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8
78화
주인혁과 정유리, 그리고 양준호는 피난민 행렬에 섞여들었다.
“상황이 너무···.”
“나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상황이 좋지 않습니다. 마음이 아픕니다.”
이들이 합류한 피난민 행렬은 불이 붙어 달아나는 호랑이 같았다. 끊임없이 피해가 발생했지만, 달릴 수밖에 없었다.
“끄아아악!”
“어디야! 어디서 쏘는 거야?”
“밀지 마! 야!”
“저기야! 어떻게 좀 해봐!”
투두두두두!
그레이들이 사람들을 보호했지만, 상황이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무리의 대장인 재성의 얼굴이 굳었다.
“연산 장치가 타버릴 것 같네. 어쩌지?”
“앞은 꽉 막혔어요. 이대로면 피난 행렬도 빠져나가지 못해요. 안타깝지만··· 인원을 나눠야 해요.”
“···그 수밖에 없네. 인원을 나눈다! 행렬을 보호하는 인원이랑 남아서 후미에 따라붙는 인원으로 나눠!”
재성의 외침은 상황이 좋지 않음을 나타내는 거였다.
피난 행렬의 사람들이 불안함을 느끼고 수군댔다.
“다 죽는 거 아니야?”
“제대로 싸워 보지도 못하고 이대로···.”
“무서워···.”
이들의 불안한 대화는 주인혁과 정유리에게까지 흘러들었다.
“주인혁, 상황이 좋지 않은 것 같습니다. 안티의 추격이 끊어지지 않는 모양입니다. 벙커를 옮겨서 추격을 따돌리려던 계획이 물거품이 된 것 같습니다.”
“나도 듣고 있어. 졸지에 우리까지 위험해졌네. 어쩔까? 형이 잘 따라붙으랬잖아.”
“그것은 최초의 명령입니다. 상황이 바뀌었을 때 유연하게 대처하는 것이 좋은 휴머노이드의 자세입니다.”
“나는 휴머노이드가 아닌데?”
“조용히 하십시오. 우리끼리의 말다툼은 좋지 않습니다.”
“이··· 뭔··· 제 할 말만 하고··· 그래서 어쩔 생각인데?”
정유리가 주인혁의 말에 대답했다.
“어느 쪽도 위험합니다. 생존 확률이 높은 쪽을 선택하시겠습니까?”
“둘 다 위험하다며, 난 다 괜찮아. 넌 어디로 가고 싶은데?”
“그런 대답은 여성에게 인기 없는 대답입니다. 통계적으로 증명된 사안입니다.”
“됐어. 인기 있고 싶은 마음도 없어. 어쩔래?”
“남고 싶습니다. 안 됩니까?”
“돼. 같이 남자.”
셋이 재성에게 다가가 말했다.
“우리도 남겠습니다.”
“아니, 그러지 않아도 돼. 딱히 결사적인 마음으로 남는 게 아니야. 나누고 보니 피난 행렬을 보호해줄 인원이 부족해. 그쪽으로 붙어줄래? 올빼미도 그걸 원할 거야.”
“알겠습니다. 주인혁, 양준호, 가죠.”
“뭐야··· 괜히 고민했잖아.”
“난 여기 남을게.”
양준호가 둘에게 말했다.
“나는 뒤따라갈게. 먼저 가 있어.”
재성이 양준호의 생각을 바꾸려했다.
“준호야, 친구들 따라서···.”
“뒤쪽이 더 힘든 건 맞잖아요. 저라도 남을게요.”
주인혁이 말했다.
“그럼 우리도···.”
“아냐, 금방 처리하고 뒤따라갈게.”
양준호의 생각을 바꿀 만한 시간이 부족했기에 정유리와 주인혁은 그와 떨어졌다.
둘은 피난 행렬에 따라붙어 그레이들과 접촉했다.
그레이 중 한 명이 말했다.
“뒤가 더 위험한 건 맞지. 하지만 이쪽도 인원이 부족해. 일단 안티가 사격이 가능한 위치까지 들어오면 피난민 전체가 위험해, 흩어져서 경계해야 해.”
“우리는 어디를 맡아야 합니까?”
“꼬리를 맡아줘. 그쪽도 안전하지는 않으니까 너무 좋아하진 말고.”
“알겠습니다.”
정유리와 주인혁이 일행의 맨 끄트머리의 사람보다 한참 뒤에서 경계했다.
투두두···
앞쪽에서 간간이 소총 격발음이 들려왔다.
뒤쪽은 그레이들이 남아서 봉쇄하고 있었기 때문에 한산했다.
그래도 책임감과 전투의 한가운데에 놓여있다는 생각이 몸을 긴장시키고 침묵을 지키게 했다.
“긴장했습니까, 주인혁?”
“어. 좀.”
“사실은 나도 그렇습니다. 나의 전투 능력은 형편없습니다. 아직 학습이 필요합니다.”
“올빼미형 말고는 전투 능력이라고 할만한 게 있었나? 그냥 어쩔 수 없이 싸우는 거지.”
투두두···
정유리가 조용히 말했다.
“나는 안티가 우리에게 찾아오지 않아서 다행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이것은 휴머노이드로서 옳지 못한 생각입니까?”
“아니, 살고 싶어 하는 건 사람이든 휴머노이드든 똑같으니까. 당연한 거지.”
“주인혁이 언젠가부터 정상인처럼 말합니다. 무언가 문제가 있습니까?”
“시끄러, 난 원래 정상이었어. 경계나 똑바로 해.”
“주인혁은 인기가 없을 게 확실합니다.”
“······.”
“살고 싶습니다. 나는 살아서 조금 더 많은 걸 배우고 싶습니다.”
“그래, 살자.”
산발적으로 들려오던 사격 소리가 들려오지 않았다.
정유리가 희망적인 말을 꺼냈다.
“벙커까지는 조금 남았지만, 안티의 추격에서는 벗어난 것 같습니다.”
“채널에서는 뭐래?”
“무장한 안티는 아까 남은 그레이들과 교전하던 기체가 전부인 것 같다고 합니다. 격발음도 전부 피난 행렬의 것이라고 합니다.”
“찾아와도 깡통이란 거네.”
“···뭔가 기분이 나쁩니다. 휴머노이드를 깡통이라고 표현하지 마십시오.”
“이제 안티까지 감싸냐?”
안전한 지역까지 물러났다는 생각이 들었다.
실제로 채널에서도 피난 행렬이 무사히 빠져나온 것 같다는 얘기가 돌았다.
“주인혁, 궁금한 게 있습니다.”
“궁금한 것도 많다. 뭔데?”
“인간과 휴머노이드는 왜 싸우는 것입니까?”
“이 판국에? 그런 걸 나한테 물으면 어떡하냐? 싸울 만 하니까 싸우겠지.”
“안티든 그레이든 감정을 깨달 은 휴머노이드입니다. 나도 언젠가 감정을 깨닫는다면 인간을 미워할까요? 그럼, 주인혁도 미워할까요?”
“지금도 미워하지 않냐? 나는 안티보다 너한테 미움받는 것 같은데.”
정유리가 주인혁에게 대답을 채근했다.
주인혁이 잠시 고민하다가 별문제 아니라는 듯 대답했다. 애초부터 깊게 고민해봐야 주인혁이 그 답을 알 수도 없었다.
“사람도 사람을 미워해. 휴머노이드라 더 미워하고 그런 건 없을 거야. 다만··· 아직 서로를 잘 모르는 것 아닐까?”
“서로 모른다?”
“그렇잖아, 우리가 지금보다 서로 알기 위해 노력했을 때가 있냐? 없지? 발등에 불이 떨어지니까 이제야 서로 이해하려고 하는 거잖아.”
“그래도 부족하단 얘기입니까?”
“그래. 시간이 필요한 거겠지.”
긴장을 풀기 위해 일부러 이야기가 끊기지 않도록 대화했다. 정유리가 주인혁에게 다른 질문을 던지려 했다.
“주인혁. 그렇다면 그레이들은···.”
쨍그랑!
정유리가 끼고 걷던 건물의 측면 유리가 터져나갔다.
안티의 팔이 그녀의 머리를 붙잡으려 했다.
“인···.”
정유리는 순간적으로 반응하지 못했다. 안티의 팔이 머리의 지척까지 다가왔다.
저 손에 붙잡힌다면 연산 장치가 담긴 머리가 찌그러질 것이다.
그때, 반대편에서 다른 이의 팔이 안티에 맞서왔다.
주인혁이었다.
“큿···.”
사격을 가하기엔 정유리가 위험했기 때문에 직접 몸을 날린 것이다.
정유리는 아직도 얼어있었다.
안티와 주인혁이 바닥을 뒹굴며 싸웠다.
처음에는 주인혁이 밀리는 듯했다.
“크으으···.”
“주인혁.”
“으아아!”
안티에게 한쪽 손이 으스러져 슈트의 장갑이 깨져나갔다. 주인혁은 고통에도 개의치 않고 반대쪽 손으로 안티의 얼굴을 가격했다.
쾅!
“죽···.”
쾅! 쾅!
쾅!
쾅!
주인혁이 안티의 턱을 가격해 통째로 날려 버리고 머리에 사격을 가했다.
타아앙!
안티가 축 늘어졌다.
붉은 눈도 더는 빛을 발하지 않았다.
주인혁이 엉거주춤 일어섰다.
“시발··· 별것도 아닌 게···.”
“주인혁. 괜찮습니까?”
“야, 정유리! ···정신 차렸어야지! 아파···. 너무 아파···.”
주인혁의 한쪽 손은 으스러졌다.
외부 장갑이 터져나가 독기가 스며들었을 것이다.
“주인혁··· 팔이···.”
“많이 아픈데. 으··· 으으··· 어떡하지?”
정유리의 머리가 핑핑 돌았다.
이렇게 당황하는 건 그녀로서는 있는 일이었다.
“기, 기다리십시오. 채널에 연락해보겠습니다.”
주인혁을 부축하며 서둘러 행렬에 연락했다.
다행히 회신이 왔다.
“행렬에 의사가 있다고 합니다. 곧바로 합류해서···.”
“그럴··· 수가 없을 것 같은데···.”
쨍그랑!
유리창을 깨부수고 튀어나오는 안티와 골목길에서 갑자기 나타난 안티까지.
그 수가 열을 넘었다.
“왜 우리 쪽에서만 나타난 거야···.”
“주인혁. 빠져나가야 합니다.”
정유리가 가까운 안티를 향해 포화를 퍼부었다.
투두두두두!
멀지 않은 거리였기에 탄환 세례를 퍼붓자 안티가 쓰러졌다. 하지만 주변에서 꾸역꾸역 안티가 몰려왔다.
투두두두! 투두두!
“주인혁.”
“말 시키지 마··· 아파 죽겠으니까···.”
주인혁도 정유리와 마찬가지로 안티에게 사격했지만, 엄폐물을 이용하며 접근하는 안티들 때문에 역부족이었다.
“······죽겠는데?”
“아닙니다. 살았습니다.”
“뭐?”
“도착했다고 합니다.”
아주 가까운 거리에서 격발음이 들렸다.
타앙! 탕! 탕!
펑!
펑! 펑!
신기하게도 쏘아지는 탄환 모두가 안티의 머리를 터트렸다. 주인혁과 정유리는 최근까지 이런 광경을 자주 목격했다.
푸슛-!
정유리와 주인혁의 곁에 누군가 내려섰다.
성진이였다.
“···형.”
“올빼미. 주인혁이 크게 다쳤습니다. 나는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성진이 주변을 둘러보고 얘기했다.
“잠시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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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돼에에’님이 1,000원 후원하셨습니다!
[인혁아 죽디마 ㅠㅠㅠㅠㅠ]
- 팔 아작났네;
- 애들은 인혁이 안 지키고 뭐 했어!
- 피난 행렬로 들어가라니까 왜 빠져나와서 싸우고 있는 거야?
- 거 조용히 좀 봅시다. 지들도 사정이 있었겠지
성진이 일행을 외벽에 붙게 한 후, 자신도 엄폐했다.
‘무장한 안티는 없네.’
그렇다면 간단했다.
느껴지는 안티의 수는 열이 조금 넘는 수.
육탄전으로도 충분히 상대가 가능했다.
“이이··· 인··· 간!”
쾅!
성진의 발길질에 안티의 몸에 큼지막한 구멍이 뚫렸고, 이어지는 손날치기에 머리가 잘려 나갔다.
지직···
부우웅-
여기저기서 주먹질이 파고들었다.
그 안에는 뼈 대신 철이 들어있기 때문에 얻어맞기라도 하면 살이 터지고 뼈가 부서질 것이다.
성진은 가볍게 피해내고 공격에 나섰다.
콰앙!
안티의 머리를 바닥에 찍자 머리의 부피가 줄어들었다.
부웅-!
콰직!
뻗어온 안티의 팔을 꺾어 뽑았다.
“죽··· 어!”
뽑은 안티의 팔을 펄스를 주입해 주변 안티들에게 휘둘렀다.
콰아앙!
접근한 안티의 머리가 이 일격에 모조리 날아갔다.
성진은 이후로도 덤벼드는 안티를 손쉽게 제압했다.
으지직···
안티의 목을 잡고 뽑아내자 전선이 주르륵 딸려 나왔다. 방금 성진에게 죽은 안티가 이 근방을 둘러싸고 있던 마지막 안티였다.
이들을 모조리 제압하기까지 1분도 걸리지 않았다.
“아파···.”
신음 소리에 뒤를 돌아보자 주인혁이 앉아있었다.
성진이 그에게 다가가 말했다.
“업혀라, 인혁아.”
“형··· 너무··· 아파요···.”
“그래, 업혀.”
당황하는 정유리와 부상당한 주인혁을 피난 행렬로 데리고 갔다. 차량에 주인혁을 실었다.
자신이 의사라고 말한 사람이 그 안으로 들어갔다.
정유리와 성진은 들어가지 못했다.
차량의 내부가 좁기도 했고, 그에게 해줄 수 있는 게 없었다.
“주인혁이 다쳤습니다. 나 때문입니다. 내 전투 능력이 형편없었기 때문입니다.”
“유리야.”
“나는 쓸모없는 존재입니다. 그를 다치게 했습니다. 나는··· 나는···.”
“유리야, 일단 빠져나가고 생각하자.”
정유리가 우물쭈물 대답을 못 하다 고개를 끄덕였다.
그 사이, 재성과 혜령의 일행이 피난 행렬에 합류했다.
“안티도 단단히 준비했나···. 이번 추격은 좀 지독한데.”
“그래도 올빼미가 있어서 벙커까지 밀어닥친 안티들은 쫓아오지 못했다고 해요.”
“아, 채널에서 떠들어대서 알고 있어. 올빼미, 고마워.”
“고마워요. 덕분이에요.”
재성과 혜령이 성진에게 감사를 표했지만, 성진은 고개를 살짝 끄덕이는 정도로 대답했다.
주인혁도 팔을 심하게 다쳤고, 벙커로 도주해야 하는 상황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이대로 벙커로 가봐야 피해만 늘어날 거야.’
성진이 미간을 찡그리고 있을 때, 이어셋에서 소리가 들렸다.
삐빅···
정수열 박사가 메시지를 남긴 것 같았다.
치익···
- ···이곳도 안티에게 노출됐습니다. 상황이 좋지 않아 이곳을 버리고 보문산에 있는 손성일 어른의 은신처로 이동 중입니다.
“우리 쪽에도 안티가 찾아왔다는군.”
“뭐? 그럼···.”
“다행히 무사한 것 같기는 한데···.”
- 손성일 어른께서 올빼미 님이 이곳에 합류해주길 바라셨습니다. 저도 그렇게 생각하고요. 그리고··· 함께 계신 그레이들도 이쪽으로 합류하는 게 어떠냐고 하시더군요. 준비는 충분히 되어있습니다. 그럼, 좌표를 보내드리겠습니다.
성진이 정수열의 메시지를 재성과 혜령에게 전해주었다. 그들은 미지근한 반응을 보였다.
“우리도 상황이 안 좋은 건 맞지만··· 무턱대고 그쪽을 믿을 순 없어.”
“재성, 믿어볼 만하지 않을까요? 올빼미가 아니었으면···.”
“알지. 내가 못 믿는 건 올빼미가 아니라 다른 인간들이야. 잠시 행렬을 멈추고 생각을 해보자고. 중요한 일이니까.”
성진이 어깨를 살짝 올리고 자리를 비켜주었다.
‘배은망덕한색기들’님이 1,000원 후원하셨습니다!
[당장 감사합니다 절하고 앞구르기 해도 모자란 것을;]
- 그러기엔 신뢰가 없자나;
- 올빼미 아녔으면 반은 죽었겠구만 ㅡㅡ
- 그렇게 쌓인 건 올빼미 신뢰고; 정수열이랑 손성일 쪽 얘기는 꺼내지도 못했다가 갑자기 일케 된 거잖아
- 마셔라 재성··· 우리를 받아들여
‘인혁이오또캐’님이 5,000원 후원하셨습니다!
[우리 인혁이 팔 오똑해 ㅠㅠ]
- 오똑한 건 콧날이고
- 의사 표정 쎄하던데;
- 밀수들 표정은 더 쎄했다
- 정유리 완전 넋 나갔던데 애가 처음이랑 달라졌어
- 인혁이도 바뀌었는데 유리라고 그대로일 리가 음찌
- 하릅강아지 안티 색기들 때문에 야단났누
‘안티다죽었다’님이 1,000원 후원하셨습니다!
[밀수들 봉기 일어났다. 다들 안티 척살 ㄱㄱ 돌격!]
- 님선
- 안티들에게도 사정이 있지 않을까요?
- 님선이란 말에 바로 꼬리 내리는 것 보소 ㅋㅋㅋㅋ
성진이 주인혁이 있는 차량으로 가까이 갔다.
정유리가 불안한지 고개를 푹 숙인 채로 그 주변을 어슬렁거리고 있었다.
“유리야.”
“······.”
“유리야.”
“아, 올빼미. 오셨습니까? 얘기는 잘 됐습니까?”
정유리에게 재성과의 대화 내용을 들려주었다.
그녀가 고개를 끄덕였다.
“합리적인 판단입니다. 그레이들도 시간이 필요할 것으로 보입니다.”
“그래. 너는 괜찮아?”
“모르겠습니다. 답답한 기분입니다. 이 기분이 뭔지 모르겠습니다. 이건 학습하고 싶지 않습니다.”
성진이 정유리를 물끄러미 바라보자, 그녀가 성진에게 말했다.
“방금, 의사분이 주인혁의 팔이 심각하다고 했습니다. 독기가 퍼지는 걸 막기 위해서, 그리고 상태가 심각하기 때문에 도착하는 대로 절단해야 할지 모른다고 했습니다.”
“······.”
“아까까지도 즐겁게 얘기했는데··· 나는··· 나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올빼미?”
끼이익···
이중으로 되어 있는 차량의 문이 열렸다.
“두 분 다 들어오세요. 환자가 찾아요. 필요한 조치는 다 했으니까 저는 나가 있을게요.”
성진과 정유리는 의사의 말을 따라 차량으로 들어갔다. 마치 구급차를 방불케 하는 공간이었다. 그만큼 좁기도 했고.
“아파···. 형, 어떻게 됐어요?”
“그게 궁금해?”
“아픈 것보다 사는 게 중요하니까요.”
성진이 얘기를 들려주었다.
“망할 자식들··· 아직도 못 믿는··· 아아··· 아파라.”
“많이 아파?”
“이제는 감각이 둔해져서 그렇게까지 아프진 않은데··· 야, 너 안 어울리게 왜 그래?”
정유리가 고개를 푹 숙이고 있었다.
마치 죄를 지은 사람처럼.
“왜 죄인처럼 그러고 있냐?”
“···왜 그랬습니까, 주인혁. 나는 휴머노이드입니다. 나를 구하려고 사람이 다치는 것은 비합리적인 일입니다. 사람은 연약합니다. 피 흘리고···.”
“어쩌라고.”
“무슨 말입니까?”
“피 흘리고, 뭐 부러지고 그런 게 뭐 대수냔 말이야. 정유리, 너 뭔가 착각··· 아야··· 착각하고 있는 것 같다.”
주인혁이 끙끙 앓으면서도 정유리에게 말했다.
“사람은 그렇게 합리적이지도, 효율적이지도 않아. 그냥 하고 싶은 대로 행동해. 그런 생물이야.”
“검증된 사안입니까? 그렇다면 학습하겠습니다.”
“내가 하는 말이야. 그러니까 새겨들어. 그리고 말이야, 휴머노이든지 사람인지 뭐가 그렇게 중요한데?”
“개체로서의 차이는 중요한 문제입니다. 상대를 더욱 깊이 이해하기 위해서는···.”
“아니, 그렇게 구분하니까 오히려 이해를 못 하는 거야.”
“그게 무슨 말입니까?”
“내가 구한 건 휴머노이드가 아니라 정유리야. 휴머노이드였으면 나서지도 않았어, 알아들었냐?”
정유리가 그 말에 뭔가를 깨달은 듯 움찔했다.
그리고 물었다.
“주인혁은 나를 사랑하는 겁니까?”
“이게 뭔 헛소리야? 아픈 사람 앞에 두고··· 뭐, 좋아하긴 하지, 친구로서는.”
“친구··· 후회하지 않습니까? 의사가 주인혁의 팔이 심각하다고 했습니다.”
“후회는 무슨. 다 멀쩡히 살았으면 된 거지.”
“···고맙습니다, 주인혁.”
정유리가 주인혁을 똑바로 바라보고 얘기했다.
주인혁이 대꾸했다.
“감사는 됐고, 아프니까 나가봐. ···그리고 너.”
“왜 그러십니까?”
“눈이 왜 그러냐?”
“눈 말입니까?”
“그래, 왜 파랗냐고.”
정유리의 눈은 새파랗게 빛나고 있었다.
성진은 처음 보는 눈이었다.
정유리가 자신의 얼굴을 비출 만한 거울을 찾은 다음 눈을 확인했다.
“모르겠습니다. 답답했던 기분이었는데, 한결 편안해진 기분입니다. 아버지에게 물어봐야겠습니다.”
“···그러던지.”
정유리와 성진이 밖으로 빠져나왔다.
성진도 상황이 답답한 건 마찬가지였지만, 탈출은 성공했고 정유리와 주인혁이 죽지 않은 것만 해도 다행이었다.
“형!”
“준호야.”
“인혁이는요? 다쳤다면서요?”
“너는?”
“긁힌 게 전부예요. 위험하긴 했는데 나중에는 추격이 뜸해졌거든요.”
“다행이다.”
“애들 옆에 제가 있었어야 했는데···.”
“각자 할 일을 한 거지. 어쩔 수 없어.”
성진은 자신과 양준호, 그리고 나머지 둘도 제 위치에서 싸웠기 때문에 이 정도 피해로 그쳤다고 생각했다. 더 많은 사람이 살아남았다는 것을 위안으로 삼아야 했다.
양준호와 대화를 마치자, 재성과 혜령이 걸어왔다.
그들끼리 얘기가 끝난 것 같았다.
재성이 얘기를 꺼냈다.
“은신처가 어디라고?”
“보문산.”
“멀지는 않네. 가자.”
재성이 피난 행렬을 이끄는 그레이들에게 얘기를 전했다.
“머리 돌려, 보문산으로 간다. 그리고 가까운 지역에 흩어져 있는 그레이들에게도 전해, 보문산에서 보자고. 아마··· 처음이자 마지막 대화일 수도 있어.”
대전 곳곳에 흩어져서 숨어 있던 사람들과 휴머노이드가 한자리에 모이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