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2
72화
아침이 되자 일행이 밤새 습기를 몰아내 주던 불을 정리하고 모였다. 주인혁의 눈이 퉁퉁 부은 게 어젯밤 운 게 타격이 있어 보였다.
정유리가 말했다.
“다들 안녕히 주무셨습니까? 나는 충분히 만족스러운 수면이었습니다.”
“우리야 수면의 질 같은 건 상관없잖아?”
“맞아. 그냥 시스템이 잠시 다운되는 기분인데 뭐.”
“나는 그냥 해본 말입니다. 반응이 좋지 않으니 다음부터는 하지 않겠습니다.”
머쓱해진 일행에게 정유리가 이어서 말했다.
“사실 어제부터 의문이 하나 해결되지 않았습니다. 이것은 무척 곤란합니다. 서둘러 의문을 해소해야 합니다.”
정유리의 말에 서로를 쳐다봤다.
“의문? 어떤?”
“안티는 어째서 지하벙커의 사람들을 구속만 하고 죽이지 않은 걸까요?”
“글쎄··· 그리고 아예 죽이지 않은 건 아닐 수도 있어.”
손동원의 말에 양준호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우리는 우리가 확실히 기억하는 몇 명이 생존한 것만 확인했으니까. 유리 네 아버지나 동원이 아버지 같은.”
“확인한 건 원래 무리의 10분의 1도 안 되는 규모였으니까.”
정유리가 양준호의 말에 호응했다.
“무리가 줄었을 수도 있겠군요. 그래도 이해가 가지 않는 게 있습니다.”
“아, 또 뭐! 아침부터 왜 이렇게 궁금한 게 많아?”
“화를 내지 마십시오, 주인혁. 필요한 의문입니다. 죽이지 않았다면 이유가 있지 않겠습니까? 제 말을 이해하셨습니까?”
“그래, 이유가 있다 치자. 그게 뭐?”
“안티는 맹목적으로 사람들을 죽입니다. 공격성을 보이며 사람을 보는 즉시 제거하려 합니다. 그런 그들이 사람들을 구속하고 있다는 건 이상하지 않습니까? 이것은 독서량 미달인 주인혁이 생각해도 금세 이상한 것을 눈치챌 정도입니다.”
“···야! ···근데, 진짜 그렇네? 맹수도 아니고 아껴 먹으려고 죽이지 않은 건 아닐 텐데···.”
주인혁도 이제야 이상함을 눈치챘다.
“두 가지 가설이 있습니다. 첫째는 이들에게 다시 자아와 이성이 생겨나 이전 안티와는 다른 존재가 되었을 수도 있습니다.”
“그래도 달라지는 건 없어. 안티가 이제까지 사람들을 얼마나 죽였는데? 종말과 맞먹을 만큼 많은 사람을 죽였을걸?”
손동원이 대답했다.
“그것은 맞습니다. 안티가 이제 와 반성한다고 해도 이미 돌이킬 수 없는 만큼 멀리 와 버렸습니다. 그럼, 두 번째 가설은 안티를 통제하고 있는 존재가 있는 것. 이 경우에는 그 존재의 의도가 안티의 행동 원리보다 우선순위에 놓이게 됩니다.”
“안티가 사람들을 죽이지 않고 살려두니까?”
“양준호도 훌륭합니다. 바로 그렇습니다. 그 존재의 의도가 어쨌거나 그들이 사람을 죽이지 않게 만들었습니다.”
주인혁이 반발했다.
“그래서, 어쩔 건데? 안티는 결국 다 죽여야 하잖아? 천하의 나쁜 놈들이니까.”
“맞습니다. 주인혁이 바로 답을 맞혀서 놀랐습니다.”
“···나도 그 정도는 알아. 근데 이 얘기는 왜 한 거야? 어차피 안티를 전부 파괴할 거면 굳이 할 필요 없는 얘기잖아?”
“아닙니다. 해야 하는 얘기였습니다. 답을 생각해둬야 대응할 때 혼란이 줄어듭니다.”
성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안티가 이상행동을 보였다고 해서 멈출 순 없다는 얘기네.’
망설이지 말고 처치해야 한다는 얘기다.
결국 안티의 근본이 바뀐 건 아니었으니까.
“잘된 일이네. 어차피 다 쏴죽일 참이었는데.”
“주인혁의 단순함이 이럴 땐 무척 힘이 됩니다. 나는 주인혁의 그런 점을 칭찬합니다.”
“그딴 칭찬 하나도 안 기쁜데··· 놀리는 거지?”
“아닙니다. 순수한 칭찬입니다.”
‘안티왜구랭’님이 1,000원 후원하셨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왜 안 죽였을까요?]
- 그거시 알고싶다···
- 우리끼리 얘기해봐야 무슨 의미야. 어차피 틀릴 텐데
- 오답 노트 집합소인 밀수들이 떠들어봐야 칼로리만 소모된다
‘ㅋㅋㅋ웃긴게’님이 1,000원 후원하셨습니다!
[생각은 휴머노이드가 하고 주인혁이 따르고 있네ㅋㅋ]
- 주인혁이 휴머노이드고 쟤네가 인간 아니었어?ㅋ
- 방금 들어온 사람은 ㄹㅇ 그런 줄 알겠다
- 사실, 올빼미도 딱히 생각하고 있던 건···
- 신성모독이다! 올빼미 님은 모든 걸 알고 계신다!
- 고개 끄덕이는 거 봤음ㅇㅇ 이미 올빼미 손바닥 안에 있음
성진과 일행은 석교동을 향해 걸음을 떼었다.
어제보다는 비가 금방 그쳤다.
덕분에 이동하는 데에 속도가 붙었다.
이들을 가로막는 위협이 나타나면, 성진이 금방 처치했다. 아주 손쉽게.
“저기··· 우리는 이럴 거면 그냥 다른 곳에서 기다리는 게 낫지 않을까?”
주인혁이 반나절 동안 성진에게 아무 도움도 주지 못해 한 말이다.
“충분히 고려해 볼 만한 사항입니다. 확실히 기여도를 백분율로 나타내면 올빼미 80퍼센트, 휴머노이드 15퍼센트 기타 등등 5퍼센트일 것입니다.”
“···나는 왜 기타 등등이냐?”
“기타 등등에 주인혁의 기여도가 있다는 얘기는 하지 않았습니다.”
주인혁이 정유리의 말을 곱씹다가 뒤늦게 화를 냈다.
“야! 방금 내 기여도가 없다는 거 돌려 말한 거지?”
“아닙니다. 아, 도착했습니다. 여기만 넘으면 오늘 안에 도착할 확률이 매우 높습니다.”
- 돌려 말하지 않고 직설적으로 말했습니다ㅋㅋ
- ㅋㅋㅋ 인혁이 4천왕 중 최약체가 되어버렸다
- 정유리 말 돌리기 장인 ㅋㅋ
정유리가 앞의 하천을 가리켰다.
“대전에는 원래부터 물줄기가 있었습니다. 그것이 환경이 이렇게 되어버리고 나서는 매우 커졌습니다.”
쏴아아아아아···
본래는 실개천이라고 말했지만 그 모습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급류가 형성되어 있었고 강폭도 제법 되는 게 그냥 건너기에는 휩쓸릴 우려가 있었다.
“가장 가까운 다리가 어디야?”
“여기였습니다.”
“······.”
정유리가 말한 다리는 온데간데없었다.
파편으로 쪼개졌어도 급류에 휩쓸려 하류로 내려갔을 것으로 추정됐다.
- 다리가 있었는데요 없었습니다
- 어케 건너누ㅋㅋ
하늘도 금방 우중충해지는 게 곧 비가 올 것 같았다.
성진이 혼자서 한 명씩 옮기기로 하고 곧 실행에 옮겼다.
푸슛-!
처음에는 주인혁, 그다음에는 휴머노이드 일행을 한 명씩 옮겼다. 마지막으로 정유리를 옮기려 하는데, 강의 중심에서 거대한 몬스터가 솟구쳐 올랐다.
콰아아-!
“시이익···.”
- 갸, 갸라도스? 첨 보는데;
- 좃망; 이대로 일행 찢어지나?
건너간 주인혁과 휴머노이드들이 소리쳤다.
“형! 어, 어떡해요. 쏠까요?”
“숨어! 머리 내밀지 마.”
파지지직···
수면에 전류가 가득했다.
몬스터의 소행인 것 같다.
강에 사는 몬스터는 성진도 처음이었다.
정유리와 인근의 나무 뒤로 숨었다.
파지직-!
콰앙!
몬스터가 입에서 구슬 모양의 뭔가를 토해내자 나무가 움푹 파였다. 다음 번 공격에는 나무가 쓰러질 것 같았다.
‘일단 한 발.’
기이잉-
철컥-
성진이 샷건을 장전하고 사이오닉 펄스를 그러모았다. 사이오닉 펄스는 현재 3레벨에 도달했다. 성진이 가진 능력 중 적응과 함께 가장 높은 경지였다.
막대한 사이오닉이 에너지 탄에 응집된 순간, 성진이 나무 뒤에서 뛰쳐나왔다.
“시이익!”
파지직-!
몬스터가 쏘아낸 노란 구체가 성진에게로 향했다.
그와 동시에, 성진의 샷건이 에너지를 토해냈다.
콰아아아아아아-!
이전까지의 펄스 탄환이 단순히 에너지를 탄에 담아낼 뿐이었다면, 방금 성진이 쏘아낸 사이오닉 탄환은 에너지 그 자체라고 해도 무방할 정도였다.
보랏빛 탄환이 노란색 구체를 흔적도 없이 뭉개고 나아가 몬스터의 머리를 터트렸다.
콰아아아앙!
콰아아앙!
콰아앙···
“······형?”
“뭐야! 바, 방금···.”
몬스터의 머리는 온데간데없었다.
성진의 탄환은 전기 구체를 짓뭉개고 몬스터의 머리를 터트렸다. 그것도 모자라 건물과 나무들에 커다란 구멍을 만들어 내고 사라졌다. 탄환이 어디까지 뚫고 나간 건지도 정확히 가늠할 수 없었다.
- 레일건?
- 궁니르?
- 올빼미 누가 키웠누 ㅋㅋ
성진은 샷건을 잠시 내려다보았다.
이만한 힘을 쏘아냈으니 멀쩡할 리가 없다.
펄스로 보호했음에도 총구가 심하게 과열되어 총에서 안내음이 흘러나왔다.
- 심각한 과열. 총기의 변형 우려가 있으니 시간이 지난 후에 사용하십시오.
다행히 망가진 건 아닌 것 같았다.
‘함부로 펄스를 최대치까지 담으면 위험하겠는데.’
이제는 펄스가 모자란 게 아니라 총이 버티지 못했다. 자신의 펄스를 견딜만 한 총을 새로 구하지 않는 이상, 당분간은 적당량의 펄스만 운용해야 했다.
정유리가 나무 뒤편에서 나오며 말했다.
“올빼미, 변신도 가능합니까? 미리 말해준다면 안티와의 일전에 활용할 방법을 생각해두겠습니다.”
“아니.”
“아··· 그렇습니까?"
- 왜 실망햌ㅋㅋㅋㅋ
- 혹시··· 합체는···
- 와 근데 화력 실화야? 방금 저거 쐈으면 등불 멸망 아님?
‘지나가던등불빠’님이 10,000원 후원하셨습니다!
[등불이 저 탄환에 멸망이라고?ㅋㅋ 꿈도 야무지시지. 저런 거 쏘아낼 시간을 줄 것 같아?]
- 딱! 어? 바로 송하린 접근하고 조병창 엄호들어가면서
- 등불은 멸망하였습니다
- 어?
푸슛-!
성진이 강을 건너고 안경원이 딸린 건물로 들어가려는데 방금 쓰러트린 몬스터에게서 입자가 빠져나왔다. 섭취 적응의 징조다.
- 여기서 일렉트릭 펄스가!
- 아니라면 플라즈마 펄스가!
우드득···
[완벽한 사냥을 하기에 몸이 부적합함을 느낍니다.]
[더 훌륭한 사냥을 위해 몸이 적응합니다.]
[섭취한 일렉트릭투스의 유전자를 사용합니다.]
[양팔에 전기 생산 근육 기관이 생성됩니다.]
[일정량의 전류를 양팔로 방사할 수 있습니다.]
[생성되는 전류는 불안정하지만, 단련할 수 있습니다.]
[전기신호를 감지할 수 있는 범위가 늘어납니다.]
‘전류라고?’
- 시무룩···
- 펄스가 아니잖아 ㅠ
- 그래도 노력 대비 얻은 능력 ㅅㅌㅊ 아니냐?
- ㅇㅇ 한 방감이었는데도 풍성한 한가위만큼 줬다
성진은 양팔에 생긴 기이한 감각을 확인할 틈도 없이 건물로 뛰어 들어갔다.
쏴아아아아아아···
다시 비가 오기 시작했다.
주인혁이 성진에게 말했다.
“형! 방금 그건 무슨 힘이에요? 아니, 형 총이 제 거랑 다른 건가?”
“주인혁. 실례를 범하고 있다. 아무리 올빼미라도 변신은 불가능합니다.”
“나는 변신이라고 한 적 없는데?”
“아, 말이 잘못 나왔습니다. 올빼미, 정말 변신은···.”
“변신 못 해. 총도 다르지 않고. 이건 내 능력이야.”
정유리가 고개를 푹 숙였다.
- 유리 시무룩한 거 봐 ㅋㅋㅋ 커엽ㅋㅋ
- 내심 변신하길 바랬나 ㅋㅋㅋ
- 이쯤 되면 누가 후원해서 변신 리액션 봐야 하는 거 아니냐?
손동원과 양준호가 성진을 보며 감탄했다.
“형, 이 정도 힘이면 석교동 벙커에 있는 안티랑도 해볼 만 하겠는데요?”
“그래요! 아··· 근데 저쪽도 수가 많아서 화력만 세서는 소용이 없겠구나···.”
성진은 비가 그칠 때까지 방금 얻은 능력을 확인하기로 했다.
파직··· 파지직···
주인혁이 성진의 손에서 스파크가 튀자 눈이 휘둥그레졌다.
“형, 못하는 게 뭐에요?”
- 귀여운 리액션
- 패배
- 부산 아줌마 요리 먹기
주인혁의 의문을 풀어주기보다는 능력 확인이 먼저였다.
“잠시만, 확인할 게 좀 있어서.”
파직···
기대했던 것만큼 많은 전류를 운용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사용할 방법이 몇 가지 떠올랐다.
“배터리 다 쓴 거 있어?”
“다 쓴 배터리를 말하는 거라면, 아까 교체하고 버리지 않은 게 두 개 있습니다.”
“잠깐 줘 볼래?”
“어차피 버릴 예정이었습니다. 여기 있습니다.”
성진이 배터리를 넘겨받아 양손에 꽉 쥐었다.
그리고, 약한 전류를 그 안에 방사했다.
파직···
배터리는 변화가 없었다.
성진은 이번엔 최대출력의 전류를 방사해 보았다.
파지이이이익!
배터리가 살짝 녹아내렸다.
‘됐어.’
성진은 총기의 배터리를 방금 실험에 사용한 배터리로 교체했다. 배터리의 잔량을 확인해 보았다.
‘겨우 한 칸···. 위급할 때나 사용할 수 있겠네.’
배터리를 자급자족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지만, 아쉽게도 그 정도는 아니었다. 방금의 충전으로 열 칸으로 쪼개진 배터리 잔량이 고작 한 칸 차올랐을 뿐이니까. 아직은 불안정하다는 얘기다.
그래도 능력을 단련한다면 후에는 어느 정도 효율이 나오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있었다.
떠올린 능력의 사용처는 이것뿐만이 아니었다.
“휴머노이드는 전류에 노출되면 어떻게 돼?”
“감전을 말하는 거라면 사람보다 취약합니다. 특히 연산 장치가 있는 머리에 외부 전류가 흐르면 쇼트가 일어납니다.”
“기절한다는 얘긴가?”
“기절과는 다릅니다. 연산 장치가 타버리면 휴머노이드는 다시 깨어날 수 없습니다.”
성진은 고개를 끄덕였다.
굳이 펄스를 사용하지 않더라도 효과적으로 안티를 제압할 수 있을 것 같다.
어느새 쏟아붓던 비가 멈췄다.
“가자, 오늘 안에 구출해야지.”
“올빼미의 말이 맞습니다. 곧 석교동에 도착합니다.”
성진과 일행은 다시 일어나 남서쪽으로 향했다.
주인혁이 가는 길에 정유리에게 물었다.
“너, 신나 보인다?”
“신이 난다? 모르겠습니다. 아버지를 볼 미래가 기대되는 것은 맞습니다.”
“그게 그거지. 그리고 아버지를 보려면 안티부터 제압해야 하잖아.”
“그것은 걱정하지 않습니다. 우리에게는 올빼미가 있습니다. 올빼미는 매우 착하고 매우 강합니다. 비록 변신은 불가능하더라도 그가 있다면 안티들은 제압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렇게 말한 정유리가 성진을 쳐다봤다.
“변신···.”
“안된다고.”
“혹시 나중에라도 가능하게 되면 꼭 말씀해주십시오.”
“···그래. 그럴게.”
- 올빼미도 포기했다 ㅋㅋ
- 될 대로 돼라 ㅋㅋ 변신 함 해줘라
- 올빼미가 변신! 외치면 정유리 눈에서 냉각수 다 쏟아지겠다 ㅋㅋ
- 냉각수 오열ㅋㅋㅋㅋ
성진은 다른 휴머노이드를 살폈다.
손동원과 양준호는 다른 반응을 보였다.
정유리가 손동원에게 말했다.
“손동원. 아버지를 볼 텐데 어두워 보입니다. 혹시 기능에 문제가 있습니까?”
“아니, 그냥.”
“휴머노이드는 그냥이라는 말을 거의 사용하지 않습니다. 무언가 문제가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툭툭···
정유리가 자신의 품을 두들겼다.
“품이 필요하십니까?”
“아니, 그런 거 아니야. 혹시··· 아버지가 나를 반기지 않을까 봐 그래.”
“그것 때문이었습니까? 손동원, 조언을 허락하시겠습니까?”
“조언? 나한테? 그래, 뭐든.”
흠흠···
정유리가 괜히 헛기침하는 제스쳐를 취했다.
휴머노이드가 그런 모습을 보이니 낯설었다.
“그런 것쯤은 일단 아버지를 구하고 생각하는 게 낫지 않겠습니까? 할 수 있는 일을 먼저 하는 것은 사람이든 휴머노이드든 다르지 않습니다.”
“······그렇네. 괜히 고민했네.”
고민하는 손동원과는 달리 양준호는 별생각 없어 보였다.
“곧 시신경이 돌아올 것 같아. 그동안 너무 불편했어.”
“미안한 말이지만, 그쪽엔 아무도 없습니다.”
“···그래? 돌아오려면 아직 멀었나?”
일행이 석교동 지하 벙커 인근에 도착했다.
정유리가 물었다.
“여기서 직진해서 조금 가면 입구가 보입니다. 보초가 있을 것으로 예상됩니다. 어떻게 하는 게 좋겠습니까?”
“돌파해야지. 벙커 구조는?”
“영상에서 확인한 바로는 인질들이 있는 곳은 한층 더 내려가야 합니다. 그래도 혹시 모르니 꼼꼼히 확인해야 합니다.”
“사람과 안티를 구분해야 한다라···.”
“그건 방법이 있습니다. 올빼미, 혹시 컴컴한 곳을 잘 볼 수 있습니까?”
성진은 정유리에게 작전을 상세하게 설명받았다.
같이 듣던 주인혁이 소스라치게 놀랐다.
“개무식하잖아!? 그딴 게 무슨 작전이야?”
“더 좋은 작전이 있습니까?”
“······아니.”
“마땅한 대안이 없으면, 비난을 참아보는 것을 추천합니다.”
“이씨···.”
“욕설을 했습니까?”
“아니···.”
주인혁에게서 시선을 돌린 정유리가 성진에게 말했다.
“외부인인 당신에게 미안합니다, 올빼미. 하지만 우리가 따라간다면 당신에게 짐이 될 것입니다. 또한 생존율이 급격하게 떨어집니다. 우리의 전투능력은 형편없습니다.”
“그래, 나도 그게 편해.”
“이 일은 꼭 보답하겠습니다. 기한은 제 연산 장치가 멈추는 날까지입니다.”
우득···
성진이 찌뿌둥한 몸을 일으켰다.
바닥에 손을 가져다 대고 전기 신호와 펄스를 퍼트렸다.
찌릿···
‘많네. 그래도···.’
“이번엔 10분 정도면 되겠지. 그 뒤에 들어와.”
“그렇다면 지금부터 10분을 세겠습니다. 1···.”
성진의 모습이 그대로 허공으로 사라졌다.
위장색이 발동했다.
파직···
벙커의 초입에서 경계를 서던 안티가 풀썩 쓰러졌다.
뒤를 돌아보고 신호한 성진이 지하 벙커의 입구로 내려가기 시작했다.
“주인혁, 응원하십시오.”
“뭔 응원이야.”
“빨리. 추천 속담 ‘족제비도 낯짝이 있다’입니다.”
“···알았어.”
“주먹을 더 꽉 쥐십시오. 이렇게.”
주인혁이 다른 휴머노이드들을 살피자, 모두 같은 동작을 취하고 있었다. 엉덩이를 빼고 엉거주춤 서서 양 주먹을 꽉 쥔 자세. 주인혁이 보기에 상당히 볼품없었다.
“···이렇게?”
“더 꽉.”
“씨···.”
“욕설?”
“이렇게 하면 돼?”
“잘하고 있습니다. 당신은 응원에 재능이 있습니다.”
****
위장색을 발동한 성진이 미리 정유리가 일러준 장소에 도착했다. 성진은 여러 개의 전력 패널 중 한 군데로 다가갔다.
파직···
팟!
패널이 전류에 타버리자 내부 전등이 일시에 꺼졌다.
빛이 들어오지 않는 벙커.
성진은 전력실을 내려가 사람들이 있는 곳으로 추정되는 가장 깊은 공간까지 도달했다.
내려오면서 확인한 결과, 이곳 말고는 사람들이 감금된 곳을 찾지 못했다.
‘사람들은 이게 전부인가?’
영상으로 확인한 사람들이 전부였다.
“부, 불이 왜 꺼졌지?”
“누가 우리를 구하려는 거 아니야?”
“그럴 리가···.”
성진이 어두컴컴한 공간에 모습을 드러냈다.
“다, 당신! 누구···.”
“쉬이··· 잠시 조용히 계세요.”
소란이 일자 근처에서 사람들을 감시하던 안티가 성진을 쳐다보았다. 안티의 입에서 끊어지는 기계음이 들려왔다.
“판··· 별. 관련··· 없음.”
“죽어어어!”
안티들이 성진에게 달려들었다.
성진이 전력을 차단한 이유는 상대가 자신을 보지 못하게 하기 위함이 아니었다. 사람과 안티를 구분하기 위해서다.
어두운 공간에는 붉은 눈들이 떠올라 있었다.
스릉-
“꺼···.”
서걱-
붉은 빛 한 쌍이 사그라들었다.