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BJ는 종말에 적응했다-75화 (75/222)

# 75

75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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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5-4. 늑대의 밤]

「당신은 정수열 박사 일행을 구출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이들은 당분간 안전할 것입니다. 하지만, 정수열 박사는 절망적인 상황을 예견했습니다. 펜리르는 자신을 속박한 종말 거부 장치 ‘글레이프니르’를 역으로 해석하기 시작했고 그 과정이 끝이 나면 모든 휴머노이드를 펜리르가 통제할 것입니다. 그래도 아직 시간이 있습니다. 너무 늦기 전에 펜리르의 글레이프니르를 벗겨야 합니다.」

* 이 임무는 메인 시나리오입니다.

* 에어리어를 개방하기 위해서 누군가는 해내야 하는 임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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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수열 박사가 낙담한 것도 무리는 아니다.

상황은 절망적이다.

안티의 규모는 정확하게 파악되지 않았고, 그레이라는 정체불명의 휴머노이드 세력까지 나타났다.

‘벗기기는’님이 1,000원 후원하셨습니다!

[제 전문이죠ㅎㅎ 제 손만 닿으면 술술 벗을 겁니다]

- 강덕만 (37세, 인형 옷 벗기기 장인)

- 어이 강씨! 잡소리 하지 말고 양파 껍질이나 벗겨!

- 펜리르 : 얘는 뭐지?

‘종말마렵다’님이 3,000원 후원하셨습니다!

[요즘 철야 너무 많이 해서 접속도 못 했다 ㅠㅠ]

- 무슨 썹 하는데?

- 눈썹요

- 왓썹요

- 이것들이 돌았나

- 누우우운썹? 깔깔깔 부장님도 참··· 넘모 웃기네요. 아무래도 저 이번 주말 등산은 못 갈 것 같은데··· 네? 필참이라고요?

성진이 정수열 박사에게 말했다.

“그럼 유리가 대전의 상황을 타개할 열쇠인 겁니까?”

“···상황이 지금보다 나아진다면요.”

정수열이 한 말 중에 걸리는 게 있었다.

유리가 글레이프니르를 위해 만들어졌다는 얘기.

“혹시 박사님이 종말 거부 장치를 연구하던 분이셨습니까?”

“아닙니다. 그분들은 종말이 일어나자마자 돌아가셨고, 저는 말하자면 정부쪽 협력자죠.”

종말 거부 장치의 행방은 알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성진은 혹시 정수열이 정유리를 도구로 여기고 있을까 우려했다.

“박사님은 유리를 어떻게 생각하시는 겁니까?”

“···그게 묻고 싶은 거였군요.”

정수열이 손가락으로 책상을 툭툭 쳤다.

“유리··· 신기한 아이죠?”

“······.”

“처음에 그 아이를 설계했을 때는 철저하게 도구로 사용할 생각이었습니다. 단순히 글레이프니르를 수월하게 통제하기 위한 도구로요.”

“지금은요?”

정수열의 표정은 굳건했다.

자신의 마음은 확실하다는 표정이었다.

“제가 가정을 꾸린 적은 없지만, 지금은 유리를 도구로 보고 있지 않습니다. 이건 맹세할 수 있습니다.”

“그건 다행이군요.”

“바라는 게 있다면, 유리가 이런 세상에서도 행복했으면 한다는 겁니다. 뭐, 상황이 어렵겠지만요.”

- 그거, 어렵지 않습니다!

- 저희 기호 1번 올빼미가 꼭 이뤄드리겠습니다!

- 우리는 응원만 하고요!

- 다들 유리좌 응원 자세 알지? 국룰이자너~

- (대충 엉덩이 빼고 양 주먹 불끈 쥔다)

대전은 휴머노이드가 사람과 어울려 살아가는 유일한 도시다. 지금도 그렇다. 성진은 휴머노이드의 최고 권위자는 휴머노이드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했다.

“휴머노이드는 어떤 존재입니까?”

“제게 답을 구하시는 겁니까?”

“본인만의 답은 생각해 놓으셨을 것 같아서요.”

“모릅니다.”

- 네?

- 뭔지도 모르고 만들면 어떡해요!

“창조주도 창조물이 어떤 존재인지는 예상할 수 있지만, 정답은 아닐 겁니다. 하나부터 열까지 설계를 하고 만들어도 전혀 다른 모습을 보여줍니다. 저는 휴머노이드가 무엇인지 모릅니다.”

“···그것도 답이겠네요.”

“그거 아십니까? 유리라는 이름은 투명하게 모든 이를 비췄으면 한다는 개인적인 소망이 담겨있었습니다. 어쩌면 휴머노이드도 그렇지 않을까요? 인간의 거울 말입니다.”

“거울이라···.”

“사랑 받으면 똑같이 사랑을 베풀고, 학대 받으면 똑같이 학대를 하는··· 그래서 결국 안티가 탄생한 것 아닐까요?”

정수열과의 대화는 그레이에 대한 화제로도 이어졌다.

그는 흥미롭게 얘기를 듣다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들과 접촉해야 합니다. 그들이 어떤 목적을 가지고 있던 확인할 필요가 있고 어차피 지금 상황보다 더 나빠져봐야 티도 안 날 테니···.”

“아이들이 따라가겠다고 할 수도 있는데, 괜찮으십니까?”

“오히려 따라가라고 등 떠밀고 싶습니다. 올빼미 님 옆에 있는 게 오히려 안전할 테니까요. 저희도 여기서 조금 머물다 상황을 봐서 손성일 어른의 은신처로 옮기지 않을까 합니다.”

- 그놈의 손성일 어른은 왜 자꾸 나오는 거여?

- 근데 군수쪽 일하던 양반이면 능력자 아님?

- 적어도 목에 힘 좀 주고 다녔겄젱

성진은 계속해서 언급되는 손성일이라는 사람에 대해 물었다.

“그 손성일이라는 분은 어떤 분이십니까?”

“누구보다 휴머노이드를 증오하시는 분이에요. 아들을 휴머노이드에게 잃었거든요.”

“그런 분이 왜 동원이를 만든 거죠?”

“모순적이죠?”

“상당히.”

“분노를 쏟아낼 대상이 필요하셨나 봐요. 본인이 아닌 이상 확실하게 알 수는 없지만··· 아무튼 그 어른은 좀 복잡하신 분입니다.”

“그런데, 왜 다들 손성일이란 분의 말을 따르는 겁니까?”

정수열이 눈을 깜빡거리면서 성진에게 대답했다.

“정말로 대전의 상황을 아무것도 모르시는군요. 대전에서 손성일 어른이 가진 힘은 무소불위입니다.”

“어째서죠?”

“그··· 저속하게 들릴 수도 있겠지만 현대판 마피아라고 보시면 됩니다. 물론 범법적인 일은 대놓고 하시진 않으시지만 알게 모르게 소문이 있어서요. 대전에 휴머노이드 사병 조직까지 거느리는 걸 꿈꿨던 분이십니다. 물론, 중간에 어그러졌지만··· 무기 정도는 아직도 그분 은신처에 쌓여있을 겁니다.”

성진은 대구의 병기고를 떠올렸다.

혹시라도 그런 병기들을 생산하거나 유통하는 유력자라면 이들이 쩔쩔 매는 것도 이해가 되었다.

“그런데, 병기라면···.”

“저희도 설득했습니다만··· 일단 병기가 있어도 다룰 사람이 없지 않습니까? 안티는 수천인지 수만인지도 모르는데··· 몇 명이 무장한다고 달라질까요?”

“그것뿐입니까?”

“그것 말고도 휴머노이드를 믿지 못하시는 것도 크죠. 아무튼, 이거 받으십시오. 연락할 수 있는 수단입니다.”

정수열이 건넨 것은 이어셋이었다.

대구에서 김정우가 건넨 것과 흡사한 형태.

정수열이 진지한 눈빛으로 성진에게 부탁했다.

“아무쪼록··· 우리 유리를 부탁드립니다.”

- ㅗㅜㅑ;; 장인어른!

- 꼭 행복하게 해주겠습니다!

- 손에 물 한 방울 안 묻히겠습니다! 쇼트될 수도 있잖아요?

“알겠습니다.”

****

“떠날 생각이냐?”

“···아뇨, 아버지가 여기 있는데 제가 어딜 가요?”

“떠나도 좋다.”

“안 갈 거예요.”

손동원의 말을 대충 흘려넘긴 손성일은 다시 의자에 눕듯이 앉았다.

“···다리도 불편하시잖아요.”

“네가 신경 쓸 게 아니다.”

“아버지···.”

“동원아, 내 누누이 말했다.”

“······.”

“나를 아버지라고 부르지 마라. 내 아들은 이미 죽었다.”

손성일의 말을 들은 손동원은 고개를 푹 숙였다.

그걸 흘겨본 손성일이 손을 휘저어 손동원에게 나가라 독촉했다.

손동원이 사라진 자리, 손성일은 양손으로 얼굴을 감싸쥐었다.

“무슨 변덕이었는지···.”

그는 다시 의자에 몸을 파묻었다.

****

성진과 아이들이 얘기를 하기 위해 한자리에 모였다.

“형, 오늘 밤에 접촉하기로 하긴 했는데··· 여기서 거리가 좀 되요. 괜찮을까요?”“그 누나는 믿을 만하다고 했잖아.”

“그렇긴 한데··· 아시잖아요. 생각대로만 될 리가 없다는 거.”

- ㅎㅎ 생각대로 되게 해줄게

- 생각대로 T···자로 찢어 버리기

- 말하는 대로(물리)

“걱정마. 그리고 슈트는 입는 게 좋지 않을까?”

“그러려고요. 형도 입어야죠?”

“난 됐어. 오히려 불편해.”

얘기를 어떻게 풀어나갈지를 상의하고 있던 와중, 다른 아이들이 다가왔다.

“거기까지. 움직이지 마십시오.”

“···왜?”

“비밀 얘기는 나쁩니다. 친구 사이를 멀게 합니다.”

“그레이 얘기야? 올빼미 형이랑 방금 하고 있던 얘기.”

“응, 오늘 밤에 접촉하기로 해서···.”

양준호가 말을 하면서도 눈치를 봤다.

그레이와 접촉하는 자리에는 지금 성진과 양준호 자신만 나가기로 한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정유리가 머뭇거리다가 말을 꺼냈다.

“나도 가고 싶습니다. 잠시 기다려 줄 수 있습니까? 아버지에게 허락을 구해야 합니다.”

성진이 정수열 박사에게 미리 말해놨다고 얘기했다.

“나의 행동을 예상한 겁니까? 올빼미, 치밀하고 무섭습니다.”

“동원이랑 인혁이는?”

주인혁이 고개를 끄덕였다.

“전에는 사람들도 많아서 여기 있고 싶었는데··· 그냥 형 따라갈래요. 아무래도 불안해서.”

“그래.”“전 못 갈 것 같아요···. 죄송해요.”

“손동원, 아버지 때문입니까?”

“응, 내가 곁에 있어 드려야 해.”

손동원이 미안한 듯 쭈뼛거리자 다른 일행이 그의 어깨를 툭툭 쳤다.

“오늘 헤어지면 또 언제 보려나?”

“금방 보길 바라야지. 그레이가 희망적인 소식을 가져다 주면 좋을 텐데···.”

“아쉽습니다. 나는 손동원과 떨어지는 것을 예상하지 못했습니다. 무척 당황스럽습니다.”

“부부도 아니고 평생 어떻게 붙어있냐? 더군다나 이런 시기에···.”

“그럼 우리는 부부입니까? 우린 계속 붙어있습니다.”

“부부는 개뿔! 그냥 친구지!”

- 이젠 친구란 말도 쉽게 하네 ㅋㅋ

- 조련한 덕분이지

- 말 잘 듣는 순한 양이 되었군

손동원이 비록 이번 접촉에 함께하지는 못했지만, 그레이와의 접촉에 관한 이야기는 함께 나눴다.

“그들의 목적이 뭡니까?”

“아직 모르지, 그걸 알아내려고 접촉하는 거고.”

“함정인 건 아니겠지?”

“원래 알고 지낸 사이였어. 연락도 내가 사람들과 있다는 걸 알리기 전에 왔었고.”

그들과 접촉 시 조심해야 할 것과 얻어내야 하는 것들을 미리 조율하고 휴식을 취했다.

밤이 되어가자 준비와 작별 인사를 마친 일행은 주택을 빠져 나왔다.

주인혁이 성진의 뒤로 따라붙었다.

“배터리도 넉넉하게 챙겨왔고, 식량도 충분해요. 만약에 함정이면 저만 믿으세요, 형.”

“주인혁의 농담이 적절했습니다. 나는 높이 평가합니다. 67점.”

“네가 뭔데 평가하는데? 그리고 왜 67점이야?”

“친분을 고려해 가산점을 부여한 점수입니다. 이것에 만족하지 못하면 곤란합니다. 68점을 원하는 건 비도덕적인 욕망입니다.”

“쉿, 둘 다 조용히. 아직 연구소 근처라 주의를 끌면 안돼.”

휴머노이드들도 전부 슈트를 입었다.

성진은 슈트를 입는 대신 안티와의 일전을 고려해 15발 자동 권총을 한 정 챙겼다.

파괴력보다는 휴대성과 유연성을 고려했다.

어두운 골목을 벽에 딱 붙어 이동했다.

넝쿨이 자꾸 발에 걸려 불편했지만, 몬스터들은 꼬이지 않았다. 이 야밤에 대형 몬스터라도 나타나면 당장 그레이와의 접촉부터 어려워질 수 있었다.

꿀꺽···

주인혁의 침 삼키는 소리가 들렸다.

“아직 멀었어? 다리도 건넜는데?”

“거리가 좀 된다니까. 긴장했어?”

“그렇습니다, 주인혁. 긴장한 것 같습니다.”

“긴장? 내가? 별소릴 다 듣겠네.”

- 긴장?(어떻게 알았지?)

- 내가?(사실 쉬 마려워)

- 별소릴 다 듣겠네(그냥 싸서 말릴까)

- ㅋㅋㅋ 싸서 말려 뭔데 학교 선생님 단골 대사

‘ㄷ’자를 엎어둔 것처럼 보이는 구청 건물 근처에 다다랐다. 주택가에 조성된 골목들로 지나왔기에 안티는 보지 못했다.

“여기서 보기로 했는데···.”

성진이 벽 뒤에 숨어 바닥에 손을 짚었다.

지금부터는 몸이 노출될 우려가 있었기 때문에 주변에 적이 있음을 확인해야 했다.

‘인간형··· 꽤 여럿.’

이 근방을 에워싼 인간형의 기척이 꽤 되었다.

위치가 경계하기에 적절하게 배치된 존재들은 그레이일 것이고 그렇지 않은 존재들은 배회하는 안티일 것이다.

“마중하는 인원이 좀 많네. 다들 벽 뒤로 몸을 숨겨.”

“알겠습니다. 올빼미의 지시는 절대적입니다.”

“인혁이랑 뒤로 물러나 있어.”

“형, 위험하면 말하세요!”

그나마 안전한 공간으로 몸을 뺀 주인혁이 호기롭게 말했다.

- 뭐? 멀어서 안 들리는데?

- 더 크게 말해! 너무 깊숙이 숨어서 안 들려!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썩은 줄기를 밟는 소리.

발걸음에 힘이 실려있는 게 느껴졌다.

안티의 걸음걸이가 아니다.

거적을 뒤집어쓴 누군가가 다가왔다.

상대가 양손을 굽혀 하늘로 올려 공격할 의사가 없다는 걸 표시했다.

“준호를 만나러 왔는데··· 같이 오신 분은 누구시죠?”

“아, 혜령 누나! 저예요, 준호!”

“쉬이··· 목소리가 너무 커.”

“오랜만이에요, 누나. 어떻게 된 거예요?”

양준호가 바이저를 벗자, 상대도 뒤집어쓴 거적을 뒤로 젖혔다.

양준호와 같은 눈이었다.

한쪽은 빨갛고, 한쪽은 파란 눈.

“잘 지냈어?”

“누나는요? 그때 죽은 줄 알았어요.”

“죽을 뻔했지. 일단, 재회는 나중에 하자. 그쪽에 계신 분은?”

“저랑 생존자들을 도와주시는 분이에요. 각성자에요.”

“각성자라고?”

“예, 그런데··· 너무 많이 오신 거 아니에요?”

혜령이라는 휴머노이드의 뒤편으로 열 명은 되는 휴머노이드가 모여들었다.

모두 같은 눈이었다.

“경계하지 마, 우리도 조심해야 했어.”

“네. 이해해요. 아는 얼굴도 몇 명 보이네요.”

“오랜만이다.”

양준호와 휴머노이드 몇이 인사를 나누고, 본격적인 대화가 시작되었다.

“그레이가 사람들을 보호하고 있다고요? 원래라면 엮이지 않는 게···.”

“원래는 그렇지, 얘기가 길어. 서로 경계하는 건 알지만 남은 얘기는 아지트에 가서···.”

혜령이 말을 마치기도 전에 구청 건물의 한쪽 모서리가 허물어졌다.

콰아아아아앙!

철컥-

철컥- 철컥- 철컥-

경계하던 와중에 큰 소음이 들려오니 서로가 반사적으로 총을 겨눴다.

성진은 권총을 든 채로 날카로운 눈을 하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함정은 아니야.’

이들의 총구 중 반은 소리가 들려온 방향으로 가 있었다.

“뭐야, 너! 무슨 짓이야?”

“누나! 우리도 몰라요. 그쪽이 한 일 아니에요?”

“우리가 왜··· 저건 또 뭐야?”

성진은 이들을 경계하면서도 이곳으로 오고 있는 존재의 형체를 확인했다.

“꾸륵···.”

결국, 성진도 총구의 방향을 돌릴 수밖에 없었다.

콰아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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