. 얼굴이 어둡길래 한 말인데.”
“얼굴이 어둡다? 인공 피부의 발색을 얘기한 겁니까? 아니면 단순히···.”
“됐어. 고민 없으면 말고.”
“있습니다, 고민.”
정유리가 그레이와의 회담에서 얘기한 내용을 주인혁에게 말했다.
“나는 해낼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해내야 한다는 상황인 건 알고 있습니다.”
“그럼 됐네. 해내.”
“···알겠습니다.”
“도움이 필요하면 말하고.”
“주인혁의 도움이 필요하다는 건 절망적인 상황이라는 걸 겁니다. 나는 그런 상황이 오지 않기를 바랍니다. 나는 올빼미에게만 도움받을 생각입니다.”
“···너 나랑 형이랑 물에 빠지면 누구부터 구할 거야?”
“둘이 왜 물가에 같이 갔습니까? 수상합니다.”
“···됐다.”
- ㅋㅋㅋㅋ 진짜 왜 같이 갔냐고! 궁금하잖아!
- ㄹㅇ 명쾌하네 ㅋㅋㅋ
- 주인혁(고양이 손)
- 주인혁(물에 빠지면 늦게 구해짐)
성진의 이어셋으로 정수열의 음성이 들려왔다.
“준비 끝났대. 내일 점심쯤에 출발할 거야.”
“그럼 눈이라도 좀 붙이고 가죠.”
****
성진은 다른 이들보다 먼저 일어나 싸움을 준비했다.
은신처의 모든 차량이 움직이고, 모든 사람이 움직인다. 거점을 버리는 행동은 위험했지만, 수비 병력을 남겨둘 수도 없었고 안티의 움직임도 수상했다.
“일찍 일어나셨군요. 애들은···.”
“···조금 더 자게 내버려 두죠.”
정유리와 주인혁, 그리고 양준호는 밤새 떠들었는지 다닥다닥 들러붙어 침상에 기댄 채로 자고 있었다.
성진은 문을 조용히 닫고 나와 출발 준비를 했다.
그에게 재성과 혜령이 다가왔다.
“오, 부지런하네.”
“습관이라, 무슨 일이야?”
“다른 게 아니라··· 너한테는 미리 말해둬야 할 것 같아서. 영 찝찝하니까.”
재성이 이야기한 것을 듣자 성진도 찝찝한 기분이 들었다.
“적재한 곳에 폭탄을 설치한다고?”
“그래, 안전장치 하나 없이 깨울 순 없잖아? 왜 그렇게 봐?”
“그걸 깨어난 휴머노이드가 알게 되면 어떤 기분일까 생각 중이야.”
“엿 같겠지. 그래도 인간이 아니라 같은 휴머노이드라 봐주지 않을까?”
“연산 장치를 부수는 정도로 봐주겠네.”
“그 정도 리스크는 짊어져야지! 항상 나쁜 짓은 내가 해야 한다니까··· 빌어먹을 세상.”
재성의 고민도 이해가 갔다.
정작 깨운 휴머노이드들이 안티가 돼버린다면, 펜리르와 싸워보지도 못하고 절망적인 손해를 입을지 모른다.
그것을 대비하는 것이다.
“그럴 필요 없어, 문제가 생기면 나설게.”
“폭탄보다 더 듬직하네. 나도 일단 생각만 그렇게 하는 거야. 모든 상황을 대비해야 하니까.”
이어셋으로 상황을 전달받았다.
곧 출발한다는 얘기.
미리부터 차량에 탑승해 있으라는 지시다.
“잘 풀려야 할 텐데···.”
“···그래야지.”
성진과 재성이 각자의 차량에 나눠탔다.
운전하는 인원이 낯이 익었다.
“이름이 뭐였지?”
“휴머노이드 이름이 궁금해?”
“부르기 편하게.”
“아연이라고 불러.”
“그래, 아연.”
자신과 투닥거린 여성 휴머노이드다.
전투형이라고 들었는데 왜 운전을 하고 있는지 궁금했다.
“거칠게 움직일 거지?”
“일단은 그럴 것 같은데.”
“전투형은 운전도 수준급이야. 어지간하면 놓고 갈 일 없으니 믿어도 돼.”
“믿을게.”
운전자의 실력이 뛰어나면 자신도 마음 놓고 싸울 수 있다. 몇십 분이 지나고, 차량 탑승을 완료했다는 소식.
성진은 자신이 들고 있는 총기를 매만졌다.
‘좋은 총이네.’
굵직한 선이 특징인 총신, 적당한 크기와 그립감.
듣기로는 집탄률과 반동도 훌륭한 축에 속한다고 했다. 연사와 단발도 자유롭고 일단 튼튼했다.
‘그게 제일 중요하니까.’
그르으응···
차량에 시동이 걸리고 철문이 열리기 시작했다.
어두컴컴한 하늘이 많은 이들의 기분을 울적하게 만들었다.
“날씨 참 뭐 같네. 벨트··· 안 맬 거지?”
성진이 고개를 끄덕이자 아연이 차를 출발시켰다.
지프 차량의 뒤로 차량이 수도 없이 이어졌다.
어마어마한 수였다.
하지만, 그 안에는 그렇게 많은 인원이 타 있지 않았다.
새로 맞이할 인원들을 위해 비워진 자리다.
차량이 차도로 들어섰다.
‘벌써···.’
차량의 행렬에 접근하는 무리가 느껴졌다.
이렇게 많은 무리가 근처에 우연히 있었을 리가 없다.
미리부터 대기하고 있던 것 같다.
‘은신처를 알고 있었나?’
그렇다면 오늘 은신처를 나선 건 옳은 판단이었다.
잘못하면 빠져나오지도 못했을 테니까.
철컥-
가볍게 탄환을 장전하고 대기했다.
“고개 내밀지 마. 위험할 텐데.”
“괜찮아.”
끼이이익···
차량히 급하게 방향 전환을 했다.
신호를 지킬 필요가 없으니 핸들링이 과격했다.
성진은 그 와중에도 창밖으로 흔들림 없이 사격을 가했다.
터엉-!
격발음이 특이했다.
에너지 응집률이 묵직해서 손맛이 있었다.
“뭐야? 잡은 거야?”
- 우리가 묻고 싶었는데 누나 땡큐
- 걍 쏴본 거 아님?
아연의 질문에 성진이 대답했다.
“잡았어, 근데 운전 잘하는 거 맞지?”
“선두로 치고 나가야 해서 그래. 앞쪽에 문제가 생긴 거 같아.”
“나도 들었어. 가보자”
도로가 넓어지는 순간을 노려 아연의 차량이 선두 쪽으로 파고들었다.
그아아아아앙···
엔진 소리가 귀를 먹먹하게 만들 때, 옆 차량에 타고 있는 재성이 손가락으로 앞을 가리켰다.
“뭐가 막고 있어! 우리 움직임을 예상한 거 같은데?”
“맡겨.”
안티의 장벽이 조금 떨어진 거리에 세워져 있었다. 도로를 아예 틀어막아 차량의 행렬을 멈출 생각이었던 것 같았다.
대형 차량으로 밀어버려도 되겠지만, 피해가 있을 우려가 있다.
성진이 지프의 창밖으로 고개를 살짝 내밀고 조준했다.
파직··· 파지직···
사이오닉 펄스를 끌어올렸다.
성진의 감각이 타격점을 정확히 짚어냈고, 조준 시가 명중률을 보정했다.
아직 안티의 장벽과 거리가 벌어져 있어 상대는 지켜보고만 있었다.
성진은 장벽을 날려버릴 만큼의 에너지를 담아 탄을 쏘아냈다.
후우우웅···
콰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앙!
전차포처럼 쏘아진 보랏빛 탄환이 안티의 장벽을 꿰뚫었다.
탄환은 엄폐물에 적중한 채로 그대로 밀고 나아가 반경 내의 안티를 아예 쓸어버렸다.
콰직-!
콰지지지지직-!
땅에 파인 흉터가 생겨났다.
“뭐, 뭐야 대체···. 방금 뭐한 거야?”
- -올-
- 올빼미가 ‘올’ 했는데 무슨 문제라도?
성진이 총기를 확인했다.
다행히 총기에는 이상이 없어 보였다.
물론, 연달아 쏘아내면 이상이 생길 수 있으니 조심할 생각이었다.
재성의 날 선 고함이 이어셋으로 흘러들어왔다.
“됐어! 밀어어어!”
아연이 다시 속도를 줄여 대형 차량의 뒤로 물러났다.
선두의 차량이 사격해오는 안티를 무시하고 그대로 밀고 지나갔다.
쿠드드득···
심상치 않은 소리가 들렸다.
차량들은 그대로 통과해 나아갔다.
“전투가 가능한 인원은 후방에도 배치했으니까 괜찮을 거야. 앞만 신경 쓰자고.”
“그래.”
차량의 행렬이 무사히 빠져나왔다는 소식이 들렸다.
‘시작부터 이러면···.’
재성이 휴머노이드를 숨겨둔 장소는 보문산 은신처에서 가깝다고 했다.
하지만, 그 가까운 거리에 안티가 끼어든다면 얼마든지 도착 시간이 늦춰질 수 있었다.
차량이 달리는 것을 멈추면, 그대로 고립되어 공격받게 된다.
안티들이 모여들수록 상황이 좋지 않게 흘러갔다.
“제길··· 왜 이렇게 굼뜬 거야! 앞에 속도 좀 내면 덧나나?”
행렬의 꼬리가 안티에게 당했다는 소식과 차량 몇 대를 잃었다는 소식.
온통 부정적인 소식뿐이었다.
“꼬리는 또 왜! 전투 조 새끼들 다 뭐 하는 거야?”
“운전에 집중해. 피해가 없을 순 없어.”
“알고 있기는 한데···.”
서서히 행렬이 깎여나갔다.
하지만 다행히 긴 행렬이 도중에서 끊기거나 하는 일은 없었다.
재성의 말이 들렸다.
“도착한다. 휴머노이드 산업 단지야. 시제품들을 모아 놓는 곳에 숨겨뒀어. 우리가 도착했을 땐 텅텅 비어 있었거든. 뭐 훔쳐낸 장소도 대부분 이곳이었지만.”
성진이 자신이 남아서 막아보겠다고 얘기했다.
하지만, 재성이 거부했다.
“혼자서? 그러지 마, 뒤편에 더미 차량을 이용하자. 여기는 입구만 막으면 그대로 요새가 돼.”
차량의 행렬이 단지의 출입구로 우악스럽게 밀고 들어갔다. 검문소가 있던 곳을 대형차량이 밀어버리니 그 흔적만 남았다.
“후방 차량으로 틀어막아!”
대형 차량이지만 그 속이 비어 있는 차들.
들어오던 그대로 핸들을 틀어 입구를 막았다.
단지를 둘러싼 외벽이 높게 세워져 있었기 때문에 확실히 입구만 막아낼 수 있다면 오래 버틸 것이다.
‘그래도 수가 너무 많아.’
안티의 수가 많아도 너무 많았다.
작정한 듯 몰려드는 안티들.
무장한 안티도 중간중간 섞여 있어서 얼마나 버틸지 장담할 수 없었다.
투두두두두-! 투두!
“올빼미. 넌 우리랑 가자. 뒤는 전투 조한테 맡기는 게 낫겠어.”
"그래."
성진의 운전을 맡았던 아연이 마지막 당부를 남겼다.
“마지막이야. 마지막으로 믿는 거라고, 알았어?”
“갈 거야?”
“저 병신들 나 없으면 아무것도 못 해. 전투형인 내가 나서야지.”
“부탁해.”
철컥-
거대한 건물 앞에 멈춰 선 차량에서 사람들이 쏟아져 나왔다.
성진이 재성에게 다가갔다.
“폭탄 설치고 나발이고 폭탄은 이미 전투 조한테 넘겼어. 무슨 말인지 알아?”
“실패하면 끝이라는 얘기.”
“망할 유린지 플라스틱인지 실패하면 가만 안 둔다고 해.”
정유리가 다가왔다.
“나는 해내겠습니다. 반드시 해내겠습니다.”
“그래, 제발 부탁해. 들어가자!”
그레이 한 명이 입구에서 재성을 돌아보며 말했다.
“락이 안 풀리는데?”
“적당히 해킹해서 풀어버려, 그것도 못 해?”
“나 그런 기능 없는데?”
“나도 못 하는데?”
“비키십시오. 나는 할 수 있습니다.”
삐-
철컥-
그그응-
재성이 감탄한 듯 정유리를 돌아보다가 그레이들에게 말했다.
“몇은 남아서 경계해. 기도라도 하면서.”
“휴머노이드가 종교도 있었어?”
“그럼 창조주인 정수열 박사한테 기도하던가. 저기 가시네.”
“박사님! 부탁합니다.”
“하란다고 진짜 하냐?”
사람들도 입구를 틀어막기 위해 나섰다. 많은 인원이 있어 봐야 혼란만 가중됐기에 성진과 몇 명만을 남기고 전투 조와 합류했다.
지이잉-
팟! 팟! 팟!
건물에 조명이 들어왔다.
무덤덤한 성진도 놀랄 수밖에 없었다.
“죽이지? 어때?”
“···확실히, 성공하면 해볼 만 하겠네.”
“전부 전투형이니까. 그럼, 이 갓난아기들이 여고생 말을 들을지 나쁜 늑대 말을 들을지 확인해보자고.”
수천의 전투형 휴머노이드.
먼지 쌓인 장소에 희망과 절망의 총체가 놓여있었다.
****
“아버지, 됐습니까?”
“잠시만··· 됐다. 이제 채널 확장은 조금 수월하게 가능할 거야. 하지만 그뿐이다. 온전히 네가 해내야 하는 거야.”
“무섭습니다.”
“도망칠래? 아빠는 유리라면 이해할 수 있어.”
정유리가 고개를 휘휘 저었다.
“해내겠습니다. 정유리는 강합니다.”
“···장하네, 우리 딸.”
“시작하겠습니다.”
“잠시만, 아빠 잠시만 기다려줘···.”
정수열이 덜덜 떨었다.
“아버지는 뭐가 무서운 겁니까?”
“우리 딸이 다칠까 봐 그렇지··· 부모라면 당연한 거야.”
“나는 기쁩니다. 이 세상에 태어난 것과 아버지의 딸이라는 것도.”
“···시작하자.”
정유리의 푸른 눈이 더욱더 푸르게 변했다.
타다닥···
정수열이 홀로그램을 조작했다.
“됐어, 이제 휴머노이드들이 깨어날 거야.”
지이잉···
수천의 휴머노이드의 눈에 동시에 불이 들어왔다. 아직 혼란스러운지 고개를 삐걱거리며 주변을 둘러보는 휴머노이드들.
하지만, 곧 눈이 변했다.
피처럼 붉게.
그들의 입에서 절망이 쏟아져 나왔다.
“인··· 간···.”
“주욱···.”
재성이 듣고 양손을 하늘 높이 치켜올렸다.
“씨발, 누구 폭탄 가진 사람? 난 까먹고 두고 왔는데.”
철컥-
철컥-
일행은 깨어난 휴머노이드를 조준했다.
정유리가 몸을 떨며 말했다.
“채널 정유리, 확장합니다.”
파아앗-
붉은 눈의 휴머노이드들이 주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